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연을 만났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점심때쯤 만나 계속 같이 있다 밤 늦게 헤어지던지 아니면 다음 날 아침까지 같이 있었는데 그녀와의 만남들 사이에 난 이유성이라는 놈에 대해 캐고 있었다.
수업 때문에 김유미를 만난 날, 난 이유성의 학창 시절에 대해 물었다.
“혹시 고등학교 다닐 때 동생이 뭐 이상한 일 없었어?”
“어떤 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집을 오래 비웠거나 가출, 혹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가서 살았다든지... 그 외에도 정학을 받았거나 아니면 학교 다니면서 있을 수 있는 일 말고 좀 특이한 거... 싸움 같은 걸로 경찰서에 갔다거나...”
“원래 운동을 하던 애라 학교에서 합숙을 하거나, 전지훈련 같은 걸 자주 갔었어요. 그런데 고 2때 운동을 그만 두고 나서 방황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전 분가해서 살아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하마터면 고등학교 졸업도 못할 정도로 오랜 기간 가출했다고 하더라구요.”
“응? 가출? 이유는 잘 모르고?.”
“갑자기 그랬대요. 친한 친구들한테 물어도 잘 모른다고 했다는데... 그리고 나서는 3~4개월 있다가 갑자기 들어왔는데 갔다 와서는 별일 없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잘 다녔고요.“
“새엄마나 아빠도 이유를 이야기 안 해?”
“잘 모르시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그런 게 왜 궁금하죠?”
“응.. 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너하고도 약간 관계가 있어.”
“그게 무슨 말이죠? 알기 쉽게 이야기해 줄 수 없어요?”
“너와 동생 사이에 있었던 일...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 그럼... 처음부터 유성이가 계획한 일이었다는 건가요? 어떻게 그런...?”
김유미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나?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김유미의 도움이 없이 녀석의 학창시절을 캐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몰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이차가 십년이 넘는 누나를... 물론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 다시 얼굴을 계속 대면하게 되는 사이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거든... 하물며 평생 봐야하는 사이라면... 더더욱... 성적인 호기심에 목욕하는 걸 훔쳐본다거나... 잠이 들어 있을 때 살며시 더듬어 본다거나 하는 정도면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또 하나는 그런 일이 일어난 시간이... 동생이 군대를 제대한 이후라면... 그 것도 좀 걸려... 좀 더 어린 시절이라면 자신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있지만... 남자들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오면 성숙해지고 철이 들어... 그건 성적인 충동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된다는 이야기거든...“
“그럼 뭐예요? 유성이가 왜 날?”
“그건 몰라. 아름다운 꽃을 꺾어보고 싶은 건 모든 남자들의 욕망이니까 그렇게 설명한다면 간단하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요? 무슨...?
“설명하기는 힘든데... 조금 더 명확해지면 이야기를 해 줄게..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내가 좀 엉뚱한 데가 있잖아. 대신... 부탁이 있는데...”
“뭔데요? 괜히 이상한 거 부탁하는 거 아니에요?”
“니 동생이 가출했던 당시 정황을 좀 자세히 알아봐줬으면 좋겠어. 그냥 아무거나 다... 아무리 작은 거라도... 아버지나 새엄마한테 물어보기는 그렇겠지만... 누구 다른 사람이 없을까?”
“바로 밑에 여동생한테 물어보면 돼요. 지금은 결혼을 해서 나가서 살지만 그 애는 그 당시에 친정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물어볼 수는 있을 거예요. 근데... 왜 그런 게 궁금한 건지 이야기를 해줘야 알아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에요.”
“글세... 대답이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부분 답을 멀리서 찾지만 모든 답은 주변에 있어.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거든.”
“그 답이 무엇에 대한 답인데요?”
“동생과 너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실마리 같은 거야. 니가 원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너한테 있었던 일이고 그 사건 이후 삶에 변화가 있었으니 다시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서...”
김유미는 아직 이유성을 만나고 있을 것이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것 같아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보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출했던 당시 상황만 알아봐주면 된다는 거죠? 알았어요. 물어볼게요. 동생이 잘 모르면 유성이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석훈씨가 무언가를 알아내게 되면 저에게도 말해줘야 해요. 그럴 거죠?”
