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후 서울역을 출발한 동대구 도착 KTX 가 역내에 진입하겠습니다."
살풋 들었다고 생각한 잠이 꽤 깊었나보다.도착한다는 안내방송에 허겁지겁 대나무장식이 된 핸드백을 고쳐 쥐고는 나갈 채비를 하였다.뽀얀 얼굴이 대비되는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그녀는 멍하니, 서서히 멈춰가는 기차밖을 응시했다.
"아줌마가 내려와요.나 오피스텔도 얻었어.아줌마 때문에."
"잉? 내가 ?? 내가 어떻게 대구까지 내려가?? 나, 그냥 살림하는 주부야, 무슨 핑계가 있다고 그 먼데까지 가,무리야"
몇일전 걸려온 그 아이의 전화 한통.
여자로써의 삶을 요구하는 끈적한 모습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막상 쉽지 않은걸 알기에 일단 달래본다.
"정훈, 너가 좀 시간내서 오면 안돼?? 아줌마가 혼자서 거기까지 어떻게 가, 너가 가끔 와.응?? "
"아니, 나 이제 아줌마집에 안 갈거야.불편해, 내가 보고싶으면 아줌마가 와.여기서 편하게 놀자,안 오면 할 수 없고,지금도 전화 한통이면 금방 이리로 올 애들은 얼마든지 있어.아줌마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나 좋다는 여자들 꽤 많거든, 사흘줄게. 그 안에 안 오면 다신 안 봐.그리곤 내가 질펀하게 노는 모습 찐하게 찍어서 보여주지.막 나갈거야.내, 인생이니까, 아줌마가 알아서 해,끊는다, 주소는 문자로 보낼게"
"아줌마 비어있쟎아,거기서 혼자서는 이제 못 채우쟎아,살 수 있겠어,나 없이?"
"니가 뭘 안다고 나한테 그런말을 해?? 잠 몇번 자줬다고 뭘 크게 착각하나 본데"
"그래? 그럼 그렇게 살아,여태껏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체 그렇게 멍하니 살아"
"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그렇게 살아왔는지,고작 스물살짜리 꼬맹이가 어떡해 알아?? 니가 안다고?? 내 삶을?? 건방떨지마"
"늘어뜨린 팔과 촛점없는 시선,들떠있기만 하지 알맹이 없는 말투,한번만 봐도 딱 알아, 아줌마는 바라는게 죄인것처럼 살아왔다는거,내가 그렇거든.그러니까 한번에 알아볼 수 있어."
"난,아줌마가 필요해, 하지만 아줌마만 필요하지는 않아,난 젊고 제법 생겼고 돈도 꽤 있고,의대생 타이틀도 있고,손만 뻗치면 대용품 정도는 구할수 있어.근데 아줌마는 나 말고 있어?? 채워줄 사람??"
"우리,정우가 있어, 너같이 일방적이고 싸가지없고 은혜도 모르는 놈하고는 차원이 다른 착한, 우리 아들 정우가 있어.건방떨지마"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아들이랑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어쨌든 한번 뱉은 말이니까 난 지킬게.사흘.출발하면 문자 해, 멋진 모습으로 마중나갈게"
"안 가,기다리지마, 니가 와도 이젠 안 만나줄거야.나쁜 놈,밉상 자식"
... 통화종료...
하루동안은 괜챦았다.아들도 시험을 마치고 좀 일찍 들어오기 시작했고 남편도 집에 다녀가서 그럭저럭 살만했다.아니구나, 더 절망했다는 표현이 맞겠구나.예전에는 그저 당연한듯 받아들였던 이 안일함과 지루함이 이젠 지옥처럼 느껴졌고 배고픔을 느꼈다.그리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설마, 이대로 뚝 관계를 끊을까.그 애가? 하긴 그 아이의 말이 다 맞긴 했다.그는 젊고 빛나고 남자답고 눈부시기에 손만 뻗으면 쥘 수 있는 수 많은 쵸이스들이 있다.그걸 거부할정도로 날 향한 일편단심을 할 아이는 아니다.불가능하다.오히려 다 늙은 지금의 나를 왜 좋아하는지 그게 궁금하다.연상녀에 대한 로망,친구의 엄마를 탐한다는 배덕감, 우연히 알게된 섹스궁합?? 그게 뭐든 ,그게 아무리 좋은들 스무살의 그가 참지 않을것이라는건 확실하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아들은 첫 앰티를 떠난다고 새벽부터 나가버렸다.술 적당히 먹으라고 협박도 해봤지만 이미 정신이 딴데 팔려있었다.소귀에 경 읽기 그만하자.제발 사고만 안치고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배웅해주었다.
