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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생의 로망은 역시 친구 엄마 - 8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23 2,436회 0건
8부





현준은 안산에서 돌아온 다음주 월요일이 되자
학교로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다짐을 했었건만..
막상 등교하려니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고, 속이 메스껍고 답답해옴을 느꼈다.
머리로는 용케 가야지..! 착한 마음을 먹었지만, 몸이 생리적으로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아우 넘어올 것 같고 왜이러지.. 큭큭큭 그냥 가지 말라는 계시인가.. 아 죽겄네..”



그래도 집에 누워 쉬고 싶다는 강한 유혹과.. 울렁증을 잘 극복해내고,
결국 기특하게도 가방을 매고 학교를 향해 나선다.
어제 일요일 밤에도 영애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아저씨(영애의 남편 준호)가 옆에라도 있으면 대단히 난처하기 때문에,
섣불리 전화를, 아니.. 문자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극히 정상적인 심리다.



그런데 내심 아쉬운 것이 뭐냐면..
언제든지 목소리가 그립고 이야기가 하고 싶으면 찾아달라고 말한 영애 누나..
참 자상하고 나를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켠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근데 꼭... 내가 연락을 하기 전에는 생전 연락하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처음으로 올림픽 공원 데이트 한 날,
아니 그 전에 날짜 정할 그때만 먼저 연락을 줬고..
생각해보면 그 다음부터는 항상 내가 먼저 누나를 찾았네.. 쓰불...’



굳이 그런 피해망상을 가질 필요는 없는데...
누나가 좀 얄밉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아쉬움이 상당히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기 욕심이라는 건 스스로도 알지만,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된다.



‘누나 진짜.. 그렇네...
내 마음 뻔히 잘 알면서... 한번쯤은 연락 먼저 줄 수도 있지 참 너무해..
현준아 잘 지내고 있니 이런 연락하기가 그렇게 어렵나..’



1교시 수업이 끝나고, 폰을 꺼내 만지작 거리면서..
숨을 가다듬은 뒤 큰 맘 먹고 드디어 영애에게 연락을 해보려는데,
반장 수경이가 부른다. 젠장.... 기가 막힌 타이밍이네..



“나, 화장실 잠깐만 들렀다가 나올게 반장..”
“그래 알았어.. 여기서 기다릴게”



수경은 1주일만에 학교에 나온 현준을 이 시간, 데리고 교무실로 가야 했다.
작은 볼일 보겠지.. 하면서 잠시 현준을 기다리는 그 사이에
수경은 쿡쿡- 재밌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빨리 나와줬네.. 다행이야. 이제 빠지고 그러지 마 현준아...’



현준은 그 사이에 양변기 칸으로 들어가서, 잽싸게 영애에게 문자를 보낸다.
사람 심리가 참 이상한 것이, 그렇게 평소에 시간이 많고 널럴할 때는 안하다가도
이렇게 분초를 다투는 타이밍이 되면.. 전에 미루고 못했던 일을
기왕 해치워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오기를 부려서라도 그때 해야겠다고.. 생각하나보다.
현준의 심리가 지금 그랬다. 지금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정말 불편할 것 같다.



후우- 후우- 문자를 보내는 것 뿐인데 두쿵- 두쿵- 뛰어오는 심장.
격렬하게 쿵쿵 뛰는 가슴에.. 손을 얹고 뭐라 보낼 지를 잠시 생각하고,
빠르게 마음에 정한 글귀를 따다다닥 타이핑하기 시작한다.



[누나~! 잘 지내죠? 연락을 너무 오래 못했어요.. 죄송하구요. 오늘이나, 내일 가능하시면
빨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보시면 연락주세요]



탁- 폰을 닫고 현준은 기다리고 있는 수경을 위해 서둘러 화장실을 나왔다.
수경은 조금 기다리다 지쳐서- 약간 인상을 쓰려고 하기 직전..
현준은 피식, 웃으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같이 교무실로 걸어간다.





“흐~아~아~~ 또다시 힘찬 한주... 으하아.. 하품 나오네... 졸립다... 흐으으...”



영애는 빨래를 널다가 기지개를 키며 나른해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품을 하느라 눈물이 눈에 가득 고였다. 눈물을 스윽- 닦으며 한쪽 팔을 쭉- 키는 영애.
빨래를 다 개서 정리해놓고, 또 뭐 할 일이 있나~? 일거리를 재차 확인해본다.



“없지 뭐~ 이제 좀 쉬자 휴.. 잠깐 누워서 좀 자야겠네.. 졸리당”



그렇게 졸린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서,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서 드러눕는다.
당연히 핸드폰 같은 걸 확인할 생각도 여유도 없다.




또 다시 그 시각. 현준은 일주일 정도만에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 놓고..
본인이 생각해도, 참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기왕 보낸 문자 연락은 빨리 받고 싶다는 심리..
속이 바싹 바싹 타들어간다.. 가슴에서 불이 활활 솟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여자랑 연애하면서 이렇게까지 강렬한 감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한시간, 두시간.. 속이 탄다.
교무실로 가서 태식 선생을 만나 공손하게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반성문을 적고, 교실로 돌아와 2, 3교시 수업을 듣는 내내..



현준의 머릿속은 ....
오랜만에 보낸 문자에 대한 영애의 답변이 왜 빨리 안오나..??
온통 그것 뿐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현준은 생각한다.



‘왜 이렇게 인내심이 없고 초조해졌지? 이 내가.. 한때는 그래도 잘 나갔고..
쿨하고 참을성도 많았다고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초조하고 죽겠냐 이거....’




쿨쿨~ 신나게 자고 있는 영애 (...)
끄응~~ 달콤한 두 시간여의 이른 낮잠을 자고, 드디어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나자, 이런 생각을 한다.



‘쿠훗... 내가 오늘 아침에 몇시에 일어났는데, 다시 잠들어서 두시간이나 잔거지? 하하하’



피시시 웃으면서 몸을 스르륵- 일으켜 침대 밖으로 나온다.
화장대에 비친 자기 얼굴과 옷매무새를 잠시 점검해보았다.



‘그래도 사람의 몰골은 유지하고 있네... 후후’



이제 슬슬 밥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안방 문을 나서려다가,
아, 누가 연락 온 것 없나 잠시 핸드폰~ 생각을 하며 화장대 위에 올려놨던 폰을 찾았다.



“....? 어머?? 현준이한테서 연락이 왔었네?? 호호호~
와아..! 진짜 반가워라.. 왜 이렇게 연락이 늦었담?
그러게 말이야.. 너 왜 이렇게 조용했니..
쿡쿡쿡... 아.. 현준이 보고 시푸당... 호호..
가능하면 빨리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라... 흠.. 나도 그래 현준아.. 쿡쿡.
뭐라고 답을 보내줄까~~?”



영애는 현준의 문자를 보자, 진심으로 너무나 기뻤다.
오래 잊고 있던 연락이 와서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에구.. 나도 잊고 있었네. 먼저 연락 한번 할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사실 하고 있었다.




