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김 성혜)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야설을 연재 했었던 시절이 있었었는데~~~
글 쓴지가 너무 오래 돼서... ... 글의 맥락도 이어갈수 있을지 야설이니 만큼 야한 감정을 살릴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예전엔 야설 쓰시는 분들도 많았고 그분들 인기도 많았었다고 생각합니다.
야설 게시판을 보니 예전 생각도 나도 해서 그리고 술에 힘을 빌려서 갑자기 뭐라도 써보자 생각든김에 한번 써볼랍니다.
대략적인 글의 맥락은 제가 국민학교때 읽었던 모파상의 여자의일생 이란 명작에서(비교하지 마셔요) 그냥 내용빼고 제목만 그대로 옮겨와서 말 그대로 어떤 가상의 여자를 만들어 일생에 희노애락 그리고 무엇보다 야설에서 중요한 성적인 욕망 탐닉 그에 따른 일상에 생활에 대해서 써보려 합니다.
저는 그전에도 야설을 쓸때 수정같은게 제일 하기 싫더라구요 귀찮아서요 ...오타나 그밖에 오류는 제 성향이려니 하시고 졸작이더라도 입가에 비웃음한번 지으시고 너그러히 용서 바랍니다.
여자의 일생
1.새로운 인생
김 성혜... 나는 오늘도 땡땡땡 거리는 철길 건널목에서 누구보다 먼저 철길을 건너려 분주하게 주위 아낙들을 살피며 차단기가 오르기만을 뚫어지게 처다본다.
땡땡땡땡땡 소리와 함께 요란한 시멘트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서빙고에서 시멘트를 실은 기차가 지나가고 지나가는 동시에 차단기가 오르고 아낙들은 크고 작은 냄비를 머리에 이고 또는 허리에 차고 길건너 보이는 미군부대 뒷문 쓰레기하치장으로 내딪는다.
쓰레기 하치장 한켠엔 흔히 얘기하는 짬밥을 수거하여 한데 모으는 커다란 짬통이 있었고 동네 아낙네들이 뛰어가는 시간엔 어김없이 미군부대 차량이 짭밥을 커다란통에 쏟아 붙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동네 아낙들을 보란듯이 제끼고 제일먼저 짬통앞에 올라설수 있는 철재 받침대 앞으로 뛰어갈수 있었고 허겁지겁 들통에 요령것 국물을 뺀 건더기를 모아낼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제일 빠를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그 아낙네중에 가장 어리고 젊기 때문이었다. 그치만 내가 어리다고 해서 처음부터 제일 빠르고 날쌧던것은 아니었다.
아예 짭냄세만 맡아도 토하기 일쑤였던게 작년에 일이었다.
김 성혜
나는 꽃다운 스무살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이미 집안 어르신들의 혼인 약조에 의해 결혼을 하였고 이곳 서빙고 철길옆 하꼬방(박스집. 대충 외관만 만들고 지붕은 루삥이나 나무 등등으로 형태만 지은집)에 시집을 오게 되었다.
시댁이 처음부터 이렇게 하꼬방에 살정도에 가세가 기운집은 아니었다.
어릴적 아버지는 지금 시댁 어른들과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경쟁자였고 그만큼 친분도 있었지만 서로를 이기려는 그런 조금은 동반자였으면서도 조금은 피하고 싶은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는 상사에 대표셨고 시아버님은 당시 정치계에 한자리를 하고 있으셨으니 어찌보면
상생이었고 어찌보면 언제라도 끈어야하는 그런 관계이셨으리라.
내가 가슴이 봉긋하게 올라올 중학교 무렵부터 아예 내 신랑감은 이집 최씨문중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조상대대로 이어지던 좋은 가문에 풍요롭던 시집은 내가 결혼을 앞둔 어느날 풍지박살이 났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정도로 충격을 입은 시아버지는 그대로 세상을 등지고 마셨고 우리아버지는 무슨 뜻에선지 신의는 지키는데 뜻이 있는거라며 나를 그대로 그집에 시집보내버리셨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아버지회사의 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높으신 양반 가림막으로 시아버지가 당하게 되신걸 알았지만 어쨌든 당시만해도 보내면 가야만 하는것이 딸들의 모습이었다.
