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두 시간을 연달아 참여수업으로 하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영애는 3교시가 끝나자마자, 현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들에게 다가갔다.
이놈은 아직도 천하태평으로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코웃음이 나오는 엄마.
집에서 하던 버릇대로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려다가
이성을 찾고.. 가만히 옆에 붙어 앉아서 자는 얼굴을 지켜본다.
[얘.. 일어나..-- 정작 엄마가 왔는데 자고 있는 애가 어딨어..!]
영애는 누가 들을까봐 조용 조용히 소리치다가, 잘 안되니까 아예 잡고 흔들었다.
눈을 부비며 그제사 일어난 지우가 멀뚱 멀뚱 엄마를 바라본다.
“.... 미안해 엄마. 이상하게 졸려서 막 자버렸네.. 흐헤”
“나 삐지려고 했어! 아들이라는 게 엄마를 옆에서 따라다니며 지켜줄 생각은 안하고.. 흥”
“에이~ 뭐 그런 걸로 삐지고 그래.. 애들이 재밌게 놀아주지 않았어?”
“칫.. 그런거랑 네가 곁에 있는 거랑은 확연히 다르잖니.. 미워!”
“미안해~ 어제 늦게까지 게임하다가 자서 그런 거 같애..
많이 얘기좀 했어? 애들이 다 엄마를 좋아하더라.”
“쿡쿡. 응.. 다행이고 고맙지.. 아, 그보다, 너 이리와서 뭐좀 먹어.”
영애는 낯간지럽다고 자꾸만 손을 빼려는 아들의 손을
초인적인 힘으로.. 질질 끌면서 테이블 가까이로 데려가려 한다.
그걸 본 수경이 총총 달려와서 말했다.
“뭐지.. 아주머니, 귀한 아드님께서 철이 없어서 말을 안들으시는군요! 도와드릴게요”
“응.. 풉~~ 이놈이 힘이 어찌나 센지.. 똥고집이라 뭐 좀 먹이려는데 또 이렇게 말을 안들어.”
“네. 확실히 그런 면이 있더라구요.”
“차수경 뭐 임마? --.. 아 갈게.. 그러니까 놔 이거.. ”
지우는 수경에게 간섭말라고 눈으로 화를 버럭 내며, 마지못해 의자에 앉는다.
수경은 오히려 약올리는 얼굴을 하고, 잽싸게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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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3층의 남자 화장실.
주원과 현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리 실습실은 1층에 있지만, 일부러 눈을 피해 이 곳으로 옮겼다.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현준에게 눈을 부라리는 주원의 모습.
욕설 섞인 설교와 협박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현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할 말은 다했냐? 이거 참.. 욕이 없으면 대화가 진행이 안되는 무식한 놈이구만..”
“뭐?!.....”
듣는둥 마는둥 귀찮은 포즈로 내내 듣다가 비아냥거리는 말을 던지자
주원은 도저히 못참고 폭발하고 말았다.
나름 참는다고 참았는데 역시 이녀석은 주먹으로 다스리는게 제격이다.
빠르게 선빵을 날리자, 현준은 꼼짝 못하고 오른쪽 뺨을 얻어 맞았다.
한 대 맞자마자 시뻘겋게 부어오르는 얼굴..
그리고 까만 뿔테 안경은 당연히 박살나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 이 새끼가 쳤어?”
얼얼하게 시큰거리는 뺨을 어루만지며, 현준은 분노로 몸을 가볍게 떨었다.
주원은 네 까짓게 어쩔테냐, 깐족대며 이번엔 배를 가격한다.
그런데..? 주먹질에는 일가견이 있고 상당히 빠른 펀치라고 자부하던 주원의 손이..
어느새 현준의 왼손아귀에 잡혀서 막혀 있다.
‘뭐야? 내 주먹을 쳐낸 것도 아니고 잡았어...!?’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어서, 주원은 우악스럽게 생긴 그 손을 어떻게든 빼려고
안간힘을 쓴다. 방금 그 잽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패닉에 빠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소리 없이 눈 앞이 번쩍- 하고 빛났다.
“콰다당-!!”
뭐가 어떻게 된건지도 모른 채, 거구의 주원이 그대로 붕- 떠오른채
몇미터를 날아가- 변기 문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거구는 코피를 주르륵 흘리며 힘없이 아래로 추욱- 미끄러졌다.
머리를 바닥에 쿵- 찧으며 大자로 뻗은 놈에게 다가온 현준은
단화 발바닥으로 그의 목을 짓밟았다.
“무대가리 새끼야.. 잘 들어. 내가 저번에 네 말을 자르며 껴들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빈정 상해있던 모양인데, 넌 지금까지 내 계산에 놀아난거야.
내가 널 처음 봤을때부터 한번 반 죽여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 흐흐..”
“.... 흐그윽... 쿨럭... 왜 그런 생각을..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냐..”
“흐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은 이래서 안돼.
내 성격이, 너같은 주먹 하나만 믿고 설치는 놈들이 젤 싫거든.
또 단순해서 사냥감으로는 아주 제격이고 말야..
너 그리고, 그 아줌마 따먹고 싶어 꼴려 죽겠지? 크크크..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이제 그 여자는 내꺼야.
나라는 존재만 없으면.. 넌 소원성취했겠지 무슨 미친 짓을 해서라도 강제로..
근데 그런 여자들을 다루는 법은 따로 있어.. 모자란 새끼야.. 흐흐”
현준은 짓밟고 있는 발을 들어, 드러누운 무대가리의 배를 또 힘껏 걷어 찼다.
퍽! 소리와 함께 녀석은 큰 고통으로 제대로 소리도 못 지르고
그저 끄억.. 흐극...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을 친다.
부서진 안경을 집어들고 현준은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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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아니다 죄송해요 후훗. 선생님은 집에 계실 때 뭐하세요? 그냥 주부예요?”
양은지 라는 이름의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이가 영애에게 바짝 다가와 물었다.
영애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부추전을 솜씨 좋게 튀기면서
은지와 재밌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지우는 양껏 먹었는데도, 붙잡혀서 옆에 나란히 앉아 꾸역 꾸역 강제로 먹고 있다.
“응 뭐하겠어. 백조야.. 킥킥. 놀지.. 근데 집에서만 시간 보내기가 뭐해서,
요즘엔 틈나는대로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활용하려고 해.”
“히히. 그럼 한가할 때는 뭐하시는데요? 우리 엄마도 노는 걸요.. 킥킥”
“운동 좀 하려고~~ 뱃살이 요새 붙은 것 같아서.. 뭐가 좋을까 생각중이야.
수영이나 요가, 그리고 헬스도.. 호호”
“오~ 멋져요! 저두! 아줌마 저랑 같이 다니실래요??
히히.. 우리 엄마는 하는 건 없으면서 좀.. 게으르시거든요..
저도 뭔가 운동 좀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지럽던 참이예요.”
“정말? 쿡쿡. 어머니께서 아시면 서운하시잖아 얘..
그리고 나처럼 나이든 아줌마랑 무슨 재미로 다니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되어요 ~ 호호. 저는 아무한테나 이런 제안 안하거든요”
‘놀고들 있네 정말...’
지우는 배가 터질 것 같아서, 엄마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빠져나왔다.
끄억~ 트름을 하며 자판기에서 음료를 꺼내 마시는 중이다.
교실에서의 모습을 떠올리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의외로 여자들이 엄마를 잘 따르네.. 남자들이 잘 들러붙을 줄 알았는데..
뭐 그게 오히려 훨씬 다행이지..’
갈증을 채우고 복도의 바깥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고 있다.
복도를 걸어오는 친구 기태가 지우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야.. 수업중이야 지금~ 이거 개념없네..”
“들어가려는 참이야. 바람 쐬잖아 --.. 넌 어디가는데?”
“응.. 나도 깝깝해서.. 기름 냄새가 좀 넘어오려 하더라구.. 으욱~
음식 냄새는 맛있는데 킥, 그래서 숨 좀 돌리려고 나왔어.”
