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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8 932회 0건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민혁과 서영은 밤새 거의 뜬 눈으로 지샜다. 그러나 전혀 피곤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사실 피곤함을 느끼기에는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고 참혹했다.

“날이 덥네...”

“곧 중복이잖아...”

아침에 일어나 딸 연아를 친정에 맡기고, 강원도 평창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서영은 민혁과 딱 이 한 마디만을 나눴을 뿐이다. 민혁과 서영은 한 부부였지만, 결국에는 두 사람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정체모를 컴퍼니와 마주할 것을 생각하면 긴장할 수 밖 에 없을 터... 이 긴장을 푸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었다.

‘누구의 장난이면... 어쩌지? 아니, 장난인 게 더 낫지 않을까?’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컴퍼니가 제안한 장소로 향하면서 민혁과 서영은 내심 이런 생각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참가를 할 수 밖에 없지만, 또 해야 하지만, 마치 애들 장난처럼 한 날의 추억처럼 속아버렸으면 하는 심정... 몸은 가고 있지만, 마음 속 진실은 끊임없이 컴퍼니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었다.

- 고객님. 즐거운 여행 되셨는지요. 저희 A 고속은...

각자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느새 고속버스는 평창에 도달했고, 버스터미널에 정차를 하자, 민혁과 서영은 조심스레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도심과 달리 줄기차게 매미 울음소리가 민혁과 서영의 귀를 간질거렸고, 그들 부부를 향한 태양은 미래의 험난함을 예고하듯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덥다... 정말...”

“몇 시야?”

“12시 가량... 1시간 정도 남았는데...

“택시를 타는 게 좋겠어. 길도 잘 모르고... 어제 잠 잘 자지도 못했으니...”

“물론, 덥기도 하잖아.”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민혁과 서영은 억지로라도 힘을 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천천히 택시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운이 좋네?”

택시 승강장에 도착하자 서영이 말을 했고, 민혁은 의아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한 대 뿐이잖아.”

“아하...”

버스 터미널 승강장에 달랑 한 대의 택시만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버스 터미널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었고, 이 모습을 보고 서영이 운이 좋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것이 운이라면... 시작이 좋다고 해야 하나?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민혁이 잽싸게 달려가 승강장에 홀로 대기 중인 택시를 잡았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서영이 도착을 했고, 민혁이 열어 놓은 뒷문을 통해 택시에 탔다.

“기사님. XX 리조트 실내스포츠 체육관? 그리로 가주세요.”

“네.”

뒤따라 택시에 탄 민혁이 목적지를 택시 기사에게 말했고, 택시는 시원스레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 한 여름에 리조트는 왜 가세요?”

택시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민혁과 서영에게 질문을 했다. 여느 택시의 기사들처럼 손님과 대화를 하기 좋아하는 기사로 생각한 민혁은 약간은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레 대답을 했다.

“그야 볼일이 있으니까요.”

“그래요? 이 한 여름에는 사람들도 없을 텐데....”

말을 흐리는 택시기사때문인지 택시 안은 갑작스레 공기가 무거워졌다.

“남편이 스키 장비를 다루는 일을 해요.”

몇 초간의 정적을 깬 건, 서영이었다. 서영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 남편에게 윙크를 했고, 민혁은 알아들었다는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래요?”

택시기사가 반문하듯이 대답을 했고, 그제야 민혁은 택시기사를 주의 있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구리 빛 피부로 보기 힘들만큼 새까만 피부를 가졌고, 재밌는 건 그보다 더 새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택시기사는 얼핏 보면 피부색 때문에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서른 살 언저리의 사내 같았다.

“얼마나 걸리나요?”

“아? 리조트요?”

“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번에도 서영이 말을 꺼냈다.

“30분 쯤?”

“그래요.”

택시기사를 통해 30분이라는 시간은 들은 민혁과 서영은 아주 잠시나마 각자의 생각에 빠졌다.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고민하고 갈등을 해 온 문제에 다가설 것이고, 그것은 또한 현실이었다.

“세상에 참 도둑놈들 많지요?”

“네에?”

뜬금없는 택시기사의 말에 민혁과 서영은 자신만의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민혁이 대답을 했다.

“IMF 있잖아요. 그거 뒤로 우리 택시들도 먹고 살고 힘들어지고....”

“그러시겠죠.”

“뭐... 대기업이다, 뭐다 다 줄줄이 부도를 내던데... 그래도 그 윗 놈들은 다 비자금 챙겨서 해외로 도주하고... 결국에는 우리 같은 서민만 힘들어... 세상 참 엿 같다니까... 안 그래요?”

“기사님 말이 맞습니다.”

택시기사의 ‘엿 같다’라는 말이 민혁의 가슴에 꽂혔다. 정작 본인도 IMF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아니던가. 어찌 보면,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대기업 총수처럼 그 흔한 비자금 하나 못 만든 자신이 미련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최소한의 것만 했다면 가족만은 지켰을 텐데... 그러나 그 또한 부정일 뿐 이라며 이내 곧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민혁이었다.

“아... 그러니까 우리도 사납금이 있고...”

말이 터진 택시기사는 그 뒤로도 한동안 혼자서 열변을 토했고, 민혁은 주로 듣기만 하였다.원래 택시를 타는 기사와 손님이란 그런 관계였으니...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아참... 리조트 실내체육관 갔다고 했지요?”

“네.”

한참을 이야기 하던 택시기사가 다시 한 번 뜬금없이 목적지에 대해 물었고, 민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아하... 거기라면... 다 왔는데... 3분 정도만 가면 됩니다.

“그런가요?”

목적지에 다 왔다는 말에 민혁과 서영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정말 그곳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다시 한 번 택시 안의 공기가 변했다. 어찌됐든, 지금껏 수다로 - 물론, 택시기사 홀로 말을 한 것이었지만 - 한결 부드러웠던 공기가 이제는 그 택시기사의 태도변화로 다시 한 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인 서영의 경계심은 커져만 갔다. 택시를 타는 처음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 그녀였다.

“무... 무슨 말씀이죠?”

끼이익.

“아이쿠.”

민혁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택시는 급정거를 했고,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민혁과 서영은 앞좌석에 이마를 부딪쳤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통증어린 이마를 매만지면서 민혁이 따지듯이 택시기사에 소리쳤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는 두 분께서 가면을 쓰셔야겠습니다.”

민혁이 백미러를 통해 보는 택시기사는 까만 얼굴과 다른 새 햐안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 3부로 이어집니다.

여유가 있을 때, 쓰는 글이라 매번 같은 분량은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시간 되는대로 글을 쓰고, 글이 써지는 분량만큼 올리겠습니다.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이 정도로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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