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희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기로 하고 그녀에게는 되도록 00읍내에 돌아다니는 일이 없도록 다짐을 받은 후 친구가 택배로 보내 준 캠코더를 들고 다음 날 아침부터 녀석의 매장으로 갔다. 정재희의 변심, 민현규에게 내 존재를 알리는 것이 내심 걸리기는 했지만 일단 아르바이트 여학생을 구하기까지 열흘 정도를 별 탈 없이 내게 협조했으며 그녀가 민현규와 협조해서 경찰인 내게 대항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들의 불륜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뾰족한 수는 없어 보였다. 날 죽인다면 모를까...
일단 처음 본 여대생의 모습은 순진하고 착해 보이긴 했지만 안경을 쓴데다 키도 별로 크지 않고 여느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경리 인상을 풍기고 있었는데 미정이와 정재희를 취했던 민현규의 화려한 여성 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보였고 그래서 녀석이 정재희가 없는 몇 개월 동안 쓸 아르바이트 자리는 자신의 욕정을 해결해줄 수 있는 여자가 아닌 그냥 성실하고 말을 잘 들을 듯한 직원을 뽑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펑퍼짐한 티 안에 숨겨 놓은 가슴은 꽤 커보였으며 그 나이 때의 여자애들은 조금만 꾸며도 달라 보이는 법이라 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인 9월 초, 캠코더를 옆에 두고 카페에서, 차안에서 무언가 이상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 하루 종일 매장을 지켜보는 며칠이 지나가는 동안 난 정재희의 도움으로 여대생 이름이 유선미라는 것과 광주에 있는 00대 2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퇴근 무렵에 그녀의 뒤를 쫓아 그 곳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있는 주택에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
유선미의 집은 마당이 그리 크지 않고 읍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와집이었는데 대문 앞에 있는 문패에 유진오라는 이름이 적혀 있고 그 밑에 칠성리 284번지라는 주소도 쓰여 있었다. 난 그녀의 집 앞에서 문득 유선미를 민현규가 건드리기는 만만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그녀가 정재희나 미정이와는 다르게 부모 밑에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휴학하기 전까지 다닌 00대는 그래도 전남에서는 알아주는 사립대학교로 미래도 불투명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현규가 유선미를 안기 위해 정재희에게 구사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 애에게 접근하는 것도 위험해보였다. 부모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어떤 일이 생겨서 집에 못 들어가게 되면 연락을 하게 될 것이고 그 때 유선미가 부모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면 일이 너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녀석이 정재희라는 여자를 가지기 위해 들인 공을 생각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수를 쓸 수도 있지만 유선미라는 여대생의 입장에서 자신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사장과 자는 것은 너무 경우 없는 짓일 것이다. 만약 민현규가 유부남이 아니라면 돈이 많아 보이니 처녀 총각 사이라 그럴 수도...
하지만 며칠 후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그 해 추석은 9월 중순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 아침 저녁 차가운 바람이 불고 일교차가 커서 장터에서 2만원짜리 잠바를 하나 사 입고 매장을 지켜보던 그 날, 유선미는 여느 때처럼 7시 반 무렵 퇴근하지 않고 민현규와 함께 8시 넘어서까지 매장에 있었다. 거리는 명절분위기가 나고 있었고 대목이라 늦게 까지 일을 하는 구나하고 별 생각 없이 허기를 달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른 날보다 30분 정도 일찍 매장 불이 꺼지더니 민현규가 유선미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외곽도로 쪽으로 차를 몰았다.
부리나케 검정색 그랜저를 쫓았는데 15분 후 정재희와 밀회를 즐기던 모텔 촌에 도착했고 난 민현규의 차가 지나간 후에 진입했던 골목에서 사이 길에서 나온 차량에 막혀 그랜저를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부리나케 모텔 몇 군데를 뒤져 녀석의 차량을 찾긴 했지만 이미 연놈들이 사라진 후였고 난 유선미와 민현규가 들어간 모텔 앞 골목길에 차를 세워두고 고민해야 했다.
이 분위기라면 유선미는 민현규에게 거의 자발적으로 몸을 준 것이었고 내가 녀석에게 여대생과 재미를 본 걸 마누라에게 폭로하겠다는 정도로 들이 대는 건 오히려 정재희와 내연의 관계라는 걸 이야기하는 것 보다 약발이 강할 것 같지 않다. 대비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2시간을 모텔 앞에서 기다리다가 민현규와 유선미가 모텔 입구를 나와 차에 탈 때까지의 모습을 캠코더로 찍은 나는 여인숙으로 가서 민현규와의 담판 과정에서 나올 시나리오 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한 후에 잠을 청했다. 새벽이 되도록 잠이 잘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며 드는 생각은 녀석의 입에서 무언가를 들어내지 못하면 미정이의 학창 시절 남자에게서 받은 상처를 알아내는 일은 끝이 나고 그럼 다음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상념이었다. 그냥 돌아가기엔 나로 인해 자살까지 하게 된 미정이에 대한 죄책감을 하나도 지워내지 못한 채 그대로인데...
다음 날 아침을 해장국 집에서 든든하게 챙겨 먹은 후에 난 캠코더를 들고 나이키 매장 앞으로 가서 민현규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난 놈이 매장 문을 열자마자 쳐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유선미와 어제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사장인 그 놈이 정재희처럼 하루 쉬고 출근하라고는 못할지 몰라도 늦게 출근하라고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한가한 아침 시간에 녀석의 매장 안에서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 때 협상과정에서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내가 쥐고 있는 카드가 평범한 녀석은 몰라도 그 놈을 핍박하는 데는 약간 부족할지 모르니 부드럽게 협상을 진행하다 역공이 들어올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차원에서 처음부터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하며 또 하나는 그런 와중에서도 놈이 경찰인 내게 너무 겁을 먹고 미정이 일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되려 덤태기를 쓸 수도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거나 축소하지 않도록 약간의 친근감도 같이 주여야 하는 것이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민현규의 모습이 보였고 나이키 매장의 셔터가 올라갔다. 길 건너편에서 보고 있던 나는 녀석이 매장 안에서 간단히 청소를 하고 나서 종이컵에 커피 한 잔을 탄 후 신문을 보려고 펼 때 까지 기다리다 캠코더를 들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내가 들어서는 걸 본 민현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다 며칠 동안 면도는커녕 머리도 제대로 깜지 않고 싸구려 점퍼에 운동화를 신은 날 보고 표정이 약간 의아한 듯 변했고 난 녀석의 코앞까지 갈 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다가 그 놈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을 던졌다.
“민현규씨?”