“어쨌든 나온 거잖아...”
“흐흐. 야! 니네 엄마 오늘도 넘 이쁘고 섹시하셔.. 나 반해버렸다.. 하하하..”
“.................”
“나 오늘, 너희집에 놀러가면 안돼?”
“와서 뭐하게? 어린 애는 어린 애답게 놀아.. 큭큭 나 오늘 학원 간다.”
“그러지 말고.. 게임한다는 핑계로 좀 가게 해줘.. 오늘 아니면 다른 날이라도.. 응??
넌 날 알잖아. 얼마나 순수한 놈인지.. 이상한 짓은 안할게..T^T
어머니랑 친해지게 기회를 주라..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으이구.. 꿈 깨 자식아.. 이미 충분히 이상하게 들리거든?”
지우는 킬킬 웃으면서 애타게 소매를 붙잡는 기태를 따돌리고 화장실로 향한다.
그런데 그때, 계단을 올라오던 현준과 마주쳤다.
현준은 지우를 스윽- 살피더니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눈빛으로..
의식적으로 조금 피하는 느낌을 주더니 실습실로 안가고 계단을 또 올라간다.
“자아- 오늘의 참여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어머님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호호. 별 말씀을요.. 부족하고 어설픈 솜씨였지만 잘 따라준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아니예요 아줌.. 선생님! 여태까지 오신 분들 중에 최고였어요! 음식도 정말 맛있었구요..!”
“선생님 연속해서 가르치러 와주시면 안되나요? 호호~~ 더 친해지고 싶어요..”
“녀석들.. 어머님 난처하시잖니 하하.
자아, 수고하신 지우 어머니에게 다같이 힘찬 박수한번 쳐드리자.”
학생들은 처음에 영애가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짝짝짝- 따듯한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 분위기여서일까. 마침 4교시 끝나는 시간과 겹치게 수업이 종료되서
몇몇 여학생들은 영애의 팔을 붙잡고 같이 밥먹으러 가자고 응석을 부렸다.
영애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싫진 않아서..
힐끗 아들의 눈치를 보더니 끄덕- 거리는 지우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과 식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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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화요일.
아침부터 늦었다고 부산을 떨며 허둥지둥 대는 아빠와 아이들.
덩달아 정신없이 챙겨주느라 바쁜 영애는.. 후다닥 잽싸게 세 남자의 뒤치다꺼리를
끝내고, 겨우 한숨 돌리며 소파에 푸욱- 드러 누웠다.
‘참.. 어른이나 애나 정신연령은 똑같으니.. 애를 셋이나 키운다니까 내가...’
쿡쿡- 웃으면서 연속극이나 보려고 tv 리모컨을 찾는데, 핸드폰이 띠리링~♬ 울린다.
이 시간에 찾을 사람이 없는데.. 생각하며 탁자 위의 폰을 가지러 일어섰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인데.. 흐응..?”
[아주머니 잘 지내시죠? 저번에 같이 앉아서 얘기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때 번호를 주셨는데 이제야 생각나서 연락드려봐요. 헤헤. 잘 쉬시구요. 또 연락드릴게요.]
영애는 이름도 없이 온 문자에 누군지 헷갈려서 이마에 손을 짚고 생각에 빠졌다.
‘같이 앉아서.. 같이 앉아서라.. 그랬던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쿡..
얘도 참.. 이렇게만 보내면 어떻게 안다구~’
피식 웃으며 바로 답장을 보내기 시작한다.
[에구~ 이름은 알려주셔야죠^^ 누굴까? 아줌마가 기억을 못해서 미안..]
[답장을 빨리 주셨네요^^ 저 현준이라고.. 안경썼는데 기억하세요?]
[아~~ 기억하지 당근 쿄쿄. 고마워 난 번호 준 줄도 몰랐는데?? 학교니?]
[네 학교예요 큭큭. 아줌마 다음에 밥이나 한번 사주세요. 그냥 더 친해지고 싶어서요..]
그 문자를 보자 영애는 조금 머리가 복잡해졌다.
‘밥을 먹자구? 어린 애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어엿한 남잔데.. 좀...’
여러가지로 머리를 궁리면서 고민이 길어진다.
뭔가에 생각이 꽂히자, 잊고 있던 옛날 생각을 떠올리면서...
선뜻, 그래 만나보자-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생각이 계속 오락 가락~
‘에이.. 아무리 어린 애라도 남자는 남자야.. 안되지.. 못간다고 해야겠다’
....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마침 tv에서 맛집 탐방 프로그램 화면이 나온다.
음식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 영애, 그만 답장 줄 생각을 잊어 버렸다..
정신이 팔려서 문자가 온 걸 기억 못하고..
헤~ 입 벌리며 열심히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사이.. 또 문자음이 울린다.
티비에 집중하며, 아무 생각없이 폰을 열었다. 은행에서 온 문자였다.
건망증이 좀 있는지.. 영애는 문자를 확인하고 목록을 보다가
그제서야, 한시간 전에 왔던 현준의 문자를 재확인하고 생각이 났다.
‘어머나.. 잊고 있었네!’ 하는 생각에 미안해져서 얼른 답장을 보낸다.
그런데 아까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급하게 보내느라 불쑥-
생각지 못한 말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늦어서 미안! 정신이 없었네~ 헤헤. 음...... 생각해볼게..
현준이는 착한 인상이라 괜찮을 것 같기도^^ 뭐 먹고 싶은데?]
[하하하. 다행이예요. 저 아무거나 잘 먹어요~~]
현준은 주먹을 불끈, 쥐며 폰을 닫았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쾌재를 부른다.
그리고는 잠깐 뭘 생각하더니, 마지막으로 문자를 하나 더 보내고 폰을 넣었다.
어차피 그 다음 문자는 오든지 말든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됐어..!! 흐흐..’
그날 방과후.
어째 찌뿌둥한 봄이라서 그런가.. 나른한 춘곤증 때문에 자꾸만 눈꺼풀이 감긴다.
수업이 끝나는 동시에- 정신이 맑아지며 잽싸게~ 가방을 쥐며 문을 나서는 지우.
순간 누군가 가방끈을 탁! 잡았다.
한심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경이었다.
“왜 그래..? 인상은 무섭게 --..”
“뭐 잊은 거 없어?”
“잊다니 뭘..? 밥 사주기로 한건 지난주고, 어제 한 내기는 내가 이겼잖아.”
“그거 말고.. 너 오늘 청소잖아 흐흐흐.”
“아.. 제길..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죽겠는데...”
“이거나 가서 빨아와.”
수경은 지우 놀리는게 재밌어 죽겠는지 싱긋 웃으며 들고 있던 대걸레를 던졌다.
지우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걸레를 북북 문지르기 시작한다.
‘망할 기집애.. 너 어디 한번만 제대로 걸려봐 --.. 짱개 풀코스다...’
청소를 마치고 나란히 사이좋게 하교하는 두 사람.
지우는 또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며 가방끈을 붙잡는 수경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학원 간다. 놔.”
“무슨 학원을 가~ 이시간에? 너 월 수 금 수학 단과 하나밖에 안듣잖아?”
“.......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얘기한 적 없는 거 같은데.. 이제 내 뒤까지 캐고 다니냐”
“킥킥. 너희 엄마가 전화로 알려주셨지~~”
“엄마가?”
“응! 봐. 전화번호 땄어. 어머니꺼. 히히히...
어머님~~ 지우가 요즘 고민이 많아서 우울한 것 같아요오.. 했더니
걱정하시면서 잘 좀 부탁한다고 그러시던데?”
“아놔.... 너 정말 나한테 왜이러냐...”
“후후. 짜식. 따라와- 오늘은 내가 살게~ 킥”
그 말에 순간 안심하며, 지우는 기쁘게 웃는 얼굴로 수경에게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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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주 토요일..
지우는 점심즈음 자다 인나서 하품을 하며 배를 벅벅 긁는다.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뒤지다가, 뭐가 없자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뭐해~ 집에 있었네! 어, 어디가 엄마?”
