몇 일간의 꿈같은 휴식을 보내다 복귀를 하니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일종의 월요병 일까?
-부아아앙-
“민수야 뭐하냐?”
잠시 멍을 때려서인지 악셀을 계속 밟은 채로 있었나보다. 백미러로 위험을 감지한 앞차가 길게 크락션을 울렸다.
“근데 티코 따위가 무슨 크락션은 덤프트럭 저리 가라냐”
“아스팔트에 붙은 껌에도 붙는 차인데 위기감을 많이 느꼈나보지”
사람들은 섹스 청부업자라는 직업이 호스트나 카사노바처럼 자신의 욕심을 채워가며 일종의 오락 같은 직업인줄 착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목표물 하나와 한 마디를 하자고 10시간이 넘게 죽치고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오. 상대의 말에 있어보이게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독서량... 독서량 하니 생각나는 건데 목표물의 취미가 독서... 거기에 철학 쪽을 좋아한다면... 정말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흥미롭게 말하기 위해 원치 않는 여성형 유머 프로그램, 여성 잡지. 제일 짜증나는 것은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항상 웃으며 경계심이 안 들도록 멋지고 편안한 남자인척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왔다”
“편의점에서 먼저 물건 사들고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어. 보이면 신호 줄게”
“알았다. 으휴... 오늘은 제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람의 이동 동선과 시간대는 90% 정도는 일치하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매일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길로 출근을 하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길로 퇴근을 하지 않는가.
-부우우웅-
‘이제 시작이군’
민수가 건물 안쪽 구석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역시나 익숙한 빨간색의 귀여운 차가 느릿느릿 지나간다.
‘제발 멈춰라’
그녀의 생각이 그동안 바뀌었을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허름한 트럭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처음부터 새하얀 백지로 시작해야 하기에 프로답지 못하게 민수의 가슴이 떨린다.
‘옳지’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폐차 직전의 트럭, 불법 주정차 된 차량들 사이에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주차단속 요원들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는 트럭은 의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불법 주정차 된 차량들 때문에 기능을 상실한 도로를 느리게 빠져나오던 미니쿠퍼가 이제는 기어 다니다시피 천천히 지나간다.
‘타이밍이다’
검은 봉다리를 들고 민수가 허름한 트럭으로 다가가니 미니쿠퍼 또한 트럭 뒤편으로 정차한다.
‘풉...’
“어머! 진달래의 눈물! 그 책 나도 정말 재밌게 봤는데...”
여자의 자존심 일까? 분명 민수를 보고 차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며 자신의 존재감만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하여튼 여자들이란... 안 그래도 먼저 아는 척 하려고 했었다’
그녀가 인지하도록 고개를 크게 돌려 바라보니 순간 그녀가 움찔거린다. 그리고 민수가 기억이 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치켜들어 그녀에게 접근을 하자 의식을 하는지 그녀의 발음이 점점 꼬인다.
“끄으래? 음... 음... 하여튼 진달래... 음... 그거 말고도...”
어느덧 민수와 그녀와의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고 차 안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정확히 말하면 전화통화를 하는 척 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우연이! 또 뵙네요!”
민수의 말에 그녀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몸을 들썩이며 탄성을 토해낸다.
“어머! 깜짝이야!”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친구랑 통화에 너무 집중을 해서...”
고백 받은 자의 여유랄까? 그녀가 민수의 관심을 받으려 이러한 행동을 한 순간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민수 쪽으로 오게 된 것이다.
말을 이어나가기 힘든 그녀의 답변을 들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고는, 마치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갈듯 뒤로 한 걸음 물러나니 그녀가 급하게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고아원 다녀오시나 봐요?”
“네, 오늘도 막내 녀석 때문에 빠져 나오기가 힘들었네요. 이제 시간도 널널하고 자유롭네요”
“아... 그럼 이제 놀러 가시겠네요?”
“놀러가긴요... 저녁 먹고 집에서 푹 쉬어야죠. 너무 피곤하거든요”
“아... 벌써 저녁... 시간이구나”
그녀가 저녁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민수를 바라본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녁 식사 같이 하실래요?”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지만 이내 내려오고 곤란한 표정으로 바뀐다.
“제가 시간이...”
