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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여체 - 상편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10 1,265회 0건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짧은 글로 다시 찾아뵙는 숲그림자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기서의 글을 접었지만, 잊혀지지 않은 고향을 찾아오듯 이곳에 짧은 글 하나를 들고 염치불구하고 다시 이렇게 흔적을 남깁니다.
부디 너무 질책마시고 너그럽게 이해 바랍니다.
앞으로도 간혹 삶이 무료하고, 따분하면 간혹 스치듯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역시 무언가에 구애 받지 않는 야설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소재와 단어에 구애 받는 소설은 아무리 야해도 무언가 허전하다는... ㅜ.ㅜ;;;
일반 소설은 아르바이트로 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아프고 말입니다.

하루에 두 편만 올려야 하기에 오늘은 일단 상편만 남기고,
토요일에 하편과 에필로그를 함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짬내서 쓴 글이라 재미는 그다지 일겁니다.
시간도 많지 않아 오타도 많을 듯 합니다.
하여 관심이 없으신 분은 과감하게 패쑤~~~~~~~!!!




“하읏!, 읏!”
점점 흐려지는 시야에 침대 머리 판의 격자무늬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난 다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뒤쪽에서 살갗의 요란한 부딪침이 들려올 때마다 격정의 파도 하나가 사타구니 전체에서 퍼져 온 몸을 타고 목을 조여 오는 느낌에 참으려 애를 써도 자꾸만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읏!”
살갗을 파고드는 강인한 무언가에 다시 신음을 내질렀다.
어지러워진 시트 위에 발정 난 암캐 마냥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 나는 밀려나오는 격한 신음을 막기 위해 시트자락을 당겨 입을 막아보았지만, 날 이토록 뜨겁게 만드는 남자의 육체는 너무 강했고, 난 그 남자의 귓전에 나의 짙은 신음을 고스란히 들려줄 수밖에 없다.
“하아, 아읏, 읏····.”
참아내지 못하는 신음, 그리고 점점 땀에 젖어가는 나의 나신,
벌써 삼십분이 넘게 날 공격하는 남자의 공격에 의해 온 몸에 맺히는 땀방울처럼 나의 그곳도 내 육체가 뱉어낸 애액에 의해 흠뻑 젖었으리라,
‘하아, 좋아···, 미치겠어, 이대로 죽어도 좋아···.’
차마 남자에게 할 수 없는 말을 가슴으로 말했다.
이제는 나의 육체 모든 곳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남자.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섹스를 나눌 때 마다 날 절정의 벼랑 끝으로 모는 남자,
난 알지 못했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 여자였는지를 말이다.
조용했던 여자,
순종을 여자의 미덕으로 알았던 내가 지금처럼 남자의 품에 안겨 숨을 헐떡이고, 뜨거운 신음을 참지 못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말이다.
그리고 난,
섹스란 그런 것인 줄 알고만 있었다.
그냥 조용히 남자를 받아들이고, 그 남자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면 그 뿐이라고 말이다.
허나 이제 난 안다.
섹스란 그런 것이 아님을,
섹스란 뜨거움이며, 그 뜨거움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드러낼 때, 그 상대방이 더 큰 뜨거움과 희열을 준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난 나의 뜨거움을 이 남자에게 간혹 고스란히 드러낸다.
내 몸의 실직적인 주인인 남편에게는 보여주지 못하는 뜨거운 모습을 말이다.
“아읏!”
남자의 공격이 빨라진다.
허리를 거머쥔 남자의 손이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빠르게 당기기 시작 했다.
나도 절정을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 아니 이미 작은 절정은 나의 온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지만 이것과 비교 되지 않는 절정의 쾌감이 곧 몰아친다는 생각에 나는 입술을 굳게 물고, 주먹을 쥔 채로 뺨을 침대에 묻었다.
이젠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면 남자의 물건이 나의 몸 속 깊이 들어 올 수 있음을 말이다.
엉덩이를 바짝 세워 남자를 받아 들였다.
이어진 세찬 공격에 다시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순간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알려주지 못했던 걸까.
섹스가 이렇듯 절정의 희열을 안겨주고, 그 희열이야 말로 세상의 어떤 감흥보다 짜릿하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남편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 금세 사리지고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는 희열의 감각이 채워가고 있었다. 이제 곧 절정의 순간이 다가 올 것이다. 남자는 내가 절정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계속 펌프질을 해대고 있었다.
다음 순간 나는 아랫배와 사타구니에 잔뜩 힘을 주기 시작했다.
절정의 쾌감이 온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몸에 경직이 오기 시작했고, 온 몸에 힘을 주며 입이 잔뜩 벌어지던 순간 날 기다렸던 남자가 엉덩이에 아랫배를 밀착하며 나의 골반을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
오늘 가졌던 섹스 도중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와 동시에 나의 질 깊숙이 남자의 정액이 쏟아지고 있음을 생생히 느꼈다. 그 느낌이 더해지며 절정은 날 낭떠러지 밑으로 밀고 있었다.
도대체가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긴 낭떠러지로 말이다.



‘·····.’
시간이 흐르며 목을 죄어오던 절정의 기운이 목을 풀어주자 난 숨을 거칠게 쉬었다.
그리고 나의 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의 물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난 옆으로 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둔부를 잡아 세우고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난 느낄 수 있었다. 들려진 엉덩이 사이에서 섹스의 흔적을 잔뜩 뒤집어썼을 나의 보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을 말이다. 그런 그의 행동이 한때는 너무도 민망했지만 이제 난 그냥 그의 시선을 느끼고만 있다. 그가 싫증을 내기만을 기다리며 말이다.
남자가 나의 치켜든 엉덩이에 입맞춤을 해주고 골반을 놓아주었다.
난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내리고 웅크린 자세로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가 침대에서 내려가고 있었지만 난 지금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절정의 기운이 아직 온 몸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결국 얼마 후 남자가 수건 하나를 들고 다시 돌아 올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엎드려 웅크리고만 있었다.
“······.”
차가운 물기가 사타구니에 닿고 있었다.