“응. 친구.. 만나러 호호. 왜, 배고파?”
“응.. 반찬 뭐 먹을 게 없던데.. 뭐 해주고 가면 안돼?”
“안되는데.. 지금도 조금 늦어서.. 히히 미안해. 돈 줄테니까, 뭐라도 시켜먹어!”
“싫은데? 그러지 말고 뭐라도 해줘~~ 간단한 토스트라도 먹고 싶어.. 그런걸 시켜 먹을 순 없잖아. 응?”
“얘가 왜이래~ 안부리던 억지를 갑자기 부리니? --..
엄마는 오랜만에 약속 잡은 건데 그걸 이해 못하면 어떻게 해.. 지우야”
“X 알았어... 근데 토요일 점심부터 어딜 가는데 그렇게 멋을 부리냐? 큭큭”
“...........”
영애는 사실 오늘 친구가 아니고, 지우의 클래스메이트 [현준]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열흘 전에 만나기로 해놓고, 정신이 없어 또 까먹고 있다가.. 며칠전에 그녀가 먼저
언제 만나는게 좋겠냐고 문자로 묻고 오늘로 정한 것이다.
남편 준상은 토요일이면 일찍부터 골프를 치러 나가니까 별 상관이 없는데
지우와 선우는 토요일 아침에는 별일 없을 때 늘 집에 있기 때문에..
현준의 말에 좀 난처했으나.. 어떻게 잘 둘러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승낙한 거였다.
사실은 방금 전에도 약간 어설프게 거짓말을 해서 속여놓고..
찜찜한 기분에 큰 아들에게 미안해졌다.
‘휴.. 난 거짓말에 정말 서툴다니까.. 에구~~ 남을 밥먹듯이 속이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몰라.. 후우....’
일단 집을 나가고 나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아들 둘이 있는 같은 공간에서는 거짓말을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 질테고..
서둘러 집 밖을 나서야만 한다.. 라는 생각에 엄마는 양말도 대충 신었다.
그런데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려고 하는 타이밍에..
작은 아들 방문이 덜컥, 열리며 선우가 잠에서 깨어 나오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영애는 또다시 동작이 굳어 버렸다.
‘하하... 지금 막 나갈 참이었는데... 끙... 지우는 몰라도 선우는 골치 아픈걸..’
아니나 다를까, 선우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물었다.
“엄마 뭐해? 어디 다녀오는 거야 아니면 나가는 거야..?”
“으응.. 엄마 친구랑 식사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아가.. 호호..”
“나 배고픈데.. 엄마..”
“형아랑 맛있는 거 사먹어.. 아차, 돈 여어. 자~ 형 방에서 나오면 줘.”
“... 응.. 엄마 이쁘다 오늘도! 헤헤. 잘 안입는 청바지 입었네?”
“후훗. 귀여워. 어때, 올만에 입었는데 어때 잘 어울리니?”
“응 당연하지~! 엄마는 모든 옷이 예쁘고 잘 어울려.. 지금도 모델 같아.”
“아이구 우리 아들... 이리와 안아줄게.. 우쭈쭈~”
영애는 순간 눈물이 핑 돌만큼 둘째 아들이 사랑스럽고 이뻐서,
다가온 아들을 꽈악- 세게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선우가 켁..켁.. 거리며 몸부림을 칠 정도였다.
“엄마 갑갑해.. 흐앗... 쫌 놔줘..”
“미안.. 후후.. 쪽! 우리 이쁜 아들 형아 말 잘 듣고 놀고 있어? 엄마 일찍 다녀올게.”
“웅~ 히히.. 가따와 엄마~~ 쪽!”
아직도 응석받이인 초등학교 3학년의 귀여운 둘째 아들은.. 순수한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엄마의 입술에 다시 뽀뽀를 해주고 손을 해맑게 흔들며 빠이빠이 한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쨘- 해져서 영애는
‘에이 그냥 가지 말아 버릴까..?’ 하며 갈등이 밀려왔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철컥- 문을 열고 얼른 복도로 나간다.
문을 쾅, 닫은 후..
왠지 모를 죄책감에.. 차가운 현관 문에 등을 기대고 잠시 하아... 심호흡을 한다.
“형아. 엄마 나가셨어. 뭐 시켜먹으라고 돈 주던데? 형~”
선우는 지우의 방문을 콩콩 두드리며 형을 불렀다.
침대 위에 퍼질러서 뒹굴던 지우는 그제야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응.. 나도 알아. 얼마 주고 갔는데?”
“여기 자. 3만원 줬어.. 형 뭐 먹을 거야?”
“킥킥 귀여운 넘~ 넌 뭐 먹고 싶은데? 오늘은 니가 골라.”
“진..짜??? 와~~!! 음.... 피자 먹자 피자! 헤헤헤”
피자와 콜라를 든든히 먹은 뒤 “살 것 같네..” 배를 두드리며 또 쿠션에 몸을 개기적대는 지우.
흡족한 얼굴로 스트레칭을 하며 온 몸을 쭉 펴고 난리를 치다가~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그러다가 꽥!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식탁에 앉아 있던 선우도 깜짝 놀랐다.
“아니 시발..!! 야구는 겁나게 틀어주면서.. 축구 중계는 왜 안해줘??
서울이랑 수원 경기 봐야되는데.. 미치긋네..”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녀석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분을 토하며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그밖에는 주말이라도 딱히 볼 것도 없고~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곧 시체마냥 축- 바닥 여기저기에 보기 좋게 널브러져 있었다.
폰 벨소리가 울린다. 수경이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일부러 부엌 식탁 위에 내던져 놓고 나 몰라라~ 하고 다시 소파로 눕는다.
계집애가 안받으니까 조금 있다 또 걸었다..
‘아~ 아~ 전화하지마 이 자식아~~!’
애써 몸부림을 치며 목베개로 귀를 틀어막는데 이상하게 벨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의아해서 눈을 떠보니, 동생 녀석이 해맑게 웃으며 전화 받으라고 가지고 왔다.
“뭐해? 흐흐 날씨가 정말 좋아 지우야~♪”
“으응.. 잘 못자서 그런가 어깨가 좀 아프네..”
“헤에~ 젊은 나이에 관절염이라도 찾아오셨어? 운동을 안하고 뭉개니까 그렇지.
심심한데 나와! x데 월드 가자. 나 아빠손 백화점인데 너희 집쪽으로 슬슬 걸어갈게”
“알았어.. 천천히 와라.. 씻는데 오래 걸리니까.”
영악한 계집애다..
귀찮다고 하며 적당한 이유로 빼지도 못하게 아예 집으로 온단다.
집주소를 알려준 것이 애초에 큰 실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지우는 잽싸게 샤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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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자. 어제 개봉한 영환데 브래드 피트랑 조지 클루니 나오는 거야!!
며칠전부터 보고 싶어서 혼났다구 헤헤~ 너두 액션 스릴러 좋아하쥐?”
“응 좋아하지 흐흐..”
“... 좋아하는 표정이 왜 그래, 너 아까부터 조금 느낌이 이상하다? 안색이 어두워.”
마침 지우는 엄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히 크게 의심가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스키니야 입을 수도 있는 거고..
스스로 불필요한 의심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육감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흐음~ 그동안 널 볼때마다 느끼던 건데.. 그 얼굴은 뭔가 걱정되긴 하는데~
내 생각이 지나친건 아닌가.. 하고 고민하는 얼굴로 보여?”
“그런 거 아냐.. 야야, 앞에 줄 빠지잖아. 영화 놓치겠다”
지우는 수경이라는 존재가 퍽이나 성가시고 귀찮은 상대라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 다 장난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렇지,
사실은 여러모로 의지가 되는 아이였다.
짧은 시간 내에 자신에 대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세심한 성격과 배려,
또 어떨 때는 적당한 유머로 기분을 풀어주려 하고.. 참 편하고 좋다.