“되도록이면 직접 물어보는 것보다 여동생에게 물어봐. 그리고 십년도 더 지난 이야기인데...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뭔가 알게 되면 이야기 해 줄게.”
2~3일이 지난 후 김유미에게 전화가 왔다.
“별로 알 수 있는 게 없네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동생말로는... 그 때 용호라는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대요. 같이 체조를 했던... 유성이가 체조를 그만두고 나서도 그 애는 계속 운동을 했다더군요. 그런데 워낙 친해서 가끔 그 애 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했는데... 어느 날인가 그 애 집에 간다고 나간 이후로 집에 안 들어왔대요.”
“그럼 그 애 부모한테 안 물어봤대? 집에 놀러 왔었는지...”
“용호가 자기 집에서 자고 갔다고 했대요. 그 이후는 자기도 잘 모른다고...”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사람이 누구래?”
“그게... 용호 엄마인가 봐요. 용호는 유성이가 곤히 자고 있고 아침 일찍 체조부 훈련이 있어서 학교에 먼저 갔나 봐요. 유성이는 천천히 학교에 가도 되니까...”
“그럼 용호 엄마는 뭐라고 했대?”
“아침 밥 먹여서 보냈다고 그랬대요. 그게 다래요.”
“동생이 82년생 이지? 용호라는 친구 성은 뭐야?”
“그건 안 물어봤는데... 그 것도 알아야 돼요?”
“응. 알았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동생이 졸업한 고등학교가 어디지?”
“분당에 있는 00고등학교예요. 이름을 알고 싶은 건 그 친구를 찾아가서 만날 생각인거예요?”
“아니..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냥 여동생한테 물어보기 그러면 놔둬. 동생도 모를 수도 있고... 내가 알아보든지 할게. 아 그리고... 혹시 용호라는 친구 아빠가 안계시나? 일찍 돌아가셨거나 아님 이혼을 했다든지 해서...”
“예?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동생이 그러는데...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용호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 키웠는데 원래 시댁이 돈이 좀 있는 집안인데다가 보상금도 많이 받아서 금전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나봐요. 엄마 혼자 키우면서 아들 운동 시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용호 집은 마당에 정원과 연못이 있는 3층 짜리 주택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었고 아빠하고 새엄마가 용호 엄마를 만나러 갔었나봐요. 거기다 동생이 그러는데 용호라는 애가 상당히 귀티가 나고 잘생겼다고 했어요.”
“응... 알았어... 다른 건 됐어. 내가 알아볼게.”
전화를 끊고 회사에 출장 처리를 해두고 분당 00고등학교에 가서 졸업앨범을 열람했다. 용호라는 이름을 가진 졸업생이 마침 한 명밖에 없었는데 성이 천... 천용호... 82년생.. 아직 결혼을 안했다면 여전히 엄마와 같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이 녀석 주소부터 알아내야 하는데...
신원 조회는 경찰 쪽이 편하다. 82년생 성남 거주 천용호라는 이름이 많지는 않을 터... 난 다시 한 번 배영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 회사 후배 여직원의 첫사랑이라고 이유를 대면서 조회를 부탁했다.
3명의 같은 이름이 나왔고 그 중 중원구 00동 고급 주택가에 천용호라는 녀석이 좀 의심스러웠다. 난 김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친정이 성남 00동에 있어?”
“예전에 거기 살다가 지금은 일산으로 이사 가셨어요. 그건 왜요?”
중원구 00동은 분당 00고등학교와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난 바로 그 주소로 차를 몰았다. 15분이 지난 후 난 빌라 형식의 양옥들이 골목을 따라 이어져 있는 주택가의 커다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대문 안 쪽으로 작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정원과 연못이 있고, 고풍스러운 벽돌로 지어진 3층 양옥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대문 앞에 볼 수 있는 문패에 오정희라는 여자 이름이 쓰여 있는 것과 김유미가 설명한 이유성의 친구 용호 집과 겉모습이 일치하고 있어 별 어려움 없이 찾은 것 같았지만 회사에 들어가 봐야 했고 그 이상은 별다르게 할 게 없었다.