“아.. 예... 누구신지...”
“나? 누구긴 좇나게 꼬인 인생이지. 씨발... 신분증 여기 있으니 보시든지..”
난 경찰 신분증을 카운터 위에 던졌고 민현규가 그 걸 들고 자세히 보려하는 순간 다시 놈의 손에서 낚아채서 가져왔는데 갑자기 놈이 불안감이 섞인 표정에 우물쭈물하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응? 개인적인 일도 있고 공적인 일도 있고 겸사겸사.. 왔지.. 아침 댓바람에 찾아와서 미안하긴 한데 커피 없을까?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했으면 좋겠는데...”
“아.. 예.. 잠시만...”
신분증에 생년월일을 봤다면 자신보다 연배가 높다는 것은 알 것이고 난 의식적으로 말꼬리를 자르며 녀석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 후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받고 있는 뒤통수에 대고 혼자 말을 했다.
“미친년이 왜 자살을 해가지고 사람을 이 고생을 시켜... 좇도 일이 꼬일라니까... 씨발... 내가 그년하고 뭔 상관이 있다고...자살 이유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건지.. 씨발.. 빛이 많아서 죽은 거라니까..”
난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악하고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가래침을 카운터 위에 놓인 빈 종이컵에 뱉은 후에 뒤 쪽에 놓인 탁자 위에 캠코더를 내려놓으며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놓인 의자에 앉았고 민현규는 커피를 가져와 내 앞에 놓고 건너 편 의자에 앉아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별일 아니지. 어떤 미친년이 자살을 했는데 사인이 확실치 않아서 내가 의심 받고 있다는 것뿐이야. 내가 그년이 죽기 전에 몇 번 했거든. 크크. 티켓 비 주고 몇 번 한 사이인데 그년하고 내가 만나는 걸 본 사람이 몇 명 있어서... 이 새끼들이 그 년하고 나하고 애인 사이였다고 증언을 했거든... 덕분에 내가 이 전라도 땅에서 헤메고 다니지만... 크크크.”
“그런데 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요?”
“하하하... 내가 민사장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한 적 없는데.. 지레 겁 먹으시긴... 난 그냥 그년이 자살을 한 정황이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내가 의심받는 게 싫어서 잠깐 휴직을 했어... 씨발 이 새끼 저 새끼 쳐다보기만 해도 괜히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것 같아서 죽여버리고 싶더라고... 쉬어야지.. 씨발.. 뭐.. 누구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 보라던데...”
“계속 알 수 없는 말씀만 하시는 군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와 관계없는 일 같은데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이제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하니...”
“뭐야? 영업방해하지 말라는 건가? 크크크... 민현규... 내가 널 찾는데만 보름이 걸렸고 여기서 잠복한 지도 20일이 넘어가는데... 갑자기 정재희가 없어진 터라 서울 원자력 병원가서 이야기 듣고 오는 것도 꽤 힘들었어. 그 사이에 아르바이트 여대생도 어떻게 구워 삶아서 어제 주워 먹더구만... 능력 좋으시네... 민사장..“
똥 씹은 표정이 된 민현규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자. 이거 어제 밤에 니가 여기 일하는 유선미와 모텔에서 나오는 장면인데 잠깐만 기다려.. 보여줄게... 어떻게 키더라... 이걸 누르던가?”
난 캠코더의 미니 화면으로 그 장면을 녀석에게 보여줬다.
“당신 누구야? 이게 누굴 찍은 건지 내가 알게 뭐야?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누구긴... 경찰이라니까... 그래? 여기서 일하는 여대생이 보고도 그렇게 말할까? 정신 똑바로 차려... 씨발... 발뺌하신다 이건가 본데... 어이 민현규...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게 좋아. 맨날 사기 친 놈하고 조폭 애들 다루다 보니 내가 말을 좀 편하게 한다만은 그렇다고 오리발 내밀다 골로 간다. 칠성리에 있는 유선미 집에 가서 개 부모 앞에서 틀어줄까? 너 뒷수습하려면 돈 좀 들겠다. 크크크”
“왜 이러는 거요? 내 뒷조사를 왜?.. 난 당신 처음 보는데...?
“나도 내가 니 뒷조사까지 해야 되는 이 현실이 좇같다. 그 년이 농약을 처먹을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 덕분에 난 출근하면 직원들이 씹어대는 통에 형사 짓도 못하고 이러고 돌아다니고 있다. 잠잠해질 때까지 한 1년 휴직하며 쉬려다 나름 뭔가 집히는 게 있어서... 아니 다방에서 일하는 년이 몇 번 같이 잔 남자한테 채였다고 자살을 해?”
내가 그 이야기까지 끝냈을 때 문을 열고 유선미가 들어오고 있었다. 민현규가 부리나케 일어나 그 애에게 다가가더니 내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내가 큰 소리로 초를 쳤다.
“어... 이게 누구신가? 아가씨도 여기 와서 잠깐 앉지? 잘됐네. 빨리도 출근하셨네...”
“저기... 저랑 이야기하시죠. 애는 아르바이트 학생이고 여기서 일한 지 며칠 안 되서 아무 것도 몰라요...”
“학생이셨어? 아 난 또 너무 자연스럽게 차타고 같이 가는 걸 보고 마누란 줄 알았네... 씨발... ”
내 이야기도 끝나기 전에 민현규가 유선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더니 손에다 만 원지폐 몇 장을 쥐어 주면서 그 애의 등을 떠밀고 나서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왔고 난 매장 안을 바라보며 바삐 걸음을 옮기는 유선미를 향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이리 안와! 학생이면 학생답게 씹을 아무데나 돌리면 안 되지... 생긴 건 착하게 생겼구먼...”
난 그 애가 들을 때는 결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유리문 바깥에서 못들을 때 이런 저런 사실을 이야기하며 민현규를 압박했고 놈은 울상이 되어 내 앞으로 와서 앉으며 애원을 시작했다.
“아이구... 형사님... 왜 그러십니까? 도대체... 재도 성인이고 합의하에 잠 한 번 같이 잔겁니다. 너그러이 봐주세요.. 다음부터는 함부로 행동 안하겠습니다.”
“그러셨어?.. 00대 다니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여자애하고 합의하에 씹질을 하셨어? 정재희는 이혼녀니 임자 없어서 따먹으셨고?,... 니 놈이 이 년 저 년 다 처먹고 다니니 나 같은 총각 놈은 애인 한 명 없이 늙어 가는 거지... 밤엔 비디오 보면서 딸딸이나 치고..”
