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를 운전하면서도 온통 그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혼을 할까. 남편의 단점을 찾아보았다.
무기력증. 백수. 골초. 조루. 너무 착한 거.
이혼의 사유는 될 수 없었다. 오늘부터 속을 뒤집어 볼까?
트집 잡고 시비 걸어서 두들겨 맞아 볼까? 두들겨 패려나?
어떻게 하면 남편의 성질을 돋울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매를 사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다. 성질나서 가구라도 나한테 집어 던지면
다칠 수도 있었다. 매질도 요령껏 해야 한다. 매질도 해 본 사람이 잘한다.
상처 안 나게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매질. 멍만 들게 하는 요령.
민서 신랑은 폭력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마누라도 요령껏 겁만 주는 사람이다. 고통만 주는 매질이다.
우리 남편은 여자를 때려 본 적이 없다. 자기 분을 못 이겨 홧김에
집기를 집어 던지면 내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 사유 만들려다가 다리나 팔이 부러지는 불상사가 난다면?
이혼 후에도 평생 고생일 것이다.
차를 갓길에 세웠다. 라이트를 끄고 시동은 끄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이혼 사유를 검색했다.
1. 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시부모, 장인, 장모 등)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6. 그 밖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나한테 해당되는 사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남편한테 적용할
사유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바람을 피울까? 그래서 이혼 당할까?
그러면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뺏기고 민서를 얻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집에 들어서니 남편은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고
아들은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식탁에는 라면 빈 봉지와 스프봉지, 라면 부스러기가 널려 있고
내 발에 스프 찌꺼기가 밟혔다. 내려다보니 국물도 흘려 얼룩져있고
바닥이 엉망이었다.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혁. 이리 와봐.”
소파에서 TV를보며 라면을 먹던 아들이 냄비를 들고 나에게 왔다.
“냄비는 거기 두고.”
내 입에서 신경질 적인 고함이 튀어 나왔다.
아들은 냄비를 소파 앞 바닥에 놓고 겁먹은 표정으로 나에게로 다가왔다.
‘짜악!’
나도 모르게 아들의 뺨을 갈겼다. 때리고는 흠칫 놀랐다.
남편은 미동도 없었다. 컴퓨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들을 때려놓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도 모양새가 아니었다.
“혁아. 너 몇 살인데 집을 이 지경으로 해 놓니? 뭐야 이게.”
나는 식탁과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아들을 나무랐다.
“잘 못 했어요.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여.”
아들도 남편을 닮아서 잘못을 쉽게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다.
“밥솥에 밥 없어? 냉장고에 반찬 없어? 왜 라면을 먹어.”
“라면이 먹고 싶었어요. 끓이는 법도 알아요.”
나는 아들을 잠시 흘겨보았다.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금방 집에 들어온 여자가 신경질 적인 태도로 아들에게 발악을 해도
남편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달려와서 내 손목이라도 비틀면 고통이겠지만
아무 반응이 없는 것도 서운하고 미웠다.
“가 봐. 앞으로 엄마 허락 없이는 라면 먹지 마.”
풀죽은 아들이 소파로 돌아갔다. 나는 남편 들으라고 한마디 더 했다.
“애비라고 있어도 아들이 밥을 챙겨 먹는지, 바닥에 국물을 쏟았는지도 모르고 한심하다. 한심해.”
남편의 고개가 들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돌려졌다.
이제야 반응이 오는구나. 자존심을 건드렸구나 생각했는데 그냥
컴퓨터로 시선이 꽂혀 버렸다. 내 말에 순간 존심은 상했지만
쉽게 체념해 보이는 남편이 미워서 나는 꿇어앉아 걸레로 바닥에
아들이 흘려놓은 국물과 스프를 뽀독뽀독 닦았다.
걸레를 새로 발아 세 번을 훔치고 식탁을 정리하고 세면장으로 향했다.
샤워를 했다. 민서가 발라놓은 타액을 씻어냈다. 끈적거리는 땀도 씻어 내렸다.
눈물 흘린 구멍도 손가락 깊숙이 넣어 씻어 내었다.
샤워하고 나오니 소파에서 울고 있는 아들을 남편이 다독이고 있었다.