비슷한 모양새의 집들이 계속 이어져 있는 오르막 길을 따라 약간 걸어서 주변을 살펴보다 다시 내려와서 차에 타고 그 곳을 떠나려 할 때 그 집 대문 옆 차고 문이 올라갔다. 난 그냥 내 차에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며 차고 안을 살폈는데 젊은 남녀가 어린 아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있었고 그 중 남자 얼굴이 00고등학교에서 봤던 졸업 앨범 속의 천용호 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주소가 이 곳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천용호는 결혼을 한 이후에도 분가를 하지 않고 여기 살고 있는 듯 했는데 녀석과 부인, 아이를 실은 SUV가 내 옆을 스쳐가고 차고 문이 내려오는 동안 시선에 잡힌 검정색 체어맨이 오정희의 차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성과 천용호는 고등학교 때 친구이고 서로 집에 오고 갈 정도로 친했다. 체조를 그만 둔 어느 날 이유성은 천용호의 집에 가서 잤고 다음 날 원인 모를 가출을 했는데 3개월이 넘어서 들어왔다. 그리고 가출의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르는데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천용호의 엄마 오정희가 이유성이 가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다.
김유미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유성과 김유미가 단 둘이 집에서 밤을 보냈던 그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이유성이 사라져 버린 것...
이미 군대에 다녀와서 헬스클럽에서 일하던 때라 고등학교 때 가출과 연관을 못 시키는 듯 했다. 녀석의 가출은 천용호의 엄마인 오정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물론 체조를 그만두고 방황했던 시기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긴 하지만...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나갔다가 집에 와서 짐을 꾸릴 시간도 없이 갑자기 가출을 한 것은 좀 이상하다.
난 회사로 돌아와서 퇴근을 한 후 다시 천용호의 집으로 갔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뭘 할지도 감은 안 잡히지만 그래도 그 집 앞에 있다 보면 무슨 정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저녁을 대충 먹고 그 집 앞 골목에 차를 세워 두고 그 안에 앉아 있자니 예전에 전남 광양 민현규의 매장 앞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던 생각이 났다. 따지고 보면 내가 형사도 아닌데 또 잠복이라니... 내 짐작으론 오정희는 이유성의 첫 여자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곤 해도 12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관계가 이어질까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오정희가 이유성에게 태클 걸 입장은 아니니 그건 전적으로 마왕의 선택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걸 확인을 한 이후에야 나도 녀석에게 다가갈 다른 길을 알아볼 것이다.
만약 오정희가 가정주부가 아니고 직업이 있다면 오히려 더 쉬울 것인데 그 것부터 알아내야 했다. 그녀가 공개된 장소에 있다면 내가 시간이 남을 때마다 오정희 주변을 살펴볼 수 있고 이유성과 얽혀 있는 지 판단도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할 것이다.
돈이 있는 미망인이라고 하더라도 이 큰집을 유지하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사 가지 않고 있다는 건 시댁에서 천용호의 뒷바라지를 위해 금전을 대줬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수입원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시계가 밤 10시를 가리킬 무렵 차고 문이 열리더니 낮에 보았던 체어맨이 서서히 밖으로 나왔다. 난 망설임 없이 내 차를 몰고 따라 붙었고 10여분을 운전해 도착한 곳은 서현역 주변의 고층 빌딩 지하 주차장이었다.
지하 2층으로 들어간 체어맨이 주차를 위해 멈췄고 나 역시 뒤 쪽에 있는 공간에 재빨리 주차를 시킨 후 차에서 내린 여자를 쫓아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난 그녀와 나란히 서서 곁눈질로 흩어 보았는데 웬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인이었고, 전체적으로 살이 없고 날씬한데다가 뒤로 묶은 머리와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름이 있는 연한 파란색 투피스가 아주 잘 어울리고 있었다.
계산을 해보면 오정희가 천용호를 스무 살 무렵에 낳았다고 해도 50살은 됐을 텐데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열살 가까이 젊어 보였으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주 겪는 일인 듯 슬며시 시선을 피했는데 그 동작조차 아주 자연스러웠다. 곧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난 1층에서 내리는 그녀를 천천히 따라갔는데 오정희는 엔젤리너스라는 커피숍에서 멈추더니 상가 안으로 난 쪽문으로 사라졌고, 난 부리나케 상가 밖으로 나가 정문을 밀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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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몸이 좀 피곤해서 이번 회는 좀 짧게 올립니다. 전에 다른 필명으로 52부까지 가는 소설을 한 편 쓴적이
있는데 욕정도 아마 그 쯤은 갈 것 같습니다. ㅠ.ㅠ
수업 때문에 김유미를 만난 날, 난 이유성의 학창 시절에 대해 물었다.