아마도 수건을 적셔온 듯, 남자는 엎드려 있는 내 엉덩이 밑에 수건을 대고는 손바닥으로 내 보지를 닦아주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인가 수건의 위치를 바꿔가며 보지를 닦아주던 남자가 꼬리뼈 부근에 입을 다시 맞췄다.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등을 보이고 앉아 자신의 물건을 젖은 수건으로 닦고 있는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움직일 때마다 등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평범한 몸매를 가진 남편과는 다른 탄탄함이 느껴지는 등이었다.
그때 남자가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
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를 지어보인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벗어 놓은 팬티를 입기 시작했지만, 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
“일어날래요?”
“아뇨, 옷 입고 먼저 가요.”
“알았어요.”
나의 말에 대답을 한 남자가 다시 자신의 옷을 입었고, 난 그가 옷을 모두 입은 와중에도 알몸 그대로 침대에 웅크린 자세로 그를 바라만 보았다.
옷을 모두 입은 남자가 다가와 어깨에 입맞춤을 하고는 다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언제보아도 이 남자의 미소는 근사하게만 보였다. 항상 날 이렇게 뜨겁게 만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정말 부드러운 미소임에는 분명했다.
“갈게요. 가게를 너무 오래 비울 수가 없어서···.”
“······.”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준 남자가 먼저 방을 나서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웅크려 있던 난 길게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
여전히 사타구니에서 느껴지는 절정의 기운에 미간을 살짝 찡그린 나는 방금 전 남자와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침대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의 손으로 직접 골라주었던 침대, 그리고 직접 사서 씌웠던 침대 시트까지····.
난 그렇게 비록 내 집은 아니었지만 나의 손길이 닿은 침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의 나신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
중독 된 여체,
그랬다. 그와 난 지금 서로의 육체에 중독이 된 상태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의 육체에 중독이 됐다.
우연히 시작됐던 이 관계에 내가 이렇게 중독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편 말고는 남자를 몰랐고, 남편과 하는 섹스가 전부였던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였던 내가 이제는 하루라도 남자와의 섹스를 거르면 아쉬움을 느끼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
남자가 날 이렇게 바꿔 놓았다.
나도, 내 삶도,
그리고 내 육체도 말이다.
난 이제 작은 꿈을 꾼다.
그 남자가 나에게 그랬듯, 나도 그 남자에게 희열을 주는 여자이고 싶다는 꿈을 말이다. 그 꿈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그는 나에게 더 큰 희열을 안겨 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결코 주지 못하는 크나큰 희열을 말이다.
“·····.”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나선다.
이제는 낯익은 남자의 집안 풍경을 스치고 지나 욕실로 들어간 나는 거울속의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았다.
가식적인 미소·····.
하지만 그 가식적인 미소가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곳에서의 내 삶은 타인에게는 보일 수 없는 가식적인 삶이기에 말이다.
그런 나의 가식적인 미소를 잠시 응시하다 이런 나의 가식적인 삶을 만들게 된 지나간 하나의 추억을 떠올린다.
우연처럼 시작되었던 3일간의 그 시간····,
중독된 여체를 만들어버리던 그 3일간의 뜨거웠던 시간을 말이다.





1. 그 여자, 승주의 이야기 - 죄어지는 운명


“·····.”
손끝이 살짝 떨려왔고 난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저 무료했던 삶속에서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 찾았던 한 펜팔사이트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무료한 삶에 작은 소소함을 가지고 싶었던 시작이었다. 하지만 오고가는 메일이 쌓임과 동시에 그에 대한 신뢰도 생겼고, 어느 날부터인가는 그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하여 남자의 제의를 부리치지 못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굵직했던 그의 목소리,
두근거리는 가슴과 황망함에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그는 먼저 그날의 통화를 끝으로 그는 다시는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신 용기가 나면 나에게 전화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정확히 일주일이 걸렸다.
내가 그에게 다시 전화를 하기까지는 말이다.
수많은 망설임과 설렘을 진정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말했다.
오늘은 1분만 통화를 하자고,
그리고 그 다음번에 2분을 통화했고,
그 다음 통화에는 3분을 통화했었다.
그렇게 그 남자와의 통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며 난 잊었던 떨림을 기억해 냈다.
오래전 남편을 만나 수줍음에 설레던 그때 그 시간의 떨림을 말이다.
허나 그 떨림은 오래가지는 않았다. 남자와의 통화가 잦아지고 환한 미소와 웃음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으며 그 떨림과 설렘은 이내 익숙함과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마치 내 삶에 완전히 동화된 삶의 일부처럼 말이다.
“····.”
핸드폰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시계를 향했다.
늘 변함없는 시간에 걸려오던 그 남자의 전화가 오늘은 살짝 늦어지고 있다.
난 다시 한 번 그 남자를 떠올렸다.
서 승우,
그 남자의 이름이다.
비록 내 삶을 공유하는 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이젠 내 삶을 공유하는 그 누구보다 나에게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을 전해주는 남자이다.
그래서일까, 드러낼 수 없는 존재임을 서로 알기에 드러낼 수 없는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 있었고, 그 비밀스러움이 더해지며 어느덧 우리는 좀 더 특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제껏 살아오며 한 번도 꿈꿔보지 못했던 그런 특별한 대화를 말이다.
비밀스러운 우리만의 대화 말이다.
‘리리리링···, 리리링···.’
핸드폰이 울렸다.
난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미안해요, 내가 조금 늦었죠. 일이 있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난 이 남자가 무엇을 하는지 아직 모른다.
서로가 정한 룰이 그랬다.
이름과 나이 말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그리고 어떻게 삶을 사는지도 말이다. 그래서 난 그렇게 용기를 냈을지도 모른다. 비밀스러운 우리만의 대화에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고 조금은 서운했다.
남자가 나에 대해 더 궁금해 하지 않은 것이 조금은 서운했고, 어떻게 생겼을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허나 먼저 묻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묻는다면 나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을 만큼 승우가 가깝게 느껴졌지만 여자인 내가 먼저 우리의 룰을 깨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럴 용기가 없었다. 하나를 알면 그에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질지 몰라 말이다.
“점심은 먹었어요?”
“네, 승주씨는 먹었어요?”
서 승주, 나의 이름이다.
그와 난 중간 이름이 겹쳤고, 이름만을 듣는다면 얼핏 남매의 이름처럼 들린다.
그와 처음 이름을 이야기하던 순간 그래서 웃었다. 이름이 너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우연처럼 나이가 갔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면서 그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 무너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비슷한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경계심을 허무는지 승우를 통해 배웠다.
