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산딸기 3
자취방에 들어가니 연탄불은 꺼져서 방이 냉골이었다.
부엌을 뒤져서 번개탄을 붙여 놓고, 석유곤로에 라면을 끓였다.
라면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연탄이 제대로 불이 붙었는지 아랫목이 미지근하게 온기가 올라온다.
더운물이 없으니 씻지도 못하고 엄동설한에 싸늘한 방안에서 군인아저씨와 단둘이 있자니 너무 어색하였다.
문일병이 근처에 만화방이 있는지 물었다.
마침 큰길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만화가게가 있었다는걸 기억해내고 우리는 만화가게로 향했다.
나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았고, 문일병은 박봉성의 기업만화를 보았다.
두시간 동안 20권가량 다보고 바꿔서 또 보았다.
이현세의 만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엄지와 박봉성의 만화 여주인공 진보배는 지금의 여자 아이돌 못지 않는 인기걸이었다.
문일병이 쥐포를 몇장 사와서 같이 씹으먹으면서 난로옆 소파에 눌러앉아 정신없이 만화를 보면서
문득 남자주인공 까치나 강타가 여자주인공 엄지나 보배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경험이 절실히 하고싶어졌다.
문일병도 마치 내가 엄지나 보배같이 이쁘고 착하고 싱그러운 엄친딸 같은 여자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순간 서로의 의중을 눈치채고 서로 마주보면서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 왜 있지 않은가? 눈빛만 보고 서로의 마음을 읽었을 때의 그 흐뭇한 기분..
만화 두편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수 있었던 밤이었다.
날이새자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연탄불은 활활 피어 올랐고, 솥에서는 물이 설설 끓고 있었다.
문일병더러 발이라도 닦으라고 한 대야 퍼 주고 방으로 들어가 추리닝으로 갈아 입었다.
문일병이 방에 들어오고, 나도 씻으러 나갔다.
세수를 하고, 발을 닦고, 그리고...조용하게 바지를 내리고 뒷물을 했다.
당시엔 샤워시설이 변변치 않았고 보일러가 없던 시절이라 특히 겨울철에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였고, 집에서는 간단하게 대야에 물을 떠 놓고 뒷물을 하여 청결을 유지하였다.
나는 서둘러 아침장을 찾아가 몇가지 식재료를 사와서는 밥을 짖고 찌개를 끓이고 반찬을 장만하였다.
라디오에서 8시 뉴스의 광장을 할 즈음엔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자반에 된장찌개에 부침개까지 1식 삼찬의 조촐한 밥상이 차려졌다.
문일병은 밥 두공기를 뚝딱 해 치우더니 피곤한지 방구석에 개켜놓은 이불더미에 기대더니 이네 잠이든다.
등따시고 배부르니 잠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이제 문일병은 아예 큰 대자로 벌리고 더운지 웃도리 단추를 몇개 끌르고 단잠에 빠져있다.
나는 마치 새색시처럼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평온하기 그지없는 그의 잠자는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모습을 그렇게 자세하게 꼼곰히 뜯어본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그가 몸을 뒤척이다가 그의 팔이 내 무릎위에 놓이게 되었다.
몸이 맞닿게되자 움찔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동안 그의 팔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얼굴과 팔뚝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또 다시 몸을 뒤척이더니 이젠 아예 내 쪽으로 몸을 틀어 다리가 내 몸에 밀착해 버렸다.
아까 빠져 나오지 못한걸 후회하면서 또다시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고스란히 그의 허벅지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엉덩이로 느껴야만 했다.
그의 팔은 내 무릎에, 그의 다리는 내 엉덩이에 닿아있다.
시간이 흐르자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그와 숲속에서 키스를 나누더 모습을 떠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살포시 감았다.
눈을 감으니 내 몸에 맞닿아 있는 그의 팔다리의 느낌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지는것 같다.
"아~"
스스로 함정에 바져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나 보다.
"어, 왜그래?"
갑자기 그가 되묻는다.
눈을 떠 그를 보니 입을 옴싹거리며 뭐라고 웅얼웅얼 잠꼬대를 하고 있나보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그의 몸에 갖혀서 그가 일어나기까지 꼬박 세시간을 벌을 서고 말았다.
