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
강산마저 변한다는 10년이 가까운 2015년 초봄의 어느날.
부촌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의 Rancho Palos Verdes라는 1번 Pacific Cost Highway를 낀 절경의 주택가.
바닷가를 굽이굽이 돌며 동쪽으로는 Torrance라는 번화한 내륙도시를 바라보고 있고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굽이진 절벽가의 택지이다.
다른 주택 단지들처럼 대지를 절약하고 건축숫자들을 부풀리기 위해 주택들을 다닥다닥 붙이지 않았기에 각 세대들이 적절한 거리를 띄고 떨어져 있는 것도 이 지역의 매력이기도 했다.
오후 네시가 안된 시간인데, 최근 섬머타임을 한 관계로 눈부시게 강한 햇살은 꼭 한국의 정오에서 한시 정도의 햇살만큼이나 강렬하다. 썬글래스가 필수일 정도로.
그중 비교적 작은 집에 해당하지만 비쥬얼도 아름답고 실용성있어 보이는 한 아담하고 예쁜 2층집이 있다.
실내는 대략 70평쯤 되어 보이고 앞뒤를 두른 푸른 잔듸밭과 거라지까지 합치면 120평은 되어 보인다.
그곳의 넓은 세컨드룸의 구석에는 사용하지 않는 캔버스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서가에는 미술도구와 더불어 영문텍스트의 여러 교재들이 즐비하고, 방의 정가운데에는 사용중인 캔버스와 의자가 놓여 있다.
거기에 작품을 만들고 있는 10대 초반의 여학생 하나가 있다.
그 여학생의 뒤에 한 30대인지 40대인지 가늠할수 없는 이 집의 여주인인듯한 미모의 여교사가 그 화폭과 더불어 작품을 만드는 학생의 표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웨이브진 머리를 위로 묶어 올렸으며, 점쟎고 보수적인 홈드레스를 입고, 얼굴엔 가벼운 파운데이션을 발랐고 입술에는 그냥 글로씨한 투명 립글로스를 바른 형식적 메이크업 상태여서 생얼에 가깝다 하더라도 충분한 기품과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엔 어때요?”
“내 눈엔 네가 안정적으로 사물을 보게 된것 같아서 좋아. 선생님 욕심같아선 저 여백에 너의 생각이 좀더 들어갔으면 해. 혹시 넌 좀더 기분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선생님은 다 아시는군요.”
여학생은 의기양양한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엘에이 쪽에서 이사와 전학을 온 뒤, 가벼운 우울증과 소통장애를 앓던 여중생이었는데 최근 육개월간의 면밀한 그림레슨을 통해 많은 것이 좋아졌다.
이윽고 자택 레슨교사는 학생을 데리고 집밖으로 나와서 Benz-GLA SUV를 집 앞의 갓길에 대고 있는 학생 어머니를 응시하다가 학생 어머니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오자 목례를 했다.
學母는 자기 딸의 어깨에 손을 얹은채 딸의 몸을 돌려 함께 교사를 향하게 하고 인사를 하며 찬사를 보낸다.
“‘연주희’ 선생님!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지내기 시작했어요. 성적도 오르고요. 정말 감사해요”
“별 말씀을....제가 할수 있는 일이니깐 최선을 다한것 뿐이에요”
그 학생엄마는 아이를 태우고 차에 올랐다가 우연히 그 집의 잔디밭 바깥을 둘러친 울타리의 쪽문에 걸린 굵은 남자 팔뚝 모양의 문패를 보고 가벼운 놀람 속에 생각에 잠기어 있다가 차에서 내린다.
[Joon Hyung Yeon"s]
영문 문패였지만 한눈에도 "연준형"이라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미국에는 문패가 옵션이거나 혹은 각 단지에서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달기도 했고 없는 곳이 더 많다.
문패를 거는 경우는 한국처럼 딱딱한 세로형이 아니라 가로로 걸어 두는 형식이었다.
그 집에 걸린 문패는 두터운 나무 뿌리를 형상화한 모양새의 바탕에 특이한 형태의 영문자 폰트가 새겨져 있다.
“어머, 연주희 선생님,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는데 막상 오늘 요심히 선생님 댁의 문패를 보니 귀댁의 주인 존함이랑 저희 친정아버지 존함이랑 똑같네요”
무심히 지나칠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번짓수이고, 이집 여주인에게 용무가 있는 사람들에겐 문패명이나 세대주의 이름이 별로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호호.....이것도 인연인가봐요?”
그녀는 어떤 특정한 화제를 잡자 집에 돌아가지 않고 한동안 렛슨 교사를 붙잡고 수다를 떨고 싶어했다.
“샘님도 저랑 나이가 동갑인줄은 몰랐어요. 실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보다 한 다섯살 아래인줄로 알았는데, 그렇다고 제 연하로 보기엔 말씀이나 행동에 워낙 기품이 배어 있으셔서....”
“동안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잇값을 못한다고나 할까요? 제가 말이 적은 편이라 그렇게 느낄수도 있을것 같아요.”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너무 예의바르시고 교양있으시던데....”
어느덧 이들은 차에 오른 학생까지 다시 내리도록 한뒤 렛슨 교사 연주희의 집으로 들어갔고, 주희는 학생 수쟌을 주방에 남겨두고 학생 어머니에게 집 실내를 구경시켜주기 위해 응접실의 50“ TV를 EBS에 맞추어 주었다.
요즘 아이들은 TV를 안 틀어주어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혼자서도 몇시간씩 논다.
그런 것이 10년전의 풍경과 지금이 또 다른 것.
“선생님이랑 약속한거 있지? 엄마랑 선생님이 대화하는 잠시만이라도 스마트폰 보지 말고 저기 다큐먼트 채널을 봐”
“그런거 유튜브로도 되는데요?”
“눈이 나빠지지 않겠니?”
“네에.....그렇게 할께요. 선생님! 두분 이야기 잘 나누세요”
“어머, 엄마말은 그렇게 안 듣더니 선생님 말씀은 냉큼 듣네?!”
그 집은 넓이가 2600스퀘어피트 (단독72평, 아파트 약 100평)의 방 네개, 부부침실에 딸린 보너스룸 하나, 화장실 두개, 응접실 하나의 2층이었다.
차 두대가 들어가는 그라지와 더불어 앞마당과 뒷마당을 합치면 전체 면적은 4200sq라는 120평에 달하는 매우 큰 집이긴 했다.
그러나 실내면적만 5000sq~1만sq 이상을 오르내리며 방 여섯개 이상의 2, 3층 집들이 많은 그 단지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집에 속했다.
네개의 방중 11평을 차지하는 대형 세컨드룸을 주희의 작업실과 렛슨실로 사용한다.
주방과 차고쪽을 바라보는 10여평의 방은 주희의 또 다른 작업실, 세탁과 슈잉룸으로 쓰인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곳이라 그림도구의 보관에는 애로가 있지만 학생들의 정서에는 좋은 영향이 있다.
또한 서북쪽의 큰 창문으로 집 뒷뜰의 잔듸밭이 보이고, 그 잔듸밭의 한쪽 구석에는 바비큐를 굽거나 옥외 와인바처럼 사용할수 있는 돌로 만든 테이블과 더불어 정자 모양의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 다른 방은 남편인 준형의 서재겸 홈오피스로 사용되고 있었다.
PC와 팩시밀리, 사무용 데스크와 회전의자, 서가와 더불어 사각의 유리 테이블과 의자 두개가 더 있었다.
9평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넓이에 비하여 출입문은 검고 큰 양쪽여닫이문으로 되어 있고 응접실에서 제일 쉽게 눈에 뜨이는 곳을 향하고 있다.
다소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냄새가 풍기는 출입문, 한눈으로도 그 방과 출입문은 그 집안 家長의 권위를 상징하는것 같았으며, 충분히 예우받고 있는 세대주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2층의 Master Bedroom(부부침실)을 열었을때 학생 엄마는 탄성을 울리는듯 했다.
주부용 메이크업룸과 드레싱룸이 부속으로 딸려 있고 공주의 욕실을 방불케하는 목욕탕의 샤워부쓰에는 샤워꼭지 두개가 서로 마주 보며 달려 있었다.
부부침실과 연결된 부부전용 living room이라는 부속실, 더불어 이것들만 18평이란 크기에 놀란것은 아니었다.
그 학생네는 사실 더 큰 2층의 방 다섯개와 화장실 세개, 리빙룸 세개짜리 주택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모던하고 심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아늑한 침실분위기 등은 여성잡지에 소개되는 수준으로 잘 꾸며져 있었기에 놀란 것이다.
부부가 단둘이 살기엔 큰듯해도 휑하고 썰렁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이집 주부의 렛슨부업의 장소로도 활용하며, 충분히 모든 기능의 공간활용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독재자와 후궁의 비밀 아방궁같으면서도, 평범한 부부의 부담없는 쉼터의 역할, 그러면서도 적절한 로맨스가 느껴질만한 인테리어는 보는 여성들로 하여금 환호를 하게 한다.
침실 한면을 장식하고 있는 대형 결혼사진을 학생엄마는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쭉 걸어둔 이들 부부가 중간중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며 싱긋 얼굴을 붉히며 부러워하였다.
꽤나 야한 장면, 혹은 이 집의 여주인의 노출이 심한채 찍은 사진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잠시 스쳐보듯 한것도 있지만 10년이 더 된 사진들도 있다.
주희가 전 남편 대니와 결혼생활을 하던 시절 준형과 솔뱅이랑 바닷가에 올라가서 온갖 야한 포즈를 취한 사진들도 몇개가 걸려 있었다.
즉, 이들 부부의 불륜시절의 사진과 그들이 정식으로 결혼하고 난 뒤의 사진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다시 주방으로 나왔고 주희는 차를 끓여 둘이 함께 찻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혼을 언제 하신건지 짐작할수가 없네요? 왜냐면 그때나 지금이나 연선생님 나이가 변한것 같지가 않고 웨딩사진 속의 선생님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다우시니깐요. 글구 침대 위의 웨딩사진은 선생님이 상당히 말라 보이는데, 침실거실쪽의 웨딩사진은 좀 살이 붙어 있어 보이시고요. 정말 저 사진 몇년전거죠?”
“한 사진은 10년 되었구요, 한국서 결혼할때 여러 일이 많았어요. 살이 붙은건 8년전에 미국서 다시 결혼식을 올린거구요.”
“아, 결혼 늦게 하셨구나. 33~34살에 하셨다면. 결혼은 연선생님처럼 좀 나이들고 철들어서 하는게 더 좋은것 같기도 해요. 전 16년전에 27살이니깐 뭘 모를때였죠. 아이 키우고 뭐 그렇게 산다고 위로하니깐요.”
주희는 여기에 대해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실은 주희는 대학을 졸업한 2년뒤인 25살에 결혼했었으니 그 학생 엄마보다 일찍한 셈이다.
그 학생엄마는 결혼한지 16년차라 밝혔지만, 주희는 첫남편 대니의 8년, 그리고 지금 남편 연준형과는 9년 6개월 차이니 18년차가 되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굳이 사실대로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주희는 준형과 결혼하고 Java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완전히 떠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3년 과정으로 중등미술교육과 더불어 Art-Theraphy(미술치료)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곳에 둥지를 틀며 그림렛슨을 할때 약간의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혹은 성적이 심하게 나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별하여 받아 가르쳤다.
주희에 대하여 학부모들 사이에 좋은 소문이 나서 그녀에게 욕심을 가지고 그림렛슨을 맡기고자 하는 엄마들, 혹은 딸을 미대에 보내길 희망하는 엄마들이 노크했지만 주희는 절대로 일주일에 네명 이상의 학생을 맡으려 하질 않았고 실기성적을 올리고자 하는 학생이나 미대진학을 염두에 둔 렛슨은 처음부터 거부했다.