부르르~~~
드디어 왔다!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자, 현준은 필기를 하다가..
화들짝, 놀라서 책상에 놓아둔 폰이 크게 소리내기 전에 얼른 집었다.
두근... 두근... 이 시간에 연락올 사람은 영애누나 밖에 없다.
꿀꺽 .... 기대하는 맘으로 폰을 쁘칵- 여는 현준.



[호호 안녕? 굿모닝! 연락줘서 고마워 현준아. 나야말로 진작 연락좀 해볼걸 그랬네..
미안하게 생각해. 누나가 돼서 친동생, 친조카 같은 우리 현준이 못챙겨주고..
참, 일단 오늘은.. 우리 지우도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니까 집에 늦게오고
우리 작은 아들은 말을 잘해볼게. 빠를수록 좋은거지? 그러면 오늘 보도록 하자.
언제가 좋을지 시간 정해줘. 천천히 답 보내~]




와... 이렇게 세상에 기쁘고 날아갈 것 같이 짜릿 짜릿~~
환호성을 격렬하게 지르고 싶을 순간이 있을까??
하지만 이성을 잃으면 안된다. 지금은 수업중이니까...
현준은 꽈아악....... 핸폰을 손안에 세게 쥐면서
‘고마워요 누나........’ 속으로 되뇌이며 찔끔, 눈에서 살짝 눈물까지 흘렸다.




“......... 역시... 진짜 천사다.. 천사야 이 사람은... 흐흐흐
누나도 반가워해주는구나. 다행이다... 아하하하.... 오늘 볼 수도 있다고??
시간을 언제로 할까... 흐하하하...”



일부러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냥 수업중에 또 봐도 될 문자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수업 종이 울리자마자 폰을 들고 바깥으로 전력질주한 현준이다.
그런 현준을 교실 내의 지우가 창밖으로 보고 있었다.



‘저놈 왜 저러지? 뭐가 저렇게 신나?
참나.. 학교나 제대로 나와라 이제..
수경이 속썩이지 말고... 크크’



아마 자기 엄마랑 지금 저렇게 좋아 죽으려 하면서 연락하고 있다는 걸 알면,
지우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으로선 전혀 상상조차 못하고 있지만...



“뭐하니? 누굴 그렇게 보고 있어.. 어, 현준이네?”
“응.. 저놈 뭐 좋은 일이 있는가봐 흐흐. 그냥 심심해서 현준이 구경하고 있었어.”
“그래.. 얘, 그래도 현준이 대단한 애야...”
“뭐가...? 수경이 네가 저놈을 좋게 말하니까 좀 이상하게 느껴지네..?”



“쿡쿡. 왜 어때서~~ 현준이도 사람인데.. 늘 안좋게 색안경을 껴야 하니?
저래뵈도, 오늘 아침에 담임 선생님께 갔을 때는 아주 깍듯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벌을 달게 받겠다고.. 공손하고 차분하게 말 잘하던걸.. 나도 그래서 좀 다시 봤었거든”
“헤에..? 그게 정말이야..? 그런 면이 있었나 저녀석...”
“그래~ 그런 점은 지우 너도 좀 본받으면 좋겠더라~~ 키키키킥.
맨날 어린애 같이 굴지 좀 말고.. 저렇게 의젓하고 어른 같은 모습좀 보여봐 호호호”




현준은 바로 그날, 영애의 제안대로 당연히 빼지 않고,
수업이 끝나는 대로 오랜만의 재회를 하기로 했다.
연락을 한 것은 일주일 정도만이지만, 얼굴을 본 것은 더 오랜만이니까..
아마 지난 번 올림픽 공원 데이트 이후로는, 2주 정도만에 보는 것 같다.



오후 4시 10분. 모든 수업과 종례 시간까지 종료!
현준은 아주 참느라 좀이 쑤셔 죽을 맛이었지만.. 잘 참아냈다.
태식 선생의 “내일 보자~”라는 말이 들림과 동시에,
가벼운 책가방을 탁, 집어 들고..
빛의 속도로 후다닥- 복도를 뛰어 나가기 시작했다.
쉬이잉~~~~~~~ 인간 탄환이 쓸고 간- 바람이 지나간 자리....
지우와 수경을 비롯한 반 아이들은 하나같이 멍.... 해진 얼굴이다.



“저거 왜 저래...?”






“........ 누나!!!......”
“아, 현준이 왔니? 호호호. 어머나.. 왜이렇게 땀으로... 흠뻑 젖었어??”
“.... 하아.. 하아... 그게, 막.. 뛰어.. 와서요.. 하악... 하아...”
“쿡쿡. 뭐가 그렇게 마음이 급했어? 호호.. 나 어디 도망 안가는데 천천히 와두 돼...
학교 파하자마자 곧장 이리로 달려온거니?”



“네.. 휴우.. 누나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요..
헤헤.. 아.. 숨차.. 막 뛰었어요.. 진짜 미친놈같이.. 큭큭...”
“세상에.. 그러면 미리 학교 근처에서 만나자고 말을 하지...
이 먼길을 뛰어올 줄 알았다면 내가 갔지...
아이구 너도 참... 어쨌든 고생했다 얘.. 후후,
내가 괜히 고맙고 기분이 좋네..? 목 마르지? 여기 물 있어, 마셔”



역시 영애는 자상하다..
현준은 그 물 건네주는 모습에 자상한 모성애를 느끼며.. 살짝 감동한다.
물을 벌컥, 벌컥, 빠르게 들이키고- 후~~ 하며 숨을 돌린다.



“잘 마셨어요.. 살 것 같네요 이제야.. 좀 진정되고”
“큭큭. 그렇게 뛰어 오는 사람이 어딨니? 아이고 배야.. 너도 대단해..”



영애는 깔깔 웃으면서, 현준의 팔을 자연스럽게 찰싹- 때렸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스친 자연스러운 스킨쉽.
그런데.. 재밌는 것은,
현준에게 이 순간적인 영애의 터치가 바로...
첫 번째 두 사람 사이의 스킨쉽이다..



찌릿 찌릿 기분이 좋은 현준.
아무 것도 아닌 가벼운 터친데도, 영애의 손가락의 감촉이 피부에 닿자
순간, "빠지짓~~~!" 강렬한 스파크가 튀는 듯, 아찔한 짜릿함에 몸서리친다..
현준은 꿀꺽, 침을 삼키며 그 순간 욕심이 더 생겨서.. 얼른 꾀를 냈다.



“누나, 조심해요.. 차 오잖아요.. 어어.. 이리 와요 위험해~~”



현준은 오지도 않는 차를 핑계대며, 웃고 있는 영애의 가냘프고 선이 예쁜 어깨를..
부르르.. 떨리는 손이지만,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꽈악-,
사랑스러운 그녀의 몸을 한 팔로 은근히 세게 끌어 안고,
자기 쪽으로 몸을 휙-! 돌리도록 했다.



“까, 깜짝야... 에고고- 그렇게 몸을 돌리면 놀래잖니..? 아공...”
“하하하. 귀엽네요. 크큭큭. 놀랐어요? 미안해요..
차 때문에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랬죠.. 하하”
“고마워! 호호. 누나를 지켜줬구나. 근데 너... 현준아”
“네..?”
“팔 되게.. 튼튼하다.. 우와...”
“앗, 죄.. 죄, 송해요...”