아무튼 루핑으로 덮은 새까만집에 고지식한 시어머니와 신랑 그리고 신랑의 여동생 시누이하나 그리고 막내도련님까지 다섯이 한방에 살고있는 처지였다.
하다못해 시집올때 부모님께서 주신 패물을 그날로 팔아 루핑얹고 탄을사고 식료품을 사야할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이제 결혼한지 육개월이나 지났다.
하루하루가 정말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경험해 봤을 정도로 고생스럽고 힘겹고 혼란에 연속이었다.
오늘도 시누이와 짬을 뒤져 그나마 뛴걸음에 많은 건더기를 모아와서 큰솥에 넣고 같이 딸려나온 성냥개비, 이쑤시개, 심지어 미군놈들 쓰다버린 콘돔까지 걷어내고, 끓이고 끓이면 꿀꿀이죽이라 불리는 잡탕이된다.
지금 사람들이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때는 그것도 팔았으니 한참 끓어 그래도 먹을거리 처럼 보일 즈음이면 저멀리 모래내시장에서 장사꾼들이 그걸또 사라온다 그걸 몇푼받고 팔고 나면 조금남는거 다섯식구가 홀짝이고 나면 그나마다 배고픈 실정이었다.
항상 배가 고팟고 어린 나는 매일 친정으로 도망가는 꿈을 꾸곤했다.
그렇게 육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을즈음 그날도 어김없이 다섯식구가 좁은방에 비좁게 누워 지친 하루를 잊고 잠에 빠져 있었다.
신랑이 자꾸 내 옆으로 붙어온다
내가 맨 마지막 자리라 벽에 붙어있는데 신랑은 날더러 어쩌라구 자꾸 몸을 밀어데는지 나는 벽으로 벽으로 피해주다 더 이상 피해줄곳이 없어 꽂꽂하게 벽에 일자가 되어 더 이상 공간이 허용되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엉덩이에 자꾸 딱딱한 무언가가 쓸리고 또 쓸리고,,, ,,,
신랑 무릎인가 싶다가도 아니지 싶다가도 근데 이상하게 자꾸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심장의 요동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크리스찬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만큼 성굑육이란건 전무한 상태였고 졸업하자마자 한 결혼하였으니 정말 성에는 무지한 그런 여자였다.
그치만 한번도 경험해보지않은 딱딱하고 뜨겁고 막대기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뭔가가 내 엉덩이를 스치고 찌르고 할때마다 이루말할수 없는 긴장과 떨림과 설레임과 두근거림은 느낄수 있었다.
결혼후 바로 시아버지의 사십구제를 지냈고 신혼여행이란게 내가 결혼할때도 있기는 하였지만 우리 처지에 그럴처지도 아니었고 사십구제로 인해서 아예 꿈도 못꾸었으니 결혼 육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신랑과 사랑을 나눌 정신조차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신랑이 중학교때부터 우리집을 들락 날락 거렸고 수려한 외모와 말솜씨와 그당시 잘나가던 집안에 자식인지라 때깔이 반듯하여 내가 일찍부터 사모하였으니 낯설음도 덜 했고 이 지경인 시집을 와서도 그나마 참을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따라 신랑이 나를 자꾸 벽으로 밀어데는 힘은 강했고 내 엉덩이를 여기저기 쿡쿡 찌르는 뭔가는 자꾸 나를 가슴뛰게 만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문득, 이 딱딱한게 남자의 자지 라는거구나 하고 느낄수 있어다.
왠지 더 가슴이 요동치고 이상하게 젖꼭지가 마구 간지러운데 이거 벌레가 젖가슴으로 들어온건가 싶기도 하고 심장이 쿵쾅 거리는걸로 봐선 내가 아무레도 너무 못먹고 굶주려서 심장에 병이왔나 싶기도 하고 너무 혼잡한 생각들로 꽉차게 되었지만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고 자꾸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고 엉덩이를 피하기는 커녕 처음 느껴본 그 딱딱한 신랑의 자지쪽으로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실룩실룩 들이밀게 되었다.