나는 못 본체 종종걸음으로 아들 방에 들어와 침대에 엎드렸다.
남편은 라면이 밥 보다 몸에 해로우니까 엄마가 화를 낸 거지. 혁이가 미워서
그런 건 아니라고 아들을 달래고 있었다. 아들의 대답은 없었다.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혼자 후회했다.
그만한 일로 때릴 것 까지는 없었는데. 남편 자극하려다가
못된 어미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아들에게 미안했고
진심으로 남편이 미웠다. 한편으론 남편이 한심하면서 불쌍하기 까지 했다.
남편이 다독여서인지 아들은 눈물을 그치고 방으로 왔다.
그리고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뺨을 때린 엄마가 밉지도 않은지
내 품에 파고들어 누웠다. 나는 몸을 돌려 아들을 꼬옥 안아 주었다.
나는 그 날 밤. 꿈을 꾸었다.
내가 이브까에서 출근을 하고 있었다. 남자 옷을 입었다.
서류 가방을 들고 민서의 배웅을 받으며 이브까를 나서고 있었다.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 나와 일렬로 서서 인사를 한다.
“돈 많이 벌어 오세여”
혁이도 있었다. 민서의 아이들과 내 아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민서가 달려와 내 목에 매달려 진한 키스를 했다.
이브까 앞 도로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녔지만
우리에게 관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끼리 키스를 하고 있었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 기웃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남자 옷을 입고 있어서 여자끼리인 줄 모르는 것인가?
키스를 끝내고 손을 흔들어주며 큐브에 올랐다.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오르려다가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차안에 민서의 신랑과 내 남편이 벌거벗고 뒤엉켜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나는 잠에서 깼다. 집안은 조용했다.
혁이도 베개를 밀어놓고 내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팔을 살포시 빼고 혁이 머리 밑에 베개를 고여 주었다.
손바닥으로 혁이의 이마를 한 번 쓸어주고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거실에 불은 꺼져 있었다. 남편도 방에 들어가 잔다는 이야기였다.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내가 전혀 낯설지 않다. 자다 일어난 푸스스한 얼굴.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간절함일까? 꿈은 꿈일 뿐이었다.
방으로 돌아왔다. 혁이 옆에 살포시 누웠다. 쌔근거리는 혁이의
가슴에 손바닥을 올리고 아들의 호흡을 느끼며 잠을 청했다.
혁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대고 아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잠을 청했다.
기분 나쁜 꿈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꿈이었다. 행복한 꿈이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상에서 이루어준 꿈이었다.
민서의 신랑과 내 남편이 내 차안에서 벌거벗고 엉켜있는 장면은 백미였다.
꿈이 현실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꿈은 가상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4차원의 세계가 아닐까?
현실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실질적인 공간.
그 곳에서 민서와 나는 부부가 되어 행복한 것인가?
보이지 않는, 공존하는 세상이 꿈으로 투영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갑자기 남편이 또 미워지기 시작했다. 약점을 찾아야 한다.
사유를 만들어야 한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무능력한 인간에게
이혼에 합당한 사유를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민서는? 민서는 내가 이혼을 시켜 줄 자신이 있었다.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라지만, 주먹보다 쎈 것이 돈이었다.
돈의 힘이라면 주먹의 위력은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다.
내가 남편과 이혼 할 수 있는 날, 나는 민서를 이혼 시킬 것이다.
진단서를 첨부하고 이혼 소장을 제출 하는 순간부터 민서에게
보디가드를 붙일 심산이었다. 민서 친정식구들에게도 경호원을 사서
붙여주면 되는 것이다. 민서 신랑보다 쎈 주먹을 사서 울타리를 만들면 된다.
문제는 나였다. 문제는 내 남편이었다. 올가미를 만들어야 했다.
남편이 옴짝 달싹 못 할 올가미를 만들어 변명도 못하고 떠나게 해야 한다.
나는 행복에 겨워 남편과 어떻게 찢어질 것인가를 고민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민서와 부부가 되어 아이들 함께 키우며 인생을 향유하는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상상이지만 행복한 밤이었다.
*독자님들께 묻습니다. 지희가 남편과 이혼하고 민서와 행복한 동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여? 지희 남편에게 꼼짝 못할 올가미가 있으면 귀뜸해 주셔여^^*
어떻게 하면 이혼을 할까. 남편의 단점을 찾아보았다.