“아닙니다. 정재희씨는 저하고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누님이세요. 그냥 전부터 아는 분인데 직장이 없으시다고 해서 저희 매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드린 것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오호... 니들이 2주 전쯤 스카이모텔 605호에서 부둥켜 안고 있을 때 난 604호에 있었는데 이를 어쩌나... 하아..아아... 아아항... 하앙... 난리가 났더구만 아무 사이도 아니시다. 이 새끼가 누굴 바지저고리로 보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민현규의 눈동자가 동그래지더니 입을 열지 못하고 날 처다만 보고 있었다.
“니들 모텔에 같이 있던 사진도 찍어서 이 핸드폰 안에 고이 넣어 놨거든. 이래도 인정 못하시겠다?”
“아.. 아니... 그래도... 성인남녀가 눈이 맞으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죠... 그게 그렇게 큰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음.. 이제야 기억이 나나 보네. 그래 진작 그렇게 나올 일이지... 니 말이 맞다. 그게 무슨 큰 죄가 되겠냐? 그리고 설사 죄가 좀 된다고 해도 책임만 지면 되는 거 아니겠어? 나도 남잔데 다 이해한다. 다리 벌리고 달려드는 데 한 번 꽂아 준거겠지.”
도망갈 구멍을 찾던 민현규의 반항을 순순히 받아주자 녀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 문 열자마자 찾아와서 실례가 많았다. 나 일단 갈란다... 대신 20일을 밥도 제대로 못먹고 니 놈 쫓아다니건 좀 억울하니 니 마누라 만나서 비디오랑 사진은 보여줘야겠고 정재희 말이 맞는 건지는 모르지만 여기 경찰에 제보 좀 해야겠다. 돈을 도난당했고 신고도 했다지만 미심쩍은 게 너무 많아. 광주 물류창고 직원 놈 불러서 참고인으로 조사 좀 하고 정재희랑 대질도 하고 그러면 뭔가 나올 것도 같은데... 그리고 유선미란 년은 부모가 새빠지게 고생해서 00대까지 보냈놨더니만 니 놈하고 씹질하고 다니더라고 개 아빠, 칠성리 284번지 유진오씨한테는 말을 해줘야겠지... 앞으로는 딸년 단속 좀 하시라고...”
그 말을 끝으로 문으로 향해 걸어가는 내 손을 잡는 민현규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원하는 게 돈이면 길게 끌지 말고 이야기하시오. 내가 십분 내로 은행에서 찾아다 드리겠소.”
“말이 좀 통하는 분위기군. 이제 좀 남자답게 보인다. 그 동안 체류비로 든 돈만 이백이고 수고비도 좀 생각해줘야 하고 남은 휴직기간 동안 생활비도 부족하니... 이렇게 하자. 천 오백으로 끝내자. 핸드폰 사진하고 녹화해 논 것도 너 보는 앞에서 삭제할게.”
“천 오백이요? 잠깐만요... 아니... 요새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그 정도 현금은 없어요. 조금만 생각해주세요.”
“좋아. 십분 내로 가져오면 천 이백으로 해주마. 더 깎아달라고 할 거라면 그냥 포기해라. 요새 천만 원이 돈이냐? 쓸데도 없다. 그리고 내가 까발리면 수습하는데 얼마의 돈이 들지는 모르겠다만 돈보다도 이런 일들 밝혀지면 지역사회에서 그 쪽팔림 어떻게 감수할래?”
“지금 은행에 8백 정도 있어요. 카드 현금서비스까지 긁어서 천 만원 십분 내로 가져올게요. 그걸로 좀 ...”
“씨발놈... 천 백... 그 이상은 안 돼.”
그렇게 놈과 얼마간 더 흥정을 해서 천 오십 만원을 받기로 한 후 돈을 찾으러간 민현규를 매장 밖에서 기다렸다. 내가 경찰인 걸 감안하면 이 놈이 돈을 찾아오는 게 아니라 허튼 짓을 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어느 곳이고 깡패나 건달들은 존재하는 법이어서 여러 명이 같이 와 되려 날 협박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버린다는 식으로...
내가 민현규라면 일단 돈을 준 다음 경찰이란 놈이 돈을 뜯어 간 꼴이 되니 이판사판 역공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치부가 모두 드러나게 되는 꼴이라 그것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민현규가 돈을 찾으러 간 후 나이키 매장 문이 보이는 건너편 골목의 대문 옆에 몸을 숨긴 나는 민현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십오 분쯤 후에 녀석이 조그만 쇼핑백을 들고 매장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매장으로 가지 않고 녀석의 동태와 주변 거리를 살폈다. 한참을 기다려도 별다른 정황은 보이지 않는데다 매장 안으로 들어간 민현규가 별다른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탁자 위에 놓인 쇼핑백을 침통한 표정으로 쳐다만 보고 있는 걸 확인한 후 난 다시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녀석 앞에 다시 앉았다.
“간단하군. 이렇게 빨리 돈을 만들어오다니... 새볼 필요는 없겠지?”
“예.. 맞아요. 핸드폰하고 테이프는 주시죠. 그런데 정말 경찰 맞으시나요?”
“응. 왜? 경찰이 돈 뜯어가니까 이상해?”
“아니.. 아니요... 이렇게 끝나는 것만 해도 다행이죠. 그런데 신분증 한 번만 더 보여줄 수 있으세요?”
“아 잠깐... 이 매장 안에 CCTV 있지? 이거 안 되겠는데... 그럼 내 모습이 다 찍혔을 거 아냐? 민중의 지팡이가 국민에게 돈 뜯는 장면이 어디 새기라도 하면 개망신인데... 그냥
없었던 걸로 하자.”
“아 저거 지금 고장 났어요. 확인해보시면 되요. 창고 안에 모니터랑 기계 있는데 먹통입니다. 그건 걱정 마시고 신분증 한번 만 더 보여주세요.”
“확인을 시켜 달라? 시켜주지...”
난 신분증과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손에 쥔 채로 녀석에게 전화번호를 불렀다.
“031-202-0112 우리 서 경무계 전화번호다. 조석훈씨하고 통화하고 싶다고 해봐. 그럼 얼마 전에 휴직해서 지금 근무를 안 한다고 할 거다.”
민현규가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한 후에 녀석에게 내 신분증과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었다. 녀석이 그걸 확인하더니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 근데... 여긴 관할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와서 제 뒷조사를 하신 거죠?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음... 좋아.. 어쨌든 이젠 돈을 받을 수는 없겠다. 내가 누군지 다 알아버렸으니 이 돈 갖고 갔다가 니 놈이 신고라도 하면 난 파면이다. 씨발... 이런 푼돈 받고 공무원 자릴 갖다 버릴 순 없지..”
