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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14 693회 0건
많은 분의 요청에도 주말에 한 편을 더 못 올렸습니다. 스토리만 정해놓고 매 편을 제 성격대로 그때그때 비축분 없이 쓰다 보니 토요일에 한 편 더 올리려다 분량이 마음에 들지 않아 포기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은 좀 길어졌네요..
그럼 전 출근을 위해 후다다닥~~~~.


착한사람se 2-7


“이제 들어오나?”
“....안자고 뭐해요?”
“....”

내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한 아내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날 대놓고 무시하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집을 나가 민기란 놈과 격렬한 섹스를 치룬 후 친정으로 다시 돌아갈 줄 알았던 아내였는데 뻔뻔하게도 나보고 나가라는 말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난 집에 들어와 양주도 아닌 소주를 마시며 거실에 앉아 멍하니 잠도 못 이뤘고 새벽에 들려온 현관 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침침한 눈을 고쳐 뜨며 시선을 옮기게 된다.
허리를 약간 숙이며 무릎을 굽혀 하이힐을 벗고 있던 아내는 거실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에 놀란 듯 아주 잠깐 시선을 마주치곤 이내 무시하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내의 칵테일 드레스와 손에 들고 있는 숄만이 내가 고수 부지에서 봤던 그 장면이 현실임을 말해주며 새삼 비참했던 기분을 일깨워준다.

당장이라도 아내를 쫓아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이렇게 늦게까지 뭘 하고 왔냐고, 무슨 짓을 했냐’고 따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며 잔이 아닌 병째 벌컥거리며 소주를 비우기 시작했다.
그건 이제 와서 아내에게 화를 내기도 웃긴 상황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가 아내에게 뭐라고 화를 내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고 아무리 양심에 털이 난 나라고 해도 아내에게.. 그것도 이 모든 계획을 주도한 게 나였으니 누굴 원망할 수 있냐는 생각에 묵묵히 술병을 비우고만 있게 된다..

아니다..
난 술에 취해 지금 기분이 침울해 졌을 뿐이다.
내겐 아내보다 소중한 김소이란 여자가 존재했고 그녀는 아내보다도 더 아름답고 섹시하며 센스까지 겸비한.. 집구석에서 가정살림만 해 온 아내와는 전혀 다른 여자로서, 그런 완벽한 김팀장이라는 여자가 날 기다리고 있다.

내가 아내의 불륜에 비참해 할 필요도 침울해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살아온 정 때문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을 뿐.. 그게 전부일 것이다.

아무리 아내가 고수 부지에서 내게 보여준 적 없는 전혀 다른 모습을 그렸고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고 해도 말이다.

난 서둘러 작은 방으로 들어가 아까 정신이 팔려 받지도 않은 김팀장의 번호를 찾아 재발신을 누른다..

그러나 새벽 4시란 시간에 전화를 받을 리 없는 김소이 팀장이었기에 난 핸드폰 너머로 통화 연결음만을 한참동안 듣다 전화를 끊게 된다.

도저히 이대로 잠을 이룰 수 없는 정신상태에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만 했다.
술이 취해서이기도 했지만 김소이 팀장이란 여자에게 우리의 관계를 확인 받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는 아주 간단한 원초적 본능이었다.

[....누구냐?]
“...”
[한 번만 더 장난 전화질 하면 대한민국 끝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찾아내서 한강에 거꾸로 메달아 버린다...]
“접니다....”
[...누구?]
“오..강진 팀장입니다.”
[아~..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혹시 그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쇼.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잘.....”

김소이와 통화를 못 한 난 다른 사람도 아닌 민기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내가 왜 방금 전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단순히 누군가와 얘길 나누고 싶다는 충동에서 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는 건 확실했다.

민기란 남자의 잠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자 몇 시간 전의 장면과 오버랩 되듯 머릿속에 아내와 민기의 모습이 생생한 잔상처럼 다시 그려지며 날 괴롭힌다.


나무 뒤에 숨어 김소이와 통화 중이었다는 것도 잊은 채 온 신경을 벤치위에 있는 아내와 민기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아내의 뜨거운 숨결과 들썩거리는 어깨의 미묘한 움직임까지도 전부 보이는 듯 한 착각 속에 빠져 한참을 눈도 때지 못하고 있을 때 난 분명 아내의 미묘하게 움직이는 어깨의 들썩임이 민기로 인한 것이 아닌,,, 아내의 팔이 움직여 들썩거리는 것임을 알게 된다.

최대한 숨 죽여 둘에게 들키지 않고 더 가까이 갈 필요가 있었다.
거리만큼이나 내 시력의 한계를 느꼈고 둘의 움직임을 확실히 확인할 필요성에 난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심을 굳히며 실행에 옮긴다.

어디까지나 불륜 현장을 확실히 확인하기 위한 이유라고 스스로에 변명하며 아까 있던 잔디밭이 아닌 편의점의 불빛과 가까워 내 그림자가 둘을 향하는 그곳으로 가장 평범한 걸음을 그리며 천천히 걸어가 차량 진입 방지 돌 턱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기라면 아내의 대각선 사선 자리로 아내가 일루러 시선을 돌린다 해도 등 뒤의 조명에 의해 내 실루엣만 보일 뿐 누군지 감별하기 힘들 거란 생각을 했고 역시나 여자의 시야각이 좁다는 속설이 맞는 듯 아내는 내 존재조차 모르는 듯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 그대로 민기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민기조차 그런 아내에게 정성을 다하는 지 힐끗 날 한 번 확인하곤 곧 아내에게 속삭이듯 얘길 한다.
잘 알아듣진 못했지만 분명 내 존재에 대한 이방인의 출몰을 알리려는 말투인 듯 했다. 아내가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모습에 내가 이방인 일 뿐 자신의 남편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내 등장에 아내가 손을 다시 덥고 있는 양복 속으로 황급히 거두는 모습을 보여 준다.
분명 민기의 사타구니 위에 놓여 있었던 아내의 손이라 짐작하고 있던 난 묘한 질투감에 한강을 바라보는 얼굴 방향과는 달리 시선만을 옆으로 옮겨 둘의 모습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많이 떨리나?”
“......네.”
“이런 경험 처음이지?”
“...........네.”
“지금이라도 일어서면 집까지 바래다줄게.”
“아...니에요.”

아내가 첫 음을 크게 했다가 이내 쑥스러움을 보이며 작게 말꼬리를 흐린다.
아내란 여자가 이렇게 섹을 밝히는 여자였는지 기억을 되짚어 본다.. 분명 아니었다.. 처제와의 대화로 아내도 여자로 섹스란 것에 호기심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밝힌 여자는 절대 아니었다.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그랬었다.
같이 살아온 십년이란 시간동안 그건 내가 가장 잘 아는 부분이었다.