땡땡땡땡 거리며 기차의 통행을 알리는 신호기 소리가 한밤의 정적을 깨고는 있었지만 다들 피곤하지 쥐죽은듯 조용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고 시어머니는 코까지 고신다.
신랑의 딱딱한 자지가 계속 내엉덩이를 치대고 있는데 가만히 그때를 생각하니 누구한테 배우지도 못했었고 지금처럼 성교육도 전무한 시대였으니 신랑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었던듯 하다.
그렇게 잠시 엉덩이를 자지로 계속 비비고 찌르던 신랑이 내가 엉덩이를 빼지않고 과감하게 들이밀자 흠칫 멈추는가 싶다가 이내 끈적한 손바닥이 내 발목까지 오는 긴막치마를 슬슬 끄집어 올리고 나는 이에 동조하듯 엉덩이를 살짝살짝 들쳐주며 치마올리는것을 도와 주었다.
치마가 그럭저럭 엉덩이 위까지 올라가고 신랑은 내가 뜻데로 움직여 준다고 생각해서 인지 더욱더 빠르게 그치만 어설프게 내 속바지를 내리고 있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심장 소리가 진짜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온식구가 다깰것 같아 불안할 지경이었다.
신랑은 내가 엉덩이를 이리들고 저리들고 했는데도 어찌나 서투른지 어렵사리 한참을 지나서야 겨우 발목까지 속바지를 벗겨냈고 빤스를 벗길때는 나도 모르게 겁이나서 빤스고무줄을 얼마나 꽉쥐고 있었는지 한참을 끙끙거리며 소리도 못내는 실갱이를 하다 가까스로 신랑힘에 못이겨 벗겨져 내려갔다.
배운건 없지만 동물은 동물적으로 섹스에 감이 있다. 나도 몰랐지만 내 스스로 다음단계가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무섭고 떨리고 긴장 되던지 어금니가 달달 떨릴정도로 긴장하게 되고 신랑이라도 잘 리드하면 좋으련만 마찬가지인 입장에서 신랑도 다음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자지로 자꾸 내엉덩이를 쿡쿡 찌르기만 하였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찌를때마다 신음이 나왔다.
내가 내려고 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흥’ ‘흥’ ‘아흥’ 자꾸 나온다.
식구들이 깰까봐 두려워 주먹을 입에 물었다.
자꾸 스멀스멀 월경을 할때 처럼 보지에서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들고 온몸이 나른하니 간지럽고 때론 찌릿하고 때론 어떤 기분인지 얘기하기 힘들정도로 난감하기까지 하다.
이제것 치마를 올리고 속바지, 팬티를 벗기느라 분주하던 손이 느닷없이 헐렁한 티셔츠 속 싸구려 브라자속으로 쑥파고 들었다.
파고든 손은 거칠것 없이 젖꼭지를 잡는다. 어찌나 우악스럽게 젖통을 잡고 누르고 또 젖꼭지를 비틀고 꼬집듯이 만지는지 정말 첫경험 이었으니 얼마나 아프던지 끙끙거리며 신랑손을 나도모르게 꽉 움켜쥐었다. 손을 꽉 움켜쥐자 이놈에 신랑이 아 이렇게 만지면 반응이 오는구나 싶은지 더 쎄게 아프게 꽉잡고 비틀고 꼬집고 흔들어덴다.
그런데 그렇게 젖꼭지를 아프게 꼬집는 데도 아픔반 짜릿함반 뭐라고 할수 없는 진동이 내 몸뚱이 중간에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슴을 압박하듯 짖주물러데다가 점점 손에 힘이 빠지고 부드러운 손놀림이 되자
나도 모르게 내보지에선 월경하듯이 흐르던 무언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얼마나 양이 많아지던지 바닥에 이불까지 흐르는 느낌에 무서워지고 겁이 나기까지 했다.
처음이었던지라 흥분이라는것 자체가 무서움이었으리라.