이성적으로 강하게 끌린다는 생각은 못해봤지만..
편안한 친구로서는 제격이다.
‘녀석이 눈치는 빨라.. 쳇..’
지우는 수경의 한마디에 기분이 밝아져서 실실 웃었다.
수경은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티켓 두장을 보여주며 득템했다는 얼굴로
다리를 쫙 벌리고 서서 씨익- 승리의 V 사인을 보낸다.
그리고는 다가와서 지우의 머리를 갑자기 헤드락을 거는 게 아닌가.
“짜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럴땐 그냥 웃고 즐겨.. 누나가 오늘 한턱 쏠게!”
“야.. 너는 여자가.. 웁.. 숨막혀 이거 안놔..”
보기 보다 힘이 좋은 그녀의 팔과 허리에 머리가 꽉 껴서 얼굴이 빨개진 소년,
화들짝 놀라며 후다닥- 포옹을 풀어버렸다.
“키키킥. 얼굴 완전 빨간데..? 미안해.. 그렇게 숨막혔어??”
“그걸 말이라고.. -_-.. 봐줄테니까 햄버거나 쏴.”
사실, 얼굴이 벌개진 이유는 숨막혀서가 아니었다.
수경의 허리에 꽈악 조여지며 안겼을 때, 예상 밖으로 엄청- 푹신한 촉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잠깐 그 짧은 사이에.. 수경의 나풀거리는 원피스에서
그렇게 은은하고 상큼한 체취와 좋은 샴푸냄새가 날 줄은 몰랐다.
게다가.. 교복만 입고 선머슴처럼 다닐때는 몰랐는데..
방금 전에 한번 팍-! 안기면서
비로소 볼륨있고 풍만한 수경의 가슴을 느낀 것이다.
‘내가 왜이러지.. 이 녀석이 여자로 보이려고 하다니.. 더위라도 먹었나?’
혼란스러운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들며, 소년은 샌들 샀다고 자랑하며
큰 걸음으로 기분 좋게 활보하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경의 오늘 복장은-
화사한 파스텔 톤의 하늘 하늘 거리는 반팔 셔츠에, 적당한 길이의 청치마였는데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색감의 여름 패션.. 그리고 예쁘고 군살 하나 없는 긴 다리.
보고 있는 지우의 눈을 참 즐겁게 해준다.
처음 같은 반이 되고 아웅다웅하며 친하게 지낼 때부터
이목구비야 또렷하고 예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몸매를 볼때는 여자라고 느낀 적이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답답하게 긴 교복치마에다.. 약간 펑퍼짐한 상의만
걸치고 다니는 걸 봐와서.. 성숙한 몸매를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보는 사복차림에서.. 묘하게 섹시한 매력에
심지어 눈에 뭐가 씌었나.. 청순하고 온화한 여성미까지.. 물씬 느껴지다니!?
지우는 갑작스럽게 다시 보이는 수경에 대해 적잖게 당황하며
가슴이 쿵쿵- 설레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시적인 감정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레임이 혼란스러웠다..
한편, 탁 트인 전망의 물 좋고 공기 맑은 올림픽 공원.
영애는 현준과 만나서 바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처음에는 밥 먹고 차라도 마신 뒤 헤어지려 했다.
그런데 공원에 가자는 현준의 제안에~ 편의점 커피를 하나씩 들고
평화의 문을 지나.. 공원 내를 함께 산책하고 있다.
아이들과 남편이 혹시라도.. 황금같은 주말 오후에 어딜 갔냐고
뭐라할까봐 내심 걱정이 되지만, 상쾌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시원하고 은은한 풀내음이 코 끝을 타고 전해오는 순간.. 그런 생각은 잊었다.
“참 좋죠.. 이제 정말 여름인가봐요. 아직 그렇게 후텁지근하지는 않지만 헤헷.
바람이 시원하게 몸을 간지럽혀주는 그런 느낌이 좋거든요 저는.”
“훗. 감성적인 말투네.. 현준이 너는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표현하는 느낌이 나랑 비슷한 거 같아”
“그런가요 하하. 울적할 때는 항상 이렇게 호숫가 같은데서 밤 산책을 하거든요. 오늘은 이렇게 이쁜 누나랑
만나니까 낮에 나왔지만.. 보통은 저녁에 한가하게 걸어다니는 코스예요 헤헷..”
이녀석은 은근슬쩍, 허락도 안받았는데 조금전부터 영애를 [아줌마]가 아니고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불렸을 때, 영애는 약간 당황했었는데..
부담스럽지만 사실.. 기분 좋은 호칭이어서, 본인도 모르게 "호호" 하며
살짝 웃었던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의 반응을 현준은 놓치지 않았다.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음을 놓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쿨한 척 보이고 싶어서
담백한 목소리 톤으로 누나- 하며 힘주어 불러본다.
같은 시간대에 영애, 현준과 지우, 수경은 잠실 일대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거리상으로 가까워서 혹시 영애와 지우가 서로 마주친다면.. 그거대로 재밌는 상황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영애는 아들 지우를 그리워하며 혹은 걱정하면서
마냥 마음 편하지만은 않은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었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는.. 왠지 나오지 않으면 상처받을 거야, 라는 의무감에
나오면서 살짝 무거운 기분이었는데, 막상 소년을 만나고 나니..
그의 상냥한 태도와 예의를 잃지 않는 공손한 자세를 보면서 차츰 경계를 풀고 호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나 고민거리,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애는 37년을 살면서 남편 이외의 남자와는 섹스를 해본 적도 없었고
연애는 대학시절부터 많이 해봤지만.. 남자에게 키스도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귀티나는 세련미가
어지간한 남자들은 그녀를 보고 지레 움츠러 들고, 기가 죽어서 터치를 잘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영애는 이제와 보니 그런 지난 날이 좀 아쉽다..
"후후.. 옛날 생각나네.. 그렇게 나를 조심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애들도 참.."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도.. 결혼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어린 남자와
데이트를 하며 자신의 보수적인 옛날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신체적인 접촉같은 것은 가볍게 허용할 수도 있는데.. 뭐 이런 생각들.
그러다보니 엉뚱하게,
젊고 튼튼한 체격의 아들 뻘 남자에게 한번 쯤은 안겨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거였다.
그 순간 [어머 내가 무슨.. 미쳤구나 영애야] 하면서
스스로의 상상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지만
그녀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한결같이..
이런 남자였으면 하고 바랬던 성격은
"정서적인 유대감과 풍부한 감성"이었던 걸 떠올려보니..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가지며, 잊고 지내던 서정적인 기분을 느끼고..
또 그런 들뜬 마음은 자연스럽게.. [안겨도 괜찮아..]라는 식으로
조금씩 생각도 못했던 오묘한 감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제법 시간이 흘렀다.
영애는 시계를 보고 놀라서 안절부절한다.
‘벌써.... 다섯시?? 네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네..! 여보야가 찾을텐데 허억...’
영애는 이제 슬슬 가야할 시간이라고 말을 꺼내려 했는데
여전히 사연 있어보이는 슬픈 얼굴의 현준을 보니..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예요 누나? 아까부터 불안한 표정인데요.”
“호호.. 불안하지는 않아. 그렇게 보였나보구나..
저기, 나도 너랑 더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기왕이면 따듯한 차라도 마시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늦어서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현준아.”
“아.. 아쉽네요..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호호 용서해줘. 우리 남편이 지금쯤 집에 들어와서 날 찾을 시간이거든.. 쿡쿡.. 이해하지?”
“그런 건 당연히 이해하죠. 다음에 다시 얘기나눠요 누나.”
“고마워.. 현준이 여기서 집이 가깝니? 나는 차를 가져와서~ 멀리서 왔으면 태워줄테니까 같이 가자.”
“에이 아니예요. 바로 걸어서 3분정도 거리거든요. 하하. 가요. 차 있는데까지만 데려다 드릴게요.”
현준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어차피 한 두번 정도는 가볍게 교제하며 다양한 자신의 속내를 오픈하고,
그녀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주면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을 연달아 참여수업으로 하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영애는 3교시가 끝나자마자, 현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들에게 다가갔다.