“시간이 없으시면 어쩔 수 없고요”
“괜찮을 것 같네요.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친한 친구라서 취소해도 괜찮거든요. 민수씨 말대로 이것도 인연인데 말이죠”
‘풉... 저녁 식사는 무슨... 마트에서 장보고 집에 가는 길이면서’
속으로는 비웃지만 겉으로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민수가 말한다.
“오늘은 친구랑 같이 고아원에 가서요. 친구한테 말하고 다시 올게요. 숙녀 분 차 타고 가죠”
민수가 다시 트럭으로 걸음을 옮겨 검은 봉다리를 놓고, 민애의 조수석에 타니 그녀의 아찔한 옆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바비인형을 닮은 유명 연예인을 연상케 하는 오똑한 코, 한 손에 잡힐듯한 길고 가녀린 목, 무거워 대신 받쳐주고 싶을만큼 부성본능(?)을 자극하는 풍만한 가슴, 편안하고 타이트해 보이는 원피스이지만 가슴과는 상반되게 여유가 남아 허리라인 부근에서 세로로 길게 접힌 가녀린 허리, 초등학생이 치마 밑단을 잡고 아이스깨끼를 하여도 초등학생의 힘만으로는 골반 위로 들어올리기 쉽지 않아 보이게 옷 위로 터져 나올듯한 엉덩이, 베이지색 원피스 밑단이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에 율동을 칠 때마다 수많은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한다.
“어디로 가죠?”
민수가 자신의 몸매를 훔쳐본다는 것을 눈치챘던 것인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민수에게 말하자 민수가 당당하게 시선을 떼지않고 말한다.
“미니쿠퍼는 작은 차라 불편할줄 알았는데 은근히 편안하네요. 그쪽도 자세가 딱 잡힌게 편안해 보여요”
민수의 말에 그녀의 뿌듯한 표정이 지워진다.
“그러고 보니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네... 그렇네요”
“저는 김민수라고 합니다”
민수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니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으로 민수의 손을 잡는다.
“저는 김민애라고 해요”
서로의 손을 잡으며 잠시 눈빛 교환을 한 후 민수가 말을 잇는다.
“민애씨, 일단 한북동으로 가시죠”
악셀을 가볍게 밟고 도로를 빠져나가며 그녀가 묻는다.
“한북동에 괜찮은 곳이 있나봐요?”
“아... 좀 거리가 있죠? 제가 한북동에 살거든요”
“아...”
“저희 집에 가는 거에요”
“네?”
그녀의 놀람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민수가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저희집 근처에 돈까스가 죽이는 배달 전문점이 있거든요”
“네? 풉... 저번에도 모텔...에서 짜장면을 시켜 드시더니...”
아무래도 낯선 남자와 모텔에 갔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나 보다. 모텔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다.
“저번에도 게눈 감추듯이 짜장면 드셨잖아요. 이번에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머... 제가 언제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고 그래요?”
“어쨋든요! 아! 그리고 남자랑 둘만 있다고 절 덥치시거나 그러면 안 되요!”
“풉... 덥치긴 누가 덥쳐요! 돈까스 맛 없으면 각오나 하세요!”
저번의 모텔 사건으로 경계심이 풀린 것일까? 저번과는 다르게 민수의 집으로 민애가 들어오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대한민국 0.1%만 산다는 부자동네인 한북동 중심가에 위치한 주택답게, 입구부터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다부진 체격의 경비원이 낯선 여자인 민애의 길을 막다가 민수의 일행인 것을 눈치 채고는 머쓱한지 인사를 건넨다.
“안녕 하십니까”
“네, 수고 하세요”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경비원을ㄹ 스쳐가고 민수가 엘리베이터로 민애를 이끈다.
“요즘 영원한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난리던데 아세요?”
여자와 드라마는 뗄 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인 것일까? 그녀가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댄다.
“어머! 당연히 알죠. 시청률 40%가 넘는 드라마인데요”
“저도 하도 난리라서 궁금해서 봤거든요. 그런데 중간에 봐서 그런지 이해가 잘 안 되더라고요. 최불하씨와 견미래씨 하고 싸우던데 어떻게 된 거에요?”
“아~ 최불하랑 견미래랑 원해 부부였거든요. 그런데 견미래가 유부녀면서 총각인 이덕수랑 바람이 난 거에요. 그래서 결국 최불하한테 걸렸죠”
“아... 그래서 싸운 거구나... 최불하씨도 참 속이 좁네요”
“네?”
