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며 잠시 앉아 있던 황지연이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과 함께 굵은 음성의 남자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작게 들렸고 그녀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아빠! 나.. 아빠 딸...”
“응... 잘 있어.. 아빤?”
그녀는 일어나더니 수화기를 들고 카운터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면서 아빠와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난 그녀가 출입문 밖으로 걸어가는 걸 멍하니 보고 있다가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 졌고 어차피 식당 안에선 피울 수 없을뿐더러 황지연이 밖으로 나갔는데 나까지 나갈 수 없어서 그냥 그녀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었지만 7시 경부터 술을 빠른 속도로 마신 터라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5분쯤 시간이 흐른 후 그녀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난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계단참으로 나가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왜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왜?... 그냥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난 그냥 황지연이 만지작거리며 노는 장난감으로 남아 있으려 했는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너무 많은 부분까지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왜일까?...
그건 아마 황지연의 배경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화제로 아무거나 선택할 수 있지만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가 내면에 있는 이야기는 외적인 상황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에 편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 것이다. 자신의 아빠와 통화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아서는 그런 이야기들로 내게 반감이 생긴 것 같지는 않지만 난 그녀가 내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다른 액션들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황지연은 다리를 섹시하게 꼬고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턱을 괸 채로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말을 건네려다 황지연의 눈동자가 창가 쪽으로 고정되어 있는데다가 내 기척을 듣고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아서 난 그냥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따라 입으로 가져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홀 반대편 벽에 걸려 있는 시계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일어나요.. 갈 데가 있어요.”
응?... 존대? 뭐지?
“응? 그래... 바쁜 일이 생겼어?”
“아니요. 같이 갈 데가 있어요. 차 가지고 왔어요?”
“아니. 전철타고 왔어. 갈 때가 어딘데?”
“가보면 알아요.”
가보면 알아요. 황지연은 그 말을 아주 공손하고 조용한 말투로 읊조렸다. 넌 상관하지 말고 따라오기나 하라는 말투가 아니라 꼭 가야할 곳이 있으니 같이 가줬으면 하는... 갑작스러운 그녀 말투의 변화는 날 혼란스럽게 했는데 그래도 사무적인 말투로 들리지는 않아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황지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계산 했어요.”
난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잠깐 바라보았지만, 황지연은 시선을 살짝 피하더니 앞장서서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밖으로 나온 그녀가 4차선 도로가에 서서 택시를 불러 세웠는데 그냥 잠자코 그녀가 하는 대로 보고 있다가 함께 택시에 타자 황지연이 택시기사에게 신사동을 외쳤다.
10여분 쯤 차를 타고 가서 내린 곳은 남성복 맞춤 매장이었는데 그녀는 별 이야기도 없이 따라오라는 듯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9시를 가리키기 조금 전 이어서 그런지 우리 외엔 손님이 없었고 젊은 여자 매니저가 다가오자 황지연이 말을 건넸다.
“양복 좀 맞추려구요. 이왕이면 셔츠, 넥타이 그리고 어울리는 구두도요.”
“잠시만요. 원단부터 고르셔야 되요.”
표정이 밝아진 여자 매니저가 원단 샘플을 가지러 간 사이 난 황지연을 쳐다 봤는데 그녀는 정장들이 걸려 있는 마네킨들 앞에 서서 위 아래를 흩어 보면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난 이 상황을 나름 해석하려 머리를 굴려 봤지만 전혀 감도 잡히지가 않았다. 갑자기 날 폼나게 차려 입히고 싶었나본데 이유가 뭐지?
황지연은 매니저와 함께 내게 몇 가지 정장을 입혀보더니 그 중에서 짙은 청색 바탕에 옅은 체크 무늬가 들어있는 정장을 주문한 후 어울리는 셔츠와 넥타이를 몇 개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추천을 받은 셔츠와 넥타이 들 중 두 개 씩을 고른 후 구두와 벨트, 양말까지 한참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에게 점장으로 보이는 40대 중반의 남자가 다가와 카라, 커프스, 포켓 모양과 단추를 고르게 하더니 사이즈를 재기 시작했다. 몇 분간 그가 하라는 대로 팔과 다리를 벌려주며 협조하고 여자 매니저가 주는 구두를 신어보고 대충 맞는다고 했더니 황지연이 언제쯤 옷이 되는지 물었다.