이놈은 아직도 천하태평으로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코웃음이 나오는 엄마.
집에서 하던 버릇대로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려다가
이성을 찾고.. 가만히 옆에 붙어 앉아서 자는 얼굴을 지켜본다.
[얘.. 일어나..-- 정작 엄마가 왔는데 자고 있는 애가 어딨어..!]
영애는 누가 들을까봐 조용 조용히 소리치다가, 잘 안되니까 아예 잡고 흔들었다.
눈을 부비며 그제사 일어난 지우가 멀뚱 멀뚱 엄마를 바라본다.
“.... 미안해 엄마. 이상하게 졸려서 막 자버렸네.. 흐헤”
“나 삐지려고 했어! 아들이라는 게 엄마를 옆에서 따라다니며 지켜줄 생각은 안하고.. 흥”
“에이~ 뭐 그런 걸로 삐지고 그래.. 애들이 재밌게 놀아주지 않았어?”
“칫.. 그런거랑 네가 곁에 있는 거랑은 확연히 다르잖니.. 미워!”
“미안해~ 어제 늦게까지 게임하다가 자서 그런 거 같애..
많이 얘기좀 했어? 애들이 다 엄마를 좋아하더라.”
“쿡쿡. 응.. 다행이고 고맙지.. 아, 그보다, 너 이리와서 뭐좀 먹어.”
영애는 낯간지럽다고 자꾸만 손을 빼려는 아들의 손을
초인적인 힘으로.. 질질 끌면서 테이블 가까이로 데려가려 한다.
그걸 본 수경이 총총 달려와서 말했다.
“뭐지.. 아주머니, 귀한 아드님께서 철이 없어서 말을 안들으시는군요! 도와드릴게요”
“응.. 풉~~ 이놈이 힘이 어찌나 센지.. 똥고집이라 뭐 좀 먹이려는데 또 이렇게 말을 안들어.”
“네. 확실히 그런 면이 있더라구요.”
“차수경 뭐 임마? --.. 아 갈게.. 그러니까 놔 이거.. ”
지우는 수경에게 간섭말라고 눈으로 화를 버럭 내며, 마지못해 의자에 앉는다.
수경은 오히려 약올리는 얼굴을 하고, 잽싸게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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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3층의 남자 화장실.
주원과 현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리 실습실은 1층에 있지만, 일부러 눈을 피해 이 곳으로 옮겼다.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현준에게 눈을 부라리는 주원의 모습.
욕설 섞인 설교와 협박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현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할 말은 다했냐? 이거 참.. 욕이 없으면 대화가 진행이 안되는 무식한 놈이구만..”
“뭐?!.....”
듣는둥 마는둥 귀찮은 포즈로 내내 듣다가 비아냥거리는 말을 던지자
주원은 도저히 못참고 폭발하고 말았다.
나름 참는다고 참았는데 역시 이녀석은 주먹으로 다스리는게 제격이다.
빠르게 선빵을 날리자, 현준은 꼼짝 못하고 오른쪽 뺨을 얻어 맞았다.
한 대 맞자마자 시뻘겋게 부어오르는 얼굴..
그리고 까만 뿔테 안경은 당연히 박살나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 이 새끼가 쳤어?”
얼얼하게 시큰거리는 뺨을 어루만지며, 현준은 분노로 몸을 가볍게 떨었다.
주원은 네 까짓게 어쩔테냐, 깐족대며 이번엔 배를 가격한다.
그런데..? 주먹질에는 일가견이 있고 상당히 빠른 펀치라고 자부하던 주원의 손이..
어느새 현준의 왼손아귀에 잡혀서 막혀 있다.
‘뭐야? 내 주먹을 쳐낸 것도 아니고 잡았어...!?’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어서, 주원은 우악스럽게 생긴 그 손을 어떻게든 빼려고
안간힘을 쓴다. 방금 그 잽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패닉에 빠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소리 없이 눈 앞이 번쩍- 하고 빛났다.
“콰다당-!!”
뭐가 어떻게 된건지도 모른 채, 거구의 주원이 그대로 붕- 떠오른채
몇미터를 날아가- 변기 문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거구는 코피를 주르륵 흘리며 힘없이 아래로 추욱- 미끄러졌다.
머리를 바닥에 쿵- 찧으며 大자로 뻗은 놈에게 다가온 현준은
단화 발바닥으로 그의 목을 짓밟았다.
“무대가리 새끼야.. 잘 들어. 내가 저번에 네 말을 자르며 껴들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빈정 상해있던 모양인데, 넌 지금까지 내 계산에 놀아난거야.
내가 널 처음 봤을때부터 한번 반 죽여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 흐흐..”
“.... 흐그윽... 쿨럭... 왜 그런 생각을..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냐..”
“흐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은 이래서 안돼.
내 성격이, 너같은 주먹 하나만 믿고 설치는 놈들이 젤 싫거든.
또 단순해서 사냥감으로는 아주 제격이고 말야..
너 그리고, 그 아줌마 따먹고 싶어 꼴려 죽겠지? 크크크..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이제 그 여자는 내꺼야.
나라는 존재만 없으면.. 넌 소원성취했겠지 무슨 미친 짓을 해서라도 강제로..
근데 그런 여자들을 다루는 법은 따로 있어.. 모자란 새끼야.. 흐흐”
현준은 짓밟고 있는 발을 들어, 드러누운 무대가리의 배를 또 힘껏 걷어 찼다.
퍽! 소리와 함께 녀석은 큰 고통으로 제대로 소리도 못 지르고
그저 끄억.. 흐극...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을 친다.
부서진 안경을 집어들고 현준은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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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아니다 죄송해요 후훗. 선생님은 집에 계실 때 뭐하세요? 그냥 주부예요?”
양은지 라는 이름의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이가 영애에게 바짝 다가와 물었다.
영애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부추전을 솜씨 좋게 튀기면서
은지와 재밌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지우는 양껏 먹었는데도, 붙잡혀서 옆에 나란히 앉아 꾸역 꾸역 강제로 먹고 있다.
“응 뭐하겠어. 백조야.. 킥킥. 놀지.. 근데 집에서만 시간 보내기가 뭐해서,
요즘엔 틈나는대로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활용하려고 해.”
“히히. 그럼 한가할 때는 뭐하시는데요? 우리 엄마도 노는 걸요.. 킥킥”
“운동 좀 하려고~~ 뱃살이 요새 붙은 것 같아서.. 뭐가 좋을까 생각중이야.
수영이나 요가, 그리고 헬스도.. 호호”
“오~ 멋져요! 저두! 아줌마 저랑 같이 다니실래요??
히히.. 우리 엄마는 하는 건 없으면서 좀.. 게으르시거든요..
저도 뭔가 운동 좀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지럽던 참이예요.”
“정말? 쿡쿡. 어머니께서 아시면 서운하시잖아 얘..
그리고 나처럼 나이든 아줌마랑 무슨 재미로 다니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되어요 ~ 호호. 저는 아무한테나 이런 제안 안하거든요”
‘놀고들 있네 정말...’
지우는 배가 터질 것 같아서, 엄마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빠져나왔다.
끄억~ 트름을 하며 자판기에서 음료를 꺼내 마시는 중이다.
교실에서의 모습을 떠올리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의외로 여자들이 엄마를 잘 따르네.. 남자들이 잘 들러붙을 줄 알았는데..
뭐 그게 오히려 훨씬 다행이지..’
갈증을 채우고 복도의 바깥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고 있다.
복도를 걸어오는 친구 기태가 지우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야.. 수업중이야 지금~ 이거 개념없네..”
“들어가려는 참이야. 바람 쐬잖아 --.. 넌 어디가는데?”
“응.. 나도 깝깝해서.. 기름 냄새가 좀 넘어오려 하더라구.. 으욱~
음식 냄새는 맛있는데 킥, 그래서 숨 좀 돌리려고 나왔어.”
