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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14 782회 0건
착한사람se 2-6


나이 마흔 하나에 전국 7개 체인을 둔 백화점의 총괄팀 팀장이란 직함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내 이름은 오강진이다.
강진이란 이름보다 오팀장이라 더 많이 불렸기에 어느새 오팀장이라는 직함이 더 익숙해진 나였다.

총괄 팀이라는 말대로 전국에 위치한 백화점들의 관리를 맡아 하는 요직에 근무하는 나였기에 물질적, 금전적 모자람은 옛날 얘기였다. 뒷거래로 여자까지 상납 받는 내 직위에 만족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이 공허함의 원인은 분명 가정에 있었다.

아이가 없는 나와 아내사이는 요즘 권태기를 넘어 무태기의 시기로 접어 든 듯하다.
서로의 사이에 시들해지는 권태기를 넘어 이젠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듯 한 관계로 접어든 부부로 잠도 한 방에서 같이 잔지가 이미 3년이 넘은... 결혼 9년차로 아이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인 게 분명했다.

별 상관없었다.
집보다 회사란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나였고, 아내 또 한 자신의 취미와 생활에 전념하며 보통의 여자들처럼 남편을 귀찮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내 생활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아내는 아내 역할에 충실한 여자로 소이 간판부부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겉으로 보기엔 우리 부부는 너무 금실이 좋아 하늘이 질투해 아이를 못 갖는 원앙부부처럼 보이는 듯 했다. 아내의 내공과 내조는 내가 혀를 두를 정도로 완벽하고 철저한 모습을 항상 보여줬기에 불만이란 단어를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자네 와이프 음식 솜씨야 일품이지!”
“감사합니다. 조이상님.”
“감사는,, 자넨 복 받은 사람이라고. 명문대를 졸업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한자리 꿰찬 것도 모자라서 저런 미모의 아내까지... 쯧쯧.. 하늘은 참~~ 공평한 거 같단 말일세.”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한테 일자리하고 미인 아내를 줬다면 키하고 얼굴을 안 줬다는 거지. 하하하하”

능구렁이 같은 조이사는 오늘도 날 놀려먹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게 분명해 보인다. 하긴 저렇게라도 따분한 시간을 죽여야 퇴근시간이 일찍 다가올 테니 이해는 간다.

조이사의 말이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얼굴이 남들만큼 훈남도 아니었고, 키가 겨우 172cm를 웃도는..
텔레비전에서 어떤 여자가 180이하는 루저라는 폭탄발언을 했을 때 그 루저에 속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아내와의 키가 겨우 1cm 차이나는 나로선 아내의 하이힐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고 키 높이 깔창은 종류별로 소지하고 있는 놈이었다.
양말용, 운동화용, 구두용... 깔창이란 건 백말불짜리 두뇌를 가진 놈이 만든 게 분명할 거란 생각을 하며 오늘도 구두 속에 깔창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 신고 177cm의 다른 층의 고기로 숨 쉬고 있다.


“어디가?”
“동창 모임이라고 벌써 몇 번을 말해요.”
“오늘이던가?”
“....”

퇴근을 하고 양복을 벗는 내 시야에 잘 차려입은 아내의 모습이 먼저 들어온다.
아내는 옷 맵시가 좋다. 아니 좋은 몸매에 자신의 스타일에 잘 맞는 옷을 잘 차려 입었다. 그렇다고 사치를 하거나 보석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철마다 옷을 사 입는 그런 여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대도 아내와 나란히 걸어 다닐 때면 내 자존감을 높여주는 최고의 액세서리로 날 돋보여주는 그런 존재일 정도로 스타일과 미모가 뛰어난 여자였다. 어차피 중매로 서로의 배경을 보고 결혼 한 사이였긴 했지만 신혼 때에는 나름 좋았던 기억도 많았던 것이 우리 부부였다고 난 생각했고 그런 미모의 아내를 밤마다 괴롭히는 특권을 누리며 ‘이게 사랑이구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처제의 결혼식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부부와는 달리 처제는 엘리트 집안답게 일류대에 진학해 같은 과의 변호사 놈과 눈이 맞아 사법고시 대신 졸업함과 동시에 혼인증명서를 제출한 경우였다. 그저 그런 대학에도 운 좋게 대기업에 취직하여 자수성가한 나와는 달리 동서란 놈은 학벌과 집안, 거기에 인물까지 뭐 하나 빠짐이 없는 완벽한 놈이었고 아내가 지금까지 숨겨 왔던 부러움과 창피함이란 감정을 처음으로 훔쳐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결정적인 사건.. 사건이라고 하기도 뭐한 그 일은 처제의 결혼 며칠 전 자매간의 시간을 갖는다며 우리 집에서 자고 간 그날 밤이었다. 날밤을 샌다며 양주에 과일안주까지 준비하곤 날 일찌감치 재운 둘의 대화는 처음엔 웃음이 가득한 옛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흥미 없는 둘의 옛 추억에 안방의 불을 끄고 텔레비전을 보던 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오히려 깔깔거리며 시끄럽게 거실에서 떠들 던 둘의 대화소리가 소곤거리듯 작아졌을 때 깨어나게 된다. 꼭 라디오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가 방송시간이 끝나 ‘치직’ 거리는 잡음을 듣게 돼 깨어났을 때와 같은 느낌으로 침대에 홀로 누워 있는 나란 걸 알게 되어 아내를 부르러 거실로 막 나가려다 둘의 대화 소리를 엿듣게 된 것이다.

“그렇지도 않데. 요즘 변호사부터 시작하면 인맥에도 문제 많다고 해서 걱정이야.”
“그래도 넌 둘이 열렬히 사랑하잖아.”
“사랑이 밥 먹여준데?! 언니야 남부러울 게 없으니까 사랑타령이지..”
“그래 보이니?”
“그럼? 아니야?”
“그이가 멋져 보여?”
“뭐? 킥킥..솔직히 그건 아니지..”
“제부야 키도 크고 훨친하니 잘 생겼으니까.. 그래서 끌린 거 아니야?”
“하긴.. 우리 오빠가 좀 멋지지?”
“벌써부터 자랑 질이니? 호호호..”

둘이 얼마나 마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혀가 꼬일 대로 꼬인 두 여자는 안방에서 자고 있을 나란 존재를 아예 잊은 듯 대화에 열중했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줌이 마렵긴 했지만 잠이 깰 정도는 아니었고 둘의 대화를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침대로 발걸음을 돌리려던 내 귀에 믿기지 않는 아내의 얘기소리가 몸을 멈추게 만든다.

