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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6 771회 0건
“아이고... 우리 형제자매님, 저희를 이렇게 구원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민석과 지민 부부에게 다가간 영호가 비교적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말을 건넸다. 그동안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숨겼던 민석과 지민에 대한 영호만의 비꼼이었고, 그것을 알아 챈, 민석이 영호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다.

“훗... 우리가 실수를 한 것 같군요.”

“실수라...”

“영호님 부부를 떨어뜨려야 했는데... 괜히 살려줬나 봅니다.”

영호는 민석의 말을 듣고 순간 울컥했지만, 표정으로 그것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유가 있는 미소와 함께 다시 한 번 민석 부부를 조롱했다.

“그렇죠. 나중에 후회가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제가 민석님이었다면 저를 살려 두지는 않았을 것인데... 의외로 우유부단한 면이 있으시나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깟 칩 1개가 아까우셨던지...”

“하하하.”

영호의 말을 듣던 민석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난 후, 민석은 영호를 쏘아 보며 말을 했다.

“겨우 죽다 살아난 분이 입은 참 쌩쌩하군요.”

“민석님 부부도 죽다 살아난 것 아닙니까?”

“후훗. 그럴까요? 눈이 있었다면 3라운드 게임의 진행을 봤을 것이고, 머리가 있었다면 본 것을 가지고 여러 생각을 해봤을 것이며, 양심이 있었다면 그 과정 및 결과에 대해 인정을 하셨겠지요?”

영호는 민석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민석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영호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위기는 영호 스스로 만들긴 했지만, 세 번째 게임에서 민석 부부가 자신에게 표를 던졌다면, 탈락할 수 밖 에 없었다.

“하하하. 제가 오늘 꽤 강적을 만났나 봅니다. 혹여나 살아 남으셔서 다음 게임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군요. 3라운드 게임에서 크게 한 수 배웠습니다.”

“후훗... 그때는 살려두지 않겠습니다.”

영호와 민석 간에 묘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민석이 영호보다 거의 10살 가까이 나이가 많았지만, 전혀 기싸움에 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에 대한 여유가 얼굴에 묻어나고 있었고, 그것을 본 영호는 묘한 경쟁심에 가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인생의 패배자들만 참여한 줄 알았는데.... 이런 인물이 있을 줄이야... 완벽히 당했구나...’

영호는 냉정히 판단했다. 이번 3라운드 게임을 통과한 사람은 세 쌍의 부부였지만, 진짜 승리자는 민석과 지민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한 위험이 거의 없이 4라운드에 진출한 그들이었다.

‘나머지 다섯 부부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며, 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울 때... 이들은 우리를 그저 쳐다보며 기도하는 척 연기만 했을 테니... 거참... 마치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감상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조심해야 할 상대다.’

대화를 마친 영호는 민석과 지민 부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에 꼭 다시 보시죠.”

“그럽시다.”

영호가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뒤를 아내인 효진이 따랐다.

“우... 우리 완전히 속은 거지?”

“그럴 수 있다고 봐야겠지.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주 미친 듯이 기도만 하기에 방심을 했던 것 같아. 더구나 그 어린 수영이라는 여자애가 나에게 말해줬지. 저 5번 부부는 계속 기권만 한다고 했다고... 그것도 아주 절묘해. 모든 사람에게 알린 것도 아니고, 한 팀의 부부에게만 넌지시 그 사실을 알렸으니... 의심을 가는 행동을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의심을 넘어서 경계심까지는 갖지 않게 했어... 어차피 기권 규정의 경우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4라운드 진출에 목적을 둔다면... 아주 재밌는 계획이었어. 또한 단순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성공을 해냈다는 것이고... 지금이라도 정체를 알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영호의 말을 들은 효진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효진 역시 5번 부부는 거의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기도에 미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4라운드 진출을 위한 연기였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음에 또 만날 수도 있겠네?”

“만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그들이 탈락할까 봐?”

“우리가 탈락할 수도 있지.”

“잉...”

“농담이야. 하하. 난 반드시 우승을 할 거야. 50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 그런데 그것보다 저 5번 부부 때문에 하나 깨달은 사실이 있어.”

“깨닫다니?”

“인생의 패배자들만 이 게임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네... 재밌지 않아?”

“치... 무엇이 재밌어. 난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데... 루저가 되면 무서워.”

효진은 2라운드까지만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영호만을 믿고 참여한 대회였는데, 3라운드에서 세 쌍의 부부가 탈락하며 컴퍼니 직원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본 후,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단순히 게임을 떠나서 지독한 현실을 보았고, 또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 승부사잖아?”

“칫. 그놈의 승부사... 그래서 지금 이 게임에 참여한 거야?”

효진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영호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영호는 효진의 말이 불쾌했지만,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색 할 이유도 없거니와, 내색을 할 정도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50억 상금 받아서... 한 번 더 겨뤄봐야지.”

“또?”

