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계 일은 거의 대부분 새벽에 이뤄진다. 특히 오징어철이면 강원도의 작은 항은 북새통
을 이룬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징어잡이가 주 수입원인 어촌마을에서 일을 마치고 정오
깨나 되어 집으로 향하던 채영은 들고 있던 검은 비닐 봉투를 벌려 몸통이 뜯기고 다리가
몇 개 없는 오징어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지어 냈다.
‘피~ 또 오징어야? 지겹다 지겨워...’
그렇게 반찬투정을 할 오빠가 떠오른다. 하나 밖에 없는 오빠지만 그렇게 투정을 부릴 때는
정말 밉다가도 때론 쇠잔한 마음을 갖게 하는 그는 하나밖에 없는 채영의 피붙이이자 보호
자이기도 했다. 투정을 부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뿌듯한 마음을 안고 집에 들어서자 이제나
잠에서 깼는지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하고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워내는 태영이 있었다.
“오빠! 언제 일어났어?”
“방금...”
“오늘도 배 나가?”
“나가야지~”
주로 어업이 밤부터 새벽까지 이뤄지는 오징어잡이라 남들이 보면 여동생 등골 빼먹는 철부
지 오빠처럼 보이겠지만 누구보다도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그였다. 채영의 엄마는 노
산인 탓이었는지 그녀를 낳다 잘못되었고 아버지는 고주망태 놀음을 하다 얼마 전 간경화로
쓰러져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녀나이 스물 넷, 태영의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오빠! 정식이 오빠 장가간다던데? 들었어?”
“응!”
“어쩌냐... 이제 노총각은 우리동네에 울 오빠 밖에 안 남았네?”
“쓸데 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차려와!”
농담 삼아 말을 했지만 채영은 태영이 걱정되었다. 서른 중반이 될 동안 몇 번의 선을 보기
는 했지만 이렇다 할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 본 오빠가 몽달 귀신으로 죽지는 않을까 걱정
인 것이다. 나이차라도 적으면 자신 친구들이라도 소개를 해주겠지만 사실 남녀사이 11살
차이라면 극복해 내기 힘든 차이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키 작고, 뚱뚱하고, 얼굴 못생겼고, 집안 형편없고, 성격은 뱃사람답게 괴팍하면서도 고집도
센 태영이었다. 게다가 술 좋아하고 놀음까지 좋아하는데다 골초이기까지 한 그를 그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그는 여자들이 싫어하는 모든 조건을 가진 남자였다. 예쁘장한 채영
은 그래도 동네 총각들에게 인기도 많고 여기저기 선자리도 많이 들어왔다. 주변에서는 우
스갯소리로 둘 중 하나는 주워 온 자식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오빠 밥 먹어~”
채영이 밥상을 내려 놓자 담배를 피우던 태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밥상을 등져버렸다. 그녀
가 예상했던대로 태영은 신물나도록 같은 반찬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있었다.
“아~ 씨발 반찬 정말...”
젓갈에 김치, 오징어국, 그리고 멸치와 같은 마른 반찬이 전부인 밥상머리가 신물이 난다는
듯 신경질을 부린 태영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툇마루 기둥에 걸린 모자
를 눌러쓰며 운동화를 꺾어 신었다.
“오... 오빠... 이따 저녁은 고기반찬 해 줄게.... 응?”
“됐어!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짜증내서 미안하다!”
미안한 줄은 알지만 도저히 입맛이 돌지 않는 밥상을 받기는 싫었는지 태영은 그대로 집을
나서버렸다. 채영은 어쩔 수 없이 홀로 남아 수저를 들었고 조금씩 밥을 비워나갔다.
아마도 그때부터 였을것이다. 태영이 변하기 시작한 시점이 말이다. 사실 태영에겐 친구가
없었다. 그저 동네 구성원으로 조업을 함께하는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는 언제나 혼자
였다. 여동생인 채영을 제외하면 마음 붙일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삭막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외톨이일 뿐이었다. 그나마 싹싹하고 예쁜 채영이 때문에 태영도 관심을 받는 것 뿐이지 만
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그는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을 것이다.
‘흠... 괜한 말을 했나?’
채영은 이미 사라져버린 태영의 발걸음을 수 놓으려고 하는 듯 젓가락을 입에 넣은채 파란
색 녹슨 대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장가를 간다는 정식은 소위 말해 동네에서 바보취급을
당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심성은 누구보다도 착했고 정식의 집은 어촌계장인 아버지 덕분
에 그나마 살림살이가 나은 편이었다. 태영은 그게 못마땅한 것이다. 자신이 돈을 안 버는
것도 아니고, 정식처럼 덜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여태껏 혼자인 스스로가 그보다 뒤처진 느낌
이 들었기 때문이다.
채영도 그런 오빠가 걱정이었다. 이미 혼기도 놓친데다 여자들은 도통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토록 착한 오빠가 왜 밖에만 나가면 그렇게 된서리를 맞고 들어오는
지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비록 볼 것 없는 남자였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남자였기에 여동생으로서 더욱 애잔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친구가 없다보니 태영은 그 흔한 창녀도 하나 취해보지 못했다. 물론 혼자서도 갈 수는 있
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뱃사람들과 함께 술을 한 잔 먹을 때에도 그는 그저
그 뿐이었다. 그는 항상 따돌림을 당했고 어쩌다 마음먹고 끝까지 따라나서는 날에는 화기
애애했던 그 술자리는 끝이 나고 말았다. 하다못해 동네 커피배달부나 술집 여자들도 그를
멀리했다. 이유는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멀리하니 군중심리에 의한 따돌림이라고 밖에 설
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태영의 성격은 더욱 폐쇄적으로 변해갔고 스스로도 사람들을
멀리 했다. 그러다 정식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치 전장에서 진 장수만큼이나 패배감
에 쩔어 살아야만 했다.
“채영아~ 우리 이사갈까?”
며칠이 지난 날 태영은 채영에게 물었다. 나고 자란 곳이고, 할 줄 아는 건 고기 잡는 일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가 고향을 떠나려고 마음먹은 건 보통 용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는 이곳을 찾고 싶지 않을 만큼 고향에 대한 오만정이 떨어져가고 있
을 때였다.
“어디로? 그냥 여기서 살자~ 응?”
“싫어... 나 이곳을 떠나고 싶다...”
“무작정 떠나서 뭐하려고~ 우린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솔직히 가진 것도 없잖아...”
“휴~ 우... 됐다! 됐어!”
그때까지만 해도 채영은 태영의 심정을 알지 못했다. 동네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도, 그에게
친구가 없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 해주었기 때문에 정작 가까이 있는 오빠의
어둠을 알아챌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이 결혼을 했고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동네 유지까지는 아니지만 나
름 먹고 살만한 집안이었기에 작은 동네엔 커다란 잔치가 벌어졌다. 태영은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채영의 성화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국수나 한 그릇 얻어먹고 올 심산으로
그녀를 따라 나섰다.
예상외로 정식의 아내가 된 여자의 외모가 예쁘장했다. 그건 태영에게 있어서 더욱 큰 충격
이었다. 강릉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온 터라 새색시의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낯이 익
으면서도 미인축에 속하는 그녀가 태영의 기억을 되감아 놓기 시작했다.
‘누구였더라... 분명히 본 기억이....’
태영의 기억속에 여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동창을 제외하면 몇 번의 선을
본 여자와 동네에 몇 명 정도가 전부인 그에게 그녀를 떠올리기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
다.
“태영씨는 꿈이 뭐예요?”
“네? 꾸... 꿈이요?”
“남자가 꿈도 없어요?”
“네? 아... 그... 그냥 배 한 척 갖는게...”
꿈 운운하던 여자가 바보 옆에서 가식적인 웃음을 팔고 있었다. 태영은 먹던 국수가 역류할
것 같은 구역질이 느껴졌다. 첫 만남 한 번으로 끝이었던 그녀이지만 태영은 그녀가 원대한
꿈을 갖고, 그 꿈을 향해 돌진해나가는 멋진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젠장!”
“오... 오빠!”
국수 그릇을 엎어버리고 집으로 향하는 그를 채영은 빠르게 뒤따랐다.
“왜 와! 맛있는 거나 좀 먹고 오지~”
“오빠 왜 그래? 응?”
“됐어! 가서 놀다와!”
“아이.... 참!”
멀어지는 태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기라도 몇 점 싸갈까 하는 마음에 채영은 다시 발길
을 잔치집으로 돌렸다.
“늬 오빠 왜 그러니?”
“몰라요... 죄송해요 아주머니...”
“아니다... 그나저나... 채영이 너도 시집가야지~”
“헤헷! 오빠부터 가야죠~”
채영은 시집이란 말에 두 볼이 발그스름해지는 것을 느꼈다. 험한 일을 하는 사람 같지 않
게 뽀얗고 가는 예쁜 손을 두 볼에 대자 자신의 얼굴이 타오르듯 뜨거워진 것을 느꼈다.
“늬 오빠는 글렀어 이것아! 너 이렇게 예쁠 때 먼저 가야지...”
“아주머니도 참...”
“아유~ 예뻐라... 이 토실토실한 궁뎅이 좀 봐! 시집가면 애는 숨풍숨풍 잘 놓겠다!”
“어머... 창피하게....”
“그러지 말고 서울 사는 총각인데, 키도 크고 잘 생겼다니 한 번 만나 봐, 아주 건실해”
“괜찮아요~”
“그러지 말고... 내가 약속 잡아서 알려줄게~”
“아이~ 괜찮다니까요~~~”
채영은 빈말이 아니었다. 설사 선자리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태영을 홀로 내비두고 시집을
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청이 너무 간절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보겠다
승낙을 해버리고 말았다.
‘오빠 좋아하겠다....’
채영은 두 손 가득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잔치날이라 어촌계 조업은 하
루 쉬는 관계로 태영은 소주를 따 놓고 홀짝홀짝 잔을 비우고 있었다. 채영은 그런 오빠가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옴을 느꼈지만 따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빠! 이것 봐~ 맛있겠지? 안주도 없이 뭐냐? 청승 맞게...”
“안 먹어... 갖다 버려~”
“어머? 이 아까운 걸?”
“저리치워! 갖다 개나 줘버려!”
채영이 손가락으로 김치 접시 위로 보쌈고기를 올리자 태영은 신경질스럽게 반응을 했다.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오빠가 야속하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흘린 고기를
주워 상위로 올리며 손가락을 쪽 빨아먹은 그녀는 두 다리를 끌어안으며 마루 위로 올라갔
다.
“나도 한 잔 줘!”
“쬐그만 게 어디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
“아잉... 한 잔 줘....”
“쳇!”
4홉들이 소주병을 들고 잔에 따라주자 채영은 귀엽게 목 넘김을 하고 나서 ‘캬~’ 소리를 질
러댔다. 그리고 신김치와 돼지고기 보쌈을 손가락으로 싸서는 한 입에 털어 넣고 다시 하나
를 싸서는 태영을 보며 말했다.
“오빠도 한 잔 해~ 동생이 안주 준비 했어~”
태영은 자신의 동생이지만 세상 이런 여자가 또 있을까 생각했다. 예쁘지, 성격좋지, 싹싹하
지 게다가 일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는 채영이 그저 예쁘고 귀여웠다.
“아~ 해!”
소주를 한 잔 비우자 애교있게 입안으로 보쌈을 넣어 준 채영은 손가락을 다시 빨아 먹으며
말했다.
“맛있지? 맛있지?”
“그래... 그래... 맛있다...”
“거 봐~ 이게 다 내 손 맛이야... 히힛!”
“그래.. 맛있다... 맛있어...”
모처럼 맞는 휴일이라 그런지 제법 술자리는 길어졌다. 4홉들이 소주병 2개가 나 뒹굴고 태
영은 취했는지 몸이 건들건들 움직이고 있었다. 안 먹겠다고 버리라던 보쌈고기도 거의 봉
지를 비웠고 채영도 몇 잔 얻어 마신 탓에 두 볼이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오빠! 오빠! 나 선본다!!”
“선?”
태영의 혀가 꼬여 있었다. 지금이야 소주가 정량으로 거의 통일이 되었지만 4홉 두 병이면
1.5리터 콜라 한 병과 맞먹는 정도의 양이었기에 그 양은 꽤나 많은 편이었다.
“응~ 보산댁 아주머니가 어찌나 부탁을 하던지...”
“그래서... 볼... 거야?”
“어떡할까? 볼 까? 말 까?”
“그... 그건 니 맘대로 하는거지... 뭘... 상이나 치워!”
태영은 상을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채영의 선 소식에 괜한 심술이 났다. 그러나 그
게 단순한 심술인지 아니면 배신감을 동반한 질투심과 사랑인지 그 땐 몰랐다.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은 태영은 쉬이 잠이 오질 않았다. 선을 볼 남자가 어떤 남자일지
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여자를 데리고 갈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그녀를 보내고 싶
지 않았다.
“오빠~ 자?”
“아니! 왜?”