반드시 학생과 어머니 면담을 통해 뭔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거나 우울증, 자폐증 증세가 있는 학생만을 받아서 가르쳤다.
주희가 아주 적은 숫자만 가르친 이유는 두가지였다.
학생들 하나하나의 상황과 발전, 정체과정을 제대로 파악할수 없다는 것과 또 하나는 마지막으로 주희는 자기의 정체성을 ‘전업주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두고 있는 생활의 최우선 순위는 남편 준형에 대한 내조와 두 사람의 관계였다.
고심 끝에 이 집을 고른 것은 미술 렛슨생을 받을 조건이 되면서도 집이 쓸데없이 넓지 않다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주희가 자기의 능력으로 가구배치와 인테리어를 적용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령 이 집의 응접실을 사이에 두고 준형의 서재와 주희의 작업실겸 렛슨실은 서로 반대편에서 마주보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 북향은 뒷마당을 향하여 주방이 연결되어 있고 주방 옆으로는 차고로 통하는 문과 작은 광이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부부가 집안에서 각자의 직업에 열중하더라도 문만 열면 서로가 뭘하는지 보이게 되어 있고, 응접실 자체가 아주 크진 않아서 작은 소리도 들리게 되어 있다.
Master Bedroom(부부침실)은 동쪽 방면에 있지만 현관이나 응접실에선 보이지 않고 단지 그곳으로 통하는 작은 복도가 보인다.
하지만 그 복도로 들어가 큰 문을 열면 또 다른 아기자기한 부부전용 거실이 나오고 그 거실은 침실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집 속의 집이라 할수 있는 부부 거실엔 응접실에 형식적으로 놓아둔 50인치와 동일한 모델의 LED-Cuvred TV가 설치되어 있고, 작은 냉장고와 간이 수도시설이 되어 있었다.
커플 쇼파와 작고 동그란 유리테이블도 빼놓을수 없다.
따라서 주말에 쉬거나 할때 밥먹으러 주방으로 나오기전까지는 굳이 두 사람이 그곳을 이탈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8년전 집을 보러 다닐때 주희의 눈에 들었던 그 집을 준형에게 설명할때 그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거의 매료된 상태로 따라주었었다.
준형, 주희 부부에게 인수된 이 집은 주희의 연금술에 의하여 부부 두 사람이 충분한 공간을 활용하고 단란한 가정의 화합을 방해하지 않는 그런 집으로 변해 버렸다.
이곳은 산 꼭대기를 넘어서면 태평양 바다가 보이고, 한 반대편에는 Torrance 시내가 보이는 이곳은 상당히 한적한 해변도시이면서도 전원도시이다.
우울증 걸리기 쉽다며 바다가 보이는 쪽을 피하고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방향의 주택을 선택한 것은 준형의 아이디어였다.
이곳으로 온뒤 주희의 바깥 생활은 목요일과 금요일 오전에 인근 사립중학교의 지도를 나가고, 일주일에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는 미술렛슨생을 받았다.
그것 말고는 거의 집에서 살림과 인테리어에 전념하였다.
일이 없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넓은 집의 정리와 더불어 세탁물 정리를 마친후 그림에 손을 대는것 정도였다.
특히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전혀 집대문 밖으로 나가질 않았고, 마트도 주말에 남편 준형과 함께 갔다.
그녀 스스로가 원해왔던 생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수다떨만한 또래의 여성이 그립기도 한 모양이다.
“선생님, 해변가로 부부동반해서 외출 자주 나오시죠?”
“아침엔 뛰고 걷고 저녁땐 그냥 천천히 걸어요. 요즘은 날씨가 차서 못나가고 있지만요”
그런데 주희는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
그렇다고 학생 엄마가 그녀를 떠보거나 유도심문하듯 물어본건 아니었다.
“저희 애들이 그러더군요. 미니원피스를 입으셨던데다 히프선까지 다 보이더래요. 화장도 너무 진하셔서 못 알아봤다고 해요.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해주시길 바라지만, 애들한테 야단쳤어요. 그런 말은 전하는거 아니고, 부부가 같이 그런 데이트하는건 아름다운거라고. 그러니깐 우리 딸아이 하는 말이, 왜 엄마는 아빠랑 그렇게 데이트 안하냐고 묻더군요. 어이가 없으면서도 부러웠어요. 글다가 작년 가을 저녁나절에 남편하고 나왔다가 선생님을 뵈었어요. 같은 여자가 보아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섹시하시더군요. 두분의 모습도 그림같이 어울리고.....”
이들이 바닷가 근방으로 보금자리를 튼 것도 사실은 그런 이유가 컸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때 했던 그 데이트를 결혼 후에도 이어가자는 약속.
주희는 준형이 원했던 그대로 미니원피스 속에 팬티도 입지 않고 예쁜 샌달을 신고 진한 화장을 하고 그와 같이 집근처의 해변가를 거닐다가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한다.
처음에는 웬지 동네 주민들, 한국인들도 드문드문 있고, 학부모를 볼수도 있고 해서 긴 모자와 선글래스를 착용했지만 이내 그것도 귀챦아진데다가, 그들의 관계가 결코 숨겨야할 것이거나 부끄러운 관계가 아니라는 자각에 모자와 선글래스를 벗어버린 터였다.
"주인께서 무척 자상하시고 배려감이 많으신가봐요"
"호호....제 입으로는 그렇지만 책임감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그 정도면 연선생님 연일 행복하시겠다. 그렇죠? 다정함에 자상함에 책임감에 또 경제적 능력이면 家長으로서는 120점일테니깐요."
"근데 가장으로서는 엄하세요. 제가 푼수짓을 많이 해서 그 사람한테 심하게 야단맞을 때도 자주 있어요"
"어머, 안 그래 보이는데요? 연선생님은 엄마들 사이에서도 현숙한 부인으로도 칭찬이 자자하신데!"
주희는 거기에 대해 굳이 대답은 않고 알수 없는 미소로 싱긋 웃어 보이기만 했다.
어느덧 다섯시가 되어 그 학생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 가야한다.
주희는 그들의 차가 굽이굽이 산길 골목을 돌아 나가는걸 한참을 지켜보다가 “Joon Hyung Yeon"이라는 문패가 걸린 집으로 편안하고 익숙한 동작으로 걸어들어갔다.
living room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집의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집전화를 없애는 사람들도 있고 사용용도를 많이 잃어 버렸던 터였다.
주희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사무적인 응대멘트를 했다.
“Hello, It"s Mr. Joonhyung Yeon"s Home (네, 연준형씨 댁입니다)"
“Oh, Juhee? Judy? Can you hear me? It"s Danny! Daniel Cho! (오, 주희? 주디? 너 내 목소리 기억하니? 나 대니야, 다니앨조)”
주희는 깜짝 놀랐고, 동시에 온갖 통한이 섞여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가슴을 삭여야 했다.
잠시간 말없이 가슴을 진정시키고 난뒤 주희는 또박또박 그에게 가르치듯 대답한다.
“조선생님!.........전 전화받으면서 제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고 이 집 세대주의 이름을 댔어요. 누구한테라도 집전화를 받으면 그렇게 말해요. 조선생님은 이럴땐 "전 Mr.Cho입니다. 연준형씨의 부인과 통화할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물었어야죠, 다짜고짜 외간남자가 가정주부의 이름을 찾으면 둘다 입장이 난처하죠”
“알았어. I had a mistake, sorry about that........"
“근데 어떻게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았죠?”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나 엘에이에 출장와 있어. 떠나기 전에 한번 너를 보고 싶었어”
“글쎄요......그것도 중요한것 같지는 않은데요. 뭐 끝나지 않은게 남아 있나요?”
“I hope you don‘t border me.(경계하지 말아줘) 나 5년전에 재혼했어. 내가 너를 injure(해코지)할 일이 없어. 한시간이면 될거야. 이번 주말 안되니? 아니면 다음주라도?”
“목요일이랑 금요일은 인근 중학교에 수업이 있어요. 평일날에는 집에서 렛슨생을 받아요”
“그럼 그 중에서 잠깐 interval time이라도 없니?”
대니는 약간의 짜증섞인 목소리, 앳기가 섞인 목소리로 주희를 푸쉬했다.
그와 결혼생활을 할때 가끔 들었던, 철없이 화내던 그 목소리, 주희가 기억을 못할리가 없다.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대니의 말투는 톤이 굵어졌고 그의 불평은 단발성으로 끝난다.
“유부녀가 외간남자를 만나는 일이니 남편의 양해와 허락이 필요해요. 그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난 나갈수 없어요.”
“푸우........그럼 approve받으면 될거아냐? You are still picky!(여전히 까다롭구나)”
원래 양해를 구하는 단어는 consent나 excuse였는데 업무상의 결재를 뜻하는 approve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대니와 결혼생활을 할 적에 대니는 주희의 그런 면에 대해서 답답하게 느끼기도 했을 것이고, 주희가 혼외정사 끝에 남편에게 먼저 이혼을 청구한 유책배우자임에도 너무 빡빡하게 나가는 것에 대한 은근한 비꼬는 단어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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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2
미국 엘에이에서 30킬로 남서쪽으로 떨어진 Torrance라는 중견도시.
참 지랄맞게도 시간이 정지한것처럼 지겨운 찬란한 햇살의 평일 오전.
커피숍이라 하면 어지간하면 스타벅스, 커피빈, 피츠커피등이 대도시던 중소도시를 도배한다.
최근엔 한국의 톰앤톰같은 커피숍들도 진출해서 틈새를 비집는다.
하지만 진짜 커피맛을 아는 애호가들은 중소브랜드나 개인이 직접 하는 커피숍을 찾는다.
그런 곳에서는 대량생산된 커피가 아닌 장인정신과 정성으로 볶아내는 커피의 향과 맛이 가슴과 폐까지 그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개인 커피 하우스가 들어선 미니 쇼핑몰의 작은 주차장, 차 10여대 정도가 간신히 들어갈만한 공간밖에 없는 협소한 곳.
그나마도 정오가 채 안된 시각이라 주차장도, 커피숍도 사람들이 한산하다.
미색 Lexus CT200H (토요다 프리우스를 고급화한 렉서스의 준중형 하이브리드로 동일한 파워트레인과 플랫폼 공유)이 거의 소음없이 정확하게 주차했다.
차 문이 열리며 흰 여성용 와이셔츠를 상의로 입고, 아래는 무릎에 못 미치는 검고 짧은 정장스커트, 그리고 투피스 셋트인 듯한 검은 여성용 자켓을 걸치고 검은 구두를 신고 금색 로고가 번쩍이는 MK백을 든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 내렸다.
165가 다 되어 보이는 늘씬한 키에, 거들을 차고 있는 흔적이 없지만 단단하면서도 미끈하게 빠진 엉덩이는 보수적 스타일의 정장치마가 결코 왜곡시킬수 없어 보인다.
하드 브래지어에 의해 커버되는 듯한 유방일지라도 단단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종아리, 허벅지의 선과 볼륨은 뚜렷했고 허리에는 군살끼가 보이지 않는다.
옅은 화장, 적당히 웨이브진 듯한 머리카락을 귓볼로 살짝 또아리를 내리되 그리 길지 않은 뒷머리카락을 뒷통수 위까지 올렸다.
그런 헤어스타일은 보수적인 주부임을 확실히 알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화려함이 떨어지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그녀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 보인다.
뛰어난 미모뿐 아니라 중후한 기품까지 은은히 풍겨나오는 그녀는 캐리어우먼같기도 하다.
아직 군살이 보여지지 않고 여기저기 나올곳 나오고 들어갈곳 들어간 몸매로 보아 미출산 주부같아 보이지만, 선천적인 것이나 환경적인것 이외에 자기관리에 철저한 여성으로도 보인다.
