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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7 828회 0건
“대화가 가능할까요?”

민혁과 서영 앞에 명진과 수영이 다가왔다. 3라운드 첫 번째 게임 직전에 대화를 하자고 제안을 하는 건 그 이유가 있을 터, 서영이 비교적 반갑게 대화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반겨주는 서영에 수영 역시 환한 미소로 답했다.

“서류를 통해서 보셨겠지만, 전 이수영, 제 남편은 한명진이라고 해요. 둘 다 20살이고... 이번 게임 참여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고 들었어요.”

“네.”

“제 남편은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해요. 듣지도 못해요.”

“그렇군요.”

수영이 대화를 이끌어 갔고, 그의 옆에 있는 명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영은 수영의 말을 들으며 명진을 살펴보았는데, 특이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의 입 모양을 보고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대략 알 수 있어요.”

“수영 씨라고 했지요? 다 알겠어요. 그런데 정확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가만히 듣고 있던 민혁이 입을 열었다. 서영이 민혁에게 눈치를 줬지만, 민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재차 질문을 했다.

“본론을 들었으면 해서요.”

민혁의 질문에 수영이 숨을 한 번 크게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저희는 서로 힘을 합 칠 분들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수영 씨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민혁이 다시 묻고, 수영이 대답을 했다.

“서로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규칙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서로 돕기만 하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을 거예요.”

수영이 비교적 진지한 얼굴로 민혁과 서영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좋아요. 저희 부부도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기권 규정의 경우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추행범을 잡으면 좋겠지만... 서로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결국에는 게임 당 한 팀씩 탈락시켜야 할 것 같은데... 왜 하필 우리죠?”

차분히 말을 하던 서영이 왜 자신들을 선택했는지, 수영에게 묻기 시작했다. 힘을 합치려면 자신들을 제외하도 네 팀이 더 있었다. 왜 수영의 이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싶은 서영이었다.

“휴우... 사실 제 남편의 결정이 컸어요.”

수영의 말과 동시에 명진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 나온 계획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 했다.

“우리가 아까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는 것 보셨지요?”

“우리도 인사를 받았죠.”

“제 남편은 말을 하지 못해요. 듣지도 못하고요. 대신에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요.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보는 눈이 필요했어요. 어리지만 매우 치열한 삶을 살아온 남편이기에 난 그의 말을 믿어요. 제 남편이 두 분을 보고 믿을 만 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찾아온 것이고요.”

“믿을 만... 이라...”

서영이 넌지시 중얼거렸다. 수영의 표현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서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믿을 만 한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수영 부부가 자신들을 찾아온 것이었다,

“재밌는 표현이네요. 혹시 또 믿을 만 한 사람이 있나요?”

서영이 수영에게 물었다.

“남편의 말을 그대로 전해드릴게요. 1번은 민혁님과 서영님이고, 2번은 김영수님과 박은희님이죠? 저희가 인사를 갔을 때 2번 부부는 받아주지도 않았어요. 그 자체만으로도 믿을 수가 없는데... 남편 말로는 남자의 눈이 사백안이래요.”

“사백안?”

“네. 검은 눈동자 주위로 모든 흰자가 드러나는 눈을 뜻해요. 이런 사람들은 비윤리적이며, 자신의 본능적 욕망을 위해서는 누구든지 배신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거침없이 말을 하는 수영이었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민혁과 서영은 조금 놀라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2라운드에 영수와 은희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았던가.

“남편이 관상도 봐요?”

“관상까지는 모르겠는데... 입과 귀가 불편해서 오로지 눈을 통해서 사람을 판단해야 했어요. 자신만의 경험이 있어요.”

“재밌네요. 다른 부부의 평가는 어떤가요?”

서영은 수영의 입을 통해 명진이 각 팀을 평가한 내용을 듣고 싶었다.

“3번은 저희고... 4번과 5번 부부는 건너 뛸 게요. 6번 부부는 차영호님과 강효진님인데... 이 부부 역시 남편이 믿을 수가 없다고 했어요. 보세요. 벌써부터 2번 부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잖아요.”

수영의 말에 민혁과 서영이 고개를 돌렸다. 영수와 은희 부부가 어느새 영호와 효진 부부와 하나가 되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말들이 오가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분위기로는 이미 한 팀이 된 것 같기도 했다.

“6번 부부는 너무 멋있고, 너무 예쁘다고 남편이 말했어요. 그리고 인사를 할 때에도 매우 친절했어요. 남편 말로는 그런 사람들은 독가시를 품은 장미래요. 더구나 두 사람 다 입 꼬리가 너무 많이 올라가서... 거짓이 많고 진실성이 부족하대요. 아름다운 얼굴로 밝은 미소를 가지고 사람들을 상대하지만, 그 속은 음흉하다고...”