현준은 은근 슬쩍 영애를 한 팔로
닿을 듯 말듯, 품 안에 안고 있다가..
짐짓 놀란 척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보여주며
영애를 안았던 팔을 살며시.. 떠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팔을 뺐다.



“아니 죄송하지 않아도 되는데? 호호호.
내가 장난이 너무 심한가.. 미안해 주책이네. 나도 기분이 좋았거든..”
“하하.. 다행이예요..”
“좋아, 결정했어!”
“뭐가요?”
“여기서 자꾸 차들 씽씽 오가는데 서있지 말고, 일단 얼른 차에 타자”



영애는 현준이 차에 타자, 바로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았다.



“어디 갈거예요?”
“어디 갈까? 쿡쿡쿡. 배는 혹시 고프니 지금?”
“아뇨 전혀.. 밥을 하두 배불리 먹어놔서요 헤헤.. 누나는 어떤데요?”
“나도 멀쩡해.. 포식하고 나왔지~ 그럼, 일단은..
장미 아파트 쪽으로 해서~ 잠실역 근처나 한바퀴 돌면서 생각하자 키키”
“편하실 대로 하세요 헤헤~”




거짓말 같았다. 아까 오전에 오랜만에.. 영애한테 문자를 보낼 때만 해도
엄청나게 긴장되고 떨렸었는데, 지금 만나서 이렇게 처음으로 스킨쉽도 하고
차까지 같이 타고 달리고 있다니.. 순식간에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갈 수가..
그리고 재밌고도 신기한 것이, 영애를 만나고 나니..
격렬하게 떨리던 심장이 오히려 그녀 앞에 서자, 진정이 되었다는 점이다.



“현준아, 근데 너 면허 있니?”
“예..? 아직 못 땄는데요.. 왜요?”
“그냥~ 후후. 그럼 면허도 따야되겠네 얼른.. 차도 몰고 싶겠다..”
“아직은 안될걸요.. 만 18세가 넘어야 취득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서”
“아하, 만으로 그렇구나.. 너 지난번에 나한테.. 2년 늦게 학교에 들어왔다고 했지?”
“네 맞아요. 기억해주시네요 흐흐”
“호호 당연히 기억하지. 그럼.. 생일은 언제야?”
“아, 생일을 얘기 안했었네요. 4월 4일이예요.”
“뭐야아 그럼 만 나이 넘겼네..? 바보야...”
“어..? 계산좀..... 어... 그러네요? 만 열여덟 지났네..?”



현준은 어이가 없었다. 영애 말이 맞다.
자기는 지금껏 아직도 만 17세인줄 알고 있던 것이다.
이런 바보같은......
웃음이 피식 피식 터져나왔다.



“운전면허 혹시라도, 급하게 따고 싶거나.. 생각이 있으면 말해.
왜냐면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지난번에 너랑 한 얘기를 떠올려봤거든.
그때 네가 생활비 때문에.. 숙모랑 삼촌한테, 그리고 아버님께도 손 벌리기 싫고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하는 말 듣고, 사실 많이 감동했어..
그래서 뭔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생각한 게 이거야.. 호호호
이래뵈도 내가 우리 지우 낳고 나서 바로 그 해에 면허를 따서,
운전 경력도 꽤 길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실력도 좋거든? 쿠쿠쿠”



“그렇구나... 대단한데요..? 그럼 벌써.. 17년이 된거예요 면허 딴지가??”
“응 그렇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놀라게 되네, 엄청 오래된 거 같아”
“대박입니다 와.... 십칠년이라.. 그럼 저도 가르쳐 주실거예요 진짜?”
“그럼~! 후후후. 현준이 너만 좋다면야 히힛..”
“해주세요! 물론 부탁드리고 싶죠 당연히.. 베스트 드라이버가 옆에 있는데..”
“에이 무슨 베스트 드라이버.. 얘는..”
"조금 전에 본인 입으로 운전 잘한다고 하신건 누구죠? 크큭"
"호호호호. 그걸 내가 내 입으로 어떻게.."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현준은 영애의 말을 들을수록,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을 가지고 자길 생각해준다는 느낌을 제대로 알 수 있으니까..
너무나 기뻤다.




청년은 오늘 2주만에 영애를 만나게 되면서 기대감이 무척 컸던 만큼..
사실 아까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기 전, 설렘으로 견디기 힘들었을 때에도
은근하게 짜놓은 계획이 있었다.
이제 그 계획을.. 지금처럼 딱히 좋은 행선지가 없어서
애매하게 둘이서 차를 타고 기름만 낭비하며 빙빙 돌 바에야..
실행에 옮길 찬스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누나.. 저어.. 조심스럽게... 드리고픈 말이 있는데요...”
“응.. 말해. 그렇게 긴장하면서 말하지 말고. 쿄쿄. 내가 긴장되니까”
“하하하. 알았어요. 편안하게 말할게요. 저 있잖아요..
지우는 오늘 학원 마치고 몇시에 집에 오나요?“
“음~~ 한.. 대개 학교서 학원 도착하면 다섯시쯤이고,
끝나고 친구들이랑 노는 날도 많으니까.. 뒤죽박죽이야. 정확하진 않아..
친구들 안 만나고 바로 오면 늦어야 일곱시 반에서 여덟시 사이~?”



“그렇구나.. 지금 벌써 다섯시니까 이제 학원에 가 있겠군요..”
“그러겠지.. 쿠쿠. 근데 지우는 왜? 있다가 만나고 싶어서?”
“아, 아뇨.. 지우랑은 사실은.. 이런 얘기는 누나한테 안했던 건데요.
친한 사이가 아니예요.. 그리고.. 거의 얘기도 안합니다 사실..”
“어머, 정말이니~?...”



현준은 말을 해놓고,
‘이런 얘기는 나중에 해야 하는건데.. 괜히 분위기 안좋아지고..’
라고 생각하며 영애의 눈치를 힐끗~ 보는데,
의외로 영애는 별 반응 없이.. 앞을 똑바로 보면서 운전만 하고 있다.
혹시.. 지금 현준이 한 말을 듣고 기분이 별로 안좋았을까? 그럴 리가..



사실 영애는 현준과 지우가 친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히 놀랍지가 않았던 것이다.
뭐 그게 크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사실은 하지 않았고..
어차피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현준은 영애의 태연한 반응에 좀 놀랐지만..
그 모습에서 오히려 강한 자신감이 생긴다.
꿀꺽...... 침을 삼키며, 조금 더 강도를 높인 질문을 던졌다.




“그럼요.. 실례가 안되면.. 누, 누나네... 집에.. 오늘 가면.. 안될까요..?”



말했다..!!
현준은 말을 해놓고나서, 두근- 두근- 드디어..
저질러 버렸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 것 같다..



덮어놓고 일단 "제발~!"하며 던지긴 했는데,
지가 생각해도 이렇게 막 던져도 되나?? 싶어서..
초조해 미칠 것 같았다....
과연 반응은....??