채영이 든다 만다는 말도 없이 무작정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태영이 누운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아낸 얼굴이 빛났고 증거라도 대듯 목에는 수건 한 장이 걸
려져 있었다.
“오빠 서운하구나?”
“뭐... 뭘~”
“내가 선 본다니까... 맞지?”
“개 코구녕이나... 너라도 얼른 가야지!!”
“치~ 삐쳤어?”
“삐치기는... 나가! 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채영이었다. 노총각으로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오빠에게 못
할 말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나 오늘 오빠랑 같이 잘래!”
“다 큰 기지배가! 얼른 나가!”
“피~ 싫어! 같이 잘래... 옆으로 좀 가 봐!”
“어어? 왜 그래 갑자기?”
“뭐가... 우리 어렸을 땐 맨날 오빠가 나 안고 잤는데...”
“그때는 어릴때고!”
“그래서... 싫어?”
“..................”
태영은 예쁘게 자란 동생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만약 친남매가 아니었더라도 자신은 채영에
게 한마디 말도 못 걸 정도로 예쁘고 착한 여자였다. 태영의 팔을 잡아끌어 베고 난 채영은
태영의 몸을 감싸 안으며 아기처럼 파고 들어왔다. 젊은 여자 특유의 살내음이 이불 속에서
부터 피어올랐고 곧 태영의 코로 들어가 뇌리를 쳤다.
“오빠~ 걱정 마... 우리 오빠는 정말 예쁘고 착한 여자랑 결혼하게 될 거야~”
“.................”
“이렇게 좋은 오빤데... 나 같으면 벌써 우리오빠 채갔겠다!”
“저... 정말이야?”
“그러엄! 든든하고, 남자답고 얼마나 멋지다고~”
“미... 미쳤구나? 니가?”
“오빠는 사랑스런 동생한테 미쳤구나가 뭐냐?”
“허이구! 참....나.....”
처음으로 자신의 품으로 사랑스럽게 파고 든 여자가 바로 채영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이미 태영의 자지는 꼿꼿하게 일어서 있었고, 채영이 동생이라기보다 여자로 느껴지
고 있었다. 아마 단 한 명이라도 그의 품을 그렇게 포근히 감싸왔더라면 채영을 귀찮다며
뿌리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품은 너무도 달콤했다. 뿌리칠 수 없
는 달콤함에 태영은 이성을 점점 놓아가고 있었다.
“그럼, 우리 강아지 얼마나 컸나 한 번 안아볼까?”
태영은 그녀를 힘껏 안으며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토실토실하게 살 오른 엉덩이가 투박한
태영의 손바닥에 농락당하며 탄력을 과시했다. 손 끝에 닿는 살덩어리의 출렁거림에 태영은
호흡이 가빠져왔다.
“아무리 오빠래도 그렇게 처녀 궁둥이를 만지작거리는 건 곤란해~”
“곤란하긴... 오빤데...”
처음 느껴보는 여체의 풍만함에 태영은 이미 정신을 놓아버렸다.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만지
지는 못했지만 찰싹찰싹 손바닥에 감겨오는 그 짜릿한 육체의 반응은 그를 점점 그녀에게
빠지게 했다.
“어흐~ 정말! 그만 해~”
“알았어... 알았어...”
채영이 몸부림치며 벗어나려 하자 그녀를 놓치지 싫은 태영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살살 매만져주며 손바닥을 떼어냈다.
“아무튼 장난꾸러기야 오빠는...”
“장난은 임마! 얼마나 컸는지 확인한 거지!”
“칫! 왜? 젖가슴도 만져보지?”
“그럴까?”
태영이 능글맞게 채영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다대려 하자 채영은 그의 손을 가로막으며 몸을
웅크렸다.
“미쳤어 정말!”
“왜 만져보라며?”
“그게 그 뜻이야? 아무튼...”
“으이그... 내 동생이지만 정말 예쁘다....”
“정말? 정말 내 예뻐?”
“그러엄! 예쁘지...”
태영의 말은 진심이었다. 처음으로 만져본 여자의 엉덩이와 잘록한 허리 때문만은 아닐 것
이다. 이미 동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한 여자로 각인되는데 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장난
인 척 치부해버렸지만 이미 태영의 머릿속에 채영은 한 명의 여인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채영은 프릴장식이 화려한 블라우스와 무릎보다 살짝 올라오는 베이지색 스
커트 차림으로 태영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선을 보기 위해 나서는 중이었지만 곱게
단장한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타고난 흰 피부는 시골여자처럼 보이지 않았지
만 그녀는 자신이 무척 촌티 난다고 생각했다. 어색함이었을 것이다. 중간 지점인 원주에서
약속을 했고 늦지 않게 완행버스 대신 비싼 직행버스도 탔다. 동네에서 빠져 나올 때 자신
이 그토록 어색해 보이기만 했는데 막상 시가지로 나오니 자신의 복장이 전혀 어색하지 않
았다. 오히려 부족해보이기까지 했다. 귀걸이도, 목걸이도, 반지도.. 그렇다고 브로치 하나
없는 수수한 복장이 그렇게 느껴졌다.
주선자에게 얘기를 들은 대로 상대 남자는 키도 크고 훤칠했다. 엄청나게 잘생긴 얼굴은 아
니었지만 인상이 좋았다. 그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지역에서 일반 직장을 다닌다고 소개를
했고 나이는 스물 여덟이라고 했다. 궁합도 보지 않는다는 4살 차이, 채영도 그가 싫지는
않았다. 자가용이 없어 바래다주지 못하는 게 서운하다는 그를 뒤로하고 다시 직행버스에
올라탄 채영은 다시 만날 기약 대신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걸로 대신했다.
두근거림은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믿음직스럽기는 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성
격이나, 외모나, 됨됨이가 크게 빠져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잘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
는 그녀였다.
동네 어귀에 도착을 하니 벌써 저녁 8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조업을 나가야 할 태영 생각이
그제서야 난 그녀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갔다.
‘저녁 굶고가면 힘들텐데...’
버스에서 내려서도 20여분이나 더 들어가야 나오는 집을 가려니 힘이 들었다. 평소에는 잘
신지도 않는 굽 있는 신발 때문에 발가락과 발뒷꿈치가 아려오기도 했다. 게다가 설상가상
선을 주선해 준 아주머니를 맞닥뜨리는 바람에 조급한 마음은 극에 달했다.
“채영아~ 어땠어?”
“헤헷! 좋은 사람 같더라구요~”
“그치? 내가 아무나 소개시켜주려고...”
“아주머니 죄송한데요... 저희 오빠 일 나가야 해서 밥 챙겨 줘야 하는데...”
“오늘 조업 취소됐어... 파도가 높아서~”
“아... 그.. 그래요?”
“그래~ 상견례는 언제...”
“아직 거기까진 얘기 못했어요...”
“으이구! 쇠 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얼른 얼른 서둘러~ 튕기지 말고... 그만한 남자 없어”
“헤헷! 알겠어요~”
조업이 취소됐다는 말에 내심 안심을 한 그녀였다. 그리고 궁금한 게 많은지 아주머니는 채
영을 붙잡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미 어둑해진 하늘 아래에서도 선자리 얘기는 계속됐
다.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두부 사러 간다고 나왔는데... 아무튼 채영아~ 내일 또 얘기하
자~”
된장찌개를 끓이는지 두부를 사러 나온 아주머니는 부리나케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채영도
다시 편안한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그녀 역시 수다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아줌마들의 수
다는 당해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오빠! 미안... 너무 늦었지?”
“아냐... 밥은... 먹었어?”
“웅... 난 먹고 들어왔어~”
“그래~ 나도 생각 없어... 이걸로 됐으니까 옷 갈아입어~”
태영은 또 술상을 벌여 놓고 있었다. 채영이 아침에 볶아 놓은 돼지고기를 안주삼아 간단하
게 요기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금세 옷을 갈아입은 채영이 상에 붙어 앉아 소주를 한 잔
따라주자 기분 좋게 한 잔 들이킨 그가 채영에게 소주잔을 건넸다.
“한 잔 할래?”
어지간해서는 술잔을 주지 않는 태영이었다. 항상 채영이 들러붙어 한 두 잔 뺏어 마시는
게 전부인 그녀에겐 태영의 술잔이 어색하기만 했다.
“왠일이야? 피 같은 술이라 동생에게도 못주시겠다며?”
“먹을거야 안 먹을거야~”
“줘.. 줘...”
“쳇!”
채영이 잔을 비우고 다시 태영에게 술잔을 건넸다. 그리고 다소곳이 앉아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따랐다.
“으~ 오늘따라 술이 쓰다!”
“언젠 달았냐?”
“쳇! 오늘 왜 이렇게 떽떽거려!”
“떽떽거리긴... 어땠어? 괜찮았어?”
“음... 뭐... 그냥....”
“다행이네...”
“뭐가?”
“별로였어라는 말 안 나오면 괜찮았다는 거잖아”
“그런 거야? 그런 게 어딨어!”
“어딨긴... 내가 살아도 임마? 어? 너도 11년을 더 살았는데... 그걸 모를까!”
왠지 태영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그걸 눈치 챈 채영이 일부러 선을 본 남자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이다. 굉장히 서운하고 슬픈 표정의 태영을 보니 채영은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별로였어...”
“왜? 뭐가 마음에 안 들었어...”
“그냥... 그냥... 뭐 다...”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우리 오빠가 100배, 아니 1,000배나 낫더라~”
“그래?”
태영은 기분이 좋은 듯 피식 웃으며 술잔을 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연거푸 술잔만 비워냈고 채영은 그런 그에게 연거푸 술잔을 채울 뿐이었다.
“오빠! 좀 천천히 마셔....”
“왜? 취할까봐?”
“그것도 그거지만... 너무 급하게 마시니까...”
“나 오늘은 취해야 해...”
“왜?”
“너한테 할 말이 있거든...”
채영의 눈이 동그라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겁이 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그를 보
며 긴장을 했다. 그렇게 소주 2홉들이 병을 한 병 더 비우고서야 술상을 밀어내며 채영을
부르는 그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뭐야... 오빠.... 오빠 오늘 이상해...”
“응... 나도 오늘 내가 너무 이상해...”
태영이 채영의 손을 잡았다. 투박하고 거친 손길과 우왁스런 힘에 채영은 긴장감이 더해졌
다.
“왜.... 그래.....”
“..............훗......”
싱겁게 웃음을 보인 태영은 가을 점퍼의 안쪽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채영은 말없이 그
를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흐흣! 이게 모야~~ 헤헷!”
태영이 안쪽 주머니에서 꺼낸 건 빨간 장미꽃 한 송이였다. 어찌나 오래 머금고 있었던지
꽃잎은 짓눌리고 꽃대는 여러군데 꺾여 있었다.
“뭐야... 이거 주려고 그렇게 분위기 잡은 거야?”
채영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꽃 선물에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화려하게 크고 많지는 않았지
만 예상치도 못한 사람에게 꽃 선물을 받으니 의외의 기쁨이 찾아온 것이다.
“예쁘다... 근데 너무 망가졌잖아... 줄려면 제대로 줘야지!”
“채영아... 나... 아... 아니다!”
“뭐야... 이렇게 꽃까지 바쳤으면 멋지게 말도 해야지~ 해 봐!”
“........나... 너 사랑한다!”
채영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멈췄다. 숨 쉬는 것마저 생략한 그녀는 원인 모를 두근거림에
심장이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멋진 남자에게 프로포즈를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두
려움과 불길함이었다.
“헤헷! 나도 오빠 사랑해....”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의 반응을 장난스럽게 받아주었지만 태영의 표정은 결코 장난이 아니
었다. 채영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둘이 살자! 내 여자가 되어 주면 안 되겠니?”
종전까지 망설이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태영은 힘주어 말했다. 채영은 그 상황이 마치
꿈만 같았다. 달콤한 꿈이 아닌, 미치도록 무서운 악몽처럼 말이다.
“오... 오빠... 취....했어? 우리가 어떻게... 그래... 우린”
“알아! 아는데, 나 여자가 무척 갖고 싶어... 죽도록 결혼하고 싶다고...”
“오... 오빠... 그... 그래도... 우린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무슨 상관이야 그딴 게, 너도 나 사랑한다며”
“그... 그건... 그건 그런 뜻이 아니야!”
“상관 없어... 내 여자가 되어 주면 안 돼?”
채영은 서서히 다가오는 태영을 밀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야에 태영의 얼굴이 점
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자신의 몸은 툇마루 위로 쓰러져가고 있었다.
“이러지 마, 오... 오빠 미쳤어?”
“응, 나 미쳤어... 니가 너무 갖고 싶고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 미쳤어...”
“오빠! 이... 이러지 마... 흐흑”
“미안해... 나 너 없으면 죽을거야”
채영은 눈물을 흘렸다. 두 손과 몸통이 태영에게 짓눌려 이렇다 할 반항도 못한 채 소주 냄
새 가득한 그의 입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이건 안 돼... 이러면...’
