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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7 722회 0건
몇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민혁은 여전히 검은 두건을 쓴 채로, 차에 앉아 있었다. 차 안에서는 컴퍼니 직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오로지 자동차 엔진 소리만이 민혁의 귀에 들려올 뿐이었다.

‘씨발... 죽겠네.’

민혁이 그동안 차안에서 한 건, 아니 당한 건 컴퍼니 직원들에 의한 몸수색이었다. 이건 이제 민혁에게 익숙했다.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행해졌던 것들이니... 그러나 검은 두건을 여전히 벗지 못하는 건 매우 갑갑했다.

민혁은 소변이 마렵다는 핑계로 답답한 검은 두건을 벗으려고 했다. 그러나 컴퍼니 직원은 검은 두건을 벗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음료수통을 건네며 볼일을 해결하라는 지시만 내려졌을 뿐... 차안에는 남자들만 있는 듯 했지만,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소변을 보려고 하니, 나오려던 오줌도 다시 방광으로 들어간 듯 민혁은 소변마저 해결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데 이 지랄이야.’

시간의 흐름마저 느낄 수 없었다. 오직 어둠만이 세상의 전부인 듯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민혁은 갑갑한 마음에 지쳐, 정신이 혼미해져서 얼마의 시간동안 기절도 했다. 체력적으로도 지쳐갈 무렵, 민혁은 오히려 자동차의 움직임에 대해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체력이 있을 때는 오직 귀를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썼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한 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던 것이었다.

‘좌회전을 하고.... 우회전... 그리고 우회전... 좌회전... 좌회전, 좌회전... 또 좌회전 그리고 우회전... 우회전... 우회전... 아!’

민혁이 느끼기에 자신을 태운 차는 일정 지역을 8자 형태로 주행을 하는 듯 했다. 일정 시간을 두고 좌회전과 우회전을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머릿속으로 차의 동선을 그려보니 8자가 그려졌고, 그것은 결국 똑같은 곳을 반복해서 돌고 있다는 뜻이었다.

‘... 주행 중인 자동차의 소리도 들리고... 밖의 인도로 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려... 생각해 보면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로 운전을 한 것 같지도 않고... 이거 도심인 것 같은데...’

민혁이 추측하기에는 자신이 도심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1-2라운드 게임 장소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외지였던 반면, 이번 3라운드 게임은 도심 속에서 이뤄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보는 눈이 많고, 우리가 그 장소를 알면 안 되니까... 이렇게 차를 뺑뺑 돌리고 있구나...’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민혁은 계속해서 자신의 추측을 이어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둠속의 고요는 너무 지루하고, 너무 답답했다.

끼이익.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민혁을 태운 승합차가 멈췄다. 그리고 컴퍼니 직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다 왔나 보군...’

“내리겠습니다.”

누군가 민혁에게 차에서 내려야 함을 알렸다. 민혁은 컴퍼니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차에서 내렸지만, 여전히 검은 두건을 벗겨주지는 않았다.

“여기가 어디요?”

민혁이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컴퍼니 직원들은 그저 민혁의 양팔을 잡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민혁은 컴퍼니 직원들에게 이끌려가는 중에도 자신의 동선으로 이곳이 어디일지 짐작하기 시작했다.

‘꽤 큰 건물 같은데... 그런데 정상적인 입구가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울린다... 발걸음 소리가... 또...서늘한 느낌도 있어...’

민혁은 자신이 걷고 있는 곳이 어느 건물의 지하 주차장임을 확신했다. 지하가 아니고서는 발걸음 소리가 이렇게 크게 울리지도 않을 것이며, 더구나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서늘한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젠장... 어느 큰 건물의 주차장 같은데... 어디지... 어디일까...’

그 이상 민혁은 알 수가 없었다.

철컥.

민혁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민혁은 컴퍼니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엇!”

“조심하십시오. 계단입니다.”

바닥이 사라짐을 느끼며 민혁이 헛발질을 했다. 컴퍼니 직원의 말을 듣고 계단임을 알게 된 민혁이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밀었다.

‘지하에서... 또 내려간단 말이야?’

지하 밑의 지하, 민혁은 의아함을 느끼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계단수를 셌는데, 약 70개였다. 이 정도면 지상으로 3층 높이였다. 내려왔으니, 지하로 3층을 더 내려간 셈이었다.

“아직 멀었습니까?”

답답한 마음에 민혁이 다시 되물었지만, 역시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하로 내려온 민혁이 컴퍼니 직원의 안내로 다시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철컥.

또 문이 열렸다.

‘또 지하는 아니겠지?’

민혁이 천천히 문안으로 발걸음을 내밀었다. 다행히 지하는 아니었다.

“여기에 대기합니다.”

민혁의 귀에 컴퍼니 직원의 말이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민혁의 양팔을 잡고 길을 안내하던 컴퍼니 직원들이 그의 팔을 풀어주었다.

철컥.

문이 다시 닫혔다. 어리둥절한 민혁이 입을 열었다.

“두건을 벗어도 됩니까?”

컴퍼니 직원의 허락을 기대하며, 민혁이 질문을 했지만, 대답을 한 사람은 뜻밖에도 여자 목소리였다.

“여... 여보.”

서영의 목소리가 들리자, 민혁은 지체할 것도 없이 검은 두건을 벗었다. 밝은 세상이었지만, 민혁의 눈은 좀처럼 떠지질 않았다. 어둠속에만 있던 눈이 빛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었고, 민혁은 시야가 확보가 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괜찮아져.”

민혁은 고개를 숙인 채, 시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서영이 민혁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민혁의 시야에는 하나 둘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와 있었네?”

“20분 정도... 된 것 같아...”

“진짜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나도... 그런데 여긴 어딜까?”