“그 나이에 안 맞게 경험이 적군..”
“또 나이 얘기.... 그리고 나이가 좀 많다고 꼭 경험이 풍부해야 되나요?”
“보통은 그렇지 않나? 결혼하기 전에 경험도 있을 테고,, 결혼 한 기간이 꽤 지났으면 당연히..”
“ 삼년동안 각방을 썼으니 결코 많은 건 아니겠죠.”
“삼년?”
“.....네.”
“남편하고 삼년동안 단 한 번도 몸을 섞지 않았다고? 혹시 섹스리스란 건가?”
“예??.. 섹스..리스는 어느 정도 지난 부부들이 권태기 같은 걸로 겪게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가? 그 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
“우리 부부는.. 남편의 지위와 저희 집의 능력으로 결합된..그러니까 계약과도 같은 결혼 생활로 시작 됐어요. 처음엔 좋기도 했다고 해야 하나?... 단지 신혼이라는 설레임하고.. 음~... 새로운 경험이라고?”
“남편이 첫 남잔가?”
“......네.”
“삼년동안 다른 남자에게 안겨 본적도 없었고?”
“.....”
“혹시.. 자위는 자주 하나?”
“네!??...아..아니요.”
“그럼 욕구는? 당신도 사람이고 여자일 텐데.. 성욕이란 게 안 당긴다고?”
“그다지...... 별로 기분 좋은 적도 없었고...”
“.....”
“...왜요? 제가 역시 이상한 거죠?”
“아니. 최소한 내 손길에 흥분하고 젖은 몸 상태로는 정상이던데.”
“.....”
“오히려 잘 느끼는 편 같기도 하고.”
“그..만해요. 창피하게 그런 걸 대놓고 말을 해요...”
“창피하다... 방금 전까지 느끼던 표정과는 달리 아직 제대로 맛도 모르는군..”
“..맛을 모르다뇨?”
“당신 남편도 바보라는 말이다.”
“.....그게 무슨.”
“됐고. 남자 물건은 빨아 봤나?”
“...물건이라뇨?”
“....”
“.....!!?”

민기가 벤치의 등받이에 올려놨던 두 팔 중 오른 손만을 살짝 들어 손가락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아내가 그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민기의 사타구니를 내려다보곤 곧 민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당황스러움과 불쾌하다는 듯 한 느낌으로 민기를 바라보는 시선일 거라고 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친놈..
아무리 아내가 나로 인해 자포자기인 상태라고 해도 물어볼게 따로 있지..
불과 일주일 만에 그것도 자신을 깡패라 소개할 정도로 위험한 남자의 말을 쉽사리 들을 아내가 아니었다. 아니.. 민기란 저 멍청한 남자가 지금 있는 장소가 벽이라곤 하나 없는 한강의 산책로인 걸 알고는 있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민기란 남자에게 이미 많이 넘어간 상태일지라도 아직 이 방면엔 면역력조차 없는 아내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민기의 섣부른 행동이 지금까지의 노력을 모두 망칠 거라는 내 예감이 맞을 거란 건 불 보듯 뻔해보였다.
김소이 팀장과의 계획도 잊은 채 잠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아니.. 밤일을 벌이더라도 차라리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일을 벌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제 일어나 집으로 가자고 할 아내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빨...면.. 기분이 많이... 좋아요?”

턱까지 숨이 막혀 온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민기보다도 내가 더 크게 놀라 하마터면 사례가 걸린 놈처럼 기침까지 할 뻔했다. 뭘 마신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난 아내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아내를 대놓고 쳐다보게 된다. 다행히 민기를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에 뒤통수만을 쳐다보게 되어 시선의 마주침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내의 수줍은 듯 눈을 깔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얼굴 표정 머릿속에 그려졌다.

“당연히 기분 좋지. 직접 하는 것만큼 좋기도 하고..”
“.....”
“내가 빨아줘도 똑같이 느낄 걸.”
“어디...를.. 요? 여..여기요?”
“응. 그럼 어디를 빨겠나?? 물론 입술, 목덜미,, 가슴이고 뭐고 여자의 몸이라면 전부 빨아 먹는 걸 난 좋아하긴 하지만..”
“...저질.”
“...큭큭.”
“변태.. 어떻게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있어요?”
“뭐가?”
“그럼 부인 되시는 분 말고도.. 다른 여자한테도 막 그런다는 말이에요?”
“...그럼? 아내하고만 즐기란 법 있나?”
“.......”

아내가 민기의 저질스러운 농담을 탓하고 있다는 게 아닌걸 알게 되자 기가 막혔다.
난 아내가 이런 행위에 대해서 욕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내의 말투는 그런 저질스러운 농담을 경멸하는 것이 아닌 질투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빨아 줄래?”
“...네?”
“웃챠~”

민기가 손을 올려 아내의 어깨를 잡고는 기대듯 잡아당긴다.
민기의 허벅지 위에 쓰러지듯 엎드린 아내의 모습에 난 일순간 엉덩이를 들썩이다 말게 된다.

남들이 본다면 술에 취한 여자가 남자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기대고 양복 상의를 머리끝까지 덮고 잠이 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잠시 후 미세하게 들썩이기 시작한 민기의 양복 상의의 움직임에도 난 그럴 거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와도 같은 생각을 하며 허리를 숙여 훤히 드러난 아내의 모여진 허벅지를 노려보게 된다.

모르는 사람은 지나가다 팬티까지 보일정도로 허리를 숙인 아내의 하반신에 시선을 뺏겨 정신을 못 차렸겠지만.. 내 시선에 보이는 아내의 허벅지보다 아주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한 아내를 덮고 있는 민기의 양복 재킷과 그리고 다시 벤치 등받이에 양팔을 벌려 기대곤 고개를 뒤로 젖혀 하반신에 느껴지는 감촉을 음미하듯 지그시 감기 시작한 민기란 남자의 표정만이 온통 들어차게 된다.

지금이 2시가 가까워진 새벽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 공공장소인 이 산책로에서 섹스라곤 김팀장이라는 여자를 만나기 이전의 나만큼이나 젬병이라 생각했던 아내가 다른 남자의 자지를 빨고 있다는 모습은 결코 일이 잘 되고 있다는 위로 따위로 넘기기엔 너무 큰 충격으로 내게 다가왔다.

민기가 벌린 팔의 손을 조금씩 움켜쥐기 시작했고 젖힌 얼굴의 미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후~... 일어나 봐.”
“.....”
“웃차..”

‘쓰~윽~~’

민기가 아내를 강제로 일으켰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은 아내가 맨 처음 한 행동은 팔을 올려 자신의 입을 닦는 행위였다. 난 더럽다는 생각에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걸 겨우 억누르게 된다.

“시..싫었어요?”
“아니...”
“그럼.. 왜?”
“정말 처음이라고?”
“...네?..예.”
“정말로?”
“그렇게.....이..상했어요?”
“아니. 도저히 못 참겠다..”

민기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하곤 뭔가를 찾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곤 일어나 아내의 손을 잡아 이끌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양복 재킷을 떨어트릴 뻔 한 걸 겨우 손에 쥔 아내가 개처럼 끌려가게 된 곳은 냄새나고 지저분한 간의 화장실이었다,

둘이 함께 여자 화장실로 몸을 숨겼을 때 나도 서둘러 화장실로 이동해 가쁜 숨을 몰아쉬곤 다시 숨죽여 벽에 바짝 기대게 된다. 높은 간이 화장실의 작은 창문이라 안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귀에 온 정신을 집중하면서.