입술에 그의 입술이 닿자마자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태영을 힘껏 밀쳐냈다. 그리고 잠깐
허술해진 틈을 타 잽싸게 달음질을 쳐 버렸다. 맨발에 돈도 한 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미쳤어... 미친거야... 술을 그렇게 쳐먹더니...’
태영의 행동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녀였다. 태영에게 어느 정도 멀어졌다
고 생각하니 두 다리엔 힘이 빠졌고 결국 남의 집 담벼락에 등을 대어 앉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해는 했다. 서른 넘어까지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여자의 손은 잡아
도 보지 못한 오빠의 불타는 심정을...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동생을 상대로 성적 만족을
취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채영은 친구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태영이 미친 짓을 했다지만 그 사실을 어떻
게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눈물을 닦고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하루만 지나면, 술이라
도 깨면 오빠가 정신을 차릴 거라고 생각하고 친구의 집으로 갔다.
‘미친놈... 미친놈... 어떻게... 동생한테...’
태영 역시 후회를 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죽어라 후회를 했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지고 난
뒤였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으로는 채영을 원하고 있었다. 그녀의 살내음, 그녀의 몸매, 그
녀의 웃음... 이미 그의 머릿속의 채영은 동생이 아닌 한명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너.. 너라도 나를 좀.... 이해해주면 안 되겠니?’
남은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태영은 그대로 몸을 툇마루에 눕혔다. 그러자 천정에서는 채
영의 맑은 웃음이 둥둥 떠 다니고 있었다.
‘그래... 나란 놈 때문에 우리 채영이가 불행해지면 안 되지!’
태영은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회 뜨는 칼을 들고 손목을 그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해를 한 그였다.
아프지는 않았다. 살짝 뜨겁다가 아린 정도였다. 가슴이 너무 찢어지는 고통과 비교하면 아
무것도 아니었다. 손목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뿜어졌지만 태영은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채영아... 널 갖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라... 그리고 용서해라’
다음날 조심스럽게 집을 찾은 채영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부엌에 쓰러
진 태영과 온통 피투성이가 된 주변이 참혹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벌겋게 변해 있었
기 때문이었다.
“꺄~악! 오... 옵빠!!!!!!”
비명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왔다. 역시 그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119를 부르고
실려가는 동안도 채영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한동안 정신이 나가 있었다.
‘너 없으면 나 죽을거야...’
간절하게 애원하던 태영의 얼굴이 떠오르자 채영은 생각했다. 그가 불쌍했다. 얼마나 외롭
고 힘들었으면 자신에게까지 그렇게 애원을 했을까라는 생각에 자신이 태영을 조금 더 위로
해주지 못한 걸 후회했다.
채영은 입술마저 파래진 태영을 내려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생각하고 꿈꾸던 것은 아
니겠지만 그녀는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태영은 다시 못된 생
각을 품을 것만 같았다.
‘그래... 오빠... 우리 같이 살자......’
죽던 살던 아무런 상관없이 내버려 둘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채영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
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피붙이였다. 그것도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피붙이, 자신을 너무
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오빠, 세상 사람이 다 버린다고 해도 그녀만큼은 사랑을 주어야 하
는 불쌍한 남자였다.
“내가 오빠 때문에 못 살아!”
“미안... 그냥 뒈지게 냅두지 왜!”
만 하루만에 눈을 뜬 태영을 내려보며 채영은 그의 튼실한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태영은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는지 몸을 돌려 등져버렸다. 그녀가 보기엔 그의 등이 마치
세상을 등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그래! 또 그럴거야 안 그럴거야!”
“몰라..”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대답 해!”
“안.... 그럴게....”
채영은 태영의 팔에 이마를 댄 채 못 다 흘린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태영 역시 숨죽여
그녀를 따라 숨을 죽인 채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3일 뒤 태영은 채영과 함께 병원을 나섰
다.
집에 도착한 채영은 태영을 방에 눕힌 뒤 조용히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부엌의 한 켠에
서 조심히 물을 적셔 몸을 닦아냈다. 자신이 원하던 첫날 밤은 이런게 아니었지만 그녀는
정성을 다해 몸을 닦아냈다. 마음 먹은 대로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1초에도 여러번 그녀의 결심은 다시 도덕적인 잣대에 비쳐졌다가 다시 굳은 체
념으로 뒤바뀌길 반복하고 있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채영은 발길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선풍기를 틀기엔 한기서린 날
씨였지만 곱게 머리를 말렸고 사놓고 한번도 입은 적 없는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
시 태영이 누워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툇마루에서 들려오는 삐그덕소리가 마치 자
신의 마음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채... 채영아!”
맑게 단장된 모습으로 조용히 방을 찾은 그녀를 보며 태영이 입을 열었다. 비록 화려하고
세련된 복장은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동생이 섹시하게 느껴지는 그였다. 그
녀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태영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영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채영은 백열전구의 단추를 눌러 불을 껐다. 어두컴컴한 분
위기와 함께 시야가 단숨에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옷을 벗어나갔다. 문틈
으로 비추이는 여린 빛에 호리병 같은 실루엣이 드러나고 태영은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녀는 겉옷을 벗고 브래지어를 풀어냈다. 스물 네 살 꽃따운
젖가슴이 화려하게 드러났고 아직은 여린 은밀한 수풀도 금세 드러났다.
“이리 와... 가져... 나쁜 생각 가지면 나도 확 죽어 버릴거야~”
“채영아...”
“마음 변하기 전에 어서 와... 대신 지금보다 더 많이 나 사랑해 줘야해...”
“흑... 미안... 미안해.. 채영아...”
말끔한 솜이불위로 눕혀진 마네킹처럼 채영은 움직임이 없었다.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여
체를 가진 그녀를 본 태영은 평생토록 그녀를 예뻐해 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태영
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알몸을 드러냈고 역시 급하고 서툴게 채영의 속옷을 벗겨냈다.
채영은 눈을 꽉 감아버렸다. 동시에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흉측하게 올라붙은
태영의 자지를 보고 나니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까지 떨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몸 위로 태영의 몸이 느껴졌고 살짝 벌어진 두 다리 사이로는 뜨끈하게 열을 내고
있는 작은 막대기 하나가 서서히 몸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 아윽! 아파... 오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영이 턱을 힘껏 치켜들었다. 태영의 자지가 자신의 좁은 옥문을 비집
고 들어오려 할 때 마다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태영은 자신을 먹어버린 강한
욕정에 채영 생각은 조금도 해주지 않았다. 아프다고 몸부림치는 그녀를 달래는 대신 본능
따랐고 단숨에 그의 자지는 채영의 몸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채영은 처녀성을 태영에게 바쳤다.
“악! 아흑!”
그녀의 눈에선 맑은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태영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그녀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고통의 거친 호흡을, 태영은 쾌감의 거친 호흡을 나란히 내뱉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태영은 그녀의 몸속 깊은 곳에 진득한 액체를 쏟아냈다.
첫경험의 고통보다, 친오빠에게 몸을 내어주는 고통보다 더 한 건 동네사람들의 조롱과 손
가락질이었다. 유별나게 커다란 신음소리를 가진 이유도 있었지만 근친상간을 하는 오누이
라는 소문은 삽시간이 마을로 퍼졌다. 처음 일 이년은 아무도 모르게 행해지는 은밀한 관계
가 어디서부터인지 흘러나가 조업은커녕 인분이며 음식물 쓰레기가 집안으로 투척되었다.
아이가 생겼고, 채영은 그 아이를 몇 번이고 지워야만 했다. 그리고 태영과 채영은 마을에
서 쫒겨날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했어? 바쁘다니까?”
태영은 채영이 앉아 있는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오기 전 채영
은 보상 받지 못 할 자신의 아픈 과거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
른 다섯 살이 된 그녀였지만 여전히 고운 피부와 고운 미소를 간직한 채 커피를 마시고 있
었다.
“오빠한테 할 말이 있어...”
“뭐야... 빨리 말해~ 나 바빠~”
채영은 일부러 태영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왠지 그의 눈을 보면 자신이 다시 약해질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며 가진 집을 팔아 조금의 돈을 마련한 남매는 낯선 경기도 지역으로 무작정 상
경했다. 처음 며칠은 여인숙을 오가며 빛 없는 삶을 타박하며 방황을 했다. 태영은 매일처
럼 술에 쩌들어 살았고 그녀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야?”
“냅 둬... 씨발 어떻게든 되겠지!”
“이러려고 내 앞 길 막은거야? 이게 뭐야...”
“그러게 뒤진다고 했을 때 냅두지! 왜 살렸어! 앙?”
태영은 소주병을 나발 불며 화를 내고 있었다.
“오빠.. 우리 돈 조금이라도 남았을 때 포장마차라도 하자... 오빠 회 잘 뜨잖아...”
“포장마차? 칫!”
비웃기라도 하듯 태영은 그녀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아무리 험한 말을 하고 심한 말을 해도 태영은 매일 밤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녀 역시 태
영의 성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사랑하는 오빠이자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인생에서 태영은 채영의 남편이기도 했다.
“너! 시집 가라!”
태영은 며칠이 지난 후 채영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솔직히 보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가진 돈
도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고 그렇게 되면 남자인 자신이야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지만 여
자의 몸으로는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집? 쳇! 이제와서 시집가라고? 오빠 미쳤어?”
“왜! 그 놈 있잖아! 그 자식!”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시집 가!”
채영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채영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일방적으로 상견례를 잡
았고 상견례가 끝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간단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그녀가 처음 선을
본 남자였다.
“나도 이제 내 인생 되찾고 싶어...”
“무슨 소리야?”
“나, 10년 동안 오빠한테 희생했으면 많이 했다고 생각해...”
“왜... 왜 또 뭐가 불만이야~”
“불만 없어... 이제 나도 나를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서 그래~”
“에잇! 씨발... 또 나 꼭지 도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흔들리지 말자... 채영은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러는 오빠야 말로 내가 꼭지 도는 모습 한 번 보여줄까?”
“왜 그래~ 응? 알잖아...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약속해, 다른 맘 안 먹고 살겠다고, 나 없어도 잘 살겠다고...”
“채영아!”
“나도 좀 살자... 응?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해?”
“평생!”
“정말이야?”
“응! 안 그럼 나 확 죽어버릴거야!”
“그 소리 좀 이제 그만하면 안 돼?”
“사실이니까... 정말이니까...”
채영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
다.
“내가 오빠를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야................... 형사님!”
“채... 채영아!”
채영이 형사를 부르자 좌우로 퍼져 있던 남자 셋이 태영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손에
차디찬 은빛 수갑을 채우고 그를 데리고 갔다.
“이거 놔!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이거 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근친 간 성폭력 및 강간죄로 체
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모든 발언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변
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채영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말로만 행해지는 모든 것은 다시 흐지부지 자신을 괴
롭히는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동안 혼자 두게 되면 옛날과 같이 자해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질게 마음을 먹은 것이
다. 끌려가는 태영에게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되찾아야 할 진정
한 사랑의 의미만을 되새기고 있을 뿐이었다.
채영은 집으로 향했다. 남겨진 일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무거운
발걸음인 걸 자신이 더 잘 아는 그녀였다.
“여보!”
끼니를 때우려는지 라면을 끓이던 그녀의 남편인 경석은 채영을 보고 놀라면서도 반갑게 맞
아주었다.
“식사하는데 미안... 할 말이 있어~”
“뭐.. 뭔데..”
라면 냄비를 팽개쳐둔 채 그녀의 뒤를 따라 소파에 앉은 경석은 채영의 표정을 살폈다. 무
언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느낌이었다.
“이혼해 줘~”
채영은 석 달간 친구의 집에서 지내며 마음을 굳혔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주는 두 명의
남자에 대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두고 밤낮 가리지 않고 고민했다. 그들의 사
랑이 너무 커 그녀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그녀가 경석에게 지어 온 죄가 너무도 컸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
이다.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소리야~”
경석은 딱딱하게 굳은 말투로 이혼을 요구하는 채영에게 여전히 따뜻한 말투로 말을 이었
다. 그러자 그녀는 두 눈에서 맑은 샘물이 샘솟고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그
녀로서는 이혼이란 방법이 최선의 수단이었다.
“나, 자기한테 너무 많은 죄를 지었어... 너무 미안해서 당신 얼굴을 보지 못하겠어... 그러
니까 이혼해줘... 내가 가진 게 많으면 다 주고 싶지만 가진 게 없어서 그것도 미안해”
“참... 나... 갑자기... 뭐야~ 어디 죽으러 가?”
울먹이며 말하는 그녀를 안아주려 하자 그녀는 뒷걸음치며 한 걸음 물러섰다. 화사하게 웃
으며 든든한 어깨로 다시 자신을 잡으려는 그를 피하며 채영은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자기야... 나... 나는 말이지...”
“알아... 말 하지 않아도 알아... 그러니까 말 하지 마... 마음 아프잖아...”
경석이 다가서며 그녀를 안아주자 그의 굳건한 팔에 안겨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온갖
설움이 몸을 스치며 자신을 이해해주려는 경석에게 죽을 듯이 미안함이 들고 있었다.
“그 동안 많이 힘들었지? 울지 마... 우리 채영이...”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그녀는 대성통곡을 했다.