“혹시 고등학교 다닐 때 동생이 뭐 이상한 일 없었어?”
“어떤 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집을 오래 비웠거나 가출, 혹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가서 살았다든지... 그 외에도 정학을 받았거나 아니면 학교 다니면서 있을 수 있는 일 말고 좀 특이한 거... 싸움 같은 걸로 경찰서에 갔다거나...”
“원래 운동을 하던 애라 학교에서 합숙을 하거나, 전지훈련 같은 걸 자주 갔었어요. 그런데 고 2때 운동을 그만 두고 나서 방황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전 분가해서 살아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하마터면 고등학교 졸업도 못할 정도로 오랜 기간 가출했다고 하더라구요.”
“응? 가출? 이유는 잘 모르고?.”
“갑자기 그랬대요. 친한 친구들한테 물어도 잘 모른다고 했다는데... 그리고 나서는 3~4개월 있다가 갑자기 들어왔는데 갔다 와서는 별일 없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잘 다녔고요.“
“새엄마나 아빠도 이유를 이야기 안 해?”
“잘 모르시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그런 게 왜 궁금하죠?”
“응.. 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너하고도 약간 관계가 있어.”
“그게 무슨 말이죠? 알기 쉽게 이야기해 줄 수 없어요?”
“너와 동생 사이에 있었던 일...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 그럼... 처음부터 유성이가 계획한 일이었다는 건가요? 어떻게 그런...?”
김유미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나?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김유미의 도움이 없이 녀석의 학창시절을 캐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몰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이차가 십년이 넘는 누나를... 물론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 다시 얼굴을 계속 대면하게 되는 사이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거든... 하물며 평생 봐야하는 사이라면... 더더욱... 성적인 호기심에 목욕하는 걸 훔쳐본다거나... 잠이 들어 있을 때 살며시 더듬어 본다거나 하는 정도면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또 하나는 그런 일이 일어난 시간이... 동생이 군대를 제대한 이후라면... 그 것도 좀 걸려... 좀 더 어린 시절이라면 자신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있지만... 남자들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오면 성숙해지고 철이 들어... 그건 성적인 충동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된다는 이야기거든...“
“그럼 뭐예요? 유성이가 왜 날?”
“그건 몰라. 아름다운 꽃을 꺾어보고 싶은 건 모든 남자들의 욕망이니까 그렇게 설명한다면 간단하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요? 무슨...?
“설명하기는 힘든데... 조금 더 명확해지면 이야기를 해 줄게..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내가 좀 엉뚱한 데가 있잖아. 대신... 부탁이 있는데...”
“뭔데요? 괜히 이상한 거 부탁하는 거 아니에요?”
“니 동생이 가출했던 당시 정황을 좀 자세히 알아봐줬으면 좋겠어. 그냥 아무거나 다... 아무리 작은 거라도... 아버지나 새엄마한테 물어보기는 그렇겠지만... 누구 다른 사람이 없을까?”
“바로 밑에 여동생한테 물어보면 돼요. 지금은 결혼을 해서 나가서 살지만 그 애는 그 당시에 친정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물어볼 수는 있을 거예요. 근데... 왜 그런 게 궁금한 건지 이야기를 해줘야 알아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에요.”
“글세... 대답이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부분 답을 멀리서 찾지만 모든 답은 주변에 있어.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거든.”
“그 답이 무엇에 대한 답인데요?”
“동생과 너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실마리 같은 거야. 니가 원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너한테 있었던 일이고 그 사건 이후 삶에 변화가 있었으니 다시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서...”
김유미는 아직 이유성을 만나고 있을 것이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것 같아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보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출했던 당시 상황만 알아봐주면 된다는 거죠? 알았어요. 물어볼게요. 동생이 잘 모르면 유성이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석훈씨가 무언가를 알아내게 되면 저에게도 말해줘야 해요. 그럴 거죠?”
“되도록이면 직접 물어보는 것보다 여동생에게 물어봐. 그리고 십년도 더 지난 이야기인데...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뭔가 알게 되면 이야기 해 줄게.”