영애는 그 말을 듣자, 잠시 정차된 상태에서 스윽- 현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오묘한~ 얼굴로 현준의 얼굴을 물끄러미..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쳐다본다..
현준의 심장은 영애의 YES냐, NO냐..??? 결정으로 숨막히게 떨리는데....
영애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하지 않더니..
파란 불이 켜지자, ‘앗-’ 하고 다시 얼른 액셀부터 밟았다.




“......가고.. 싶어..? 지금 우리집에...?”
“...네.... 가고 싶어요..”
“후후.. 왜애..? 우리 집에 와서 뭐하려고..?”
“그, 그냥요.. 딱히.. 왜냐고 물으시면 할 말이.. 그냥 궁금하니까요...”
“호호호호... 그래?...”



영애는 가볍게 웃으며.. 다시 입을 닫았다.
또다시 길게 이어지는 침묵..
현준은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용기를 냈다.
과연 영애의 이어지는 답은 무얼까..
영애는 차를 전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면서,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 가자..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정말요..? 앗싸...!! 신난다...”
“킥킥킥. 뭐가 그렇게 신나실까..? 개구쟁이 아이같아.. 귀여워 너~”



왜 신나지 않겠는가.. 꿈만 같던 영애의 성에 드디어 입성하게 되는 순간인데..




영애는 결정을 내리자,
빠르게 차를 달려- 석촌 호수의 동호를 지나..
그녀가 살고 있는 고급스러운 빌라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섰다.



여러가지 멋진 건물들과 상업지구를 사-사-삭 스쳐지나가면서
계속하여 주변 시설들에 눈을 떼지 못하고~
긴장된 마음은 잠시 잊은 채, 꼴깍.. 그저 신기해하는..
작은 아이같은 현준의 모습..



"이런 곳도 있나? 인공호수야 뭐야? 무지하게 크네..
멋있다..... 가운데 저건 또 뭐지??"



석촌 호수를 처음 보는 현준..
새삼스럽게, 강동구 쪽으로 이사오고 나서
얼마나 귀찮았으면~ 조금만 버스를 타고 나와도 볼 수 있는 동네인데,
너무 집에만 쳐박히고 돌아다니질 않았구나.. 라고 느낀다.



혼자만의 사색에 빠진 것도 잠시..
어느 순간, 호화로운 빌리지의 입구를 통과하는 차...
지하를 통하여 주차장을 내려가는 광경을 보며,
이 단지내에 차가 들어오기 직전까지..
마구 심장이 떨리고 거칠게 흥분되던 현준은..
또다시 가슴이 진정되는.. 거짓말 같은 기적을 재차 체험하며,
이제는 이런 고급스런 감각의 아파트 주차장이 적응이 안되서 놀라고 있다.



‘굉장한데.... 이 정도면 시설 좋은 백화점 주차장이랑 다를게 없잖아..
내가 알고 있던 아파트 주차장들은 이러지 않았는데... 좋다...’



부럽기도 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현준..
차는 스르르- 지하 2층 주차장 한켠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스무스하게 한번에 주차를 완료한 영애. 드디어 차가 멈춘 것이다.



영애는 안전벨트를 툭, 풀고는 “휴우....” 한숨을 작게 내쉰다.
현준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고요한 침묵.. 영애는 이렇게 집 아래에 도착한 지금도
여러가지 번민과 후회의 감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름다운 그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들어 현준을 바라본다.



“가자.. 호호. 내려 현준아”
“네.. 히히. 여기 주차장 시설 참 좋네요 누나..”
“그래..? 좋긴 좋지.. 아, 이쪽으로 와. 여기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아~ 네...”



뭔가 이상하게 숨을 쉴 수가 없어지고,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는 분위기.
엘리베이터 안에 탄 현준은 영애의 눈치를 살펴 본다.
어째 아까전 차안에서도 그랬고,
조금 전에도 내리라고 한 이후에는 다시 침묵만 지킨다.



하지만 청년은 일단 그건 그거고,
엘리베이터 안의 아주 럭셔리하게 금색으로 칠해진 디자인을 보고,
또다시 눈이 휘둥그래해진다..
계속해서 뭐든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그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띵~~! 드르륵-



영애는 “가자” 하는 말을 하고 승강기를 나서는데,
현준이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걸 보고
"후....."



가볍게 웃는 것인지, 답답하다는 건지.. 알 수 없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 어리버리하게 가만히 있는 그의 왼 손을 꽈악, 손에 잡는다.
그리고는 현준이 놀라던 말던, 확- 당기며 복도를 따라오게 하였다.



1403호. 영애와 지우의 집 앞이다.
영애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현준을 쳐다보지 않은 채..
도어락을 찰칵- 열고 삐 삐 삐 삐 삐 삐~~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연다.
그 도어락으로 버튼 누르는 소리.. 하나 하나가 현준에게는 또 설레임...



타캉- 문이 닫히고, 영애가 틱, 불을 켰다.
현준은 당연히 긴장이 돼서, 들어올 엄두를 못내고 우두커니- 현관에 서있다.
영애는 좀 전까지는 한참을 무서울 만치 침묵을 지키더니..
집에 들어와서 온전한 ‘주인장 모드’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거기서 뭐하니, 현준아?
호호호. 어서 들어와. 바보같이 서 있지 말고 키킥”
“시.... 실례하겠..습니다... 헤헤...”



현준은 마른 침을 삼키며, 신발을 벗었다.
은근히 예쁘고 착하게만 생각했던 누나가..
단호하고, 차가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다.
조금 전 자기를 반강제로 끌여 드는 느낌은
차리리 좀 무섭기까지 했었다..



하여튼... 드디어 집안 입성~!
이렇게 쉽게 들어오게 되다니...
가볍게 집안의 산뜻한 공기를 후웁~ 입으로 들이마셔 보았다.



“저, 화장실은 어디예요..?”
“응~ 바로 너 왼쪽에 보이는 거기야. 후후”
“네엡... 긴장이 많이 되서요..헤헤”



변기 커버를 젖히고, 쪼로로- 소변을 보면서 현준은 감격에 젖어 들었다.



‘아.... 씨발.. 이렇게 영애 누나 집에 쉽게 올 수 있다니....
그렇게 멀고도 험할 것 같았던 고난의 길이... 이렇게나 쉽게...
장하다 현준아.. 여기까지는 잘했어.. 넌 역시 멋진 놈이야..
정신차리자, 더 용기를 내면 잘 할 수 있어,
최현준 파이팅!! 쫄지 말고 가는거야..’



현준은 쏴아아- 쏟아지는 세면대의 물로 푸아악- 푸풉-! 힘차게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가지런히 걸려 있는 수건으로 슥슥 얼굴과 손을 말끔히 닦는다.
후우~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 다음, 달칵 문을 열고 나왔다.



영애는 티비를 켜고 거실의 가죽 소파에 앉아서, 아하하- 웃으며 시청중이다.
현준은 두근, 두근... 떨리는 심경을 억누르며 서서히.. 영애를 향해 걸어간다.