“벌써.. 했니?”
“풋~ 켁켁.. 뭐??”
“미..미안.. 내가 취했나 봐.”
“호호호~. 우리가 애유~ 진즉 했지. 아마 대학교 1학년 때던가? 아! 언니도 기억나지 언니랑 여행 간다고 아빠한테 허락받게 도와준 일.”
“응... 하지만 그땐 과 친구들하고 놀러간다고..”
“과 친구들하고도 같이 가긴 했지. 방만 따로 잡아서 글치.”
“그럼.. 그때?”
“응. 근데 이거 맛있네..”
“그렇..구나...”
“근데 언니는 아직 준비 중이야?”
“..뭘?”
“아이! 이제 슬슬 준비해야 되지 않나? 지금도 늦었을 텐데.”
“그런가...”
“뭐가 이래? 그 둥그스레한 대답은 뭐야? 뭐래?”
“...”
“왜? 형부가 문제야?”
“몰라.”
“그럼?? 언니 이상해...”
“사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엄청 뜸을 드린다.
뜸 들이는 건 밥으로 충분하다며 둘러 얘길 하는 스타일이 아닌 아내였기에 난 문에 더 바짝 기대며 아내의 목소리에 집중을 하게 된다. 애간장타는 내 마음과는 달리 아내는 용기가 필요한지 벌컥 이며 남은 술을 원샷하듯 마셔댔다.

“제부는 잘...하니?”
“...뭘?”
“그..거....”
“그러라니? 뭘 말 하는 거야?”
“있잖아... 그..거...”
“답답하게.. 뭐?”

이런 대화가 처음인 두 사람이 분명했다.
아니.. 우리 부부사이에도 이런 대화는 거의 금기와도 같은 주제로 난 아내가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착각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다.

“밤..일...”
“밤일??..아!!”
“....”

아내가 목이 타는지 다시 술을 따라 마신다.
둘 다 취한 게 분명했는데도 잠시 동안의 침묵이 거실에 이어졌다. 난 심하게 고동치는 가슴에 혹시나 내가 엿듣고 있다는 걸 들킨 건 아닌지 조마조마하며 문 쪽으로 소리 나지 않게 더 숨겼다.

먼저 운을 땐 건 그나마 개방적인 처제였다.
대학교 때 결혼부터 한다는 처제의 고집에 집안사람들이 전부 만류했지만 처제는 놀만큼 놀았고 동서의 아이를 임신 했다는 금방 들킬 거짓말까지 하며 저돌적으로 추진 할 정도로 고집불통이었지만, 세상물정엔 언니인 내 아내보다 더 밝은 여자였고 경험도 풍부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여자였다.

“그냥 그렇지 뭐... 그런데 갑자기 왜?”
“잘..한다는 기준이 뭘까?”
“갑자기 생뚱맞게 뭐니? 언니 혹시 욕구불만이야?”
“욕구?? 남사스럽게 무슨.. 말도 안 돼...”
“꼭 그렇게 보이는데!? 그런 말은 입 밖으로.. 아니지! 그런 생각도 하는 사람인 줄 오늘 첨 알았네..”
“난.. 여자 아니니...”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사랑하면... 막 안고 싶고.. 뽀뽀하고 싶다고.. 하잖아.”
“응.”
“그런게... 오래갈까?”
“아! 진짜 답답하네!”
“쉿!! 얘가....”
“형부가 잘 못해?”
“....몰라.”
“하긴 경험이 있어야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알지.”
“...”
“그러니까! 내가 연예 좀 하고 여러 사람 좀 만나보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대학교 때도 아빠한테 붙잡혀 살기나 하고.. 누가 통금시간 8시를 지키니!?”
“그럼 아빠 말을 무시해?”
“누가 무시하래? 타협을 해서 현실적으로 살아가라는 거지.”
“...”
“언니! 혹시 아무것도 못 느끼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
“..그만하자. 내가 창피하게 무슨 말을..”
“전위는 해?”
“...응?”
“애무는 하냐고.”
“미..미쳤어. 그이 깨!..”
“깨기는.. 그럼 섹스는 잘 해?”
“!!!!”

아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내가 안방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둘의 대화에 집중하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던 난 순간 당황하며 얼른 몸을 뒤로 빼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애써 호흡조차 참게 된다.

‘봤을까?...’
‘내가 몰래 듣고 있는 걸 본 건가.. 왜 얘길 안..하지?’

한참동안의 긴 침묵이 이어졌다.
아내가 일어나는 소리에 난 심장이 멎는 듯 느끼며 지금이라도 방금 깬 척을 하며 거실로 나갈까.. 아니면 침대로 다이빙을 해서 자는 척을...

‘덜컥’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딸그락 거리는 병 부딪히는 소리로 아내가 맥주를 꺼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술이 다 떨어져 보충하기 위한 일어섬이란 걸 알게 되곤 난 안도의 깊은 심호흡을 하게 된다.

“그..냥 그래.”
“그냥 그렇다고 얘기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느끼긴 하지? 혹시 병 있는 건 아니지?”
“병..일까?”
“진짜 못 느끼니?”

둘의 대화는 더 이상 자매의 그것이 아니었다.
여자 대 여자로 아줌마들이나 할 낯 뜨거운 내용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난 더 숨을 죽이며 아내의 의중을 알 수 있다는 생각과 지금까지의 태도에 충격과도 같은 자괴감, 실망감등의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며 계속 집중하게 된다.

“나.. 병에 걸린 거니?”
“...”
“내가 문제구나...”
“속단하지 말고.. 몇 분이나 해? 애무부터 사정.... 끝날 때까지 형부랑 얼마나 걸려?”
“한...10분??”
“10분이면 뭐.... 그럼 크기가 문젠가?.. 커?”
“.......”
“언니 병원에 가봐야 될지도 모른다고. 얼마나 큰데?”
“몰라...”
“이 500원짜리 소시지하고 비교했을 때.. 얼마나 해?”
“그것보다는 굵..어....”
“당연히 굵어야지.. 엄지 손가락만한 것 보다 작으면..풋~~..”
“....넌 부끄럽지도 않니?”
“그러는 언니 넌? 어쩜 그렇게 엄마랑 똑같니.. 그 말버릇도 그렇고.”
“...”
“진짜 언니가 문젠가? 다른 사람하고 비교할 수가 있어야 자세히 알지..”
“사..실.. 5분이 좀 안..돼....”
“응?”
“그..전위란..거 없이 끝나는데..5분...안 걸려.”
“.....”

십 분이상이라고 뛰쳐나가서 처제에게 말을 하고 싶었던 나였다.
분명 십 분은 훌쩍 넘긴 거 같은 기분이었는데...

나중에.. 접대란 걸 받을 위치에 올라갔을 때 업소의 여자와 뒹굴고 나서 내가 남들 이하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엔 그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전혀 내색하지 않는 아내의 모습에 나만큼 아내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줄 알았었다.

크기도... 분명 남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나였고 확실히 사우나를 갔을 때 비교하듯 곁눈질로 봤던 남들의 물건과 별 차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화가 없었다. 업소녀들도 내 물건의 크기엔 별 얘기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전위도 없이? 그럼 형부는 곧바로 삽입부터 한다고?”
“으..응...”

솔직히 누가 아내와의 섹스에 긴 전위와 애무를 하냔 말이다.
그리고 나도 합궁하기 전에 가슴을 주무르며 키스정도로 아내를 달궈놓는다는 걸 말해주고 싶은 순간이었다.

“진짜 불성실하다. 형부 그렇게 안 봤는데...”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잖아..”
“아무리 무뚝뚝해도 그렇지. 안 아파? 흥분도 안 됐는데 막 밀어 넣으면.. 안 아파?”
“아..프지.. 그래서 더 싫은가봐.”
“싫어??”
“......응.”
“형부랑 섹스하는 게 싫다고?”
“....”