“좋아요. 그런데 4번 부부와 5번 부부는... 왜?”

수영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듣던 서영이 4번과 5번 부부를 건너 뛴 이유를 물었다. 4번 부부인 영철과 희자 부부를 건너 뛴 이유는 추측이 가능했지만, 5번은 왜 그랬을지,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저희가 정보를 드릴게요.”

“정보라면...”

“첫 번째 게임에서 투표권이 있다면... 어느 팀을 선택하실 건가요?”

수영이 대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민혁과 서영에게 투표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 의도를 눈치 챈, 서영이 수영에게 대답을 했다.

“수영 씨 부부는 4번에 하겠지요? 사실상 추행범 잡기 게임이 아니니...”

“네. 맞아요. 제 생각에 민혁님과 서영님도 투표권이 있으면 4번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해요.”

“훗... 사람들 생각이 다 비슷하니...”

“무슨 말인지 알아요. 하지만... 저희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어요.”

“4번 부부와 2라운드에서 만났지요?”

서영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러자 수영과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4번 부부에게만은 인사를 하지 않았죠. 그렇다면 무슨 원한이라도 있다는 건데... 그건 서로 아는 사이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2라운드 게임에서 만났을 것이라고 추측했죠.”

“휴... 네. 맞아요. 저희도 나름 사정이 있어서 게임이 참여를 하긴 했지만... 2라운드에서 받은 멸시와 굴욕은 잊을 수가 없어요. 더구나 저희는 세 번째 게임에 승리하며 가까스로 3라운드 진출했어요. 그들에게 당한 것을 복수하고 싶어요. 이게 솔직한 심정인데... 민혁님과 서영님이 투표권이 생기면 4번을 선택해주세요. 그러면 그들은 탈락 시킬 수 있을 거예요.”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약간은 격앙되게 수영이 민혁과 서영에게 말을 했다.

“좋아요. 분위기를 보아하니까... 4번이 첫 번째 게임에서 탈락할 것 같으니... 안전한 것이 우리에게도 좋겠죠. 수영 씨 부부가 솔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

서영이 대답을 했고, 수영이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하나 정보를 더 드릴게요.”

“정보요?”

“5번 부부는 김민석님과 황지민님이죠. 남편 말로는 저 부부들도 믿을 만 하다고 했어요.”

“기도만 하고 있는 저 사람들이요?”

“네.”

많은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한 쪽에서는 민석과 지민이 서로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기도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민혁과 서영이 보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을 대목이었다.

“남편 말로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해요.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이곳에 모인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방금 전에 저희가 5번 부부와 대화를 하고 왔는데... 아니, 대화라고 하기에도 조금 그렇지만...”

“아까 잠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것 같네요.”

“5번 부부는 투표권이 생기면 기권을 할 거래요.”

“기권 규정을 이용한다는 것인가요? 사실상 그건 불가능한데...”

“아니요. 5번 부부는 칩 10개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어요. 자신들도 그런 경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대신에 계시를 받았대요. 기권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계시를...”

“하... 웃음이 나오네요.”

“저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렇게 말했고... 또 누군가를 탈락 시키는 투표를 하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5번 부부가 확실히 그렇게 말을 했어요.”

수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 정확히 5번 부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 투표에 있어서 또 다른 변수가 생기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기권한다면, 각 게임에 있어서 표수가 하나씩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자기 손에 더러움을 묻히기는 싫다는 말인가...”

듣고 있던 민혁이 중얼거렸다. 수영을 통해서 들은 5번 부부의 말이 참 괘씸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휴우...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저희를 믿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두 번째 게임부터 저희가 손을 잡으면, 좀 더 수월하게 4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떠세요?”

수영이 민혁과 서영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서영이 수영의 눈동자를 바라보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게요. 일단 첫 번째 게임을 통과하고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죠.”

확답 대신 서영이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고, 수영과 명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르 했다.

“감사드려요. 아참... 꼭 첫 번째 게임에서 투표권이 생기면 꼭 4번 부부를 선택해주세요.”

수영이 말을 마치고 명진과 함께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민혁이 서영에게 말했다.

“저 어린애들을 믿어?”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관상쟁이도 아니고... 참 믿을 수가 있어야지. 기억나지? 우리 힘으로만 경쟁을 하겠다는 결심... 괜히 또 배신을 당하면...”