일주일 후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황지연은 집 주소를 적어주고 그리로 보내달라고 한 후 카드를 꺼내 124만원을 일시불로 계산을 했다. 잠시 후 그녀는 여자 매니저와 점장의 감사하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이내 자신의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매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난 그녀와 약간 떨어진 곳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았는데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택시를 잡기 위해서인지 도로가에 서 있는 황지연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며 그녀 곁으로 다가갔더니 황지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벌써 들어가야 되는 건 아니죠?”
“응? 으응.. 그러긴 한데...”
“그럼...? 옷 맞춘 것 때문에 그래요?”
“아무 말도 안하고 갑자기 그런 거잖아. 왜 이러는 건지 궁금하던 참이야.”
“일단 택시 오면 타요. 좀 있다 이야기 해줄게요.”
잠시 후 우리가 영동대교를 건너 도착한 곳은 광진구에 있는 현대 2차 아파트, 황지연의 집이었다. 난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해야 했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날 왜 여기까지 데려온 거지?
그녀의 아파트 동 입구에서 내렸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그녀는 출입구에 있는 자동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는데 문이 열렸고 그제서야 황지연은 나를 돌아보며 이야기 했다.
“들어가도 돼요. 내가 사는 곳이예요.”
차가 두 대더니 집도 두 군데. 강원도에 있는 집은 뭐고 여기 있는 집은 또 뭐냐? 들어갔다가 이유성과 만나게 되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막 나가는 여자는 아니지만...
말없이 그녀와 엘리베이터를 탔고 15층에서 내려 현관문 앞에 섰다.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 줄래요. 잠깐이면 돼요.”
“응.. 천천히 해.”
나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게 뭘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결혼 사진. 그 다음엔 제복. 그 다음엔 쓰레기. 설거지해야 하는 그릇들. 속옷...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문이 열렸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 입은 황지연의 뒤를 따라가자 신발장이 있었고 오른 쪽에 투명한 미닫이 문 너머로 거실이 보였다. 내가 거실에 있는 파란색 소파에 앉자 그녀가 묻는다.
“뭐... 마실래요? 술 한 잔 더 할까요? ... 아님... 커피?”
“커피 마실게. 아 그리고 베란다에서 담배 펴도 돼?”
“잠깐만요. 재떨이 가져다줄게요. 여기서 펴요.”
그녀가 작은 재떨이를 가져다주었고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자니 거실에서 바로 보이는 주방에서 황지연이 커피 두 잔을 내왔다. 그녀는 몸에 달라붙는 타이즈와 약간 풍성한 느낌을 주는 오렌지색 반팔 티셔츠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집에서 입는 편한 복장인 듯 자연스럽게 보였고 커피 한 잔을 내 앞에 놓더니 이내 자신의 커피 잔을 들고 내 옆에 앉았다.
벽걸이형 TV가 우리들 앞에 있었지만 켜지 않은 채 잠시 커피를 마시다 내가 물었다.
“혼자 사는 집 치고는 꽤 큰데...”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원래부터 혼자 살던 집은 아니고.. 여기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죠. 그 사람이 집을 나간 지 꽤 됐어요. 그 이후부터 여기서 밤을 보낸 적은 별로 없어요. 이 공간에서 밤에 혼자 있으면 왠지 더 처량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낮에 잠깐 들려서 청소나 정리 좀 하고 다시 가곤 했어요.”
"그럼 지금 사는 곳은 다른 곳인가 보네.”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가 하나 더 있어요. 주로 거기서 지내죠.”