아들이 떠난후 8시도 안된 아침, 홀로 남게 된 집에 앉아 리모콘으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티브이로 정신을 돌리려했지만 어느새 티브이는 꺼버렸고 난 팔을 쭈욱 늘어뜨린체 정원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보오, 나야, 많이 바빠?? 주말에 서울 올거지??"
"아니, 오늘 저녁에 통관되는 물건들이 많아서 담주초까지 인천에 있어야겠는데,미안"
"그렇구나, 인천숙소에 뭐 먹을건 있어?? 내가 좀 뭐라도 해갈까?? 뭐 먹고싶어??"
"아냐, 계속 확인해야 해서 곤란해,내가 알아서 할게,걱정 마. 아,그리고 내가 통장에 보너스 좀 넣어놨으니 쇼핑이라도 실컷 해.미용실도 좀 가서 기분 좀 내고, 알았지?? 연락할게."
"그래, 알았어,너무 무리하지 말고, 보너스 잘 쓸게."
바보,아니.맹인인가,그 머리 그 날 미용실가서 한 머리야, 축 늘어져 있던 긴 머리,커트까지 하고 염색하고 웨이브 굵은 퍼머까지 했는데.도데체 뭘 본거니.
"아들,잘 가고 있어? 과음 안돼.종종 안부카톡해."
"도착했어?"
"점심은 먹었어? "
"저녁에 비 온데, 우산 챙겨"
"왜 답장이 없어??"
"아들,엄마걱정하니 종종 카톡해"
수십개를 보내도 앞에 붙은 숫자 1은 없어지질 않았다.누가 이런 잔인한 시스템을 만든걸까?? 너 외면받고 있어,콕 집어서 이렇게까지 얘기해줄 필요 없쟎아??
짜증이 솟구쳐 전화기를 쇼파에 던지고는 누워버렸다.지극히 단순한 금속플레임에 심플한 쿠션이 있는 이 바르셀로나체어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것중 하나였다.힘들게 구하것이니만큼 여기에 있을때만큼은 편안하고 아늑하다 느꼈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숨이 막혀서 도저히 있을수가 없었다.핸드폰을 급히 다시 든 그녀는 연락처목록에서 "박지혜" 라는 이름을 검색한후 문자버튼을 눌렀다.
"지금 출발할게.기차로.마중 나와줄래?"
문자를 보낸후 그녀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을 골랐다.수 많은 화려한 컬러의 옷들을 외면하고 그녀가 고른 옷은 질샌더의 짙은 회색정장이었다.남편은 그저 밝은색이면 좋은줄 비싼줄 알지만 그녀의 취향은 항상 심플한 회색톤이었다.가장 나다운 색깔이라고 생각했다.지금 그 옷을 꺼내입었다.
"당연, 티켓팅하면 문자줘, 플랫폼에서 기다릴게."
"떨린다"
옷을 갈아입고 온 사이에 두개의 문자가 와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잠시후 서울역을 출발한 동대구 도착 KTX 가 역내에 진입하겠습니다."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기차가 거의 정지할때까지 둘러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늦으려나? 핸드백을 든 손을 바꾸고는 열차의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치익 유압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터억 하며 열차문이 열렸다.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두툼하고 큰 손 하나가 쑥 모습을 보였다.
"보고싶었어, 어서.내려,내.손잡고"
모든 가면이 벗겨졌다.아니,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 니가 이겼다.속 시원하니?? 심플한 흰 셔츠에 블랙진, 그리고 씨트러스향이 났다.침대시트를 빨 때 나던 향기의 정체가 너였구나.
"약속 지켰다,아줌마는."
"그래, 가자, 얼른"
내 손목을 낚아챈 그를 따라 역 바깥을 향해 나갔다.
"어디 가는거야, 어디 가??"
"어디 긴?? 데이트 하러 가는거지. 내가 계획 다 짜놨으니 걱정 마"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절대로 고개를 끄덕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환하게 웃고있었다.
비가 왔는지 역앞 택시정류장엔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보였고 비로 인해 씻긴 공기는 숨쉬기가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길게 늘어 선 택시중 하나를 잡아타고선 동성로요,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거기는 어디지??