“누가 보면 내가 너 때린 줄 알겠다!”
경석은 무릎 꿇은 채영을 안아 올려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시원한 냉수를 가져와 그녀의
입에 대주었다.
“뭐야~ 친구랑 석 달 재밌게 놀고 와서 왜 갑자기 이혼 얘기야... 난 너랑 그럴 생각이 전
혀 없는데...”
“자기... 한테... 너무 미안해서...”
“내가 바보냐? 바보로 보여?”
“.................”
경석은 웃음을 잃지 않은 얼굴로 조곤조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채영이 스물 네살 때 얼마나 예뻤는지 알아?”
“...................”
“캬~ 그 때 원주에서 처음 봤었잖아... 정말 예뻤는데... 내가 쫒아 다닌 4년이 아까워서라
도 난 이혼 못 해!”
“해 줘... 제발....”
여전히 채영을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말
만을 이어갔다.
“채영아... 너 그 아주머니 기억나니? 보산댁 아주머니었나?”
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석을 소개해 준 그 아주머니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녀였
다.
“그 아주머니가 그러더라? 채영이 만나지 말라고... 그래서 왜요? 하고 물으니까 글쎄 네가
형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나 뭐라나...”
채영은 눈이 동그라져서는 그의 눈을 황급히 피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 그게 뭐 어때서 그러냐고... 난 채영이를 무지하게 좋아하고, 무지하
게 사랑한다고...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무슨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사실.... 그때는 설마설마 했었어... 채영이처럼 작은 충격에도 깨질 것처럼 약한 아이가 그
럴 리 없다고 생각했었지...”
“..................”
아무리 의심이 없는 사람도 주변에서 부추기면 확인이라도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였다. 경
석 역시 의심 많은 인간일 뿐이었다. 채영이 계속해서 부부관계를 피하고, 태영의 발길이
많아질수록 의심의 싹은 크게 자라나고 있었다.
의심의 싹이 나무가 될 때 쯤 경석은 태영을 만났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다.
충격적이지만 주변의 소문은 사실이었고 그녀가 경석과 결혼을 하게 된 배경도 오갈 곳이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앞에 앉은 태영이 채영의 오빠만 아니었어도 죽
였어도 수십번은 죽여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쯤 태영은 경석에게 납득하지 못 할
말이 토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처남, 우리 채영이와 이혼해 줄 수 있겠나?’
아마 경석은 태영의 입에서 잘못을 비는 말이 나왔더라면 바로 이혼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영은 너무나 뻔뻔하게 이혼을 요구했고 경석은 이상하게도 그녀를 자기
손으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작 이혼을 요구하고 싹싹 빌어야 할 사람들이 그들이었
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당한 태영이었다.
경석은 이혼을 두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민을 했다. 가장 경석을 괴롭힌 건 사랑스
러운 그녀였다. 그것 한 가지만 빼놓으면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근친에
대한 것은 쉽게 용납이 되질 않았다. 결국 경석은 이혼을 결심하고 차근차근 마음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사실 나도 이혼을 결심했었어... 널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안 되겠더라...”
“미안해...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난 괜찮아~”
“아니, 난 널 더 사랑하게 됐어.. 남들은 쓸개 빠진 놈이라고 욕할지 몰라도 난 아직도 채영
이 많이 사랑해~”
“내가 자기한테 너무 죄스럽다고... 제발...”
경석은 잠시 숨을 돌리 뒤 다시 말문을 열었다. 지난 과거를 떠올리자 다시 분노가 끓어 올
랐지만 겨우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럼 한 가지만 물을게... 형님은? 이혼하면 형님하고 살 거야?”
“아니, 고소했어... 오빠... 나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럼, 됐어... 당신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게 됐으니까 됐어... 됐어...”
“어떻게 내가 그런 걸 알면서 같이 살 수 있어? 자기도 지금 거짓말 하고 있는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녀석 이라니?”
“윗집 살던 학생... 성현인가?”
“걔가 왜?”
성현은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미친놈처럼 그녀를 찾아 다녔다. 매일같이 동네를 휘젓고 다
녔고 만날 수 있는 확률이 1%도 안 되는 수소문을 하고 다니다 그녀의 남편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그 쬐끄만 놈이 날 보더니 달려와서는 무작정 너랑 이혼하라더라...”
“...............”
“그 때 나도 이혼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어린 녀석에게 그런 얘길 들으니까 망
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어... 상황이라는 게 묘하더군, 아마 그 녀석에게 진실을 처음 듣
는 거였다면 또 당장에 이혼을 했을지도 모르겠지... 그런데 그 녀석의 한 마디가 나를 완전
히 바꿔놓았어...”
“뭐라고... 했는데?”
성현은 경석의 눈을 째려보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랑하는 그녀를 이제 영영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없던 용기도 생기고, 간절한 마음과 투지가 샘솟은 것이다.
“아저씨! 옹졸한 건 내 나이에만 하는 거예요, 어른이 넓지 못하고 옹졸하게 굴 거면 누나
내가 지키게 해줘요! 최소한 나는 지금 나이에도 옹졸하지 않으니까요!”
경석은 성현이 한 말을 채영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여 소리 없이
눈물을 뚝 흘려냈다.
“나, 옹졸한 어른 아니란 거 보여주고 싶거든? 그러니까 기회 좀 줄래? 채영아...”
“자기야..... 미안해....”
“사랑해 채영아... 우리 채영이 이제 아프지 말자...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대신 자기도 약속하나만 해 줄래?”
“뭔데?”
“나, 최선을 다할게... 나도 당신 얼마나 사랑한다고... 대신 내가 싫어지면 언제든지 얘기해
자기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 때나”
“알았어...”
“고마워... 미안해...”
채영은 흐르는 눈물을 거두고 빠르게 손을 놀려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걸리
지 않는 된장찌개와 계란후라이 같은 것들이었지만 경석은 그녀의 사랑에 확신을 갖고 맛있
게 밥그릇을 비웠다.
‘멋진 놈...’
채영은 성현이 떠올랐다. 그리고 너무도 어린 사내에게 지우지 못 할 생채기를 남겨준 것
같아 마음이 좋질 않았다. 언젠가는 그를 찾아가 사과의 말을 꼭 전하고 싶기도 했다.
며칠 후,
채영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성현의 집 앞에 서 있었다.
‘벌써 3년이 지났네... 후훗’
1997년 가을... 딱 3년이 지난 시간이었다.
성현에게 약속했던 어딜 가더라도 꼭 말해주고 가겠다던 그 약속, 그 약속을 어기고 살아온
지도 3년이 지났다. 성현에게 너무도 고맙고, 성현에게 너무나 미안한 그녀였다. 어리다고만
치부했던 3년 전이 어쩌면 지금의 채영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을지도 모를 거라 생각하니 채
영은 더욱 그에게 미안해졌다.
‘이제와서 무슨 염치로...’
채영은 발걸음을 돌리려다 자신이 살았던 성현의 집을 바라보았다. 낮은 울타리에 장미나무
도, 대문 안으로 보이는 작은 정원도 변함 없었다.
지난 3년을 추억하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녀였다. 철부지 같던 어린 녀석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해 왔을 때는 솔직히 웃음이 날 뻔 했던 기억이다. 생각지도 못한 교복을
차려 입고 시내에 나가 단속에 걸렸던 일, 무릎까지 꿇으며 마음이 놓질 않는다던 성현이
울고불고 하던 일, 태영의 아이를 임신해 불안함에 떠는 자신을 듬직하게 안아주던 일, 그
리고 추악한 모습으로 그를 떨쳐버리려 한 일... 알게 모르게 성현과의 추억이 많은 그녀였
다.
‘어떻게 변했으려나~’
채영은 조금씩 쳐져 내려가는 해를 바라보며 성현을 기다렸다. 한번은 꼭 만나보고 싶었고
그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만약 오늘 만나지 못하더라도 다시는 그 앞에 나타나지 않겠
다는 다짐도 함께 했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이 통하기라도 한 듯 멀찌기 가을 점퍼를 멋스
럽게 챙겨 입은 성현이 걸어오고 있었다. 채영은 성인이 된 그를 보자 심장이 뛰어오는 것
을 느꼈다. 손 끝이 무감각해질 정도로 아련한 무언가가 밀려 내려오는 감정이었다. 채영은
얼른 뒤를 돌아 마음을 추스렸다.
‘두근... 두근... 성현이 나를 볼 때의 느낌이 이랬을까?’
채영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성현은 커다란 헤드셋과 등산 배낭만한 큰 가방을 멘 채 서서히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사
실 그녀에게 다가선 게 아니라 대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듯 앞
머리를 길게 길어 한쪽 눈을 가리고 블랙진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성현이었다.
“서... 성현아!”
떨리는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른 채영이 뒤를 돌아 그를 불렀다. 그러나 성현은 그녀의 목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커다란 헤드폰이 귀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현아!”
채영은 팔까지 흔들며 성현을 불렀고 그제서야 움직임을 알아차린 성현은 고개를 들어 자신
을 향해 팔을 흔드는 여자를 보았다.
‘뭐야... 미친년인가?’
대문쪽으로 방향을 바꾼 성현은 채영을 못 본 체 했다. 몰라본 것이다. 열쇠꾸러미에서 대
문 열쇠를 찾은 성현은 열쇠구멍으로 열쇠를 집어넣다가 다시 채영을 바라보았다.
‘누... 누나?....’
곱고 하얀 피부, 길게 쳐진 눈매, 작지만 오똑한 코, 그리고 길다란 다리... 그녀였다. 꿈에
서도 단 한번 만나지 못했던 채영을 발견한 성현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 성현을 보고 천천히 다가서는 채영은 그 때의 맑고 귀여운 웃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
었다. 마주보고 선 성현과 채영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성현은 얼떨떨한
표정을, 채영은 햇살만큼 밝은 표정을 지어내고 있었다.
“안녕? 잘 지냈어?”
성현은 죽도록 보고 싶었던 그녀가 무척이나 미웠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 그 때
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해주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귀를 막고 있던 헤드셋을 목으
로 끌어내린 성현은 그제서야 표정을 풀며 그녀의 인사에 화답을 해주었다.
“뭐야~ 이렇게 나타나서는...”
“미안해... 약속 못 지켜서...”
지난 3년을 생각하면 성현은 그녀의 따귀를 때려도 시원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성
현의 첫사랑이었다. 때론 고귀하고, 때론 가슴 아프며, 때론 죽도록 원망하는 그런 첫사랑이
었다.
“잘 지냈어?”
“그러엄! 잘 지냈지...”
“여전히 예쁘네?”
“성현이는 완전 어른이 다 됐는데? 멋져졌어~”
“뭐야... 이제 와서 꼬리치는 거야?”
“왜! 꼬리치면 넘어올래?”
“미안하게 됐어~ 나도 누나한테 약속 못 지키게 됐으니까...”
“무슨 소리야?”
“첫경험 주기로 한 거... 승질나서 확 딴 년 줘버렸거든!”
“푸흣!”
“왜 웃어?”
“아쉬워서...”
그녀의 웃음에 성현 역시 행복함이 번지고 있었다.
“행복하지?”
“응...”
“됐어, 그럼... 내 기도대로 됐네!”
“기도... 했어? 나... 행복하라고?”
“이제 울지 마! 울어도 난 너 못 안아주니까”
“알았어...”
채영은 무심한 듯 내뱉는 성현의 말투가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
신도 모르게 이미 눈물을 주륵 흘려버린 그녀였다. 성현의 따뜻하고 넓은 이해심이 느껴지
는 그녀였다. 그런 그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못된 모습만 보였던 것 같아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울지 말라니까 그세 우네! 으이그...”
성현은 채영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손 끝엔 예전 그대로, 그녀의 느낌을 간직한 그대로 부
드럽고 촉촉함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알았어... 안 울게...”
채영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눈물을 다시 역류시키려 노력했다. 길다란 고운 손가락으로 눈
가를 매만졌고 끝내 손매로 눈물을 훔쳐낸 뒤 입을 길게 찢으며 웃음을 보내주었다.
“가! 이제...”
“벌써.... 가?”
그녀는 자신의 다짐을 잊은 듯 무심히 고하는 작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는 성
현이는 가는 자신을 끝까지 붙들어 메어 놓는 철부지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가슴을 송
곳으로 찌르는 듯 한 무심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가~”
“나, 또 올까? 와도 돼?”
“아니, 오지 마... 이제 누나 사랑 안 해...”
“그... 그래... 그렇구나...”
채영에게도 어쩌면 성현이 첫사랑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첫사랑이었다. 학교 다닐 땐 너무
철부지였고 태영은 그런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랑이었다. 그리고 경석 역시 사랑보다는 돌
파구로 선택한 남자였다. 그러나 성현은 달랐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소리 소문 없이
파고 들어오더니 곧 그 물은 강력한 액화폭탄으로 변해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버린 남자 중의 남자였다.