“제가 최불하씨라면 오히려 나를 자책하고 견미래씨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을 것 같아요”
“무슨...”
“아니, 남편의 사랑이 부족해서 아내가 바람이 난 건데 결국 남편 책임이지 여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안 그래요?”
“아...”
민수의 말에 민애가 짧은 탄성을 터트리고 무언가를 깊게 생각한다.
‘걸려들었군’
“민애씨, 제가 뭐 하나 맞춰 볼까요?”
“뭐요?”
“민애씨에 대해서요”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민수의 말에 순간 그녀가 움찔 거린다.
“구체적으로...”
그녀의 말을 막고 민수가 자신의 말을 잇는다.
“민애씨는 당연히 파티에 혼자 왔으니 견혼을 안 했을테고, 음... 남자한테 인기는 많지만 지금은 남자친구가 없을 것 같아요. 맞죠?”
“음...”
아직은 일말의 죄책감이 있는지 선뜻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민애를 보며, 민수가 남편 대신 남자친구의 유무에 대해 관점을 옮겨 거짓말을 유도한다.
“남자친구 없잖아요! 솔직히 말해요!”
“남자친구... 없죠...”
“거봐요. 제 예상이 맞네요”
어느덧 민수와 민애는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유럽 왕실에서나 있을 법한 디자인의 으리으리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나올 법도 하다.
족히 거실만 30평은 될 듯한 공간 중간, 얕은 단상 위 새하얀 광택이 빛나는 그랜드 피아노.
영화관 부럽지 않은 크기의 홈씨어터와 그 주위를 둥글게 둘러싼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쇼파.
10층임에도 불구하고 2층구조로 되어 높고 높은 천장에 메달려 우아한 빛을 내리쬐는 상들리에.
사생활을 중시하는지 아니면 이웃집에 대한 배려인지 집안의 모든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방음벽지.
모든 가구가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다.
“남자 혼자 사는 집 처음 와보세요?”
"아니... 네...“
그녀가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는지 순간 부정을 긍정으로 바꿨다.
“혼자 살기에는 쓸때 없이 집이 크죠?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갈까 생각 중이에요”
“크긴 크네요...”
“저기에 앉아 있으세요. 돈까스 시키고 올게요”
“풉...”
이런 궁전 같은 집, 거기에 민수가 안내한 억소리가 날만한 고급스러운 양주로 둘러 쌓여 있는 주방의 미니바에서 배달된 돈까스를 먹는다고 생각해 보라. 웃음이 나올 법도 할 것이다.
어느덧 배달된 돈까스는 주방에 마련된 작은 미니바에 먹음직스럽게 차려지고,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겪었기 때문인지 저번과는 다르게 편안한지 민애의 표정이 자연스럽다.
“풉... 그런데 민수씨는 아무거나 잘 드시나 봐요?”
“아무 거라니요?”
그녀가 민수의 반문에 잠시 주위를 둘러 보고는 대답한다.
“능력이 좋으신 분 같은데 저번에는 짜장면, 오늘은 돈까스...”
“그게 어때서요?”
자신의 뜻을 민수가 이해를 못하자 그녀가 당황한다.
“아니... 음...”
그녀의 당황하는 모습을 민수가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이해했는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아... 그런 뜻 이였군요... 사실 저는 그런 걸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희한하게 친구들이 제가 입맛이 싸구려라고 놀리더라구요”
똑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자신의 주장에 힘이 실린 것 같아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다.
“거봐요... 사실...”
무언가 노림수가 있음 일까? 시종일관 그녀의 대화를 잘 들어주던 민수가 말을 끊는다.
“저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똑같았어요... 후...”
갑작스런 분위기의 반전은 상대방의 집중력을 일순간 흐트려 놓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민수가 의도적으로 생각에 잠기는 듯 한숨을 쉬어 그녀가 자신의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번다.
“저는 맛 있으면 그걸로 족했어요. 그것이 싸구려 음식이든, 사치스러운 음식이든 말이에요”
“네?”
“사랑도 마찬가지 였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개의치 않았죠...”
“...”
“그래서 사랑에 상처를 많이 받았나 봐요. 저는 처음에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기 힘들어서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 모든 걸 걸만큼 깊게 빠지고 헤어 나오지 못하거든요.
“...”
“갑자기 대화가 이상해져 버렸네요. 괜찮죠?”
“네...”
“자리가 불편하진 않으시죠?”