“어쨌든 나온 거잖아...”
“흐흐. 야! 니네 엄마 오늘도 넘 이쁘고 섹시하셔.. 나 반해버렸다.. 하하하..”
“.................”
“나 오늘, 너희집에 놀러가면 안돼?”
“와서 뭐하게? 어린 애는 어린 애답게 놀아.. 큭큭 나 오늘 학원 간다.”
“그러지 말고.. 게임한다는 핑계로 좀 가게 해줘.. 오늘 아니면 다른 날이라도.. 응??
넌 날 알잖아. 얼마나 순수한 놈인지.. 이상한 짓은 안할게..T^T
어머니랑 친해지게 기회를 주라..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으이구.. 꿈 깨 자식아.. 이미 충분히 이상하게 들리거든?”
지우는 킬킬 웃으면서 애타게 소매를 붙잡는 기태를 따돌리고 화장실로 향한다.
그런데 그때, 계단을 올라오던 현준과 마주쳤다.
현준은 지우를 스윽- 살피더니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눈빛으로..
의식적으로 조금 피하는 느낌을 주더니 실습실로 안가고 계단을 또 올라간다.
“자아- 오늘의 참여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어머님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호호. 별 말씀을요.. 부족하고 어설픈 솜씨였지만 잘 따라준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아니예요 아줌.. 선생님! 여태까지 오신 분들 중에 최고였어요! 음식도 정말 맛있었구요..!”
“선생님 연속해서 가르치러 와주시면 안되나요? 호호~~ 더 친해지고 싶어요..”
“녀석들.. 어머님 난처하시잖니 하하.
자아, 수고하신 지우 어머니에게 다같이 힘찬 박수한번 쳐드리자.”
학생들은 처음에 영애가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짝짝짝- 따듯한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 분위기여서일까. 마침 4교시 끝나는 시간과 겹치게 수업이 종료되서
몇몇 여학생들은 영애의 팔을 붙잡고 같이 밥먹으러 가자고 응석을 부렸다.
영애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싫진 않아서..
힐끗 아들의 눈치를 보더니 끄덕- 거리는 지우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과 식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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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화요일.
아침부터 늦었다고 부산을 떨며 허둥지둥 대는 아빠와 아이들.
덩달아 정신없이 챙겨주느라 바쁜 영애는.. 후다닥 잽싸게 세 남자의 뒤치다꺼리를
끝내고, 겨우 한숨 돌리며 소파에 푸욱- 드러 누웠다.
‘참.. 어른이나 애나 정신연령은 똑같으니.. 애를 셋이나 키운다니까 내가...’
쿡쿡- 웃으면서 연속극이나 보려고 tv 리모컨을 찾는데, 핸드폰이 띠리링~♬ 울린다.
이 시간에 찾을 사람이 없는데.. 생각하며 탁자 위의 폰을 가지러 일어섰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인데.. 흐응..?”
[아주머니 잘 지내시죠? 저번에 같이 앉아서 얘기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때 번호를 주셨는데 이제야 생각나서 연락드려봐요. 헤헤. 잘 쉬시구요. 또 연락드릴게요.]
영애는 이름도 없이 온 문자에 누군지 헷갈려서 이마에 손을 짚고 생각에 빠졌다.
‘같이 앉아서.. 같이 앉아서라.. 그랬던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쿡..
얘도 참.. 이렇게만 보내면 어떻게 안다구~’
피식 웃으며 바로 답장을 보내기 시작한다.
[에구~ 이름은 알려주셔야죠^^ 누굴까? 아줌마가 기억을 못해서 미안..]
[답장을 빨리 주셨네요^^ 저 현준이라고.. 안경썼는데 기억하세요?]
[아~~ 기억하지 당근 쿄쿄. 고마워 난 번호 준 줄도 몰랐는데?? 학교니?]
[네 학교예요 큭큭. 아줌마 다음에 밥이나 한번 사주세요. 그냥 더 친해지고 싶어서요..]
그 문자를 보자 영애는 조금 머리가 복잡해졌다.
‘밥을 먹자구? 어린 애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어엿한 남잔데.. 좀...’
여러가지로 머리를 궁리면서 고민이 길어진다.
뭔가에 생각이 꽂히자, 잊고 있던 옛날 생각을 떠올리면서...
선뜻, 그래 만나보자-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생각이 계속 오락 가락~
‘에이.. 아무리 어린 애라도 남자는 남자야.. 안되지.. 못간다고 해야겠다’
....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마침 tv에서 맛집 탐방 프로그램 화면이 나온다.
음식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 영애, 그만 답장 줄 생각을 잊어 버렸다..
정신이 팔려서 문자가 온 걸 기억 못하고..
헤~ 입 벌리며 열심히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사이.. 또 문자음이 울린다.
티비에 집중하며, 아무 생각없이 폰을 열었다. 은행에서 온 문자였다.
건망증이 좀 있는지.. 영애는 문자를 확인하고 목록을 보다가
그제서야, 한시간 전에 왔던 현준의 문자를 재확인하고 생각이 났다.
‘어머나.. 잊고 있었네!’ 하는 생각에 미안해져서 얼른 답장을 보낸다.
그런데 아까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급하게 보내느라 불쑥-
생각지 못한 말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늦어서 미안! 정신이 없었네~ 헤헤. 음...... 생각해볼게..
현준이는 착한 인상이라 괜찮을 것 같기도^^ 뭐 먹고 싶은데?]
[하하하. 다행이예요. 저 아무거나 잘 먹어요~~]
현준은 주먹을 불끈, 쥐며 폰을 닫았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쾌재를 부른다.
그리고는 잠깐 뭘 생각하더니, 마지막으로 문자를 하나 더 보내고 폰을 넣었다.
어차피 그 다음 문자는 오든지 말든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됐어..!! 흐흐..’
그날 방과후.
어째 찌뿌둥한 봄이라서 그런가.. 나른한 춘곤증 때문에 자꾸만 눈꺼풀이 감긴다.
수업이 끝나는 동시에- 정신이 맑아지며 잽싸게~ 가방을 쥐며 문을 나서는 지우.
순간 누군가 가방끈을 탁! 잡았다.
한심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경이었다.
“왜 그래..? 인상은 무섭게 --..”
“뭐 잊은 거 없어?”
“잊다니 뭘..? 밥 사주기로 한건 지난주고, 어제 한 내기는 내가 이겼잖아.”
“그거 말고.. 너 오늘 청소잖아 흐흐흐.”
“아.. 제길..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죽겠는데...”
“이거나 가서 빨아와.”
수경은 지우 놀리는게 재밌어 죽겠는지 싱긋 웃으며 들고 있던 대걸레를 던졌다.
지우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걸레를 북북 문지르기 시작한다.
‘망할 기집애.. 너 어디 한번만 제대로 걸려봐 --.. 짱개 풀코스다...’
청소를 마치고 나란히 사이좋게 하교하는 두 사람.
지우는 또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며 가방끈을 붙잡는 수경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학원 간다. 놔.”
“무슨 학원을 가~ 이시간에? 너 월 수 금 수학 단과 하나밖에 안듣잖아?”
“.......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얘기한 적 없는 거 같은데.. 이제 내 뒤까지 캐고 다니냐”
“킥킥. 너희 엄마가 전화로 알려주셨지~~”
“엄마가?”
“응! 봐. 전화번호 땄어. 어머니꺼. 히히히...
어머님~~ 지우가 요즘 고민이 많아서 우울한 것 같아요오.. 했더니
걱정하시면서 잘 좀 부탁한다고 그러시던데?”
“아놔.... 너 정말 나한테 왜이러냐...”
“후후. 짜식. 따라와- 오늘은 내가 살게~ 킥”
그 말에 순간 안심하며, 지우는 기쁘게 웃는 얼굴로 수경에게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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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주 토요일..
지우는 점심즈음 자다 인나서 하품을 하며 배를 벅벅 긁는다.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뒤지다가, 뭐가 없자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뭐해~ 집에 있었네! 어, 어디가 엄마?”