그녀가 커피숍에 들어서자 통이 큰 정장 바지에 캐주얼한 남방을 한 사내, 키가 크고 살이 많은 40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손짓을 한다.
그 여자의 표정은 언뜻 냉정했지만 잠시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주희, 정말 오랫만이다. 나 엘에이 출장중인데 주희 일정에 맞추려다 보니 오버좀 했다. 목요일이랑 금요일은 학교에 나가고 regular day noon time은 lesson students 받는다니 바쁘게 지내는구나. 프로페셔널 하우스와이프인줄 알았는데?”
"맞아요, 전업주부에요.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깐요. 중학교 미술수업은 일주일에 딱 두번이고, 레슨생이라야 두명이니깐. 내 직업이 이거다하고 남들한테 내세울만한건 아니에요. 남들이 물어보면 그냥 살림하면서 부업을 좀 하고 있다고 말해요.”
그 남자는 주희를 감회에 서린듯 바라본다.
증오감같은 것도 남아 있을듯 했는데 별로 없어 보인다.
그리고 오랫만에 발견한, 잊고 있었거나 신경쓰지 않았던 주희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잠깐 매료되는 듯 했다.
“주희가 42살인거 진짜 맞어? maximum middle of thirty age로 보이는데?! 여전히 예뻐.”
“hh...You flattering me! 남의 유부녀한테 수작거는거 아냐? 조금 있다가 빨래도 해야하고 레슨생 받아야되거든요? 오늘 Danny씨랑 만나는것도 남편한테 허락받고 나온거 기억해주었으면 해요.”
“Oh, Really?! You"re great!, you"re a too conservative(보수주의자)! 뭐 내가 chitting (놀아남, 바람)이나 하자고 만나는거 아니잖아.”
“가정있는 유부녀니깐 매사 선이 있고 절제가 있어야 해요. conservative니 liberalist니하는거랑은 상관없어요. 그런 싸이드의 리버럴리스트라면 아예 결혼을 안하는게 맞겠지요.”
이쯤되면 Danny 입에서 “그런 네가 왜 우리집 유부녀 시절엔 외간남자랑 데이트하다가 선을 넘어섰니?”라는 말이 나와야 맞지만 Danny는 어색한 웃음만을 지을 뿐이다.
주희가 느낀 10년 전에 헤어지고 못본 Danny의 분위기는 그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냥 세월과 나이가 주는 변화와는 좀 다른 것이었다.
“Judy, Are you still detest me? (아직도 날 증오하니?)”
“..........Danny씨,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이야”
순간 이들 사이엔 묘한 침묵이 흐른다.
대니는 주희에게 뭔가의 답변을 기대했지만 주희의 똑같은 반문에 잠시 당황하는듯 했다.
그리고 작심한듯 자기가 먼저 진술을 시작한다.
“내가 널 detest했던건 사실이야. 집에 샷건까지 만지작거렸으니깐. sue(소송)해서 망신주고 둘다 혼내려고 했었어. 근데 lawyer가 나더러 증거는 좋은데, 혹시 때린적 있냐고 그러더군. 그랬다고 하더니 무조건 잡아떼래. 때렸다고 하면 내가 불리해진다고. 그런 거짓말도 할라면 할수 있었는데, Oh! Fucking! 3 hours 대화했는데 $330이 청구된거야. 어떤 process도 들어가지도 않은 condition에서”
주희는 그때의 상황을 회고해 보았다.
대니가 결국 이혼을 수락해 주었지만 거기서 끝난게 아니라 대니는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당시 별로 내놓을게 없던 준형의 월급이 차압되거나 하는 사태에 이르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막막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준형이 자기에게 화를 내거나 화풀이를 하거나, 혹은 자기를 원망하게 될수도 있다고 순간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100% 준형을 믿지 못한 자기 자신을 그 상황에서 발견하고는 불안에 휩쌓이기도 했다.
주희가 대니의 집을 나와 준형의 집으로 들어갔고 유산후 몸조리가 끝나지 않은 2주차에 법원에서 노티스를 받은 것이 생각났다.
때마침 한국의 친정어머니가 계속해서 주희에게 소환령을 내리고 있었고, 준형은 자기가 뒤집어 쓸테니 일단 한국에 가 있으면서 어머니 허락도 받으라 해서 주희가 한국에 갔던 것이다.
도피라면 도피였지만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주희는 친정어머니에게 발목이 잡히고 감금까지 당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대니가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네 말을 듣지 않은 result가 나온거야. 내겐 당장의 sue를 진행할만한 fund가 없었던거야. 그래서 그냥 first time 겁이나 주고 빠진거지. 대신 그때 부동산 경기가 좋을때라 손해보지 않구 집팔았고 뉴욕으로 일하는데를 옮겼어. 다 잊고 싶어서”
사람은 참 늦은 후에 후회를 하는 경향이 있다.
주희의 말을 잘 들었더라면 최소한 소송을 진행할 돈은 모아 놨을 것이다?
아니, 주희와 파경에 이를만한 상황이 터지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니씨, 솔직히 말하면 그때 우울증까지 걸렸고. 어차피 나는 빈몸으로 쫓겨나는게 당연하지만 이후에 있을 일들을 생각만 하기도 무서웠어. 그걸로 내가 벌받은 셈치면 안될까?”
주희의 공포의 대상은 소송이 아니라 그로 인한 준형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주희는 그 공포의 대상이 무엇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대니는 쓴 웃음을 짓고 블랙커피를 입에서 내려 놓았다.
“겉으론 cool guy처럼 열심히 내 hobby에 빠져들고 workholic처럼 일에 빠져 지내보기도 하고.......하지만 집에 들어가보았자 cold한 바람밖에 없다는걸 느끼니깐 갑자기 후회스럽기도 했지. 그때서야 난 marrage life라던지 가정이라는게 그런거구나라는걸 조금 느꼈어. 그러다가 벌써 9년 넘었구나? Sub-Prime Bankrupsy사건? 그때 난 unempolyment(실직자)가 되었어”
주희도, 준형도 한국의 IMF세대였다.
준형은 IMF가 터진 이듬해인 98년도에 유학을 왔고, 주희는 그전인 97년도 초에 유학을 왔다가 1년 만에 금융위기때 사업을 망친 홧병으로 아버지를 잃어야 했다.
한국에 IMF사태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서브프라임과 리만브라더스 도산사태가 있다.
미국의 2006년과 2007년을 양해간 강타한 서브프라임과 리만사태는 잘 나가는 증권맨들을 일시에 길거리로 몰아낸 엽기적 사건이었고, 그 파급효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수많은 일자리들마저 실종시켰었다.
그때 대니도 그런 대상자들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한국의 IMF를 말할때, 대니씨는 늘 그랬지. 한국은 국가가 모든걸 개입하는 후진적 구조때문에 안된다고. South Korea는 아직 멀었고, 자본가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내게 늘 말했어. 나는 그런 경제적인거 잘 몰라. 그 때문에 내 학업뿐 아니라 아빠까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도 못간 불효녀가 되고 말았어. 솔직히 대니씨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섭섭했어. 근데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터지고 10년이 가까와도 길거리를 나가도 예전같지가 않아. 번창하다가 망한 가게들, 지금도 비어있는 곳이 많아. 근데 나중 어떻게 된거야, 대니씨는?”
“HR만 대행해주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게 뭔지 아니? 한국말로 말하면 구조조정전문가라는거야. 쉽게 말해 lay-off(정리해고)를 많이 해야하는데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고, 그렇다고 내부사람이면 못믿는다 생각해서 outsouring으로 조언을 받는거지. 내가 전국으로 다니면서 정리할 사람 명단 analysis해서 해고할 인원과 대상자들을 정해주고 떠나는거야. 그대로 할지 안할지는 CEO맘이고”
대니는 하필 그런 저승사자같은 직업에 재취업된 것이다.
계속해서 그의 말은 이어졌다.
“근데 내가 짤리던 그 순간을 생각해보니깐 어느 순간 하기가 싫은거야. 그러면서도 매사에 Restructuring(구조조정) 이라는 단어만 생각하다보니깐 우습게도.......어느 순간 내가 구조조정 당한 husband(남편)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먹고 살아야 하니깐 한동안 하기는 했어. finally, 증권쪽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연봉은 예전보다 절반도 안되고 인센티브도 많이 줄었어”
Danny에겐 수많은 변화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가 술회하는 말에는 일체의 덧붙임도 뺌도 없어 보였다.
주희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처지를 안타까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화제를 돌려본다.
“재혼한 여자는 어떤 여자야? 예뻐?”
“후후....몸이랑 얼굴은 주희보다 못해. 어려서 미국에 온 Korean-American이고 Banker(은행원)이야. 81년생이니깐 나보다 7살 아래야.”
“후훗. 역시 뭐니뭐니 해도 여자는 젊고 볼일이고 남자의 아이를 낳아주고 볼일야. 그러니 나보다 못하다는 말 그말 취소해. 와이프 알면 정말 상처받겠다. 근데 애는?”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대니는 갑자기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띄기 시작했다.
대니는 사실 천진한 면이 있었고, 이 상황에서 그의 천진함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웬지 뽐내면서도 뿌듯해하는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애잔함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하나의 얼굴에 담아냈다.
“세살배기 딸쌍동이야. 흐흐흐.... 고뇬들 눈을 들여다보면 아아.....세상에서 내가 제일 위대한 일을 해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고 가슴이 벅차. 처음 아이들을 보았을때 뿌듯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뇬들이 어떡하면 이런 험한 세상 살아갈까 하는 걱정도 미리 들고, 아침에 출근할때 웃음이 나오면서도 눈물이 날때도 있어”
“.........다행이다. 대니는 원래 아이를 원치 않았쟎아? 결국 남자란 그런 본능은 숨길수 없나봐?”
“내가 이렇게 딸바보일줄은 몰랐어. 내 인생 그 아이들 교육시키고 뒷바라지하는데 걸게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너무나도 natural한거야. 승마클럽에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어. 지금 둘다 취미생활 안다닌지도 오래야. 근데 내가 딸바보가 되기 전에 가정과 배우자의 소중함을 알아야 했던거지. 주희한테 많이 미안하고, 또 고마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네가 고통받게 했던거에 미안하고...”
(아놔! 내가 뭐라고 했어? 나는 아이 원치 않는다 했어, 너도 그렇쟎아? 알아서 해결해!)
오래전 주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의 아이를 임신한 주희에게 퍼붓던 핀잔을 겸한 임신중절수술 요구를 하던 그때, 기억하고 싶지 않던 그때를 떠올려 본다.
새로운 인생을 찾은 대니를 기뻐해주면서도 그때의 그런 기억에 잠시 불쾌감이 스친다.
만약 그때 아이를 낳아 키웠다면?
“아이들, 잘 키워. 소중하게 얻은 천사들이쟎아? 글구 보니깐 대니씨, 쌍동이딸 자랑할라고 만나자고 했구나?”
“뭐, 그런 생각도 있긴 했지. 앗참, 주희도 아이있겠지? 그럭하고 10년이 다 되어가니 말이야. 몇살이야? 아들? 딸?”
그런 말을 듣는 주희의 입가에는 여전히 예쁜 미소가 감돈다.
첫 남편 대니를 만나 미소를 짓게 될줄은 미쳐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대니가 자기를 실망시키고 무책임했고 힘들게 한건 사실이지만, 부부 사이의 가장 큰 죄인 혼외정사를 한건 주희 자신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주희는 마음 어느 한켠에는 그것에 대한 죄책감과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있냐는 대니의 기대에 가득차고 천진한 질문에 주희는 순간 복합적인 생각에 빠졌다가 눈을 반쯤 감고 여전히 미세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을 그대로 둔채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Oh no....! sorry to that”
"괜챦아....."
이쯤해서 주희는 감회가 좀 복잡해졌다.