나중엔 무릎자세로 앉은 다리에서 쥐가 나고, 바닥을 짚고 있는 팔도 저려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움직일수가 없었다. 아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쭈욱...시간이 멈췄으면 싶었다.
그는 태연하게 일어나더니 안자고 있었냐고 물었다.
순간 내 눈에 갑자기 눈물이 글썽였다.
"아니 여태 안자고....내 옆에 앉아 있었어?"
"눈물만 글썽글썽..."
"아이고 나랑 같이 자면 시집 못갈까봐 안자고 있었구나."
"그냥 새초롬하게 흘겨 봄"
"에고 미안해서 어쩌나, 그나저나 진짜 등따시고 배부르니까 잠도 잘잤다. 군대서는 온돌이 없이 마룻장에서 자는데, 난 이렇게 따끈따근한 구들장이 정말 그리웠어."
그는 날더러 잠좀 자라면서 이불을 펴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솔담배 한대 피고나서 문을 열고 툭 전지는 한마디.
"아까 보니까 요 앞에 동시상영하는 극장 있던데, 난 거기가서 이쁜여배우좀 구경하고 올테니 한숨 자 둬."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휭하니 나간다.
5분, 10분이 지나도 기척이 없어서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도 진짜로 극장엘 갔나보다.
그가 안보이게되자 나도 은연중에 긴장이 풀리면서 한숨 푹 잘 잤다.
눈을 떠 보니 5시쯤 되었도, 사방이 어둑어둑해졌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오바코트를 걸치고 그가 말한 극장으로 갔다.
조금 전에 영화가 끝나고 막간타임이었나 보다.
아차 싶어서 혹시 그가 다른 길로 집에 온건 아닌가 싶어 헐레벌떡 집으로 와 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다.
다시 극장으로 가 표를 샀다.
그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를 찾았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막간에는 불을 밝혀 주기 때문에 자리를 잡는 척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살폈다.
맨 앞쪽 가운데 스크린의 정중앙되는 곳에 군복이 언뜻 보였다.
가보니 그는 두 다리를 쭉 펴고 등만 의자에 겨우 기댄채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애써 참으면서 그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후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영화가 시작되자 그가 잠을깨어 엉거주춤 일어나서 차렸자세를 취한다.
군인은 역시 ....아직은 졸병이라 그런가 군기가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옆에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액국가가 끝나고 다시 자리에 앉을때 그는 모자를 자리에 벗어 놓더니 밖으로 나간다.
아마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피거나 둘중의 하나 혹은 둘다겠거니 생각하며 대한뉴스를 보고있었다.
뉴스가 끝날즈음 팝콘 한봉지를 들고 그가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광고가 몇편 나오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는데...이제사 정신차리고 보니 제목이 엄청 빨간색이다.
"산딸기 3"
정윤희 인지 김미숙인지 원미경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인기가 많았던 섹시한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였다.
잠시후 문일병은 팝콘을 우걱우걱 집어 먹기 시작한다.
달콤한 팝콘 냄새가 퍼져서 나도 침이 골깍 넘어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힐끗 내 쪽을 바라보더니 팝콘 한 웅큼을 집어서 내 무릎위에 놓아준다.
하지만 어두운 극장안이라 내 얼굴을 알아차리지 못하고는 그냥 옆자리에 왠 아가씨가 있으니 선심을 쓴 것이리라...
좋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꼬시려고 작업을 들어오면 어떻게 골려줄까 하는 행복한 상상도 잠깐 했다.
그래서 추운척 하며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얼굴이 보이지 않게 좀더 위장을 했다.
10분쯤 지나자 진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하고, 극장안이 쥐죽은듯이 조용해지고, 좌우 벽면의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여배우의 숨소리와 남배우의 씩씩대는 소리, 그리고 쿵쿵거리는 효과음악만이 울려퍼지고 있다.
아!! 키스를 저렇게 하는구나..
어제 첫 키스를 했던 나는, 그제서야 애정표현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자의 자세와 여자의 자세, 그리고 각도, 끌어 안는 강도 등...세심하게 빠져들었다.
영화는 막 절정에 다달아 키스에서 애무로, 그리고 애무에서 섹스자세로 들어가면서 여배우의 나신이 조금씩 들어난다.
여배우가 옷을 벗을때마다 극장안에서 한숨소리와 탄식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남자가 여자의 몸 위에서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뒷장면이 비춰지고,
그리고 이어서 여자의 흥분한 얼굴 모습이 비춰진다.