2~3일이 지난 후 김유미에게 전화가 왔다.
“별로 알 수 있는 게 없네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동생말로는... 그 때 용호라는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대요. 같이 체조를 했던... 유성이가 체조를 그만두고 나서도 그 애는 계속 운동을 했다더군요. 그런데 워낙 친해서 가끔 그 애 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했는데... 어느 날인가 그 애 집에 간다고 나간 이후로 집에 안 들어왔대요.”
“그럼 그 애 부모한테 안 물어봤대? 집에 놀러 왔었는지...”
“용호가 자기 집에서 자고 갔다고 했대요. 그 이후는 자기도 잘 모른다고...”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사람이 누구래?”
“그게... 용호 엄마인가 봐요. 용호는 유성이가 곤히 자고 있고 아침 일찍 체조부 훈련이 있어서 학교에 먼저 갔나 봐요. 유성이는 천천히 학교에 가도 되니까...”
“그럼 용호 엄마는 뭐라고 했대?”
“아침 밥 먹여서 보냈다고 그랬대요. 그게 다래요.”
“동생이 82년생 이지? 용호라는 친구 성은 뭐야?”
“그건 안 물어봤는데... 그 것도 알아야 돼요?”
“응. 알았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동생이 졸업한 고등학교가 어디지?”
“분당에 있는 00고등학교예요. 이름을 알고 싶은 건 그 친구를 찾아가서 만날 생각인거예요?”
“아니..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냥 여동생한테 물어보기 그러면 놔둬. 동생도 모를 수도 있고... 내가 알아보든지 할게. 아 그리고... 혹시 용호라는 친구 아빠가 안계시나? 일찍 돌아가셨거나 아님 이혼을 했다든지 해서...”
“예?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동생이 그러는데...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용호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 키웠는데 원래 시댁이 돈이 좀 있는 집안인데다가 보상금도 많이 받아서 금전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나봐요. 엄마 혼자 키우면서 아들 운동 시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용호 집은 마당에 정원과 연못이 있는 3층 짜리 주택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었고 아빠하고 새엄마가 용호 엄마를 만나러 갔었나봐요. 거기다 동생이 그러는데 용호라는 애가 상당히 귀티가 나고 잘생겼다고 했어요.”
“응... 알았어... 다른 건 됐어. 내가 알아볼게.”
전화를 끊고 회사에 출장 처리를 해두고 분당 00고등학교에 가서 졸업앨범을 열람했다. 용호라는 이름을 가진 졸업생이 마침 한 명밖에 없었는데 성이 천... 천용호... 82년생.. 아직 결혼을 안했다면 여전히 엄마와 같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이 녀석 주소부터 알아내야 하는데...
신원 조회는 경찰 쪽이 편하다. 82년생 성남 거주 천용호라는 이름이 많지는 않을 터... 난 다시 한 번 배영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 회사 후배 여직원의 첫사랑이라고 이유를 대면서 조회를 부탁했다.
3명의 같은 이름이 나왔고 그 중 중원구 00동 고급 주택가에 천용호라는 녀석이 좀 의심스러웠다. 난 김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친정이 성남 00동에 있어?”
“예전에 거기 살다가 지금은 일산으로 이사 가셨어요. 그건 왜요?”
중원구 00동은 분당 00고등학교와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난 바로 그 주소로 차를 몰았다. 15분이 지난 후 난 빌라 형식의 양옥들이 골목을 따라 이어져 있는 주택가의 커다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대문 안 쪽으로 작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정원과 연못이 있고, 고풍스러운 벽돌로 지어진 3층 양옥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대문 앞에 볼 수 있는 문패에 오정희라는 여자 이름이 쓰여 있는 것과 김유미가 설명한 이유성의 친구 용호 집과 겉모습이 일치하고 있어 별 어려움 없이 찾은 것 같았지만 회사에 들어가 봐야 했고 그 이상은 별다르게 할 게 없었다.