신랑에 자지가 엉덩이 사이를 자꾸 찔러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옆으로 누운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최대한 신랑 몸 가까이 붙혀주었고 신랑은 축축하게 젖은 귀두를 자꾸 어쩌지 못하고 찌르기만 하였다.
급기야 신랑에 손이 엉덩이골을 따라 더듬더듬 매려온다.
내심장도 더더욱 손길에 따라 요동을 치고 어느순간 골을 따라 내려오던 손이 내 보지틈사이에 멈췄다.
잠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신랑은 호기심어린 어린이마냥 내 보지를 살살 문지르기도 하고 이미 흠뻑젖은 보지골을 따라 손가락을 비벼데기도 하고 풍성한 보지털을 살살 더듬기도 한다.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이 너무 큰 흥분이었고 쾌감이었다. 처음 느껴본 이런 행위가 말로 표현 할수 없는 황홀한 기분을 느낄수 있게 해준다는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온몸 구석구석이 떨리고 짜릿하였다.
시댁식구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는 공간에서 신랑과 나는 땀을 찔찔 흘려가며 신음을 참고는 있었지만 이미 신랑의 서툰손에도 나는 달아오를데로 달아오르게 되었다.
신랑은 축축하다못해 흥건하게 젖은 보지에 자지를 갖다 문지르고 나는 최대한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더 깊히 밀어데주었다.
하지만 어두운 방에 나도 신랑도 전혀 사전지식도 없는 섹스를 한다는거 무리가 있었나보다.
내보지 밑둥을 자지가 열심히 비벼데고 때론 쑥 빠져 내 항문을 찌르기도 했지만 내 보지를 찌르지는 못했다.
나도 스스로 자지를 내보지로 인도해줄 정도에 지식도 없었고 신랑의 손길 그리고 이리저리 비벼지는 자지에 느낌만으로도 벌써 이성을 잃고 있었음에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수 없었다.
신랑의 자지는 내 보지밑둥과 항문근처를 끈임없이 비벼데고 찌르다가 갑자기 허둥지둥 엉덩짝에 비비기도 하고 보지근처를 팍팍찌르기도 하더니 한손은 내 젖가슴을 아주 쎄게 움켜쥐고 그순간 엉덩이엔 뭔가 뜨끈한 액체가 팍팍 뿌려지는 느낌이 들고 움찔움찔 신랑의 엉덩이가 불규칙으로 흔들리기를 반복하다 갑자기 잠잠해졌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내엉덩이로 손을 뻗어보니 엄청나게 많은 끈적한 물 때문에 엉덩이며 허벅지 그리고 깔고있는 요까지 다 젖을정도였다
누가 가르쳐준것도 아닌데 나는 그것을 다른 식구들이 보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에 베개에 감고자던 수건을 얼렁빼어 젖은 내 엉덩이며 허벅지 그리고 요까지 쓱쓱 닦아내었다.
누구라도 깰까 빠르고 소리없이 뒤처리를 하는데 신랑이 가만히 나를 자기쪽으로 눞히더니 아주 꽉 아주 꽉 안아주었다
이제것 누구도 그렇게 진심을 담아 꽉 안아주었던 사람은 없었다 부모형제보다 더 꽉 나를 안아주었다.
“미안해요 여보~~~” 신랑의 한마디가 시집온지 육개월 동안의 낯설움과 고통과 배고픔과 서러움을 잊게해주었다.
비록 미안하다는 그 뜻이 첫섹스를 성공하지 못하여서 한 말이었는지 도 모르겠지만 나는 신랑의 그 한마디가 가슴에 오래오래 고맙게 자리잡았고 힘이 되었다.
술한잔 힘을 빌어 예전에 야설 몇편 올릴적 생각하고 썻는데 점점 술깨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김 성혜 라는 한 가상의 인물로 여자들의 고단했던 시대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육십년대 칠십년대 혹 팔십년대까지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혹여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술김에 쓰는 구나 하고 비웃어주십시오 ^^
다음편은 야설인 만큼 본격적으로 야설 느낌 물씬 풍기도록 애써보겠습니다.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야설을 연재 했었던 시절이 있었었는데~~~
글 쓴지가 너무 오래 돼서... ... 글의 맥락도 이어갈수 있을지 야설이니 만큼 야한 감정을 살릴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예전엔 야설 쓰시는 분들도 많았고 그분들 인기도 많았었다고 생각합니다.