“승주씨.”
“네.”
“오늘은 승주씨가 질문 한 가지를 할 차례니까, 어서 물어요.”
남자의 말에 난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세 달 전부터 서로 합의하에 정한 룰이었다. 두주마다 월요일 통화에서 한 번은 그가, 한 번은 내가 상대방에게 묻고 싶은 걸 물었다. 처음에 이 룰을 정할 때만 해도 혹여 그가 나에 관한 신상을 묻지는 않을까 했지만, 정확히 여섯 번의 질문을 하면서 그는 나에 대한 신상을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물었지만 말이다.
“나 오늘 세게 물을 건데 괜찮아요?”
“네, 얼마든지, 대신 나도 다음에 강도 높은 질문을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남자의 말에 난 살짝 긴장했다.
다음에 더 심한 걸 물으면 어쩌나 했지만 그렇다고 내 질문을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승우를 당황하게 하고 싶었다.
“좋아요, 뭐 거부권 있으니까, 그거 쓰면 돼요.”
“마음대로 해요.”
슬쩍 오기가 났다.
두 번의 대답 중 한 번의 패스할 수 있는 거부권을 승우도 나도 아직 쓰지 않았다. 지난 달 처음 질문에 그 거부권을 쓰고, 두 번째의 질문에 당황했던 걸 떠올린 나는 이번만큼은 신중하게 쓰기로 마음을 굳혔다.
“좋아요, 그럼 물을게요.”
“네.”
난 괜히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고, 살짝 숨을 들이 마신 뒤 굳은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섹스는 언제에요?”
질문을 던져놓고 얼굴이 빨개져 옴을 느꼈다.
지난 번 가슴이 크냐는 그의 질문에 별러오던 나의 일격이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묻기에는 너무 야한 질문이었다. 나의 어디에서 이런 용기가 생긴 걸까,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도 내지 못하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2년 됐어요.”
“·····.”
조금의 틈을 두고 대답을 한 승우의 말에 난 순간 조금 당황했다.
2년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과 동갑인 서른여섯의 남자가 2년이나 섹스를 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승우가 혼자인가, 아니면 남들이 보기에 외모가 형편없는 걸까, 난 짧은 시산에 많은 의문이 밀려왔다.
“정말이에요?”
결국 난 되묻고 말았다.
“네, 사실입니다. 맹세코····.”
“왜 2년이나?”
난 또다시 물었다.
단 한 번의 질문만을 할 수 없음을 알았지만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다시 질문 하는 겁니까? 그 질문에 답을 듣고 싶으면 나도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건 잊은 거 아니죠?”
“·····.”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룰이 그랬지만 솔직히 룰과 상관없이 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해요, 대답해줘요, 아니면 말아요?”
난 망설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려면 이주가 걸린다. 그마저도 승우가 거부권을 쓴다면 다시 물을 수 없다. 어째야하나 망설였다.
“거부권 안 쓸 거라면 듣고 싶어요?”
“거부권이요?”
“네, 그거 안 쓰는 조건이라면 알고 싶어요.”
“왜요?”
“승우씨 말 쉽게 믿어지지 않으니까.”
나의 말에 승우가 잠시 망설이는 듯 아무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승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 건 몇 초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실은 나 혼자 살아요.”
“혼자?”
“네, 결혼은 했는데, 이혼하고 혼자 살아요. 이혼하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항상 늦게 끝나서 여자를 만날 시간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럼, 2년 전이란 말은?”
“이혼하기 전이에요, 이혼하기 바로 전에····.”
승우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내가 더 물으려 한다면 승우도 그만큼의 숫자만큼 나에게 물을 테고 한 번의 거부권만을 가진 난 망설여졌다.
“승주씨.”
“네.”
“갑자기 말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왜 이혼했는지 궁금한 거죠?”
갑작스런 승우의 물음에 난 무슨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흠칫 놀랐다.
“아뇨.”
난 거짓으로 대답을 했다.
승우가 무엇을 물을지 몰랐기에 더 물을 수가 없었다.
“그래요, 난 그냥 이야기 해주려고 했는데, 싫다니 할 수 없죠.”
“······.”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와 다시 말해 달라고 하기에는 조금 우스운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럼, 약속대로 내가 물을 차례죠.”
“·····.”
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이내 침착함을 가장했다.
“네, 뭐든지 물어요.”
“흐음, 좋아요, 그럼 뭐가 좋을까.”
내심 긴장감이 들었다. 그리고 귓전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난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승주씨는 언제에요? 마지막 섹스···.”
나와 같은 질문이었다.
조금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들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승우가 혼자임을 오늘 알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승우는 아직 모르지만 난 남편이 있는 유부녀다. 그리고 이른 결혼 탓에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도 있고 말이다.
승우의 그 질문은 남편과 자신만의 은밀한 시간에 대한 물음이었다.
물론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며 묻기는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승우가 혼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조금은 쉽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자신처럼 결혼한 유부남인지, 아니면 내 생각대로 혼자라면 여자가 있는지가 솔직히 궁금했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고 승우의 대답에 알 수 없는 안도감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입장이 된 지금 난 망설였다.
순간 거짓말을 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어긋난 삶을 솔직히 이야기 한 승우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거부권을 쓸까 망설였다. 어째야 할까, 난 조금의 망설임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한 달 됐어요, 지난 달····.”
결국 난 사실을 이야기 했다.
지난 달 남편과 섹스를 했다. 약간의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이 오랜만에 날 안으려 했다. 십 사년이란 시간이 지나며 남편은 이제 나와의 섹스를 무슨 행사처럼 치루고 있었다, 그래서 난 오랜만에 날 안아주는 남편을 반갑게 맞았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남편의 체취가 난 너무 좋았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처음 남편과 섹스를 했고, 이제껏 나의 육체를 안은 유일한 남자였던 남편이 언제부터인가 날 안아주지 않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가끔 그 날처럼 남편이 날 안아줄 때면 난 행복했다. 아직 날 여자로 안아주는 남편이 고맙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구나, 나만 불쌍하네.”
“·····.”
불쑥 던진 승우의 푸념 섞인 말에 나도 몰래 미소가 머금어졌다.
“승주씨.”