비슷한 모양새의 집들이 계속 이어져 있는 오르막 길을 따라 약간 걸어서 주변을 살펴보다 다시 내려와서 차에 타고 그 곳을 떠나려 할 때 그 집 대문 옆 차고 문이 올라갔다. 난 그냥 내 차에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며 차고 안을 살폈는데 젊은 남녀가 어린 아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있었고 그 중 남자 얼굴이 00고등학교에서 봤던 졸업 앨범 속의 천용호 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주소가 이 곳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천용호는 결혼을 한 이후에도 분가를 하지 않고 여기 살고 있는 듯 했는데 녀석과 부인, 아이를 실은 SUV가 내 옆을 스쳐가고 차고 문이 내려오는 동안 시선에 잡힌 검정색 체어맨이 오정희의 차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성과 천용호는 고등학교 때 친구이고 서로 집에 오고 갈 정도로 친했다. 체조를 그만 둔 어느 날 이유성은 천용호의 집에 가서 잤고 다음 날 원인 모를 가출을 했는데 3개월이 넘어서 들어왔다. 그리고 가출의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르는데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천용호의 엄마 오정희가 이유성이 가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다.
김유미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유성과 김유미가 단 둘이 집에서 밤을 보냈던 그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이유성이 사라져 버린 것...
이미 군대에 다녀와서 헬스클럽에서 일하던 때라 고등학교 때 가출과 연관을 못 시키는 듯 했다. 녀석의 가출은 천용호의 엄마인 오정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물론 체조를 그만두고 방황했던 시기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긴 하지만...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나갔다가 집에 와서 짐을 꾸릴 시간도 없이 갑자기 가출을 한 것은 좀 이상하다.
난 회사로 돌아와서 퇴근을 한 후 다시 천용호의 집으로 갔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뭘 할지도 감은 안 잡히지만 그래도 그 집 앞에 있다 보면 무슨 정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저녁을 대충 먹고 그 집 앞 골목에 차를 세워 두고 그 안에 앉아 있자니 예전에 전남 광양 민현규의 매장 앞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던 생각이 났다. 따지고 보면 내가 형사도 아닌데 또 잠복이라니... 내 짐작으론 오정희는 이유성의 첫 여자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곤 해도 12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관계가 이어질까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오정희가 이유성에게 태클 걸 입장은 아니니 그건 전적으로 마왕의 선택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걸 확인을 한 이후에야 나도 녀석에게 다가갈 다른 길을 알아볼 것이다.
만약 오정희가 가정주부가 아니고 직업이 있다면 오히려 더 쉬울 것인데 그 것부터 알아내야 했다. 그녀가 공개된 장소에 있다면 내가 시간이 남을 때마다 오정희 주변을 살펴볼 수 있고 이유성과 얽혀 있는 지 판단도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할 것이다.
돈이 있는 미망인이라고 하더라도 이 큰집을 유지하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사 가지 않고 있다는 건 시댁에서 천용호의 뒷바라지를 위해 금전을 대줬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수입원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시계가 밤 10시를 가리킬 무렵 차고 문이 열리더니 낮에 보았던 체어맨이 서서히 밖으로 나왔다. 난 망설임 없이 내 차를 몰고 따라 붙었고 10여분을 운전해 도착한 곳은 서현역 주변의 고층 빌딩 지하 주차장이었다.
지하 2층으로 들어간 체어맨이 주차를 위해 멈췄고 나 역시 뒤 쪽에 있는 공간에 재빨리 주차를 시킨 후 차에서 내린 여자를 쫓아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난 그녀와 나란히 서서 곁눈질로 흩어 보았는데 웬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인이었고, 전체적으로 살이 없고 날씬한데다가 뒤로 묶은 머리와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름이 있는 연한 파란색 투피스가 아주 잘 어울리고 있었다.
계산을 해보면 오정희가 천용호를 스무 살 무렵에 낳았다고 해도 50살은 됐을 텐데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열살 가까이 젊어 보였으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주 겪는 일인 듯 슬며시 시선을 피했는데 그 동작조차 아주 자연스러웠다. 곧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난 1층에서 내리는 그녀를 천천히 따라갔는데 오정희는 엔젤리너스라는 커피숍에서 멈추더니 상가 안으로 난 쪽문으로 사라졌고, 난 부리나케 상가 밖으로 나가 정문을 밀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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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몸이 좀 피곤해서 이번 회는 좀 짧게 올립니다. 전에 다른 필명으로 52부까지 가는 소설을 한 편 쓴적이
있는데 욕정도 아마 그 쯤은 갈 것 같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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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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