여자는 고개를 뒤로 30도 꺽은채 눈을 게슴츠레하게 감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입을 헤 벌리고 색을쓰며 얼굴 전체가 남자의 움직이는 박자에 맞추어 아래위로 흔들리고 있다.
극장안의 남자들이 모두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마도 열심히 딸딸이를 쳐 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분위기에 빠져 들면서 나도 묘한 느낌이 아랫도리에 전해진다.
아, 남자의 자지가 내 보지에 저렇게 강하게 박혀 들면 어떤 느낌일까?
잠시 옆에 앉은 문일병의 존재를 망각할 정도로 영화에 빠져 들었다.
이윽고 장면이 바뀌어 평범한 화면이 나타나자 이내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옆자리의 그이도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건넨다.
"팝콘좀 더 줄까요?"
나는 말은 못하고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 극장 팝콘은 별로 맛이 없느것 같아요."
그는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보다.
"겨울에 빵빠레 먹는것도 괜찮은데..."
"아가씨, 열도 식힐겸 빵빠레 하나씩 먹고 올래요?"
어찌하나 볼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는 대뜸 일어나더니 과감하게 내 손을 잡고 끌어 낸다.
사람들 많은데서 어찌 하기도 뭣해서 그냥 연인인척 끌려 나갔다.
매점앞에서 빵빠레 두개를 집어들고 한쪽에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나에게 건넨다.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옆으로 손을 뻗어 빵빠레를 받았다.
휴게실 의자에 앉아 빵빠레를 먹으면서 그는 게속 내 얼굴을 볼려고 하였지만, 난 계속 부끄러운듯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영화가 쫌 야하죠?"
"끄덕끄덕"
"이런 영화 싫으시면 나가서 차나 한잔 할까요?"
"절래절래"
"그럼 들어가서 영화 마저 봅시다. 본전은 뽑아야죠."
"끄덕끄덕"
우리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렇게 그는 짧은 대사를, 나는 머리를 끄덕이거나 흔들거나..그렇게 1시간반을 보냈다.
자취방에 들어가니 연탄불은 꺼져서 방이 냉골이었다.
부엌을 뒤져서 번개탄을 붙여 놓고, 석유곤로에 라면을 끓였다.
라면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연탄이 제대로 불이 붙었는지 아랫목이 미지근하게 온기가 올라온다.
더운물이 없으니 씻지도 못하고 엄동설한에 싸늘한 방안에서 군인아저씨와 단둘이 있자니 너무 어색하였다.
문일병이 근처에 만화방이 있는지 물었다.
마침 큰길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만화가게가 있었다는걸 기억해내고 우리는 만화가게로 향했다.
나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았고, 문일병은 박봉성의 기업만화를 보았다.
두시간 동안 20권가량 다보고 바꿔서 또 보았다.
이현세의 만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엄지와 박봉성의 만화 여주인공 진보배는 지금의 여자 아이돌 못지 않는 인기걸이었다.
문일병이 쥐포를 몇장 사와서 같이 씹으먹으면서 난로옆 소파에 눌러앉아 정신없이 만화를 보면서
문득 남자주인공 까치나 강타가 여자주인공 엄지나 보배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경험이 절실히 하고싶어졌다.
문일병도 마치 내가 엄지나 보배같이 이쁘고 착하고 싱그러운 엄친딸 같은 여자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순간 서로의 의중을 눈치채고 서로 마주보면서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 왜 있지 않은가? 눈빛만 보고 서로의 마음을 읽었을 때의 그 흐뭇한 기분..
만화 두편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수 있었던 밤이었다.
날이새자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연탄불은 활활 피어 올랐고, 솥에서는 물이 설설 끓고 있었다.
문일병더러 발이라도 닦으라고 한 대야 퍼 주고 방으로 들어가 추리닝으로 갈아 입었다.
문일병이 방에 들어오고, 나도 씻으러 나갔다.
세수를 하고, 발을 닦고, 그리고...조용하게 바지를 내리고 뒷물을 했다.
당시엔 샤워시설이 변변치 않았고 보일러가 없던 시절이라 특히 겨울철에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였고, 집에서는 간단하게 대야에 물을 떠 놓고 뒷물을 하여 청결을 유지하였다.