"대구에서 가장 번화가야, 우선 밥.부터 먹자.배고파,기다리느라, 점심도 아직 못 먹었어,소 한마리도 다 먹을수 있을것 같아.하하하"
"회색 옷 너무 잘 어울린다.이뻐,이쁘다"
내 말이 들리니??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달라 하지 않아도 그냥 아는거니?? 참 웃겼다.무슨 인연인지,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안내로 들어간 곳은 소박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었다.
"너무 많이 시킨거 아니야?? 남길것 같아, 나, 음식 남기는거 싫어"
"걱정 마, 음식 남기는건 아줌마보다 내가 더 싫어해" 잠시후 팬위에 지글거리는 스테이크 두개와 치즈샐러드에 파스타 두개가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자주 와 본 적이 있는지 능숙하게 고기를 자르곤 치즈샐러드를 슥슥 섞어선 고기위에 올려주었다.
"이렇게 먹어봐,자, 남들은 느끼하다고 하는데 난 이렇게 먹는게 맛있더라"
못 이기는척 먹어보았다.담백하고 짬쪼름한 맛이 잘 어울렸다.
"맛있다, 진짜, 괜챦은데, 느끼할줄 알았는데"
"그치? 괜챦다니깐,자, 흡입합시다, 먹어야 여기저기 데이트도 하지"
"그,그래,먹자,일단,그리고 다 먹어,ㅎㅎ"
좀전까지 비가 억수로 왔다는둥, 시험에서 자기가 거의 꼴등했다는둥 새로 들어간 아파트에 도배를 해서 머리가 띵 하다는둥 쉴 세 없이 수다가 이어졌고 나도 드라마얘기,쇼핑얘기,등등 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 먹었쟎아,거 봐, 다 먹는다니깐."
"에에,진짜네, 언제 다 먹었지, 그 많던게"
"4분의3은 내가 나머지는 아줌마가"
"너, 진짜 먹성 좋구나, 먹방이야 완전, 하하"
"배부르다, 이제,좀 살것 같다, 나가자,우리, 커피마시러, 이 근처에 맛있는데 있어"
"너, 여기 내려온지 얼마됐다고 이렇게 잘 알어?? 진짜 공부 안 하는구나?? 응??"
"그냥 사전답사라고 하죠,하하, 렛츠고"
"그래, 가자,대구 바보인 내가 여기서 너 말 안 들으면 어쩌겠냐, 호호"
5분정도의 거리에 옛 교실분위기를 풍기는 카페에 들어갔다.긴 의자에 마주보고 앉은 우리는 냅킨 그림이 웃기다며 웃기 시작했다.
"케익도 시켜?? 배 안 불러?? 커피만 마시자,과식이야."
"그렇긴 한데, 여기 케익이 안 먹고 가기엔 너무 맛있다고, 꼭 먹어야 돼"
"알았다,알았어, 이럴땐 덩치큰 초딩이야,완전"
"나,키 191이야, 이렇게 큰 초딩봤어??"
"91이라구? 그렇게 커?? 그 정도일줄은 몰랐네"
"그치, 내가 키만 큰게 아니라 신체밸런스도 좋아서 그래,크크"
자화자찬에 크게 웃고 곁들여져 나온 커피와 케揚?달콤함에 또 놀랐다.너랑 있어서 맛있는거니 원래 맛집이니?? 궁금했다.
"아줌마랑 같이 먹으면 항상 맛있어. 그런.것 같아.그 때 그 찌개는 사실 좀 짰지만 크크"
반칙 아니니?, 내 마음을 이렇게 훤히 내다보다니.너,괴물 맞구나,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어떡하니.너를.
"밥은 니가 샀으니,커피는 내가 낼게"
"오케이"
디저트까지 다 끝낸 우리는 거리로 나섰다.어느 번화가와 마찬가지로 수 많은 상점들과 갖가지 볼거리들로 가득했다.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길거리에서 핸드폰케이스도 구경하고, 희한하게 생긴 썬글래스도 써보고 징이 박혀있는 모자를 보곤 까르르 웃고 그렇게 우리는 정말 그의 말대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남들이 보기엔 그냥 번화가이겠지만 난 지금 별나라에 와 있는듯 했다.모든것이 신기하고 재밌고 웃겼다.
하지만 나의 체력은 그와는 달리 금방 바닥나고 있었다.정장에 힐까지 신은터라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몰려왔다.