“네...”
“돈까스는 맛있죠?”
“네...”
사람은 짧은 시간동안 연속된 긍정의 대답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다음 질문에 대해 긍정의 대답을 할 준비를 하게 된다.
“술 괜찮으시죠?”
“네... 네?”
자신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한 그녀가 실수를 깨닫고 수습을 해보려 하지만 민수는 이미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술을 가지러 냉장고로 향한다.
“기분도 꿀꿀한데 소주 먹죠”
미니바에 진열된 수많은 고급스러운 술들을 놔두고, 소주를 가지고 오는 모습이 민수의 자유분방한 사랑과 겹쳐 보인다.
‘내 집이 아니라서... 함부로 먹을 수는 없잖아’
사실 돈까스를 시킨 것도, 소주를 먹는 것도 이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민애씨 거기 구석에 소주잔이 있을 거에요”
소주를 들고 돌아오는 민수가 주뻣 거리며 앉아있는 그녀에게 소주잔의 위치를 말하니 그녀가 테이블에 소주잔을 꺼내 놓는다. 마치 서로가 원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사실 민수의 화술과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서 민수가 그녀를 조금만 설득을 하여도 술을 마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민수는 곤란한 것을 설득 하는 입장, 민애는 설득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녀의 밑으로 숙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어 대화와 술의 주도권을 확보하기에는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그렇기에 일종의 최면요법과 자연스럽게 소주잔의 위치를 말하여 같이 술자리를 준비함으로써 서로가 원해 술을 마시는 듯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쨍-
“크으...”
서로의 잔에 술을 채우고 건배를 하며 한 모금을 들이키니,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진 듯 술을 먹기 전 주제에 대해 다시금 말을 잇는다.
“사랑에 모든 걸 거는 성격답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만큼 헤어 나오질 못하거든요. 그래서 민애씨를 보면서 참 힘들었어요”
“네?”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우고 민수의 입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민애다. 하지만 민수의 입은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지 다시 열릴 기미는 보이질 않고, 묵묵히 자신과 그녀의 빈 술잔만 채운다.
-쨍-
“크으... 안 드세요?”
민애의 귀에는 마치 이 술을 안 먹으면 입을 열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려온다.
“먹어야죠”
그녀가 새침하게 산 속의 옹달샘을 먹듯이 조금씩 길게 빨아 들인다.
-쪼옥-
“민애씨를 처음본 순간 솔직히 비호감이였어요”
“네?”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외모도... 스타일도...”
“...”
자신의 단점 지적에 고스란히 불쾌감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다.
“솔직히 겉모습은 매력이 없었죠”
“...”
“하지만... 자신을 비웃고 깔보는데도 전혀 불쾌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인양 피해자가 가해자를 감싸는 모습을 보고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꿈 보다는 해몽이지’
“거기에 낯선 사람의 호의에도 경계심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이렇게 사람을 쉽게 믿는 순수한 사람이 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에 자신이 칭찬 받지 못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 칭찬을 받아서인지 그녀의 불쾌감은 어느새 모조리 지워지고 따뜻한 미소만이 가득하다.
“아마도 짜장면을 먹으면서 민애씨에게 빠졌던 것 같아요”
민수의 의미심장한 말 때문인지 그녀의 눈이 동그레진다.
“정말 이렇게 착하고, 순수하고,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3년만에 처음 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순식간에 빠져들었죠”
“...”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예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
“그래서인지 연락처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끝내 참았죠”
“아...”
“오늘 우연히 그 넓디 넓은 서울에서 마주치고 저는 생각했어요. 이것은 인연이다... 하고요”
“...”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빠져들고 싶어요. 내 모든 걸 걸만큼...”
고백을 끝으로 민수가 그녀에게 점점 다가가니, 그녀가 어찌할 바 모르는지 눈동자가 여기저기로 흔들린다.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빈 술병도...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려함 일까? 마치 1분에 1mm씩 다가가는 듯 한없이 전진이 느리기만 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어느새 채 10cm도 되질 않고, 서로의 술 내음이 전해져온다.
사람은 위기에 처할 때 자신의 짐을 조금이라도 벗어 던지려 때로는 자기합리화를 한다.
드라마 속 견미래...
여자의 불륜은 사랑과 신뢰를 못준 남편의 잘못...
민수의 진심이 담긴 고백...