난 신혼살림. 직장... 이런 말 뒤에 따라 붙을 대답이 좀 애매할 것 같아 입을 다물었고 황지연 역시 별 이야기 없이 커피만 마시고 있었는데 처음에 들어왔을 때 약간 썰렁했던 거실이 어느 정도 온기가 올라와서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쇼파 옆에 걸쳐 두었다. 그녀가 그걸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깐 황지연이 자리를 비운 사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는데 오디오 세트, 장식장이 눈에 들어왔고 바닥이 고급스러운 원목 소재로 깔려 있는 것과 베란다에 빨래가 전혀 걸려 있지 않다는 것 외에는 별다르게 눈길을 끄는 것은 없었다.
오늘 그녀와 나의 만남이 모텔로 이어지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굳이 날 이 공간으로 데려올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아까 내 정장을 맞춘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 계속 존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무 일 없는 듯한 표정으로 안방에서 나온 황지연은 다시 내 옆에 앉았고 난 그녀에게 이야기 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아까 내 옷을 맞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아.. 그 이유요?... 음.... 아저씨가 그 옷을 입어 줬으면 해서요.”
“응?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 옷을 입고 날 기다려줘요. 그럼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난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뻔히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해줄게요. 그런데 오늘은 안아주지 않고 이야기만 할 거예요?”
황지연이 그 말을 하며 내게 몸을 기대왔다. 여인의 향기가 코 끝에서부터 온 몸으로 퍼져왔다. 난 그녀의 어깨와 위팔을 살며시 어루만지다 타이즈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숱이 적은 치모가 보드랍게 만져졌고 언덕 사이의 습하게 갈라진 곳이 손가락 끝에 느껴졌을 때 황지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하아.. 아아.. 하아’
내 머릿속을 맴돌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그녀의 숨소리에 묻혀 사라져버렸고 난 그녀를 일으켜 가랑이 사이에 앉힌 후 뒤에서 그녀의 목을 핥으며 오른 손으로 타이즈 안의 계곡 사이를 계속 더듬었다. 손가락 사이에 그녀의 샘물이 묻어 나오자 난 오른 손을 빼고 그녀의 반팔티를 벗기려 했는데 그 때 그녀가 말했다.
“침대로 가요.”
그 곳은 이유성과 자신이 사랑을 나누던 장소인데... 그 곳에서?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화장대가 보였고 더블 사이즈의 침대가 있었다. 하얀 시트 위에 하얀 색 이불 그리고 두 개의 벼개.. 난 그녀를 침대에 눕혀 둔 후 잠시 씻고 온다고 이야기를 한 후에 바지와 셔츠를 벗고 속 옷 차림으로 안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원래 난 여자가 달아올랐을 때 샤워를 하며 시간을 끌지는 않지만 그런 걸 따지기엔 황지연과의 만남이 오늘 처음도 아닌데다가 갑작스럽게 내 정장을 맞추고 자신과 이유성의 집으로 데려오고... 거기다 거실도 아닌 침대위에서의 정사를 원하는 그녀의 모습이 좀 낯설게 다가오고 있었다.
‘황지연이 이유성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밀어내려 하고 있다. 다른 여자와 정사를 하는 것을 보고도 몰래 숨을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였던 이유성을... 그리고 그 자리에 나를? 이게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언젠가 나를 1회용 밧데리 취급했다고 그녀 앞에서 시위하듯 김유미와 정사를 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시작된 그녀와의 만남에서 난 그녀가 심심할 때 쳐다봐주는 것에 만족한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으로 남으려 했는데... 이젠 황지연이 날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 버리는 걸 걱정해야 한다.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커플인데다 난 유부남이다. 이유성의 빈자리에 대한 상실감때문에 그녀의 사회적 지위나 미모, 재산 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 황지연은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몇 수 앞을 보는 게 아니라 계속 받아주다 형세가 여의치 않자 우지끈 끊고 나서 생각해보려거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샤워를 하다 물기를 닦고 옷을 벗은 채로 밖으로 나가 그녀 옆으로 가서 누웠다.