기대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다는 말로 만족할 나였다.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아내는 내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이런 얘길 남도 아닌 처제와 하는 아내의 사고방식과 생각 없는 행동에 속으로 저주까지 퍼부으며 쉽사리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혼 할까?”

더 이상 처제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가 정신이 나가서가 아닌 처제도 할 말을 잃은 듯 더 이상의 얘길 꺼내지 못한 처제의 행동으로 둘의 대화는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끝이 났었다.
나보다 아내를 더 잘 알고 있을 처제가 할 말을 잃을 정도의 충격적인 대화에 나 또한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난 아내가 이혼이라는 얘길 했다는 것 자체보다 지금까지 나와의 사이에 남은 게 뭔가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혹여나 정말 그 단어를 내 앞에서 꺼낼까봐 겁을 먹기도 했었다.

그래서 모른 체를 했다.
둘의 대화를 못 듣고 잠든 척을 지금까지 했으며 그렇게 우리 부부는 한 공간 안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결코 좋지 않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었다.

웃긴 건..
내게 찾아온 진급 심사는 오히려 몸을 일에 불사르는 계기가 되어 늦은 귀가와 잦은 외박으로 그런 아내의 심정을 애써 부정하거나 무시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각방 생활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은 최근에 찾아온 거래처와의 접대시간이었다.

현실도피와 같은 업무의 집중은 지금의 팀장자리에 날 앉혀줬고 어느새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입장이 편해져버린 내가 되어버렸을 때..

평소처럼 거래처와의 미팅 후 회식이란 면목으로 고급 주점에 공짜 술을 얻어먹으러 갔을 때 난 만나선 안 될 여자를 알게 되었다.

여성복 영업부의 팀장이라는 여자는 과장급의 직책에도 사장 이상의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내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파고 들 듯 어느새 섹스파트너와도 같은 관계가 되 버렸다.
김팀장은 집요했고 철저했다.
내가 싫어하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 행동했으며 내 스케줄까지도 꿰차고 있는 여자처럼 야근이나 회식이 없는 날이면 우연처럼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와 만나게 된 여자였다.

무엇보다..
김팀장의 섹스테크닉에 당황하며 놀랐었고, 쾌감에 몸서리를 치게 됐었다.

이미 이전의 접대자리에서 마음이 잘 맞는 여자와 2차를 뛰러 나갔을 때 너무 빨리 싼다는 말을 들은 후였기에 자신감에 금이 간 상태였고 날 대놓고 유혹하는 김팀장이라는 쌈박한 여자에게 주눅이 든 상태였는데도 김팀장은 내 성적취향과 능력도 이미 알고 있는 듯 첫 관계부터 천천히 날 가지고 놀았었다.

샤워부터 하자는 말에 뻔 한 여자라 생각했던 날 씻겨주기 시작한 김소이란 여자는 말 그대로 날 씻기는 대에만 집중하며 전혀 섹스럽지 않은 행동으로 오히려 날 간간히 자극하길 반복했으며 침대위에 날 똑바로 눕히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 그대로 발가락까지 핥아대며 삽입조차 하지 않은 행위에 김팀장의 머리에 사정부터 하게 되었다.

쪽팔림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김팀장은 전혀 개의치 않고는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방금 전의 사정으로 축 늘어진 내 자지를 정성스럽게 입으로 핥으며 묻은 정액을 다 빨아 먹고는 거부감이 들지 않게 키스가 아닌 내 목덜미에 혀의 애무를 시작하듯 핥아대며 쇄골로 이동했고 내 젖꼭지를 빨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로.. 자지를 뛰어 넘어 허벅지부터 다시 종아리까지.. 발가락을 정성스럽게 입에 물어대곤 핥는 김팀장의 모습은 작은 가슴에도 뇌쇄적이었고 지극히 퇴폐적이었다.

그런 섬세한 움직임에도 자지를 잡고 부드럽게 주무르는 그녀의 손은 멈추질 않았기에 한 번의 사정에도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다시 발기를 하게 된 나였다.

남자를 흥분시킬 줄 아는 여자였고, 조절까지 할 줄 아는 여자가 분명했다.

두 번째 발기에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듯 천천히 입에 자지를 물고 애무하듯 빨아주는 김팀장의 뜨거운 입속에 금세 사정의 기미가 찾아왔을 때 갑자기 꽉 물어버려 엄청난 고통을 쾌감과 동시에 선사하곤 ‘씩~’ 웃으며 다시 핥아주는...

삽입 후에도 이런 그녀의 리듬은 반복됐다.
내 위에 올라타 허리를 천천히 흔들다가 참을 만 하다는 느낌을 공유라도 하는 지 격렬하게 허리를 이삼 회 흔들어 대다가 다시 엉덩이만을 앞뒤로 움직이며 부드럽게 감싸기를 길게 하며 내 사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듯 한 그녀의 몸놀림은 말 그대로 감탄사를 자아내는 그런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질속의 움직임은 환상 그 자체였다.
내 자지를 씹어 먹는 듯한 조임을 보여주다가도 느슨하고 부드러운 감촉만을 전해줄 때도 있었던 그런 변화무쌍한 움직임이 더 해졌을 땐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여자가 분명했었다.

그건 술 접대로 여자를 받아 본 적은 많았지만 직접 몸 접대를 하는 여자는 처음이었으며, 그래서 창녀와도 같은 남자관계와 행동에 역겹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텐데,, 김팀장이란 여자가 평소 하는 행동과 몸가짐에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쉽게 잊지 못하고 다시 찾게 되는.. 밤마다 두세 번이나 날 사정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마녀와도 같았다.

내가 김팀장을 기다리게 될 때쯤..
백화점 입점이라는 큰 건수에도 밀당을 하 듯 김팀장이 오히려 날 기다리게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초조해하며 그 기다림에 짜증 섞인 통화가 잦아졌을 때 대체수단으로 찾게 된 다른 업소여자들은 더 역효과라는 걸 느끼게 되며 마약과도 같은 김팀장이란 여자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고 그런 내 행동은 가정 안에서까지 이어졌었다.

아무리 아내와 별거와도 같은 각방생활에 익숙해져있었다고는 해도 아내 또 한 여자였고 여자의 직감은 무시 못 할 거란 걸 깨닫게 된다.