지금 느껴지는 술...
그녀의 눈이 감긴다.
-부아아앙-
“민수야 뭐하냐?”
잠시 멍을 때려서인지 악셀을 계속 밟은 채로 있었나보다. 백미러로 위험을 감지한 앞차가 길게 크락션을 울렸다.
“근데 티코 따위가 무슨 크락션은 덤프트럭 저리 가라냐”
“아스팔트에 붙은 껌에도 붙는 차인데 위기감을 많이 느꼈나보지”
사람들은 섹스 청부업자라는 직업이 호스트나 카사노바처럼 자신의 욕심을 채워가며 일종의 오락 같은 직업인줄 착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목표물 하나와 한 마디를 하자고 10시간이 넘게 죽치고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오. 상대의 말에 있어보이게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독서량... 독서량 하니 생각나는 건데 목표물의 취미가 독서... 거기에 철학 쪽을 좋아한다면... 정말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흥미롭게 말하기 위해 원치 않는 여성형 유머 프로그램, 여성 잡지. 제일 짜증나는 것은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항상 웃으며 경계심이 안 들도록 멋지고 편안한 남자인척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왔다”
“편의점에서 먼저 물건 사들고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어. 보이면 신호 줄게”
“알았다. 으휴... 오늘은 제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람의 이동 동선과 시간대는 90% 정도는 일치하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매일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길로 출근을 하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길로 퇴근을 하지 않는가.
-부우우웅-
‘이제 시작이군’
민수가 건물 안쪽 구석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역시나 익숙한 빨간색의 귀여운 차가 느릿느릿 지나간다.
‘제발 멈춰라’
그녀의 생각이 그동안 바뀌었을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허름한 트럭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처음부터 새하얀 백지로 시작해야 하기에 프로답지 못하게 민수의 가슴이 떨린다.
‘옳지’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폐차 직전의 트럭, 불법 주정차 된 차량들 사이에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주차단속 요원들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는 트럭은 의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불법 주정차 된 차량들 때문에 기능을 상실한 도로를 느리게 빠져나오던 미니쿠퍼가 이제는 기어 다니다시피 천천히 지나간다.
‘타이밍이다’
검은 봉다리를 들고 민수가 허름한 트럭으로 다가가니 미니쿠퍼 또한 트럭 뒤편으로 정차한다.
‘풉...’
“어머! 진달래의 눈물! 그 책 나도 정말 재밌게 봤는데...”
여자의 자존심 일까? 분명 민수를 보고 차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며 자신의 존재감만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하여튼 여자들이란... 안 그래도 먼저 아는 척 하려고 했었다’
그녀가 인지하도록 고개를 크게 돌려 바라보니 순간 그녀가 움찔거린다. 그리고 민수가 기억이 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치켜들어 그녀에게 접근을 하자 의식을 하는지 그녀의 발음이 점점 꼬인다.
“끄으래? 음... 음... 하여튼 진달래... 음... 그거 말고도...”
어느덧 민수와 그녀와의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고 차 안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정확히 말하면 전화통화를 하는 척 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우연이! 또 뵙네요!”
민수의 말에 그녀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몸을 들썩이며 탄성을 토해낸다.
“어머! 깜짝이야!”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친구랑 통화에 너무 집중을 해서...”
고백 받은 자의 여유랄까? 그녀가 민수의 관심을 받으려 이러한 행동을 한 순간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민수 쪽으로 오게 된 것이다.
말을 이어나가기 힘든 그녀의 답변을 들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고는, 마치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갈듯 뒤로 한 걸음 물러나니 그녀가 급하게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고아원 다녀오시나 봐요?”
“네, 오늘도 막내 녀석 때문에 빠져 나오기가 힘들었네요. 이제 시간도 널널하고 자유롭네요”
“아... 그럼 이제 놀러 가시겠네요?”
“놀러가긴요... 저녁 먹고 집에서 푹 쉬어야죠. 너무 피곤하거든요”
“아... 벌써 저녁... 시간이구나”
그녀가 저녁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민수를 바라본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녁 식사 같이 하실래요?”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지만 이내 내려오고 곤란한 표정으로 바뀐다.
“제가 시간이...”
“시간이 없으시면 어쩔 수 없고요”
“괜찮을 것 같네요.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친한 친구라서 취소해도 괜찮거든요. 민수씨 말대로 이것도 인연인데 말이죠”
‘풉... 저녁 식사는 무슨... 마트에서 장보고 집에 가는 길이면서’
속으로는 비웃지만 겉으로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민수가 말한다.