"나,좀 힘든데,어디가서 좀 쉬자,다리 아프네"
"아, 미안, 나만 들떠가지고,구두신어서 힘들었겠다.음, 우리 집 가서 쉬자 이제, 가까워"
뭐에 홀린듯 아무 저항도 못 한 나는 또다시 손목을 낚인체 택시에 올랐다.5분정도 지나자 고층건물들이 수 없이 보였고 그 중 하나에 우린 내렸다.31층을 누른뒤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급격히 피로를 느껴 그에게 기대고 말았다 .
"어지럽네, 어지러워, 잠깐만 좀 기댈게,미안해"
"아니, 많이 어지러워?? 무리했나보다.기차도 타고 힘들었을텐데.내가 미안,이리저리 끌고 다녀서"
"괜챦아,재밌었어,금방 괜챦아 질거야"
띵.31층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렸고 부축하다싶이 나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정말 새 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고, 주택인 우리집과는 달리 탁 트인 조망의 고층이었다.
들어가자마자 한 눈에 보인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검은색 소파였다.
"이 소파,누가 사준거야? "
"내가 샀지, 아부지카드로, 하하, 새거라 아직 냄새가 독한데 이쁘지?? "
"진짜,맘에 든다,이뻐, 나 물 한잔 줄래? 목 말라,"
재빠른 걸음으로 부엌으로 간 그는 얼릉 얼음이 담긴 물한잔을 가지고 왔다.너무 차서 몇번에 걸쳐 한잔을 다 마셨다.
"나,여기,조금만 쉴게,남의 집에 갑자기 염치없지만 피곤하네,미안"
"좀 푹 자요, 내가 음료수라도 좀 사올게.쉬고있어."
"그래,갔다와"
다시금 덩치에 맞지않게 종종 걸음으로 현관에 나가 신발을 신던 그는 문득 생각난듯 질문을 던졌다.
"아줌마,근데 이름이 뭐야,여태 이름도 몰랐네"
내 이름? 내 이름이 뭐였더라.좀처럼 불리는 일이 없어 그런지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있는 힘을 짜내서 뜸을 들인후 불러주었다.
"미주야,신미주"
그러고는 기절한듯 잠에 빠졌다.
<베드신없는 내용만 주절거려 죄송합니다.
담편에 강한걸루 넣을게요.>
살풋 들었다고 생각한 잠이 꽤 깊었나보다.도착한다는 안내방송에 허겁지겁 대나무장식이 된 핸드백을 고쳐 쥐고는 나갈 채비를 하였다.뽀얀 얼굴이 대비되는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그녀는 멍하니, 서서히 멈춰가는 기차밖을 응시했다.
"아줌마가 내려와요.나 오피스텔도 얻었어.아줌마 때문에."
"잉? 내가 ?? 내가 어떻게 대구까지 내려가?? 나, 그냥 살림하는 주부야, 무슨 핑계가 있다고 그 먼데까지 가,무리야"
몇일전 걸려온 그 아이의 전화 한통.
여자로써의 삶을 요구하는 끈적한 모습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막상 쉽지 않은걸 알기에 일단 달래본다.
"정훈, 너가 좀 시간내서 오면 안돼?? 아줌마가 혼자서 거기까지 어떻게 가, 너가 가끔 와.응?? "
"아니, 나 이제 아줌마집에 안 갈거야.불편해, 내가 보고싶으면 아줌마가 와.여기서 편하게 놀자,안 오면 할 수 없고,지금도 전화 한통이면 금방 이리로 올 애들은 얼마든지 있어.아줌마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나 좋다는 여자들 꽤 많거든, 사흘줄게. 그 안에 안 오면 다신 안 봐.그리곤 내가 질펀하게 노는 모습 찐하게 찍어서 보여주지.막 나갈거야.내, 인생이니까, 아줌마가 알아서 해,끊는다, 주소는 문자로 보낼게"
"아줌마 비어있쟎아,거기서 혼자서는 이제 못 채우쟎아,살 수 있겠어,나 없이?"
"니가 뭘 안다고 나한테 그런말을 해?? 잠 몇번 자줬다고 뭘 크게 착각하나 본데"
"그래? 그럼 그렇게 살아,여태껏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체 그렇게 멍하니 살아"
"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그렇게 살아왔는지,고작 스물살짜리 꼬맹이가 어떡해 알아?? 니가 안다고?? 내 삶을?? 건방떨지마"
"늘어뜨린 팔과 촛점없는 시선,들떠있기만 하지 알맹이 없는 말투,한번만 봐도 딱 알아, 아줌마는 바라는게 죄인것처럼 살아왔다는거,내가 그렇거든.그러니까 한번에 알아볼 수 있어."