“우리 이혼해요.”
“....왜?”
“왜라고요?”
“뭐가 문제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요?”
“그래! 남자가 바깥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고 접대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걸 일일이 신경 써야 하나?”
“뻔뻔하군요.”
“뻔뻔? 그럼 먹고 살기가 쉬운 줄 알아? 얼굴에 철판을 몇 장을 깔아야 이렇게 호위호식하면서 살 수 있는 줄 모르지!?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오바하지 마라.”
“...”
“왜 그렇게 노려보는데?”
“당신.. 왜 이렇게 망가졌어요?”
“내가 망가져? 그리고 왜!???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누군 처음부터 이랬어! 가슴에 손을 얹고 누가 잘 못했을 지 한 번 따져볼까!?”
“.....”
“괜한 트집 잡으면서 히스테리 부리지 말고 하든대로 하지. 어차피 우린 겉만 부부 아닌가?”
“그래요. 겉만.... 그래서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다고요. 저도 알아볼 건 다 알아봤어요. 이혼사유가 당신에게 있으니 이 집하고 합당한 위자료만 준비해줘요.”
“뭐라고!!?”
“당신 그 정도 능력은 되잖아요.”
“,,,,,”

김팀장으로 인해 열이 받은 상태인데 아내까지 내 화를 돋우자 손이 어깨위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난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내의 뺨까지 후려친다면 말 그대로 바람둥이에 폭력남편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놓일게 뻔했기에 난 이를 악물고 손을 내리며 아내에게 독설을 내뱉는다.

“여자라고 다 똑같은 여잔 줄 알아!? 여자 같아야 집에 들어올 맛이 나지.. 이건 뭐 인형이랑 사는 것도 아니고..”
“누구 때문에 인형이 됐는데요?”
“내 탓이라고? 그래 내가 조루에 빙신이라고 치자. 그런데 왜 다른 년은 좋아 죽냐고!? 응!!!? ”
“....”

아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며 난 멍청하게도 이겼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내에게 받은 예전의 충격을 어느 정도 복수해줬다고 생각하며 추잡하게 뿌듯해 했었다.
그러나 아내의 손과는 달리 변화 없는 목소리로 냉랭하게 내게 말을 한다.

“잘.. 됐네요. 저랑 이혼하고 그 좋아 죽는 년 인가하고 재결합하면 되겠네요. 변호사 편으로 서류 보낼 테니 도장 찍어서 돌려보내세요.”

쾅하고 안방 문이 닫히는 소리에도 난 김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아내의 눈치를 본 적 없는 나였지만 이젠 대놓고 외박과 외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서재로 들어가 김소이한테 전화를 건다.

다행히 전화를 받는 김팀장이었다.

“나야.”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나 이혼 할까?”
[.....]
“이젠 간판부부생활도 지겹다. 아니 내 아내란 여자가 징그럽고 지겨워...”
[이혼하면요?]
“...우리 결혼 하자.”
[제가 독신주의라고 몇 번이나 얘기 했던 거 같은데요.“
“그런 게 어디 있어. 마음 맞고 속궁합도 잘 맞으면 같이 사는 거지.”
[전 일 포기 못 해요.]
“누가 포기하래? 지금하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그냥 매일 잠만 같이 자는 거지 달라질게 뭐가 있나.”
[그게 싫어요. 부인하고 왜 멀어진 건지, 지겨워졌는지는 생각 안 해봤죠? 여자는요 신비감이 사라지는 순간 매력도 사라지는 거예요. 지금이야 매일 같이 있고 싶고 좋기만 하겠지만 한 달도 못 갈걸요.]
“이 사람아.. 날 몰라?”
[절 몰라요. 제가 어떻게 변할지... 저도 오팀장님하고 항상 같이 있고 평생 살 맞대고 살고 싶어요. 하지만 전 뻔히 보이는 결말로 걸어 갈만큼 어리석지도, 한가하지도 않고요. 결정적으로... 돌싱이 된 오팀장님은 매력이 없어요. 그리고 좀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봐요. 이혼남이란 꼬리표가.. 그것도 오팀장님이 사회적 지휘가 혼자만의 결과물이라고 단순히 얘기할 수 있나요? 아내분의 배경이 도움이 전혀 안 됐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요?]

생각지도 않은 김팀장의 말에 벙어리처럼 난 입만 벌린 채 멍해지게 된다.
당장이라도 좋다고 할 줄 알았던 김팀장의 반응을 기대하던 나였기에 실망감이라기 보단 당황함을 느끼게 된 나였다.
그리고 내가 매력이 없어진다는 말에 더 충격을 받게 되어 현실적인 부분이란 얘긴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후~~...그런 부분들을 다 떠나서..저랑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오팀장님의 문제가 아니에요. 굳이 말하자면 제 문제죠. 병이라고 해야 하나... 일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혹시 들어보셨어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변태 같은 행위지만 제겐 그런 사랑에만 쾌감을 느낄 수 있어요.]
“일렉트라... 그럼 정말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그럼 나랑 했던...”
[전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더 애증관계를 갈망하는 걸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게 내 이혼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결혼해서 아빠같이 보살펴주면 되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남자인 아빠를 사랑한다고 해야 하나.. 엄마란 경쟁처럼 한 남자를 사랑하는..]
“무슨 상간 녀도 아니고.. 그런...”
[그래서 얘기 했잖아요. 변태 같은 병이 있다고.. 죽은 아빠를 사랑할 수 없으니.. 유부남인 당신을 그렇게 정성스럽게 애무하고 열정적인 섹스를 할 수 있었다는 거죠..]

억지라고 느껴졌고 말도 안 되는 괴변이라 생각했지만 김팀장의 차분하고도 설득력 있는 목소리에 이해할 수 없는 크기만큼이나 웃기게도 사실처럼 들려왔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아내한테 벌써 이혼하자는 말도 들었고, 위자료 얘기까지 나왔다고..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우선 기다려요. 최대한 미루세요.]
“이혼이 장난이야? 미루긴 어떻게 미뤄...”
[절 믿죠? 해결방법을 찾을 테니까 기다려요.]
“.....”

김팀장의 말대로 아내의 독촉전화를 무시하며 마냥 기다리게 된다.
마음 같아선 당장 아내와 이혼하고 김팀장과 새 출발을 하고 싶었지만 김팀장의 단호한 어투는 이혼하면 끝이라는 뜻으로 들렸기에 우선은 김팀장이 해결방법이란 걸 찾을 때까지 친정에 간 아내를 찾지도 않았다.

그러나 뭔가 일이 꼬인 건지 김팀장의 갑작스러운 연락두절은 내 가슴을 더 초조하고 절박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란 여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김팀장의 말대로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이 모든 해결책이 아님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건 지극히 현실적인 내 회사 내의 입지에서도 크게 작용하게 될 거란 걸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팀장으로 끝낼 내 인생이 아닌 다음에야 이혼이라는 전적이 김팀장의 말대로 내 삶에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플러스의 점수가 될 리 없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김팀장이 만약 그런 상황이란 틀 속에서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면 난 굳이 그런 틀을 깰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문제는 이제 모든 걸 알아버린 아내와의 관계가 문제였다.
거의 한 달 동안 연락 두절이 된 김팀장으로 인해 난 초조함을 넘어 배신감을 막 느끼기 시작한다. 김팀장이란 여자가 날 이렇게 쉽게 배신할 여자도 아니었고 지금 진행 중인 입점 건이 김팀장이 속한 회사 내에서도 얼마나 큰 건수인지 뻔히 알고 있었는데도 갑작스러운 연락의 끊김은 날 폭발하기 직전으로 만들었었다.