“오늘은 친구랑 같이 고아원에 가서요. 친구한테 말하고 다시 올게요. 숙녀 분 차 타고 가죠”
민수가 다시 트럭으로 걸음을 옮겨 검은 봉다리를 놓고, 민애의 조수석에 타니 그녀의 아찔한 옆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바비인형을 닮은 유명 연예인을 연상케 하는 오똑한 코, 한 손에 잡힐듯한 길고 가녀린 목, 무거워 대신 받쳐주고 싶을만큼 부성본능(?)을 자극하는 풍만한 가슴, 편안하고 타이트해 보이는 원피스이지만 가슴과는 상반되게 여유가 남아 허리라인 부근에서 세로로 길게 접힌 가녀린 허리, 초등학생이 치마 밑단을 잡고 아이스깨끼를 하여도 초등학생의 힘만으로는 골반 위로 들어올리기 쉽지 않아 보이게 옷 위로 터져 나올듯한 엉덩이, 베이지색 원피스 밑단이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에 율동을 칠 때마다 수많은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한다.
“어디로 가죠?”
민수가 자신의 몸매를 훔쳐본다는 것을 눈치챘던 것인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민수에게 말하자 민수가 당당하게 시선을 떼지않고 말한다.
“미니쿠퍼는 작은 차라 불편할줄 알았는데 은근히 편안하네요. 그쪽도 자세가 딱 잡힌게 편안해 보여요”
민수의 말에 그녀의 뿌듯한 표정이 지워진다.
“그러고 보니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네... 그렇네요”
“저는 김민수라고 합니다”
민수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니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으로 민수의 손을 잡는다.
“저는 김민애라고 해요”
서로의 손을 잡으며 잠시 눈빛 교환을 한 후 민수가 말을 잇는다.
“민애씨, 일단 한북동으로 가시죠”
악셀을 가볍게 밟고 도로를 빠져나가며 그녀가 묻는다.
“한북동에 괜찮은 곳이 있나봐요?”
“아... 좀 거리가 있죠? 제가 한북동에 살거든요”
“아...”
“저희 집에 가는 거에요”
“네?”
그녀의 놀람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민수가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저희집 근처에 돈까스가 죽이는 배달 전문점이 있거든요”
“네? 풉... 저번에도 모텔...에서 짜장면을 시켜 드시더니...”
아무래도 낯선 남자와 모텔에 갔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나 보다. 모텔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다.
“저번에도 게눈 감추듯이 짜장면 드셨잖아요. 이번에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머... 제가 언제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고 그래요?”
“어쨋든요! 아! 그리고 남자랑 둘만 있다고 절 덥치시거나 그러면 안 되요!”
“풉... 덥치긴 누가 덥쳐요! 돈까스 맛 없으면 각오나 하세요!”
저번의 모텔 사건으로 경계심이 풀린 것일까? 저번과는 다르게 민수의 집으로 민애가 들어오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대한민국 0.1%만 산다는 부자동네인 한북동 중심가에 위치한 주택답게, 입구부터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다부진 체격의 경비원이 낯선 여자인 민애의 길을 막다가 민수의 일행인 것을 눈치 채고는 머쓱한지 인사를 건넨다.
“안녕 하십니까”
“네, 수고 하세요”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경비원을ㄹ 스쳐가고 민수가 엘리베이터로 민애를 이끈다.
“요즘 영원한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난리던데 아세요?”
여자와 드라마는 뗄 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인 것일까? 그녀가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댄다.
“어머! 당연히 알죠. 시청률 40%가 넘는 드라마인데요”
“저도 하도 난리라서 궁금해서 봤거든요. 그런데 중간에 봐서 그런지 이해가 잘 안 되더라고요. 최불하씨와 견미래씨 하고 싸우던데 어떻게 된 거에요?”
“아~ 최불하랑 견미래랑 원해 부부였거든요. 그런데 견미래가 유부녀면서 총각인 이덕수랑 바람이 난 거에요. 그래서 결국 최불하한테 걸렸죠”
“아... 그래서 싸운 거구나... 최불하씨도 참 속이 좁네요”
“네?”
“제가 최불하씨라면 오히려 나를 자책하고 견미래씨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을 것 같아요”
“무슨...”