"난,아줌마가 필요해, 하지만 아줌마만 필요하지는 않아,난 젊고 제법 생겼고 돈도 꽤 있고,의대생 타이틀도 있고,손만 뻗치면 대용품 정도는 구할수 있어.근데 아줌마는 나 말고 있어?? 채워줄 사람??"
"우리,정우가 있어, 너같이 일방적이고 싸가지없고 은혜도 모르는 놈하고는 차원이 다른 착한, 우리 아들 정우가 있어.건방떨지마"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아들이랑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어쨌든 한번 뱉은 말이니까 난 지킬게.사흘.출발하면 문자 해, 멋진 모습으로 마중나갈게"
"안 가,기다리지마, 니가 와도 이젠 안 만나줄거야.나쁜 놈,밉상 자식"
... 통화종료...
하루동안은 괜챦았다.아들도 시험을 마치고 좀 일찍 들어오기 시작했고 남편도 집에 다녀가서 그럭저럭 살만했다.아니구나, 더 절망했다는 표현이 맞겠구나.예전에는 그저 당연한듯 받아들였던 이 안일함과 지루함이 이젠 지옥처럼 느껴졌고 배고픔을 느꼈다.그리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설마, 이대로 뚝 관계를 끊을까.그 애가? 하긴 그 아이의 말이 다 맞긴 했다.그는 젊고 빛나고 남자답고 눈부시기에 손만 뻗으면 쥘 수 있는 수 많은 쵸이스들이 있다.그걸 거부할정도로 날 향한 일편단심을 할 아이는 아니다.불가능하다.오히려 다 늙은 지금의 나를 왜 좋아하는지 그게 궁금하다.연상녀에 대한 로망,친구의 엄마를 탐한다는 배덕감, 우연히 알게된 섹스궁합?? 그게 뭐든 ,그게 아무리 좋은들 스무살의 그가 참지 않을것이라는건 확실하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아들은 첫 앰티를 떠난다고 새벽부터 나가버렸다.술 적당히 먹으라고 협박도 해봤지만 이미 정신이 딴데 팔려있었다.소귀에 경 읽기 그만하자.제발 사고만 안치고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배웅해주었다.
아들이 떠난후 8시도 안된 아침, 홀로 남게 된 집에 앉아 리모콘으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티브이로 정신을 돌리려했지만 어느새 티브이는 꺼버렸고 난 팔을 쭈욱 늘어뜨린체 정원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보오, 나야, 많이 바빠?? 주말에 서울 올거지??"
"아니, 오늘 저녁에 통관되는 물건들이 많아서 담주초까지 인천에 있어야겠는데,미안"
"그렇구나, 인천숙소에 뭐 먹을건 있어?? 내가 좀 뭐라도 해갈까?? 뭐 먹고싶어??"
"아냐, 계속 확인해야 해서 곤란해,내가 알아서 할게,걱정 마. 아,그리고 내가 통장에 보너스 좀 넣어놨으니 쇼핑이라도 실컷 해.미용실도 좀 가서 기분 좀 내고, 알았지?? 연락할게."
"그래, 알았어,너무 무리하지 말고, 보너스 잘 쓸게."
바보,아니.맹인인가,그 머리 그 날 미용실가서 한 머리야, 축 늘어져 있던 긴 머리,커트까지 하고 염색하고 웨이브 굵은 퍼머까지 했는데.도데체 뭘 본거니.
"아들,잘 가고 있어? 과음 안돼.종종 안부카톡해."
"도착했어?"
"점심은 먹었어? "
"저녁에 비 온데, 우산 챙겨"
"왜 답장이 없어??"
"아들,엄마걱정하니 종종 카톡해"
수십개를 보내도 앞에 붙은 숫자 1은 없어지질 않았다.누가 이런 잔인한 시스템을 만든걸까?? 너 외면받고 있어,콕 집어서 이렇게까지 얘기해줄 필요 없쟎아??
짜증이 솟구쳐 전화기를 쇼파에 던지고는 누워버렸다.지극히 단순한 금속플레임에 심플한 쿠션이 있는 이 바르셀로나체어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것중 하나였다.힘들게 구하것이니만큼 여기에 있을때만큼은 편안하고 아늑하다 느꼈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숨이 막혀서 도저히 있을수가 없었다.핸드폰을 급히 다시 든 그녀는 연락처목록에서 "박지혜" 라는 이름을 검색한후 문자버튼을 눌렀다.