경력이고 사랑이고 간에 계속해서 독촉을 하는 아내란 여자의 냉랭한 목소리에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었을 때.. 늦은 저녁 김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거의 한 달 만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죄송해요. 몸이 안 좋아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
“뭐!??? 어..어디가 안 좋은데? 많이 다치기라도 한 거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저보다 우선 오팀장님 일이 먼저예요.]
“내 일??”
[네. 설마 충동적으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건 아니죠?]
“......그렇지 않아도 한계에 도달했다고, 당신하고 연락도 되질 않고, 아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친정에서 전화를 걸어오고...”
[잘 했어요.]
“...”
[잘 참은 상으로 퇴원하면 정말 많이 사랑해줄게요.]
“많이 아픈 건 아니지?”
[걱정 마세요. 내일 모레 저희 회사하고 미팅 잡혀있죠?]
“그래.”
[그 때 제 대리로 가는 권민기란 사람이 있을 거예요.]
“권민기?”
[네.]
“그 남자는 왜?”
[그 사람한테 아내를 맡기세요.]
“맡기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사람 전적이 화려한 남자예요. 만나보시면 아시겠지만 인물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 남자죠.]
“.......당신하고 무슨 관곈데?”

난 아내를 맡기라는 충격적인 내용보다 김소이와 그 남자의 관계에 더 집착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김소이란 여자에 미쳐있는 질 깨닫게 하는 통화내용도 인지하지 못한 채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김소이가 어떤 형태로 엮여 있는지에 대해 먼저 궁금해졌고 질투심에 화까지 나게 된다.

그런 내 심정 변화를 김팀장이 놓칠 리 없었다.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사이에 아니에요. 오히려 원수 같은 사이라고 해야 될걸요.]
“원..수??? 그런데 그런 남자한테 부탁을 하라고?”
[네. 비록 저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지금 오팀장님 일에 제 사사로운 감정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
[죄송해요.. 많이 힘드셨을 텐데.. 옆에서 보듬어드리지도 못하고, 그러니 제 말대로만 움직이세요. 그럼 예전처럼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우리로 돌아갈 수 있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미팅 때 나온 권민기씨한테 부탁을 하세요.]
“알았어...”
[그럼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특별한 접대 자리라고 불려간 곳은 오피스텔과도 같은 일반 가정집이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밀회를 즐기기에 적합한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영업부 팀장 대리라 불리는 권민기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얼굴이 잘생기긴 했고 훤칠한 키에 다부져 보이는 몸매임에는 확실해 보였지만 극도로 말을 아끼는 건지 아니면 숫기자체가 적은 건지 모를 이 남자가 과연 내 꼬인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김소이 팀장의 말이 틀릴 리가 없다는 생각은 남자의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믿어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김소이를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는 거의 비슷했었다.

부하직원들도 김소이 팀장 앞에서는 바짝 수그리곤 기는 모습이 보통이었으며 그건 내 선임자인 전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게 다정다감하게 다가온 그녀의 태도에 의외의 감정을 더 느끼게 됐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런 김소이란 여자에게 대놓고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는 권민기란 남자의 모습에 뭔가가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고는 이 남자와 단 둘이 될 기회만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남자가 화장실을 찾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뒤를 쫓아간다.

“먼저.. 들어가시죠.”
“그게 아니고...”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민기씨라고 하셨죠? 김팀..장님이 말씀하시던데.. 어려운 일도 다 해결해 주실 거라고..”
“네?? 갑자기 무슨.....”
“제 아내를... 좀 범해주세요.”
“네에!!???”

남자가 당황하며 날 뚫어져라 쳐다본다.
난 김팀장과 어느 정도 얘기가 끝난 상태인 줄 알았기에 남자의 표정에 같이 당황하게 되었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변한 남자의 태도에 더 당황하게 된 나였다.

“지금 제가 잘 못 들은 게 아닌가요? 아내 분을 범해 달라고요?”
“네..네....”
“이 세상 어떤 새끼도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자기 아내를 범해달라고 부탁을 할 리가 없지만..”
“....”
“지금 김팀장이 말씀을 하셨다고요?”
“...예. 김팀장이 권민기씨라면 해..결을 해 줄 거라고..”
“이 대가리에 좀약을 처바를 년 같은....”
“....”
“나랑 김소이 팀장이란 어떤 관계인지 얘기는 하더이까?”
“대..대충요.”
“그런데!? 나한테 부탁을 하라고 말을 했다고요?”
“그게 그러니까....”

민기의 눈빛이 험상궂게 날 응대한다,
뭔가 일이 틀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한 난 자리를 떠야 한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채취는 일반인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런 구분을 짓는 특별한 능력이 내게 존재하진 않았지만 목덜미 뒤쪽의 서늘함에 오싹해진 부위가 이 남자와는 거리를 두라고 말해주고 있었기에 본능적인 뒷걸음질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잠...깐만요.”
“..네..네??”
“....”

처음 날 버러지 취급하듯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민기란 남자가 생각에 잠긴 듯 이마를 어루만지는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주먹 쥔 손 중 검지와 중지만을 펴 이마를 위아로 쓸어내리던 민기의 손은 평범한 일반인인 내가 봐도 타격하는 부위의 굳은살로 폭력에 익숙한 사람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해 보였고 그런 얼굴 생김새와 너무도 대조적인 주먹에 날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알겠습니다.”
“.......예? 그..럼...”
“강간을 해서라도 당신 아내랑 섹스를 하면 되는 겁니까?”
“그..그게 아니고..”
“그럼요?”
“그러니까.. 아내하고 바람을 피워 달라는.. 아내가 제 불륜사실에 이혼을 한다는 말을 못하게 만들어 달라는..그런 거죠.”
“.....”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김팀장이 저한테 얘길 하면 제가 부탁들 들어 드릴 거라고 했단 말이죠?”
“사..실대로 얘기하고 저보고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전화를 걸려고..”
“아니요. 됐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죠.”
“......”
“네...가..감사 합니다.”

감사를 해야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권민기란 남자가 노려보는 시선 때문에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감사하란 걸 하게 된다.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

아내가 집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드레스 룸부터 들어갔다.
나와는 더 이상의 대화조차 필요 없다는 듯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옷가지를 챙겨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 한다. 오히려 무관심으로 날 대하는 아내의 모습에 내가 먼저 말을 걸게 된다. 순전히 권민기란 남자와의 접촉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서 말을 걸게 된 것이지 아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왔으면 왔다고 말이라도 할 것이지..”
“.....”
“어...떻게 지냈나?”
“궁금하긴 했고요?”
“...그럼.”
“그 좋아한다는 여자하고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했나요?”
“....”
“전화를 그렇게 많이 걸어도 받지도 않던 사람이 왜 갑자기 궁금해 하죠?”
“참나... 그 지랄 맞는 성격부터 좀 고쳐라. 누가 당신이 궁금하데? 갑자기 들어와서 옷부터 챙기니까 그렇지.”
“상관없잖아요. 제가 옷을 챙겨 입던 말든.”

결국 폭발하게 된다.
빈정대는 아내의 말투와 행동에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대하려던 내 행동도 삐딱선을 타게 된다.

“누가 상관한데!? 하도 이혼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기에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들어와서 물어본 거다! 왜!?”

‘탁!’