주희를 여러번 낙태시키고, 유산 속에서도 무심했던 그 남자에게 듣는 그런 딸자랑과 그녀에게 이후 아이를 낳지 않았느냐는 기대섞인 질문은 묘한 생각을 갖게 했다.
어느덧 커피숍을 나오니 시간은 정오를 지나가고 있다.
대니는 점심을 사겠다고 했으나 주희는 집안일이 많이 밀려 있고 곧 레슨생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며 끝내 거절했다.
이들이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는데 두 사람의 발걸음의 보조는 일치했다.
한낮의 햇살은 따사롭고 아름답다. 한국의 그것보다는 몇배로.
주희의 차와는 반대 방향에 투박한 쉐볼레 임팔라가 서 있었다.
멋대가리 하나 없고 연비도 안 좋고, 그냥 쿳션만 물침대같은 전형적인 미국차다.
“대니씨, 취향 바뀌었네? 멋도 없고 크기만 한 차로? 역시 남자는 애아빠가 되고 보아야할 일인가봐.”
“렌트카야. 뉴욕에 와이프건 토요다 미니밴, 내건 스바루 아웃백”
“의외네.....그냥 길거리에 깔려 있는 재미없다는 차들이쟎아??”
대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희.....미안했어. 고맙게 생각해, 그전부터 오래전부터 말이지......”
주희는 자칫했으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그전부터 고마왔다는 것은 도대체 언제적부터 무엇이 고마왔다는 의미일까.
준형이라는 다른 남자를 만나 혼외정사를 즐긴것을 말하는건 아닐 것이다.
그로 인한 혼외임신이나 이혼요구를 고마와 한다는 것도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녀가 가슴의 피를 토하듯 했던 애원들일 것이다.
가정에 충실해라.
가정이 소중하다.
지금의 부가 평생 간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제발 save하자.
취미는 모든게 남아 돌때 즐기자.
제발 하나밖에 없는 아내를 소중히 여겨달라.
가장의 책임을 염두에 두고 지냈으면 한다.
주로 이런 말들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런 말을 했던 그때의 그 아내는 결국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잠시나마 그의 아이를 가졌었고, 뱃 속의 아이는 사그라들었지만 그에게로 가는 것을 막을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던 그 사내는 다른 여자에게 주희가 늘 조언하고 부탁하고 애원하던 그런 것들을 실천하고 있으니, 인생은 역설인가보다.
그땐 별로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를 얻고 대니는 체험해보지 못한 기쁨과 보람, 그리고 의무감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주희는 어색하게나마 그의 손을 잡아주었고, 두 ex-couple 사이엔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흐른다.
“나도 고마와요......그리고 미,미안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대니씨 행복한 모습보니깐 나도 좋아”
대니의 억센 손이 주희의 허리를 낚아챘고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의 주희의 입술은 대니의 입술에 점령당했다.
주희는 순간 놀라 남은 한손을 치켜 올렸지만 이내 힘없이 내려갔다.
그리고 대니의 두 손은 공손하게 주희의 턱과 뒷목을 붙잡는다.
쪽! 쪽! 쪽.....쪼쪽! 쪼옥!
대니의 입술에서 오는 크고 두툼한 촉감은 주희에겐 잊어버린 익숙함의 기억이다.
(안, 안돼....모, 몰라)
주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감기며 목이 뒤로 조금 재껴진다.
대니는 주희의 허리를 슬쩍 앞으로 끌어당겼다.
조금 탄탄하면서도 물컹한 부드럽고 작은 풍선같은 촉각이 그의 아랫가슴에 전해져 왔다.
대니는 주희가 하드브래지어가 아닌 소프트 브래지어를 착용했음에도, 마치 하드브래지어 차림처럼 보이고 있음에 놀랐고,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주희에게서만 느낄수 있는 유방의 감촉에 반가왔다.
쪼옥....읍후!
대낮의 공공장소에서 두 ex-couple의 강렬한 키스는 계속되었다.
대니는 본능적으로 왼손을 내려 주희의 등아래를 살짝 간지럽히며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를 거쳐 가운뎃편의 팬티라인을 손으로 부드럽게 긋는다.
주희는 역시 거들을 차지 않았음에도 히프가 탄력있게 살아 있었다.
그녀의 팬티라인을 느끼자 대니는 숫컷의 본능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손으로 익숙하게 주희의 허리를 살짝 받치고 다른 손을 올려 주희의 정장 자켓으로 손을 넣어 여성용 와이셔츠와 소프트 브래지어에 가려진 주희의 젖을 살짝 만진다.
턱!
주희는 대니의 가슴의 압력에 밀려나 그녀의 차의 본넷에 히프가 엉거주춤 걸쳐졌고 재빨리 대니의 손은 그녀의 짧은 치맛속으로 침투한다.
거절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입속으로 대니의 혀가 들어와 있었고, 대니는 그녀의 안허벅지를 쓰다듬으며 팬티라인을 족집게처럼 잡아낸뒤 다시 손가락을 그 속으로 침투시킨다.
(읍우우우우)
주희는 속으로 신음을 낸다.
그녀의 예민한 곳, 엉덩이 갈라진 부위로 그 대니란 전남편 녀석의 크고 육중한 손가락이 넘나들고 있고, 항문 괄약근의 호흡이 가빠졌기 때문이다.
그의 손가락은 그러나 주희의 항문 따위는 관심이 없는듯 아래로 더 내려와 주희의 밑보지 외음부를 살짝 건든다.
잠시 아주 잠시나마 무너졌던 주희지만 과거의 오래된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주희는 즐기고 싶지 않았다.
주희는 몸을 흔들었고 자연스레 서로의 입술부터 시작하여 서로의 몸은 떨어졌다.
"헉헉!.....아아, 그만해! 이러지마! 우린 부부가 아니쟎아. 이런 열정과 로맨스는 당신 애들 엄마한테나 발휘해"
"Ohooo! 나도 모르게 그만"
"대니씨.....난, 난.......미안해. 하지만 불륜은 한번으로 족해."
실은 대니가 그냥 놓아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성을 찾은 주희는 대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니씨....방금 이건 그냥 못다한 인사 정도로 받아준거야. 행복해 하면서도 늘 마음 한켠이 찝찝했으니깐.”
주희는 한 손으로 잠시 살짝 흐트러진듯한 머리결을 다듬고, 또 다른 손으로는 자캣과 와이셔츠를 정돈하고 히프를 만지면서 약간 끌어내려진 팬티끈을 바깥에서 잡아 올리면서 진지하게 대니의 행동을 나무랬다.
하지만 그에 대한 혐오감이나 증오감, 거부감은 남아 있지 않았다.
대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희의 어깨를 툭친뒤 한손으로 주희에게 그녀의 차에 탈 것을 권한다.
마침 주희는 어떻게 대니가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궁금했다.
“말해줘, 어떻게 우리집 전화를 알았지?”
“그게 뭐 어렵다구. 네 지금 남편의 full name을 화이트페이지 웹에 들어가서 찍었더니 그냥 일착으로 나오던데. 팔로스버디스에 산다 하니, 아 성공했구나, 편안하게 살고 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아래에 네 이름도 나오던데 뭘.”
“참 안되는게 없는 세상이네? 우리 남편 풀네임을 어떻게 알어? 그것도 영어 스펠로?”
거기까지 말하고 주희는 갑자기 말문을 닫았다.
주희는 외도를 들켰던 직후에 침대에 패대기쳐대고 카펫바닥에 쓰러져 딩굴고 온통 뺨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맞았었다.
사실 준형에게 보낸 이메일은 그 모든 상황을 다 적진 못했다.
주희는 강제로 땅에 엎어지고 무릎이 벌려진 상태에서 대니의 억센 손가락이 그녀의 항문을 마구 쑤셔댔고, 질에서 흘러나와 허벅지를 적시고 항문 주름까지 흘러 들어간 준형의 정액이 그의 손에 묻어났고, 대니는 그의 손가락을 주희의 눈과 코에 갖다 대면서 자백을 강요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주희는 절대로 준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맞다가 죽으면 죽겠다고 결심했었다.
대니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한참전부터 주희의 외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대니의 입장에서 볼때 주희는 남편에게 갑자기 오버스러운 사랑표현을 하거나 너무 신경을 쓰거나, 혹은 무신경하거나, 냉정하거나 그런 행각들이 부조화스럽게 일어났던 것이 의심을 산 것이다.
게다가 부부관계를 할때도 그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희의 피부는 더 탱탱해졌고 성숙해졌고 윤기가 흐르며 얼굴이 진분홍으로 달아 오른 외적 변화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니는 주택단지 측의 협조를 얻어 그 집에 드나들던 차량들에 대한 차적조회를 하다가 준형의 이름 영어 스펠링까지 알게 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주희.....행복해, 부디......”
“대니씨도, 행복하고.....앞으로 나한테 연락하거나 하진 마. 대니씨가 행복한거 확인했으면 됐어. 와이프 외롭게나 하지 말고, 지금처럼 쭉가.”
소리없는 하이브리드 전기 엔진이 작동되며 지랄맞게 찬연한 햇살 사이를 뚫고 주희의 자동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묘한 해방감과 서운함이 함께 하긴 한다.
그녀 스스로가 배반녀이자 불륜녀라는 타이틀에 고민하던 것을 완전히 벗을수 있었던 것은 전 남편 대니와의 만남과 그의 근황에 대한 고백을 듣고 나서다.
하지만, 대니와의 첫 결혼에서 대니의 철없음이 주희를 행복으로 이끌었고, 대니도 더 나은 행복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복잡다단하기는 하다.
아마도 둘이 행복했더라면, 최소 마이너스적 결혼생활이 아니었다면, 대니가 최소한의 책임감을 보이고 사는 남편이었다면, 보수적이고 정숙한 주희는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주희가 느끼고 있는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감과 사랑, 이후 찾은 다른 짝과 느끼고 있는 대니의 행복은 공유할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희는 결론내린다.
역시 결혼생활중 준형을 만난 것을 필연일수밖에 없고, 대니에게도 더 나은 행복을 위한 필연일수밖에 없었노라고.
(오늘 전남편 대니한테 입술 허용한거 준형씨한테 이야기할까?)
미국식 인사로 가벼운 입술맞춤은 허용이 되는 터였지만, 아무래도 정서상 한국인들에게는 용인되는 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아까 주차장에서 대니와의 키스는 가벼운 입맞춤이 아닌, 농도가 짙은 키스씬이었고 잠시나마 그의 손에 히프와 젖을 맡긴건 사실이었다.
주희는 거즈를 꺼내 커피잔과 대니에게 빼앗긴 립글로스를 지웠다.
(아아......)
뜨거워진 가죽쇼파 위에 걸친 그녀의 엉덩이 속이 무언가에 끈쩍끈쩍하면서도 촉촉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그냥 본성적인 것이었을 뿐, 주희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흘러나와 팬티를 적신 질액이 남편에게 의심받을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희는 자기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용납할수가 없었다.
(실수는 한 순간이구나)
주희는 이런 상황을 지나오면서 자기뿐만 아니라 정숙한 유부녀들의 혼외정사를 이해할수 있었다.
하지만 주희에겐 12년전에 시작한 지금은 남편이 된 준형과의 혼외정사가 결코 순간적인 실수가 아니라는 것은 알수 있었다.
준형과 재혼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을때 화장도 안하고 청바지만 입고 학교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강사들이나 외국인 연하남들이 들이대는 것을 경험했던 주희는 냉정하고 단칼에 그들의 접근을 끊어냈던 것을 기억했다.
결국 자신과 배우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사를 명확히 하고 끊을때 끊는것만이 불륜을 예방하는 길이라 생각해 본다.
주희는 다시는 혼외데이트와 혼외정사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 마음 속으로 수십번이나 다짐했다.
