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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것 - 2부1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24 1,033회 0건
남산 기슭에 있는 종합병원, 병실들이 즐비한 복도에 환자와 휠체어를 밀고 가는 간병인, 그리고 보호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열려진 병실 안에는 푸른색 가운을 걸친 간병인들과 다리가 높이 들려진 노인, 기침을 하는 노인, 휑한 눈빛으로 넋을 잃고 있는 노인 환자들만 있어 노인병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실 한쪽 구석에서는 환자에게 식사를 주사기에 넣어 호스를 통해 공급하는 간병인과 환자의 대변을 처리하는 간병인도 있었다. 대변을 처리하는 간병인은 환자가 깔고 있던 시트를 벗기느라고 안간힘을 썼다. 호스에 주사기로 죽을 넣어 주던 간병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날카롭게 말했다.

“난정 씨! 환자 식사 주는데, 나중에 할 수 없어?”
“미안해요. 언니! 다 됐어요.”

짜증스런 말을 들은 그녀는 부지런히 시트를 벗겨내고 뼈만 앙상한 노인을 부축해서 새 시트를 깔았다. 한 숨을 내쉰 그녀는 벗겨낸 시트를 세탁물 실에 가서 던져놓고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세면기에 물을 틀어 놓고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올렸다. 그녀는 다름 아닌 조 난정이었다.

난정이 간병인 생활을 시작한 것은 고작 일주일도 안 되었다. 간병일이 익숙지 않아 힘들어도 그녀로서는 살기위해 견뎌야 했다. 그녀는 언니가 죽고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다가 용기를 냈다. 그녀는 우선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아파트가 문제였었다. 도움을 준다고 하던 언니는 죽었기에 그녀는 고민을 하다가 근처의 연립주택 월세 방으로 이사를 했다.

참담한 심정으로 이사를 끝낸 난정에게 당면한 문제는 여고 졸업반인 딸이 문제였다.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난정은 직업전선에 뛰어 들어야하지만 혼자 남아 있을 은주가 문제였다. 비록 그녀 자신 때문에 순결을 잃었고 똑같이 종우의 여자가 되었던 딸이지만, 그녀가 의지할 가족은 은주뿐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녀는 은주의 장래가 걱정되었다.

난정은 은주가 평상시에도 말하던 독일유학을 떠올렸다. 수소문을 한 끝에 그녀는 어렵게 독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죽은 남편의 형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시아주버니 이 남일은 독일에서 유학생들을 상대로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은주를 독일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낼 수 있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이 없는 난정은 직업전선에 뛰어들기도 쉽지 않았다. 취직을 하려고 돌아다니던 그녀는 중국 교포들이 주로 취업하는 간병인 일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매달 은주의 유학비도 보내줘야 하고 살고 있는 집 월세도 줘야하기에 한 숨을 내쉬었다. 손을 씻은 그녀는 부리나케 병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우선 환자를 씻기기 시작했다.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기에 난정은 환자를 간신히 들어서 휠체어에 실었다. 그녀는 환자를 진료실로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는 동안에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 환자를 데리고 병실로 돌아오니 벌써 저녁시간이 되고 있었다. 배달된 환자의 식사를 챙겨주고 나서야 그녀는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갈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난정은 약을 복용시킨 환자가 잠이 들어야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환자가 잠이 들었다가도 수시로 깨어나 찾을 것을 대비해야 했다. 병실을 나온 그녀는 휴게실로 가서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 들었다. 휴게실 안에는 그녀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간을 갖는 동료 간병인들이 TV 앞에 모여 앉아 있었다.

간병인들 중에는 나이 많은 여인이 대부분이고 중국 교포도 적지 않았다. 모여 앉았던 간병인들이 난정에게 눈인사를 했다. 환자 대변을 정리하던 그녀에게 짜증을 부렸던 김 여사가 그녀를 보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정 씨! 아까는 미안했어!”
“미안하긴요.......! 괜찮아요.”

난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TV를 보거나 잡담을 하던 간병인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김 여사 옆에서 잡담을 하고 있던 나이든 간병인이 난정에게 말했다.

“젊고 예쁜데, 이런 일을 계속 할 수 있겠나?”
“..........!”

걱정스러워하는 간병인의 말에 난정은 씁쓸한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TV에서는 남녀간의 애정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 연속극이 방영 중이었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간병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녀들의 입에서는 남녀의 육체관계에 대한 야한 얘기들도 흘러 나왔다. 그녀들은 살자고 일하는데 집에서 놀고먹는 남편은 죽자고 바람피운다며 웃음을 흘렸다.