나는 서둘러 아침장을 찾아가 몇가지 식재료를 사와서는 밥을 짖고 찌개를 끓이고 반찬을 장만하였다.
라디오에서 8시 뉴스의 광장을 할 즈음엔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자반에 된장찌개에 부침개까지 1식 삼찬의 조촐한 밥상이 차려졌다.
문일병은 밥 두공기를 뚝딱 해 치우더니 피곤한지 방구석에 개켜놓은 이불더미에 기대더니 이네 잠이든다.
등따시고 배부르니 잠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이제 문일병은 아예 큰 대자로 벌리고 더운지 웃도리 단추를 몇개 끌르고 단잠에 빠져있다.
나는 마치 새색시처럼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평온하기 그지없는 그의 잠자는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모습을 그렇게 자세하게 꼼곰히 뜯어본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그가 몸을 뒤척이다가 그의 팔이 내 무릎위에 놓이게 되었다.
몸이 맞닿게되자 움찔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동안 그의 팔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얼굴과 팔뚝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또 다시 몸을 뒤척이더니 이젠 아예 내 쪽으로 몸을 틀어 다리가 내 몸에 밀착해 버렸다.
아까 빠져 나오지 못한걸 후회하면서 또다시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고스란히 그의 허벅지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엉덩이로 느껴야만 했다.
그의 팔은 내 무릎에, 그의 다리는 내 엉덩이에 닿아있다.
시간이 흐르자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그와 숲속에서 키스를 나누더 모습을 떠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살포시 감았다.
눈을 감으니 내 몸에 맞닿아 있는 그의 팔다리의 느낌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지는것 같다.
"아~"
스스로 함정에 바져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나 보다.
"어, 왜그래?"
갑자기 그가 되묻는다.
눈을 떠 그를 보니 입을 옴싹거리며 뭐라고 웅얼웅얼 잠꼬대를 하고 있나보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그의 몸에 갖혀서 그가 일어나기까지 꼬박 세시간을 벌을 서고 말았다.
나중엔 무릎자세로 앉은 다리에서 쥐가 나고, 바닥을 짚고 있는 팔도 저려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움직일수가 없었다. 아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쭈욱...시간이 멈췄으면 싶었다.
그는 태연하게 일어나더니 안자고 있었냐고 물었다.
순간 내 눈에 갑자기 눈물이 글썽였다.
"아니 여태 안자고....내 옆에 앉아 있었어?"
"눈물만 글썽글썽..."
"아이고 나랑 같이 자면 시집 못갈까봐 안자고 있었구나."
"그냥 새초롬하게 흘겨 봄"
"에고 미안해서 어쩌나, 그나저나 진짜 등따시고 배부르니까 잠도 잘잤다. 군대서는 온돌이 없이 마룻장에서 자는데, 난 이렇게 따끈따근한 구들장이 정말 그리웠어."
그는 날더러 잠좀 자라면서 이불을 펴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솔담배 한대 피고나서 문을 열고 툭 전지는 한마디.
"아까 보니까 요 앞에 동시상영하는 극장 있던데, 난 거기가서 이쁜여배우좀 구경하고 올테니 한숨 자 둬."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휭하니 나간다.
5분, 10분이 지나도 기척이 없어서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도 진짜로 극장엘 갔나보다.
그가 안보이게되자 나도 은연중에 긴장이 풀리면서 한숨 푹 잘 잤다.
눈을 떠 보니 5시쯤 되었도, 사방이 어둑어둑해졌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오바코트를 걸치고 그가 말한 극장으로 갔다.
조금 전에 영화가 끝나고 막간타임이었나 보다.
아차 싶어서 혹시 그가 다른 길로 집에 온건 아닌가 싶어 헐레벌떡 집으로 와 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다.
다시 극장으로 가 표를 샀다.
그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를 찾았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막간에는 불을 밝혀 주기 때문에 자리를 잡는 척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살폈다.
맨 앞쪽 가운데 스크린의 정중앙되는 곳에 군복이 언뜻 보였다.
가보니 그는 두 다리를 쭉 펴고 등만 의자에 겨우 기댄채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애써 참으면서 그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후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영화가 시작되자 그가 잠을깨어 엉거주춤 일어나서 차렸자세를 취한다.