준형 이외에 더 이상 사랑하는 남자가 없다는 것에 대하여 최면을 걸지만, 설령 그걸 깨고 누군가 앞에 나타나더라도 주희에겐 더 이상의 옵션이나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이들 부부는 서로에게 절대로 비밀이 없기를 약속한 터였다.
말하면 어찌될지 모른다.
주희는 야단맞게 되겠지만 준형의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주희는 무슨 이유던지 남편 준형에게 야단맞거나 꾸중을 듣는 상황 자체에 대하여 전혀 거부감이 없는터였다.
그럼에도 주희는 사랑을 의심해 본적이 없고, 그런 남편을 존경한다.
그보다도 준형은 그녀가 사랑하고 쟁취한 여자의 전남편이 행복을 찾았고, 주희에게도 덕담과 행복을 빌어주며 인사성 화해 차원의 입맞춤을한 것이라면 그도 기뻐해줄 것이라고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준형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아내를 빼앗은 것에 대한 윤리적 죄책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어쩌면 이번 일을 통해서 그의 마음 한켠에 존재하는 담석을 빼낼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슴과 엉덩이를 순간이나마 내어 맡긴 일은 준형에게 비밀로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녀가 사는 주택 단지로 올라가기 위해 신호대기를 하며 앞유리를 살짝 내리자 초봄의 따사로운 기운이 차 안으로 스며든다.
맞은편에 다가오는 차량, 야한 핑크빛의 94년식 현대 액센트가 그녀의 반대편으로 스쳐지나간다.
작고 동글동글했던 차체에 유난히도 야한 색깔이 많았던 모델이며, 한국에서는 자취를 감춘 차량이다.
대학 2학년때 미술도구를 실어나르라고 아버지가 사주었던 것으로 색깔도 똑같은 차고 미국 오기 전에 팔아치웠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 반대편으로 42세의 성숙한 주부가 된 연주희의 최신형 렉서스 하이브리드 차량이 소리없이 치고 올라가다가 경사가 급했던지 결국엔 엔진 부밍음을 낸다.
(앗! 잠깐만요!)
주희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반대편 차량을 향해 소리쳤다.
물론 그 차주인은 당연히 못들었을 것이다.
백밀러를 향해 혼잣말로 외친 소리가 들렸을리 만무하다.
어쩌면 주희가 스스로의 내면과 과거를 향해 소리친 것일런지도 모른다.
주희는 백밀러로 반대편의 자기가 소유했던것과 같은 모델과 색상의 모델을 액센트 차량을 발견했을때 그녀의 여대생시절의 모습과 흡사한, 살짝 길쭉한 계란형의 얼굴에 긴 쌩머리를 한 젊은 동양인 여성 운전자를 붙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차는 한점이 되고 반점이 되며 사라져 갔고 더 이상 시야에 잡히지 않았을때에야 진정한 인생의 1막이 내려졌음을 실감한다.
그 차가 한국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과거에서 자유로와질 자신을 생각해본다.
이리저리 뱀처럼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산꼭대기의 2/3쯤 올라와서 오른편으로 돌고, 대여섯채의 집을 지나 왼편으로 도니 그녀의 집이 나온다.
집의 정면을 지난다.
정면을 돌아야 차고가 나오기 때문이다.
[Joon Hyung Yeon"s]
주희는 집의 정면에 걸린 문패를 잠시 바라보다가 예전에 대니와 결혼생활을 하며 준형을 만날때 준형이 격렬한 정사의 순간에 외치던 말이 떠오른다.
대담하게 외간남자인 준형을 자기의 집으로 끌어들였던 주희, 그들의 결혼사진이 내려다보는 앞에서 그 전남편 대니와 쓰는 침대 위에서 뒹굴었을때 준형은 "네 집에 내 문패를 걸고야 말겠어"라고 몇번이나 숨이 가쁜 상황에서 외치는 것을 들었을때, 주희는 흥분 중에서도 묘한 기분이 와 닿았었다.
이 집을 구했을때 주희는 제일 먼저 그때 일을 떠올리고는 새 남편 준형의 문패를 주문하며 이리저리 까다롭게 디자인을 골랐다.
결국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주희가 폰트와 프레임을 직접 디자인해서 맡겼을 때의 일이다.
(그냥 대충 주문해)
이 말에 주희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준형에게 처음으로 공격적으로 대들었다.
그리고 준형이 주희를 억지로 달랬지만 주희는 진심으로 울음을 터뜨렸었다.
변한 것인가, 아니면 그때 그 정사의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했던 말을 바보같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준형은 비로서 그때의 일을 기억해 내고 주희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주희는 다시금 준형의 문패를 바라보며 12년전 일과 8년전 옛일 돌이켜본 뒤 의미를 알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오후 세시가 되면 렛슨생이 온다.
불편한 정장을 벗고 학생을 맞아야 한다.
학생을 보내고 나면, 집안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밥을 앉혀 놓고 난뒤 우아하고 섹시한 홈드레스를 입을 것이다.
때로는 노팬티, 때로는 섹시한 팬티, 맨스중일때는 멋없는 팬티.
그리고 매스터 베드룸에 있는 메이크업 룸에서 학생들도, 학생 엄마들도 거의 보지 못한 풀메이크업을 하는데 반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다.
차고문을 닫고 차에서 내려 주방으로 통하는 쪽문을 열자 이제 그런 과업을 요구하고 있는 그녀의 세간이 그녀의 시야에 펼쳐진다.
같은 여자들도 이런 것에 대하여 요란떤다고 말할지도 모르고, 괜히 민망스럽다고 할수도 있는 행위를 주희는 10여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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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3
주희는 그녀 남편 대니와 결별한뒤 몇개월 간의 유산후 몸조리를 겸한 휴식과 소강상태를 벗어난뒤 나와 결혼하면서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때 전남편 Cho씨 성과 자신의 Jeon씨 성을 완전히 삭제하고 나의 연씨성을 그대로 따랐다.
소위 말하는 미국식 호주제도이다.
그렇게 해서 10여년이 흘렀다.
현재 나의 수입은 세후 연봉이 25만불고, 별도로 전년도 순익의 인센티브인 대략 10~15만불을 삼개월마다 한번씩 분할해서 받는다.
규모가 작은 회사이지만 이사라는 직함으로 오너를 대신해 관리해 주고 있다.
이 정도면 팔로스버디스같은 고급 주택가에서 집을 소유하고 전업주부에 가까운 아내와 단둘이 사는데는 넘치도록 남는다.
오랫만에 엘에이의 코리아타운에서 친한 사람들과 만났다.
‘함께 사는 아내 주희’가 차려주는 음식보다는 못하지만, 무제한 고기라던지 사시미라던지, 각종 전골에 소주가 기본인 식당들, 그곳에 가면 한국서 즐기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할수 있다.
맥주로는 기본적으로 한국산 맥주가 서브된다. 솔직히 맛대가리 하나 없다.
왜냐면 제대로 된 호프의 양이 들어가지 않고 원매뉴얼대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오만 세계의 맥주의 맛을 다 보기에 한국맥주가 얼마나 맛이 없는지를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곳에서 한국맥주를 시킨다는 것은 그저 한국적인 분위기와 추억을 실감하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이곳은 미국인지 한국인지도 분간이 안된다.
안주를 비롯한 음식과 술상은 아내 주희가 해주는 것보다 못하다.
아내 주희가 나를 위해서 와인이나 위스키, 소주를 서브할때 만들어주는 안주는 정말 깔끔하면서도 맛이 깊었다.
그리고 종종 아내 주희는 직장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술 한잔 걸치자는 제안을 한다.
그 의미는 집에서 우리 둘이 술을 마시는 것이었고 주희는 익숙한 솜씨로 위스키나 댓클라 칵테일을 만들거나 와인을 따르고, 거기에 맞는 안주를 조리해서 서브한다.
때로는 소주나 맥주를 서브하기도 하는데, 맥주는 라거계통보다는 에일즈계통을 선호한다.
최근엔 한국소주도 희석식보다는 증류식소주를 가져다 놓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것과 어울리는 안주를 만들어 놓는다.
아내 주희는 또한 그런 날엔 어느때보다도 더 섹시한 차림과 화장으로 내 술시중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서너잔 정도는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분위기를 맞춰준다.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나 지인들은 나름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맨날 얼굴쳐다볼 사이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즐기고 있는 상황이란, "옆에 아내 주희가 없는" 상황이다.
일년에 서너번 정도에 불과했지만 내겐 정말 보약같은 시간이다.
난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이런 아내 주희가 옆에 없는 시간을 연장시킬까 고민하다가 과음해 버렸다.
친구들이 불러준 대리운전기사와 함께 내 집으로 끌려 내려갈수 밖에 없었다.
대리운전사업이라는거, 한국에는 꽤 활성화되어 있지만 원래 엘에이 한인타운이 대리운전의 원조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한국에 별로 없다.
음주단속이 심한 미국에서, 무허가 자가용 택시 기사들이 술집이나 룸싸롱 근방에 진치고 있다가 차를 두대를 보내주는 그런 시스템이다.
한국에는 그것이 정규적인 시스템으로 정착했고, 미국의 현지 경찰국에서는 무허가 사업이라면서 가끔 으름짱을 놓긴 하지만서두 음주운전 사고를 예방한다는 측면과, 경기활성화 측면에서 그저 묵인하고 있다.
취중이긴 하지만 내 차에 실려 프리웨이에 올라서자 안도감보다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은 심정이 든다.
결혼후 ‘아내 주희’는 내가 별도의 취미생활을 갖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았다.
대니 조라는 첫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트라우마인듯 싶다.
그래서 대학원시절부터의 취미인 산악자전거 라이딩도 버렸고, 기껏해야 매일 저녁 식사후 혼자 피트니스 센터에서 한시간반 정도 단련을 하고 오는 것이 운동이자 취미의 모든 것이 되어 버렸다.
그 덕에 아직도 내 몸은 몸짱에 가까운 상태가 유지되고 있긴 하다.
이만하면 내가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것이다.
아내 주희에게 오늘 시내 나가서 술먹고 온다고 물론 이야기는 했다.
"오랫만에 친구분들 만나시는거니깐 잘 즐기세요. 과음하시지 말고요. 일찍 들어오셔야 해요"
그 말을 분석하면 짧고 굵게 즐기며 술 조금 먹고 일찍 들어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잘해야 9시까지가 귀가 통금시간이라는건데, 만취 상태가 되어버린데다가 1차 저녁을 겸한 술집, 2차로 노래방에서 맥주와 안주를 시켜 먹었으니 12시가 가까와 버렸다.
내 차는 캐딜락 CTS 쿠페 3.6이다.
문이 두짝밖에 없어 기사의 옆에 앉은채 드문드문 차내 시계를 들여다보
강산마저 변한다는 10년이 가까운 2015년 초봄의 어느날.
부촌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의 Rancho Palos Verdes라는 1번 Pacific Cost Highway를 낀 절경의 주택가.
바닷가를 굽이굽이 돌며 동쪽으로는 Torrance라는 번화한 내륙도시를 바라보고 있고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굽이진 절벽가의 택지이다.
다른 주택 단지들처럼 대지를 절약하고 건축숫자들을 부풀리기 위해 주택들을 다닥다닥 붙이지 않았기에 각 세대들이 적절한 거리를 띄고 떨어져 있는 것도 이 지역의 매력이기도 했다.
오후 네시가 안된 시간인데, 최근 섬머타임을 한 관계로 눈부시게 강한 햇살은 꼭 한국의 정오에서 한시 정도의 햇살만큼이나 강렬하다. 썬글래스가 필수일 정도로.
그중 비교적 작은 집에 해당하지만 비쥬얼도 아름답고 실용성있어 보이는 한 아담하고 예쁜 2층집이 있다.