아내가 옷들을 챙겨 넣던 가방을 바닥에 소리 나도록 내려놓고는 날 다시 째려본다.
아직 민기란 남자를 안 만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한 점 부끄럼 없이 날 똑바로 쳐다볼 여자가 아니었다.

갖은 폼은 다 잡고 남을 무시하는 말만 번드르하게 하더니...

“생각해보니 제 잘 못이네요.”
“...뭐?”
“제가 여길 왜 나가야 되죠? 이혼하면 어차피 제 집이 될 텐데. 나가려면 당신이 나가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내가 나가긴 어딜 나가! 이건 내가 벌어서 산 집인데! 그리고 누가 이혼을 해준데!?”
“...정말 뻔뻔하군요.”
“이 여편네가!!”

아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려 보여주곤 옷가지들을 챙겨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날 무시하는 아내의 행동에 욕을 하며 뒤를 쫓아가는데 ‘찰칵’ 하는 잠그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아버렸다.

난 문을 두드리며 더 짜증을 내게 된다.
감히..

“야!! 이거 안 열어!! 이 여편네가 진짜 미쳤나! 야!!!”

얼마나 크게 소리를 쳤는지 목이 갈라지기 시작했을 때 문이 열리고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자보자 하니까 사람을 무시 하는 것도 유......”

역시나 투명인간 취급하듯 문 앞에 있던 날 밀치며 거실로 나가는 아내였다.
그런데 아내가 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안방에서 나와 곧바로 신발장으로 향해 가지고 있던 힐 중 가장 높아서 잘 신지 않는 하이힐을 꺼내 신기 시작한다.

옷도 평소 즐겨 입는 외출복이 아니었다.
분명 저 와인색 원피스는 예전에 회사 창립기념 파티에 딱 한 번 입은 야시시한 것이 분명했다. 허벅지와 무릎 사이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치마 길이에 등이 파여 끈이 보인다며 브래지어까지 와인색상 계열로 맞춰 샀던...
옷의 형태가 야한 것이 아니라 몸에 달라붙는 특성과 빛에 흐릿하게 반사되는 원단 소재로 가슴의 윤각과 골반을 지나 사타구니의 윤각이 드러나는.. 그래서 봉제선 없는 팬티까지 맞춰 입었어야 했던 그 칵테일 드레스였다.

“어디 가려고?”
“무슨 상관이에요?”
“.....”

문이 닫히고 잠시 동안 멍하니 그런 아내의 잔상을 쫓아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때 번뜩하고 떠오른 생각에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아내를 뒤쫓게 된다.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숫자를 확인하곤 서둘러 지하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가 몸을 숨긴다. 아내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무섭게 나도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우레탄 바닥에 키스마크를 그리며 입구를 빠져나갔고 마침 좌회전 신호를 받아 방향을 트는 아내의 차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간다.

아내가 운전해 간곳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미용실이란 장소였다. 민기와 무슨 썸싱이 있었던 게 분명 했을 거란 생각에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서둘러 쫓아 왔는데 아내는 엉뚱하게도 미용실 앞에 차를 주차하곤 얇은 검은색 숄을 걸치며 미용실로 들어간다.

30분.. 40분..
아내의 차가 내 눈앞에 있으니 저 미용실 안에 아내가 있는 건 확실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고 머리를 하러 온 건가..’라는 생각에 김이 ‘팍’ 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피식하며 웃게 된다.
안도감...이라고 굳이 설명할 수 있는 이 느낌에 내가 아직도 아내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핸들에 턱을 괴어 미용실의 간판을 빤히 쳐다본다. 분명 커트만 하는데도 5~10만원 정도일거란 예상을 하며 돈 쓰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라 하는 여자들을 하나둘씩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미용실 정문으로 두 명의 남녀에게 에스코트라도 받는 듯 마중을 받으며 걸어 나온다.
오드리 헵번처럼 앞머리를 짧게 치곤 뒷머리를 묶어 틀어 오린 아내의 모습에 난 내 눈을 의심하게 된다.
앞머리가 생명이라도 되는 듯 고이 기르던 아내가 커트를 했다는 것도 날 놀라게 했고 아내의 한층 더 길어진 속눈썹과 눈두덩을 시커멓게 물들인 스모크 화장, 그리고 분명 스타킹을 신지 않고 나간 아내의 맨다리가 번들거리며 조명을 받아 윤기까지 흐르고 있다는 착각과도 같은 사실에 아내를 다시 한 번 훑어보게 된다.

아내답지 않은.. 아니 아내란 여자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는 모습이 많은 건 아닌지 생각하며 차에 오르는 아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외모에 한껏 힘을 준 아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시내에 위치한 호텔입구였다.
역시 민기란 남자와 벌써 상당히 진행 된 사이가 분명했다. 나와 별거중이긴 해도 아내란 여자가 이렇게 헤플 리가 없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민기란 남자와 만나기 위해 호텔이란 장소에 그것도 스스로 운전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들자 사진을 찍는 것도 잊은 채 차에서 내린 아내의 모습을 뚫어져라 노려보게 된다.

발리맨이 아내의 차를 끌고 입구를 떠나자 아내는 서슴없이 호텔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걸레 같은 년...”

입술을 깨물며 난 하이힐로 한 층 업이 된 엉덩이를 흔들며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차를 호텔 입구에서 조금 더 떨어진 도로가에 주차하곤 황급히 아내를 찾아 호텔로 들어간 난 엘리베이터부터 찾게 된다. 인적이 뜸한 로비에 방금 올라간 엘리베이터가 아내가 탄 것이 추측을 하며 층수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내 시선에 들어온 검은색으로 도배를 한 양복의 덩치 큰 사내가 날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로비로 걸어간다.

이상하리만큼 내 시선을 잡아 끈 남자의 모습은 곧 정중히 인사를 하는 행동과 그 상대가 내 아내란 걸 확인시켜줬다.

아내와 안면이 있는 듯 어색하지만 수줍은 미소를 아내가 보여주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는다.
남자의 안내로 아내가 자리를 옮겼을 때.. 뭔가가 잘 못 된 것이란 생각에 이상한 불안감을 느끼며 뒤를 쫓게 된다,.

분면 내가 아내를 부탁한 남자는 권민기란 남자였다.
그가 풍기는 내음이 내 생각과는 다른 위험한 것일지라도 내가 부탁한 사람은 그 민기란 남자였지 저런 덩치에 험상궂게 생긴 깡패 같은 놈이 절대 아니었다. 더군다나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기사까지 딸린 신형 검은색 벤츠에 아내를 정중히 태우는 모습은 절대로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검은색 벤츠를 따라가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부터 건다.
대상은 당연히 김소이 팀장이었다. 지금 시기상으로 통화를 자제하자는 김소이의 말대로 그 때 이후 처음으로 전화를 걸게 된다.
다행히 전화를 받는 김소이 팀장이다.

