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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06 973회 0건
창식과 선애는 컴퍼니 직원에 이끌려 5톤 화물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욕설이 창식과 선애의 귀에 들려왔고, 큰 소리로 욕을 내뱉은 자를 확인한 두 사람은 발걸음을 멈출 수 밖 에 없었다. 물론, 민혁과 서영처럼 창식과 선애도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야이 개새끼야!”

창식과 선애는 자신을 향해 욕을 계속 내뱉는 사람을 보고 매우 당황했다. 그리고 또 황당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민혁과 서영을 마주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현실이었다..

“씨발놈아. 이리 안와!”

다시 한 번 민혁이 걸쭉하게 욕을 했다. 창식은 그런 민혁의 욕을 들으며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어차피 이곳에서 만난 이상 민혁을 피할 수도 없었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행동하리라 결심했다. 창식이 다시 발을 움직였고, 남편에 비해 소심한 선애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민혁에게 다가 간 창식이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악수나 하자는 창식의 제의였지만, 민혁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말을 했다.

“이 개새끼가... 네가 어떻게 나에게...”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민혁을 뒤로하고 그의 옆에서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서영을 향해 창식이 인사를 건넸다.

“형수도 오랜만이오?”

서영은 창식의 인사를 받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그의 뒤에 숨어 있다시피 한 선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서영의 말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서영은 창식과 선애를 노려볼 뿐이었다.

“으... 응.”

선애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서영의 인사에 대답을 했다.

“야 이 새끼야... 내 돈 어떻게 했어. 내 돈 말이야!”

민혁이 당장이라도 창식을 두들겨 팰 것처럼 행동하며 물었다. 그러나 창식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돈이 있었다면... 내가 이 자리에 형님을 만났겠소?”

창식은 얄미울 정도로 뻔뻔했다. 그리고 그런 창식을 바라보는 민혁과 서영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부들부들 몸을 떨어야 했다.

“이 자식이...”

“거참. 지나간 과거는 잊읍시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아니오?”

민혁이 당장이라도 주먹으로 창식을 때릴 것처럼 다가갔다. 그 순간 서영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는 민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민혁이 고개를 돌려 서영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조심스레 흔들었다. 폭력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린애들처럼 왜 그러시는지...”

창식은 일부러 민혁의 속을 긁고 있었다. 비록 민혁과 서영을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어차피 이곳에서는 서로 죽여야 할 경쟁상대일 뿐이었다. 더구나 이미 관계는 1년 여 전에 틀어졌지 아니한가.

“너... 이 새끼... 진짜...”

“거참. 새끼 새끼 하지 맙시다. 나도 더 이상 예우하기 힘드니까.”

민혁과 창식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으르렁 거릴 때, 서영은 다시 선애를 향해 비교적 차분히 말을 했다.

“도대체 왜 그랬어?”

선애는 한때는 친한 친구였던 서영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미안한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형수, 내 아내에게 왜 그럽니까?”

선애가 위축된 모습을 보이자 다시 창식이 나서서 서영을 상대했다. 서영은 창식의 뻔뻔함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말했다.

“낯짝도 두껍습니다. 도둑질이나 한 주제에....”

“세상사가 그런 것 아닌가? 문을 제대로 안 닫은 주인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서영의 비아냥을 창식이 받아치며 조롱했다. 민혁은 그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더 이상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이 네 사람의 관계는 인연이 깊기도 했지만, 재밌기도 했다.

먼저 민혁과 창식은 한 형제나 다름없었다. 민혁이 20대 후반에 그레이팅 사업을 시작했을 때, 당시 창식은 화물택배 기사로 일을 했었다. 민혁이 이용하던 모 화물택배 회사에 창식이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업 초창기에 민혁은 매우 힘든 상황에 직면했었는데, 그나마 창식이 편의를 봐주었고 - 저렴한 화물비 - 민혁이 그 보답으로 산 술 한 잔이 이 둘을 인연으로 만들게 했다.

약 2년간 민혁과 창식은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리고 창식이 화물택배 일에 대해 회의감이 들어 퇴사를 했을 때, 그를 불러 준 것이 민혁이었다. 마침 민혁의 사업도 성장기에 있었고,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했기에 퇴사를 해서 일자리를 찾던 창식을 불렀던 것인데, 이것은 더욱 더 둘 사이를 끈끈하게 만들었다. 창식이 민혁 밑에서 성실히 일을 배웠고, 민혁 역시 그런 창식이 너무나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게 10년을 함께 했고, 민혁의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야심이 있었던 민혁은 또 다른 사업을 꿈꾸었다. 그래서 인테리어 및 건설 쪽 일을 시작하면서 그레이팅 쪽은 아예 창식에게 맡기다시피 했다. 민혁은 창식을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형제로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창식 역시 그런 민혁이 고마워서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민혁과 창식이 더욱 더 형제와 같이 지낼 수 밖 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서영과 선애 때문이었다. 서영과 선애는 고교 동창의 친한 친구였고, 민혁과 서영의 결혼식에서 창식이 선애를 만나 결혼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만큼 이 네 사람은 아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1년 전까지는...

IMF 사태가 터졌고, 모든 기업이 줄줄이 부도를 내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민혁의 사업 역시 위태위태한 순간이었다. 결국 돈 문제였다. 현금이 유통이 되지 않으면서 민혁의 사업은 존폐의 위기에 직면했는데, 그 순간 창식과 선애가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물론, 맨 몸으로 잠적을 하지는 않았다. 민혁 몰래 약 5억의 돈을 횡령하였으니...