실내는 대략 70평쯤 되어 보이고 앞뒤를 두른 푸른 잔듸밭과 거라지까지 합치면 120평은 되어 보인다.
그곳의 넓은 세컨드룸의 구석에는 사용하지 않는 캔버스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서가에는 미술도구와 더불어 영문텍스트의 여러 교재들이 즐비하고, 방의 정가운데에는 사용중인 캔버스와 의자가 놓여 있다.
거기에 작품을 만들고 있는 10대 초반의 여학생 하나가 있다.
그 여학생의 뒤에 한 30대인지 40대인지 가늠할수 없는 이 집의 여주인인듯한 미모의 여교사가 그 화폭과 더불어 작품을 만드는 학생의 표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웨이브진 머리를 위로 묶어 올렸으며, 점쟎고 보수적인 홈드레스를 입고, 얼굴엔 가벼운 파운데이션을 발랐고 입술에는 그냥 글로씨한 투명 립글로스를 바른 형식적 메이크업 상태여서 생얼에 가깝다 하더라도 충분한 기품과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엔 어때요?”
“내 눈엔 네가 안정적으로 사물을 보게 된것 같아서 좋아. 선생님 욕심같아선 저 여백에 너의 생각이 좀더 들어갔으면 해. 혹시 넌 좀더 기분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선생님은 다 아시는군요.”
여학생은 의기양양한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엘에이 쪽에서 이사와 전학을 온 뒤, 가벼운 우울증과 소통장애를 앓던 여중생이었는데 최근 육개월간의 면밀한 그림레슨을 통해 많은 것이 좋아졌다.
이윽고 자택 레슨교사는 학생을 데리고 집밖으로 나와서 Benz-GLA SUV를 집 앞의 갓길에 대고 있는 학생 어머니를 응시하다가 학생 어머니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오자 목례를 했다.
學母는 자기 딸의 어깨에 손을 얹은채 딸의 몸을 돌려 함께 교사를 향하게 하고 인사를 하며 찬사를 보낸다.
“‘연주희’ 선생님!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지내기 시작했어요. 성적도 오르고요. 정말 감사해요”
“별 말씀을....제가 할수 있는 일이니깐 최선을 다한것 뿐이에요”
그 학생엄마는 아이를 태우고 차에 올랐다가 우연히 그 집의 잔디밭 바깥을 둘러친 울타리의 쪽문에 걸린 굵은 남자 팔뚝 모양의 문패를 보고 가벼운 놀람 속에 생각에 잠기어 있다가 차에서 내린다.
[Joon Hyung Yeon"s]
영문 문패였지만 한눈에도 "연준형"이라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미국에는 문패가 옵션이거나 혹은 각 단지에서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달기도 했고 없는 곳이 더 많다.
문패를 거는 경우는 한국처럼 딱딱한 세로형이 아니라 가로로 걸어 두는 형식이었다.
그 집에 걸린 문패는 두터운 나무 뿌리를 형상화한 모양새의 바탕에 특이한 형태의 영문자 폰트가 새겨져 있다.
“어머, 연주희 선생님,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는데 막상 오늘 요심히 선생님 댁의 문패를 보니 귀댁의 주인 존함이랑 저희 친정아버지 존함이랑 똑같네요”
무심히 지나칠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번짓수이고, 이집 여주인에게 용무가 있는 사람들에겐 문패명이나 세대주의 이름이 별로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호호.....이것도 인연인가봐요?”
그녀는 어떤 특정한 화제를 잡자 집에 돌아가지 않고 한동안 렛슨 교사를 붙잡고 수다를 떨고 싶어했다.
“샘님도 저랑 나이가 동갑인줄은 몰랐어요. 실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보다 한 다섯살 아래인줄로 알았는데, 그렇다고 제 연하로 보기엔 말씀이나 행동에 워낙 기품이 배어 있으셔서....”
“동안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잇값을 못한다고나 할까요? 제가 말이 적은 편이라 그렇게 느낄수도 있을것 같아요.”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너무 예의바르시고 교양있으시던데....”
어느덧 이들은 차에 오른 학생까지 다시 내리도록 한뒤 렛슨 교사 연주희의 집으로 들어갔고, 주희는 학생 수쟌을 주방에 남겨두고 학생 어머니에게 집 실내를 구경시켜주기 위해 응접실의 50“ TV를 EBS에 맞추어 주었다.
요즘 아이들은 TV를 안 틀어주어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혼자서도 몇시간씩 논다.
그런 것이 10년전의 풍경과 지금이 또 다른 것.
“선생님이랑 약속한거 있지? 엄마랑 선생님이 대화하는 잠시만이라도 스마트폰 보지 말고 저기 다큐먼트 채널을 봐”
“그런거 유튜브로도 되는데요?”
“눈이 나빠지지 않겠니?”
“네에.....그렇게 할께요. 선생님! 두분 이야기 잘 나누세요”
“어머, 엄마말은 그렇게 안 듣더니 선생님 말씀은 냉큼 듣네?!”
그 집은 넓이가 2600스퀘어피트 (단독72평, 아파트 약 100평)의 방 네개, 부부침실에 딸린 보너스룸 하나, 화장실 두개, 응접실 하나의 2층이었다.
차 두대가 들어가는 그라지와 더불어 앞마당과 뒷마당을 합치면 전체 면적은 4200sq라는 120평에 달하는 매우 큰 집이긴 했다.
그러나 실내면적만 5000sq~1만sq 이상을 오르내리며 방 여섯개 이상의 2, 3층 집들이 많은 그 단지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집에 속했다.
네개의 방중 11평을 차지하는 대형 세컨드룸을 주희의 작업실과 렛슨실로 사용한다.
주방과 차고쪽을 바라보는 10여평의 방은 주희의 또 다른 작업실, 세탁과 슈잉룸으로 쓰인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곳이라 그림도구의 보관에는 애로가 있지만 학생들의 정서에는 좋은 영향이 있다.
또한 서북쪽의 큰 창문으로 집 뒷뜰의 잔듸밭이 보이고, 그 잔듸밭의 한쪽 구석에는 바비큐를 굽거나 옥외 와인바처럼 사용할수 있는 돌로 만든 테이블과 더불어 정자 모양의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 다른 방은 남편인 준형의 서재겸 홈오피스로 사용되고 있었다.
PC와 팩시밀리, 사무용 데스크와 회전의자, 서가와 더불어 사각의 유리 테이블과 의자 두개가 더 있었다.
9평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넓이에 비하여 출입문은 검고 큰 양쪽여닫이문으로 되어 있고 응접실에서 제일 쉽게 눈에 뜨이는 곳을 향하고 있다.
다소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냄새가 풍기는 출입문, 한눈으로도 그 방과 출입문은 그 집안 家長의 권위를 상징하는것 같았으며, 충분히 예우받고 있는 세대주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2층의 Master Bedroom(부부침실)을 열었을때 학생 엄마는 탄성을 울리는듯 했다.
주부용 메이크업룸과 드레싱룸이 부속으로 딸려 있고 공주의 욕실을 방불케하는 목욕탕의 샤워부쓰에는 샤워꼭지 두개가 서로 마주 보며 달려 있었다.
부부침실과 연결된 부부전용 living room이라는 부속실, 더불어 이것들만 18평이란 크기에 놀란것은 아니었다.
그 학생네는 사실 더 큰 2층의 방 다섯개와 화장실 세개, 리빙룸 세개짜리 주택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모던하고 심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아늑한 침실분위기 등은 여성잡지에 소개되는 수준으로 잘 꾸며져 있었기에 놀란 것이다.
부부가 단둘이 살기엔 큰듯해도 휑하고 썰렁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이집 주부의 렛슨부업의 장소로도 활용하며, 충분히 모든 기능의 공간활용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독재자와 후궁의 비밀 아방궁같으면서도, 평범한 부부의 부담없는 쉼터의 역할, 그러면서도 적절한 로맨스가 느껴질만한 인테리어는 보는 여성들로 하여금 환호를 하게 한다.
침실 한면을 장식하고 있는 대형 결혼사진을 학생엄마는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쭉 걸어둔 이들 부부가 중간중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며 싱긋 얼굴을 붉히며 부러워하였다.
꽤나 야한 장면, 혹은 이 집의 여주인의 노출이 심한채 찍은 사진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잠시 스쳐보듯 한것도 있지만 10년이 더 된 사진들도 있다.
주희가 전 남편 대니와 결혼생활을 하던 시절 준형과 솔뱅이랑 바닷가에 올라가서 온갖 야한 포즈를 취한 사진들도 몇개가 걸려 있었다.
즉, 이들 부부의 불륜시절의 사진과 그들이 정식으로 결혼하고 난 뒤의 사진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다시 주방으로 나왔고 주희는 차를 끓여 둘이 함께 찻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혼을 언제 하신건지 짐작할수가 없네요? 왜냐면 그때나 지금이나 연선생님 나이가 변한것 같지가 않고 웨딩사진 속의 선생님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다우시니깐요. 글구 침대 위의 웨딩사진은 선생님이 상당히 말라 보이는데, 침실거실쪽의 웨딩사진은 좀 살이 붙어 있어 보이시고요. 정말 저 사진 몇년전거죠?”
“한 사진은 10년 되었구요, 한국서 결혼할때 여러 일이 많았어요. 살이 붙은건 8년전에 미국서 다시 결혼식을 올린거구요.”
“아, 결혼 늦게 하셨구나. 33~34살에 하셨다면. 결혼은 연선생님처럼 좀 나이들고 철들어서 하는게 더 좋은것 같기도 해요. 전 16년전에 27살이니깐 뭘 모를때였죠. 아이 키우고 뭐 그렇게 산다고 위로하니깐요.”
주희는 여기에 대해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실은 주희는 대학을 졸업한 2년뒤인 25살에 결혼했었으니 그 학생 엄마보다 일찍한 셈이다.
그 학생엄마는 결혼한지 16년차라 밝혔지만, 주희는 첫남편 대니의 8년, 그리고 지금 남편 연준형과는 9년 6개월 차이니 18년차가 되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굳이 사실대로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주희는 준형과 결혼하고 Java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완전히 떠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3년 과정으로 중등미술교육과 더불어 Art-Theraphy(미술치료)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곳에 둥지를 틀며 그림렛슨을 할때 약간의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혹은 성적이 심하게 나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별하여 받아 가르쳤다.
주희에 대하여 학부모들 사이에 좋은 소문이 나서 그녀에게 욕심을 가지고 그림렛슨을 맡기고자 하는 엄마들, 혹은 딸을 미대에 보내길 희망하는 엄마들이 노크했지만 주희는 절대로 일주일에 네명 이상의 학생을 맡으려 하질 않았고 실기성적을 올리고자 하는 학생이나 미대진학을 염두에 둔 렛슨은 처음부터 거부했다.
반드시 학생과 어머니 면담을 통해 뭔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거나 우울증, 자폐증 증세가 있는 학생만을 받아서 가르쳤다.
주희가 아주 적은 숫자만 가르친 이유는 두가지였다.
학생들 하나하나의 상황과 발전, 정체과정을 제대로 파악할수 없다는 것과 또 하나는 마지막으로 주희는 자기의 정체성을 ‘전업주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두고 있는 생활의 최우선 순위는 남편 준형에 대한 내조와 두 사람의 관계였다.
고심 끝에 이 집을 고른 것은 미술 렛슨생을 받을 조건이 되면서도 집이 쓸데없이 넓지 않다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주희가 자기의 능력으로 가구배치와 인테리어를 적용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령 이 집의 응접실을 사이에 두고 준형의 서재와 주희의 작업실겸 렛슨실은 서로 반대편에서 마주보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 북향은 뒷마당을 향하여 주방이 연결되어 있고 주방 옆으로는 차고로 통하는 문과 작은 광이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부부가 집안에서 각자의 직업에 열중하더라도 문만 열면 서로가 뭘하는지 보이게 되어 있고, 응접실 자체가 아주 크진 않아서 작은 소리도 들리게 되어 있다.
