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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정(慾 情) - 45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05 1,035회 0건
들어가서 매장 안을 둘러 볼 때는 보이지 않던 오정희는 카운터에 서 있었다. 난 자연스럽게 카라멜카페모카 한 잔을 그녀에게 주문했고 오정희는 방긋 웃으면서

“카라멜 카페모카 한 잔 맞으십니까? 만원 받았습니다...”

라며 주문을 받았다. 대부분의 손님이 계산을 한 후 2층으로 올라가지만 난 테이블이 몇 개 없는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오정희를 주시했다. 20대로 보이는 여종업원들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은 오정희가 이 매장의 사장이라는 걸 짐작하게 했고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친근한 누군가를 만나는 사춘기 소녀의 아주 자연스러운 순수함 같은 것이 묻어나오고 있었는데 서비스 교육을 통해 다듬어진 형식적인 친절로 보이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결혼한 아들을 둔 여자가 순수해 보인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오정희가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 이상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때묻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부자집 아가씨가 곱게 나이를 먹은 듯한 모습...

매장 문을 닫는 자정이 되기 조금 전 난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안에서 다시 오정희를 기다렸다. 그녀는 20분 쯤 후에 내려와 00동 집으로 향했고 나도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 한가한 시간이면 출장 처리를 해두고 커피 전문점에 가서 오정희가 있는 지 확인을 하고 없으면 그녀의 집 앞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너무 막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유성 쪽을 미행하거나 녀석 근처에서 잠복하는 것이 또 다른 방식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건 이 쪽에서 전혀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 경우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3주가 흘렀고 그 시간동안 난 오정희가 자주 다니는 미용실과 그녀가 가끔 만나는 친한 친구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가 지연과 만나는 주말 동안 오정희의 근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고 지연이 다시 법원에 가서 이혼 확인을 받아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이 지연에게서 난 미세한 변화, 아니 흔들림을 보고 있었다. 언뜻 보면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런 작은 것들이지만 불안 요소들... 지연이 내 얼굴을 응시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내가 무언가를 물어볼 때 그녀는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섹스를 할 때 그녀 몸 안의 압력, 수축현상이 점점 작게 느껴지곤 했는데 그 건 우리 만남의 의미나 내게 느끼는 감정들이 작아지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지연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그녀가 내게 물었다.

“다음 주에 시간 낼 수 있겠어요? 수요일에 법원에 한 번 더 가야돼요.”

“응. 몇 시에?”

“10시쯤이요.”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녀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고 다시 날 보지 않았다. 난 지연에게 물었다.

“많이 불안해?”

“예? 뭐가요?”

“그냥... 이야기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음... 아저씨는 못 속이겠네요. 뭔가 뜨거운 게 몸 안을 돌아다니는 기분인데 영 가라앉지를 않아요. 아무 것에도 집중이 안 되고 혼자 있는 건 무섭고 정말 싫은데 누구랑 같이 있는 것도 불편하고요. 왜 사는지 왜 먹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지연의 우울증은 완전히 낫지를 않았다. 이유성의 외면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이 녀석과 이혼을 하게 되면 괜찮아질까? 지금 지연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며칠 후에 법원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고 나면 지연이 녀석을 다시 만날 일은 없다. 그녀는 그게 두려웠졌을 것이다.

“견디기 많이 힘들어?”

“미치겠어요. 쉽지 않네요.”

담배나 술에 중독된 사람도 끊으려면 금단 증세를 겪어야 한다. 시간이 약이겠지만... 지연이 거둬야 하는 것 이유성에게 가졌던 자신의 감정들인데 쉽지 않을 것이다. 관성의 법칙. 어떤 것을 향해 가는 건 계속해서 그 곳을 향해 움직이려 하는 법이니...

“뉴튼 제 1법칙이 뭔 줄 알아?”

“관성의 법칙 말하는 거예요? 그 정도는 안다구요.”

“물리에서 나오지만 그건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것 같아. 사람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라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즉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게 되면 계속 그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해. 만약 그 사랑을 해가는 동안 누군가의 방해나 장애가 많았다면 그걸 이기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합리화해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그러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고 가속도가 붙어. 그 건 제 2법칙 가속도의 법칙과 비슷하고...”

“음...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한데요. 사랑하는 마음이 무슨 물체 같잖아요.”

“응... 미안... 내가 이야기하려는 건 제 3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야. 너에게 이혼은 그 동안 가졌던 감정들을 되돌릴 수 있을 만큼의 반작용, 즉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증오가 있어야 쉬울 거야. 그리고 지금 니가 힘든 건.. 아마도... ”

“뭐요? 아마도... 뭐요?”