“예?.. 걱정마세요. 이 돈 받고 눈감아주시면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더러 쥐약을 먹으라고! 씨발놈... 이제 늦었어. 순리대로 가.. 애시당초 니 놈한테 돈 뜯어내려고 널 쫓아다닌 건 아니니까.”
“그럼 왜 절? 순리대로 간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이긴... 아까 내가 말한대로 마누라 만나고.. 이 곳 경찰서 잠깐 들리고.. 칠성리 선미네 집에 간다는 이야기지... 어차피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었어.”
“아이고..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까 끝난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무슨 계획이요?”
“이 새끼가...내가 왜 니 형님이야? 끝난 이야기를 신분증 운운한건 너잖아. 내가 미쳤던 것 같다. 너 같은 놈이 몇 년 전 이야기를 기억할 리도 없고...”
“무슨 이야기요? 알아듣게 설명 좀 해주세요...”
“내가 그년 고향에 찾아 갔더니 5년 전에 너와 좀 엮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널 찾아왔던거야. 근데 니 놈 뒷조사를 좀 하다보니 어쩌다 시간이 꽤 흘러 버렸고 잘 하면 휴직기간 중 쓸 돈 좀 뜯어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깔끔이 접을란다. 지 까짓게 자살한 게 무슨 이유가 있겠냐... 남자가 살면서 바람 한 번 안 피우는 놈이 어디 있겠냐만은 경찰이란 놈이 그냥 갈 수도 없고... 알아서 수습해라... 나 간다.”
“누가 저하고 엮였다는 말씀이세요? 누구요?”
“응?.. 개? 누구긴 김미정 있잖아. 남해 00중학교.. 하긴 넌 하두 기집애들 주워 먹고 다니니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다.”
“미정이가 자살을 했어요? 그런데요?”
“그 년하고 내가 몇 번 잤거든. 하필 그 때 죽어가지고.. 그게 타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좀 의심을 받았어. 덕분에 열 받아서 휴직원 내고 쉬는 중이다.”
“어떻게 죽었는데요?”
“씨발. 왜 이리 궁금한 게 많아. 농약 먹고 죽었는데 그게 무슨 농약이냐면.. 이름이 뭐더라...그라목손인가... 그게 무슨 음료수 색깔이라 실수로 몇 모금만 마셔도 죽어. 누가 음료수나 술처럼 속여서 먹게 할 수도 있고... 다방에서 일하던 년이 먹고 숨져 있었는데... 영업장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지만 뒷마당으로 나가는 쪽문으로 누군가 드나들 수가 있었거든. 유서가 있긴 했는데 너무 조잡하고 짧게 써져 있어서 필적 감정도 잘 안 돼. 농약을 먹고 쓴 것 같긴 한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써서 놔둘 수도 있는 거니까.”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그게... 뭐냐? 세상이 싫고 남자가 싫다고... 나도 들은 이야기야. 그래서 미정이 예전에 만나던 남자들을 만나보면 실마리가 좀 잡힐까 싶어 돌아다니다 보니 돈은 돈대로 들고 씨발 못할 짓거리다. 포기할란다.”
“...”
민현규가 입을 다물었고 이제 본격적인 협상이 들어가야 하는데 녀석은 미정이가 중학생일 때 교생신분으로 만났으니 섣불리 털어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때가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 초기였으니..
“미정이란 년 죽은 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은... 너랑 만난 건 5년 전이니.. 내가 그 년 만날 때 처음 남자랑 잔 게 몇 살 때냐고 물었더니 중 3때라고 하더라. 교생선생님하고... 씨발 그 때야 그 년이 누구랑 자든 말든 별 관심 없었는데 내가 의심받는 상황이 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널 쫓아다닌 거야. 그러다 이 년 저 년 건드리는 걸 보고 돈 좀 뜯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고...”
“미정이가 저랑 잤다고 해요? 아닙니다. 교생이 어떻게 학생을 건드려요? 그것도 중학생을... 억울합니다. 정말...”
“이 새끼가. 중학생 씹은 왜 구멍이 막혀 있다디? 좇까는 소리 하고 있네... 그런 촌 중학교에서 학생하고 붙어먹든 선생년하고 붙어먹든 알게 뭐야? 씨발... 정재희란 년도 너 중학교 때 학원 선생이라며? ...
잡아뗄려면 떼라. 그러지않아도 괜한 짓거리한 게 성질나서 본전 생각이 간절한 판국에... 열받으면 씨발 이 동영상 인터넷에 띄워 버릴라니까.. 니 실명이랑 적어서... 제목은 아르바트생 따 먹고 나오는 00읍 나이키 매장 사장이라고 할까...“
“...”
“좀만한 새끼가 솔직모드로 나가자고 해서 신분증 다 까주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다 해줬더니만 사람을 등신으로 보나? 씨발.. 좋아. 마지막으로 묻는다. 미정이란 년 아다 깨준 게 너지? 아니야? 셋 셀 동안 대답해라. 또 한 번 거짓말하면 좇 같은 거 광양 땅 한 번 들쑤셔주마.”
“그게... 네..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전 억울합니다. 그 애가 좋다고 막 달려들어서 그만...”
“그래?.. 미정이는 그렇게 이야기 안하던데...”
“예? 뭐... 뭐라고 했는데요?”
“교생선생님이 할머니 병원비도 내주고 해서 잤다던데...”
“할머니병원비요? 그건... 그 애 형편이 하두 어려워서... 그냥 제가...”
“잠깐... 너... 내말 잘 듣고 신중하게 이야기해라. 그 때 일은 벌써 몇 년 전이고 증거도 없는데다가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 전이라 니가 자백한다고 해도 어떻게 엮을 수는 없어.
이 돈도 가져갈 수 없게 된 마당에 그때 일이라도 솔직히 이야기해라. 그럼 음... 그래 이렇게 하자. 내가 들어봐서 그게 진실인 듯 싶으면 그냥 조용히 돌아가마. 미정이 년 죽었다고 괜히 너한테 불똥인 튄 꼴이니... 어때 이야기할래? 아니면 뒷수습할래?“
“... 정말.. 이세요? 형님 말대로 하면...”
“대신 허튼 소리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알지? 진실이라고 느껴지면... 그래... 서울에 있는 정재희한테 너랑 있었던 일은 우연인 것 같다고도 이야기해줄게. 만약 선미 따먹은 것도 알려지면 그 여자도 니 옆에 계속 붙어 있을지 모르지..”