“소이야.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어.”
[왜요?]
“그.. 민기란 남자....”
[부탁했어요?]
“으..응..”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민기란 남자가 당신 말대로 순순히 알았다고 했고 부탁을 들어주긴 했는데 엉뚱하게 지금 내 아내가 이상한 다른 놈을 만나고 있다고!”
[민기씨가 저랑 통화도 하지 않고 알았다고 했다고요?]
“응...응???”
[흠...]
“그건 무슨 말이야? 그럼 민기란 남자가 내 부탁을 거절할거라고 생각했다는 반응 같은...”
[그런데요?]
“뭐???”
[그럼 계획대로 진행 중이잖아요. 무슨 문제라고 10시가 넘은 시간에 병원에 있는 저한테 전화를 거셨냐고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민기란 남자가 아니고 덩치가 산만한 곰 같은 남자랑 지금 차를 타고 호텔에서 이상한... 시내 중심가로 이동 중인... 하여튼 민기란 남자가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냐고요.]
“.....”
[어차피 맞바람이란 수단으로 증거 잡아서 이혼 얘기만 쏙 들어가게 할 계획이었잖아요, 지금 같은 간판 부부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굴복시킨다?.. 뭐 그런 의미인데 민기씨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에요.]
“그건 그렇지만....”

김팀장의 말에 수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난 정떨어진 아내의 불륜을 계획했고 그 목적만 충족이 된다면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내 목적의 결론은 김팀장과 대놓고 밀회를 즐기기 위해 아내의 바람을 이용하는데 있었기에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는 김팀장의 말에 수긍하며 전화를 끊는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더 꽉 주며 알지 못하는 목적지를 향해 벤츠의 뒤꽁무니만을 조금 더 쫓아가던 난 시내의 번화가에서도 중심지인 사거리에서 차를 불법 주차하게 된다.

덩치가 곰 같은 남자의 뒤를 따라가던 아내와 그리고 그 뒤를 쫓던 난 또 엉뚱한 장소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타격연습장..
경쾌한 알루미늄 방망이 소리가 속까지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실내 야구장 앞에서 나만큼이나 어리둥절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점상에 걸려 있는 야구 모자를 사들고 바로 남자와 아내를 쫓아 올라간 2층의 타격 연습장. 그제야 난 민기란 남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흰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입에 담배를 물고 신나게 헛방망이질을 하는....
그런 민기의 모습을 발견한 아내가 그 덩치 큰 남자를 지나쳐 방망이를 휘두르는 민기가 있는 철조망의 벽 바로 뒤에 서서 가지런히 손을 모으곤 나오길 기다린다.

드레스란 복장과 한껏 치장한 아내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이곳에서 아내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런 상황을 입증이라도 하듯 내 옆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는 남자가 연신 힐끗거리며 아내의 몸을 훑어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대도 아내는 시선의 흔들림도 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민기란 남자를 고개 들고 바라만보고 있었다.

나올 생각이 있기나 한 건지..
아내가 도착하고 나서도 민기는 500원짜리 동전을 계속 투입구에 집어넣으며 헛방망이질만 연신 휘두르며 자신의 등 뒤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내에겐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있다.

괜히 화가 난다.
차라리 나체로 뒤엉켜서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대에만 열중하는 음란한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이렇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화려하게 치장한 아내가 자존심도 없이 주인님을 섬기듯 아무 말도 없이 민기란 남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에 더 그랬고 그걸 당연하다는 듯 인사도 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저 민기란 남자의 태도도 내 짜증의 원인을 한 층 더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깡~~~~~~’

타격 연습장에서 들려오던 소리와는 그 크기부터 다른 경쾌한 굉음과 함께 시원하게 뻗어 그물의 최상단에 꽂혀 떨어지는 야구공의 궤적을 따라 시선이 따라갔을 때 그제야 철조망의 문을 열고나오며 아내에게 인사를 하는 민기란 남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아내를 민기와 단 둘이 남겨두고 나가는 곰만 한 덩치의 사내와 시선이 마주치게 돼 혹시나 날 알아본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됐지만 그 남자는 이내 날 지나쳐 밖으로 나가 안심하게 된다.

“오래 기다렸나?”
“..아니에요.”

반말로 지껄이는 민기의 태도에도 아내가 손수건을 건네며 수줍지만 분명 밝은 미소를 담은 입술로 입을 열었다.
그런 아내의 손수건을 거절하며 소매로 이마를 닦는 모습에 아내가 손수 손을 올려 민기의 이마를 닦아주기 시작한다.

“민기씨는 야구는 잘 못하시나 봐요.”
“주먹질엔 자신 있는데... 연장엔 영 소질이 없네. 그래도 들어갔으면 한 방은 쳐내야 할 거 같아서... 오래 기다렸지 미안하다.”
“아니에요. 땀까지 흘리면서 공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움직이는 민기씨 모습에 저도 괜히 힘이 들어가던데요.”
“쪽팔리게...”
“풋~”

내가 아는,, 알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아니었다.
도대체 일주일이란 짧은 시간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아내가 저런 모습으로.. 저런 행동으로 민기란 남자와 거리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다정함을 보여주고 있는지...

“배고프다. 밥 먹자.”
“아직도 식사 안하셨어요?”
“별거중인데 누구랑 밥을 먹나?”
“,,,,,네.”

별거....란 민기의 말에 아내의 표정에 일순간 그림자가 보였다. 아니 찰나였지만 분명 안타까움과 부러움이 교차하는 시선과 표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둘은 급하게 타격 연습장 안으로 들어간 날 지나쳐 아래로 내려갔고 곧 실내포차라고 쓰여 있는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내의 복장이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지만 아내는 민기란 남자를 따라 아무 거리낌 없이 원형 탁자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

포차란 곳의 면적이 너무 작아 길 너머에서 담배만 피우며 둘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분명 둘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란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정한 장면을 보여 줬다.
막창이란 음식을 칵테일드레스란 옷을 입고 뒤집는 우스꽝스러운 아내의 모습에도 웃을 수 없던 난 밀려오는 짜증의 원인을 찾으려 생각에 잠기게 된다.

아무리 정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내 아내인 저 여자가 아직 내 소유인건 확실했고 그건 강아지 같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내 소유의 애완동물을 빌려주는 상황과 같은 것일 거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짓게 된다. 시끄럽고 정이 잘 안가는 애완동물을 다른 이에게 빌려줬지만 막상 그 다른 이를 나보다 더 잘 따르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나는 짜증과 화 같은 것 일거라고 지금의 내 감정을 치부하며 무표정으로 아내의 수발을 받고 있는 민기란 남자를 나도 모르게 노려보게 된다.

한시간정도의 식사가 끝난 둘은 차로 이동을 한다.
일부러 분위기 좋고 로맨틱한 장소가 아닌 곳만 찾아다니는 민기가 분명했다. 둘을 싣고 차가 도착한 공은 한강고수부지였다.

강바람의 싸늘함에 어깨를 살짝 움츠린 아내의 모습에 도대체 왜 저런 복장을 하고 나왔는지 내가 이해를 못하고 있을 때 민기란 남자는 양복 상의를 벗어 아내에게 걸쳐준다.