“그 사람 때문에 괴로워서 이혼을 결심했지만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 아니 그 사람에 대한 감정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결국 반작용이 약해서 넌 그대로 움직이고 싶은데 며칠 후에 이혼 확인을 하고 나면 영영 돌이킬 수 없으니까...”

“예? 무슨 소리에요? 아니에요... 그냥... 좀 우울한 것 뿐이예요. 이번엔 아저씨가 틀렸다구요.”

지연이 언성을 높였다.

“응? 그럼 다행이구...”

자신이 이유성을 사랑하는 만큼 녀석이 자신을 더 사랑해주지 않아서 생긴 마음의 병이다. 그 게 이혼을 하고 이유성을 못 보게 된다고 해서 치유되기는 힘들 것이다.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수 밖에...

커피 전문점과 오정희의 집 앞, 그리고 그녀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내가 따라붙지 못하는 시간동안 녀석과 만남이 있었을 지는 모르지만 근처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오정희는 빈틈 자체를 찾아볼 수 없는 여자였다.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며 시간을 때우거나 사우나 혹은 찜질방 같은 곳을 가는 것을 본적이 없고 스포츠센터나 골프, 볼링 등 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유성은 커녕 자신의 나이 또래 중년 남자를 만나지도 않았으며 커피 전문점에서도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종업원들과 몇 마디 나누는 것을 제외하고는 목소리 듣는 것도 힘들 정도로 말이 없었다.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는 건 혼자 있는 시간, 운전을 하거나 어딘 가로 걸어가거나 식당 같은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그녀를 가만히 살펴보면 항상 미소를 띠며 밝은 표정이었는데 그 걸 보고 난 아들이 어렸을 때 남편을 여의고 홀어머니로 살아온 여자가 뭐가 그리 즐거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그러던 사이 지연과 이유성이 법원에서 이혼 확인을 받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난 아침에 회사에서 회의가 있어서 약간 늦게 법원에 도착했는데 지연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었다.

“미안. 좀 늦었어. 일은 잘 끝나고?”

그녀는 내게 잠깐 시선을 주더니 법원 밖으로 터벅터벅 걸었고 난 뒤를 따르다 도로가로 나가 택시를 세웠다. 지연은 자신의 앞에 선 택시에 올라타면서 내게 말했다.

“오늘은 좀 혼자 있고 싶어요. 나중에 연락할게요. 그래도 되죠?”

“응? 응... 그래...”

멀어져가는 택시를 바라보다가 다시 회사로 들어가기 뭐해 오정희의 커피 전문점으로 가서 빈 시간을 때우려 했는데 평소 매장에 나오는 시간이 아닌데도 그녀가 주문을 받고 있었다.

“자주 오시네요?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받았습니다...”

요 사이 뻔질나게 드나들긴 했지만 오정희가 인사를 건넬 줄은 몰랐다.

“아. 예... 원래 커피를 좋아해서요.”

난 계산을 하고 주로 앉는 1층 자리에 앉아 바깥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정희와 이유성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다면 이 게임은 어디로 흘러갈까? 지연은 게임에서 밀려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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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다시 도착한 나는 미정이 할머니를 만나 손녀의 핸드폰을 돌려 드리고 인사를 드린 후 그 집을 나와 남해시 소재지로 향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중국집을 들어가 국밥을 주문한 후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생활정보지가 눈에 띄었고 그 때 난 수중에 현금이 떨어져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처지였던 터라 구인 광고를 흩어보기 시작했다.

경찰공무원이라는 신분이 있어서 이력서를 내야하는 일은 못한다. 대학교 때 가끔 아르바이트로 했던 잡부일이라도 찾아보려던 차에 보인 문구는 ‘자금성 배달원 급구’였다. 내가 앉아 있는 식당이 자금성이라는 중국집이었는데 이 집에서 배달원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밥을 가져온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물었다.

“여기 배달원 구하나요?”

“예... 그런데... 직접 배달을 하시려구요?”

약간 의아한 눈초리로 날 보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단발머리에 웃을 때마다 양볼에 보조개가 보이는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밝은 목소리 톤이 듣기 좋았다.

“예? 아... 맞아요. 안되나요?”

“잠깐만요. 사장님께 여쭤봐야되요.”

국밥을 먹고 있으려니 약간 무뚝뚝해 보이는 30대 후반 남자가 나타나서 오토바이를 탈 줄 아냐고 묻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에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월 80만원 숙식보장.

저녁 영업이 끝난 후 사장은 그 곳으로부터 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쪽방으로 나를 데려갔고 내 방 바로 옆방은 주방에서 일하는 중국인 부부가 쓰고 있었다. 사장이 돌아간 후 난 내 차에서 70장 쯤 되는 미정이의 사진들을 가지고 와서 벽에 한 장씩 한 장씩 붙였다.