뭘 할지는 뻔했지만... 하필 이런 더러운 장소여야만 하는지.. 민기란 남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최저라는 생각을 하며 이런 남자에게 이렇게나 끌리는 아내의 모습이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아내에게 집착하듯 이곳까지 따라왔는지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잠깐만요.. 여..여기서??”
“못 참겠다고.”
“아..아무리 그래도.. 여...기서는..”
“장소가 중요한가?”
“네??”
“쪽~~~”
“후흡~~”

쿵쾅거리는 벽의 진동소리와 바로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말소리로 변기가 있는 이곳에서 아내는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민기와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쿵쾅거림과 질퍽거리는 혀가 교차하는 소리의 크기만큼이나 그 격렬함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하는 둘의 행위에 숨소리가 멎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 나였다.

그리고..

“이..이런 자세로는 아..안되..요.. 안..... 들어...헉!!!”
“남편은 작은가 보군.”
“아~~자..잠시만~~”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간이 화장실의 얇은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간혈적인 신음소리에 떨리는 내 몸과는 반대로 심하게 고동치던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충격에 식은땀까지 흘리게 된 난 결국 도망치듯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땄는지도 기억나질 않았고 느껴지는 심한 갈증과 목마름에 1L짜리 생수 한통을 단번에 비워버린 난 도저히 맨 정신으론 버틸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술부터 찾게 된다. 이렇게 충격을 받을 거란 건 전혀 예상 못했기에 더 그랬다.

그런데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질 않는다.....




[오팀장님??]
“.....”
[여보세요. 오강진 팀장님!!]
“네..네??? 죄.죄송합니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아까 있었던 일을 회상하듯 생각에 깊게 잠겨 있던 난 짜증 섞인 민기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줄을 잡게 된다.

[급한 일이십니까? 지금 시간이..]
“급한..건 아닙니다.”
[그럼 나중에 통화 하시죠.]
“잠..잠깐만요.”
[.....]
“다른 게 아니고.. 말씀드렸던 건에 대해서 부..탁 좀 드릴게 있어서요.”

횡설수설이었지만 우선 뱉어내고 본다.

[걱정하지 마십쇼. 김팀장이 뭐라 했건 확실히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아내 되시는 분하고 벌써 접촉이 있었고 진행도 상당이 된 상태고요. 그냥 신경 끄시고 김팀장과 지금처럼 놀아나시면 됩니다.]
“누가 놀아...났다고...”
[아닙니까? 이 시간에 확인 전화를 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알겠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실례죠.]
“...죄송합니다.”
[전 한 번 맺은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는 놈입니다. 일종의 계약이라고 생각하고 계약이란 건 잉크로 칠했든 피로 맹세를 했든 깨서도 어겨서도 안 된다고 생각 하는 놈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잠 좀 잡시다!]
“그..그게 아니고요...”
[아!~ 이 양반이 진짜!! 그럼 뭘 더 원하는데요!?]
“그..그러니까....너..너무 격렬하지 않게... 그러니까.... 제 말은.. 아내가 아프다고 얘길 하거나... 거부를 한다면 말입니다.. 그 선에서.. 그만..”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횡설수설하게 된다.
입에서 맴돌며 튀어나오지 않는 부정하고 싶은 핵심에 나조차도 답답해했고, 말까지 더듬게 된다.
어차피 아내와 난 이미 건너서는 안 될 강까지 건넌 상태였고 더 이상 쓸어 담을 수도 없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런대도 난 무슨 미련이라도 남은 놈처럼 전화를 쉽사리 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지 좀 헷갈리네요. 꼭 그만두라는 말씀 같은데..]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아내가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게.....”
[덜 받게 하라뇨? 어차피 막장 드라마 찍고 있는 거 아닙니까? 김소이 년이랑 대놓고 즐기려고 아내 약점 잡으려는 당신 계획에 장단까지 맞춰주고 있는데.. 뭘 어쩌라고요?]
“......”
[거칠게 하든 부드럽게 하던 제 스타일대로 밀어 붙이면 되는 거고,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좋은..결과라는게.....”
[이 보쇼!]
“ㄴ..네??”
[지금 저랑 장난치자는 겁니까? 뭡니까!? 내가 만만해 보여요? 한가해 보이냐고!]
“아.아닙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해주세요. 아내 약점을 확실히 잡을 수 있게.. 사..진이라도 찍어서 증거라도 남겨주시면 더 감사하고요.”
[....]
“미..민기씨?”
[사진까지 찍을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한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뚜~~뚜~~~~~~~]

끊어진 핸드폰의 종결음을 한참 더 듣고 있던 난 도대체 내가 왜 민기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민기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건 것인지.. 민기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던 난 결국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출근을 하게 된다. 통화중 마지막에 비굴하게 민기란 남자에게 사진이란 얘길 꺼낸 내 자신에게 느낀 엄청난 창피함에 되풀이되며 머릿속에 자꾸 생각이 나서 더 그랬다.


아내는 어제의 격렬했던 행위에 대한 결과를 고스란히 내게 보여주듯 양복을 입는 동안에도 세상모르고 잠에 취해 코까지 골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아 또렷하게 보이는 검은색 아이 쉐도우와 더 길어 보이는 속눈썹, 어제 했던 화장들과 헝클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민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미용실까지 가서 어젯밤에 한 해어스타일로 어제 훔쳐봤던,, 도저히 믿기 싫었던 모든 것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출근을 하고도 좀처럼 일을 못하고 있던 내게 김소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약에 수면제가 들었는지 전화가 온지도 몰르고 잠만 잤어요. 피곤했나...]
“....응.”
[오늘 저 퇴원하는데. 우리 만나요.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가장 먼저 오팀장님이 생각나서..]
“퇴원 해?”
[네. 이제 퇴원해도 된대요.]
“내가 데리러 갈게. 어느 병원이야?”
[아니에요. 제가 당신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회사 앞으로 갈게요.]
“응. 알았어.”

‘그래.. 소이랑 만나기가 힘들어서 내가 엉뚱한 망상과 괜한 죄의식에 사로잡혔던 거야. 아내 따위에게...“




“휴~.. 이제 살겠어요.”

거의 한달 반이라는 시간동안 못 본 소이의 얼굴은 걱정했던 것 보다 괜찮아 보였다. 군더더기가 없는 몸매였기에 빠질 살도 없어 더 그래 보였겠지만, 오늘 만나러 온 소이의 모습은 특유의 차도녀 같은 스타일이 아닌 평온함을 보여주는 미녀를 연출한 모습으로 얇은 흰색 나시티에 조금은 큰 와이셔츠 같은 하늘색 블라우스와 그 아래에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주름이 있다면 월남치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회색빛이 감도는 긴 치마는 소이란 여자의 평소 이미지와는 다른 부드럽고 따뜻해 보이는 순면으로 된 치마였다.

“...왜요?”
“아니.. 항상 정장스타일만 입고 다니는 모습만 봤는데..”
“이상한가요?”
“아니야.”
“사실...”

소이가 커피숍 안의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한 손을 올려 반쪽짜리 확성기 모양으로 살짝 구부려 내게 속삭이 듯 얘기한다.

“속에.. 아무것도 안 입고 왔거든요.”
“.....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이의 가슴으로 그리고 테이블에 가려진 허벅지 사이로 내 시선이 빠르게 움직인다.

