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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정(慾 情) - 19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30 1,340회 0건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날 정면으로 바라본다. 난 그녀 옆을 스쳐 걸었다. 따라오라는 듯이

체인점 형식의 안주 종류가 많은 주점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지만 삼삼 오오 무리지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난 옆 테이블이 비어 있는 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의자와 의자 사이가 그리 멀지 않아 은은한 조명 밑에서 황지연의 얼굴을 보자니 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메뉴판을 보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해물짬뽕탕 어때? 해물떡볶이도 괜찮을 것 같고...”

“떡볶이 먹어요. 먹어 본지 오래 됐는데...”

난 소주와 떡볶이를 주문했다. 술이 오자 그녀에게 먼저 한 잔을 건넸다. 그리고 자작으로 한 잔을 따른 후 내 입으로 가져가다 문득 황지연이 아직 잔을 들지 않고 있는 게 보여 말 없이 건배 하자는 듯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잔이 살짝 부딪쳤고 우리는 한 잔씩을 비웠다. 잠시 후에 똑같은 모션으로 한 잔씩 더.

다시 한 잔을 따라 주고 내 잔을 채운 후에 이번엔 잔을 들지 않고 담배를 꺼냈다. 난 입에 물기 전에 그녀에게 의사를 물었다.
“줘?”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으려니 안주로 주문했던 떡볶이가 나왔는데 황지연이 포크를 들더니 찍어서 입에 넣는다. 보고 있으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고 괜찮은 그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녀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고 나 역시 쓸데 없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술이 몇 잔 더 들어 갔음에도 황지연이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다소곳이 앉아 있자 무슨 말이든 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 토박이야? 아님 촌에서 자랐는데 전혀 태가 안 나는 건가?”

“인천에서 자랐는데 고등학교 까지는 그 곳에서 다녔어요.”

대학교는? 하고 물어야겠지만 황지연은 그 걸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경찰대학을 다녔다고 이야기를 하기는 그럴 테니까.
“떡볶이 매워? 난 매운 게 좋은 데...”

얼렁뚱땅 그 상황을 넘기면서 안주를 입에 넣었다. 음. 쉽지 않네. 취기가 올라오면 먼저 이야기를 꺼내겠지. 난 소주를 한 병 더 주문하고 그녀의 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다.
“전작이 있었어?”

“예?”

“오기 전에 술을 마시고 왔냐고?”

“조금요. 밥을 먹으면서 조금.”

“뭐? 혼자서 밥을 먹으면서 반주로 마셨다고?”

“아니요. 식구들하고 외식을 했어요. 거기서 조금...”

“응. 그랬구나. 후후. 알콜 중독인줄 알았어.”

“자주는 안 마셔요. 가끔. 그리고 내가 어딜 봐서 알콜 중독으로 보여요?”

살짝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하는 황지연은 일주일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쌍둥이 동생인가?

두 번째 온 소주병이 거의 비워질 무렵 그녀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날 똑바로 쳐다보며 갑자기 이야기를 던진다.
“아저씨에 대해 좀 알아 봤어요. 일본 사람인 오너가 운영하는 전자부품 회사에 다니시더군요. 그 곳에 다니기 전에는 경찰 생활을 좀 하셨고 00대학 제어계측공학과 출신.

경찰을 그만둔 이유가 특이하던데요. 휴직 후에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휴직을 한 이유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던데 좀 그렇더라고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라는 게 좀 모호하잖아요. 누구나 그런 건 가지고 사는 게 아닌가요?”

술이 확 깬다. 갑자기 던지는 질문치고는 너무 적나라한 거 같은데... 뒷조사 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조용히 술 마시다 말고 총성을 울리는 거냐? 이 밤에 만나자고 한 이유를 각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나서야 이야기 하는건가?

황지연의 말은 언뜻 보면 연인들이 한잔 하는 걸로 보일 수 있는 우리 자리의 분위기를 백팔십도 바꿔 버렸고 난 약간 눈동자가 커져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그녀의 얇고 붉은 입술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놀란 눈치네요? 아저씨가 놀란 표정을 지으니 안 어울려요. 지금까지 전 아저씨 때문에 몇 번을 놀랐는지 알아요? 상식적으로 짐작이 불가능한 사람이 아저씨라고요.