너무 자연스러운 몸짓들이 이어졌고 황지연의 습지에선 따뜻한 샘물들이 흘러 넘쳤다. 그녀는 내 목 뒤로 팔을 뻗어 날 껴안고 자신의 몸속을 내가 무아지경으로 헤엄을 칠 수 있도록 한껏 다리를 벌렸다.
지금까지 황지연과 있었던 몇 번의 정사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그녀의 눈빛과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그녀는 몇 개월 동안 타지에서 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안기는 것처럼 내 품을 파고들었고 그윽한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계속해서 물러서던 그녀가 끊고 버텨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반상위에 멀리 내가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날 응원해줄 것이다.
일단 끊고 뻗은 후에 내가 놓여 있는 곳을 향해 한 칸 뛰어 보자.
연결이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나도 곤마는 아니다.
절정의 순간이 다가 오고 직전에 갑자기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안에다 해도 돼요. 안전한 날이에요.”
윽! 그 말을 듣기 전에 그녀 몸 안의 은은한 압력을 느끼며, 지금까지 황지연에게 가졌던 복잡한 생각들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그 한마디로 또 다른 시나리오가 스친다. 어쨌든 지금은 몇 초 후에 밖으로 나올 정액들을 그녀의 몸 위로 쏟아내고 다른 변명들을 늘어놓으며 어색한 시간을 만들 수는 없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움직여 여인의 몸속에 머얼건 액체를 토해낸 내 분신이 자그마한 모습으로 밀려 나온 이후 난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누운 채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안전한 날?
그 말이 사실이라면 황지연에게 난 휴지로 닦아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몸 안에 아니 마음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무언가 일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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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리게 됐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게으름이죠... 회사 컴퓨터가 소라를 들어갈 수 없게 차단하게
된 것도 이유긴 하지만... 요새 PC방 와본지가 한참 되었는데 오늘은 글을 올리려고 잠깐 들렀습니다.
회사에서 쓰고 제 메일로 보내고 PC방와서 메일 열고...
성격이 한 번 시작하면 그만두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하다가 좀 쉬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이 소설의 완결이
언제 끝나게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ㅎㅎ...
“아빠! 나.. 아빠 딸...”
“응... 잘 있어.. 아빤?”
그녀는 일어나더니 수화기를 들고 카운터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면서 아빠와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난 그녀가 출입문 밖으로 걸어가는 걸 멍하니 보고 있다가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 졌고 어차피 식당 안에선 피울 수 없을뿐더러 황지연이 밖으로 나갔는데 나까지 나갈 수 없어서 그냥 그녀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었지만 7시 경부터 술을 빠른 속도로 마신 터라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5분쯤 시간이 흐른 후 그녀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난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계단참으로 나가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왜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왜?... 그냥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난 그냥 황지연이 만지작거리며 노는 장난감으로 남아 있으려 했는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너무 많은 부분까지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왜일까?...
그건 아마 황지연의 배경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화제로 아무거나 선택할 수 있지만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가 내면에 있는 이야기는 외적인 상황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에 편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 것이다. 자신의 아빠와 통화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아서는 그런 이야기들로 내게 반감이 생긴 것 같지는 않지만 난 그녀가 내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다른 액션들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황지연은 다리를 섹시하게 꼬고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턱을 괸 채로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말을 건네려다 황지연의 눈동자가 창가 쪽으로 고정되어 있는데다가 내 기척을 듣고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아서 난 그냥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따라 입으로 가져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홀 반대편 벽에 걸려 있는 시계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일어나요.. 갈 데가 있어요.”
응?... 존대? 뭐지?
“응? 그래... 바쁜 일이 생겼어?”
“아니요. 같이 갈 데가 있어요. 차 가지고 왔어요?”
“아니. 전철타고 왔어. 갈 때가 어딘데?”
“가보면 알아요.”
가보면 알아요. 황지연은 그 말을 아주 공손하고 조용한 말투로 읊조렸다. 넌 상관하지 말고 따라오기나 하라는 말투가 아니라 꼭 가야할 곳이 있으니 같이 가줬으면 하는... 갑작스러운 그녀 말투의 변화는 날 혼란스럽게 했는데 그래도 사무적인 말투로 들리지는 않아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황지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계산 했어요.”