“호호호........!”
“그래도 살아야지 어떻게 해.”

“원수 같아도 지금까지는 벌어 먹이려고 고생한 남편인 걸 어떡해.”
“그러게 말이야.”

또 다른 간병인은 며칠 동안 일하다가 집에 들어가면 성관계만 요구하는 남편이 원수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여자는 그래도 남편과 부부관계 하는 날이 기다려진다면서 깔깔 거렸다. 어떤 여인은 요즘 들어 부쩍 남편과 관계를 하면 너무 좋아서 신음소리가 커지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있는 난정은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청춘이라는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그녀의 나이는 벌써 서른일곱이었다. 청춘을 알기도 전에 순결을 잃은 그녀는 버림받은 남자의 딸을 낳았다. 그리고 결혼한 남편은 그녀가 행복을 알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죽고 재혼을 꿈꾸던 그녀는 교제하던 남자에게도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여자의 본능을 일깨워준 종우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남자들이 난정의 육체를 품고는 스치듯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녀에게 다시 상처를 안겨 준 남자가 있었다. 은주 유학을 위해 연락을 했던 죽은 남편의 형이었다. 연락을 받은 아주버니가 그렇지 않아도 볼일이 있어 귀국한다면서 염려 말라고 했다. 난정은 은주의 유학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아서 기뻤다.

이주버니가 귀국하던 날, 난정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에 마중 나갔다. 그녀의 아주버니 이 남일이었다. 오래간만에 보게 되지만 공항에 내리는 아주버니의 모습은 무척 점잖은 노신사였다. 죽은 남편과 나이차이가 많아 육십이 가까운 나이였기에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금테 안경을 낀 아주버니의 모습이 그녀는 무척 믿음직스러웠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남편이 죽고 힘들었던 과거를 고백했다.

“저는 은주 외에 가족도 의지할 사람도 없어요.”
“그래! 고생했구먼. 제수씨는 내가 보살펴 줄게.”

“아주버니만 믿을 게요.”
“독일은 한국과 교육체계가 달라. 독일은 대학에 갈려면 기초교육까지 13학년을 수료해야하는데, 은주는 김나지움 9학년에 편입해야 할 거야.”

이 남일이 진지한 표정으로 난정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독일유학에 대한 상식이 많지 않아 아주버니의 말이 생소하기도 했다. 단지 그녀는 교육부와 유학알선 업체에서 알게 된 정보뿐이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 알고 있는 상식도 말할 수 없고 귀담아 들을 뿐이었었다.

“국제학교는 학비가 비싸고 인문학교에 편입시켜야 하는데, 기숙사도 비싸니 우리 집에서 다니게 해.”
“고마워요, 아주버니!”

“고맙기는! 서로 돕고 살아야지. 재정보증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
“네~!”

“재정 보증 서줄 사람은 있어?”
“없어요. 제가 독일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음.......! 그것도 내가 해 줄 수밖에 없네.”

잠시 망설이던 남일이 난정의 눈치를 살피더니 흔쾌히 도와준다고 했다. 고마움을 느꼈던 그녀는 아주버니의 시선이 블라우스 사이의 가슴에 머물러 있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이도 많고 점잖아서 믿음직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식사를 할 생각도 없이 아주버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가 계산하려는데 그가 앞을 막아섰다.

“없는 살림에 내가 낼게.”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요.”

“아냐! 괜찮아. 술이나 한 잔 같이 해.”

남일이 두툼한 지갑을 꺼내 계산을 치르며 말했다. 미안스러운 난정은 아주버니의 청을 거부할 수 없어 바라보고만 있었다. 음식점을 나온 남일은 손을 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택시에 올라타고 그가 운전가사에게 무교동이라고 행선지를 말하고 난정을 지그시 바라봤다.

“오래간만에 왔더니 술 마실 친구가 없어서. 괜찮지?”
“네.......!”

“친구하고 갔던 술집이 아직 있는지 모르겠군.”
“오시면 친구 분하고 술 많이 드세요?”

“그런 편이지........”

무교동에서 내린 남일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한동안 기웃거리던 그가 빌딩 사이로 시선을 옮기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저기 그대로 있군.”
“.........”