성수형님에게 미정이가 자살한 이유를 듣고 나서 남해로 내려오면서 내가 생각한 건 일종의 성지 순례 같은 것이었다. 그 애의 죽음 뒤엔 내가 있었고 미정이를 기억해야 하는 건 내게 의무로 남았다. 그 애가 사진을 찍을 당시엔 혼자였지만 내가 그 장소에 가서 그 애를 추억한다면 하늘에서 미정이가 날 보고 마음을 달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배달은 대충 저녁 8시가 넘으면 끝이 났지만 가게 정리를 하고 끝나는 시간은 9시 반 정도여서 내가 쉬기로 한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주중에 가 볼 수 있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중국집에 출근하기 전에 미정이가 다녔던 중학교에 가서 당시 중학생이던 미정이가 운동회 때 서 있던 장소로 갔다. 사진의 배경으로 나오는 건물을 보고 찾아간 그 곳에서 서서 난 사진 속의 미정이가 바라보았을 풍경을 눈에 담았고 한참동안 그 애를 추억했다. 그 애의 목소리와 얼굴, 따뜻한 몸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 순간에 난 슬펐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왜 난 눈물을 흘리지 못할까? 미정이를 사랑하지 않아서인가? 학생들이 등교를 하기 전에 한 시간 정도 그 곳에 머물던 나는 그 곳에서 미정이의 사진을 태웠다.

그렇게 시작된 미정이의 성지 순례에는 6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토요일에는 아침 저녁으로 두 군데 정도를 갈 수 있었지만 부산에서 열린 수영대회 때 찍은 사진 속에 있는 체육관을 갈 때는 하루가 꼬박 걸렸다.

미정이가 여덟 살 무렵에 동네에 있는 개울가 다리 입구에서 찍은 사진 속의 장소는 차가 다닐 수 있는 큰 다리가 생기면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 사진 속의 미정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사진에 대해 할머니께 묻자 당시 이야기를 해주셨다.

미정이 엄마가 사기 혐의로 수배가 된 상태라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미정이에게 과자를 사주며 엄마를 혹시 본 적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여덟 살이던 미정이는 엄마를 찾던 그 경찰관이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 날 이후 놀다가 마땅히 할 일이 없으면 습관적으로 동네 어귀 개울가에서 그 경찰관을 기다리곤 했다고... 아마 경찰관에 대한 미정이의 동경은 그 시절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할머니 말씀을 듣고 개울가로 나온 나 역시 신작교 위에서 한참 동안을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며 그 애를 생각했다.

그냥 내가 볼 수 없는 먼 곳에 미정이가 잘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다방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성수 형님이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면... 오만가지 가정이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그런 생각들이 들면 들수록 돌이킬 수 없다는 자책감으로 아팠다.

성지 순례를 하는 기간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난 많은 생각을 했다. 당시 여자를 안길 원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를 만드는 건 싫어했던 이유와 미정이의 과거 속을 여행하면서 슬펐지만 눈물이 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다시 경찰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여고생 은주네 집 담을 넘은 일에 대해서도...

난 왜 은주를 강제로 가지는 것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걸 어떻게 합리화하고 그 밤에 담을 넘어 그 애의 방에 들어갔던 거지? 사이코 패스인가? 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내 안에 숨겨진 괴물이 다시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했다. 내 욕정의 희생양은 은주와 미정이로 끝나야 하니까...

중국집에서 배달은 의외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는데 사장은 날 아주 마음에 들어 해서 요리를 가르쳐 지배인으로 키우고 싶어 했고 내게 적지 않은 나이에 오토바이 배달을 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해줬으며 귀여운 보조개를 가진 마음씨 고운 사장 부인도 날 볼 때마다 뭐 불편한 게 없냐고 물었고 빨래감을 주면 자신이 집에서 세탁기를 돌려 빨아 오겠다며 배려했다.

쪽방 벽에 붙어 있던 사진들이 한 장 씩 줄어들 때마다 내가 느끼는 자책감의 크기도 그 만큼 줄어 갔고 6개월이 지난 후에 중국집 사장에게 서울에 일자리가 생겨 떠나야 겠다고 이야기 했다. 사장은 아쉬워하며 그렇게 하라고 잘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월급 외에 여비로 20만원을 더 챙겨주었고 난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미정이가 다방에서 일할 무렵 찍었던 사진들의 장소들을 돌아보기 위해 00면으로 돌아왔다.

경기도에서 미정이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이 끝난 후에도 난 경찰로 복귀하지 않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보고 입사했고 몇 달 후에 소개로 만나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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