민현규에게 내가 내민 마지막 카드는 정재희를 고이 돌려 보내주는 것이었다. 내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둘 사이는 서로에게 약간 불만을 가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연인들일 뿐이었으니...
이후로도 한참동안 뜸을 들이던 녀석은 시계가 정오를 가리킬 무렵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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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범한 장면들 그리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오래 걸리네요.. 담에 또...^^
일단 처음 본 여대생의 모습은 순진하고 착해 보이긴 했지만 안경을 쓴데다 키도 별로 크지 않고 여느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경리 인상을 풍기고 있었는데 미정이와 정재희를 취했던 민현규의 화려한 여성 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보였고 그래서 녀석이 정재희가 없는 몇 개월 동안 쓸 아르바이트 자리는 자신의 욕정을 해결해줄 수 있는 여자가 아닌 그냥 성실하고 말을 잘 들을 듯한 직원을 뽑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펑퍼짐한 티 안에 숨겨 놓은 가슴은 꽤 커보였으며 그 나이 때의 여자애들은 조금만 꾸며도 달라 보이는 법이라 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인 9월 초, 캠코더를 옆에 두고 카페에서, 차안에서 무언가 이상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 하루 종일 매장을 지켜보는 며칠이 지나가는 동안 난 정재희의 도움으로 여대생 이름이 유선미라는 것과 광주에 있는 00대 2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퇴근 무렵에 그녀의 뒤를 쫓아 그 곳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있는 주택에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
유선미의 집은 마당이 그리 크지 않고 읍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와집이었는데 대문 앞에 있는 문패에 유진오라는 이름이 적혀 있고 그 밑에 칠성리 284번지라는 주소도 쓰여 있었다. 난 그녀의 집 앞에서 문득 유선미를 민현규가 건드리기는 만만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그녀가 정재희나 미정이와는 다르게 부모 밑에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휴학하기 전까지 다닌 00대는 그래도 전남에서는 알아주는 사립대학교로 미래도 불투명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현규가 유선미를 안기 위해 정재희에게 구사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 애에게 접근하는 것도 위험해보였다. 부모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어떤 일이 생겨서 집에 못 들어가게 되면 연락을 하게 될 것이고 그 때 유선미가 부모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면 일이 너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녀석이 정재희라는 여자를 가지기 위해 들인 공을 생각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수를 쓸 수도 있지만 유선미라는 여대생의 입장에서 자신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사장과 자는 것은 너무 경우 없는 짓일 것이다. 만약 민현규가 유부남이 아니라면 돈이 많아 보이니 처녀 총각 사이라 그럴 수도...
하지만 며칠 후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그 해 추석은 9월 중순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 아침 저녁 차가운 바람이 불고 일교차가 커서 장터에서 2만원짜리 잠바를 하나 사 입고 매장을 지켜보던 그 날, 유선미는 여느 때처럼 7시 반 무렵 퇴근하지 않고 민현규와 함께 8시 넘어서까지 매장에 있었다. 거리는 명절분위기가 나고 있었고 대목이라 늦게 까지 일을 하는 구나하고 별 생각 없이 허기를 달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른 날보다 30분 정도 일찍 매장 불이 꺼지더니 민현규가 유선미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외곽도로 쪽으로 차를 몰았다.
부리나케 검정색 그랜저를 쫓았는데 15분 후 정재희와 밀회를 즐기던 모텔 촌에 도착했고 난 민현규의 차가 지나간 후에 진입했던 골목에서 사이 길에서 나온 차량에 막혀 그랜저를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부리나케 모텔 몇 군데를 뒤져 녀석의 차량을 찾긴 했지만 이미 연놈들이 사라진 후였고 난 유선미와 민현규가 들어간 모텔 앞 골목길에 차를 세워두고 고민해야 했다.
이 분위기라면 유선미는 민현규에게 거의 자발적으로 몸을 준 것이었고 내가 녀석에게 여대생과 재미를 본 걸 마누라에게 폭로하겠다는 정도로 들이 대는 건 오히려 정재희와 내연의 관계라는 걸 이야기하는 것 보다 약발이 강할 것 같지 않다. 대비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2시간을 모텔 앞에서 기다리다가 민현규와 유선미가 모텔 입구를 나와 차에 탈 때까지의 모습을 캠코더로 찍은 나는 여인숙으로 가서 민현규와의 담판 과정에서 나올 시나리오 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한 후에 잠을 청했다. 새벽이 되도록 잠이 잘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며 드는 생각은 녀석의 입에서 무언가를 들어내지 못하면 미정이의 학창 시절 남자에게서 받은 상처를 알아내는 일은 끝이 나고 그럼 다음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상념이었다. 그냥 돌아가기엔 나로 인해 자살까지 하게 된 미정이에 대한 죄책감을 하나도 지워내지 못한 채 그대로인데...
다음 날 아침을 해장국 집에서 든든하게 챙겨 먹은 후에 난 캠코더를 들고 나이키 매장 앞으로 가서 민현규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난 놈이 매장 문을 열자마자 쳐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유선미와 어제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사장인 그 놈이 정재희처럼 하루 쉬고 출근하라고는 못할지 몰라도 늦게 출근하라고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한가한 아침 시간에 녀석의 매장 안에서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 때 협상과정에서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내가 쥐고 있는 카드가 평범한 녀석은 몰라도 그 놈을 핍박하는 데는 약간 부족할지 모르니 부드럽게 협상을 진행하다 역공이 들어올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차원에서 처음부터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하며 또 하나는 그런 와중에서도 놈이 경찰인 내게 너무 겁을 먹고 미정이 일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되려 덤태기를 쓸 수도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거나 축소하지 않도록 약간의 친근감도 같이 주여야 하는 것이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민현규의 모습이 보였고 나이키 매장의 셔터가 올라갔다. 길 건너편에서 보고 있던 나는 녀석이 매장 안에서 간단히 청소를 하고 나서 종이컵에 커피 한 잔을 탄 후 신문을 보려고 펼 때 까지 기다리다 캠코더를 들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내가 들어서는 걸 본 민현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다 며칠 동안 면도는커녕 머리도 제대로 깜지 않고 싸구려 점퍼에 운동화를 신은 날 보고 표정이 약간 의아한 듯 변했고 난 녀석의 코앞까지 갈 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다가 그 놈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을 던졌다.
“민현규씨?”
“아.. 예... 누구신지...”
“나? 누구긴 좇나게 꼬인 인생이지. 씨발... 신분증 여기 있으니 보시든지..”