난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잠깐 바라보았지만, 황지연은 시선을 살짝 피하더니 앞장서서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밖으로 나온 그녀가 4차선 도로가에 서서 택시를 불러 세웠는데 그냥 잠자코 그녀가 하는 대로 보고 있다가 함께 택시에 타자 황지연이 택시기사에게 신사동을 외쳤다.
10여분 쯤 차를 타고 가서 내린 곳은 남성복 맞춤 매장이었는데 그녀는 별 이야기도 없이 따라오라는 듯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9시를 가리키기 조금 전 이어서 그런지 우리 외엔 손님이 없었고 젊은 여자 매니저가 다가오자 황지연이 말을 건넸다.
“양복 좀 맞추려구요. 이왕이면 셔츠, 넥타이 그리고 어울리는 구두도요.”
“잠시만요. 원단부터 고르셔야 되요.”
표정이 밝아진 여자 매니저가 원단 샘플을 가지러 간 사이 난 황지연을 쳐다 봤는데 그녀는 정장들이 걸려 있는 마네킨들 앞에 서서 위 아래를 흩어 보면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난 이 상황을 나름 해석하려 머리를 굴려 봤지만 전혀 감도 잡히지가 않았다. 갑자기 날 폼나게 차려 입히고 싶었나본데 이유가 뭐지?
황지연은 매니저와 함께 내게 몇 가지 정장을 입혀보더니 그 중에서 짙은 청색 바탕에 옅은 체크 무늬가 들어있는 정장을 주문한 후 어울리는 셔츠와 넥타이를 몇 개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추천을 받은 셔츠와 넥타이 들 중 두 개 씩을 고른 후 구두와 벨트, 양말까지 한참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에게 점장으로 보이는 40대 중반의 남자가 다가와 카라, 커프스, 포켓 모양과 단추를 고르게 하더니 사이즈를 재기 시작했다. 몇 분간 그가 하라는 대로 팔과 다리를 벌려주며 협조하고 여자 매니저가 주는 구두를 신어보고 대충 맞는다고 했더니 황지연이 언제쯤 옷이 되는지 물었다.
일주일 후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황지연은 집 주소를 적어주고 그리로 보내달라고 한 후 카드를 꺼내 124만원을 일시불로 계산을 했다. 잠시 후 그녀는 여자 매니저와 점장의 감사하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이내 자신의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매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난 그녀와 약간 떨어진 곳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았는데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택시를 잡기 위해서인지 도로가에 서 있는 황지연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며 그녀 곁으로 다가갔더니 황지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벌써 들어가야 되는 건 아니죠?”
“응? 으응.. 그러긴 한데...”
“그럼...? 옷 맞춘 것 때문에 그래요?”
“아무 말도 안하고 갑자기 그런 거잖아. 왜 이러는 건지 궁금하던 참이야.”
“일단 택시 오면 타요. 좀 있다 이야기 해줄게요.”
잠시 후 우리가 영동대교를 건너 도착한 곳은 광진구에 있는 현대 2차 아파트, 황지연의 집이었다. 난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해야 했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날 왜 여기까지 데려온 거지?
그녀의 아파트 동 입구에서 내렸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그녀는 출입구에 있는 자동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는데 문이 열렸고 그제서야 황지연은 나를 돌아보며 이야기 했다.
“들어가도 돼요. 내가 사는 곳이예요.”
차가 두 대더니 집도 두 군데. 강원도에 있는 집은 뭐고 여기 있는 집은 또 뭐냐? 들어갔다가 이유성과 만나게 되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막 나가는 여자는 아니지만...
말없이 그녀와 엘리베이터를 탔고 15층에서 내려 현관문 앞에 섰다.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 줄래요. 잠깐이면 돼요.”
“응.. 천천히 해.”