야설 게시판을 보니 예전 생각도 나도 해서 그리고 술에 힘을 빌려서 갑자기 뭐라도 써보자 생각든김에 한번 써볼랍니다.
대략적인 글의 맥락은 제가 국민학교때 읽었던 모파상의 여자의일생 이란 명작에서(비교하지 마셔요) 그냥 내용빼고 제목만 그대로 옮겨와서 말 그대로 어떤 가상의 여자를 만들어 일생에 희노애락 그리고 무엇보다 야설에서 중요한 성적인 욕망 탐닉 그에 따른 일상에 생활에 대해서 써보려 합니다.
저는 그전에도 야설을 쓸때 수정같은게 제일 하기 싫더라구요 귀찮아서요 ...오타나 그밖에 오류는 제 성향이려니 하시고 졸작이더라도 입가에 비웃음한번 지으시고 너그러히 용서 바랍니다.
여자의 일생
1.새로운 인생
김 성혜... 나는 오늘도 땡땡땡 거리는 철길 건널목에서 누구보다 먼저 철길을 건너려 분주하게 주위 아낙들을 살피며 차단기가 오르기만을 뚫어지게 처다본다.
땡땡땡땡땡 소리와 함께 요란한 시멘트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서빙고에서 시멘트를 실은 기차가 지나가고 지나가는 동시에 차단기가 오르고 아낙들은 크고 작은 냄비를 머리에 이고 또는 허리에 차고 길건너 보이는 미군부대 뒷문 쓰레기하치장으로 내딪는다.
쓰레기 하치장 한켠엔 흔히 얘기하는 짬밥을 수거하여 한데 모으는 커다란 짬통이 있었고 동네 아낙네들이 뛰어가는 시간엔 어김없이 미군부대 차량이 짭밥을 커다란통에 쏟아 붙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동네 아낙들을 보란듯이 제끼고 제일먼저 짬통앞에 올라설수 있는 철재 받침대 앞으로 뛰어갈수 있었고 허겁지겁 들통에 요령것 국물을 뺀 건더기를 모아낼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제일 빠를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그 아낙네중에 가장 어리고 젊기 때문이었다. 그치만 내가 어리다고 해서 처음부터 제일 빠르고 날쌧던것은 아니었다.
아예 짭냄세만 맡아도 토하기 일쑤였던게 작년에 일이었다.
김 성혜
나는 꽃다운 스무살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이미 집안 어르신들의 혼인 약조에 의해 결혼을 하였고 이곳 서빙고 철길옆 하꼬방(박스집. 대충 외관만 만들고 지붕은 루삥이나 나무 등등으로 형태만 지은집)에 시집을 오게 되었다.
시댁이 처음부터 이렇게 하꼬방에 살정도에 가세가 기운집은 아니었다.
어릴적 아버지는 지금 시댁 어른들과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경쟁자였고 그만큼 친분도 있었지만 서로를 이기려는 그런 조금은 동반자였으면서도 조금은 피하고 싶은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는 상사에 대표셨고 시아버님은 당시 정치계에 한자리를 하고 있으셨으니 어찌보면
상생이었고 어찌보면 언제라도 끈어야하는 그런 관계이셨으리라.
내가 가슴이 봉긋하게 올라올 중학교 무렵부터 아예 내 신랑감은 이집 최씨문중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조상대대로 이어지던 좋은 가문에 풍요롭던 시집은 내가 결혼을 앞둔 어느날 풍지박살이 났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정도로 충격을 입은 시아버지는 그대로 세상을 등지고 마셨고 우리아버지는 무슨 뜻에선지 신의는 지키는데 뜻이 있는거라며 나를 그대로 그집에 시집보내버리셨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아버지회사의 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높으신 양반 가림막으로 시아버지가 당하게 되신걸 알았지만 어쨌든 당시만해도 보내면 가야만 하는것이 딸들의 모습이었다.