“아니, 남편의 사랑이 부족해서 아내가 바람이 난 건데 결국 남편 책임이지 여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안 그래요?”
“아...”
민수의 말에 민애가 짧은 탄성을 터트리고 무언가를 깊게 생각한다.
‘걸려들었군’
“민애씨, 제가 뭐 하나 맞춰 볼까요?”
“뭐요?”
“민애씨에 대해서요”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민수의 말에 순간 그녀가 움찔 거린다.
“구체적으로...”
그녀의 말을 막고 민수가 자신의 말을 잇는다.
“민애씨는 당연히 파티에 혼자 왔으니 견혼을 안 했을테고, 음... 남자한테 인기는 많지만 지금은 남자친구가 없을 것 같아요. 맞죠?”
“음...”
아직은 일말의 죄책감이 있는지 선뜻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민애를 보며, 민수가 남편 대신 남자친구의 유무에 대해 관점을 옮겨 거짓말을 유도한다.
“남자친구 없잖아요! 솔직히 말해요!”
“남자친구... 없죠...”
“거봐요. 제 예상이 맞네요”
어느덧 민수와 민애는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유럽 왕실에서나 있을 법한 디자인의 으리으리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나올 법도 하다.
족히 거실만 30평은 될 듯한 공간 중간, 얕은 단상 위 새하얀 광택이 빛나는 그랜드 피아노.
영화관 부럽지 않은 크기의 홈씨어터와 그 주위를 둥글게 둘러싼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쇼파.
10층임에도 불구하고 2층구조로 되어 높고 높은 천장에 메달려 우아한 빛을 내리쬐는 상들리에.
사생활을 중시하는지 아니면 이웃집에 대한 배려인지 집안의 모든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방음벽지.
모든 가구가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다.
“남자 혼자 사는 집 처음 와보세요?”
"아니... 네...“
그녀가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는지 순간 부정을 긍정으로 바꿨다.
“혼자 살기에는 쓸때 없이 집이 크죠?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갈까 생각 중이에요”
“크긴 크네요...”
“저기에 앉아 있으세요. 돈까스 시키고 올게요”
“풉...”
이런 궁전 같은 집, 거기에 민수가 안내한 억소리가 날만한 고급스러운 양주로 둘러 쌓여 있는 주방의 미니바에서 배달된 돈까스를 먹는다고 생각해 보라. 웃음이 나올 법도 할 것이다.
어느덧 배달된 돈까스는 주방에 마련된 작은 미니바에 먹음직스럽게 차려지고,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겪었기 때문인지 저번과는 다르게 편안한지 민애의 표정이 자연스럽다.
“풉... 그런데 민수씨는 아무거나 잘 드시나 봐요?”
“아무 거라니요?”
그녀가 민수의 반문에 잠시 주위를 둘러 보고는 대답한다.
“능력이 좋으신 분 같은데 저번에는 짜장면, 오늘은 돈까스...”
“그게 어때서요?”
자신의 뜻을 민수가 이해를 못하자 그녀가 당황한다.
“아니... 음...”
그녀의 당황하는 모습을 민수가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이해했는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아... 그런 뜻 이였군요... 사실 저는 그런 걸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희한하게 친구들이 제가 입맛이 싸구려라고 놀리더라구요”
똑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자신의 주장에 힘이 실린 것 같아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다.
“거봐요... 사실...”
무언가 노림수가 있음 일까? 시종일관 그녀의 대화를 잘 들어주던 민수가 말을 끊는다.
“저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똑같았어요... 후...”
갑작스런 분위기의 반전은 상대방의 집중력을 일순간 흐트려 놓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민수가 의도적으로 생각에 잠기는 듯 한숨을 쉬어 그녀가 자신의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번다.
“저는 맛 있으면 그걸로 족했어요. 그것이 싸구려 음식이든, 사치스러운 음식이든 말이에요”
“네?”
“사랑도 마찬가지 였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개의치 않았죠...”
“...”
“그래서 사랑에 상처를 많이 받았나 봐요. 저는 처음에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기 힘들어서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 모든 걸 걸만큼 깊게 빠지고 헤어 나오지 못하거든요.
“...”
“갑자기 대화가 이상해져 버렸네요. 괜찮죠?”
“네...”
“자리가 불편하진 않으시죠?”
“네...”