“잘 가~”
성현은 열쇠구멍에 차분히 열쇠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뒤도 돌아보
지 않고 문을 닫았다. 그녀를 뒤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고 가지 말
라
을 이룬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징어잡이가 주 수입원인 어촌마을에서 일을 마치고 정오
깨나 되어 집으로 향하던 채영은 들고 있던 검은 비닐 봉투를 벌려 몸통이 뜯기고 다리가
몇 개 없는 오징어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지어 냈다.
‘피~ 또 오징어야? 지겹다 지겨워...’
그렇게 반찬투정을 할 오빠가 떠오른다. 하나 밖에 없는 오빠지만 그렇게 투정을 부릴 때는
정말 밉다가도 때론 쇠잔한 마음을 갖게 하는 그는 하나밖에 없는 채영의 피붙이이자 보호
자이기도 했다. 투정을 부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뿌듯한 마음을 안고 집에 들어서자 이제나
잠에서 깼는지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하고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워내는 태영이 있었다.
“오빠! 언제 일어났어?”
“방금...”
“오늘도 배 나가?”
“나가야지~”
주로 어업이 밤부터 새벽까지 이뤄지는 오징어잡이라 남들이 보면 여동생 등골 빼먹는 철부
지 오빠처럼 보이겠지만 누구보다도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그였다. 채영의 엄마는 노
산인 탓이었는지 그녀를 낳다 잘못되었고 아버지는 고주망태 놀음을 하다 얼마 전 간경화로
쓰러져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녀나이 스물 넷, 태영의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오빠! 정식이 오빠 장가간다던데? 들었어?”
“응!”
“어쩌냐... 이제 노총각은 우리동네에 울 오빠 밖에 안 남았네?”
“쓸데 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차려와!”
농담 삼아 말을 했지만 채영은 태영이 걱정되었다. 서른 중반이 될 동안 몇 번의 선을 보기
는 했지만 이렇다 할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 본 오빠가 몽달 귀신으로 죽지는 않을까 걱정
인 것이다. 나이차라도 적으면 자신 친구들이라도 소개를 해주겠지만 사실 남녀사이 11살
차이라면 극복해 내기 힘든 차이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키 작고, 뚱뚱하고, 얼굴 못생겼고, 집안 형편없고, 성격은 뱃사람답게 괴팍하면서도 고집도
센 태영이었다. 게다가 술 좋아하고 놀음까지 좋아하는데다 골초이기까지 한 그를 그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그는 여자들이 싫어하는 모든 조건을 가진 남자였다. 예쁘장한 채영
은 그래도 동네 총각들에게 인기도 많고 여기저기 선자리도 많이 들어왔다. 주변에서는 우
스갯소리로 둘 중 하나는 주워 온 자식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오빠 밥 먹어~”
채영이 밥상을 내려 놓자 담배를 피우던 태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밥상을 등져버렸다. 그녀
가 예상했던대로 태영은 신물나도록 같은 반찬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있었다.
“아~ 씨발 반찬 정말...”
젓갈에 김치, 오징어국, 그리고 멸치와 같은 마른 반찬이 전부인 밥상머리가 신물이 난다는
듯 신경질을 부린 태영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툇마루 기둥에 걸린 모자
를 눌러쓰며 운동화를 꺾어 신었다.
“오... 오빠... 이따 저녁은 고기반찬 해 줄게.... 응?”
“됐어!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짜증내서 미안하다!”
미안한 줄은 알지만 도저히 입맛이 돌지 않는 밥상을 받기는 싫었는지 태영은 그대로 집을
나서버렸다. 채영은 어쩔 수 없이 홀로 남아 수저를 들었고 조금씩 밥을 비워나갔다.
아마도 그때부터 였을것이다. 태영이 변하기 시작한 시점이 말이다. 사실 태영에겐 친구가
없었다. 그저 동네 구성원으로 조업을 함께하는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는 언제나 혼자
였다. 여동생인 채영을 제외하면 마음 붙일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삭막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외톨이일 뿐이었다. 그나마 싹싹하고 예쁜 채영이 때문에 태영도 관심을 받는 것 뿐이지 만
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그는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을 것이다.
‘흠... 괜한 말을 했나?’
채영은 이미 사라져버린 태영의 발걸음을 수 놓으려고 하는 듯 젓가락을 입에 넣은채 파란
색 녹슨 대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장가를 간다는 정식은 소위 말해 동네에서 바보취급을
당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심성은 누구보다도 착했고 정식의 집은 어촌계장인 아버지 덕분
에 그나마 살림살이가 나은 편이었다. 태영은 그게 못마땅한 것이다. 자신이 돈을 안 버는
것도 아니고, 정식처럼 덜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여태껏 혼자인 스스로가 그보다 뒤처진 느낌
이 들었기 때문이다.
채영도 그런 오빠가 걱정이었다. 이미 혼기도 놓친데다 여자들은 도통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토록 착한 오빠가 왜 밖에만 나가면 그렇게 된서리를 맞고 들어오는
지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비록 볼 것 없는 남자였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남자였기에 여동생으로서 더욱 애잔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친구가 없다보니 태영은 그 흔한 창녀도 하나 취해보지 못했다. 물론 혼자서도 갈 수는 있
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뱃사람들과 함께 술을 한 잔 먹을 때에도 그는 그저
그 뿐이었다. 그는 항상 따돌림을 당했고 어쩌다 마음먹고 끝까지 따라나서는 날에는 화기
애애했던 그 술자리는 끝이 나고 말았다. 하다못해 동네 커피배달부나 술집 여자들도 그를
멀리했다. 이유는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멀리하니 군중심리에 의한 따돌림이라고 밖에 설
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태영의 성격은 더욱 폐쇄적으로 변해갔고 스스로도 사람들을
멀리 했다. 그러다 정식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치 전장에서 진 장수만큼이나 패배감
에 쩔어 살아야만 했다.
“채영아~ 우리 이사갈까?”
며칠이 지난 날 태영은 채영에게 물었다. 나고 자란 곳이고, 할 줄 아는 건 고기 잡는 일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가 고향을 떠나려고 마음먹은 건 보통 용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는 이곳을 찾고 싶지 않을 만큼 고향에 대한 오만정이 떨어져가고 있
을 때였다.
“어디로? 그냥 여기서 살자~ 응?”
“싫어... 나 이곳을 떠나고 싶다...”
“무작정 떠나서 뭐하려고~ 우린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솔직히 가진 것도 없잖아...”
“휴~ 우... 됐다! 됐어!”
그때까지만 해도 채영은 태영의 심정을 알지 못했다. 동네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도, 그에게
친구가 없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 해주었기 때문에 정작 가까이 있는 오빠의
어둠을 알아챌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이 결혼을 했고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동네 유지까지는 아니지만 나
름 먹고 살만한 집안이었기에 작은 동네엔 커다란 잔치가 벌어졌다. 태영은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채영의 성화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국수나 한 그릇 얻어먹고 올 심산으로
그녀를 따라 나섰다.
예상외로 정식의 아내가 된 여자의 외모가 예쁘장했다. 그건 태영에게 있어서 더욱 큰 충격
이었다. 강릉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온 터라 새색시의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낯이 익
으면서도 미인축에 속하는 그녀가 태영의 기억을 되감아 놓기 시작했다.
‘누구였더라... 분명히 본 기억이....’
태영의 기억속에 여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동창을 제외하면 몇 번의 선을
본 여자와 동네에 몇 명 정도가 전부인 그에게 그녀를 떠올리기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
다.
“태영씨는 꿈이 뭐예요?”
“네? 꾸... 꿈이요?”
“남자가 꿈도 없어요?”
“네? 아... 그... 그냥 배 한 척 갖는게...”
꿈 운운하던 여자가 바보 옆에서 가식적인 웃음을 팔고 있었다. 태영은 먹던 국수가 역류할
것 같은 구역질이 느껴졌다. 첫 만남 한 번으로 끝이었던 그녀이지만 태영은 그녀가 원대한
꿈을 갖고, 그 꿈을 향해 돌진해나가는 멋진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젠장!”
“오... 오빠!”
국수 그릇을 엎어버리고 집으로 향하는 그를 채영은 빠르게 뒤따랐다.
“왜 와! 맛있는 거나 좀 먹고 오지~”
“오빠 왜 그래? 응?”
“됐어! 가서 놀다와!”
“아이.... 참!”
멀어지는 태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기라도 몇 점 싸갈까 하는 마음에 채영은 다시 발길
을 잔치집으로 돌렸다.
“늬 오빠 왜 그러니?”
“몰라요... 죄송해요 아주머니...”
“아니다... 그나저나... 채영이 너도 시집가야지~”
“헤헷! 오빠부터 가야죠~”
채영은 시집이란 말에 두 볼이 발그스름해지는 것을 느꼈다. 험한 일을 하는 사람 같지 않
게 뽀얗고 가는 예쁜 손을 두 볼에 대자 자신의 얼굴이 타오르듯 뜨거워진 것을 느꼈다.
“늬 오빠는 글렀어 이것아! 너 이렇게 예쁠 때 먼저 가야지...”
“아주머니도 참...”
“아유~ 예뻐라... 이 토실토실한 궁뎅이 좀 봐! 시집가면 애는 숨풍숨풍 잘 놓겠다!”
“어머... 창피하게....”
“그러지 말고 서울 사는 총각인데, 키도 크고 잘 생겼다니 한 번 만나 봐, 아주 건실해”
“괜찮아요~”
“그러지 말고... 내가 약속 잡아서 알려줄게~”
“아이~ 괜찮다니까요~~~”
채영은 빈말이 아니었다. 설사 선자리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태영을 홀로 내비두고 시집을
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청이 너무 간절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보겠다
승낙을 해버리고 말았다.
‘오빠 좋아하겠다....’
채영은 두 손 가득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잔치날이라 어촌계 조업은 하
루 쉬는 관계로 태영은 소주를 따 놓고 홀짝홀짝 잔을 비우고 있었다. 채영은 그런 오빠가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옴을 느꼈지만 따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빠! 이것 봐~ 맛있겠지? 안주도 없이 뭐냐? 청승 맞게...”
“안 먹어... 갖다 버려~”
“어머? 이 아까운 걸?”
“저리치워! 갖다 개나 줘버려!”
채영이 손가락으로 김치 접시 위로 보쌈고기를 올리자 태영은 신경질스럽게 반응을 했다.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오빠가 야속하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흘린 고기를
주워 상위로 올리며 손가락을 쪽 빨아먹은 그녀는 두 다리를 끌어안으며 마루 위로 올라갔
다.
“나도 한 잔 줘!”
“쬐그만 게 어디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
“아잉... 한 잔 줘....”
“쳇!”
4홉들이 소주병을 들고 잔에 따라주자 채영은 귀엽게 목 넘김을 하고 나서 ‘캬~’ 소리를 질
러댔다. 그리고 신김치와 돼지고기 보쌈을 손가락으로 싸서는 한 입에 털어 넣고 다시 하나
를 싸서는 태영을 보며 말했다.
“오빠도 한 잔 해~ 동생이 안주 준비 했어~”
태영은 자신의 동생이지만 세상 이런 여자가 또 있을까 생각했다. 예쁘지, 성격좋지, 싹싹하
지 게다가 일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는 채영이 그저 예쁘고 귀여웠다.
“아~ 해!”
소주를 한 잔 비우자 애교있게 입안으로 보쌈을 넣어 준 채영은 손가락을 다시 빨아 먹으며
말했다.
“맛있지? 맛있지?”
“그래... 그래... 맛있다...”
“거 봐~ 이게 다 내 손 맛이야... 히힛!”
“그래.. 맛있다... 맛있어...”
모처럼 맞는 휴일이라 그런지 제법 술자리는 길어졌다. 4홉들이 소주병 2개가 나 뒹굴고 태
영은 취했는지 몸이 건들건들 움직이고 있었다. 안 먹겠다고 버리라던 보쌈고기도 거의 봉
지를 비웠고 채영도 몇 잔 얻어 마신 탓에 두 볼이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오빠! 오빠! 나 선본다!!”
“선?”
태영의 혀가 꼬여 있었다. 지금이야 소주가 정량으로 거의 통일이 되었지만 4홉 두 병이면
1.5리터 콜라 한 병과 맞먹는 정도의 양이었기에 그 양은 꽤나 많은 편이었다.
“응~ 보산댁 아주머니가 어찌나 부탁을 하던지...”
“그래서... 볼... 거야?”
“어떡할까? 볼 까? 말 까?”
“그... 그건 니 맘대로 하는거지... 뭘... 상이나 치워!”
태영은 상을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채영의 선 소식에 괜한 심술이 났다. 그러나 그
게 단순한 심술인지 아니면 배신감을 동반한 질투심과 사랑인지 그 땐 몰랐다.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은 태영은 쉬이 잠이 오질 않았다. 선을 볼 남자가 어떤 남자일지
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여자를 데리고 갈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그녀를 보내고 싶
지 않았다.
“오빠~ 자?”
“아니! 왜?”
채영이 든다 만다는 말도 없이 무작정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태영이 누운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아낸 얼굴이 빛났고 증거라도 대듯 목에는 수건 한 장이 걸
려져 있었다.