둘은 강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며 곧 산책을 시작했고 아내의 높은 힐을 배려하듯 그 속도가 느릿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둘의 발걸음이 멈춘 건 고수 부지에 있는 편의점 앞 벤치가 즐비한 곳이었다. 아내를 홀로 벤치에 앉혀두고 민기가 편의점에서 사온 건 맥주와 과자였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주점, 하다못해 호텔에서의 열정적인 밀회를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모습에 실망스럽긴 했지만 아내의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누가 봐도 아내는 저 민기란 남자의 여자처럼 보여 질 정도로 이미 마음까지 뺏긴 모습으로 한시도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의 대화대로라면 이미 민기란 남자가 결혼 했다는 걸 아내는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별거중이라고 했지만 이혼한다는 얘기도 아니었고, 그 이상이 아니란 건 확실했다. 나의 부탁을 받고 시작된 이 계획대로 권민기란 남자 때문에 나와 이혼하고 결혼을 할 두 사람도 절대 아니었기에 난 이제 신경 쓰지 않고 이전처럼 김팀장과 밀회를 즐기면 된다.

날 애태우며 섹스의 참맛을 일깨워준 김소이 팀장이라는 여자의 몸을 그려보며.....

그런데 아내의 시선과 몸짓이 이상한 방향으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된다.
나 조심스럽게 그 둘이 앉아 있는 벤치에서 말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인 잔디밭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동해 누워 둘의 대화에 훔쳐듣는다.

“오늘 즐거웠어요.”
“즐거웠었다고?”
“....네.”
“재미도 없는 나 같은 놈하고 같이 있었는데 무슨...”
“아니에요. 오랜만에 막창집도 가보고.. 무엇보다 계속 떠드는 제 말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들어주는 민기씨가 너무 좋았어요.”
“좋긴.. 유람선이라도 탈까?”
“지금 끝났을 걸요..”
“벌써 1시구나... 집에 안 들어가도 되나?”
“상관없어요.. 그런데 왜 저한테 계속 반말이세요? 나이도 제가 훨씬 많은...거 같은데...”
“......”
“왜..왜요?”
“어린놈이 반말하니까 싫어?”
“그..건 아닌데... 그래도 제가 누나니까..”
“억울하면 말 놓던가.”
“.....피~”
“남편은 출장 중인가?”
“출장...큭~.. 차라리 해외 발령이라도 나서 안 들어와 왔으면 좋겠네요.”
“...”
“사람한테 실망했다는 말 알죠... 정 떨어졌다는 말,,,,, 인간쓰레기라는 말도 아깝지 않은 인간이 제 남편이라는 작자에요. 그런 사람..... 더 이상 상관없어요.”
“인간쓰레기라.... 나 같은 깡패 새끼가 인간쓰레기지..”
“민기씨도 인간쓰레기에요?”
“큭큭.. 쓰레기보다 더 한 존재라고. 나 같은 놈은..”
“에이~~ 설마..”
“영화가 사람들을 다 버려놨어. 영화처럼 깡패들이 가우만 잡고 멋지게 사는 게 절대 아닌데 동경까지 하는 일반인들 보면 은 웃음이 나오더라.”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구역을 점령하려고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기도 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면서도 가족이라고 하면서 복수도 하고..”
“푸..하하하하하하하.”
“왜..왜요?”
“넌 영화가 아니라 소설을 많이 읽었구나.”
“....”
“내가 하는 일이란 게.. 폼만 잡고 뒤에서 말만 하면 되는 거야.... 그 말 한마디에 핏덩어리 같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새끼들은 칼침받이인지도 모르고 날뛰다가 병신 되기 일쑤고, 재수 없으면 신원미상 사망자가 될 수도, 다시는 찾지 못하는 행방불명 인이 되는... 가족??..크크크.. 그런 거 없어. 이 바닥에 가족을 미쳤다고 끌어 들이냐? 의리??.. 그런 건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는 세계가 이 바닥이다.”
“...무섭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나한테 연락해서 귀찮게 하지 마. 이렇게 차려 입고 나와도 네가 사는 세상처럼 그런 옷이 어울리는 파티도 없고, 너도 무슨 피를 볼지 몰라.”
“..”

민기의 무뚝뚝한 목소리 속에 다정함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보다 아내가 먼저 이 민기란 남자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에 또 충격을 받게 된다.
충격을 받을 상황도, 사건도 아니었는데 마음 한 구석엔 ‘지가 뛰어봐야 벼룩이고 도망가 봐야 어항 속 금붕어지’란 생각을 하고 있던 나인지 먼저 연락을 했고 이렇게 차려입기까지 한 아내의 행동에 생각지도 못한 충격을 받게 된다.

“싫....어요.”
“.......”
“험상궂게 말을 하고 무심한 듯 행동하는 민기씨지만... 저한테 하는 행동 속엔 꼭 배려란 게 담겨 있다는 걸 제가 모를까 봐요? 저 그렇게 바보 아니에요.”
“불나방도 아니고.. 너랑 나랑은 안 어울린다는데 말기를 못 알아처묵냐... 어린 나이도 아닌데 세상 물정을 모를 리도 없고 뻔히 나쁜 놈인 걸 알면서도 접근 해봐야.. 너만 손해라고... 일탈?? 그런 건 호스트바나 가서 나보다 더 영계 같은 놈들 꼬셔서 몇 푼 집어주면 발가락이라도 핥아 주면서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준다.”
“첫 번째로.. 한 번만 더 나이 얘기 해봐요! 진짜 화낼 거예요. 그리고.. 일탈이란 건 정상적인 부부 관계에서나 존재 하는 거죠. 어차피 이혼 할 생각인 사람하고 그런 감정을 교류하기도 싫고..”
“.....”
“무섭기도 하지만.. 스릴도 있고,, 무엇보다 가슴속에서 뭔지 모를 두근거림이..”
“장난 같지?”
“....장난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 그 접촉사고에서 아우 놈들 행동에 겁먹었던 건 그새 잊어버렸냐? 내 주위에 있는 여자들.. 어떤 년들인지 몰라? 그제 나이트에서 봤으면 알거 아니야. 난 천성적으로 여자한테 배려란 걸 할 줄도 모르는 놈이고,, 부드럽게 대할 줄도 모르는 놈인 게 나란 놈이다. 이제 좀 알아듣겠니?”
“누가 매너 있게 행동 해 달래요?”
“....”
“저도... 느끼고 있고, 알 고 있어요. 민기씨랑.. 민기씨가 사는 세계에 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제가 맞추면 되잖아요. 민기씨가 하는 행동대로...”
“그럼.. 내 세컨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뭐 어때요.. 저도 남편이 있고.. 그 인간은 이혼은 죽어도 안 해줄 것처럼 행동하는데..”
“...나 한테 맞춘다는 게 뭘 의미하는 진 알고 하는 얘긴가?”
“네!.. 단순히 호기심에서 하는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후회는 안 하려고요.”
“미쳤군..”
“미쳤나 봐요. 그렇지 않고..웁!~~”

아내의 말을 끊는 민기의 행동에 귀에 집중하고 있던 온 정신을 접고 고개를 돌려 둘을 찾아 시선을 옮긴다.

아내의 턱을 부여잡고 민기가 깊은 키스를 하고 있었다.
저항이라도 하려 했는지 아내의 손이 민기의 얼굴 바로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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