“응. 친구.. 만나러 호호. 왜, 배고파?”
“응.. 반찬 뭐 먹을 게 없던데.. 뭐 해주고 가면 안돼?”
“안되는데.. 지금도 조금 늦어서.. 히히 미안해. 돈 줄테니까, 뭐라도 시켜먹어!”
“싫은데? 그러지 말고 뭐라도 해줘~~ 간단한 토스트라도 먹고 싶어.. 그런걸 시켜 먹을 순 없잖아. 응?”
“얘가 왜이래~ 안부리던 억지를 갑자기 부리니? --..
엄마는 오랜만에 약속 잡은 건데 그걸 이해 못하면 어떻게 해.. 지우야”
“X 알았어... 근데 토요일 점심부터 어딜 가는데 그렇게 멋을 부리냐? 큭큭”
“...........”
영애는 사실 오늘 친구가 아니고, 지우의 클래스메이트 [현준]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열흘 전에 만나기로 해놓고, 정신이 없어 또 까먹고 있다가.. 며칠전에 그녀가 먼저
언제 만나는게 좋겠냐고 문자로 묻고 오늘로 정한 것이다.
남편 준상은 토요일이면 일찍부터 골프를 치러 나가니까 별 상관이 없는데
지우와 선우는 토요일 아침에는 별일 없을 때 늘 집에 있기 때문에..
현준의 말에 좀 난처했으나.. 어떻게 잘 둘러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승낙한 거였다.
사실은 방금 전에도 약간 어설프게 거짓말을 해서 속여놓고..
찜찜한 기분에 큰 아들에게 미안해졌다.
‘휴.. 난 거짓말에 정말 서툴다니까.. 에구~~ 남을 밥먹듯이 속이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몰라.. 후우....’
일단 집을 나가고 나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아들 둘이 있는 같은 공간에서는 거짓말을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 질테고..
서둘러 집 밖을 나서야만 한다.. 라는 생각에 엄마는 양말도 대충 신었다.
그런데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려고 하는 타이밍에..
작은 아들 방문이 덜컥, 열리며 선우가 잠에서 깨어 나오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영애는 또다시 동작이 굳어 버렸다.
‘하하... 지금 막 나갈 참이었는데... 끙... 지우는 몰라도 선우는 골치 아픈걸..’
아니나 다를까, 선우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물었다.
“엄마 뭐해? 어디 다녀오는 거야 아니면 나가는 거야..?”
“으응.. 엄마 친구랑 식사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아가.. 호호..”
“나 배고픈데.. 엄마..”
“형아랑 맛있는 거 사먹어.. 아차, 돈 여어. 자~ 형 방에서 나오면 줘.”
“... 응.. 엄마 이쁘다 오늘도! 헤헤. 잘 안입는 청바지 입었네?”
“후훗. 귀여워. 어때, 올만에 입었는데 어때 잘 어울리니?”
“응 당연하지~! 엄마는 모든 옷이 예쁘고 잘 어울려.. 지금도 모델 같아.”
“아이구 우리 아들... 이리와 안아줄게.. 우쭈쭈~”
영애는 순간 눈물이 핑 돌만큼 둘째 아들이 사랑스럽고 이뻐서,
다가온 아들을 꽈악- 세게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선우가 켁..켁.. 거리며 몸부림을 칠 정도였다.
“엄마 갑갑해.. 흐앗... 쫌 놔줘..”
“미안.. 후후.. 쪽! 우리 이쁜 아들 형아 말 잘 듣고 놀고 있어? 엄마 일찍 다녀올게.”
“웅~ 히히.. 가따와 엄마~~ 쪽!”
아직도 응석받이인 초등학교 3학년의 귀여운 둘째 아들은.. 순수한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엄마의 입술에 다시 뽀뽀를 해주고 손을 해맑게 흔들며 빠이빠이 한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쨘- 해져서 영애는
‘에이 그냥 가지 말아 버릴까..?’ 하며 갈등이 밀려왔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철컥- 문을 열고 얼른 복도로 나간다.
문을 쾅, 닫은 후..
왠지 모를 죄책감에.. 차가운 현관 문에 등을 기대고 잠시 하아... 심호흡을 한다.
“형아. 엄마 나가셨어. 뭐 시켜먹으라고 돈 주던데? 형~”
선우는 지우의 방문을 콩콩 두드리며 형을 불렀다.
침대 위에 퍼질러서 뒹굴던 지우는 그제야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응.. 나도 알아. 얼마 주고 갔는데?”
“여기 자. 3만원 줬어.. 형 뭐 먹을 거야?”
“킥킥 귀여운 넘~ 넌 뭐 먹고 싶은데? 오늘은 니가 골라.”
“진..짜??? 와~~!! 음.... 피자 먹자 피자! 헤헤헤”
피자와 콜라를 든든히 먹은 뒤 “살 것 같네..” 배를 두드리며 또 쿠션에 몸을 개기적대는 지우.
흡족한 얼굴로 스트레칭을 하며 온 몸을 쭉 펴고 난리를 치다가~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그러다가 꽥!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식탁에 앉아 있던 선우도 깜짝 놀랐다.
“아니 시발..!! 야구는 겁나게 틀어주면서.. 축구 중계는 왜 안해줘??
서울이랑 수원 경기 봐야되는데.. 미치긋네..”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녀석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분을 토하며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그밖에는 주말이라도 딱히 볼 것도 없고~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곧 시체마냥 축- 바닥 여기저기에 보기 좋게 널브러져 있었다.
폰 벨소리가 울린다. 수경이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일부러 부엌 식탁 위에 내던져 놓고 나 몰라라~ 하고 다시 소파로 눕는다.
계집애가 안받으니까 조금 있다 또 걸었다..
‘아~ 아~ 전화하지마 이 자식아~~!’
애써 몸부림을 치며 목베개로 귀를 틀어막는데 이상하게 벨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의아해서 눈을 떠보니, 동생 녀석이 해맑게 웃으며 전화 받으라고 가지고 왔다.
“뭐해? 흐흐 날씨가 정말 좋아 지우야~♪”
“으응.. 잘 못자서 그런가 어깨가 좀 아프네..”
“헤에~ 젊은 나이에 관절염이라도 찾아오셨어? 운동을 안하고 뭉개니까 그렇지.
심심한데 나와! x데 월드 가자. 나 아빠손 백화점인데 너희 집쪽으로 슬슬 걸어갈게”
“알았어.. 천천히 와라.. 씻는데 오래 걸리니까.”
영악한 계집애다..
귀찮다고 하며 적당한 이유로 빼지도 못하게 아예 집으로 온단다.
집주소를 알려준 것이 애초에 큰 실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지우는 잽싸게 샤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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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자. 어제 개봉한 영환데 브래드 피트랑 조지 클루니 나오는 거야!!
며칠전부터 보고 싶어서 혼났다구 헤헤~ 너두 액션 스릴러 좋아하쥐?”
“응 좋아하지 흐흐..”
“... 좋아하는 표정이 왜 그래, 너 아까부터 조금 느낌이 이상하다? 안색이 어두워.”
마침 지우는 엄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히 크게 의심가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스키니야 입을 수도 있는 거고..
스스로 불필요한 의심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육감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흐음~ 그동안 널 볼때마다 느끼던 건데.. 그 얼굴은 뭔가 걱정되긴 하는데~
내 생각이 지나친건 아닌가.. 하고 고민하는 얼굴로 보여?”
“그런 거 아냐.. 야야, 앞에 줄 빠지잖아. 영화 놓치겠다”
지우는 수경이라는 존재가 퍽이나 성가시고 귀찮은 상대라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 다 장난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렇지,
사실은 여러모로 의지가 되는 아이였다.
짧은 시간 내에 자신에 대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세심한 성격과 배려,
또 어떨 때는 적당한 유머로 기분을 풀어주려 하고.. 참 편하고 좋다.
이성적으로 강하게 끌린다는 생각은 못해봤지만..