순간적으로 1초, 2초.. 아니 0.몇초 사이에 번개같은 속도로
영애의 넓고 쾌적한 집안 구조를 파팟- 스캔하는 현준의 매의 눈...
마냥 신기한 것 투성이라서, 영애에게 다가가기전 일단 집 안부터
재밌는 시선으로 빠르게 훑어본다.



"누나...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부자구나...
남편은 뭐하는 사람일까...?"



프슥-
현준은 최대한 조용히 인기척을 주지 않을 속셈으로..
티비를 보던 그녀를 방해 안 하려고,
영애의 옆에 엉덩이를 얌전히 깔고 앉았다.
그러나 그걸 못 느낄 사람이 어딨겠는가...
영애는 현준이 다가와 앉자, 스윽- 그를 바라보고 싱긋, 웃는다.



“왔어? 호호.. 일단 뭐라도 좀 마실래? 먹을 것 좀 줄게”
“저 괜찮은데요... 우음.. 아녜요, 그럼, 아무거나 주세요~ 하하”
“쿡쿡. 사양말고 마셔.. 넌 너무 겸손하더라”



영애는 가볍게 일어나더니,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가서
무언가를 뚝딱-, 빠르게 준비해서 곧바로
조그만 예쁜 앤틱 무늬의 쟁반에 작게 커팅한 샌드위치 4개와
따듯한 김이 흘러나오는 허브티 두잔을 들고 왔다.



“먹자. 이거는 페퍼민트고.. 하나는 자스민이야. 향 맡아보고..
맘에 드는 걸로 드시와요 호호홋..”
“와... 이런 향이 있네요.. 좋다... 움... 이걸로 할게요”



여인은 허브티를 달여오기 전에 미리 충분하게 약재들을 끓여놓았던 상태라
페퍼민트와 자스민 꽃은 빼어 놓고 우려낸 차만 들고 와서,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청년은 페퍼민트의 달콤하면서도..
입안을 시원하게- 헹궈주는 듯한.. 산뜻한 청량감이 순식간에
입안 가득 퍼지는 듯한 쾌감을 맛보며..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좋은데요...? 허브티라는 건 참 근사하군요..”
“킥킥. 자주 놀러와 이제.. 나랑 같이 자주 놀기도 하고
여기서 차 마시고..대화도 종종 나누고 그러자.. 현준아, 알았지?”
“그럼요..! 헤헤.. 저는 누나만 좋으시다면, 언제든지 영광입니다..!”
“치잇.. 말은 잘하넹- 후후... 자, 이것도 먹어보구~”



현준은 어느새 차를 마셔서 그런지, 마음이 포근하게 이완되어 가고..
긴장이 아늑하게- 풀려버리는 느낌을 맛볼 수 있었다.
아까 불과 10 여분 전까지 그렇게 무섭도록 긴장하고 떨리던
그 두려움의 실체는 사라져버린 것 같다..
이제는 한결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다.



슬슬 평소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현준은 힘이 솟아나자, 다시 걸쭉한 입담을 재밌게 과시하며
영애의 배꼽을 빼놓기 시작했다.
정말로 현준이 말을 너무 재밌고 찰지게 잘해서,
영애는 깔깔깔~~
폭소를 터뜨리며 눈물까지 찔끔- 흘릴 정도로 웃어주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온 뒤 30분 정도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두 사람.
긴장이 많이 풀린 현준은, 문득 시간이 궁금해 벽걸이를 살핀다.
5시 39분...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았다. 다행이다.



청년은 긴장을 하지 않으려 의식하며, 살짝 떨리는 몸을 가다듬고
소파에 같이 나란히 앉은 여인을 향해..
아주 살짝, 티가 많이 나지 않도록, 엉덩이를 밀어 붙였다.



영애는 현준의 재밌는 이야기에 여전히 배를 잡으며 웃고 있었고
그 사이에 알게 모르게.. 슬슬 엉덩이를 가까이 갖다 대며
조금 더 간격을 좁히고 있는 줄도 모른다.
교묘하게 그녀와의 사이를 좀 더.... 좀 더.... 숨을 죽이며 밀착해간다..



영애는 “아유.. 재밌네 그거..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하면서 찔끔 나온 눈물을 닦고 앞을 보는 순간,
현준이 아까보다 이상하게?? 바로 자기 코앞까지
다가와서 앉은 걸 알아채고, 깜짝-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벙- 찐 얼굴로 잠시 현준과 영애는..
최대한 가깝게 서로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
아무런 말도 꺼낼 엄두를 못내고.. 순간 세상이 정지한 것처럼
꿀꺽... 작은 소리로 침을 삼켰다...
그런데 그 침을 넘기는 작은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퍼진다.
잠시 거짓말 같은 침묵을 유지하는 두 사람.



어색 어색한 분위기가..
아까에 이어 또다시 이어질 것만 같은 예감..
영애는 생각했다.




간신히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엄청난 떨림과..
망설임, 설렘 혹은 일시적인 후회, 두근거림.
순간적으로 시시각각 찾아오는 여러 가지 빠른 감정들을 겨우 극복하고
이 자리에 앉기까지 힘들었는데.. 그리고 티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며 이완된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는데..



어째서 또 금방 이런... 부끄럽고 숨막히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거지?



침묵은 싫었다.
어떻게든, 다시 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면..
역시 연장자인 내가 다시 말을 꺼내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흡..........?”




현준은 눈을 그냥 꽉, 질끈 감고-


영애의 작고 가벼운 머리와, 가냘프고 섬세한 선이 고운 목덜미를..


양 손으로 꽈악-, 붙잡고 확-! 끌어 안았다.


그와 함께 그의 입술은 영애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에..


손의 우악스러운 움직임과는 달리...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흠뻑 젖어있는 물기가 점점 스며들도록...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평안한 기분을 맛보며
쪼오옵... 그 앵두빛 입술의 환상적인 맛과..
짜릿한 달콤함을 가득 만끽하기 시작하였다....



쪼옥... 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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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더운 날씨다. 본격적인 여름이라고 하기엔 이른데..
5월 중순의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상적인 산뜻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어제부터 고기압이 북상했다는 일기 예보를 보고 더워지지 않을까 우려는 했지만
이렇게 금방 후덥지근한 날씨가 될 줄은 몰랐다.



“더워.. 으 짜증나.. 지구 온난화 때문에.. 이제 가까운 미래에는
4계절이고 뭐고, 지구가 여름이랑 겨울밖에 남지 않는다고 어디서 읽은 기억은 나는데..
그렇다고 벌써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거얏~?? 아 찝찝해.. 땀나는 거 싫어..”



석탄일인 5월 13일.
학교에 가지 않는 공휴일을 이용해서 생소한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딘가를 힘들게 찾는 여고생.
기본적으로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단순히 예쁜 이목구비가 아니라
또래의 남자 고교생들이 보기에도 응큼한 생각도 절로 나고, 동경의 대상이 될만한 소녀.
볼륨감이 훌륭한 몸매의 발육 상태가 아주 건전하다 (...)