군인은 역시 ....아직은 졸병이라 그런가 군기가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옆에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액국가가 끝나고 다시 자리에 앉을때 그는 모자를 자리에 벗어 놓더니 밖으로 나간다.
아마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피거나 둘중의 하나 혹은 둘다겠거니 생각하며 대한뉴스를 보고있었다.
뉴스가 끝날즈음 팝콘 한봉지를 들고 그가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광고가 몇편 나오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는데...이제사 정신차리고 보니 제목이 엄청 빨간색이다.
"산딸기 3"
정윤희 인지 김미숙인지 원미경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인기가 많았던 섹시한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였다.
잠시후 문일병은 팝콘을 우걱우걱 집어 먹기 시작한다.
달콤한 팝콘 냄새가 퍼져서 나도 침이 골깍 넘어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힐끗 내 쪽을 바라보더니 팝콘 한 웅큼을 집어서 내 무릎위에 놓아준다.
하지만 어두운 극장안이라 내 얼굴을 알아차리지 못하고는 그냥 옆자리에 왠 아가씨가 있으니 선심을 쓴 것이리라...
좋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꼬시려고 작업을 들어오면 어떻게 골려줄까 하는 행복한 상상도 잠깐 했다.
그래서 추운척 하며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얼굴이 보이지 않게 좀더 위장을 했다.
10분쯤 지나자 진한 장면이 나오기 시작하고, 극장안이 쥐죽은듯이 조용해지고, 좌우 벽면의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여배우의 숨소리와 남배우의 씩씩대는 소리, 그리고 쿵쿵거리는 효과음악만이 울려퍼지고 있다.
아!! 키스를 저렇게 하는구나..
어제 첫 키스를 했던 나는, 그제서야 애정표현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자의 자세와 여자의 자세, 그리고 각도, 끌어 안는 강도 등...세심하게 빠져들었다.
영화는 막 절정에 다달아 키스에서 애무로, 그리고 애무에서 섹스자세로 들어가면서 여배우의 나신이 조금씩 들어난다.
여배우가 옷을 벗을때마다 극장안에서 한숨소리와 탄식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남자가 여자의 몸 위에서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뒷장면이 비춰지고,
그리고 이어서 여자의 흥분한 얼굴 모습이 비춰진다.
여자는 고개를 뒤로 30도 꺽은채 눈을 게슴츠레하게 감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입을 헤 벌리고 색을쓰며 얼굴 전체가 남자의 움직이는 박자에 맞추어 아래위로 흔들리고 있다.
극장안의 남자들이 모두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마도 열심히 딸딸이를 쳐 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분위기에 빠져 들면서 나도 묘한 느낌이 아랫도리에 전해진다.
아, 남자의 자지가 내 보지에 저렇게 강하게 박혀 들면 어떤 느낌일까?
잠시 옆에 앉은 문일병의 존재를 망각할 정도로 영화에 빠져 들었다.
이윽고 장면이 바뀌어 평범한 화면이 나타나자 이내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옆자리의 그이도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건넨다.
"팝콘좀 더 줄까요?"
나는 말은 못하고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 극장 팝콘은 별로 맛이 없느것 같아요."
그는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보다.
"겨울에 빵빠레 먹는것도 괜찮은데..."
"아가씨, 열도 식힐겸 빵빠레 하나씩 먹고 올래요?"
어찌하나 볼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는 대뜸 일어나더니 과감하게 내 손을 잡고 끌어 낸다.
사람들 많은데서 어찌 하기도 뭣해서 그냥 연인인척 끌려 나갔다.
매점앞에서 빵빠레 두개를 집어들고 한쪽에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나에게 건넨다.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옆으로 손을 뻗어 빵빠레를 받았다.
휴게실 의자에 앉아 빵빠레를 먹으면서 그는 게속 내 얼굴을 볼려고 하였지만, 난 계속 부끄러운듯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영화가 쫌 야하죠?"
"끄덕끄덕"
"이런 영화 싫으시면 나가서 차나 한잔 할까요?"
"절래절래"
"그럼 들어가서 영화 마저 봅시다. 본전은 뽑아야죠."
"끄덕끄덕"
우리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렇게 그는 짧은 대사를, 나는 머리를 끄덕이거나 흔들거나..그렇게 1시간반을 보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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