영호에게 있어 사실상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물에서 재기를 한다면 먹고 사는 것은 지장이 없었지만, 자신을 패배시킨 희대의 천재 겜블러와 최후의 한판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영호에게 있어 섹스게임 우승 상금 50억은 천재 겜블러에 대한 최소한의 도전장일 뿐이었다.

“그 놈에게는 50억은 돈도 아닐 거야... 그런데 최소한 그 정도 돈은 가져가야지... 상대는 해주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무엇보다... 이 섹스 게임도 나름 재밌어... 별 거지 같은 놈년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말을 마친 영호가 민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영호는 고개를 돌려 충격에 빠져 주저앉아서 멍하니 있는 서영을 쳐다보았다.

‘저 여자도 곧 재기하겠지? 쉽게 무너질 여자가 아니야....’

영호는 서영이 이렇게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호가 그동안 상대해 왔던 겜블러 중에서는 서영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았다. - 물론, 서영이 겜블러는 아니었지만 - 그러나 서영 같은 사람은 또 없었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상황, 서로를 의심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믿어 줄 사람을 만들고 또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빠졌으면서도 자신은 물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한 번 구하기까지 했다. 이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많은 게임을 해봤지만...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는데... 믿음은 비상식적인 단어라고 생각해 왔건만...’

영호가 민석과 서영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치킨 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어수선하군요. 하하하. 대충 4라운드 진출자끼리도 대화를 하신 것 같고... 아이고 우리 최민혁님과 김서영님은 아직도... 일어나세요. 하하하. 그러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저희 직원들이 검은 두건을 씌울 테고, 번거롭지만 집으로 가는 길도 오실 때처럼 조금 돌아서 갑니다. 하하하. 판돈과 상금인 칩 5개를 꼭 받아 가시며... 저 치킨 박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로비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치킨 박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컴퍼니 직원들이 4라운드 진출하는 부부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손에는 검은 두건이 들려 있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서영의 얼굴은 검은 두건으로 가려졌다.

***

“엄마, 엄마!”

연아가 서영에게 다가왔다.

“응? 왜?”

“엄마, 어디 아파요?”

연아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서영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서영은 연아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약 이틀 간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집에 있는 시간에도 거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괜찮아. 아프지 않아.”

섹스 게임 3라운드를 마치고 돌아 온 서영은 산부인과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는 일이 없었다. 딸인 연아의 밥을 챙겨주는 것을 제외하면, 침대에 누워서 생활을 했다. 몸이 힘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지쳐 있었다. 서영은 울부짖으며 끌려가던 수영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수영을 구하고 싶었지만, 서영은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수영을 보내야만 했다. 그 생각만 하면 서영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딸인 연아가 있었기에 꾹 참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침대에만 누워 있어요?”

“그냥... 조금 힘들어서...”

“잉... 연아 심심한데...”

“우리 착한 연아... 조금만 참아주지 않을래?”

힘겹게 미소를 보이며 서영이 말을 했다. 연아는 그런 서영을 바라보며 작은 머리를 살며시 끄덕거렸다.

“좋아요! 연아는 착하니까. 대신에 엄마도 힘내는 거예요!”

연아의 격려를 받으며 서영이 다시 한 번 미소를 보여줬다. 연아는 그 모습에 안심이 됐는지, 그때서야 서영에게서 멀어져 거실로 나갔다.

“휴우....”

연아가 다시 눈앞에서 사라지자 서영의 머릿속에는 수영의 생각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3라운드에서 돌아온 후 서영은 지금까지 민혁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민혁이 원망스러웠다. 또한 민혁 때문에 수영이 탈락했다고 생각했다.

“그도... 어쩔 수 없었겠지...”

민혁 역시 괴로워하고 있음을 서영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몇 차례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던 민혁의 모습도 보았지만, 거의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부쩍 수척해 진 모습이기도 했다. 원망스러웠던 민혁이었지만, 서영은 그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이유가 어찌 됐든, 4라운드 진출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던가. 더구나 민혁이을 떠나서라도 어찌 보면, 수영 부부의 탈락은 막을 수도 없었을 것 같았다. 기권만 하던 5번 부부가 수영 부부에게 투표를 해버렸으니...

“영호 부부... 그리고 민석 부부... 언젠가 만나게 되면...”

겨우겨우 영수 부부를 탈락시켰더니, 이제는 오히려 원망을 해야 하는 부부가 두 쌍으로 늘어났다. 서영은 그 점이 매우 심적으로 힘들었으나, 수영 부부를 생각하면 꼭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 역시 4라운드 진출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서영은 그래도 용서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진짜... 방법이 없는 걸까?”

서영은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치킨 박이 패자부활전도 없다고 말을 했기에, 수영 부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없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지만, 서영은 계속해서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믿음을 줬던, 또 그렇게 울부짖으며 떠나야 했던, 수영의 모습을 생각해서라도, 서영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영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에이스!”




@ 48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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