아무튼 루핑으로 덮은 새까만집에 고지식한 시어머니와 신랑 그리고 신랑의 여동생 시누이하나 그리고 막내도련님까지 다섯이 한방에 살고있는 처지였다.
하다못해 시집올때 부모님께서 주신 패물을 그날로 팔아 루핑얹고 탄을사고 식료품을 사야할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이제 결혼한지 육개월이나 지났다.
하루하루가 정말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경험해 봤을 정도로 고생스럽고 힘겹고 혼란에 연속이었다.
오늘도 시누이와 짬을 뒤져 그나마 뛴걸음에 많은 건더기를 모아와서 큰솥에 넣고 같이 딸려나온 성냥개비, 이쑤시개, 심지어 미군놈들 쓰다버린 콘돔까지 걷어내고, 끓이고 끓이면 꿀꿀이죽이라 불리는 잡탕이된다.
지금 사람들이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때는 그것도 팔았으니 한참 끓어 그래도 먹을거리 처럼 보일 즈음이면 저멀리 모래내시장에서 장사꾼들이 그걸또 사라온다 그걸 몇푼받고 팔고 나면 조금남는거 다섯식구가 홀짝이고 나면 그나마다 배고픈 실정이었다.
항상 배가 고팟고 어린 나는 매일 친정으로 도망가는 꿈을 꾸곤했다.
그렇게 육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을즈음 그날도 어김없이 다섯식구가 좁은방에 비좁게 누워 지친 하루를 잊고 잠에 빠져 있었다.
신랑이 자꾸 내 옆으로 붙어온다
내가 맨 마지막 자리라 벽에 붙어있는데 신랑은 날더러 어쩌라구 자꾸 몸을 밀어데는지 나는 벽으로 벽으로 피해주다 더 이상 피해줄곳이 없어 꽂꽂하게 벽에 일자가 되어 더 이상 공간이 허용되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엉덩이에 자꾸 딱딱한 무언가가 쓸리고 또 쓸리고,,, ,,,
신랑 무릎인가 싶다가도 아니지 싶다가도 근데 이상하게 자꾸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심장의 요동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크리스찬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만큼 성굑육이란건 전무한 상태였고 졸업하자마자 한 결혼하였으니 정말 성에는 무지한 그런 여자였다.
그치만 한번도 경험해보지않은 딱딱하고 뜨겁고 막대기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뭔가가 내 엉덩이를 스치고 찌르고 할때마다 이루말할수 없는 긴장과 떨림과 설레임과 두근거림은 느낄수 있었다.
결혼후 바로 시아버지의 사십구제를 지냈고 신혼여행이란게 내가 결혼할때도 있기는 하였지만 우리 처지에 그럴처지도 아니었고 사십구제로 인해서 아예 꿈도 못꾸었으니 결혼 육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신랑과 사랑을 나눌 정신조차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신랑이 중학교때부터 우리집을 들락 날락 거렸고 수려한 외모와 말솜씨와 그당시 잘나가던 집안에 자식인지라 때깔이 반듯하여 내가 일찍부터 사모하였으니 낯설음도 덜 했고 이 지경인 시집을 와서도 그나마 참을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따라 신랑이 나를 자꾸 벽으로 밀어데는 힘은 강했고 내 엉덩이를 여기저기 쿡쿡 찌르는 뭔가는 자꾸 나를 가슴뛰게 만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문득, 이 딱딱한게 남자의 자지 라는거구나 하고 느낄수 있어다.
왠지 더 가슴이 요동치고 이상하게 젖꼭지가 마구 간지러운데 이거 벌레가 젖가슴으로 들어온건가 싶기도 하고 심장이 쿵쾅 거리는걸로 봐선 내가 아무레도 너무 못먹고 굶주려서 심장에 병이왔나 싶기도 하고 너무 혼잡한 생각들로 꽉차게 되었지만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고 자꾸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고 엉덩이를 피하기는 커녕 처음 느껴본 그 딱딱한 신랑의 자지쪽으로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실룩실룩 들이밀게 되었다.