육감적인 몸매를 아슬 아슬하게 감싸고 있는
정열적인 레드 빛깔의 7부 미니 가디건이 그 자체만으로도 시각적인 자극을 주고 있다.



빨간색은 남녀 모두 잘 어울리지만, 이같은 나이스 바디의 아름다운 여인이 입을때는..
그 유혹하는 것 같은 요염한 색상이.. 뇌쇄적인 몸매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일으킨다.
의도하지 않게 입은 것 뿐인데, 보는 남성들에게는 농염한 자태의 이 아가씨에게
자석이 저절로 끌려오듯.. 주, 죽인다... 하는 사이에 시선을 빼앗겨 버린다.



예쁜 여름옷 가디건의 안쪽에는 얇은 재질의 연분홍빛 끈나시를 입었는데
가슴팍에는 ‘SINCE 1979’ 라는 작은 글귀가 깔끔한 문체로 적혀 있고
아래에는 크고 짙은, 오렌지 색의 화사한 연꽃이 그려져 있다.
하의는 아주 짧은 다크 블루 핫팬츠를 입었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이마에는 송글 송글 맺힌 귀여운 땀방울이 보인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히는 수경..
여름이 되니까 근사한 몸매를 더 이상 감추기 아까운지,
조금씩 자신있는 노출을 시도하는 아이..
누가 이런 애를 보고 여고 1학년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지금은 드러내놓고 야시시하게 입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 빨간색 옷의 강렬한 포스와 탱탱~한 자태를 자랑하는 빵빵한 가슴!
그리고 백옥같이 새하얀 살결을 자랑하는 멋진 다리..
어린 것이, 히프가 수평에서 약간 대각선 윗방향으로 솟은.. 멋진 힙 업이 되어 있다.
만지면 얼마나 뽀송뽀송하고.. 손 안에 쏙 들어와 잡히는 촉감이 부드러울까..
가슴 못지 않게 히프가 아주 이쁜 수경.
그 때문에- 보기 좋게 잘 무르익은 농염한 색기가 물씬~♡ 소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다.



건강미야말로 수경의 자신감이다. 어릴적부터 잘 먹고 잘 커온 소녀는
165cm의 딱 보기 좋은 적당한 키에, 풍만한 여체가 근사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화장을 아예 안하면 자기 나이로 보이는데.. 조금만 꾸미면 성숙한 여인의 분위기를
자연스레 내는 바람에, 지우한테 나이들어 보인다고 놀림을 받고 부터는
그게 컴플렉스가 되어 학교에서는 일부러 거의 꾸미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한창 멋내고 다니고 싶은 여고생의 심리가 어디 가겠나..?
외출할때면 동네를 나가더라도 멋부리는 걸 좋아하고,
실제로도 바깥에 나가면.. (본인만 못 느끼지) 남자들은 수경이 스쳐 지날 때마다
‘우와.. 대박 글래머다 죽인다..’하는 생각들을 하며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많았다.



길을 찾다가 잘 모르겠으니까 심통이 나서, 약간 양 볼을 빵빵하게 바람을 넣고
‘우우우- 짜증이 슬슬..’ 하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흰 종이를 들여다본다.
조금 전부터 지나가다가 그 매력적인 모습에 정신을 잃고.. 뭐에 홀린 듯이
입가에 군침까지 주르륵.. 흘리면서 바라보던 고등학생이 있는 줄은 모르고.
수경은 탄식을 내뱉으며 주택가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고생을 사서하겠다고 나서서.. 하아, 집에 가고 싶다..’





바로 어제 일이었다.
태식은 반장인 수경을 5교시가 끝난 후 조용히 불러 냈다.
그는 의아해하는 수경을 데리고 조용한 복도 끝 계단 입구로 데리고 갔다.



“선생님 왜요? 일부러 조용하게 하실 말씀이라도..”
“응, 수경아.. 너도 알다시피 서주원이, 이 녀석이 벌써 보름이 지나도록 학교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잖냐.”
“아하~ 서주원 그 말썽쟁이 때문에 부르셨군요! 쿡...”



“흐흐. 그래서 아주.. 학년 주임 선생님이 어찌된 일이냐고 오늘 아침에 또 갈구는 통에
아주 괴롭다 내가.. 이 놈 자식은 핸드폰은 아예 버려놨는지 연락이 전혀 안되고
집에 전화하니까 부모님은 반쯤 내논 자식인 것처럼 얘기를 하시는 거야..
자세히는 나도 몰라, 근데 귀찮아하고 왜 우리 애를 찾으슈.. 하는 반응인데 자꾸 물을 수도 없고.”



“무슨 그런 부모님이 다 있죠..? 애가 학교를 안나가면 두드려 잡아서라도 내보낼 생각을 하셔야..”
“키킥. 말은 이상적이다만.. 잘 생각을 해봐. 주원이 같은 큰 덩치에 그 무서운 얼굴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라 하셔도 때려 잡고 훈계할 용기가 나시겠니?”
“..... 그 생각은 못했네요.. 쿡쿡쿡. 저는 부모님 입장은 생각이 안나서..
그래도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진짜로.. 선생님, 그래서 저를 부른 진짜 용건은 뭐예요?”



태식은 그러자, 한결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알 수 없는 웃음을 보였다.
수경은 틀림없이, 이 선생이 뭔가 안좋은 느낌의 일을 시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여지없이.. 잘도 들어 맞는다.




“아흐-!!! 그럼 나는, 가고 싶은 맘이 들겠냐고..! 아무리 반장이라도 이런 걸 여자애한테 맡기냐..??
진짜.. 태식 쌤 그렇게 안봤는데..!! 자기는 뒤에서 조용히 구경만 하고 말야 느긋하게..
으으 짜증나는 담탱..! 돌아가면 가만 안둘거야 진짜..-_- 두고f”



아마도 태식이 슬며시 비굴한 웃음을 흘리면서, 수경에게 대신 가봐달라고 부탁을 한 모양이다.
기왕이면 휴일인 석탄일을 이용하여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그래야 한낮에 그 녀석이 방심하고 있을
허를 찔러, 체육관을 습격하기 유리할 거라는 분석이다.
말은 맞았다. 수경도 납득은 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뭐가 어째?? 주중에 휴일날 가는게 좋겠다는 작전은 그렇게 잘 짜는 사람이,
자기는 한가하게 소개팅이 잡혀서 도저히 갈 수 없다니.. 에라이...--
이런 무책임한 어른이 어딨어!! 자기 학생보다 미팅이 중하냐!! 진짜 미워 쌤... 약속 안지키기만 해봐~~’



분노의 주먹을 꽈악- 움켜쥐며 길 한복판에서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소녀..
충분히 열받는 상황인데, 아까부터 언놈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진다.
뭘봐, 이 자샤! 하는 얼굴로 수경이 찌릿- 쳐다보자,
조금 전의 고교생은 ‘히익.. 성질머리는 드럽네’ 하면서 금방 사라졌다.