난 경찰 신분증을 카운터 위에 던졌고 민현규가 그 걸 들고 자세히 보려하는 순간 다시 놈의 손에서 낚아채서 가져왔는데 갑자기 놈이 불안감이 섞인 표정에 우물쭈물하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응? 개인적인 일도 있고 공적인 일도 있고 겸사겸사.. 왔지.. 아침 댓바람에 찾아와서 미안하긴 한데 커피 없을까?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했으면 좋겠는데...”
“아.. 예.. 잠시만...”
신분증에 생년월일을 봤다면 자신보다 연배가 높다는 것은 알 것이고 난 의식적으로 말꼬리를 자르며 녀석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 후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받고 있는 뒤통수에 대고 혼자 말을 했다.
“미친년이 왜 자살을 해가지고 사람을 이 고생을 시켜... 좇도 일이 꼬일라니까... 씨발... 내가 그년하고 뭔 상관이 있다고...자살 이유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건지.. 씨발.. 빛이 많아서 죽은 거라니까..”
난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악하고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가래침을 카운터 위에 놓인 빈 종이컵에 뱉은 후에 뒤 쪽에 놓인 탁자 위에 캠코더를 내려놓으며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놓인 의자에 앉았고 민현규는 커피를 가져와 내 앞에 놓고 건너 편 의자에 앉아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별일 아니지. 어떤 미친년이 자살을 했는데 사인이 확실치 않아서 내가 의심 받고 있다는 것뿐이야. 내가 그년이 죽기 전에 몇 번 했거든. 크크. 티켓 비 주고 몇 번 한 사이인데 그년하고 내가 만나는 걸 본 사람이 몇 명 있어서... 이 새끼들이 그 년하고 나하고 애인 사이였다고 증언을 했거든... 덕분에 내가 이 전라도 땅에서 헤메고 다니지만... 크크크.”
“그런데 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요?”
“하하하... 내가 민사장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한 적 없는데.. 지레 겁 먹으시긴... 난 그냥 그년이 자살을 한 정황이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내가 의심받는 게 싫어서 잠깐 휴직을 했어... 씨발 이 새끼 저 새끼 쳐다보기만 해도 괜히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것 같아서 죽여버리고 싶더라고... 쉬어야지.. 씨발.. 뭐.. 누구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 보라던데...”
“계속 알 수 없는 말씀만 하시는 군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와 관계없는 일 같은데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이제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하니...”
“뭐야? 영업방해하지 말라는 건가? 크크크... 민현규... 내가 널 찾는데만 보름이 걸렸고 여기서 잠복한 지도 20일이 넘어가는데... 갑자기 정재희가 없어진 터라 서울 원자력 병원가서 이야기 듣고 오는 것도 꽤 힘들었어. 그 사이에 아르바이트 여대생도 어떻게 구워 삶아서 어제 주워 먹더구만... 능력 좋으시네... 민사장..“
똥 씹은 표정이 된 민현규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자. 이거 어제 밤에 니가 여기 일하는 유선미와 모텔에서 나오는 장면인데 잠깐만 기다려.. 보여줄게... 어떻게 키더라... 이걸 누르던가?”
난 캠코더의 미니 화면으로 그 장면을 녀석에게 보여줬다.
“당신 누구야? 이게 누굴 찍은 건지 내가 알게 뭐야?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누구긴... 경찰이라니까... 그래? 여기서 일하는 여대생이 보고도 그렇게 말할까? 정신 똑바로 차려... 씨발... 발뺌하신다 이건가 본데... 어이 민현규...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게 좋아. 맨날 사기 친 놈하고 조폭 애들 다루다 보니 내가 말을 좀 편하게 한다만은 그렇다고 오리발 내밀다 골로 간다. 칠성리에 있는 유선미 집에 가서 개 부모 앞에서 틀어줄까? 너 뒷수습하려면 돈 좀 들겠다. 크크크”
“왜 이러는 거요? 내 뒷조사를 왜?.. 난 당신 처음 보는데...?
“나도 내가 니 뒷조사까지 해야 되는 이 현실이 좇같다. 그 년이 농약을 처먹을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 덕분에 난 출근하면 직원들이 씹어대는 통에 형사 짓도 못하고 이러고 돌아다니고 있다. 잠잠해질 때까지 한 1년 휴직하며 쉬려다 나름 뭔가 집히는 게 있어서... 아니 다방에서 일하는 년이 몇 번 같이 잔 남자한테 채였다고 자살을 해?”
내가 그 이야기까지 끝냈을 때 문을 열고 유선미가 들어오고 있었다. 민현규가 부리나케 일어나 그 애에게 다가가더니 내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내가 큰 소리로 초를 쳤다.
“어... 이게 누구신가? 아가씨도 여기 와서 잠깐 앉지? 잘됐네. 빨리도 출근하셨네...”
“저기... 저랑 이야기하시죠. 애는 아르바이트 학생이고 여기서 일한 지 며칠 안 되서 아무 것도 몰라요...”
“학생이셨어? 아 난 또 너무 자연스럽게 차타고 같이 가는 걸 보고 마누란 줄 알았네... 씨발... ”
내 이야기도 끝나기 전에 민현규가 유선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더니 손에다 만 원지폐 몇 장을 쥐어 주면서 그 애의 등을 떠밀고 나서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왔고 난 매장 안을 바라보며 바삐 걸음을 옮기는 유선미를 향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이리 안와! 학생이면 학생답게 씹을 아무데나 돌리면 안 되지... 생긴 건 착하게 생겼구먼...”
난 그 애가 들을 때는 결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유리문 바깥에서 못들을 때 이런 저런 사실을 이야기하며 민현규를 압박했고 놈은 울상이 되어 내 앞으로 와서 앉으며 애원을 시작했다.
“아이구... 형사님... 왜 그러십니까? 도대체... 재도 성인이고 합의하에 잠 한 번 같이 잔겁니다. 너그러이 봐주세요.. 다음부터는 함부로 행동 안하겠습니다.”
“그러셨어?.. 00대 다니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여자애하고 합의하에 씹질을 하셨어? 정재희는 이혼녀니 임자 없어서 따먹으셨고?,... 니 놈이 이 년 저 년 다 처먹고 다니니 나 같은 총각 놈은 애인 한 명 없이 늙어 가는 거지... 밤엔 비디오 보면서 딸딸이나 치고..”
“아닙니다. 정재희씨는 저하고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누님이세요. 그냥 전부터 아는 분인데 직장이 없으시다고 해서 저희 매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드린 것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오호... 니들이 2주 전쯤 스카이모텔 605호에서 부둥켜 안고 있을 때 난 604호에 있었는데 이를 어쩌나... 하아..아아... 아아항... 하앙... 난리가 났더구만 아무 사이도 아니시다. 이 새끼가 누굴 바지저고리로 보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민현규의 눈동자가 동그래지더니 입을 열지 못하고 날 처다만 보고 있었다.