“오빠 서운하구나?”
“뭐... 뭘~”
“내가 선 본다니까... 맞지?”
“개 코구녕이나... 너라도 얼른 가야지!!”
“치~ 삐쳤어?”
“삐치기는... 나가! 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채영이었다. 노총각으로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오빠에게 못
할 말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나 오늘 오빠랑 같이 잘래!”
“다 큰 기지배가! 얼른 나가!”
“피~ 싫어! 같이 잘래... 옆으로 좀 가 봐!”
“어어? 왜 그래 갑자기?”
“뭐가... 우리 어렸을 땐 맨날 오빠가 나 안고 잤는데...”
“그때는 어릴때고!”
“그래서... 싫어?”
“..................”
태영은 예쁘게 자란 동생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만약 친남매가 아니었더라도 자신은 채영에
게 한마디 말도 못 걸 정도로 예쁘고 착한 여자였다. 태영의 팔을 잡아끌어 베고 난 채영은
태영의 몸을 감싸 안으며 아기처럼 파고 들어왔다. 젊은 여자 특유의 살내음이 이불 속에서
부터 피어올랐고 곧 태영의 코로 들어가 뇌리를 쳤다.
“오빠~ 걱정 마... 우리 오빠는 정말 예쁘고 착한 여자랑 결혼하게 될 거야~”
“.................”
“이렇게 좋은 오빤데... 나 같으면 벌써 우리오빠 채갔겠다!”
“저... 정말이야?”
“그러엄! 든든하고, 남자답고 얼마나 멋지다고~”
“미... 미쳤구나? 니가?”
“오빠는 사랑스런 동생한테 미쳤구나가 뭐냐?”
“허이구! 참....나.....”
처음으로 자신의 품으로 사랑스럽게 파고 든 여자가 바로 채영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이미 태영의 자지는 꼿꼿하게 일어서 있었고, 채영이 동생이라기보다 여자로 느껴지
고 있었다. 아마 단 한 명이라도 그의 품을 그렇게 포근히 감싸왔더라면 채영을 귀찮다며
뿌리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품은 너무도 달콤했다. 뿌리칠 수 없
는 달콤함에 태영은 이성을 점점 놓아가고 있었다.
“그럼, 우리 강아지 얼마나 컸나 한 번 안아볼까?”
태영은 그녀를 힘껏 안으며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토실토실하게 살 오른 엉덩이가 투박한
태영의 손바닥에 농락당하며 탄력을 과시했다. 손 끝에 닿는 살덩어리의 출렁거림에 태영은
호흡이 가빠져왔다.
“아무리 오빠래도 그렇게 처녀 궁둥이를 만지작거리는 건 곤란해~”
“곤란하긴... 오빤데...”
처음 느껴보는 여체의 풍만함에 태영은 이미 정신을 놓아버렸다.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만지
지는 못했지만 찰싹찰싹 손바닥에 감겨오는 그 짜릿한 육체의 반응은 그를 점점 그녀에게
빠지게 했다.
“어흐~ 정말! 그만 해~”
“알았어... 알았어...”
채영이 몸부림치며 벗어나려 하자 그녀를 놓치지 싫은 태영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살살 매만져주며 손바닥을 떼어냈다.
“아무튼 장난꾸러기야 오빠는...”
“장난은 임마! 얼마나 컸는지 확인한 거지!”
“칫! 왜? 젖가슴도 만져보지?”
“그럴까?”
태영이 능글맞게 채영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다대려 하자 채영은 그의 손을 가로막으며 몸을
웅크렸다.
“미쳤어 정말!”
“왜 만져보라며?”
“그게 그 뜻이야? 아무튼...”
“으이그... 내 동생이지만 정말 예쁘다....”
“정말? 정말 내 예뻐?”
“그러엄! 예쁘지...”
태영의 말은 진심이었다. 처음으로 만져본 여자의 엉덩이와 잘록한 허리 때문만은 아닐 것
이다. 이미 동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한 여자로 각인되는데 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장난
인 척 치부해버렸지만 이미 태영의 머릿속에 채영은 한 명의 여인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채영은 프릴장식이 화려한 블라우스와 무릎보다 살짝 올라오는 베이지색 스
커트 차림으로 태영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선을 보기 위해 나서는 중이었지만 곱게
단장한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타고난 흰 피부는 시골여자처럼 보이지 않았지
만 그녀는 자신이 무척 촌티 난다고 생각했다. 어색함이었을 것이다. 중간 지점인 원주에서
약속을 했고 늦지 않게 완행버스 대신 비싼 직행버스도 탔다. 동네에서 빠져 나올 때 자신
이 그토록 어색해 보이기만 했는데 막상 시가지로 나오니 자신의 복장이 전혀 어색하지 않
았다. 오히려 부족해보이기까지 했다. 귀걸이도, 목걸이도, 반지도.. 그렇다고 브로치 하나
없는 수수한 복장이 그렇게 느껴졌다.
주선자에게 얘기를 들은 대로 상대 남자는 키도 크고 훤칠했다. 엄청나게 잘생긴 얼굴은 아
니었지만 인상이 좋았다. 그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지역에서 일반 직장을 다닌다고 소개를
했고 나이는 스물 여덟이라고 했다. 궁합도 보지 않는다는 4살 차이, 채영도 그가 싫지는
않았다. 자가용이 없어 바래다주지 못하는 게 서운하다는 그를 뒤로하고 다시 직행버스에
올라탄 채영은 다시 만날 기약 대신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걸로 대신했다.
두근거림은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믿음직스럽기는 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성
격이나, 외모나, 됨됨이가 크게 빠져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잘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
는 그녀였다.
동네 어귀에 도착을 하니 벌써 저녁 8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조업을 나가야 할 태영 생각이
그제서야 난 그녀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갔다.
‘저녁 굶고가면 힘들텐데...’
버스에서 내려서도 20여분이나 더 들어가야 나오는 집을 가려니 힘이 들었다. 평소에는 잘
신지도 않는 굽 있는 신발 때문에 발가락과 발뒷꿈치가 아려오기도 했다. 게다가 설상가상
선을 주선해 준 아주머니를 맞닥뜨리는 바람에 조급한 마음은 극에 달했다.
“채영아~ 어땠어?”
“헤헷! 좋은 사람 같더라구요~”
“그치? 내가 아무나 소개시켜주려고...”
“아주머니 죄송한데요... 저희 오빠 일 나가야 해서 밥 챙겨 줘야 하는데...”
“오늘 조업 취소됐어... 파도가 높아서~”
“아... 그.. 그래요?”
“그래~ 상견례는 언제...”
“아직 거기까진 얘기 못했어요...”
“으이구! 쇠 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얼른 얼른 서둘러~ 튕기지 말고... 그만한 남자 없어”
“헤헷! 알겠어요~”
조업이 취소됐다는 말에 내심 안심을 한 그녀였다. 그리고 궁금한 게 많은지 아주머니는 채
영을 붙잡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미 어둑해진 하늘 아래에서도 선자리 얘기는 계속됐
다.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두부 사러 간다고 나왔는데... 아무튼 채영아~ 내일 또 얘기하
자~”
된장찌개를 끓이는지 두부를 사러 나온 아주머니는 부리나케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채영도
다시 편안한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그녀 역시 수다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아줌마들의 수
다는 당해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오빠! 미안... 너무 늦었지?”
“아냐... 밥은... 먹었어?”
“웅... 난 먹고 들어왔어~”
“그래~ 나도 생각 없어... 이걸로 됐으니까 옷 갈아입어~”
태영은 또 술상을 벌여 놓고 있었다. 채영이 아침에 볶아 놓은 돼지고기를 안주삼아 간단하
게 요기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금세 옷을 갈아입은 채영이 상에 붙어 앉아 소주를 한 잔
따라주자 기분 좋게 한 잔 들이킨 그가 채영에게 소주잔을 건넸다.
“한 잔 할래?”
어지간해서는 술잔을 주지 않는 태영이었다. 항상 채영이 들러붙어 한 두 잔 뺏어 마시는
게 전부인 그녀에겐 태영의 술잔이 어색하기만 했다.
“왠일이야? 피 같은 술이라 동생에게도 못주시겠다며?”
“먹을거야 안 먹을거야~”
“줘.. 줘...”
“쳇!”
채영이 잔을 비우고 다시 태영에게 술잔을 건넸다. 그리고 다소곳이 앉아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따랐다.
“으~ 오늘따라 술이 쓰다!”
“언젠 달았냐?”
“쳇! 오늘 왜 이렇게 떽떽거려!”
“떽떽거리긴... 어땠어? 괜찮았어?”
“음... 뭐... 그냥....”
“다행이네...”
“뭐가?”
“별로였어라는 말 안 나오면 괜찮았다는 거잖아”
“그런 거야? 그런 게 어딨어!”
“어딨긴... 내가 살아도 임마? 어? 너도 11년을 더 살았는데... 그걸 모를까!”
왠지 태영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그걸 눈치 챈 채영이 일부러 선을 본 남자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이다. 굉장히 서운하고 슬픈 표정의 태영을 보니 채영은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별로였어...”
“왜? 뭐가 마음에 안 들었어...”
“그냥... 그냥... 뭐 다...”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우리 오빠가 100배, 아니 1,000배나 낫더라~”
“그래?”
태영은 기분이 좋은 듯 피식 웃으며 술잔을 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연거푸 술잔만 비워냈고 채영은 그런 그에게 연거푸 술잔을 채울 뿐이었다.
“오빠! 좀 천천히 마셔....”
“왜? 취할까봐?”
“그것도 그거지만... 너무 급하게 마시니까...”
“나 오늘은 취해야 해...”
“왜?”
“너한테 할 말이 있거든...”
채영의 눈이 동그라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겁이 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그를 보
며 긴장을 했다. 그렇게 소주 2홉들이 병을 한 병 더 비우고서야 술상을 밀어내며 채영을
부르는 그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뭐야... 오빠.... 오빠 오늘 이상해...”
“응... 나도 오늘 내가 너무 이상해...”
태영이 채영의 손을 잡았다. 투박하고 거친 손길과 우왁스런 힘에 채영은 긴장감이 더해졌
다.
“왜.... 그래.....”
“..............훗......”
싱겁게 웃음을 보인 태영은 가을 점퍼의 안쪽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채영은 말없이 그
를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흐흣! 이게 모야~~ 헤헷!”
태영이 안쪽 주머니에서 꺼낸 건 빨간 장미꽃 한 송이였다. 어찌나 오래 머금고 있었던지
꽃잎은 짓눌리고 꽃대는 여러군데 꺾여 있었다.
“뭐야... 이거 주려고 그렇게 분위기 잡은 거야?”
채영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꽃 선물에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화려하게 크고 많지는 않았지
만 예상치도 못한 사람에게 꽃 선물을 받으니 의외의 기쁨이 찾아온 것이다.
“예쁘다... 근데 너무 망가졌잖아... 줄려면 제대로 줘야지!”
“채영아... 나... 아... 아니다!”
“뭐야... 이렇게 꽃까지 바쳤으면 멋지게 말도 해야지~ 해 봐!”
“........나... 너 사랑한다!”
채영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멈췄다. 숨 쉬는 것마저 생략한 그녀는 원인 모를 두근거림에
심장이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멋진 남자에게 프로포즈를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두
려움과 불길함이었다.
“헤헷! 나도 오빠 사랑해....”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의 반응을 장난스럽게 받아주었지만 태영의 표정은 결코 장난이 아니
었다. 채영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둘이 살자! 내 여자가 되어 주면 안 되겠니?”
종전까지 망설이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태영은 힘주어 말했다. 채영은 그 상황이 마치
꿈만 같았다. 달콤한 꿈이 아닌, 미치도록 무서운 악몽처럼 말이다.
“오... 오빠... 취....했어? 우리가 어떻게... 그래... 우린”
“알아! 아는데, 나 여자가 무척 갖고 싶어... 죽도록 결혼하고 싶다고...”
“오... 오빠... 그... 그래도... 우린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무슨 상관이야 그딴 게, 너도 나 사랑한다며”
“그... 그건... 그건 그런 뜻이 아니야!”
“상관 없어... 내 여자가 되어 주면 안 돼?”
채영은 서서히 다가오는 태영을 밀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야에 태영의 얼굴이 점
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자신의 몸은 툇마루 위로 쓰러져가고 있었다.
“이러지 마, 오... 오빠 미쳤어?”
“응, 나 미쳤어... 니가 너무 갖고 싶고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 미쳤어...”
“오빠! 이... 이러지 마... 흐흑”
“미안해... 나 너 없으면 죽을거야”
채영은 눈물을 흘렸다. 두 손과 몸통이 태영에게 짓눌려 이렇다 할 반항도 못한 채 소주 냄
새 가득한 그의 입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이건 안 돼... 이러면...’
입술에 그의 입술이 닿자마자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태영을 힘껏 밀쳐냈다. 그리고 잠깐
허술해진 틈을 타 잽싸게 달음질을 쳐 버렸다. 맨발에 돈도 한 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미쳤어... 미친거야... 술을 그렇게 쳐먹더니...’