남일이 다가간 빌딩에는 ‘샤인’이라는 스탠드바의 네온사인 간판이 번쩍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난정은 아주버니를 따라 지하로 향하는 스탠드바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이국적인 실내장식과 음악소리가 흐르는 홀 안의 분위기만으로도 취할 것 같았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구석진 코너에 나란히 앉은 남일이 양주를 주문했다. 바텐더가 난정으로서는 이름도 모르는 양주와 과일 안주를 가져다 놓았다. 남일이 양주를 따른 잔을 난정 앞에 놓으며 말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학교에 연결이 돼서 다행이야.”
“고마워요. 아주버니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주가 열심히 공부하면 보람이 있겠지. 유학 생활이 쉽지는 않아.”“아주버니가 잘 지도해 주세요.”
“나도 이민생활이 쉽지 않았어. 처음에는 무척 고생했지........”

남일은 자신의 이민생활에서 어려웠던 경험담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따금 난정에게 술을 권하면서 잔을 비웠다. 난정은 묵묵히 아주버니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잔을 비울 때마다 술을 채워주었다. 조심스러운 난정은 그가 권하는 술을 두 잔정도 마셔서 뺨이 다홍빛으로 물들었다. 거나하게 취하기 시작한 남일은 자주 난정의 젖가슴으로 시선을 향했다.

“내가 제수씨를 몇 번 만난 거지?”
“글쎄요.......!”

“난, 솔직히 제수씨를 결혼식장에서 처음 봤을 때, 내 동생이 복이 많아 미인을 만났다고 부러워했어.”
“호호.......!그렇게 말씀하시니 기분이 좋네요.”

난정은 조심스럽게 입을 가리고 웃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주버니의 묘한 눈빛이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흠칫하였다. 아주버니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를 지그시 바라본 그가 나직한 목소리를 흘렸다.

“난 말이야! 제수씨가 아름다워.”
“아주버니 형님도 미인이시던데요.”

미소를 띠고 대답을 하는 난정이지만 신경은 아주버니의 손이 감싸고 있는 어깨에 있었다. 그녀의 말에 잠시 침묵을 하던 그가 그녀에게 넌지시 말했다.

“등록금은 준비되었지?”
“네........!? 저는........”

아주버니 말에 난정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은주 문제로 전화 통화하면서 그녀는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했었다. 그때 아주버니의 염려 말라는 말을 믿고 있던 그녀였다. 착각을 했던 그녀는 당황할 수박에 없었다. 그가 당황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준비가 안 된 모양이군. 염려 마! 내가 해줄게. 그런데........”
“네........!?”

아주버니 말에 안심을 하려던 난정이 동그랗게 눈동자를 뜨고 그를 쳐다봤다. 그는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하며 한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요즘 힘든 상황이야!”
“왜요? 무슨 일이 있으세요?”

“마누라하고 각방 쓰는 중이야. 마누라가 의부증이 생겨서 다투기 시작하고, 벌써 각방 쓰기 시작한지가 일 년이 넘었어.”
“어떡해요. 힘드셔서........”

아주버니에게 위로의 말을 하던 난정은 흠칫하였다. 아주버니가 허리를 끌어안는 것이었다. 주위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홀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아주버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은주의 유학에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줄 사람이어서 뿌리칠 수도 없었다. 그녀의 귓가에는 동굴 속에서 흘러나오는 듯이 아주버니의 음성이 들렸다.

“은주는 염려 마! 제수씨와 하룻밤을 자는 게 소원이야!”
“..........”

난정은 석고상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은주의 유학도 물거품이 될 뿐만 아니라, 취직생활을 하지 못하면 생활도 할 수없는 입장이었다. 혼란 속에 빠진 그녀의 귀에 다시 아주버니의 목소리가 흘렀다.

“내가 제수 씨! 생활비도 보내줄게.”
“..........”

난정으로서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스탠드바를 나올 때까지 그녀는 아무런 거부 의사도 표현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아주버니가 여장을 풀려고 미리 예약한 호텔로 끌려들어 가듯이 들어갔다. 아주버니의 손길에 옷이 벗겨지며 그녀는 목각인형처럼 꼿꼿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술 냄새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주버니의 손길에 젖가슴과 허벅지 사이를 애무당하면서 난정은 ‘나로 인해 순결을 잃은 은주를 위해서’ 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러나 자꾸만 종우가 떠올려지는 그녀의 몸은 뜨거워졌다. 허벅지가 벌려지고 보지 속으로 페니스가 밀려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하마터면 아주버니의 허리를 움켜 쥘 뻔했다.