서영과 대화를 하며 민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민혁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집의 평범한 안방 크기의 방이었다.

“우리 집 안방 같은데...”

“나도 둘러 봤는데... 에어컨, 침대, 벽시계, 스크린 그리고 감시카메라 2대... 이것 외엔... 없어.”

서영의 말을 들으며 민혁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서영이 말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물건이 없었다.

“이곳이 게임 장소인가 보군.”

“그런가 봐.”

“그런데 지금 몇 시지?”

“자... 잠깐... 오전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서영의 말을 듣고 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씨발. 닭대가리 새끼...”

“왜?”

“내가 오면서 생각했는데... 이곳은 우리 집과 멀지는 않아. 고속도로를 탄 적도 없었고... 어느 특정지역을 계속 8자 모양으로 돌았단 말이야. 우리가 새벽 3시에 잡혀오다시피 했는데... 8시간이나 지났잖아... 젠장... 8시간이나 차에서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나도... 한 곳을 계속 돈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닭대가리 새끼. 뒤가 구린 새끼가 분명해. 그러니까 숨길게 많지.”

차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무려 8시간이나 고생을 한 민혁이 컴퍼니에 대해 불만을 쏟고 있었다.

“내가 2라운드 게임 장소부터 알아봤어. 이 자식들 건물을 불법 건축하고, 불법 개조하고... 여기 지하 중의 지하야.”

“한참을 내려왔는데...”

“지하로 따지면 족히 5-6층은 내려왔을 거야... 우리 위에 지하주차장이 있는 것 같으니...”

서영이 민혁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고... 좀 쉬어야겠다.”

“응. 언제까지 대기할지 모르니...”

민혁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서영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단 컴퍼니 직원이 대기하라고 했으니, 자신들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 뿐 이었다. 서영은 지속해서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천천히 1초, 1분씩 지나고 있었고, 기약없이 대기만 하고 있는 건 참 지루한 행위였다.

“12시 다 되가는데... 12시 쯤 부를 것 같지 않아?”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던 민혁이 말을 했다.

“후훗... 그럴까?”

“내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12시가 되었을 무렵, 방안의 스크린에는 여지없이 치킨 박의 모습이 등장했다.

- 하하하하.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치킨 박입니다.

“거봐? 내가 말했지?”

침대에서 일어난 민혁이 말을 하며 스크린 속에 등장한 치킨 박을 쳐다보았다. 서영 역시 치킨 박에 집중했다. 이제 본격적인 3라운드 게임이 진행되려고 하였으니...

- 오시느라 수고하셨을 겁니다.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하하하.

“어휴...”

치킨 박의 말을 듣자면, 속만 터지는 민혁이었다.

- 핑계를 대자면, 저희 컴퍼니에서는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있는 곳을 밝히기 어려운 사정이 있답니다. 하하하.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이런 장면들을 연출해보고 싶기도 했고... 하하하. 재미는 없으셨는지요?

‘지켜보는 너나 재밌지. 이 닭대가리 새끼야.’

한심한 말을 계속하는 치킨 박에게 민혁이 마음속으로 향했다. 겉으로 할 수는 없었으니...

- 하하하.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좀 해야 할 텐데요. 그런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여러분들이 모두 지쳐 있을 것 같고... 점심 식사 시간도 됐으니... 방에서 다들 나오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지금부터 딱 2시간 후에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편안히 식사하시면서... 게임 참여자들과 서로 인사도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치킨 박이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저 닭대가리는 밥은 잘 챙기더라. 밥 먹고 피 터지게 싸우라는 건가.”

“배가 고프기는 해. 새벽부터 차에서 시달렸으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긴 해야겠는데... 이번에는 어떤 사람들이 우리와 싸우게 될까?”

“나가보면 알겠지... 뭐.”

민혁과 서영은 앉아 있던 침대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민혁이 방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민혁이 먼저 앞장을 섰고, 그 뒤를 서영이 따랐다.

“어?”

“왜?”

문을 열고 두어 발자국 걸었을까? 갑자기 민혁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서영이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 민혁 옆으로 다가갔고, 그때서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에 비쳐짐을 알 수 있었다.

“몇... 팀 인거야?”

3라운드 게임도 일대일로 생각했던 민혁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눈에는 각자의 방에서 나오는 부부들이 보였는데, 총 5쌍의 부부였다. 서영 역시 생각보다 많은 부부에 약간은 당황했다. 더구나 자신이 아는 부부도 있었다.

“영수, 은희 부부도 있는 걸?

“미친...”

서영의 말에 영수와 은희를 확인한 민혁이 욕설을 내뱉었다.

각 방의 스크린을 통해 치킨 박의 지시를 받았던 6쌍의 부부가 거의 동시에 방문을 열고 나온 상황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자, 그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 방문 앞에 서서 경쟁자 부부들을 관찰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어렸을 적, 얼음 게임이라도 하듯이 방문 앞에 서 있던 부부를 움직인 건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가 나서면서였다.

“쳇. 동물원 구경 왔어? 뭐해? 밥 안 먹을 거야?”

희자였다.

희자가 선수를 치며 먼저 움직였고, 그 뒤를 남편인 영철이 따랐다. 묘하게 얼음처럼 서로를 붙잡고 있던 분위기가 희자로 인해 깨졌고, 그 뒤로 하나 둘씩 음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구조가 독특하네.”

“그러게...”

모든 참여자가 있는 곳, 지금의 지하 구조를 한눈에 확인한 민혁이 말을 했다. 비교적 공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서영이 보기에도 현재 자신이 있는 지하 구조는 매우 특이함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 저 사람들이 다 먹기 전에...”

“응.”

아직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기에 민혁과 서영은 자신들의 의문을 뒤로하고, 음식이 있는 식당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26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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