“네.”
“·····.”
아직 가시지 않은 황망함에 얼굴을 붉히던 난 승우의 대답에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승우의 말이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어요?”
“아, 아니에요, 됐어요.”
머뭇거리는 승우의 말에 난 조금 짜증이 났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추는 행동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뭔데요, 말 해봐요, 나 말 하려다 멈추는 거, 제일 싫어해요.”
“아, 그게···, 오늘 승주씨가 룰을 한 번 깼으니까, 나도 한 번만 깨면 안 되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그만 두기로 했어요.”
“왜요?”
“자꾸 이러면 우리 룰도 망가질 것 같고, 그러다보면 날 믿는 승주씨의 마음도 흔들릴 것 같아서요.”
“·····.”
난 미소를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내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용감하지 못한 나를 대신해 승우가 먼저 용감해졌으면 싶지만 처음 통화를 할 때 내가 보였던 반응이 승우에게는 하나의 각인처럼 남은 듯 했다. 조금만 날 힘들데 하며 자신을 피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 같은 질문을 주고받을 만큼 허물이 많이 거둬졌지만, 사람의 첫인상은 그만큼 강한가보다, 아니면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승우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던가 말이다. 허나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런 승우가 조금은 미더웠다. 날 위해 자신의 욕심을 접는 승우가 고맙기도 했고 말이다.
“어디 살아요?”
난 불쑥 한 마디를 던졌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그러고 싶었다.
날 위해 망설이는 승우를 대신해서 말이다.
“네?”
“어디 사냐고요.”
“이거 질문이에요?”
“네, 대답하고 승우씨도 하나만 물어요.”
“정말이요, 우리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싫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우리 서로의 신변은 묻지 않기로 한 걸로 아는데요?”
난 미소를 머금었다.
분명 그랬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지켜왔다. 하지만 오늘 불쑥 그가 사는 곳이 어디일지 궁금했다.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요, 대신 승우씨도 더 묻기 없는 거예요.”
“근데, 뭐하나 물어도 됩니까?”
“뭔데요?”
“질문에 거부권을 써도 됩니까?”
“아뇨, 오늘은 우리 솔직하게 말하기로 해요, 이번 질문까지만···.”
“아···.”
승우의 짧은 탄식이 들려왔다.
난 오늘따라 알 수 없는 묘한 만용이 밀려들고 있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승우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이토록 과감하고 용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 난 평소와 다르다. 그냥 묻고 싶은 대로 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남편과의 비밀스러운 행위를 드러냈다는 흥분감에 빠져 있는지도 몰랐다.
난 승우의 말을 기다렸다.
오늘 승우가 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어디 사는지 묻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한다. 예전처럼 서로의 신변을 묻지 않기로 말이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동 입니다.”
“·····.”
난 너무 놀라 핸드폰을 놓칠 뻔 했다.
승우가 말한 **동은 내가 사는 곳이다. 그렇다면 승우가 바로 지척에 살고 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난 빨라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지만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통화를 하기 전 그 많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승우가 지척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사는 동네라는 말에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승주씨는 어디 살아요?”
바로 이어진 승우의 대답에 난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했다.
승우가 다른 걸 물었으면 했다. 내 입으로 먼저 거부권을 쓸 수 없음을 천명한 지금 승우가 차라리 다른 걸 묻기를 빌었다. 하지만 승우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난 눈을 내려 감았다. 차라리 남편과의 섹스가 어땠냐는 질문을 던졌으면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너무나 무거운 질문이었다.
난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승주씨?”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승우가 날 불렀다. 난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네.”
“아, 난 전화 끊어진 줄 알았네.”
난 순간 전화를 끊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리면 이제 승우와 다시는 통화를 할 수 없음도 알고 있었다. 승우는 모르겠지만 내 스스로 더는 승우와 통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지난 일 년 간 네 삶에서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내 작은 삶에 공간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았기에 난 망설였다.
결국 난 눈을 감아버렸고, 다시 한 번 전화를 끊을까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나도 **살아요.”
“·······.”
내가 내린 선택은 대답이었다.
스스로 모든 것에 솔직한 승우를 밀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승우가 아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처럼 놀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하, 그랬구나, 와, 이거 너무 뜻밖인데요.”
승우의 호탕한 웃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웃음 뒷자락에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승우도 나만큼 놀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승우의 그 호탕한 웃음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승주씨.”
“네.”
“오늘 우리 대화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죠, 괜찮죠?”
“네.”
대답을 하는 순간 난 어쩌면 승우에게서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어오는 승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다시 전화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제껏 모든 전화는 승우에게 걸려왔다. 내가 먼저 건 적은 없었고, 그게 암묵적인 우리의 룰이었다. 그랬기에 난 그의 이름조차 저장하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에는 그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었지만 난 굳이 저장하지 않았다.
그건 나와의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삶의 테두리 일정한 선 안으로 승우를 들이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난 그의 전화번호를 다시 한 번 외우고 있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럼, 목요일에 다시 전화 할게요.”
“그래요.”
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고, 전화는 금방 끊어져 버렸다. 마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는 매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
핸드폰을 내리고 난 언제나처럼 통화기록을 펼쳤다.
승우와 통화 기록을 삭제하기 위해 체크를 하며 난 다시 한 번 그의 전화번호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난 승우와의 통화 기록을 삭제했다.
처음 승우와 통화를 하고 난 후 어느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으로 시작되었던 통화 내용 삭제를 난 오늘도 변함없이 했다. 결국 이 핸드폰 어디에도 승우의 흔적은 이제 없다. 승우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고 한 번의 통화 내력이 남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으로 빌었다.
오늘 통화가 마지막이 아니기를 말이다.
정말 처음이었다.
승우와의 통화를 시작하며 간혹 밀려드는 죄책감에 오늘 통화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장난처럼 주고받는 대화 중, 나의 가슴이 크냐고 묻는 승우의 희롱에 서슴없이 대답을 하던 날 보며 더 이상 승우를 만나지 말아야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승우가 다음에 전화를 해주기 바랐다. 전처럼, 오늘처럼 자신을 당혹하게 하는 질문을 해도 말이다.
“·····.”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내 스스로가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우와 메일을 주고받고, 통화를 시작하며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던 모습들이 어쩌면 진짜 내 본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처럼 남편과의 섹스를 다른 남자에게 말하는 내 모습이 말이다.