"지금 출발할게.기차로.마중 나와줄래?"
문자를 보낸후 그녀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을 골랐다.수 많은 화려한 컬러의 옷들을 외면하고 그녀가 고른 옷은 질샌더의 짙은 회색정장이었다.남편은 그저 밝은색이면 좋은줄 비싼줄 알지만 그녀의 취향은 항상 심플한 회색톤이었다.가장 나다운 색깔이라고 생각했다.지금 그 옷을 꺼내입었다.
"당연, 티켓팅하면 문자줘, 플랫폼에서 기다릴게."
"떨린다"
옷을 갈아입고 온 사이에 두개의 문자가 와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잠시후 서울역을 출발한 동대구 도착 KTX 가 역내에 진입하겠습니다."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기차가 거의 정지할때까지 둘러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늦으려나? 핸드백을 든 손을 바꾸고는 열차의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치익 유압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터억 하며 열차문이 열렸다.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두툼하고 큰 손 하나가 쑥 모습을 보였다.
"보고싶었어, 어서.내려,내.손잡고"
모든 가면이 벗겨졌다.아니,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 니가 이겼다.속 시원하니?? 심플한 흰 셔츠에 블랙진, 그리고 씨트러스향이 났다.침대시트를 빨 때 나던 향기의 정체가 너였구나.
"약속 지켰다,아줌마는."
"그래, 가자, 얼른"
내 손목을 낚아챈 그를 따라 역 바깥을 향해 나갔다.
"어디 가는거야, 어디 가??"
"어디 긴?? 데이트 하러 가는거지. 내가 계획 다 짜놨으니 걱정 마"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절대로 고개를 끄덕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환하게 웃고있었다.
비가 왔는지 역앞 택시정류장엔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보였고 비로 인해 씻긴 공기는 숨쉬기가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길게 늘어 선 택시중 하나를 잡아타고선 동성로요,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거기는 어디지??
"대구에서 가장 번화가야, 우선 밥.부터 먹자.배고파,기다리느라, 점심도 아직 못 먹었어,소 한마리도 다 먹을수 있을것 같아.하하하"
"회색 옷 너무 잘 어울린다.이뻐,이쁘다"
내 말이 들리니??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달라 하지 않아도 그냥 아는거니?? 참 웃겼다.무슨 인연인지,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안내로 들어간 곳은 소박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었다.
"너무 많이 시킨거 아니야?? 남길것 같아, 나, 음식 남기는거 싫어"
"걱정 마, 음식 남기는건 아줌마보다 내가 더 싫어해" 잠시후 팬위에 지글거리는 스테이크 두개와 치즈샐러드에 파스타 두개가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자주 와 본 적이 있는지 능숙하게 고기를 자르곤 치즈샐러드를 슥슥 섞어선 고기위에 올려주었다.
"이렇게 먹어봐,자, 남들은 느끼하다고 하는데 난 이렇게 먹는게 맛있더라"
못 이기는척 먹어보았다.담백하고 짬쪼름한 맛이 잘 어울렸다.
"맛있다, 진짜, 괜챦은데, 느끼할줄 알았는데"
"그치? 괜챦다니깐,자, 흡입합시다, 먹어야 여기저기 데이트도 하지"
"그,그래,먹자,일단,그리고 다 먹어,ㅎㅎ"
좀전까지 비가 억수로 왔다는둥, 시험에서 자기가 거의 꼴등했다는둥 새로 들어간 아파트에 도배를 해서 머리가 띵 하다는둥 쉴 세 없이 수다가 이어졌고 나도 드라마얘기,쇼핑얘기,등등 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 먹었쟎아,거 봐, 다 먹는다니깐."
"에에,진짜네, 언제 다 먹었지, 그 많던게"
"4분의3은 내가 나머지는 아줌마가"
"너, 진짜 먹성 좋구나, 먹방이야 완전, 하하"
"배부르다, 이제,좀 살것 같다, 나가자,우리, 커피마시러, 이 근처에 맛있는데 있어"
"너, 여기 내려온지 얼마됐다고 이렇게 잘 알어?? 진짜 공부 안 하는구나?? 응??"