땡땡땡땡 거리며 기차의 통행을 알리는 신호기 소리가 한밤의 정적을 깨고는 있었지만 다들 피곤하지 쥐죽은듯 조용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고 시어머니는 코까지 고신다.
신랑의 딱딱한 자지가 계속 내엉덩이를 치대고 있는데 가만히 그때를 생각하니 누구한테 배우지도 못했었고 지금처럼 성교육도 전무한 시대였으니 신랑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었던듯 하다.
그렇게 잠시 엉덩이를 자지로 계속 비비고 찌르던 신랑이 내가 엉덩이를 빼지않고 과감하게 들이밀자 흠칫 멈추는가 싶다가 이내 끈적한 손바닥이 내 발목까지 오는 긴막치마를 슬슬 끄집어 올리고 나는 이에 동조하듯 엉덩이를 살짝살짝 들쳐주며 치마올리는것을 도와 주었다.
치마가 그럭저럭 엉덩이 위까지 올라가고 신랑은 내가 뜻데로 움직여 준다고 생각해서 인지 더욱더 빠르게 그치만 어설프게 내 속바지를 내리고 있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심장 소리가 진짜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온식구가 다깰것 같아 불안할 지경이었다.
신랑은 내가 엉덩이를 이리들고 저리들고 했는데도 어찌나 서투른지 어렵사리 한참을 지나서야 겨우 발목까지 속바지를 벗겨냈고 빤스를 벗길때는 나도 모르게 겁이나서 빤스고무줄을 얼마나 꽉쥐고 있었는지 한참을 끙끙거리며 소리도 못내는 실갱이를 하다 가까스로 신랑힘에 못이겨 벗겨져 내려갔다.
배운건 없지만 동물은 동물적으로 섹스에 감이 있다. 나도 몰랐지만 내 스스로 다음단계가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무섭고 떨리고 긴장 되던지 어금니가 달달 떨릴정도로 긴장하게 되고 신랑이라도 잘 리드하면 좋으련만 마찬가지인 입장에서 신랑도 다음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자지로 자꾸 내엉덩이를 쿡쿡 찌르기만 하였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찌를때마다 신음이 나왔다.
내가 내려고 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흥’ ‘흥’ ‘아흥’ 자꾸 나온다.
식구들이 깰까봐 두려워 주먹을 입에 물었다.
자꾸 스멀스멀 월경을 할때 처럼 보지에서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들고 온몸이 나른하니 간지럽고 때론 찌릿하고 때론 어떤 기분인지 얘기하기 힘들정도로 난감하기까지 하다.
이제것 치마를 올리고 속바지, 팬티를 벗기느라 분주하던 손이 느닷없이 헐렁한 티셔츠 속 싸구려 브라자속으로 쑥파고 들었다.
파고든 손은 거칠것 없이 젖꼭지를 잡는다. 어찌나 우악스럽게 젖통을 잡고 누르고 또 젖꼭지를 비틀고 꼬집듯이 만지는지 정말 첫경험 이었으니 얼마나 아프던지 끙끙거리며 신랑손을 나도모르게 꽉 움켜쥐었다. 손을 꽉 움켜쥐자 이놈에 신랑이 아 이렇게 만지면 반응이 오는구나 싶은지 더 쎄게 아프게 꽉잡고 비틀고 꼬집고 흔들어덴다.
그런데 그렇게 젖꼭지를 아프게 꼬집는 데도 아픔반 짜릿함반 뭐라고 할수 없는 진동이 내 몸뚱이 중간에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슴을 압박하듯 짖주물러데다가 점점 손에 힘이 빠지고 부드러운 손놀림이 되자
나도 모르게 내보지에선 월경하듯이 흐르던 무언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얼마나 양이 많아지던지 바닥에 이불까지 흐르는 느낌에 무서워지고 겁이 나기까지 했다.
처음이었던지라 흥분이라는것 자체가 무서움이었으리라.