나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게 뭘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결혼 사진. 그 다음엔 제복. 그 다음엔 쓰레기. 설거지해야 하는 그릇들. 속옷...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문이 열렸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 입은 황지연의 뒤를 따라가자 신발장이 있었고 오른 쪽에 투명한 미닫이 문 너머로 거실이 보였다. 내가 거실에 있는 파란색 소파에 앉자 그녀가 묻는다.
“뭐... 마실래요? 술 한 잔 더 할까요? ... 아님... 커피?”
“커피 마실게. 아 그리고 베란다에서 담배 펴도 돼?”
“잠깐만요. 재떨이 가져다줄게요. 여기서 펴요.”
그녀가 작은 재떨이를 가져다주었고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자니 거실에서 바로 보이는 주방에서 황지연이 커피 두 잔을 내왔다. 그녀는 몸에 달라붙는 타이즈와 약간 풍성한 느낌을 주는 오렌지색 반팔 티셔츠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집에서 입는 편한 복장인 듯 자연스럽게 보였고 커피 한 잔을 내 앞에 놓더니 이내 자신의 커피 잔을 들고 내 옆에 앉았다.
벽걸이형 TV가 우리들 앞에 있었지만 켜지 않은 채 잠시 커피를 마시다 내가 물었다.
“혼자 사는 집 치고는 꽤 큰데...”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원래부터 혼자 살던 집은 아니고.. 여기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죠. 그 사람이 집을 나간 지 꽤 됐어요. 그 이후부터 여기서 밤을 보낸 적은 별로 없어요. 이 공간에서 밤에 혼자 있으면 왠지 더 처량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낮에 잠깐 들려서 청소나 정리 좀 하고 다시 가곤 했어요.”
"그럼 지금 사는 곳은 다른 곳인가 보네.”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가 하나 더 있어요. 주로 거기서 지내죠.”
난 신혼살림. 직장... 이런 말 뒤에 따라 붙을 대답이 좀 애매할 것 같아 입을 다물었고 황지연 역시 별 이야기 없이 커피만 마시고 있었는데 처음에 들어왔을 때 약간 썰렁했던 거실이 어느 정도 온기가 올라와서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쇼파 옆에 걸쳐 두었다. 그녀가 그걸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깐 황지연이 자리를 비운 사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는데 오디오 세트, 장식장이 눈에 들어왔고 바닥이 고급스러운 원목 소재로 깔려 있는 것과 베란다에 빨래가 전혀 걸려 있지 않다는 것 외에는 별다르게 눈길을 끄는 것은 없었다.
오늘 그녀와 나의 만남이 모텔로 이어지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굳이 날 이 공간으로 데려올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아까 내 정장을 맞춘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 계속 존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무 일 없는 듯한 표정으로 안방에서 나온 황지연은 다시 내 옆에 앉았고 난 그녀에게 이야기 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아까 내 옷을 맞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아.. 그 이유요?... 음.... 아저씨가 그 옷을 입어 줬으면 해서요.”
“응?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 옷을 입고 날 기다려줘요. 그럼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난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뻔히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해줄게요. 그런데 오늘은 안아주지 않고 이야기만 할 거예요?”
황지연이 그 말을 하며 내게 몸을 기대왔다. 여인의 향기가 코 끝에서부터 온 몸으로 퍼져왔다. 난 그녀의 어깨와 위팔을 살며시 어루만지다 타이즈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숱이 적은 치모가 보드랍게 만져졌고 언덕 사이의 습하게 갈라진 곳이 손가락 끝에 느껴졌을 때 황지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하아.. 아아.. 하아’
내 머릿속을 맴돌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그녀의 숨소리에 묻혀 사라져버렸고 난 그녀를 일으켜 가랑이 사이에 앉힌 후 뒤에서 그녀의 목을 핥으며 오른 손으로 타이즈 안의 계곡 사이를 계속 더듬었다. 손가락 사이에 그녀의 샘물이 묻어 나오자 난 오른 손을 빼고 그녀의 반팔티를 벗기려 했는데 그 때 그녀가 말했다.