하지만 정신적인 정조만은 지키겠다는 난정이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주버니는 그녀의 보지 속에 페니스를 삽입하고 헐떡이다가 이내 사정하고는 늙어서 그렇다는 말로 자존심을 지키려했다. 어찌되었던 삼일 후 은주는 독일로 돌아가는 아주버니를 따라 유학길을 떠났다.

그러나 한시름 놓으려던 난정은 또 다른 자멸감에 빠졌었다. 독일로 돌아간 아주버니가 사정이 안 좋으니 등록금은 물론 유학비용을 매달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미 은주를 독일로 보낸 그녀는 월세 보증금을 주고 통장에 남은 전세금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녀의 통장 잔고는 바닥이 들어났고 환자 보호자가 이따금 주는 위로금이 전부였다.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우울했던 난정은 휴게실 구석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녀의 요즘 유일한 취미는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컴퓨터였다.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동전을 넣은 그녀는 사이트를 클릭하여 카페 대화방을 열었다. 직접 사람들과 대화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그녀는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과 세상사는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인천 대로변의 가로수 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제법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비번을 맞이한 난정은 병원을 나와 머뭇거렸다. 집에 가서 모자라는 잠을 자야하는지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머리에는 인터넷 채팅방에서 대화를 하던 남자의 말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난정은 독신이라는 남자가 진실하게 느껴져 호기심을 가졌다. 그래서 전호번호까지 주고받았다. 그런데 나이가 마흔 다섯이라는 남자는 세무서에 재직하는데 재력도 있지만 재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단지 애인을 사귀고 싶다면서 한 달에 이 백 만원씩을 주겠다고 했다. 당장 처음 만나서 주겠다는 유혹이었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고 어차피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남자는 부둣가 다방 앞에서 자가용을 세워 놓고 기다린다고 했다. 난정은 우왕좌왕하다가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보며 남자가 제시한 약속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주차장의 택시에 올라탔다. 두렵기도 하 그녀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부둣가에 도착한 택시에서 내려 요금을 지불한 그녀는 이내 다방 앞에 세워진 회색 승용차를 발견했다.

승용차 운전석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자가 주춤거리며 다가가는 난정에게 하양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채팅방 화면에서 봤던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그녀를 향해 남자가 싱긋이 웃었다.

“왔군요.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지요.”
“.........”

난정은 이마가 튀어나온 남자의 인상이 불량스러워 탐탁지 않았다. 남자가 조수석 문을 열고 그녀를 태웠다. 운전석에 올라앉은 남자는 승용차를 출발시키면서 희죽 웃었다.

“생각보다 미인이시네.”
“어떻게 생각 하셨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우시다는 말이지요.”
“...........”

남자는 승용차의 가속 페달을 밟아 해안도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달렸다. 난정은 자신의 얼굴과 가슴, 그리고 허벅지를 훔쳐보는 남자의 시선을 느끼며 침묵했다. 그녀는 잘못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느끼면서도 단지 남자에게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 승용차는 모텔과 여관들이 즐비한 도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남자는 정원수로 둘러싸인 모텔 입구로 승용차를 몰고 들어갔다. 난정은 마치 직업여성이 된 기분이었다.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운 남자가 내려서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스커트자락을 누르며 승용차에서 내렸다. 모텔로 들어가는 남자를 뒤따라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뒤뚱거렸다.

모텔로 들어가서 카운터에 요금을 지불한 남자가 난정의 허리를 감쌌다. 그녀는 남자의 손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녀는 남자에게 이끌려 모텔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남자가 그녀를 포옹하고 입술을 찾았다. 그녀는 남자의 가슴에 손으로 밀었다.

“우리 처음이잖아요.”
“왜 그래! 처녀도 아니고. 서로 기분 내면 되지.”

마치 짐승 같은 남자의 눈빛과 반말에 난정은 후회스러웠다. 아무리 섹스를 즐기는 연인 사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감정은 교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급하세요! 그럼 주세요.”
“하하......! 물론 줘야지.”

남자는 상의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난정이 얼핏 남자의 지갑 속을 보니 수표와 현금이 두둑했다.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남자는 십만 원 권 수표 한 장을 달랑 꺼내 그녀가 들고 있는 손가방에 집어넣어 주었다. 그녀는 어의가 없었다.

“내가 창녀 인줄 아세요?”
“뭐 그렇게 비싸게 놀아. 우선 즐기고 보자고.”