‘흥, 누굴 놀리나.. 바보같은 여자애가 길 가운데서 움직이지도 않고 치를 떨고 있으니까
뭐 저런 해괴한 뇬이 있나.. 라고 생각했겠지, 저걸 확..!’



수경은 매력 넘치는 미모나 환상적인 몸매로 볼 때, 왠만한 대학생 언니들 민망하게 만들만한
어여쁜 자태가 연예인 같다는 평가를 어쩌다 듣는 아이인데..
이상할만큼 자기 자신의 외모에 대한 큰 관심도 없고, 특출나게 잘난 줄도 모른다.
그저 주변에서 이쁘다고 치켜 세워주니까, 그럴 때는 ‘에이 말도 안돼..’
하는 식으로 반신반의하고, 그래도 고맙다고 표현은 할 뿐.



이런 스스로의 근사한 미모에 대해 자신감이 결여된 이유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수경이 어릴때부터 동경해오던 친언니의 치명적인 아름다움..
둘째는 친하게 지내는 지우의 박한 인물 평가 때문이다.



내심 호감을 갖고 있는 지우 놈인데, 이 녀석은 자길 여자로 거의 봐주지 않는 것 같다.
처음부터 하두 선머슴아처럼 들이대고 짖궂은 장난을 쳤기 때문일까..
이제 와서는 그냥 동성 친구처럼, 어쩔때는
‘아놔.. 나도 여잔데, 이렇게 막 대해도 되냐..? -_- 이 나쁜 새끼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험하게 대할 때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지금 길을 잃었다.
성내 3동이라고 해서 종이에 적힌 주소지만 보고 일단 어떻게 되겠지.. 하고 왔는데
주택들이 빼곡하게 밀집된 거주지역에 있다는 체육관이 찾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륵.. 이마에서 흘러내린 한줄기의 땀이 톡- 어깨에 떨어진다.



‘가만..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보였나봐..
이 개고생 안하고.. 부동산에 가서 물어봤으면 됐잖아.... 아... 차수경...’



그길로 가까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았다.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사아악~~ 수경의 긴 머리카락을 기분 좋게 날려 준다.
서늘한 바람에 금방 더위가 식느라 기분이 좋아진 수경.
숱이 과하게 없으신(...) 중년의 아저씨가 여고생을 보더니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어이쿠~! 어서와요. 허허허. 이렇게 이쁜 아가씨가 찾아주셨네. 이리와요 이리와.”
“아... 저.. 아저씨, 상담같은 게 아니구요, 그냥 잠깐 길 좀 여쭤보려구요..”
“아하.. 그래요? 얼마든지 물어보시구려. 허허허.”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흘리는 아저씨의 친절한 설명에, 시원한 음료수까지 제공 받고
아주 기분이 산뜻하게 업된 아가씨가 씩씩하게 걷기 시작한다.



“킥킥. 진짜 좋은 분이네.. 이런 마실 것도 주시고 흐흐♡ 아저씨 감사합니당~
그나저나 나도 참 돌머리야.. 이 주소는 역 바로 앞이자나...”



지도를 제대로 잘 보고 나왔어야 하는데, 알고 보니 아주 익숙한 길가에 있었다.
평소에는 체육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시장 갈 때 뭐사러 다니던 길인데..
여기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수경은 터벅- 터벅- 계단을 올라갔다.



‘좀.. 오래된 건물이라 낡은 냄새가 나긴 한다.. 그래도 깔끔한 편이네.
3층인데, 이 뒤로 돌아가야 하나..? 문이 잠겼어. 아, 이쪽인가보다.’



조금 복잡한 구조의 건물이라 길을 헤메다가, 드디어 체육관을 찾았다.
xx 복싱 체육관이라고 나무 현판에 크게 새겨진 입구에서..
수경은 바로 들어가진 못하고 좀 떨려서, 긴장한 포즈로 서있었다.



‘막상 오니까 떨린다.. 남자들만 잔뜩 있는 곳이라 어쩔 수 없어.. 휴우..
나, 들어가면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 이상한 짓을 당한다거나.. 흑흑’



불안한 생각을 하며 서성이고 있다가, 에잇 용기를 내자! 주먹을 불끈 쥐며 문을 밀었다.
살짝 떨리는 음색으로, 긴장을 누르며 약간 크게 소리를 지른다.



“저어~~.. 계시나요...?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요오..~~!!”
“아이구 시끄러, 무슨 일이야?.... 오옷~~? 이런 귀여운 여학생이! 아가씨 등록하러 왔어요?”
“네..?? 아뇨. 그게 아니구요. 사람을 찾으러.. 여기 혹시 서 주원이라고.. 있나요?”



평범한 체형의 젊은 남자 하나가 나타나, 수경을 죽 훑어보았다.
얼굴은 순하게 생겼다. 나이는 2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느낌. 직원인 것 같다.



“아아, 주원이? 있지 그럼, 오늘도 열심히 땀흘리고 있지.. 그녀석 아주 열심히거든요.
아가씨 그녀석 친구?? 아니면 친 누나.. 일리는 없고.. 프하하, 왜 찾아요?”
“누나 아니예요 -_- 친구.. 그래요 친구라고 해두죠. 불러 주실 수 있나요..?”
“음... 한창 삘 받아서 신나게 운동하는 중인데, 건드리면 싫어하거든요..
쉬잇, 아가씨도 알겠지만.. 이 놈이 성질머리가 보통 괴팍해야지.. 알죠? 큭..”



“하하... 그렇지요.. 성격이.. 헤헤.. 그럼 어떻게 하죠.. 많이 기다려야 할까요?”
“샌드백 치기가 보통 3 라운드로 연습하는데, 욕심이 많은 놈이라 조금 더 해요..
그러다 걸리면 혼나지만, 오늘은 관장님 안계시니까.. 고삐 풀린거죠 뭐. 하하. 한 5분이면 될거예요.
바쁘지 않으면, 여기 잠깐 들어와서 앉아요. 나랑 얘기나 하자구요 히히~”



“그래도 되나요..? 그래도 카운터 안에 들어가기는 좀.. 저 그냥 여기 서있을게요.
신경써주시는데 죄송하지만.. 호호..”
“그래요 그럼.. 나 이상한 사람 아닌데.. 흑..”
“아뇨, 그런 뜻은 아니예요.. 에궁 히히”



얼마 안있어, 시계를 보더니 남자는 주원을 데리러 갔다.
수경은 주원을 만나려니까 조금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왔다고요? 여자라니.. 이 나를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어..?! 반장! 여기 왠일이야.
아니다, 니가 여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담임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아 뭐라고 말하지.. 체육관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으셨나봐.
이름은 너희 부모님이 말해주신 것 같아.”
“우리 꼰대가?? 여기 이름을 알려줬어? 아.. 시펄 또 빡치게 만드네 노망난 영감탱이....”



수경은 역시나, 욕지거리를 일삼는 주원의 버럭-하는 모습을 보고 겁이 나서..
슬금 슬금 뒤로 물러섰다.



‘아.. 이래서 내가 오기 싫었어..’