무기력증. 백수. 골초. 조루. 너무 착한 거.
이혼의 사유는 될 수 없었다. 오늘부터 속을 뒤집어 볼까?
트집 잡고 시비 걸어서 두들겨 맞아 볼까? 두들겨 패려나?
어떻게 하면 남편의 성질을 돋울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매를 사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다. 성질나서 가구라도 나한테 집어 던지면
다칠 수도 있었다. 매질도 요령껏 해야 한다. 매질도 해 본 사람이 잘한다.
상처 안 나게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매질. 멍만 들게 하는 요령.
민서 신랑은 폭력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마누라도 요령껏 겁만 주는 사람이다. 고통만 주는 매질이다.
우리 남편은 여자를 때려 본 적이 없다. 자기 분을 못 이겨 홧김에
집기를 집어 던지면 내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 사유 만들려다가 다리나 팔이 부러지는 불상사가 난다면?
이혼 후에도 평생 고생일 것이다.
차를 갓길에 세웠다. 라이트를 끄고 시동은 끄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이혼 사유를 검색했다.
1. 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시부모, 장인, 장모 등)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6. 그 밖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나한테 해당되는 사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남편한테 적용할
사유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바람을 피울까? 그래서 이혼 당할까?
그러면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뺏기고 민서를 얻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집에 들어서니 남편은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고
아들은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식탁에는 라면 빈 봉지와 스프봉지, 라면 부스러기가 널려 있고
내 발에 스프 찌꺼기가 밟혔다. 내려다보니 국물도 흘려 얼룩져있고
바닥이 엉망이었다.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혁. 이리 와봐.”
소파에서 TV를보며 라면을 먹던 아들이 냄비를 들고 나에게 왔다.
“냄비는 거기 두고.”
내 입에서 신경질 적인 고함이 튀어 나왔다.
아들은 냄비를 소파 앞 바닥에 놓고 겁먹은 표정으로 나에게로 다가왔다.
‘짜악!’
나도 모르게 아들의 뺨을 갈겼다. 때리고는 흠칫 놀랐다.
남편은 미동도 없었다. 컴퓨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들을 때려놓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도 모양새가 아니었다.
“혁아. 너 몇 살인데 집을 이 지경으로 해 놓니? 뭐야 이게.”
나는 식탁과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아들을 나무랐다.
“잘 못 했어요.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여.”
아들도 남편을 닮아서 잘못을 쉽게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다.
“밥솥에 밥 없어? 냉장고에 반찬 없어? 왜 라면을 먹어.”
“라면이 먹고 싶었어요. 끓이는 법도 알아요.”
나는 아들을 잠시 흘겨보았다.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금방 집에 들어온 여자가 신경질 적인 태도로 아들에게 발악을 해도
남편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달려와서 내 손목이라도 비틀면 고통이겠지만
아무 반응이 없는 것도 서운하고 미웠다.
“가 봐. 앞으로 엄마 허락 없이는 라면 먹지 마.”
풀죽은 아들이 소파로 돌아갔다. 나는 남편 들으라고 한마디 더 했다.
“애비라고 있어도 아들이 밥을 챙겨 먹는지, 바닥에 국물을 쏟았는지도 모르고 한심하다. 한심해.”
남편의 고개가 들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돌려졌다.
이제야 반응이 오는구나. 자존심을 건드렸구나 생각했는데 그냥
컴퓨터로 시선이 꽂혀 버렸다. 내 말에 순간 존심은 상했지만
쉽게 체념해 보이는 남편이 미워서 나는 꿇어앉아 걸레로 바닥에
아들이 흘려놓은 국물과 스프를 뽀독뽀독 닦았다.
걸레를 새로 발아 세 번을 훔치고 식탁을 정리하고 세면장으로 향했다.
샤워를 했다. 민서가 발라놓은 타액을 씻어냈다. 끈적거리는 땀도 씻어 내렸다.
눈물 흘린 구멍도 손가락 깊숙이 넣어 씻어 내었다.
샤워하고 나오니 소파에서 울고 있는 아들을 남편이 다독이고 있었다.
나는 못 본체 종종걸음으로 아들 방에 들어와 침대에 엎드렸다.