2라운드에서의 배신의 후유증은 매우 컸다. 민혁은 그 뒤로 누구를 좀처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100% 믿을 수 없겠지만... 어린 부부의 생각도 나쁘지는 않아. 두 번째 게임부터는 영수와 은희 부부를 상대해야 할 테니까...”

“그 어린 부부들이 첩자일지 누가 알아?”

“첩자라니?”

“영수와 은희... 그 잡놈년과 이미 한 배를 탔을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서영이 말꼬리를 흐렸다. 민혁이 무어라고 다시 반박하고 싶었지만, 로비가 술렁거렸기에 할 수 없었다. 대형 스크린에 치킨 박이 등장한 것이었다.

- 하하하. 모든 분들 잘 준비하셨습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모든 부부가 대형 스크린 앞에 다가왔다. 이제는 정말로 3라운드 첫 번째 게임이 진행이 되려고 했다.

- 규칙을 잘 숙지하셨지요. 이제 시작합니다. 하하하. 먼저 제가 공을 하나 뽑도록 하지요.

치킨 박이 자신의 앞에 있는 검은 상자에 오른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공 하나를 집어서 꺼내어 모든 참여자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파란 공이었다.

- 하하하. 추행범은 남자가 되겠군요. 피해자는 여자가 되겠습니다.

피해자가 여자가 된다는 치킨 박의 말에 5명의 여자들이 긴장을 했다. 오로지 희자만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내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자지를 잘라 버릴 거야!”

희자의 말에 분위기가 꽤 싸늘해졌지만, 오직 치킨 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하하하. 우리 큰 언니가 많이 놀라셨나 보군요. 자, 좋습니다. 남자 분들! 추행범을 결정해야지요. 번호 순서대로 쪽지를 뽑으시길 바랍니다. 아참, 쪽지를 뽑고 나서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면 안 됩니다.

컴퍼니 직원 하나가 검은 상자를 가지고 참여자들에게 다가왔다. 치킨 박의 지시에 따라 1번인 민혁부터 6번인 영호까지 차례대로 검은 상자에서 쪽지 하나씩을 뽑았다.

- 누구 추행범일지... 벌써부터 궁금한데요. 하하하. 이제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설명을 했듯이, 통로 좌측 방은 남자들 방, 우측 방은 여자들 방입니다. 방문에는 각 번호가 쓰여 있으니... 각자의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시면 남자분들은 쪽지 확인을 합니다. 추행범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1시간 동안 대기를 하시면 되고, 추행범은 제가 지시를 하면 게임을 진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하하. 여자분들은 피해자가 되기에 조금의 수고를 하셔야 합니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시면 옷을 모두 벗으셔서 나체 상태로 침대에 누우시면 됩니다. 저희 직원들이 침대에 양팔을 묶을 것이며, 눈을 가려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딱 1시간만 수고하시길 바라며... 게임 진행하겠습니다.

치킨 박의 말에 모든 부부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민혁과 서영도 통로 입구까지는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그리고 각자의 방에 들어갈 때에는 눈빛으로 서로 힘내자며 격려를 했다.

***

서영은 현재 나체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두 팔은 수갑으로 침대에 결박되었으며, 눈은 눈가리개 착용으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서영이 느낄 수 있는 건 어둠이 90%였고, 나머지 10%는 스크린을 통해서 간간히 들리는 치킨 박의 음성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이야.’

신체의 자유를 빼앗기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서영이 걱정한 건 컴퍼니 직원이 자신을 1시간 동안 지켜볼 것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2라운드 게임에서 이미 겪긴 했지만, 이 점이 익숙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자신과 함께 있는 컴퍼니 직원이 여자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첫 번째 게임은... 이렇게 1시간을 보내면 되겠지.’

피해자로 선택이 되면, 기권 규정의 경우를 제외하고 탈락에서 면제가 된다. 사실상 탈락의 위험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려 1시간 동안 성적 유린을 당해야 하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서영은 자신의 방으로 추행범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6분의 1의 확률이었다. 이렇게 1시간만 버티면 두 번째 게임에 자동진출이었다. 사실상 4번 부부가 탈락이 유력했으니...

‘조금만... 조금만 참자.’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서영은 자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추행범이 이미 들어오고도 남을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서영은 이제 마음 편히 침대에 누울 수 있게 되었다.

“난... 아니야.”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서영의 마음은 안심이 되고 있었다. 비록 두 팔은 묶였지만,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가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찰칵.

그리고 그때, 안심하던 서영이 있는 1번 방문이 열렸다.

순간이었지만 서영은 자신의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더불어, 다시는 듣고 싶지 않는 목소리를 듣게 되자 서영은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충격을 받으며 몸을 파르르 떨어야 했다.

“또 만났네?”




@ 30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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