“·····.”
초조한 마음으로 난 다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전화를 하는 날이면 한시에 어김없이 걸려오던 전화가 두 시가 다 되어가지만 없다. 결국 그 날의 질문이 승우에게 부담이 된 듯 했다. 사실 나도 부담스럽다. 승우가 바로 지척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그간 서로가 쌓아온 시간과 정겨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무것도 아닌 듯 이렇게 단 칼에 승우가 돌아서버리는 것에 난 화가 났다. 남편과의 비밀스러움도 이야기 한 나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는 승우의 전화번호가 자꾸 떠올랐다.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승우가 날 외면했다는 것에 화가 나서 전화를 걸 수가 없다. 흔한 연인의 다툼이라면 얼마든지 내가 먼저 할 수 있지만 이건 그게 아니다. 그래서 난 전화를 걸고 싶지 않다. 화는 나지만 말이다.
‘리리리링···, 리리링···.’
핸드폰이 울린다.
그리고 낯익은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승우다.
난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으려 했지만 순간 날 초조하게 만든 승우에게 화가 났다. 난 조금의 시산을 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미안해요, 일하는 직원이 다쳐서 병원에 다녀오느냐고 늦었어요.”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승우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큰 안도감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
“승주씨!”
“많이 다쳤어요?”
마음과 달리 직원의 상태를 물었다.
“많이는 아니고 팔이 찢어져서 봉합했어요, 스무 바늘 정도.”
“어쩌다 그랬어요?”
“물건 들다 놓쳐서 귀퉁이에 그랬대요.”
승우의 대답에 다쳤다는 사람이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한 시간 가까이 초조했던 순간을 떠올리려 난 조금 화가 났다.
“그러면 그렇다고 문자라도 남겨주지 그랬어요. 걱정 했잖아요.”
“걱정했어요?”
“네, 전화 안 하는 줄 알고···.”
결국 난 내 본심을 말하고 말았다.
“내가 왜 전화를 안 해요?”
이유를 알면서도 일부러 묻고 있음을 느꼈다.
“그냥요.”
“훗!”
승우의 웃음소리에 살짝 화가 났다. 날 비웃는 것 같았다.
“왜 웃어요, 내가 한심해요?”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좋아서 웃었어요. 승주씨가 내 전화 기다렸다고 해서 말입니다.”
“안 기다렸어요.”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미안해요. 사실 나도 며칠간 고민했어요. 계속 전화를 해도 되는 건지 말입니다. 혹시 내가 전화를 해도 승주씨가 받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고요.”
“·····.”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이네요. 이렇게 전화 받아줘서···.”
승우가 말끝을 살짝 흐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흘림이 묘하게 내 가슴을 흔든다.
“저기 승주씨.”
“네.”
“어쩌죠, 나 직원 대신 배달 나가야 해요.”
“알았어요.”
대답을 했지만 승우와 이대로 전화를 끊어야 하는 것에 마음이 조금 허전했다.
“그리고 금요일 전화 늦더라도 이해해 줘요. 늦게 되면 문자는 할게요. 일주일 정도는 직원 대신 내가 배달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알았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승우가 다시 말끝을 흐린다. 그리고 그 흘림이 다시 가슴을 흔든다. 이어질 다음 말이 자꾸만 기다려진다.
“말해요, 뭔데요?”
승우의 머뭇거림에 내가 물었다.
“나, ***아파트 살아요, 사거리에 있는····.”
승우가 다시 말끝을 흐렸지만 난 놀라고 있었다.
승우의 갑작스런 고백이 놀랍기도 했지만, 승우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불과 이백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 멀리 승우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단지를 응시했다. 모두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시야에 들어올 만큼 승우가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놀랬어요?”
승우의 목소리에 나도 몰래 흠칫 놀랐다.
“조금이요.”
“미안해요, 이러면 안 되는 줄 아는데,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물을 걸 같고, 승주씨가 당황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대신 이번 달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요. 미안해요.”
승우의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철두철미하게 룰을 지켜오던 승우가 처음으로 먼저 룰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묘하게 난 기쁘다. 혹여 남편처럼 획일 된 성격을 승우가 가진 것을 아닐까하는 염려가 지워졌다.
내 곁에서 그런 성격은 남편으로 족하다. 남편은 섹스마저도 정상위만을 고집할 만큼 자신이 정해놓은 틀에 갇힌 사람이다. 사람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남편의 나의 보지에도 입을 대지 않았고, 내가 남편의 자지를 빨게 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그런 점이 나쁘지 않다. 아니 처음에는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나이를 더해가고 친구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호기심이 생겼다. 남편에게 보지를 애무 받는 느낌도 궁금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말하는 섹스 도중 느낀다는 그 흥분감도 말이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이내 지웠다. 솔직히 나 역시 섹스가 그다지 좋지 않다. 남편이 날 안아주는 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그 행위가 좋을 뿐 섹스 그 자체는 나에게 흥미를 주지 못한다. 약간의 흥분감, 그리고 느껴지는 약간의 짜릿함이 나쁘지는 않지만, 남편이 날 안아준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것마저도 이제는 점점 그 횟수가 줄고 있지만 말이다.
“정말 아무것도 안 물을 거예요?”
“네, 약속 할 게요.”
“승우씨.”
“네.”
“그럼, 우리 질문 하는 룰 접을까요?”
“룰을 접자고요?”
“네. 이번 달만···.”
“왜요. 이젠 나에게 궁금한 것 없어요?”
“아뇨,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난 말끝을 흐렸다.
아니 흐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승우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니 말이다.
“그럼 왜 그래요?”
난 망설였다. 내가 하려는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망설여졌다.
“승주씨.”
“나, ***아파트 살아요. 승우씨 아파트 길 건너에 있는 아파트···.”
“····.”
말을 마친 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승우와 난, 서로가 지척에 살고 있음을 알아 버렸다. 승우에게서 아무 말이 들리지 않았다.
“승우씨.”
“네.”
대답하는 승우의 목소리가 짙어져 있었다. 당황한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우리 이번 달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요. 그러기로 해요.”
“네, 그러죠,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승우의 말에 묻고 싶었다.