“침대로 가요.”
그 곳은 이유성과 자신이 사랑을 나누던 장소인데... 그 곳에서?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화장대가 보였고 더블 사이즈의 침대가 있었다. 하얀 시트 위에 하얀 색 이불 그리고 두 개의 벼개.. 난 그녀를 침대에 눕혀 둔 후 잠시 씻고 온다고 이야기를 한 후에 바지와 셔츠를 벗고 속 옷 차림으로 안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원래 난 여자가 달아올랐을 때 샤워를 하며 시간을 끌지는 않지만 그런 걸 따지기엔 황지연과의 만남이 오늘 처음도 아닌데다가 갑작스럽게 내 정장을 맞추고 자신과 이유성의 집으로 데려오고... 거기다 거실도 아닌 침대위에서의 정사를 원하는 그녀의 모습이 좀 낯설게 다가오고 있었다.
‘황지연이 이유성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밀어내려 하고 있다. 다른 여자와 정사를 하는 것을 보고도 몰래 숨을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였던 이유성을... 그리고 그 자리에 나를? 이게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언젠가 나를 1회용 밧데리 취급했다고 그녀 앞에서 시위하듯 김유미와 정사를 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시작된 그녀와의 만남에서 난 그녀가 심심할 때 쳐다봐주는 것에 만족한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으로 남으려 했는데... 이젠 황지연이 날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 버리는 걸 걱정해야 한다.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커플인데다 난 유부남이다. 이유성의 빈자리에 대한 상실감때문에 그녀의 사회적 지위나 미모, 재산 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 황지연은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몇 수 앞을 보는 게 아니라 계속 받아주다 형세가 여의치 않자 우지끈 끊고 나서 생각해보려거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샤워를 하다 물기를 닦고 옷을 벗은 채로 밖으로 나가 그녀 옆으로 가서 누웠다.
너무 자연스러운 몸짓들이 이어졌고 황지연의 습지에선 따뜻한 샘물들이 흘러 넘쳤다. 그녀는 내 목 뒤로 팔을 뻗어 날 껴안고 자신의 몸속을 내가 무아지경으로 헤엄을 칠 수 있도록 한껏 다리를 벌렸다.
지금까지 황지연과 있었던 몇 번의 정사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그녀의 눈빛과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그녀는 몇 개월 동안 타지에서 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안기는 것처럼 내 품을 파고들었고 그윽한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계속해서 물러서던 그녀가 끊고 버텨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반상위에 멀리 내가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날 응원해줄 것이다.
일단 끊고 뻗은 후에 내가 놓여 있는 곳을 향해 한 칸 뛰어 보자.
연결이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나도 곤마는 아니다.
절정의 순간이 다가 오고 직전에 갑자기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안에다 해도 돼요. 안전한 날이에요.”
윽! 그 말을 듣기 전에 그녀 몸 안의 은은한 압력을 느끼며, 지금까지 황지연에게 가졌던 복잡한 생각들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그 한마디로 또 다른 시나리오가 스친다. 어쨌든 지금은 몇 초 후에 밖으로 나올 정액들을 그녀의 몸 위로 쏟아내고 다른 변명들을 늘어놓으며 어색한 시간을 만들 수는 없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움직여 여인의 몸속에 머얼건 액체를 토해낸 내 분신이 자그마한 모습으로 밀려 나온 이후 난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누운 채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안전한 날?
그 말이 사실이라면 황지연에게 난 휴지로 닦아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몸 안에 아니 마음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무언가 일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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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리게 됐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게으름이죠... 회사 컴퓨터가 소라를 들어갈 수 없게 차단하게
된 것도 이유긴 하지만... 요새 PC방 와본지가 한참 되었는데 오늘은 글을 올리려고 잠깐 들렀습니다.
회사에서 쓰고 제 메일로 보내고 PC방와서 메일 열고...
성격이 한 번 시작하면 그만두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하다가 좀 쉬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이 소설의 완결이
언제 끝나게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ㅎㅎ...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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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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