“저... 정말 오팀장님이 그리워서 혼났다고요.”
“....”
“병원에서 누워있는데.. 오팀장님 물건이 자꾸 머릿속에서 아른거려서... 지금도 벌써 젖기 시작했어요..”

더 작게 목소리를 낮추며 큰 비밀처럼 더 바짝 다가와 소이가 속삭인다.
테이블에 바짝 기대어 숙인 허리로 인해 벌어진 티셔츠 안에 내 시선이 옮겨졌을 때 소이의 말대로 브래지어가 아닌 가슴과 유두가 가장 먼저 들어온다.

“우리.. 나가요.”
“....어디로?”
“우선 나가요. 저 급..해요.”
“알았어.”


이상하게 발기가 안 된다.
아니 발기를 못 시킨다.

모텔로 직행한 나와 소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오랜만에 회포를 풀 듯 격렬한 키스부터 시작했고 입을 때지도 않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재킷을 벗고 바지를 벗은 난 잘 풀어지지 않은 단추로 더디게 움직여지는 손을 내려다보게 된다. 치마와 큰 블라우슬 쉽게 벗은 소이가 내 손을 도와 내 와이셔츠를 벗기곤 날 침대위로 밀어 쓰러뜨렸다.

그리고 시작 된 오랜만의 소이식 애무에 간지러움과 흥분이 뒤섞인 간혈적인 숨소리를 내게 된 나였다.
작은 내 젖꼭지를 께물며 팬티를 능숙하게 벗기는 소이의 손놀림과 곧 입을 움직여 씻지도 않은 내 자지를 덥석 물기부터 한 소이의 행동..

분명 등골까지 전해지는 자극적인 소이의 혀 놀림과 입술의 오묘한 조임에 간혈적이고 탁한 숨소리를 뱉어내게 되었는데... 자지가 완전히 커지질 않는다.

정확히는 발기가 되긴 됐는데.. 강직도에 문제가 있었다.
크진 않지만 그래도 단단함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소이의 입속에 담긴 채 화려한 테크닉을 귀두에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자꾸 헛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불완전한 모습은 소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잠시 동안 입과 손으로 정성스럽게 애무하던 소이가 얼굴을 들어 날 쳐다본다. 실망스럽다거나 걱정된다는 표정이 아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날 올려다보며 소이가 입맛을 다시며 얘길 한다.

“많이 피곤해요?”
“....한숨도 못자서.. 그런가봐.”
“그랬구나..”
“...미안.”
“미안해하지 말아요. 이래서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걸요.”
“.....뭐?”

소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사랑이란 단어가 느닷없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난 크게 놀라게 된다. 단 한 번도 소이는 내게 좋아한다는 말조차 꺼낸 적도 없었다. 단지 좋았다는.. 육체적이고 동물적인 말만 되풀이 했을 뿐 내게 단 한 번도 감정적인 말은 해준 적이 없었기에 소이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당신이 여린 사람이라는 증거예요. 죄책감 때문에,,, 아무리 겉만 부부라고는 해도 긴 시간동안의 정이란 게 무섭잖아요. 같이 살아온 시간이 짧지도 않고.. 당신이 만약 아무 거리낌도 없이 아내 분을 내몰았다면 제가 먼저 떠났을 거예요. 지금 느끼는 감정이 당연한 거고 자연스러운 거니까.. 너무 당황해 하지 마세요.”
“그런....가?”
“그럼요. 솔직히 말 해봐요.”
“,...뭘?”
“민기란 남자하고 아내분이 같이 몸을 섞는대도 믿기지가 않았죠?”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 후회하기도 했고요.”
“....아니야. 후회는 무슨..”
“에이~ 다 알아요. 후회를 하면서도 그 행위를 말리거나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전 만족해요.”
“....”
“이미 당신이란 사람이 제 안에 있고 당신 안엔 제가 있는데 무슨 질투를 하겠어요.”
“...”
“왜 말이 없어요? 혹시 아니에요?”
“맞아... 솔직히 질투가 나긴 하더라고.. 평소 내 앞에서 보여준 적 없는 애교 섞인 모습하고,, 야하고 섹시한 자태를 담은 모습까지.. 그런 모습을 민기란 남자 앞에서 대놓고 보여주는 아내 때문에 짜증도 나고.. 화도 났고.. 지금까지 속고 살았던 거 같아서 배신감도 느꼈고.. 혹시나 나한테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내가 많은 걸 놓치고 살았던 건 아닌지... 후회도...”
“.......”
“그...그래도 당신이란 여자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결심이 흔들리질 않았어.”

소이의 말을 찬찬히 듣던 난 무의식에 숨겨놨던 속내를 털어놓게 된다.
나도 알지 못했던 속내를..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부정해 왔던 진실일지 모를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놨던 말을 털어놓듯 얘기하게 되었고 그런 나의 고백과도 같은 독백에 소이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는 걸 찰나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사랑해요.”
“.....미안. 괜히 나 때문에 당신까지 걱정스럽게 만들었나 보네.”
“걱정이라뇨. 전 앞으로 당신과 할 일이 더 많은걸요. 인생의 동반자로서, 그리고 사업의 동반자로서 저희가 지금처럼만 서로를 사랑하고 아낀다면 최고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는데 제 모두를 걸겠어요.”
“...그럴까?”
“그럼요!. 아~.. 말이 나온 김에.. 이번 입점 건은 어떻게 됐어요?”
“지금 윗선까지 보고는 올라갔고 검토 중이야.”
“당연히 저희가 우위에 있겠죠?”
“해봐야 알지.”
“......”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를 담은 시선으로 날 쳐다보는 김소이 팀장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
정확히 설명은 할 순 없었지만.. 아까의 시선엔 성욕이나 갈망이란 감정이 담겨 있었다면 정작 지금의 시선엔 갈망이 아닌 원망과 실망감등의 무수히 많은 감정이 교차하며 그런 감정들을 정작 숨기고 있는 소이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었다.

“해 봐야 안다는 건 무슨 말이죠?”
“물론 소이 쪽으로 거의 쏠린 상태고 나도 강력하게 추천했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만.. 이번 건에 대해서 사람들 이목도 많고, 관심도 많은 지 잘 알잖아. 보는 눈이 많으니까 최대한 공정한 모양새를 갖춰야 뒷말들이 없을..”
“공정?.. 언제부터 우리 사이에 공정이란 단어가 필요했죠?. 그리고 추천정도로는 약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분명 지금 김소이의 목소리에 냉랭함이 담겨 있었다.
내 표정의 변화를 발견한 소이는 금세 말을 바꿔 나긋하게 얘기하기 시작했지만 그 찰나에 듣게 된 그 냉소적인 말투가 쉽사리 잊히지 않는 잔상처럼 귀에 맴돌며 더 이상 그녀의 말속의 내용이 진정성 있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불안함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내 심리상태를 자신도 알아차렸는지 잠시 동안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고 간 후 내일을 기약하며 생각보다 일찍 그녀와 모텔에서 헤어지게 된다.
난 집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멈추곤 핸드폰의 통화 목록을 찾아 재발신을 누른다.

“접니다. 민기씨.”