뒷조사 때문에 그래요? 별로 어렵진 않았어요. 제가 직접 한 건 아니지만 그 정도 줄은 있어요. 어쨌든 기분은 괜찮네요. 계속해서 당하기만 하다가 한 방 날린 기분이에요. 호호”

난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의표를 찌른 사람처럼 멍하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을 꺼냈다.
“경찰은 그냥 잠깐 한 거야. 원래 그 쪽하고는 맞지 않는 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대로 취업률이 괜찮은 학과였는데 IMF 터지면서 아예 원서자체가 안 오더라고. 마침 김대중 정부가 경찰관을 많이 뽑았고 그냥 집에서 놀기 뭐해서 응시한 시험이 붙었었거든.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

“그럼. 그만둔 이유는 뭐죠? 정신적인 스트레스? 그게 뭔지 좀 자세히 말해줄 수 없어요?”

그 이유는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해본 적이 없다. 애가 떡볶이를 잘못 먹었나? 왜 그런 과거사를 들추는 거지?

난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운 후에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피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야? 그걸 누구에게 말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게 진실인지 나도 기억을 되살려야 해. 궁금하다면 이야기 해 줄 수야 있지만...”

“글쎄요. 통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라 알아보고 싶기도 하고요. 경찰을 그만 둔 진짜 이유가 뭔지 아무도 잘 모른다는 게 너무 웃기잖아요. 기회를 드릴께요. 이런 미인 앞에서 한 번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게 어때요?”

황지연이 미소를 띠며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한 후 종업원이 소주를 가져오자 내게 한 잔을 따른다. 그녀는 술을 따르는 게 약간 어색해보였는데 난 한 손으로 받고 술병을 받아 그녀가 잔을 비우기를 기다려 다시 채워 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난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유가 뭔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아직 잘 몰라. 경찰을 그만두고 나서 가끔씩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고 몇 년이 흐른 다음에야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았는데 그 이후로는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어. 왜 경찰관을 그만두었냐고...

지금 와서 이유를 이야기 한다면 나라는 사람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민한 사람이야. 겉으로 보기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걸 엄청나게 싫어하고 또 그런 일들이 있으면 쉽게 상처 받아.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이유가 뭔지 이야기 해달라니까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군요. 그게 무슨 의미죠?”

나는 한숨을 한 번 내뱉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시절 나는 여자를 품에 안고 싶었지만 누군가와 결혼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싫었어. 나에게 있어 이십대 후반 까지의 세월은 아무 것도 확실해 보이는 게 없는 것 같은 혼란한 시기 였으니까.

여자를 안는 것과 연인을 만들지 않는 것.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이란 것이 유흥업소 나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유혹하는 것이었는데...갓 스무 살을 넘긴 그런 아가씨들은 누군가에게 얽매이려고 하지 않는 데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쉬웠으니까. 글쎄... 너에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때의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하지만...”

황지연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그녀는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었는데 난 잠시 말을 끊고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잔을 채우는 황지연은 술병을 내려 놓으면서 계속 이야기 해보라는 듯이 나를 응시했다.
“당시 내게는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룰이 있었어.

첫째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선만 지켜준다면 그 때 만난 아가씨들에게 절대로 함부로 하지 않았어. 티켓비 라든지 팁은 꼬박 꼬박 다 챙겨 주었고 같이 있는 동안 그녀들이 상처를 받을 만한 말이나 행동은 전혀... 오히려 정상적인 연인들 사이에서 줄 수 있는 작은 부담마저도 주지 않으려고 애썼거든.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제복을 입어 멋있어 보이는 나와의 관계에 만족해했고 쿨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가능했었는데... 그렇지 않은 여자와 만나게 됐던 거야.

나와의 인연에서 소박한 결혼 생활을 꿈꾸었던 스무 살의 다방 아가씨가 항상 따뜻하게만 대해줬던 내가 그녀의 속마음을 알고 냉정하게 관계를 정리하려 하자 죽음을 택했어.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가 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자위하며 몇 개월 더 경찰 생활을 계속 했지만 결국 휴직원을 내게 됐어. 진실이란 게 뜻하지 않은 일로 알려지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

하지만 내가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건 좀 안 맞는 말일 거야.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됐을 때 난 오히려 담담해졌거든. 그때는 그렇게 무덤덤해진 내가 오히려 싫었지만...