피식 미소를 흘린 남자는 다시 십만 원 권 수표 한 장을 난정의 손가방에 집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대뜸 그녀를 번쩍 들어서 안아 침대위에 눕혔다.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우악스럽게 그녀의 블라우스를 젖히고 벗기려 했다. 그녀는 남자에게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이, 이러시면.........”
“잘해 줄게. 가만있어........”

난정은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 없어 진땀을 흘렸다. 남자의 힘에 블라우스가 젖혀지고 브래지어가 밀려 올라갔다. 젖가슴을 움켜쥔 남자의 다른 손이 스커트 밑을 더듬었다. 남자는 우선 고부고분하지 않은 그녀를 흥분시키려는 모양이었다. 남자의 손이 팬티 속으로 들어와 보지를 쓰다듬는 순간 그녀는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이러지 말고 우리 기분 좋게 즐겨요.”
“어떻게........!?”

남자가 그때서야 팬티속의 손을 멈추었다. 난정은 눈웃음을 치며 남자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더듬었다. 바지속의 잔득 발기한 페니스를 움켜쥔 그녀는 하얗게 눈을 흘겼다.

“우선 씻고.........”
“그, 그럴까........”

“먼저 씻으실래요. 여자는 시간이 걸리니.......”
“그러지....... 뭐.”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 된 남자는 희소를 흘렸다. 그녀에게서 벗어난 그는 서슴지 않고 옷을 벗었다. 발가벗은 그의 하복부에는 발기한 페니스가 덜렁거렸다. 스커트가 들어 올려져 허벅지가 들어난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아쉬운 눈빛으로 돌아본 남자는 급하게 욕실로 들어갔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난정은 발자국 소리를 죽여 방문 앞으로 갔다.

구두를 양손에 든 난정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문설주가 끌리는 소리에 그녀는 긴장하여 숨을 죽였다. 방문을 열고 나온 그녀는 뛰기 시작했다. 모텔 출입문을 열고 뒤를 돌아본 그녀의 시선에 방문을 열고 보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사력을 다해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땀이 흥건하도록 뛰면서 살펴보아도 지나가는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모텔을 나와 쫓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심장이 덜컹하여 돌아보는 난정의 시야로 택시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쫓아오는 남자와 그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택시가 와서 멈추었다. 무조건 택시에 올라탄 그녀는 덜덜 떨면서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빨리 지하철역으로요. 납치 될 뻔했어요.”
“조심하시지. 경찰에 신고 할 가요?”

“나쁜 놈은 아니니, 그냥 가세요.”

뒤를 돌아본 난정은 현기증을 느꼈다. 쫓아오던 남자가 주먹을 휘두르며 욕설을 하더니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남자가 승용차로 쫓아 올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지하철역에 도착한 그녀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서도 그녀는 안정이 되지 않았다.

난정은 자신의 동네 지하철역에서 내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려 걸음조차 걷기 힘들었다. 남자를 너무 믿었던 그녀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 그녀는 자신의 몸을 탐닉하려는 남자들은 많지만 진심으로 대해주는 남자가 없다는 것에 좌절감이 들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 낀 그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거리는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넌 난정은 형부가 운영하던 가구점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가구점 이층에 보이지 않던 피시방에 신장개업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가구점의 셔터를 내리는 남자에게 향했다.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형부의 남동생 송 민기였다.

난정은 형부의 장례식을 치룬 송 민기가 가구점을 운영하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그녀는 그가 이혼한 아내 때문에 눈치가 보여 직장에 사표를 내야겠다는 하소연을 형부에게 하던 말을 떠올렸다. 그에게 호감을 갖기도 했던 당시와 지금의 그녀 현실의 처지는 달랐다. 금융기관 간부로서 지적인 이미지의 그는 전혀 다른 세상의 남자로 보여 그녀는 열등감마저 느꼈다. 그의 시선을 피해 외면을 하고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안녕하세요!”
“네.......? 네! 안녕하세요.”

마지못해 난정은 어색한 인사를 했다. 밝은 미소를 띤 민기는 오래간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어설픈 미소와 함께 목례를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쫓기듯이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민기는 형님이 입건되기 전에 식사를 같이 했었던 난정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다소곳하면서도 동안의 미모를 지닌 그녀의 모습이 이혼한 아내와 비교가 되었다. 아내의 억센 인상과 달리 그녀는 여성스러운 나긋함과 귀여움까지 들어나 보였다. 넋을 잃고 난정이 사라진 어둠 속을 쳐다보던 그는 재빨리 가게 문을 닫고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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