정말 내 마음을 아는지 말이다. 승우는 모를 것이다. 내가 왜 이번 달의 룰을 무효로 하자고 하는지를 말이다.
“배달 가야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내 정신 좀 봐, 그럼 금요일에 다시 봐요. 먼저 끊을게요.”
“네.”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가 끊긴다.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핸드폰을 내린 난 언제나처럼 승우의 흔적을 핸드폰에서 지운다. 지난번처럼 두려움 같은 것은 없지만 또 하나 알아버린 사실에 난 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조금 전 승우가 말한 길 건너 아파트 단지를 응시한다.
“·····.”
내 눈에 들어오는 저곳에 그가 산다.
조용히 소리 없이 다가와 언제부터인가 내 삶의 작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승우가 저곳에 말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자꾸만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껏 승우와 메일을 주고받고, 통화를 하면서도 남편에게 그다지 미안하지 않았다. 꽉 막힌 성격에 정상위만을 고집할 만큼 융통성이 없는 남편에 대한 작은 무료함을 채워주는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단 한 번도 그것을 넘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랬던 승우가 저곳에 산다는 걸 느끼는 지금, 자꾸만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삶에서 단 하나의 남자였고, 내 모든 걸 가진 남편에게 비록 작지만 내 한 순간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하지만 그 미안함 뒤로 하나의 궁금증이 점점 밀려와 그 미안함을 밀어내고 있다.
“····.”
자꾸만 궁금해진다.
저곳에 산다는 승우가 어떤 남자인지가 말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만 궁금해진다. 그리고 스치듯 보고 싶어진다.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미소를 지을지 말이다. 남편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내 작은 비밀들을 알고 있는 승우가 어떤 남자일지가 말이다.



“점심은 먹었어요?”
금요일 승우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난 예전처럼 평범하게 물었다.
“아직 안 먹었어요, 배달이 늦어져서.”
“그럼, 얼른 점심 먹어요.”
“그래야죠.”
승우가 대답하던 순간 이상한 소리에 이어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3시에 배달건 그대로 나가면 되죠?”
“아, 승주씨 잠시 만요.”
“·····.”
승우의 다급한 말에 이어 두 남자의 대화가 희미하게나마 들렸다. 난 그 대화에 집중했다.
“어, 그렇게 하고, 태혁이가 못 따라가니까, 정부장이 고생 좀 해줘, 대신 사다리차 불러서 올려, 내가 돈은 줄 테니까.”
“아, 됐어. 엘리베이터 있는데 뭐 하러 사다리를 불러,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미안해서 그러지.”
“됫수다, 이따가 순댓국에 소주나 한 잔 사. 그리고 우리 차로 부족하니까 가게 트럭도 가지고 갈게”
“그래, 알았어.”
“**아파트 8동 903호 맞지?”
“맞아.”
“알았어. 그럼 이따가 봅시다.”
“그래, 수고해.”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난 듯 했다.
난 방금 전 낯선 남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승주씨.”
“네.”
“미안해요.”
“아니에요, 바빠요?”
“아뇨, 배달 나갈게 있어서 뭐 물으러 왔었어요.”
“그렇구나, 그럼 어서 점심 먹어요, 나도 지금 나가봐야 해요.”
“그래요, 그럼 아쉽지만 할 수 없죠.”
“미안해요.”
“아니에요. 미안하기는요, 그럼 먼저 들어가요.”
“네. 끊을게요.”
“그래요.”
차분한 승우의 말을 듣고 난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시선을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한 십 분을 넘어가고 있던 시계를 바라보며 난 자꾸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상가 계단을 오르는 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마치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채 난 계단을 계속 올랐다. 그리고 작은 문을 연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진한 커피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옮기던 순간, 젊은 여직원과 나와 비슷한 여자가 인사를 한다. 나도 답례를 했고 창가 끄트머리 자리에 입구를 등지고 앉았다.
“누구 기다리시면 주문은 나중에 받을까요.”
“아니에요, 더치라떼 한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여자가 돌아가고 난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탁자를 응시한 채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잠시 후 커피가 도착했고, 짧게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난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난 나열되어 있는 간판을 따라 내 시선을 움직이다 한 곳에 고정했다.
어제 승우의 통화를 듣고 몰래 찾아갔던 그곳에 있던 트럭에 새겨져 있던 이름과 같은 상호가 내 눈에 들어왔다. 승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저곳은 승우의 가계이다.
“····.”
숨이 가빠온다.
그리고 그만큼 입술도 메말라 간다. 다시 마신 커피 한 모금에도 입술을 젖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난 두근거리는 가슴과 떨리는 시선으로 승우의 가게를 계속 응시하고 있다. 얼마를 기다리면 되는 걸까, 얼마를 참고 기다리면 승우를 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 삶에 소리 없이 녹아들어 내 삶의 비밀스러움을 나눈 사람,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태연을 가장한 내 내면의 저 깊숙이에서 확연히는 아니지만 그리움이라는 설렘을 던져주고 있는 승우, 난 지금 그런 승우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렇게 몰래 숨죽여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씩 빠르게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십 분, 이십 분, 그리고 한 시간······.



“·····.”
누군가 가게로 다가온다. 혹시 승우일까?
남자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가게 문만을 바라보았기에 안으로 들어간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말 승우였을까.
다시 시간이 흐른다.
일 분, 이 분, 그리고 십 분,
초조함에 물 잔을 들던 순간 가게 문이 열린다. 그리고 두 남자가 나온다.
조금 전 안으로 들어갔던 남자와 새로운 남자.
느낄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던 남자와 함께 나온 남자,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환한 웃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새로운 남자,
승우다. 확실하다. 본적도 없고, 생김새도 모르지만 확실하다.
들리지는 않지만 남자의 입술 움직임이 내 귓전을 파고들던 승우의 목소리와 일치하는 느낌이다.
다시 가슴이 떨려온다. 그리고 승우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도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래선 안 되는데, 승우와의 룰이 있었는데 내가 먼저 그 룰을 깨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희열이 밀려온다. 기쁘다. 그리고 반갑다.
소리만으로 느끼던 그의 웃음이 내 눈에 보이고 있는 얼굴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가 날 설레게 한다. 잘 생긴 미남은 아니지만, 훤칠해 보이는 키와 체격, 그리고 조금은 남성스럽게 보이는 얼굴에 지어지는 저 미소가 나와의 통화 도중에도 제법 많이 지어졌을 거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
승우가 손을 들어 보이고 대화를 하던 남자가 돌아선다.