언젠가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한 거 기억나? 당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난 돌아올 수 없었어. 내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경찰관이라는 직업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황지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게 다시 물었다.
“무덤덤했던 이유가 죄책감이 없었기 때문인가요?”

“글쎄... 당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난 그 아이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휴직을 했고 돌아오지 못했으니까. 아마 그 아이의 고향에서 6개월을 넘게 생활하면서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면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거겠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군요. 왜 그런 식으로 말하죠?”

“응? 내가 그랬나?...
그 때의 내가 느꼈던 감정을 이제 와서 끄집어내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럴 거야. 어쨌든 그 건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고 그 후로 10년 동안 난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거든.
두려움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게 적당하지는 모르겠지만 그 곳에 살고 있는 괴물과 마주치는게 두려워서... 하지만...”

“하지만.. 뭐요?”

“요즘 좀 이상해. 10년 동안 잠자고 있던 괴물이 깨어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황지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더니 시선이 테이블 위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그녀가 다시 물었다.
“어렵네요. 아저씨가 말하는 괴물이란 게 뭐죠?”

“음... 그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이 생길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민감해지면 느낄 수 있는데 어느 선까지는 나 자신을 합리화 할 수 있지만 결국 한계라는 게 있을 테니까 그 걸 넘어서는 걸 묵인하는 걸 말하는 거야. 그 때는 10년 전의 괴물이 깨어났다고 봐야겠지.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의 변화일뿐이야.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어.”

그 말이 끝나고 곧 우리는 세 번째 소주병을 비웠다. 난 취기가 꽤 올라왔고 그녀의 얼굴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계속되는 그녀의 물음에 난 꽤 솔직한 대답을 했는데 황지연은 한 손으로 턱을 고인 채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네 번째 소주를 주문하고 서로 한 잔씩 따라 마신 후 잔을 내려놓으며 그녀가 물었다.
“왜 당신에 대해 어떻게 알아 봤는지 묻지 않죠? 그리고 내가 뭐하는 여자인지도...”

“응? 오늘 술을 많이 마셔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까 무슨 말을 했는 지도 잘 기억이 안나.

내가 그 걸 묻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글쎄... 그러니까... 넌 나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걸 내게 몇 번씩이나 분명하게 이야기 했어. 그 말은 내게 어떻게 들렸냐면... 너에 대해 쓸데없는 관심을 가지지 말아 달라는 말로 들렸었고...게다가 넌 잠깐 사이에 내 이름과 주소를 알아낸 적도 있었어.

니가 원하지 않는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차원에서 온 듯한 너를 만질 수 있었던 건 분명 행운이지만 그 운의 이면에는 아마 니 머릿속에 내가 니 삶에 피해를 줄 수 없는 위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어서 그랬겠지.

내 짐작이 맞다면 앞으로도 난 더 이상 너에 대해 알아서도 알려고 해서도 안돼.”

“그래요? 그 이야기는 궁금한데도 참고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나라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오늘 나한테 어려운 질문만 하는 데 지금 묻는 게 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같아...

음... 솔직한 대답을 하자면 난 그냥 이대로 남고 싶은 거야. 니가 생각하는 그런 위인으로... 너한테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는... ”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는 듯 하더니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내게 건배를 하자는 듯이 내밀었다. 난 살짝 잔을 부딪친 후 내 잔의 남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다시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때부터 12시가 될 때까지 우리는 별 이야기 없이 술을 마셨다. 황지연은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술을 비웠고 난 이미 상당히 취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그녀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려 내가 밖으로 나가서 와이프에게 옛날 경찰시절 동료들을 몇 명 만나 술을 마시는 데 조금 길어진다는 핑계를 대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탁자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머리를 괸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난 그녀 앞에 잠시 앉아 있다가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아직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던 그녀를 부축해서 술집을 나왔는데 그 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모텔로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황지연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듯 내게 기댄 채로 눈을 뜨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과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들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지나 객실 안에 들어갈 때까지 정신을 잃지 않게 만들었고 황지연을 침대에 눕히고 나서 난 술을 깨기 위해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칫솔질과 샤워를 했다.

그리고 알몸으로 욕실을 나와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에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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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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