편안한 친구로서는 제격이다.
‘녀석이 눈치는 빨라.. 쳇..’
지우는 수경의 한마디에 기분이 밝아져서 실실 웃었다.
수경은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티켓 두장을 보여주며 득템했다는 얼굴로
다리를 쫙 벌리고 서서 씨익- 승리의 V 사인을 보낸다.
그리고는 다가와서 지우의 머리를 갑자기 헤드락을 거는 게 아닌가.
“짜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럴땐 그냥 웃고 즐겨.. 누나가 오늘 한턱 쏠게!”
“야.. 너는 여자가.. 웁.. 숨막혀 이거 안놔..”
보기 보다 힘이 좋은 그녀의 팔과 허리에 머리가 꽉 껴서 얼굴이 빨개진 소년,
화들짝 놀라며 후다닥- 포옹을 풀어버렸다.
“키키킥. 얼굴 완전 빨간데..? 미안해.. 그렇게 숨막혔어??”
“그걸 말이라고.. -_-.. 봐줄테니까 햄버거나 쏴.”
사실, 얼굴이 벌개진 이유는 숨막혀서가 아니었다.
수경의 허리에 꽈악 조여지며 안겼을 때, 예상 밖으로 엄청- 푹신한 촉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잠깐 그 짧은 사이에.. 수경의 나풀거리는 원피스에서
그렇게 은은하고 상큼한 체취와 좋은 샴푸냄새가 날 줄은 몰랐다.
게다가.. 교복만 입고 선머슴처럼 다닐때는 몰랐는데..
방금 전에 한번 팍-! 안기면서
비로소 볼륨있고 풍만한 수경의 가슴을 느낀 것이다.
‘내가 왜이러지.. 이 녀석이 여자로 보이려고 하다니.. 더위라도 먹었나?’
혼란스러운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들며, 소년은 샌들 샀다고 자랑하며
큰 걸음으로 기분 좋게 활보하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경의 오늘 복장은-
화사한 파스텔 톤의 하늘 하늘 거리는 반팔 셔츠에, 적당한 길이의 청치마였는데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색감의 여름 패션.. 그리고 예쁘고 군살 하나 없는 긴 다리.
보고 있는 지우의 눈을 참 즐겁게 해준다.
처음 같은 반이 되고 아웅다웅하며 친하게 지낼 때부터
이목구비야 또렷하고 예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몸매를 볼때는 여자라고 느낀 적이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답답하게 긴 교복치마에다.. 약간 펑퍼짐한 상의만
걸치고 다니는 걸 봐와서.. 성숙한 몸매를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보는 사복차림에서.. 묘하게 섹시한 매력에
심지어 눈에 뭐가 씌었나.. 청순하고 온화한 여성미까지.. 물씬 느껴지다니!?
지우는 갑작스럽게 다시 보이는 수경에 대해 적잖게 당황하며
가슴이 쿵쿵- 설레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시적인 감정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레임이 혼란스러웠다..
한편, 탁 트인 전망의 물 좋고 공기 맑은 올림픽 공원.
영애는 현준과 만나서 바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처음에는 밥 먹고 차라도 마신 뒤 헤어지려 했다.
그런데 공원에 가자는 현준의 제안에~ 편의점 커피를 하나씩 들고
평화의 문을 지나.. 공원 내를 함께 산책하고 있다.
아이들과 남편이 혹시라도.. 황금같은 주말 오후에 어딜 갔냐고
뭐라할까봐 내심 걱정이 되지만, 상쾌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시원하고 은은한 풀내음이 코 끝을 타고 전해오는 순간.. 그런 생각은 잊었다.
“참 좋죠.. 이제 정말 여름인가봐요. 아직 그렇게 후텁지근하지는 않지만 헤헷.
바람이 시원하게 몸을 간지럽혀주는 그런 느낌이 좋거든요 저는.”
“훗. 감성적인 말투네.. 현준이 너는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표현하는 느낌이 나랑 비슷한 거 같아”
“그런가요 하하. 울적할 때는 항상 이렇게 호숫가 같은데서 밤 산책을 하거든요. 오늘은 이렇게 이쁜 누나랑
만나니까 낮에 나왔지만.. 보통은 저녁에 한가하게 걸어다니는 코스예요 헤헷..”
이녀석은 은근슬쩍, 허락도 안받았는데 조금전부터 영애를 [아줌마]가 아니고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불렸을 때, 영애는 약간 당황했었는데..
부담스럽지만 사실.. 기분 좋은 호칭이어서, 본인도 모르게 "호호" 하며
살짝 웃었던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의 반응을 현준은 놓치지 않았다.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음을 놓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쿨한 척 보이고 싶어서
담백한 목소리 톤으로 누나- 하며 힘주어 불러본다.
같은 시간대에 영애, 현준과 지우, 수경은 잠실 일대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거리상으로 가까워서 혹시 영애와 지우가 서로 마주친다면.. 그거대로 재밌는 상황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영애는 아들 지우를 그리워하며 혹은 걱정하면서
마냥 마음 편하지만은 않은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었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는.. 왠지 나오지 않으면 상처받을 거야, 라는 의무감에
나오면서 살짝 무거운 기분이었는데, 막상 소년을 만나고 나니..
그의 상냥한 태도와 예의를 잃지 않는 공손한 자세를 보면서 차츰 경계를 풀고 호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나 고민거리,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애는 37년을 살면서 남편 이외의 남자와는 섹스를 해본 적도 없었고
연애는 대학시절부터 많이 해봤지만.. 남자에게 키스도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귀티나는 세련미가
어지간한 남자들은 그녀를 보고 지레 움츠러 들고, 기가 죽어서 터치를 잘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영애는 이제와 보니 그런 지난 날이 좀 아쉽다..
"후후.. 옛날 생각나네.. 그렇게 나를 조심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애들도 참.."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도.. 결혼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어린 남자와
데이트를 하며 자신의 보수적인 옛날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신체적인 접촉같은 것은 가볍게 허용할 수도 있는데.. 뭐 이런 생각들.
그러다보니 엉뚱하게,
젊고 튼튼한 체격의 아들 뻘 남자에게 한번 쯤은 안겨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거였다.
그 순간 [어머 내가 무슨.. 미쳤구나 영애야] 하면서
스스로의 상상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지만
그녀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한결같이..
이런 남자였으면 하고 바랬던 성격은
"정서적인 유대감과 풍부한 감성"이었던 걸 떠올려보니..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가지며, 잊고 지내던 서정적인 기분을 느끼고..
또 그런 들뜬 마음은 자연스럽게.. [안겨도 괜찮아..]라는 식으로
조금씩 생각도 못했던 오묘한 감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제법 시간이 흘렀다.
영애는 시계를 보고 놀라서 안절부절한다.
‘벌써.... 다섯시?? 네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네..! 여보야가 찾을텐데 허억...’
영애는 이제 슬슬 가야할 시간이라고 말을 꺼내려 했는데
여전히 사연 있어보이는 슬픈 얼굴의 현준을 보니..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예요 누나? 아까부터 불안한 표정인데요.”
“호호.. 불안하지는 않아. 그렇게 보였나보구나..
저기, 나도 너랑 더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기왕이면 따듯한 차라도 마시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늦어서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현준아.”
“아.. 아쉽네요..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호호 용서해줘. 우리 남편이 지금쯤 집에 들어와서 날 찾을 시간이거든.. 쿡쿡.. 이해하지?”
“그런 건 당연히 이해하죠. 다음에 다시 얘기나눠요 누나.”
“고마워.. 현준이 여기서 집이 가깝니? 나는 차를 가져와서~ 멀리서 왔으면 태워줄테니까 같이 가자.”
“에이 아니예요. 바로 걸어서 3분정도 거리거든요. 하하. 가요. 차 있는데까지만 데려다 드릴게요.”
현준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어차피 한 두번 정도는 가볍게 교제하며 다양한 자신의 속내를 오픈하고,
그녀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주면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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