조금만 더 내 눈에 담고 싶다. 하지만 돌아선 남자가 멀어지자 그 남자를 바라보던 승우가 안으로 들어간다. 좀 더 보고 싶은데, 좀 더 확실히 내 머리에 담고 싶은데, 승우는 내 맘을 외면하고 가게로 들어선다.
밉다. 조금만 더 보여주지, 조그만 더 그 미소를 보여주지,
혹시나 하고 가계를 응시했지만 승우는 나오지 않았다. 한참이나 계속 승우를 기다렸는데 말이다.



“오늘은 안 바빠요?”
다시 승우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런 승우에게 질문을 던지던 순간 그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그는 알까, 내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음을 말이다.
“네, 안 바빠요. 오늘은 너무 한가하네요. 그래서 좀 심심해요.”
“심심하면 나가서 하늘이라도 봐요, 오늘 하늘도 맑고 구름도 예뻐요.”
“그래요?”
“네, 지금 나가서 한 번 보고 와요.”
“흠, 그럴까요. 잠시 만요.”
“·····.”
이어진 침묵에 다시 가슴이 떨린다.
누군가 핸드폰을 들고 나온다.
“우와, 진짜 하늘 맑네.”
“·····.”
미소가 지어진다.
역시 승우였다. 그날 내 확신이 맞았다.
내 눈에 핸드폰을 들고 하늘을 올려보는 승우의 모습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승주씨도 지금 하늘 보여요?”
“네, 보여요.”
“그렇구나, 그럼 내가보는 구름 승주씨가 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겠죠, 멀지 않으니···.”
말끝을 흐린 난 시선을 들어 구름을 보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시선을 내려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승우를 응시했다.
“나 다시 들어왔어요, 덕분에 맑은 하늘 봤네요.”
“좋았어요?”
“네, 무료함이 좀 날아 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네.”
“저기 승우씨.”
“네.”
승우의 대답이 들렸지만 선뜻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승우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기 나 뭐하나 묻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뭔데요, 혹시 우리 안하기로 했던 그 질문 다시 하는 겁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물어봐요.”
“저기, 혹시····, 승우씨는 내 얼굴 안 궁금해요?”
물음이 끝나는 순간 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만 승우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이 미안해 묻기는 했지만, 괜한 것을 묻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승우도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떨리는 가슴으로 승우의 대답을 기다린다.
“솔직히 말해야 합니까?”
“가급적이면, 하지만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후우!”
“·····.”
갑자기 들려오는 승우의 한숨에 괜히 긴장이 된다.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으니까, 솔직히 말할게요. 궁금하죠. 어떻게 생겼을지도 궁금하고, 특히 웃을 땐 어떤 모습일지는 더 궁금해요. 하지만····.”
“····.”
하지만이라니, 무슨 의미일까.
선뜻 말을 잇지 못하는 승우로 인해 괜히 마음이 초조해진다.
“승주씨 볼 자신이 없어요.”
“왜요?”
나도 모르게 빠르게 되물었다.
“그게·····.”
“·····.”
승우가 다시 말끝을 흐린다.
왜 일까? 왜 날 볼 자신이 없다고 하는 걸까? 다음 말이 너무 기다려진다.
“전에는 한 번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가 가까이 산다는 걸 알고는 그 마음 접었어요.”
“접었다고요?”
“네, 승주씨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요.”
“·····.”
선뜻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날 위해서라는 승우의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는 말만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처음에 만나지는 말자고 한 게 바로 나였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무언가 묻고 싶다. 그래서 난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다시 묻는다.
“내가 부담스럽지 않다면 그러면 만날 수 있어요?”
“아뇨.”
조금은 단호한 승우의 말에 나 조금 당황스럽다.
조금의 틈도 없이 바로 대답을 하는 승우의 마음은 뭘까?
내가 이 질문을 던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했는데 승우는 너무 쉽게 단칼에 거절을 한다. 조금 화가 난다.
“왜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왜냐면····, 승주씨를 만나고 나면 내가 계속 보자고 할 것 같아요. 가까이서 살고 있다는 걸 지금은 아니까 말입니다. 그러다보면 승주씨가 부담을 가질 테고, 그로인해 승주씨가 날 멀리하게 된다면 차라리 만나지 않고 그냥 지금처럼 지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럽니다.”
“하지만, 승우씨는 지금까지의 나와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네.”
“하지만 승우씨 스스로가 나에게서 멀어질지도 모르잖아요?”
“내가요?”
“네, 날 만나서 내가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승우씨가 날 피할 수도 있잖아요.”
“하하····.”
승우의 커다란 웃음에 살짝 빈정이 상한다. 왜 저렇게 크게 웃는 걸까, 혹여 내가 정곡을 찌른 걸까, 정말 내 말대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날 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 웃어요? 내가 정곡을 찔렀어요?”
“하! 아, 미안해요. 승주씨가 너무 바보 같아서 그랬어요.”
“뭐라고요, 내가 바보 같다고요?”
“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어떻게 생긴 게 뭐 중요하다고···, 그래도 난 승주씨에게 그 정도의 믿음은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네요. 승주씨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그거야 모르잖아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말과는 다를지 어떻게 알아요, 남자들은 다 여자 외모만 보니까.”
“혹시, 그 반대 아니에요. 승주씨야 말로 내가 생긴 게 시원찮으면 날 피하는 거 아닙니까?”
승우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걸 알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사 승우가 어떻게 생긴 지 몰랐다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다. 그저 어떻게 생겼을 지가 궁금했을 뿐, 잘나고 못남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자랑할 정도의 외모는 아니니까 말이다.




“·····.”
잠이 오지 않는다.
곤히 잠든 남편을 두고 거실로 나와 앉아있는 지금, 어둠이 깔린 거실 창 너머로 검은 밤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밤하늘을 보는 지금 승우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며칠째 승우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멀리서이기는 하지만, 미소를 짓던 승우의 얼굴과 자신의 말을 따라 하늘을 보던 승우의 얼굴, 그리고 또 다른 모습들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그리고 그런 승우의 얼굴이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왜 이러는 걸까?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얼굴이 자꾸 보고 싶은 내 마음은 과연 뭘까?