“자꾸 사람 귀찮게 할래!?”
“...”
“내가 연락할 때까지 전화도 걸지 말라고 어제 말하지 않았나?”
“자꾸 생각이 나는 걸 어떻게 해요..”
“....”
“그런데.. 제가 귀찮아요?”
“...”

아내의 모습을 생각지도 못한 커피 전문점에서 보게 된다.
민기와 통화를 했고 먼저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본 건 나였었다. 잠시 뜸을 들인 민기는 한 시간 후 이곳에서 약속을 잡아 줬고 난 복잡한 머리를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채 약속시간보다 10여분 일찍 도착해 민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틀 밤 동안 거의 꼬박 잠을 이루지 못한 내 눈은 충혈 될 대로 되어있었고 퀭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다크 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거의 두 달 동안의 금욕생활과 그 탈출구라 할 수 있는 김소이란 여자와의 만남에서도 제대로 된 섹스를 못해 풀지 못한 성욕이란 욕구보다 더한 감정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아내의 신음소리와 애교를 부리던 모습.. 그리고 더 이상 여자가 아닌 가족이라 생각했던 아내의 전혀 예상치 못한 변신까지...
온통 김소이란 여자로 가득했던 머릿속에서 차츰 그 여자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다시 채워지는 이성으로 발견하게 된 사실은 섹스에 도가 텄고 테크닉에 남다른 소질을 갖고 있는 그녀에게 단 한 가지... 날 애틋이 대하는 그녀의 행동 속에서도 감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야 난 그녀의 도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용한다기보다는 몸을 주고 대가를 받는 창녀 같은 존재가 아닌 지...


복잡한 머릿속 때문인지 거의 잠을 못 잔 영향 때문인지 부서질 듯 한 두통을 느끼며 낮에 산 아스피린을 두 알을 입에 털어 넣던 내 시선에 문이 열리고 등장한 민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등장에 벌떡 일어서려던 난 뒤를 따라 들어오는 낯설지 않은 여자의 모습에 황급히 몸을 숨기게 된다.

아내였다.
삼십대 후반이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짧은 치마.. 아니.. 탄력이 줄긴 했지만 그보다 더 농후함이 묻어나는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아내의 짧은 미니스커트는 몸에 달라붙는 흰색의 스판으로 된 처음 보는 옷이었다. 팬티 라인이 돌출되어 그대로 보여지는 아내의 하반신에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을 때 아내를 내게 등이 보이도록 앉힌 민기가 눈인사라도 하는 지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아내와 대화를 시작했었다.


“정말이에요? 제가 귀찮아요?”
“..굳이 말하자면 귀찮다기보다는 내가 바쁘다.”
“.....그럼.”
“한 가지만 묻자.”
“...네?”
“날 사랑하니?”
“...”
“왜 말을 못하나?”
“잘.. 모르겠어요. 이제 겨우 일주일이 좀 넘었는데.. 이게 사랑인지..”
“잘 모르겠다?”
“갑자기 왜 이렇게 진지해져요. 좀 더 알아가면서 충분히 교감하는 시간이 많아질..”
“그게 사랑인지 성욕인지 분간 못 하는 건 아니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제가 그런 것도 분간 못할 바보로 보여요?”
“그러니까 묻잖아.”
“.....”
“솔직히 어제 보여줬던 네 모습.. 아이러니 하더라고. 아이러니가 이럴 때 쓰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러니라뇨?”
“뭐..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연극이라는 게 생각보다 무지 귀찮더라고 그리고 내 적성에도 안 맞고.”
“연..극이라뇨. 갑자기 무섭게 왜 이래요 민기씨..”
“당신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좀 다른 걸 기대했었지. 남편하고 삼 년 동안 별거상태에다가 행동하는 모습도 순진해 보였고, 괜히 잘 못 건드리면 상처 줄 거 같다는 죄책감도 잠시 들었고 말이야.”
“....”
“그런데 말이야.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내 물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분위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다는 직감에 숨는 것도 잊은 채 난 둘의 대화를 대놓고 듣게 된다. 민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걸 분명히 느꼈기에 더 바짝 다가가 둘의 대화에 집중을 했다.

“남들보다 좀 더 자신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뭐.. 크기도 크기지만 길이도 그렇고.”
“.....”
“그런데 너무 잘 들어가더라고.. 처음엔 오랜만에 느끼는 성욕이란 감정하고 반응하는 몸에 많이 젖어서? 라고 단순히 생각했었지. 반응도 그렇고 행동도 처음처럼 보여서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여자를 좀 많이 안아본 경험자로서 충고 한마디 해주는데.. 남자가 리드를 할 때에 말이야. 끝까지 순진한 척, 처음인 척 하려면 자세에 대해서 경험자처럼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척이라뇨. 전 정말 그런 짓은 해 본적도 없고 경험도 없..”
“화장실에서 서서 하는 체위에서 기억 안나나?”
“..무슨?”
“마주보고 서서하는 체위 말이야. 아리라는 여자한테 그 체위를 써 먹은 적이 있는데 말이야. 정말 처음인 여자는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자세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 자세로는 안 들어온다’고 걱정스럽게 말을 하거나 허벅지를 벌리는 행위는 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리고 벤치에 앉았을 때도 손가락으로 만져줬을 때 말이야.”
“....”

아내의 입이 굳게 다물어진 채 민기의 말도 안 되는 말에도 대꾸조차 없었다.

“허벅지를 조이면서 내 손을 거부하는 몸짓은 정말 좋았어. 까딱했으면 나도 넘어갈 뻔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삼개월동안 별거 상태인, 거기다가 자위까지 많이 안 해 봤다는 순진한 여자가 남자의 손이 닿자 그 손가락들을 보지로 인도하듯 허리를 굽히면서 까치발로 만지기 쉽도록 움직일 리도 없다는 거지.”
“착각하지 마세요.”
“착각이라...하긴 내가 깡패새끼지 제비새끼가 아니니 착각일수도 있지..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동생 놈한테 당신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뒷조사를 좀 시켜봤더니...”
“.....”
“휘유~~~ 요즘 유부녀들은 다 그런가?”

‘챙~. 퓨슝~’

“허~...”