“니들 모텔에 같이 있던 사진도 찍어서 이 핸드폰 안에 고이 넣어 놨거든. 이래도 인정 못하시겠다?”
“아.. 아니... 그래도... 성인남녀가 눈이 맞으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죠... 그게 그렇게 큰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음.. 이제야 기억이 나나 보네. 그래 진작 그렇게 나올 일이지... 니 말이 맞다. 그게 무슨 큰 죄가 되겠냐? 그리고 설사 죄가 좀 된다고 해도 책임만 지면 되는 거 아니겠어? 나도 남잔데 다 이해한다. 다리 벌리고 달려드는 데 한 번 꽂아 준거겠지.”
도망갈 구멍을 찾던 민현규의 반항을 순순히 받아주자 녀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 문 열자마자 찾아와서 실례가 많았다. 나 일단 갈란다... 대신 20일을 밥도 제대로 못먹고 니 놈 쫓아다니건 좀 억울하니 니 마누라 만나서 비디오랑 사진은 보여줘야겠고 정재희 말이 맞는 건지는 모르지만 여기 경찰에 제보 좀 해야겠다. 돈을 도난당했고 신고도 했다지만 미심쩍은 게 너무 많아. 광주 물류창고 직원 놈 불러서 참고인으로 조사 좀 하고 정재희랑 대질도 하고 그러면 뭔가 나올 것도 같은데... 그리고 유선미란 년은 부모가 새빠지게 고생해서 00대까지 보냈놨더니만 니 놈하고 씹질하고 다니더라고 개 아빠, 칠성리 284번지 유진오씨한테는 말을 해줘야겠지... 앞으로는 딸년 단속 좀 하시라고...”
그 말을 끝으로 문으로 향해 걸어가는 내 손을 잡는 민현규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원하는 게 돈이면 길게 끌지 말고 이야기하시오. 내가 십분 내로 은행에서 찾아다 드리겠소.”
“말이 좀 통하는 분위기군. 이제 좀 남자답게 보인다. 그 동안 체류비로 든 돈만 이백이고 수고비도 좀 생각해줘야 하고 남은 휴직기간 동안 생활비도 부족하니... 이렇게 하자. 천 오백으로 끝내자. 핸드폰 사진하고 녹화해 논 것도 너 보는 앞에서 삭제할게.”
“천 오백이요? 잠깐만요... 아니... 요새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그 정도 현금은 없어요. 조금만 생각해주세요.”
“좋아. 십분 내로 가져오면 천 이백으로 해주마. 더 깎아달라고 할 거라면 그냥 포기해라. 요새 천만 원이 돈이냐? 쓸데도 없다. 그리고 내가 까발리면 수습하는데 얼마의 돈이 들지는 모르겠다만 돈보다도 이런 일들 밝혀지면 지역사회에서 그 쪽팔림 어떻게 감수할래?”
“지금 은행에 8백 정도 있어요. 카드 현금서비스까지 긁어서 천 만원 십분 내로 가져올게요. 그걸로 좀 ...”
“씨발놈... 천 백... 그 이상은 안 돼.”
그렇게 놈과 얼마간 더 흥정을 해서 천 오십 만원을 받기로 한 후 돈을 찾으러간 민현규를 매장 밖에서 기다렸다. 내가 경찰인 걸 감안하면 이 놈이 돈을 찾아오는 게 아니라 허튼 짓을 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어느 곳이고 깡패나 건달들은 존재하는 법이어서 여러 명이 같이 와 되려 날 협박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버린다는 식으로...
내가 민현규라면 일단 돈을 준 다음 경찰이란 놈이 돈을 뜯어 간 꼴이 되니 이판사판 역공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치부가 모두 드러나게 되는 꼴이라 그것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민현규가 돈을 찾으러 간 후 나이키 매장 문이 보이는 건너편 골목의 대문 옆에 몸을 숨긴 나는 민현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십오 분쯤 후에 녀석이 조그만 쇼핑백을 들고 매장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매장으로 가지 않고 녀석의 동태와 주변 거리를 살폈다. 한참을 기다려도 별다른 정황은 보이지 않는데다 매장 안으로 들어간 민현규가 별다른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탁자 위에 놓인 쇼핑백을 침통한 표정으로 쳐다만 보고 있는 걸 확인한 후 난 다시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녀석 앞에 다시 앉았다.
“간단하군. 이렇게 빨리 돈을 만들어오다니... 새볼 필요는 없겠지?”
“예.. 맞아요. 핸드폰하고 테이프는 주시죠. 그런데 정말 경찰 맞으시나요?”
“응. 왜? 경찰이 돈 뜯어가니까 이상해?”
“아니.. 아니요... 이렇게 끝나는 것만 해도 다행이죠. 그런데 신분증 한 번만 더 보여줄 수 있으세요?”
“아 잠깐... 이 매장 안에 CCTV 있지? 이거 안 되겠는데... 그럼 내 모습이 다 찍혔을 거 아냐? 민중의 지팡이가 국민에게 돈 뜯는 장면이 어디 새기라도 하면 개망신인데... 그냥
없었던 걸로 하자.”
“아 저거 지금 고장 났어요. 확인해보시면 되요. 창고 안에 모니터랑 기계 있는데 먹통입니다. 그건 걱정 마시고 신분증 한번 만 더 보여주세요.”
“확인을 시켜 달라? 시켜주지...”
난 신분증과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손에 쥔 채로 녀석에게 전화번호를 불렀다.
“031-202-0112 우리 서 경무계 전화번호다. 조석훈씨하고 통화하고 싶다고 해봐. 그럼 얼마 전에 휴직해서 지금 근무를 안 한다고 할 거다.”
민현규가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한 후에 녀석에게 내 신분증과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었다. 녀석이 그걸 확인하더니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 근데... 여긴 관할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와서 제 뒷조사를 하신 거죠?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음... 좋아.. 어쨌든 이젠 돈을 받을 수는 없겠다. 내가 누군지 다 알아버렸으니 이 돈 갖고 갔다가 니 놈이 신고라도 하면 난 파면이다. 씨발... 이런 푼돈 받고 공무원 자릴 갖다 버릴 순 없지..”
“예?.. 걱정마세요. 이 돈 받고 눈감아주시면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더러 쥐약을 먹으라고! 씨발놈... 이제 늦었어. 순리대로 가.. 애시당초 니 놈한테 돈 뜯어내려고 널 쫓아다닌 건 아니니까.”