그저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인연에서 시간의 흐름에 맞춰 조금씩 다가온 승우, 한때는 이상한 질문에 부담감을 느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며 점점 옅어지고 있다. 특히 승우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는 더욱 더 옅어지는 것 같다.
차라리 그가 먼 곳에 살고 있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내가 승우의 얼굴을 확인할 일도 없었을 테고, 그랬다면 승우를 훔쳐보기 위해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씩이나 커피숍에서 몇 시간을 앉아있을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이 자꾸 설렌다.
승우의 얼굴을 계속 확인하면서부터는 승우에 관한 모든 것이 자꾸 궁금해진다.
그의 생각, 그의 생활, 그리고 그의 삶이 말이다.
그런 생각들이 더해지며 만나자고 하고 싶다. 그럴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가끔은 승우가 만나자고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에 응할 용기는 어떻게든 내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승우가 그런 용기를 내준다면 말이다.



2. 그 여자 승주, 그리고 그 남자 승우, 그들의 이야기 - 얽혀져 버린 운명


“후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승우가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내쉰다.
뭘 물어올까? 승우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될 질문에서 승주가 무엇을 물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승주는 여자였고, 자신의 남자였기에 가끔은 호기롭게 질문을 던졌지만 질문이 있는 오늘 같은 날이면 자신이 몇 시간이나 고민하고 망설인다는 것을 승주는 알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요즘 들어 승주가 더욱 친밀하게 느껴져 예전 같은 부담감은 없지만, 지난 번 승주가 자신에게 마지막 섹스가 언제냐고 물을 땐 정말 깜짝 놀랐었다. 승주가 그런 질문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 물음에서 자신이 가슴이 크냐는 조금은 민망한 질문을 던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허나 무엇보다 더욱 놀란 건 승주로부터 남편과 한 달 전에 섹스를 가졌다는 그 말이었다. 사실 그 질문은 그저 날 난처하게 만든 승주를 곤혹스럽게 하려 했을 뿐 굳이 대답을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더욱이 그 질문으로 인해 승주가 아주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도 알아버렸고 말이다.
“·····.”
시계를 바라본 승우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승주에게 전화를 걸 시간이 된 것이다.


‘리리리링···, 리리링···.’
승우의 전화를 기다리던 승주가 미소를 지은 채 황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네, 나에요.”
“잘 냈어요?”
“네, 승우씨는 별일 없죠?”
“그럼요.”
승우의 대답에 승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제는 운 좋게도 카페에 앉은 지 삼십분도 안 되어 승우를 보고 왔었다.
“점심은요?”
“먹었어요, 직원이랑.”
“직원 분은 배달 나갔어요?”
“배달은 아니고, 거래처에 갔어요. 승주씨랑 통화하려고 갔다 오라고 했어요.”
“훗, 못 됐다. 어차피 사무실은 안에 따로 있다면서···.”
“그렇기는 해도, 그 자식한테 통화 하는 거 걸리고 싶지 않아요.”
“왜요?”
“음, 그야,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고 싶으니까요.”
승주가 미소를 지었다.
“근데 승우씨.”
“네.”
“잊지 않았죠, 오늘부터 다시 질문 시작하기로 한 거.”
“네, 그래서 조금 긴장됩니다. 뭘 물을지 말입니다.”
“근데 말이에요.”
“네.”
“우리 그거 계속 안하면 안 될까요?”
“왜요, 하기 싫어요?”
“네, 하기 싫어요, 날짜 정해서 묻는 것도 싫고, 그리고 또····.”
“또 뭐요?”
승주가 말끝을 흐리자 승우가 되물었다.
“우리 이제 그런 거 없이 그냥 묻고 대답해도 되잖아요, 아니에요?”
승주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승우와 미소를 지었다.
“훗, 요즘 가만히 보면 나랑 승주시랑 바뀐 거 같아요.”
“바뀌다니요?”
“그런 말은 남자인 내가 먼저 해야 하는데 승주씨가 먼저 하니까 말이에요.”
승우의 말에 승주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요즘 들어 자신이 승우에게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승우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승우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 말은 동의 한다는 뜻인가요?”
“네, 뭐 대충, 그런데 거부권은 어떻게 합니까?”
“그건 남겨두기로 해요, 혹여 승우씨가 이상한 거 물을지도 모르니까.”
“내가요?”
“네.”
“우와, 이거 좀 억울한데요, 내가 언제 뭘 이상한 거 물었다고.”
“물었잖아요, 내 가슴 크냐고 물었고, 또····.”
승주가 말끝을 흐리며 살짝 얼굴이 굳었다. 그러자 승우의 목소리가 이내 들려왔다.
“그건 그냥 승주씨가 신체 사이즈 물어도 된다고 해서 그런 거고, 두 번째는 승주씨가 먼저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거부권은 내가 필요한 겁니다. 알았어요?”
“어머, 내가 신체 사이즈 물어도 된다고 했지. 그렇게 직설적으로 가슴이 크냐고 물으라고 했어요.”
“그게 그거죠, 뭐.”
“어머, 무슨 남자가 치사하게 여자한테 뒤집어 씌워요.”
“뒤집어씌우다니요, 먼저 날 파렴치한으로 몬 게 누군데요?”
“내가 언제 파렴치한으로 몰았어요?”
“방금 그랬잖아요, 내가 이상한 거 물을지도 모르니까 거부권은 있어야 된다고.”
“이상한 거 묻는 거라고 했지, 내가 언제 파렴치한이라고 했어요.”
“그게 그거죠.”
“뭐가 그게 그거에요. 난 승우씨가 이상한 거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할까봐 그런 거예요, 승우씨가 파렴치한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어이구, 그러셨어요?”
“뭐에요, 그 말투, 지금 빈정거리는 거예요?”
“빈정은 무슨···.”
“어머, 승우씨 그렇게 안 봤는데, 되게 속 좁네요.”
“뭐라고요? 내가 속이 얼마나 넓은데요.”
“속 넓은 남자가 여자한테 그렇게 이겨 먹으려고 그래요, 그냥 못이기는 척 넘겨주면 되잖아요.”
“내가 언제 이겨먹으려고 그랬어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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