"그냥 사전답사라고 하죠,하하, 렛츠고"
"그래, 가자,대구 바보인 내가 여기서 너 말 안 들으면 어쩌겠냐, 호호"
5분정도의 거리에 옛 교실분위기를 풍기는 카페에 들어갔다.긴 의자에 마주보고 앉은 우리는 냅킨 그림이 웃기다며 웃기 시작했다.
"케익도 시켜?? 배 안 불러?? 커피만 마시자,과식이야."
"그렇긴 한데, 여기 케익이 안 먹고 가기엔 너무 맛있다고, 꼭 먹어야 돼"
"알았다,알았어, 이럴땐 덩치큰 초딩이야,완전"
"나,키 191이야, 이렇게 큰 초딩봤어??"
"91이라구? 그렇게 커?? 그 정도일줄은 몰랐네"
"그치, 내가 키만 큰게 아니라 신체밸런스도 좋아서 그래,크크"
자화자찬에 크게 웃고 곁들여져 나온 커피와 케揚?달콤함에 또 놀랐다.너랑 있어서 맛있는거니 원래 맛집이니?? 궁금했다.
"아줌마랑 같이 먹으면 항상 맛있어. 그런.것 같아.그 때 그 찌개는 사실 좀 짰지만 크크"
반칙 아니니?, 내 마음을 이렇게 훤히 내다보다니.너,괴물 맞구나,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어떡하니.너를.
"밥은 니가 샀으니,커피는 내가 낼게"
"오케이"
디저트까지 다 끝낸 우리는 거리로 나섰다.어느 번화가와 마찬가지로 수 많은 상점들과 갖가지 볼거리들로 가득했다.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길거리에서 핸드폰케이스도 구경하고, 희한하게 생긴 썬글래스도 써보고 징이 박혀있는 모자를 보곤 까르르 웃고 그렇게 우리는 정말 그의 말대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남들이 보기엔 그냥 번화가이겠지만 난 지금 별나라에 와 있는듯 했다.모든것이 신기하고 재밌고 웃겼다.
하지만 나의 체력은 그와는 달리 금방 바닥나고 있었다.정장에 힐까지 신은터라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몰려왔다.
"나,좀 힘든데,어디가서 좀 쉬자,다리 아프네"
"아, 미안, 나만 들떠가지고,구두신어서 힘들었겠다.음, 우리 집 가서 쉬자 이제, 가까워"
뭐에 홀린듯 아무 저항도 못 한 나는 또다시 손목을 낚인체 택시에 올랐다.5분정도 지나자 고층건물들이 수 없이 보였고 그 중 하나에 우린 내렸다.31층을 누른뒤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급격히 피로를 느껴 그에게 기대고 말았다 .
"어지럽네, 어지러워, 잠깐만 좀 기댈게,미안해"
"아니, 많이 어지러워?? 무리했나보다.기차도 타고 힘들었을텐데.내가 미안,이리저리 끌고 다녀서"
"괜챦아,재밌었어,금방 괜챦아 질거야"
띵.31층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렸고 부축하다싶이 나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정말 새 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고, 주택인 우리집과는 달리 탁 트인 조망의 고층이었다.
들어가자마자 한 눈에 보인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검은색 소파였다.
"이 소파,누가 사준거야? "
"내가 샀지, 아부지카드로, 하하, 새거라 아직 냄새가 독한데 이쁘지?? "
"진짜,맘에 든다,이뻐, 나 물 한잔 줄래? 목 말라,"
재빠른 걸음으로 부엌으로 간 그는 얼릉 얼음이 담긴 물한잔을 가지고 왔다.너무 차서 몇번에 걸쳐 한잔을 다 마셨다.
"나,여기,조금만 쉴게,남의 집에 갑자기 염치없지만 피곤하네,미안"
"좀 푹 자요, 내가 음료수라도 좀 사올게.쉬고있어."
"그래,갔다와"
다시금 덩치에 맞지않게 종종 걸음으로 현관에 나가 신발을 신던 그는 문득 생각난듯 질문을 던졌다.
"아줌마,근데 이름이 뭐야,여태 이름도 몰랐네"
내 이름? 내 이름이 뭐였더라.좀처럼 불리는 일이 없어 그런지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있는 힘을 짜내서 뜸을 들인후 불러주었다.
"미주야,신미주"
그러고는 기절한듯 잠에 빠졌다.
<베드신없는 내용만 주절거려 죄송합니다.
담편에 강한걸루 넣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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