민기의 말과 함께 시작된 긴 침묵을 깬 건 고급 듀퐁 라이타의 경쾌한 소리였다.
내게 뒤통수를 보여주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서 뿌연 연기가 덩어리지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코에 전해지는 이 냄새는 분명 익숙하고도 친근한 담배 연기의 향이 확실했다. 믿기지 않는 아내의 모습에 내 두 눈은 휘둥그레졌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런 낯선 아내의 모습보다 민기란 저 남자가 지금 이 커피 전문점 안에서 아내에게 한 방금 전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담배까지...”
“선수끼리 연극은 그만 하죠.”
“선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즘 돈 좀 있고 시간도 널널한 유부녀 치고 애인 한 둘 없는 여자 있나?”
“큭큭.. 멋지군.”
“어차피 내숭 안 떨어도 되니까 하는 말인데, 당신 섹스 하나는 일품이던데.. 우리 계속 만날래요?”
“아이고~ 누님! 진즉 말씀을 하시지.. 이렇게 나오시니 차라리 편하긴 하네.”“큭큭~ 나도 낯간지러워서 혼났어. 쌍팔년도 애송이도 아니고..”
“차라리 처음부터 대놓고 즐기자고 나오지 왜 연극 따위를 하셨나?”
“누굴 걸레로 아나.. 헤픈 여자처럼 처음부터 행동하면 남자들 행동은 뻔~~ 하더라고,, 뭐.. 당신 같은 깡패는 이런 관계가 더 자연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보통의 남자들은 안 그래.”
“그런가?”
“처음인 척,, 순진한 척 해주면서 애간장을 좀 태워줘야 남자들이 환장하고 달려들지.. 하긴 당신이란 남자는 좀 달랐지만.. 벤치에 앉아서 해주던 애무는 정말 끝내줬어. 스릴도 있었고... 말이 나온 김에 그 더러운 화장실이란 장소는 정말 최악이었지만 그런 생각들을 단번에 날려버릴 크기였고, 테크닉이어서 대만족이긴 했지만.. 역시 민증에 잉크가 좀 말라야 섹스란 걸 음미할 줄 안단 말이야.”
“...”
“젊고 어린 것들은 체력은 좋은데 뭐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렇지~ 누님이 뭘 좀 아시네. 나이가 너무 많으면 빌빌대고 너무 어리면 힘으로만 밀어 붙이는 게 문제지.”
“호호호호호호~.. 역시 내 눈이 정확하다니까..”
“그럼 가장 좋아하는 체위는 어제 같은?”
“체위는 별로 안 가리는데.. 음~~... 난 쓰리섬이 제일 좋더라.”
“켁켁...쓰리 뭐?”

민기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쓰리섬 몰라?. 2대 1!. 2란 숫자가 당연히 남자일 때가 좋지. 이게 맛을 들이면 한명하고는 죽었다깨어나도 제대로 못 느낀다니까.”
“뭐가 그렇게 좋은데?”
“우선 아줌마들이 환장하는 원 플러스원이잖아. ”
“뭐??큭큭..”
“윤리라는 걸 완전히 벗어버리고 두 남자한테 번갈아가면서 박히면.. 사정하면 끝인 남자는 절대로 그 느낌을 모를걸!”
“와우~.. 내가 예상했던 거 이상이시네. 아니!.. 이정도 일 줄은 전혀.”
“그러니까! 여자를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아내의 말이 시퍼런 칼날처럼 변해 내 가슴을 애린 고통을 주며 후벼 파기 시작한다.
정말로 난 여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항상 내 옆에 있던 여자가 누구였는지 이젠 확신도 못 할 충격에 빠지게 된다.

“아참~.. 궁금한 게 있는데..”
“...휴~~~”
“조사해보니 사년? 오년 전에는 집밖에 모르던 여자라고 조사되던데.. 왜 이렇게 변했냐?”
“큭큭.. 누가 그래? 오년 전에는 내가 순진했다고?”
“그럼??”
“하긴 신혼 초에는 멍청할 정도로 순진했었지.. 섹스란 게 뭔지도 몰랐고.. 집에서 정해준 지금 남편이란 남자가 전부인 줄 알았으니 당연히 그냥 섹스란 게 원래 그런 건 줄로 알았지. 그런데 원래란 건 없더라고..”
“....?”
“여자도 모이면 야한 얘길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아줌마들은 그 수위가 무지 심하다는 건?”
“..그런가?”
“처음엔 지 남편이 잘났다고 자랑하다가 친해지면 속내까지 다 털어 놓는 게 아줌마들이란 말이지. 우연찮게 친해진 단지 아줌마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가관도 아니야. 뭐~ 지 남편이 토끼라느니.. 차라리 손가락이 더 좋다느니.. 큭큭~ 그러다가 한 여편네가 지 남편껀 너무 커서 할 때마다 아프다고 자랑을 하더라고.. 그때까지도 많이 순진했는데.. 남자 자지가 다 거기서 거길 거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정말 아니더라고.”
“그럼 그때?”
“그 얼마 전에 동생하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내 몸이 잘못 된 건가..라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갑자기 확인이란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정말로 내 몸이 문제인지.. 아니면 남편이라는 사람이 문제인지.. 그래서 미친척하고 그 여편네 집에 좀 야하게 입고 놀러가서 유혹이란 걸 해봤지. 그땐 가슴이 얼마나 떨리던지...”
“진짜 순진했나보네.”
“호호~..그랬는데.. 처음 한 번이 무섭고 떨려서 그렇지.. 두 번은 그나마 덜 떨게 되고, 세 번째부터는 스릴까지 느끼게 되던데.”
“정말 대단하다. 남편이란 사람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 인간이야. 지만 계집질 한다고 생각하고는 나한테 뻔히 보이는 거짓말만 해 대면서 안 들켰다고 안도하기만도 급급해 했을 걸. 의심 살만한 행동도 집에 들어와야 의심을 받던가 말든가 하지.. 나야 뭐 대놓고 이놈 저놈하고 섹스하면서 즐겼으니 좋긴 했지만.. 어차피 쌤쌤 아닌가?”
“와우~.. 대단하네...”
“큭큭.. 그래서? 나 지금 당기는데 우리 모텔이라도 갈까?”
“그건 안 되겠는데..”
“왜? 그렇게 바빠? 화장실에도 못 쌌잖아. 나만 혼자 느껴서 미안했는데., 가자 내가 제대로 느끼게 해 줄..”
“선약이 있었거든.”
“.....선약??”
“응. 아!! 우선 내가 아는 여자 중에 당신하고 여러모로 참 비슷한 여자가 한명 있는데. 그 년을 지금 제대로 골탕 먹이려고 작정하고 있다는 걸 먼저 말해줄게! 하여튼 도와줘서 고맙다는 마음만은 진심인 걸 알아두시고~”
“갑자기 무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민기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똑바로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온다.
민기의 동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아내의 시선이 곧 나와 교차하듯 마주하게 된다. 정말로 크게 놀란 아내의 시선이 내 시야에 들어왔을 때.. 민기란 남자가 내 어깨를 두드리듯 얹고는 말을 한다.

“당신도 참.. 깝깝하고 답답하네..”

“여..여보!!!”

얼음처럼 굳어진 내 시선은 민기가 아닌 아내에게 꽂혀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질 알게 된 난 어제의 일도 잊은 채 아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게만 된다. 정말로 내가 알고 있던, 내가 아내라고 했던 여자가 맞는 지 확인이라도 하듯 난 그렇게 아내의 얼굴에서 시선을 때지 못한 채 갈라지고 떨리는 목소리를 안간힘을 써 진정시키며 어렵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평점심을 유지하려 애를 쓰며 민기에게 겨우 시선을 옮겨 말을 한다.