신랑에 자지가 엉덩이 사이를 자꾸 찔러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옆으로 누운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최대한 신랑 몸 가까이 붙혀주었고 신랑은 축축하게 젖은 귀두를 자꾸 어쩌지 못하고 찌르기만 하였다.
급기야 신랑에 손이 엉덩이골을 따라 더듬더듬 매려온다.
내심장도 더더욱 손길에 따라 요동을 치고 어느순간 골을 따라 내려오던 손이 내 보지틈사이에 멈췄다.
잠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신랑은 호기심어린 어린이마냥 내 보지를 살살 문지르기도 하고 이미 흠뻑젖은 보지골을 따라 손가락을 비벼데기도 하고 풍성한 보지털을 살살 더듬기도 한다.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이 너무 큰 흥분이었고 쾌감이었다. 처음 느껴본 이런 행위가 말로 표현 할수 없는 황홀한 기분을 느낄수 있게 해준다는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온몸 구석구석이 떨리고 짜릿하였다.
시댁식구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는 공간에서 신랑과 나는 땀을 찔찔 흘려가며 신음을 참고는 있었지만 이미 신랑의 서툰손에도 나는 달아오를데로 달아오르게 되었다.
신랑은 축축하다못해 흥건하게 젖은 보지에 자지를 갖다 문지르고 나는 최대한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더 깊히 밀어데주었다.
하지만 어두운 방에 나도 신랑도 전혀 사전지식도 없는 섹스를 한다는거 무리가 있었나보다.
내보지 밑둥을 자지가 열심히 비벼데고 때론 쑥 빠져 내 항문을 찌르기도 했지만 내 보지를 찌르지는 못했다.
나도 스스로 자지를 내보지로 인도해줄 정도에 지식도 없었고 신랑의 손길 그리고 이리저리 비벼지는 자지에 느낌만으로도 벌써 이성을 잃고 있었음에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수 없었다.
신랑의 자지는 내 보지밑둥과 항문근처를 끈임없이 비벼데고 찌르다가 갑자기 허둥지둥 엉덩짝에 비비기도 하고 보지근처를 팍팍찌르기도 하더니 한손은 내 젖가슴을 아주 쎄게 움켜쥐고 그순간 엉덩이엔 뭔가 뜨끈한 액체가 팍팍 뿌려지는 느낌이 들고 움찔움찔 신랑의 엉덩이가 불규칙으로 흔들리기를 반복하다 갑자기 잠잠해졌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내엉덩이로 손을 뻗어보니 엄청나게 많은 끈적한 물 때문에 엉덩이며 허벅지 그리고 깔고있는 요까지 다 젖을정도였다
누가 가르쳐준것도 아닌데 나는 그것을 다른 식구들이 보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에 베개에 감고자던 수건을 얼렁빼어 젖은 내 엉덩이며 허벅지 그리고 요까지 쓱쓱 닦아내었다.
누구라도 깰까 빠르고 소리없이 뒤처리를 하는데 신랑이 가만히 나를 자기쪽으로 눞히더니 아주 꽉 아주 꽉 안아주었다
이제것 누구도 그렇게 진심을 담아 꽉 안아주었던 사람은 없었다 부모형제보다 더 꽉 나를 안아주었다.
“미안해요 여보~~~” 신랑의 한마디가 시집온지 육개월 동안의 낯설움과 고통과 배고픔과 서러움을 잊게해주었다.
비록 미안하다는 그 뜻이 첫섹스를 성공하지 못하여서 한 말이었는지 도 모르겠지만 나는 신랑의 그 한마디가 가슴에 오래오래 고맙게 자리잡았고 힘이 되었다.
술한잔 힘을 빌어 예전에 야설 몇편 올릴적 생각하고 썻는데 점점 술깨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김 성혜 라는 한 가상의 인물로 여자들의 고단했던 시대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육십년대 칠십년대 혹 팔십년대까지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혹여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술김에 쓰는 구나 하고 비웃어주십시오 ^^
다음편은 야설인 만큼 본격적으로 야설 느낌 물씬 풍기도록 애써보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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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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