Master Bedroom(부부침실)은 동쪽 방면에 있지만 현관이나 응접실에선 보이지 않고 단지 그곳으로 통하는 작은 복도가 보인다.
하지만 그 복도로 들어가 큰 문을 열면 또 다른 아기자기한 부부전용 거실이 나오고 그 거실은 침실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집 속의 집이라 할수 있는 부부 거실엔 응접실에 형식적으로 놓아둔 50인치와 동일한 모델의 LED-Cuvred TV가 설치되어 있고, 작은 냉장고와 간이 수도시설이 되어 있었다.
커플 쇼파와 작고 동그란 유리테이블도 빼놓을수 없다.
따라서 주말에 쉬거나 할때 밥먹으러 주방으로 나오기전까지는 굳이 두 사람이 그곳을 이탈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8년전 집을 보러 다닐때 주희의 눈에 들었던 그 집을 준형에게 설명할때 그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거의 매료된 상태로 따라주었었다.
준형, 주희 부부에게 인수된 이 집은 주희의 연금술에 의하여 부부 두 사람이 충분한 공간을 활용하고 단란한 가정의 화합을 방해하지 않는 그런 집으로 변해 버렸다.
이곳은 산 꼭대기를 넘어서면 태평양 바다가 보이고, 한 반대편에는 Torrance 시내가 보이는 이곳은 상당히 한적한 해변도시이면서도 전원도시이다.
우울증 걸리기 쉽다며 바다가 보이는 쪽을 피하고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방향의 주택을 선택한 것은 준형의 아이디어였다.
이곳으로 온뒤 주희의 바깥 생활은 목요일과 금요일 오전에 인근 사립중학교의 지도를 나가고, 일주일에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는 미술렛슨생을 받았다.
그것 말고는 거의 집에서 살림과 인테리어에 전념하였다.
일이 없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넓은 집의 정리와 더불어 세탁물 정리를 마친후 그림에 손을 대는것 정도였다.
특히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전혀 집대문 밖으로 나가질 않았고, 마트도 주말에 남편 준형과 함께 갔다.
그녀 스스로가 원해왔던 생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수다떨만한 또래의 여성이 그립기도 한 모양이다.
“선생님, 해변가로 부부동반해서 외출 자주 나오시죠?”
“아침엔 뛰고 걷고 저녁땐 그냥 천천히 걸어요. 요즘은 날씨가 차서 못나가고 있지만요”
그런데 주희는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
그렇다고 학생 엄마가 그녀를 떠보거나 유도심문하듯 물어본건 아니었다.
“저희 애들이 그러더군요. 미니원피스를 입으셨던데다 히프선까지 다 보이더래요. 화장도 너무 진하셔서 못 알아봤다고 해요.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해주시길 바라지만, 애들한테 야단쳤어요. 그런 말은 전하는거 아니고, 부부가 같이 그런 데이트하는건 아름다운거라고. 그러니깐 우리 딸아이 하는 말이, 왜 엄마는 아빠랑 그렇게 데이트 안하냐고 묻더군요. 어이가 없으면서도 부러웠어요. 글다가 작년 가을 저녁나절에 남편하고 나왔다가 선생님을 뵈었어요. 같은 여자가 보아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섹시하시더군요. 두분의 모습도 그림같이 어울리고.....”
이들이 바닷가 근방으로 보금자리를 튼 것도 사실은 그런 이유가 컸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때 했던 그 데이트를 결혼 후에도 이어가자는 약속.
주희는 준형이 원했던 그대로 미니원피스 속에 팬티도 입지 않고 예쁜 샌달을 신고 진한 화장을 하고 그와 같이 집근처의 해변가를 거닐다가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한다.
처음에는 웬지 동네 주민들, 한국인들도 드문드문 있고, 학부모를 볼수도 있고 해서 긴 모자와 선글래스를 착용했지만 이내 그것도 귀챦아진데다가, 그들의 관계가 결코 숨겨야할 것이거나 부끄러운 관계가 아니라는 자각에 모자와 선글래스를 벗어버린 터였다.
"주인께서 무척 자상하시고 배려감이 많으신가봐요"
"호호....제 입으로는 그렇지만 책임감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그 정도면 연선생님 연일 행복하시겠다. 그렇죠? 다정함에 자상함에 책임감에 또 경제적 능력이면 家長으로서는 120점일테니깐요."
"근데 가장으로서는 엄하세요. 제가 푼수짓을 많이 해서 그 사람한테 심하게 야단맞을 때도 자주 있어요"
"어머, 안 그래 보이는데요? 연선생님은 엄마들 사이에서도 현숙한 부인으로도 칭찬이 자자하신데!"
주희는 거기에 대해 굳이 대답은 않고 알수 없는 미소로 싱긋 웃어 보이기만 했다.
어느덧 다섯시가 되어 그 학생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 가야한다.
주희는 그들의 차가 굽이굽이 산길 골목을 돌아 나가는걸 한참을 지켜보다가 “Joon Hyung Yeon"이라는 문패가 걸린 집으로 편안하고 익숙한 동작으로 걸어들어갔다.
living room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집의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집전화를 없애는 사람들도 있고 사용용도를 많이 잃어 버렸던 터였다.
주희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사무적인 응대멘트를 했다.
“Hello, It"s Mr. Joonhyung Yeon"s Home (네, 연준형씨 댁입니다)"
“Oh, Juhee? Judy? Can you hear me? It"s Danny! Daniel Cho! (오, 주희? 주디? 너 내 목소리 기억하니? 나 대니야, 다니앨조)”
주희는 깜짝 놀랐고, 동시에 온갖 통한이 섞여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가슴을 삭여야 했다.
잠시간 말없이 가슴을 진정시키고 난뒤 주희는 또박또박 그에게 가르치듯 대답한다.
“조선생님!.........전 전화받으면서 제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고 이 집 세대주의 이름을 댔어요. 누구한테라도 집전화를 받으면 그렇게 말해요. 조선생님은 이럴땐 "전 Mr.Cho입니다. 연준형씨의 부인과 통화할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물었어야죠, 다짜고짜 외간남자가 가정주부의 이름을 찾으면 둘다 입장이 난처하죠”
“알았어. I had a mistake, sorry about that........"
“근데 어떻게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았죠?”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나 엘에이에 출장와 있어. 떠나기 전에 한번 너를 보고 싶었어”
“글쎄요......그것도 중요한것 같지는 않은데요. 뭐 끝나지 않은게 남아 있나요?”
“I hope you don‘t border me.(경계하지 말아줘) 나 5년전에 재혼했어. 내가 너를 injure(해코지)할 일이 없어. 한시간이면 될거야. 이번 주말 안되니? 아니면 다음주라도?”
“목요일이랑 금요일은 인근 중학교에 수업이 있어요. 평일날에는 집에서 렛슨생을 받아요”
“그럼 그 중에서 잠깐 interval time이라도 없니?”
대니는 약간의 짜증섞인 목소리, 앳기가 섞인 목소리로 주희를 푸쉬했다.
그와 결혼생활을 할때 가끔 들었던, 철없이 화내던 그 목소리, 주희가 기억을 못할리가 없다.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대니의 말투는 톤이 굵어졌고 그의 불평은 단발성으로 끝난다.
“유부녀가 외간남자를 만나는 일이니 남편의 양해와 허락이 필요해요. 그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난 나갈수 없어요.”
“푸우........그럼 approve받으면 될거아냐? You are still picky!(여전히 까다롭구나)”
원래 양해를 구하는 단어는 consent나 excuse였는데 업무상의 결재를 뜻하는 approve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대니와 결혼생활을 할 적에 대니는 주희의 그런 면에 대해서 답답하게 느끼기도 했을 것이고, 주희가 혼외정사 끝에 남편에게 먼저 이혼을 청구한 유책배우자임에도 너무 빡빡하게 나가는 것에 대한 은근한 비꼬는 단어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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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2
미국 엘에이에서 30킬로 남서쪽으로 떨어진 Torrance라는 중견도시.
참 지랄맞게도 시간이 정지한것처럼 지겨운 찬란한 햇살의 평일 오전.
커피숍이라 하면 어지간하면 스타벅스, 커피빈, 피츠커피등이 대도시던 중소도시를 도배한다.
최근엔 한국의 톰앤톰같은 커피숍들도 진출해서 틈새를 비집는다.
하지만 진짜 커피맛을 아는 애호가들은 중소브랜드나 개인이 직접 하는 커피숍을 찾는다.
그런 곳에서는 대량생산된 커피가 아닌 장인정신과 정성으로 볶아내는 커피의 향과 맛이 가슴과 폐까지 그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개인 커피 하우스가 들어선 미니 쇼핑몰의 작은 주차장, 차 10여대 정도가 간신히 들어갈만한 공간밖에 없는 협소한 곳.
그나마도 정오가 채 안된 시각이라 주차장도, 커피숍도 사람들이 한산하다.
미색 Lexus CT200H (토요다 프리우스를 고급화한 렉서스의 준중형 하이브리드로 동일한 파워트레인과 플랫폼 공유)이 거의 소음없이 정확하게 주차했다.
차 문이 열리며 흰 여성용 와이셔츠를 상의로 입고, 아래는 무릎에 못 미치는 검고 짧은 정장스커트, 그리고 투피스 셋트인 듯한 검은 여성용 자켓을 걸치고 검은 구두를 신고 금색 로고가 번쩍이는 MK백을 든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 내렸다.
165가 다 되어 보이는 늘씬한 키에, 거들을 차고 있는 흔적이 없지만 단단하면서도 미끈하게 빠진 엉덩이는 보수적 스타일의 정장치마가 결코 왜곡시킬수 없어 보인다.
하드 브래지어에 의해 커버되는 듯한 유방일지라도 단단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종아리, 허벅지의 선과 볼륨은 뚜렷했고 허리에는 군살끼가 보이지 않는다.
옅은 화장, 적당히 웨이브진 듯한 머리카락을 귓볼로 살짝 또아리를 내리되 그리 길지 않은 뒷머리카락을 뒷통수 위까지 올렸다.
그런 헤어스타일은 보수적인 주부임을 확실히 알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화려함이 떨어지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그녀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 보인다.
뛰어난 미모뿐 아니라 중후한 기품까지 은은히 풍겨나오는 그녀는 캐리어우먼같기도 하다.
아직 군살이 보여지지 않고 여기저기 나올곳 나오고 들어갈곳 들어간 몸매로 보아 미출산 주부같아 보이지만, 선천적인 것이나 환경적인것 이외에 자기관리에 철저한 여성으로도 보인다.
그녀가 커피숍에 들어서자 통이 큰 정장 바지에 캐주얼한 남방을 한 사내, 키가 크고 살이 많은 40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손짓을 한다.
그 여자의 표정은 언뜻 냉정했지만 잠시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주희, 정말 오랫만이다. 나 엘에이 출장중인데 주희 일정에 맞추려다 보니 오버좀 했다. 목요일이랑 금요일은 학교에 나가고 regular day noon time은 lesson students 받는다니 바쁘게 지내는구나. 프로페셔널 하우스와이프인줄 알았는데?”
"맞아요, 전업주부에요.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깐요. 중학교 미술수업은 일주일에 딱 두번이고, 레슨생이라야 두명이니깐. 내 직업이 이거다하고 남들한테 내세울만한건 아니에요. 남들이 물어보면 그냥 살림하면서 부업을 좀 하고 있다고 말해요.”
그 남자는 주희를 감회에 서린듯 바라본다.
증오감같은 것도 남아 있을듯 했는데 별로 없어 보인다.
그리고 오랫만에 발견한, 잊고 있었거나 신경쓰지 않았던 주희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잠깐 매료되는 듯 했다.