남편은 라면이 밥 보다 몸에 해로우니까 엄마가 화를 낸 거지. 혁이가 미워서
그런 건 아니라고 아들을 달래고 있었다. 아들의 대답은 없었다.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혼자 후회했다.
그만한 일로 때릴 것 까지는 없었는데. 남편 자극하려다가
못된 어미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아들에게 미안했고
진심으로 남편이 미웠다. 한편으론 남편이 한심하면서 불쌍하기 까지 했다.
남편이 다독여서인지 아들은 눈물을 그치고 방으로 왔다.
그리고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뺨을 때린 엄마가 밉지도 않은지
내 품에 파고들어 누웠다. 나는 몸을 돌려 아들을 꼬옥 안아 주었다.
나는 그 날 밤. 꿈을 꾸었다.
내가 이브까에서 출근을 하고 있었다. 남자 옷을 입었다.
서류 가방을 들고 민서의 배웅을 받으며 이브까를 나서고 있었다.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 나와 일렬로 서서 인사를 한다.
“돈 많이 벌어 오세여”
혁이도 있었다. 민서의 아이들과 내 아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민서가 달려와 내 목에 매달려 진한 키스를 했다.
이브까 앞 도로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녔지만
우리에게 관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끼리 키스를 하고 있었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 기웃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남자 옷을 입고 있어서 여자끼리인 줄 모르는 것인가?
키스를 끝내고 손을 흔들어주며 큐브에 올랐다.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오르려다가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차안에 민서의 신랑과 내 남편이 벌거벗고 뒤엉켜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나는 잠에서 깼다. 집안은 조용했다.
혁이도 베개를 밀어놓고 내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팔을 살포시 빼고 혁이 머리 밑에 베개를 고여 주었다.
손바닥으로 혁이의 이마를 한 번 쓸어주고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거실에 불은 꺼져 있었다. 남편도 방에 들어가 잔다는 이야기였다.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내가 전혀 낯설지 않다. 자다 일어난 푸스스한 얼굴.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간절함일까? 꿈은 꿈일 뿐이었다.
방으로 돌아왔다. 혁이 옆에 살포시 누웠다. 쌔근거리는 혁이의
가슴에 손바닥을 올리고 아들의 호흡을 느끼며 잠을 청했다.
혁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대고 아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잠을 청했다.
기분 나쁜 꿈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꿈이었다. 행복한 꿈이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상에서 이루어준 꿈이었다.
민서의 신랑과 내 남편이 내 차안에서 벌거벗고 엉켜있는 장면은 백미였다.
꿈이 현실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꿈은 가상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4차원의 세계가 아닐까?
현실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실질적인 공간.
그 곳에서 민서와 나는 부부가 되어 행복한 것인가?
보이지 않는, 공존하는 세상이 꿈으로 투영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갑자기 남편이 또 미워지기 시작했다. 약점을 찾아야 한다.
사유를 만들어야 한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무능력한 인간에게
이혼에 합당한 사유를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민서는? 민서는 내가 이혼을 시켜 줄 자신이 있었다.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라지만, 주먹보다 쎈 것이 돈이었다.
돈의 힘이라면 주먹의 위력은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다.
내가 남편과 이혼 할 수 있는 날, 나는 민서를 이혼 시킬 것이다.
진단서를 첨부하고 이혼 소장을 제출 하는 순간부터 민서에게
보디가드를 붙일 심산이었다. 민서 친정식구들에게도 경호원을 사서
붙여주면 되는 것이다. 민서 신랑보다 쎈 주먹을 사서 울타리를 만들면 된다.
문제는 나였다. 문제는 내 남편이었다. 올가미를 만들어야 했다.
남편이 옴짝 달싹 못 할 올가미를 만들어 변명도 못하고 떠나게 해야 한다.
나는 행복에 겨워 남편과 어떻게 찢어질 것인가를 고민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민서와 부부가 되어 아이들 함께 키우며 인생을 향유하는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상상이지만 행복한 밤이었다.
*독자님들께 묻습니다. 지희가 남편과 이혼하고 민서와 행복한 동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여? 지희 남편에게 꼼짝 못할 올가미가 있으면 귀뜸해 주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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