그런데 주원은 혼자 흥분해서 중얼 중얼.. 알아듣지도 못할 헛소리를 떠들더니
잠시 후 얼어붙어 있는 수경 쪽을 돌아 보고 성큼- 다가 왔다.
뒤로 물러서느라 멀어진 아이에게 두 걸음 다가온 것뿐인데..
수경은 겁이 덜컥 나서.. 한 대 맞는 줄 알고 두 손을 움찔, 들어 몸을 보호했다.



“뭐야 그건.. 내가 널 건드릴 줄 알고? 사람을 뭘로 보고.. 야, 안 건드니까 겁내지 말어..
우리 꼰대가 담탱이한테 꼰지른 건 지른거고,
그래서 넌 심부름으로 여까지 쫄래 쫄래왔냐?”
“.... 그, 그런 거지.. 선생님이 간곡하게 부탁을 하시니까.. 그리고 난,
반장이니까 학교에 계속 안나오는 널 챙겨줄 의무도 있고...”



“쳇, 의무는 무슨 의무.. 나같은 놈은 안챙겨줘도 돼. 안 그래도 바쁘면서..
학교는 솔직히 가기 싫지만, 일주일만 더 지나면
내가 알아서 제발로 갈 생각이었다구!
근데.. 씨발.. 내가 지금 기분 나쁜건..
나를 못믿으니까 이딴 개수작을 부려서.. 썅...
꼰대고 담탱이고 간에.. 너를 선동해서 꼬셔보라고 보냈다는 그 생각이..
그게 존나 화가나..”



“주원아.... 그게 그렇게 화낼 일..까지는 아닌 것 같아.. 어른들은 다 너를 걱정하셔...”
“스톱! 설교 따위 할 생각이면 거기서 입도 뻥긋하지마. 무슨 말 할지 다 알거든.”
“.............”
“간다. 다음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갈거야. 그렇게 알고, 넌 얼른 돌아가라.”
“정말? 정말로 다음주는 학교에 나올거니?
그냥 믿고 이대로 돌아가도 되겠어 내가??”
“아니면 어쩔건데? 내가 무슨 각서같은 거라도 써주리? 쿡쿡..”



“그런 말은 아니야...어?? 잠깐만, 너 머리 좋다!?
나도 그 생각은 못했는데~~ 하하하.
그래! 각서.. 음 각서라고 하긴 그렇고, A4 용지같은 데다
반드시 꼭~ 몇월 며칠에는 학교에 복귀하겠습니다.. 라는 내용을 적어줘. 우후후.”
“크읏... 갑자기 뭐야, 이 가스나가...?? 뭘 써달라는 거야....”



주원은 괜히 각서 드립을 날렸다가, 귀찮게 되자 인상을 팍 구긴다.
그래도 수경은 좋은 생각이라고 꺄-꺄- 거리며
주원의 아이디어를 반기며 좋아했고
좋게 말할 때 그냥 가라.. 하고 협박하려다,
그 밝은 모습과 웃는 얼굴을 보고
스륵- 마음이 약해진 주원.. 잠시 머뭇거리더니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 직원도 없는데..
드르륵, 서랍을 열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싸인펜 하나를 꺼내서 스스슥- 민첩하게도 적어내려간다.



수경은 처음 주원을 만났을 때는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그의 눈만 뚫어지게..
겨우 용기를 내어 쳐다보고 말을 했고 몸은 바라볼 엄두를 못냈었다.
지금은 등을 돌리고 각서를 적고 있는 중이라, 조금 여유 있게 그의 몸을 둘러 본다.




학기 초에 주원을 본 수경의 기억으로는.. 이놈은 상당한 돼지였다 (...)
뱃살은 디룩 디룩 쪄 가지고.. 키는 별로 안큰데 몸통이 워낙 크고 어깨도 넓은 데다
결정적으로 이 타고난 더러운 인상..
그리고 저음의 걸쭉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위협하듯
툭, 툭 무섭게 던지는 말투 때문에, 초반부터 반의 짱으로서 포스를 냈었다.



녀석이 원체 무섭게 생겼으니까 남학생들의 생각은, 이놈 심상치 않은데..
가만히 앉아있다가 얻어맞기 전에.. 먼저 알아서 셔틀이라도 뛰어야 하나..?
하고 눈치만 조심스럽게 살피기 일쑤였다.
그런데 주원은 사실 크게 뭘 시키거나 빵셔틀을 강요하진 않았다.
다만.. 자신으로 인해서 주변 아이들이 불편해 하고,
약간 꺼림칙하게 느낀다는,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것뿐.



쓸데없이 목에 힘을 주고 그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짓은 분명 욕먹어 마땅하다.
그래서 아마, 현준의 눈밖에 나버려서.. 언제 기회만 되면 저 새끼를 잡아 족쳐야지..
라고 현준이 생각하게 만들고, 계속 눈여겨보게 했을 것이다.
여자애들한테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오직 단 한 사람, 반장인 수경에게는 함부로 못된 기를 뿜어내지 못했다.
짐작컨대 반장이라는 직책에 대해서만큼은,
질서에 순종하고자 하는 주원의 양심이 아니었을까.
그도 아니면 수경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내심 호감을 가져서 쉽게 못 대했다든가..



살이야 학기초에 비해서는 좀 빠졌지만 몸은 봐주기 힘든 수준이었는데
오늘 보니까 겨우 보름 좀 지난 그 사이에 상당히 잔 근육이 생겼고,
전반적으로 탄탄하고 균형잡힌 근육들이 제법 근사하게 바뀌었다.
남자 몸에 대해서는 식스팩 밖에 모르는 수경이 보기에도..
살짝 가슴이 두근- 할 정도로 다부지고
매서운 몸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하긴 녀석의 나시티만 입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보니까..
체육 시간에도 몸을 덮는 춘추복만 입었으니까,
막연하게 저질 몸이라고 편견을 가졌던 건 아닐까.
수경은 짧은 사이에 주원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조금은 다시 보게 되었다.



스스슥- 막 휘갈겨 쓰고 있는데, 아까 전의 직원이 오더니 뭐하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종이를 보고, 자신도 펜을 들어 뭔가 적기 시작했다.



“형 뭐하는 거예요? 나 적고 있는 중인데..”
“가만 있어봐. 보증인도 필요할 것 아니냐.
니가 속이고 이렇게 써놓고 약속 어기면 어쩔래.”
“... 참나.. 너무~ 못믿으시네~ 나를.. 아예 도장도 찍지 그래요..?”
“어! 그것도 괘안네. 크크큭. 학생, 분명히 들었지??
이놈이 알아서 지장을 찍고 싶다네~~ 보자~~ 인주가~~”
“뭐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내가 왜 찍어 그걸..?! 아악 안돼!! 내손...”



수경은 쿡쿡 거리면서 덩치 큰 주원이 꼼짝도 못하고 직원남에게 붙잡혀
강제로 엄지 지장을 찍는 걸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신기했다.
저 무섭게 생긴 아이가..
그에 비해서 날렵하고 가벼워보이는 이 남자한테는 꼼짝 못한다는게..
은근히 고소하고 고거 꼬시다~ 싶어 자꾸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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