태영의 행동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녀였다. 태영에게 어느 정도 멀어졌다
고 생각하니 두 다리엔 힘이 빠졌고 결국 남의 집 담벼락에 등을 대어 앉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해는 했다. 서른 넘어까지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여자의 손은 잡아
도 보지 못한 오빠의 불타는 심정을...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동생을 상대로 성적 만족을
취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채영은 친구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태영이 미친 짓을 했다지만 그 사실을 어떻
게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눈물을 닦고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하루만 지나면, 술이라
도 깨면 오빠가 정신을 차릴 거라고 생각하고 친구의 집으로 갔다.
‘미친놈... 미친놈... 어떻게... 동생한테...’
태영 역시 후회를 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죽어라 후회를 했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지고 난
뒤였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으로는 채영을 원하고 있었다. 그녀의 살내음, 그녀의 몸매, 그
녀의 웃음... 이미 그의 머릿속의 채영은 동생이 아닌 한명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너.. 너라도 나를 좀.... 이해해주면 안 되겠니?’
남은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태영은 그대로 몸을 툇마루에 눕혔다. 그러자 천정에서는 채
영의 맑은 웃음이 둥둥 떠 다니고 있었다.
‘그래... 나란 놈 때문에 우리 채영이가 불행해지면 안 되지!’
태영은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회 뜨는 칼을 들고 손목을 그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해를 한 그였다.
아프지는 않았다. 살짝 뜨겁다가 아린 정도였다. 가슴이 너무 찢어지는 고통과 비교하면 아
무것도 아니었다. 손목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뿜어졌지만 태영은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채영아... 널 갖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라... 그리고 용서해라’
다음날 조심스럽게 집을 찾은 채영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부엌에 쓰러
진 태영과 온통 피투성이가 된 주변이 참혹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벌겋게 변해 있었
기 때문이었다.
“꺄~악! 오... 옵빠!!!!!!”
비명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왔다. 역시 그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119를 부르고
실려가는 동안도 채영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한동안 정신이 나가 있었다.
‘너 없으면 나 죽을거야...’
간절하게 애원하던 태영의 얼굴이 떠오르자 채영은 생각했다. 그가 불쌍했다. 얼마나 외롭
고 힘들었으면 자신에게까지 그렇게 애원을 했을까라는 생각에 자신이 태영을 조금 더 위로
해주지 못한 걸 후회했다.
채영은 입술마저 파래진 태영을 내려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생각하고 꿈꾸던 것은 아
니겠지만 그녀는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태영은 다시 못된 생
각을 품을 것만 같았다.
‘그래... 오빠... 우리 같이 살자......’
죽던 살던 아무런 상관없이 내버려 둘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채영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
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피붙이였다. 그것도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피붙이, 자신을 너무
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오빠, 세상 사람이 다 버린다고 해도 그녀만큼은 사랑을 주어야 하
는 불쌍한 남자였다.
“내가 오빠 때문에 못 살아!”
“미안... 그냥 뒈지게 냅두지 왜!”
만 하루만에 눈을 뜬 태영을 내려보며 채영은 그의 튼실한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태영은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는지 몸을 돌려 등져버렸다. 그녀가 보기엔 그의 등이 마치
세상을 등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그래! 또 그럴거야 안 그럴거야!”
“몰라..”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대답 해!”
“안.... 그럴게....”
채영은 태영의 팔에 이마를 댄 채 못 다 흘린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태영 역시 숨죽여
그녀를 따라 숨을 죽인 채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3일 뒤 태영은 채영과 함께 병원을 나섰
다.
집에 도착한 채영은 태영을 방에 눕힌 뒤 조용히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부엌의 한 켠에
서 조심히 물을 적셔 몸을 닦아냈다. 자신이 원하던 첫날 밤은 이런게 아니었지만 그녀는
정성을 다해 몸을 닦아냈다. 마음 먹은 대로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1초에도 여러번 그녀의 결심은 다시 도덕적인 잣대에 비쳐졌다가 다시 굳은 체
념으로 뒤바뀌길 반복하고 있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채영은 발길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선풍기를 틀기엔 한기서린 날
씨였지만 곱게 머리를 말렸고 사놓고 한번도 입은 적 없는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
시 태영이 누워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툇마루에서 들려오는 삐그덕소리가 마치 자
신의 마음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채... 채영아!”
맑게 단장된 모습으로 조용히 방을 찾은 그녀를 보며 태영이 입을 열었다. 비록 화려하고
세련된 복장은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동생이 섹시하게 느껴지는 그였다. 그
녀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태영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영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채영은 백열전구의 단추를 눌러 불을 껐다. 어두컴컴한 분
위기와 함께 시야가 단숨에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옷을 벗어나갔다. 문틈
으로 비추이는 여린 빛에 호리병 같은 실루엣이 드러나고 태영은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녀는 겉옷을 벗고 브래지어를 풀어냈다. 스물 네 살 꽃따운
젖가슴이 화려하게 드러났고 아직은 여린 은밀한 수풀도 금세 드러났다.
“이리 와... 가져... 나쁜 생각 가지면 나도 확 죽어 버릴거야~”
“채영아...”
“마음 변하기 전에 어서 와... 대신 지금보다 더 많이 나 사랑해 줘야해...”
“흑... 미안... 미안해.. 채영아...”
말끔한 솜이불위로 눕혀진 마네킹처럼 채영은 움직임이 없었다.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여
체를 가진 그녀를 본 태영은 평생토록 그녀를 예뻐해 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태영
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알몸을 드러냈고 역시 급하고 서툴게 채영의 속옷을 벗겨냈다.
채영은 눈을 꽉 감아버렸다. 동시에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흉측하게 올라붙은
태영의 자지를 보고 나니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까지 떨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몸 위로 태영의 몸이 느껴졌고 살짝 벌어진 두 다리 사이로는 뜨끈하게 열을 내고
있는 작은 막대기 하나가 서서히 몸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 아윽! 아파... 오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영이 턱을 힘껏 치켜들었다. 태영의 자지가 자신의 좁은 옥문을 비집
고 들어오려 할 때 마다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태영은 자신을 먹어버린 강한
욕정에 채영 생각은 조금도 해주지 않았다. 아프다고 몸부림치는 그녀를 달래는 대신 본능
따랐고 단숨에 그의 자지는 채영의 몸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채영은 처녀성을 태영에게 바쳤다.
“악! 아흑!”
그녀의 눈에선 맑은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태영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그녀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고통의 거친 호흡을, 태영은 쾌감의 거친 호흡을 나란히 내뱉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태영은 그녀의 몸속 깊은 곳에 진득한 액체를 쏟아냈다.
첫경험의 고통보다, 친오빠에게 몸을 내어주는 고통보다 더 한 건 동네사람들의 조롱과 손
가락질이었다. 유별나게 커다란 신음소리를 가진 이유도 있었지만 근친상간을 하는 오누이
라는 소문은 삽시간이 마을로 퍼졌다. 처음 일 이년은 아무도 모르게 행해지는 은밀한 관계
가 어디서부터인지 흘러나가 조업은커녕 인분이며 음식물 쓰레기가 집안으로 투척되었다.
아이가 생겼고, 채영은 그 아이를 몇 번이고 지워야만 했다. 그리고 태영과 채영은 마을에
서 쫒겨날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했어? 바쁘다니까?”
태영은 채영이 앉아 있는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오기 전 채영
은 보상 받지 못 할 자신의 아픈 과거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
른 다섯 살이 된 그녀였지만 여전히 고운 피부와 고운 미소를 간직한 채 커피를 마시고 있
었다.
“오빠한테 할 말이 있어...”
“뭐야... 빨리 말해~ 나 바빠~”
채영은 일부러 태영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왠지 그의 눈을 보면 자신이 다시 약해질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며 가진 집을 팔아 조금의 돈을 마련한 남매는 낯선 경기도 지역으로 무작정 상
경했다. 처음 며칠은 여인숙을 오가며 빛 없는 삶을 타박하며 방황을 했다. 태영은 매일처
럼 술에 쩌들어 살았고 그녀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야?”
“냅 둬... 씨발 어떻게든 되겠지!”
“이러려고 내 앞 길 막은거야? 이게 뭐야...”
“그러게 뒤진다고 했을 때 냅두지! 왜 살렸어! 앙?”
태영은 소주병을 나발 불며 화를 내고 있었다.
“오빠.. 우리 돈 조금이라도 남았을 때 포장마차라도 하자... 오빠 회 잘 뜨잖아...”
“포장마차? 칫!”
비웃기라도 하듯 태영은 그녀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아무리 험한 말을 하고 심한 말을 해도 태영은 매일 밤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녀 역시 태
영의 성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사랑하는 오빠이자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인생에서 태영은 채영의 남편이기도 했다.
“너! 시집 가라!”
태영은 며칠이 지난 후 채영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솔직히 보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가진 돈
도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고 그렇게 되면 남자인 자신이야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지만 여
자의 몸으로는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집? 쳇! 이제와서 시집가라고? 오빠 미쳤어?”
“왜! 그 놈 있잖아! 그 자식!”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시집 가!”
채영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채영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일방적으로 상견례를 잡
았고 상견례가 끝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간단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그녀가 처음 선을
본 남자였다.
“나도 이제 내 인생 되찾고 싶어...”
“무슨 소리야?”
“나, 10년 동안 오빠한테 희생했으면 많이 했다고 생각해...”
“왜... 왜 또 뭐가 불만이야~”
“불만 없어... 이제 나도 나를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서 그래~”
“에잇! 씨발... 또 나 꼭지 도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흔들리지 말자... 채영은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러는 오빠야 말로 내가 꼭지 도는 모습 한 번 보여줄까?”
“왜 그래~ 응? 알잖아...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약속해, 다른 맘 안 먹고 살겠다고, 나 없어도 잘 살겠다고...”
“채영아!”
“나도 좀 살자... 응?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해?”
“평생!”
“정말이야?”
“응! 안 그럼 나 확 죽어버릴거야!”
“그 소리 좀 이제 그만하면 안 돼?”
“사실이니까... 정말이니까...”
채영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
다.
“내가 오빠를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야................... 형사님!”
“채... 채영아!”
채영이 형사를 부르자 좌우로 퍼져 있던 남자 셋이 태영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손에
차디찬 은빛 수갑을 채우고 그를 데리고 갔다.
“이거 놔!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이거 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근친 간 성폭력 및 강간죄로 체
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모든 발언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변
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채영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말로만 행해지는 모든 것은 다시 흐지부지 자신을 괴
롭히는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동안 혼자 두게 되면 옛날과 같이 자해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질게 마음을 먹은 것이
다. 끌려가는 태영에게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되찾아야 할 진정
한 사랑의 의미만을 되새기고 있을 뿐이었다.
채영은 집으로 향했다. 남겨진 일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무거운
발걸음인 걸 자신이 더 잘 아는 그녀였다.
“여보!”
끼니를 때우려는지 라면을 끓이던 그녀의 남편인 경석은 채영을 보고 놀라면서도 반갑게 맞
아주었다.
“식사하는데 미안... 할 말이 있어~”
“뭐.. 뭔데..”
라면 냄비를 팽개쳐둔 채 그녀의 뒤를 따라 소파에 앉은 경석은 채영의 표정을 살폈다. 무
언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느낌이었다.
“이혼해 줘~”
채영은 석 달간 친구의 집에서 지내며 마음을 굳혔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주는 두 명의
남자에 대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두고 밤낮 가리지 않고 고민했다. 그들의 사
랑이 너무 커 그녀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그녀가 경석에게 지어 온 죄가 너무도 컸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
이다.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소리야~”
경석은 딱딱하게 굳은 말투로 이혼을 요구하는 채영에게 여전히 따뜻한 말투로 말을 이었
다. 그러자 그녀는 두 눈에서 맑은 샘물이 샘솟고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그
녀로서는 이혼이란 방법이 최선의 수단이었다.
“나, 자기한테 너무 많은 죄를 지었어... 너무 미안해서 당신 얼굴을 보지 못하겠어... 그러
니까 이혼해줘... 내가 가진 게 많으면 다 주고 싶지만 가진 게 없어서 그것도 미안해”
“참... 나... 갑자기... 뭐야~ 어디 죽으러 가?”
울먹이며 말하는 그녀를 안아주려 하자 그녀는 뒷걸음치며 한 걸음 물러섰다. 화사하게 웃
으며 든든한 어깨로 다시 자신을 잡으려는 그를 피하며 채영은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자기야... 나... 나는 말이지...”
“알아... 말 하지 않아도 알아... 그러니까 말 하지 마... 마음 아프잖아...”
경석이 다가서며 그녀를 안아주자 그의 굳건한 팔에 안겨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온갖
설움이 몸을 스치며 자신을 이해해주려는 경석에게 죽을 듯이 미안함이 들고 있었다.
“그 동안 많이 힘들었지? 울지 마... 우리 채영이...”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그녀는 대성통곡을 했다.