“사실을 알게 해 준건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하지만....”
“,,”
“이번 입점 건은 없었던 걸로 해야겠네요.”
“네?”
“단순히 제 아내와 섹스를 한 당신에 대한 감정이 아닙니다. 김소이 팀장도 그렇고.. 민기씨 당신도..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서운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괜히 잘못 엮였다가는 제 지위가 문제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다 쫑나게 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정식대로 입찰공고 올리고.. 제대로 경쟁 붙여서 가장 좋은 조건으로 낙찰받은 업체한테 규정대로 일을 처리해야 탈이 없을 거 같네요.”
“물론이죠. 아무리 윗대가리들이 밥 먹듯 규정을 어긴다고 저희까지 그래야겠습니까! 어차피 각오하고 벌인 일입니다.”
“이번 일로 민기씨 자리까지 위태로워 질 텐데.. 태평하시네요.”
“저야 뭐~.. 제 좌우명이 받은 대로 꼭 돌려줘라! 입니다. 자리가 문젭니까?”
“.....”
“그리고 이건 작은 제 선물입니다.”
“뇌물이라면 사양입니다.”
“뇌물이라고 하기엔 좀... 오팀장님 아내 되시는 분의 과거 전적입니다. 이정도 자료하고 분량이면 위자료가 문제가 아닐 겁니다. 아내 되시는 분의 집안이 대단하시다고 들었는데.. 운 좋게 건진 이런 사진과 영상이라면 과연 아내 되시는 분의 아버님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시네요.”
“...”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건 충곤데.. 김소이라는 여자랑 인연을 끊으십시오. 솔직히 당신이란 남자도 뭉개버리려다가 저 여자하고 그 김소이 년의 행동이 하도 괘씸해서 상대적으로 피해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곱게 놔두는 것뿐이니 앞으로는 똑바로 살란 말입니다.”

민기란 남자가 서류 봉투 한 뭉치를 건네곤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내게 인사를 한다.
이 상황 자체가 이해불가인 듯 아내는 아직도 사태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어벙벙한 표정으로 커피 전문점을 나가는 민기와 날 번갈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민기가 건네고 간 서류 봉투를 천천히 뜯어 안에 들어있는 종이들을 하나씩 쳐다보기 시작했을 때..

“여..여보... 내..내가 잘못했어요.. 정..정말 미친년처럼 여편네들 꼬임에 넘어가서 정신을 못..못 차렸어요... 내..내가 이렇게 빌게요.. 제발 아빠한테..아니! 우리 지금처럼 그냥 살아요.. 여보..내..내가 정말...”
“우리 이혼하자..”

멍때리고 있던 아내가 둔탁한 테이블 소리를 내며 내게 달려와 무릎을 꿇는다.

과연 아내에게 내가 질타를 할 자격이 있을지..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달려오다시피 뛰어와 무릎까지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하는 아내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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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여보세요?”
[너 어디야!?]
“누구~십니까?”
[이 미친 새끼야! 그게 얼마짜리 계약인 줄 알고 초를 쳐!!]

오팀장과의 일을 마무리 짓게 된 민기는 다음날인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비서실로 향했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홀가분한 마음으로 샤워까지 끝냈을 때 받고 싶지 않은 전화를 받게 된다.

“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야! 너 어디야! 넌 정말로 죽여 버릴..]
“참~~ 말 많네.. 아!.. 팀장 대리직이란 거 말이야. 좋던데.”
[너 이 새끼야! 헛소리 하지 말고 너 어디냐고!]
“날 왜 팀장 대리로 맡기냐고. 컴퓨터부터 데스크 금고까지 다 있는 그 영업부 팀장 사무실로 왜 끌어드려서 굳~~이 중요한 자료들을 다 넘겨주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던데.”
[무..뭐라고? 무슨 자료!?]
“김소이 팀장님 대단하시네.. 이거 외부로 유출되면 참 타격이 크시겠어요. 아니지.. 제 명에 못 사시겠네~”
[이....]
“국회의원에.. 대기업 임원부터 관련 주요 공무원들은 다 있던데.. 근데.. 솔직히 동영상은 토 나오더라. 그 돼지 같은 새끼는 더 이상 못 보겠더라. 비위도 좋아요. 울 김소이 팀장님은.”
[그걸..어..떻게...]
“조사대로라면 그 많은 정보가 존재 할 테고 그것들을 도대체 어디다가 보관할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당신 사무실부터 샅샅이 뒤지게 되더라고 남는 게 시간이고 널린 게 뒤질 곳이니.. 그런데 정말 대단하더군. 책상까지 손수 제작해서 이중 비밀 금고를 만들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걸랑. 덕분에 이틀이나 걸렸지만.. 뭐 노력보다 훨씬 대박이었으니 됐지.”
[대박...!?]
“아! 아리가 잘 쓰는 말이야. 그게 큰 박이란 말 같던데.. 뭐 엄청난 행운이란 뜻이겠..”
[지금 나랑 말장난 하자는 거야!?]
“아닌데.. 그런데 이게 발표 된다면 다치는 사람 꽤 많을 거 같은데.. 아닌가? 아~.. 이걸 찍힌 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우선 유포자부터 찾을라나? 아니네.. 원인자부터 찾아서 입막음부터 시키겠네? 나 같으면 우선 사고사로 원인제공자부터 먼저 처리하고 원본을 어떻게든 찾아서.. 아!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허위사실이라고 발뺌부터 하겠군.”

[민기씨.. 우리 만나서 얘기 좀 제대로 해요.]

김소이의 목소리가 간드러지듯 변해 회유를 시작한다.

[서로간의 오해의 골이 깊지만 민기씨랑 저랑 힘을 합치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 만해도 대단할 거 같지 않아요?]
“...”
[온 길이 가시밭이긴 했지만 중요한 건 미래잖아요. 그래.. 이번 입점 건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둘이서 힘을 합친다면 그런 백화점이 대수겠어요? 앞일을 생각해서 뭐가 최우선인지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답이 나올 텐데..]
“답이 나온 다라.. 하긴.. 나도 그 정도 사무실이라면 좀 혹할지도 모르겠더군.”
[사..사무실이요? 당연하죠! 제가 회장님한테 부탁만 하면 사무실은..]
“크크크크~”
[잘 생각해봐요. 제가 이런 제안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한 번의 선택이 평생 동안 당신이 살아갈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니주가리 시빠빠다 이년아!”
[......무..뭐라고요?]
“말 같은 소리를 하라고! 내가 뭐가 아쉽다고 네 년이랑 손을 잡냐!? 끊어 이년아!!!!!!”
[미..민기씨....]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민기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회사가 아리의 학교로 운전을 한다.


아리의 시간표를 꿰차고 있는 민기였기에 전공과목이 끝나려면 20분이나 남았다는 생각에 아쉬워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차안에서 담배에 하나 물고는 아리를 기다리게 된다.

학생들의 하교 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며 기다리던 민기는 차 안이라 느껴지는 답답함에 차에서 내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문에 기대어 팔짱을 끼곤 학생들과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대학교란 곳을 다녀 본 적 없는 민기였기에 그룹을 이뤄 재잘거리며 내려오는 여학생들의 모습부터 연인인 듯 나란히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오는 남녀의 모습까지 신기한 듯 쳐다보게 된다.

그런 평범한 일상들에 자신의 스무 살 때의 기억을 대입해보듯 떠올리게 된 민기는 자연스럽게 인상을 찡그리게 된다. 교도소, 뒷골목. 폭력..... 저런 수수한 여자들이 아닌 여자들까지....