“그럼 왜 절? 순리대로 간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이긴... 아까 내가 말한대로 마누라 만나고.. 이 곳 경찰서 잠깐 들리고.. 칠성리 선미네 집에 간다는 이야기지... 어차피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었어.”
“아이고..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까 끝난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무슨 계획이요?”
“이 새끼가...내가 왜 니 형님이야? 끝난 이야기를 신분증 운운한건 너잖아. 내가 미쳤던 것 같다. 너 같은 놈이 몇 년 전 이야기를 기억할 리도 없고...”
“무슨 이야기요? 알아듣게 설명 좀 해주세요...”
“내가 그년 고향에 찾아 갔더니 5년 전에 너와 좀 엮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널 찾아왔던거야. 근데 니 놈 뒷조사를 좀 하다보니 어쩌다 시간이 꽤 흘러 버렸고 잘 하면 휴직기간 중 쓸 돈 좀 뜯어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깔끔이 접을란다. 지 까짓게 자살한 게 무슨 이유가 있겠냐... 남자가 살면서 바람 한 번 안 피우는 놈이 어디 있겠냐만은 경찰이란 놈이 그냥 갈 수도 없고... 알아서 수습해라... 나 간다.”
“누가 저하고 엮였다는 말씀이세요? 누구요?”
“응?.. 개? 누구긴 김미정 있잖아. 남해 00중학교.. 하긴 넌 하두 기집애들 주워 먹고 다니니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다.”
“미정이가 자살을 했어요? 그런데요?”
“그 년하고 내가 몇 번 잤거든. 하필 그 때 죽어가지고.. 그게 타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좀 의심을 받았어. 덕분에 열 받아서 휴직원 내고 쉬는 중이다.”
“어떻게 죽었는데요?”
“씨발. 왜 이리 궁금한 게 많아. 농약 먹고 죽었는데 그게 무슨 농약이냐면.. 이름이 뭐더라...그라목손인가... 그게 무슨 음료수 색깔이라 실수로 몇 모금만 마셔도 죽어. 누가 음료수나 술처럼 속여서 먹게 할 수도 있고... 다방에서 일하던 년이 먹고 숨져 있었는데... 영업장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지만 뒷마당으로 나가는 쪽문으로 누군가 드나들 수가 있었거든. 유서가 있긴 했는데 너무 조잡하고 짧게 써져 있어서 필적 감정도 잘 안 돼. 농약을 먹고 쓴 것 같긴 한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써서 놔둘 수도 있는 거니까.”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그게... 뭐냐? 세상이 싫고 남자가 싫다고... 나도 들은 이야기야. 그래서 미정이 예전에 만나던 남자들을 만나보면 실마리가 좀 잡힐까 싶어 돌아다니다 보니 돈은 돈대로 들고 씨발 못할 짓거리다. 포기할란다.”
“...”
민현규가 입을 다물었고 이제 본격적인 협상이 들어가야 하는데 녀석은 미정이가 중학생일 때 교생신분으로 만났으니 섣불리 털어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때가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 초기였으니..
“미정이란 년 죽은 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은... 너랑 만난 건 5년 전이니.. 내가 그 년 만날 때 처음 남자랑 잔 게 몇 살 때냐고 물었더니 중 3때라고 하더라. 교생선생님하고... 씨발 그 때야 그 년이 누구랑 자든 말든 별 관심 없었는데 내가 의심받는 상황이 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널 쫓아다닌 거야. 그러다 이 년 저 년 건드리는 걸 보고 돈 좀 뜯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고...”
“미정이가 저랑 잤다고 해요? 아닙니다. 교생이 어떻게 학생을 건드려요? 그것도 중학생을... 억울합니다. 정말...”
“이 새끼가. 중학생 씹은 왜 구멍이 막혀 있다디? 좇까는 소리 하고 있네... 그런 촌 중학교에서 학생하고 붙어먹든 선생년하고 붙어먹든 알게 뭐야? 씨발... 정재희란 년도 너 중학교 때 학원 선생이라며? ...
잡아뗄려면 떼라. 그러지않아도 괜한 짓거리한 게 성질나서 본전 생각이 간절한 판국에... 열받으면 씨발 이 동영상 인터넷에 띄워 버릴라니까.. 니 실명이랑 적어서... 제목은 아르바트생 따 먹고 나오는 00읍 나이키 매장 사장이라고 할까...“
“...”
“좀만한 새끼가 솔직모드로 나가자고 해서 신분증 다 까주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다 해줬더니만 사람을 등신으로 보나? 씨발.. 좋아. 마지막으로 묻는다. 미정이란 년 아다 깨준 게 너지? 아니야? 셋 셀 동안 대답해라. 또 한 번 거짓말하면 좇 같은 거 광양 땅 한 번 들쑤셔주마.”
“그게... 네..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전 억울합니다. 그 애가 좋다고 막 달려들어서 그만...”
“그래?.. 미정이는 그렇게 이야기 안하던데...”
“예? 뭐... 뭐라고 했는데요?”
“교생선생님이 할머니 병원비도 내주고 해서 잤다던데...”
“할머니병원비요? 그건... 그 애 형편이 하두 어려워서... 그냥 제가...”
“잠깐... 너... 내말 잘 듣고 신중하게 이야기해라. 그 때 일은 벌써 몇 년 전이고 증거도 없는데다가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 전이라 니가 자백한다고 해도 어떻게 엮을 수는 없어.
이 돈도 가져갈 수 없게 된 마당에 그때 일이라도 솔직히 이야기해라. 그럼 음... 그래 이렇게 하자. 내가 들어봐서 그게 진실인 듯 싶으면 그냥 조용히 돌아가마. 미정이 년 죽었다고 괜히 너한테 불똥인 튄 꼴이니... 어때 이야기할래? 아니면 뒷수습할래?“
“... 정말.. 이세요? 형님 말대로 하면...”
“대신 허튼 소리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알지? 진실이라고 느껴지면... 그래... 서울에 있는 정재희한테 너랑 있었던 일은 우연인 것 같다고도 이야기해줄게. 만약 선미 따먹은 것도 알려지면 그 여자도 니 옆에 계속 붙어 있을지 모르지..”
민현규에게 내가 내민 마지막 카드는 정재희를 고이 돌려 보내주는 것이었다. 내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둘 사이는 서로에게 약간 불만을 가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연인들일 뿐이었으니...
이후로도 한참동안 뜸을 들이던 녀석은 시계가 정오를 가리킬 무렵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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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범한 장면들 그리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오래 걸리네요.. 담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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