“누가 보면 내가 너 때린 줄 알겠다!”
경석은 무릎 꿇은 채영을 안아 올려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시원한 냉수를 가져와 그녀의
입에 대주었다.
“뭐야~ 친구랑 석 달 재밌게 놀고 와서 왜 갑자기 이혼 얘기야... 난 너랑 그럴 생각이 전
혀 없는데...”
“자기... 한테... 너무 미안해서...”
“내가 바보냐? 바보로 보여?”
“.................”
경석은 웃음을 잃지 않은 얼굴로 조곤조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채영이 스물 네살 때 얼마나 예뻤는지 알아?”
“...................”
“캬~ 그 때 원주에서 처음 봤었잖아... 정말 예뻤는데... 내가 쫒아 다닌 4년이 아까워서라
도 난 이혼 못 해!”
“해 줘... 제발....”
여전히 채영을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말
만을 이어갔다.
“채영아... 너 그 아주머니 기억나니? 보산댁 아주머니었나?”
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석을 소개해 준 그 아주머니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녀였
다.
“그 아주머니가 그러더라? 채영이 만나지 말라고... 그래서 왜요? 하고 물으니까 글쎄 네가
형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나 뭐라나...”
채영은 눈이 동그라져서는 그의 눈을 황급히 피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 그게 뭐 어때서 그러냐고... 난 채영이를 무지하게 좋아하고, 무지하
게 사랑한다고...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무슨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사실.... 그때는 설마설마 했었어... 채영이처럼 작은 충격에도 깨질 것처럼 약한 아이가 그
럴 리 없다고 생각했었지...”
“..................”
아무리 의심이 없는 사람도 주변에서 부추기면 확인이라도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였다. 경
석 역시 의심 많은 인간일 뿐이었다. 채영이 계속해서 부부관계를 피하고, 태영의 발길이
많아질수록 의심의 싹은 크게 자라나고 있었다.
의심의 싹이 나무가 될 때 쯤 경석은 태영을 만났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다.
충격적이지만 주변의 소문은 사실이었고 그녀가 경석과 결혼을 하게 된 배경도 오갈 곳이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앞에 앉은 태영이 채영의 오빠만 아니었어도 죽
였어도 수십번은 죽여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쯤 태영은 경석에게 납득하지 못 할
말이 토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처남, 우리 채영이와 이혼해 줄 수 있겠나?’
아마 경석은 태영의 입에서 잘못을 비는 말이 나왔더라면 바로 이혼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영은 너무나 뻔뻔하게 이혼을 요구했고 경석은 이상하게도 그녀를 자기
손으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작 이혼을 요구하고 싹싹 빌어야 할 사람들이 그들이었
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당한 태영이었다.
경석은 이혼을 두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민을 했다. 가장 경석을 괴롭힌 건 사랑스
러운 그녀였다. 그것 한 가지만 빼놓으면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근친에
대한 것은 쉽게 용납이 되질 않았다. 결국 경석은 이혼을 결심하고 차근차근 마음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사실 나도 이혼을 결심했었어... 널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안 되겠더라...”
“미안해...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난 괜찮아~”
“아니, 난 널 더 사랑하게 됐어.. 남들은 쓸개 빠진 놈이라고 욕할지 몰라도 난 아직도 채영
이 많이 사랑해~”
“내가 자기한테 너무 죄스럽다고... 제발...”
경석은 잠시 숨을 돌리 뒤 다시 말문을 열었다. 지난 과거를 떠올리자 다시 분노가 끓어 올
랐지만 겨우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럼 한 가지만 물을게... 형님은? 이혼하면 형님하고 살 거야?”
“아니, 고소했어... 오빠... 나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럼, 됐어... 당신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게 됐으니까 됐어... 됐어...”
“어떻게 내가 그런 걸 알면서 같이 살 수 있어? 자기도 지금 거짓말 하고 있는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녀석 이라니?”
“윗집 살던 학생... 성현인가?”
“걔가 왜?”
성현은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미친놈처럼 그녀를 찾아 다녔다. 매일같이 동네를 휘젓고 다
녔고 만날 수 있는 확률이 1%도 안 되는 수소문을 하고 다니다 그녀의 남편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그 쬐끄만 놈이 날 보더니 달려와서는 무작정 너랑 이혼하라더라...”
“...............”
“그 때 나도 이혼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어린 녀석에게 그런 얘길 들으니까 망
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어... 상황이라는 게 묘하더군, 아마 그 녀석에게 진실을 처음 듣
는 거였다면 또 당장에 이혼을 했을지도 모르겠지... 그런데 그 녀석의 한 마디가 나를 완전
히 바꿔놓았어...”
“뭐라고... 했는데?”
성현은 경석의 눈을 째려보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랑하는 그녀를 이제 영영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없던 용기도 생기고, 간절한 마음과 투지가 샘솟은 것이다.
“아저씨! 옹졸한 건 내 나이에만 하는 거예요, 어른이 넓지 못하고 옹졸하게 굴 거면 누나
내가 지키게 해줘요! 최소한 나는 지금 나이에도 옹졸하지 않으니까요!”
경석은 성현이 한 말을 채영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여 소리 없이
눈물을 뚝 흘려냈다.
“나, 옹졸한 어른 아니란 거 보여주고 싶거든? 그러니까 기회 좀 줄래? 채영아...”
“자기야..... 미안해....”
“사랑해 채영아... 우리 채영이 이제 아프지 말자...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대신 자기도 약속하나만 해 줄래?”
“뭔데?”
“나, 최선을 다할게... 나도 당신 얼마나 사랑한다고... 대신 내가 싫어지면 언제든지 얘기해
자기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 때나”
“알았어...”
“고마워... 미안해...”
채영은 흐르는 눈물을 거두고 빠르게 손을 놀려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걸리
지 않는 된장찌개와 계란후라이 같은 것들이었지만 경석은 그녀의 사랑에 확신을 갖고 맛있
게 밥그릇을 비웠다.
‘멋진 놈...’
채영은 성현이 떠올랐다. 그리고 너무도 어린 사내에게 지우지 못 할 생채기를 남겨준 것
같아 마음이 좋질 않았다. 언젠가는 그를 찾아가 사과의 말을 꼭 전하고 싶기도 했다.
며칠 후,
채영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성현의 집 앞에 서 있었다.
‘벌써 3년이 지났네... 후훗’
1997년 가을... 딱 3년이 지난 시간이었다.
성현에게 약속했던 어딜 가더라도 꼭 말해주고 가겠다던 그 약속, 그 약속을 어기고 살아온
지도 3년이 지났다. 성현에게 너무도 고맙고, 성현에게 너무나 미안한 그녀였다. 어리다고만
치부했던 3년 전이 어쩌면 지금의 채영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을지도 모를 거라 생각하니 채
영은 더욱 그에게 미안해졌다.
‘이제와서 무슨 염치로...’
채영은 발걸음을 돌리려다 자신이 살았던 성현의 집을 바라보았다. 낮은 울타리에 장미나무
도, 대문 안으로 보이는 작은 정원도 변함 없었다.
지난 3년을 추억하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녀였다. 철부지 같던 어린 녀석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해 왔을 때는 솔직히 웃음이 날 뻔 했던 기억이다. 생각지도 못한 교복을
차려 입고 시내에 나가 단속에 걸렸던 일, 무릎까지 꿇으며 마음이 놓질 않는다던 성현이
울고불고 하던 일, 태영의 아이를 임신해 불안함에 떠는 자신을 듬직하게 안아주던 일, 그
리고 추악한 모습으로 그를 떨쳐버리려 한 일... 알게 모르게 성현과의 추억이 많은 그녀였
다.
‘어떻게 변했으려나~’
채영은 조금씩 쳐져 내려가는 해를 바라보며 성현을 기다렸다. 한번은 꼭 만나보고 싶었고
그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만약 오늘 만나지 못하더라도 다시는 그 앞에 나타나지 않겠
다는 다짐도 함께 했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이 통하기라도 한 듯 멀찌기 가을 점퍼를 멋스
럽게 챙겨 입은 성현이 걸어오고 있었다. 채영은 성인이 된 그를 보자 심장이 뛰어오는 것
을 느꼈다. 손 끝이 무감각해질 정도로 아련한 무언가가 밀려 내려오는 감정이었다. 채영은
얼른 뒤를 돌아 마음을 추스렸다.
‘두근... 두근... 성현이 나를 볼 때의 느낌이 이랬을까?’
채영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성현은 커다란 헤드셋과 등산 배낭만한 큰 가방을 멘 채 서서히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사
실 그녀에게 다가선 게 아니라 대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듯 앞
머리를 길게 길어 한쪽 눈을 가리고 블랙진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성현이었다.
“서... 성현아!”
떨리는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른 채영이 뒤를 돌아 그를 불렀다. 그러나 성현은 그녀의 목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커다란 헤드폰이 귀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현아!”
채영은 팔까지 흔들며 성현을 불렀고 그제서야 움직임을 알아차린 성현은 고개를 들어 자신
을 향해 팔을 흔드는 여자를 보았다.
‘뭐야... 미친년인가?’
대문쪽으로 방향을 바꾼 성현은 채영을 못 본 체 했다. 몰라본 것이다. 열쇠꾸러미에서 대
문 열쇠를 찾은 성현은 열쇠구멍으로 열쇠를 집어넣다가 다시 채영을 바라보았다.
‘누... 누나?....’
곱고 하얀 피부, 길게 쳐진 눈매, 작지만 오똑한 코, 그리고 길다란 다리... 그녀였다. 꿈에
서도 단 한번 만나지 못했던 채영을 발견한 성현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 성현을 보고 천천히 다가서는 채영은 그 때의 맑고 귀여운 웃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
었다. 마주보고 선 성현과 채영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성현은 얼떨떨한
표정을, 채영은 햇살만큼 밝은 표정을 지어내고 있었다.
“안녕? 잘 지냈어?”
성현은 죽도록 보고 싶었던 그녀가 무척이나 미웠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 그 때
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해주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귀를 막고 있던 헤드셋을 목으
로 끌어내린 성현은 그제서야 표정을 풀며 그녀의 인사에 화답을 해주었다.
“뭐야~ 이렇게 나타나서는...”
“미안해... 약속 못 지켜서...”
지난 3년을 생각하면 성현은 그녀의 따귀를 때려도 시원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성
현의 첫사랑이었다. 때론 고귀하고, 때론 가슴 아프며, 때론 죽도록 원망하는 그런 첫사랑이
었다.
“잘 지냈어?”
“그러엄! 잘 지냈지...”
“여전히 예쁘네?”
“성현이는 완전 어른이 다 됐는데? 멋져졌어~”
“뭐야... 이제 와서 꼬리치는 거야?”
“왜! 꼬리치면 넘어올래?”
“미안하게 됐어~ 나도 누나한테 약속 못 지키게 됐으니까...”
“무슨 소리야?”
“첫경험 주기로 한 거... 승질나서 확 딴 년 줘버렸거든!”
“푸흣!”
“왜 웃어?”
“아쉬워서...”
그녀의 웃음에 성현 역시 행복함이 번지고 있었다.
“행복하지?”
“응...”
“됐어, 그럼... 내 기도대로 됐네!”
“기도... 했어? 나... 행복하라고?”
“이제 울지 마! 울어도 난 너 못 안아주니까”
“알았어...”
채영은 무심한 듯 내뱉는 성현의 말투가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
신도 모르게 이미 눈물을 주륵 흘려버린 그녀였다. 성현의 따뜻하고 넓은 이해심이 느껴지
는 그녀였다. 그런 그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못된 모습만 보였던 것 같아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울지 말라니까 그세 우네! 으이그...”
성현은 채영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손 끝엔 예전 그대로, 그녀의 느낌을 간직한 그대로 부
드럽고 촉촉함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알았어... 안 울게...”
채영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눈물을 다시 역류시키려 노력했다. 길다란 고운 손가락으로 눈
가를 매만졌고 끝내 손매로 눈물을 훔쳐낸 뒤 입을 길게 찢으며 웃음을 보내주었다.
“가! 이제...”
“벌써.... 가?”
그녀는 자신의 다짐을 잊은 듯 무심히 고하는 작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는 성
현이는 가는 자신을 끝까지 붙들어 메어 놓는 철부지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가슴을 송
곳으로 찌르는 듯 한 무심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가~”
“나, 또 올까? 와도 돼?”
“아니, 오지 마... 이제 누나 사랑 안 해...”
“그... 그래... 그렇구나...”
채영에게도 어쩌면 성현이 첫사랑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첫사랑이었다. 학교 다닐 땐 너무
철부지였고 태영은 그런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랑이었다. 그리고 경석 역시 사랑보다는 돌
파구로 선택한 남자였다. 그러나 성현은 달랐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소리 소문 없이
파고 들어오더니 곧 그 물은 강력한 액화폭탄으로 변해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버린 남자 중의 남자였다.
“잘 가~”
성현은 열쇠구멍에 차분히 열쇠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뒤도 돌아보
지 않고 문을 닫았다. 그녀를 뒤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고 가지 말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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