걱정이 많다는 대학생들의 일상 속에서도 하굣길의 표정들은 대부분이 웃음을 띤, 그런 모습들의 평범한 웃음 앞에서 소소한 행복을 잊고 살았던 자신의 과거에 점점 더 굳어지는 표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김소이에게 제대로 복수를 했다는 기쁨도 잠시 괜한 고민과 추억에 빠져들기 시작한 민기는 서둘러 아리를 찾기 시작한다. 자신의 어둠을 밝게 비춰주는 아리의 존재를 찾아 눈을 더 크게 뜨고 언덕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드디어 아리를 발견하게 된다.

손을 올려 아리의 이름을 크게 외치려던 민기는 아리가 혼자가 아닌, 너무도 다정하게 얘길 나누며 언덕에서 내려오는 남자와 나란히 걸어 내려온다는 걸 알게 된다.

풋풋함이 묻어나는 하얀색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남자 모습에 검은색 정장으로 시커멓게 치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며 비교하게 된다.
서둘러 재킷을 벗어 아무렇게나 자동차 뒷좌석에 집어 던지고 와이셔츠의 소매까지 걷는 행동을 한다.

민기에겐 이런 행동이 최고의 멋을 내는 촌스러운 모습이었다.

소매를 걷고 있는 민기를 발견한 아리는 일순간 미소를 지으며 민기를 향해 손을 올려 흔들려다가 멈추곤 걸음을 옮기며 남자와의 대화에 다시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아리야.”
“...여긴 왜 왔어요?”

“누구세요?”

“나? 난...”
“오빠에요.”

“오빠?”
“네.. 친 오빠요.”

“치..친???”

“아!.. 안녕하세요. 체육학과 4학년 선우국민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국민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되라고 지어주신 이름인데... 기대에 못 미치고 체육학과에 입학해 수영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권민기라고 합니다.”
“네 안녕...권..이요?”

“응. 오빠랑 나랑 성이 달라요. 배다른... 이복 남매걸랑.”
“..그..그래?”
“좀 복잡해요. 울 집.”

“이..복......”

아리의 행동에 당황하게 된 민기였다.
차라리 김소이란 여자와 대적 했을 때가 더 편하다고 생각하며 느끼는 민기로 아리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적의 없는 행동에 아리를 빤히 바라보게 된다.

“어쩐 일이세요? 일이 디~~게 바쁘신 거 같던데.”
“끝났어.. 바쁜 거..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러 왔는데...”
“회사는요?”
“응?? 때려치울라고.”
“네에!!??? 갑자기 왜요!?”
“사고 쳤거든... 것두 대형사고.”
“미쳤어요!!!?”
“뭐가...”
“뭐냐는 말이 나와요!? 이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몇 군데를 거쳤는지 잊었어요!? 사람 상대하기 힘들다고 때려 치고, 사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두고, 동료랑 안 맞는 거 같다고.. 거기다가 커피 타는 게 힘들다고 때려 친게 누군데!!!!”
“.....”
“사고 안치고 잘 다닌다고 겨우 안심하고 있었는데...내가 못 살아...”
“....미안.”
“가요.”
“...뭐?”
“지금이라도 회사에 가자고요! 사장님한테 같이 싹싹 빌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아리가 옆에 있는 남자의 존재도 잊고는 민기의 소매를 잡아 끌고 가기 시작한다.

“600억이라고 했던가..”
“...예?”
“이번에.. 내가 회사에 끼칠 손해액이 앞으로.. 600억이 좀 넘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

아리의 표정이 멍해진다.
민기의 소매를 쥔 손에 여전히 꽉 힘을 준채로 아리는 얼음공주처럼 굳어버렸다.
옆에 서 있는 선우국민도 믿기지 않는 민기의 말에 같이 놀란 듯 씩씩대기 시작한 아리와 민기를 번갈아가 쳐다보게 된다.

‘퍽퍽’

“아..아야!!”
“내가 미쳐!!”
“아프다고..”
“아프긴 해요!?”
“아!!! 악!!!”

민기의 등과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던 아리가 조인트까지 발로 차 민기의 허리를 굽히게 만든다.
외발로 토끼처럼 제자리 뛰기를 하는 민기를 홀로 놔두고 아리가 민기의 차를 지나 그대로 내리막길을 성큼성큼 걸어내려 간다.

그런 아리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선우국민이 어리버리하게 민기에게 인사를 하곤 아리의 뒤를 쫓아 뛰어가는데,, 민기가 한 손으로 종아리를 어루만지며 아리의 이름을 크게 외치게 된다.

“아..아리야.. 안녕히 계세.. 가세요. 형님.”
“야! 윤아리!! 어디 가!?”




“속상하게 왜 밥도 안 먹고 다녀요...”
“후루룩~~쩝..훕훕.. 켁켁...응?”

중국집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은 아리와 민기다.
혼자 가버리려던 아리를 민기가 어렵게 잡아 멈춰 세우더니 배고 많이 고프다며 넉살좋게 웃어대며 이곳으로 끌고 왔다. 둘의 분위기에 선우국민은 동방으로 간다며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씹지도 않고 중국 음식들을 흡입하고 있던 민기가 사례가 걸리자 못마땅한 얼굴로 그런 민기를 쳐다보던 아리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걱정과 안타까움이란 감정을 얼굴 가득 담고는 민기의 등을 두드려 준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아리를 잘 알고 있는 민기에게 보일 뿐 보통 사람에겐 남자의 행동에 징그럽다는 표정을 한 아리가 아프게 민기의 등을 두드리는 모양새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밥도 안 먹고 뭐했어요... 얼굴도 다 상했네..”
“그제 저녁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네.”
“그러니까요!... 혼자 있다고 밥도 안 챙겨 먹고..”
“..누가 집....을 나가래?”
“....”
“넌 잘 먹고 잘 살았나보네.. 얼굴도 통통해 졌고..”
“부은 거예요. 잠을 못 자서..”
“왜?”
“왜긴 왜겠어요. 미희 고것 때문..이지..”
“미희가 왜?”
“아까 그 오빠랑 사귀는 사인데.. 얼마나 시끄럽게 놀던지..”
“그 오빠랑 사귄다고? 짱개가 아니고?”
“세영오빠가 왜요?”
“....둘이 사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세영 오빠랑요? 미희가요?”
“....응.”
“말도 안 돼!.. 국민 오빠랑 사귄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그 맹랑한 년이..”
“...또 욕!”
“그렇잖아. 참나.. 그럼 세영이는 뭐가 되냐?”
“오빠가 잘 못 알고 있는 걸 거예요.. 아무리 미희가 욕 잘하고 노는 거 좋아해도... 그런데 세영오빠랑 미희가 만난 적이 있었어요?”
“응.. 그 때 너 학교 일찍 갔을 때..”
“아~~.....”
“말을 한 건 아닌데 통화하는 눈치가 둘이 사귀는 게 분명했는데..”
“진짜 아닐 거예요.”
“내일 확인 해보지 뭐... 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리고 그 미친년한테는 왜 갔냐?”
“정말 미쳤는지 알았죠... 오빠 특기가 사람 미치게 하는 거잖아요!”
“말 함부로 해라!”
“아닌가?”
“너도 진짜 혼나 볼래?”
“피~ 하나도 안 무섭네요! 오빠는요?.. 나 안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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