“돈까스는 맛있죠?”
“네...”
사람은 짧은 시간동안 연속된 긍정의 대답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다음 질문에 대해 긍정의 대답을 할 준비를 하게 된다.
“술 괜찮으시죠?”
“네... 네?”
자신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한 그녀가 실수를 깨닫고 수습을 해보려 하지만 민수는 이미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술을 가지러 냉장고로 향한다.
“기분도 꿀꿀한데 소주 먹죠”
미니바에 진열된 수많은 고급스러운 술들을 놔두고, 소주를 가지고 오는 모습이 민수의 자유분방한 사랑과 겹쳐 보인다.
‘내 집이 아니라서... 함부로 먹을 수는 없잖아’
사실 돈까스를 시킨 것도, 소주를 먹는 것도 이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민애씨 거기 구석에 소주잔이 있을 거에요”
소주를 들고 돌아오는 민수가 주뻣 거리며 앉아있는 그녀에게 소주잔의 위치를 말하니 그녀가 테이블에 소주잔을 꺼내 놓는다. 마치 서로가 원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사실 민수의 화술과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서 민수가 그녀를 조금만 설득을 하여도 술을 마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민수는 곤란한 것을 설득 하는 입장, 민애는 설득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녀의 밑으로 숙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어 대화와 술의 주도권을 확보하기에는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그렇기에 일종의 최면요법과 자연스럽게 소주잔의 위치를 말하여 같이 술자리를 준비함으로써 서로가 원해 술을 마시는 듯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쨍-
“크으...”
서로의 잔에 술을 채우고 건배를 하며 한 모금을 들이키니,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진 듯 술을 먹기 전 주제에 대해 다시금 말을 잇는다.
“사랑에 모든 걸 거는 성격답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만큼 헤어 나오질 못하거든요. 그래서 민애씨를 보면서 참 힘들었어요”
“네?”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우고 민수의 입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민애다. 하지만 민수의 입은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지 다시 열릴 기미는 보이질 않고, 묵묵히 자신과 그녀의 빈 술잔만 채운다.
-쨍-
“크으... 안 드세요?”
민애의 귀에는 마치 이 술을 안 먹으면 입을 열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려온다.
“먹어야죠”
그녀가 새침하게 산 속의 옹달샘을 먹듯이 조금씩 길게 빨아 들인다.
-쪼옥-
“민애씨를 처음본 순간 솔직히 비호감이였어요”
“네?”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외모도... 스타일도...”
“...”
자신의 단점 지적에 고스란히 불쾌감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다.
“솔직히 겉모습은 매력이 없었죠”
“...”
“하지만... 자신을 비웃고 깔보는데도 전혀 불쾌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인양 피해자가 가해자를 감싸는 모습을 보고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꿈 보다는 해몽이지’
“거기에 낯선 사람의 호의에도 경계심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이렇게 사람을 쉽게 믿는 순수한 사람이 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에 자신이 칭찬 받지 못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 칭찬을 받아서인지 그녀의 불쾌감은 어느새 모조리 지워지고 따뜻한 미소만이 가득하다.
“아마도 짜장면을 먹으면서 민애씨에게 빠졌던 것 같아요”
민수의 의미심장한 말 때문인지 그녀의 눈이 동그레진다.
“정말 이렇게 착하고, 순수하고,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3년만에 처음 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순식간에 빠져들었죠”
“...”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예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
“그래서인지 연락처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끝내 참았죠”
“아...”
“오늘 우연히 그 넓디 넓은 서울에서 마주치고 저는 생각했어요. 이것은 인연이다... 하고요”
“...”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빠져들고 싶어요. 내 모든 걸 걸만큼...”
고백을 끝으로 민수가 그녀에게 점점 다가가니, 그녀가 어찌할 바 모르는지 눈동자가 여기저기로 흔들린다.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빈 술병도...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려함 일까? 마치 1분에 1mm씩 다가가는 듯 한없이 전진이 느리기만 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어느새 채 10cm도 되질 않고, 서로의 술 내음이 전해져온다.
사람은 위기에 처할 때 자신의 짐을 조금이라도 벗어 던지려 때로는 자기합리화를 한다.
드라마 속 견미래...
여자의 불륜은 사랑과 신뢰를 못준 남편의 잘못...
민수의 진심이 담긴 고백...
지금 느껴지는 술...
그녀의 눈이 감긴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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