5억이라는 돈이 매우 큰돈이기는 하나, 민혁의 사업이 한창 잘 나갈 때는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다. 문제는 IMF 사태가 터진 후, 돈줄이 마른 상태에서 민혁은 자신이 10여 년간 이뤄놓은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재산까지 투입했는데, 그 상황에서 창식에 의해 횡령된 5억은 매우 치명타를 주었다.

결국 사채까지 발을 디딘 민혁은 회사도 지키지 못하고 빚은 30억으로 늘어났다. 물론, 창식이 횡령을 하지 않았어도 회사를 지키기는 어려웠겠지만, 가장 힘든 시기에 큰 상처를 주고 간 창식이 민혁은 너무나 증오스러웠다. 믿었던 만큼 그에 대한 배신의 상처는 매우 깊었던 것이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개자식이...”

“거참... 진짜 말끝마다 욕설이네.”

“네가 한 짓을 기억도 못하냐. 씹새끼야.”

“어어... 진짜 옛날 일을 왜 들먹거리오. 어차피 그 돈 없었어도 회사는 망했을 것인데...”

“이 자식이... 입 뚫렸다고... 아주 못하는 말이 없네.”

“내 입으로 내가 말을 하는데... 무슨 상관이오.”

민혁과 창식이 계속해서 언쟁을 벌이고 있었고, 서영은 선애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선애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네 사람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화물차에 설치 된, 스크린에 치킨 박이 등장한 것이었다. 네 사람은 묘한 다툼을 그만두고 눈을 스크린 쪽으로 향했다.

- 지켜보자니까, 두 팀 안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치킨 박의 말에 네 사람 모두 대답을 하지 않았다.

- 대답을 안 하시지만... 뭐... 저 치킨 박... 다 봤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자, 4라운드 게임에 참여하신 최민혁님, 김서영님, 그리고 양창식님, 김선애님... 네 분 모두 환영합니다.

이곳에서 오직 유쾌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스크린 속의 치킨 박이 유일했다.

- 다른 참가자는 없답니다. 오늘은 일대일 게임이니까요. 하하하.

치킨 박이 4라운드는 일대일 게임이라고 말을 하자, 약속이나 한 듯이 민혁과 창식이 서로를 노려봤다.

- 먼저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혹시 포기하실 분? 참고로 포기하신 팀은 지금 수중에 가지고 있는 칩 모두를 현금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하하하. 통 크게 저희 컴퍼니에서 한 번 양보한 겁니다.

현재 민혁과 서영이 가지고 있는 칩의 개수는 6개였다. 만약 지금 게임을 포기하면 6천 만 원을 현금으로 받아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나 민혁과 서영은 게임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 없으신가요?

치킨 박이 두 팀에게 질문을 했다. 창식과 선애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좋습니다. 본격적으로 4라운드 게임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하하하. 역시 화끈하신 분들이군요. 더구나 서로 안면이 있는 분들이라... 4라운드 게임이 더욱 더 기대가 되는군요.

항상 이쯤에서 참여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게임의 종류였다. 도대체 이번에는 무슨 게임을 할 것인가, 또 어떤 규정들이 있을까, 이런 것들이 매우 궁금했기에 네 사람의 참여자들이 치킨 박의 말에 집중을 할 수 밖 에 없었다.

- 궁금하지요? 하하하. 이번 4라운드 게임은 일대일로 이뤄집니다. 게임 종류를 말씀드리기 전에...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 게임은 전원 4라운드 통과가 없습니다. 단 한 팀만이 5라운드에 진출하겠습니다.

치킨 박의 입에서 한 팀은 반드시 탈락해야 한다라는 사실이 확인이 되자, 민혁과 서영은 전의로 불타올랐다. 비단 5라운드 진출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창식과 선애에게 복수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 그런데... 두 팀이 모두 탈락할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5라운드 진출 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두 팀 모두 탈락할 수 있다는 말에 민혁과 서영, 창식과 선애 모두 긴장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게임이기에 두 팀이 모두 탈락할 수 있단 말인가.

- 긴장되지요? 하하하.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게임의 중요한 점 하나는... 게임이 성사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게임을 하지 않고도 한 팀이 5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재밌겠지요?

네 사람의 참여자들이 모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게임을 하지 않고 승패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치킨 박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게임 종류를 밝히기에 앞서... 게임 장소, 시간, 판돈 등 기본적인 규정 사항은 여러분들이 정할 것입니다. 하하하하. 칩이 많은 쪽이 판돈을 설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면... 게임 진행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지요. 일종의 참가비가 없으면... 바로 루저가 될 테니...

치킨 박의 말에 민혁과 서영의 안색이 결코 좋지 않았다. 3라운드를 걸쳐 6개의 칩을 갖고 있는 건, 결코 많은 개수가 아니었다. 그에 반하여 창식은 민혁과 서영의 얼굴이 편치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훗... 고작 5-6개의 칩인 것 같은데... 이거 운만 따르면... 쉽게 가겠는데...’

현재 창식과 선애가 가지고 있는 칩의 개수는 총 9개였다. 3라운드 게임에서 기권규정을 이용해서 10개의 칩을 상금으로 받지 않는 이상, 9개의 칩 개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 하하하. 흥미롭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실 게임을 밝히겠습니다. 두두두두두둥.

네 사람 모두 치킨 박의 뒷말을 기다려다. 도대체 이런 아파트 공사 현장까지 와서 하는 게임이란 무엇일까. 뜸을 들이던 치킨 박은 네 사람의 긴장어린 표정을 즐길데까지 즐긴 후, 짧게 입을 열었다.

- 하하하. 강간. 4라운드 게임은 강간 게임입니다.




@ 5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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