“주희가 42살인거 진짜 맞어? maximum middle of thirty age로 보이는데?! 여전히 예뻐.”
“hh...You flattering me! 남의 유부녀한테 수작거는거 아냐? 조금 있다가 빨래도 해야하고 레슨생 받아야되거든요? 오늘 Danny씨랑 만나는것도 남편한테 허락받고 나온거 기억해주었으면 해요.”
“Oh, Really?! You"re great!, you"re a too conservative(보수주의자)! 뭐 내가 chitting (놀아남, 바람)이나 하자고 만나는거 아니잖아.”
“가정있는 유부녀니깐 매사 선이 있고 절제가 있어야 해요. conservative니 liberalist니하는거랑은 상관없어요. 그런 싸이드의 리버럴리스트라면 아예 결혼을 안하는게 맞겠지요.”
이쯤되면 Danny 입에서 “그런 네가 왜 우리집 유부녀 시절엔 외간남자랑 데이트하다가 선을 넘어섰니?”라는 말이 나와야 맞지만 Danny는 어색한 웃음만을 지을 뿐이다.
주희가 느낀 10년 전에 헤어지고 못본 Danny의 분위기는 그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냥 세월과 나이가 주는 변화와는 좀 다른 것이었다.
“Judy, Are you still detest me? (아직도 날 증오하니?)”
“..........Danny씨,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이야”
순간 이들 사이엔 묘한 침묵이 흐른다.
대니는 주희에게 뭔가의 답변을 기대했지만 주희의 똑같은 반문에 잠시 당황하는듯 했다.
그리고 작심한듯 자기가 먼저 진술을 시작한다.
“내가 널 detest했던건 사실이야. 집에 샷건까지 만지작거렸으니깐. sue(소송)해서 망신주고 둘다 혼내려고 했었어. 근데 lawyer가 나더러 증거는 좋은데, 혹시 때린적 있냐고 그러더군. 그랬다고 하더니 무조건 잡아떼래. 때렸다고 하면 내가 불리해진다고. 그런 거짓말도 할라면 할수 있었는데, Oh! Fucking! 3 hours 대화했는데 $330이 청구된거야. 어떤 process도 들어가지도 않은 condition에서”
주희는 그때의 상황을 회고해 보았다.
대니가 결국 이혼을 수락해 주었지만 거기서 끝난게 아니라 대니는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당시 별로 내놓을게 없던 준형의 월급이 차압되거나 하는 사태에 이르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막막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준형이 자기에게 화를 내거나 화풀이를 하거나, 혹은 자기를 원망하게 될수도 있다고 순간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100% 준형을 믿지 못한 자기 자신을 그 상황에서 발견하고는 불안에 휩쌓이기도 했다.
주희가 대니의 집을 나와 준형의 집으로 들어갔고 유산후 몸조리가 끝나지 않은 2주차에 법원에서 노티스를 받은 것이 생각났다.
때마침 한국의 친정어머니가 계속해서 주희에게 소환령을 내리고 있었고, 준형은 자기가 뒤집어 쓸테니 일단 한국에 가 있으면서 어머니 허락도 받으라 해서 주희가 한국에 갔던 것이다.
도피라면 도피였지만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주희는 친정어머니에게 발목이 잡히고 감금까지 당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대니가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네 말을 듣지 않은 result가 나온거야. 내겐 당장의 sue를 진행할만한 fund가 없었던거야. 그래서 그냥 first time 겁이나 주고 빠진거지. 대신 그때 부동산 경기가 좋을때라 손해보지 않구 집팔았고 뉴욕으로 일하는데를 옮겼어. 다 잊고 싶어서”
사람은 참 늦은 후에 후회를 하는 경향이 있다.
주희의 말을 잘 들었더라면 최소한 소송을 진행할 돈은 모아 놨을 것이다?
아니, 주희와 파경에 이를만한 상황이 터지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니씨, 솔직히 말하면 그때 우울증까지 걸렸고. 어차피 나는 빈몸으로 쫓겨나는게 당연하지만 이후에 있을 일들을 생각만 하기도 무서웠어. 그걸로 내가 벌받은 셈치면 안될까?”
주희의 공포의 대상은 소송이 아니라 그로 인한 준형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주희는 그 공포의 대상이 무엇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대니는 쓴 웃음을 짓고 블랙커피를 입에서 내려 놓았다.
“겉으론 cool guy처럼 열심히 내 hobby에 빠져들고 workholic처럼 일에 빠져 지내보기도 하고.......하지만 집에 들어가보았자 cold한 바람밖에 없다는걸 느끼니깐 갑자기 후회스럽기도 했지. 그때서야 난 marrage life라던지 가정이라는게 그런거구나라는걸 조금 느꼈어. 그러다가 벌써 9년 넘었구나? Sub-Prime Bankrupsy사건? 그때 난 unempolyment(실직자)가 되었어”
주희도, 준형도 한국의 IMF세대였다.
준형은 IMF가 터진 이듬해인 98년도에 유학을 왔고, 주희는 그전인 97년도 초에 유학을 왔다가 1년 만에 금융위기때 사업을 망친 홧병으로 아버지를 잃어야 했다.
한국에 IMF사태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서브프라임과 리만브라더스 도산사태가 있다.
미국의 2006년과 2007년을 양해간 강타한 서브프라임과 리만사태는 잘 나가는 증권맨들을 일시에 길거리로 몰아낸 엽기적 사건이었고, 그 파급효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수많은 일자리들마저 실종시켰었다.
그때 대니도 그런 대상자들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한국의 IMF를 말할때, 대니씨는 늘 그랬지. 한국은 국가가 모든걸 개입하는 후진적 구조때문에 안된다고. South Korea는 아직 멀었고, 자본가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내게 늘 말했어. 나는 그런 경제적인거 잘 몰라. 그 때문에 내 학업뿐 아니라 아빠까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도 못간 불효녀가 되고 말았어. 솔직히 대니씨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섭섭했어. 근데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터지고 10년이 가까와도 길거리를 나가도 예전같지가 않아. 번창하다가 망한 가게들, 지금도 비어있는 곳이 많아. 근데 나중 어떻게 된거야, 대니씨는?”
“HR만 대행해주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게 뭔지 아니? 한국말로 말하면 구조조정전문가라는거야. 쉽게 말해 lay-off(정리해고)를 많이 해야하는데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고, 그렇다고 내부사람이면 못믿는다 생각해서 outsouring으로 조언을 받는거지. 내가 전국으로 다니면서 정리할 사람 명단 analysis해서 해고할 인원과 대상자들을 정해주고 떠나는거야. 그대로 할지 안할지는 CEO맘이고”
대니는 하필 그런 저승사자같은 직업에 재취업된 것이다.
계속해서 그의 말은 이어졌다.
“근데 내가 짤리던 그 순간을 생각해보니깐 어느 순간 하기가 싫은거야. 그러면서도 매사에 Restructuring(구조조정) 이라는 단어만 생각하다보니깐 우습게도.......어느 순간 내가 구조조정 당한 husband(남편)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먹고 살아야 하니깐 한동안 하기는 했어. finally, 증권쪽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연봉은 예전보다 절반도 안되고 인센티브도 많이 줄었어”
Danny에겐 수많은 변화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가 술회하는 말에는 일체의 덧붙임도 뺌도 없어 보였다.
주희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처지를 안타까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화제를 돌려본다.
“재혼한 여자는 어떤 여자야? 예뻐?”
“후후....몸이랑 얼굴은 주희보다 못해. 어려서 미국에 온 Korean-American이고 Banker(은행원)이야. 81년생이니깐 나보다 7살 아래야.”
“후훗. 역시 뭐니뭐니 해도 여자는 젊고 볼일이고 남자의 아이를 낳아주고 볼일야. 그러니 나보다 못하다는 말 그말 취소해. 와이프 알면 정말 상처받겠다. 근데 애는?”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대니는 갑자기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띄기 시작했다.
대니는 사실 천진한 면이 있었고, 이 상황에서 그의 천진함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웬지 뽐내면서도 뿌듯해하는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애잔함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하나의 얼굴에 담아냈다.
“세살배기 딸쌍동이야. 흐흐흐.... 고뇬들 눈을 들여다보면 아아.....세상에서 내가 제일 위대한 일을 해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고 가슴이 벅차. 처음 아이들을 보았을때 뿌듯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뇬들이 어떡하면 이런 험한 세상 살아갈까 하는 걱정도 미리 들고, 아침에 출근할때 웃음이 나오면서도 눈물이 날때도 있어”
“.........다행이다. 대니는 원래 아이를 원치 않았쟎아? 결국 남자란 그런 본능은 숨길수 없나봐?”
“내가 이렇게 딸바보일줄은 몰랐어. 내 인생 그 아이들 교육시키고 뒷바라지하는데 걸게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너무나도 natural한거야. 승마클럽에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어. 지금 둘다 취미생활 안다닌지도 오래야. 근데 내가 딸바보가 되기 전에 가정과 배우자의 소중함을 알아야 했던거지. 주희한테 많이 미안하고, 또 고마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네가 고통받게 했던거에 미안하고...”
(아놔! 내가 뭐라고 했어? 나는 아이 원치 않는다 했어, 너도 그렇쟎아? 알아서 해결해!)
오래전 주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의 아이를 임신한 주희에게 퍼붓던 핀잔을 겸한 임신중절수술 요구를 하던 그때, 기억하고 싶지 않던 그때를 떠올려 본다.
새로운 인생을 찾은 대니를 기뻐해주면서도 그때의 그런 기억에 잠시 불쾌감이 스친다.
만약 그때 아이를 낳아 키웠다면?
“아이들, 잘 키워. 소중하게 얻은 천사들이쟎아? 글구 보니깐 대니씨, 쌍동이딸 자랑할라고 만나자고 했구나?”
“뭐, 그런 생각도 있긴 했지. 앗참, 주희도 아이있겠지? 그럭하고 10년이 다 되어가니 말이야. 몇살이야? 아들? 딸?”
그런 말을 듣는 주희의 입가에는 여전히 예쁜 미소가 감돈다.
첫 남편 대니를 만나 미소를 짓게 될줄은 미쳐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대니가 자기를 실망시키고 무책임했고 힘들게 한건 사실이지만, 부부 사이의 가장 큰 죄인 혼외정사를 한건 주희 자신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주희는 마음 어느 한켠에는 그것에 대한 죄책감과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있냐는 대니의 기대에 가득차고 천진한 질문에 주희는 순간 복합적인 생각에 빠졌다가 눈을 반쯤 감고 여전히 미세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을 그대로 둔채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Oh no....! sorry to that”
"괜챦아....."
이쯤해서 주희는 감회가 좀 복잡해졌다.
주희를 여러번 낙태시키고, 유산 속에서도 무심했던 그 남자에게 듣는 그런 딸자랑과 그녀에게 이후 아이를 낳지 않았느냐는 기대섞인 질문은 묘한 생각을 갖게 했다.
어느덧 커피숍을 나오니 시간은 정오를 지나가고 있다.
대니는 점심을 사겠다고 했으나 주희는 집안일이 많이 밀려 있고 곧 레슨생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며 끝내 거절했다.
이들이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는데 두 사람의 발걸음의 보조는 일치했다.
한낮의 햇살은 따사롭고 아름답다. 한국의 그것보다는 몇배로.
주희의 차와는 반대 방향에 투박한 쉐볼레 임팔라가 서 있었다.
멋대가리 하나 없고 연비도 안 좋고, 그냥 쿳션만 물침대같은 전형적인 미국차다.
“대니씨, 취향 바뀌었네? 멋도 없고 크기만 한 차로? 역시 남자는 애아빠가 되고 보아야할 일인가봐.”
“렌트카야. 뉴욕에 와이프건 토요다 미니밴, 내건 스바루 아웃백”
“의외네.....그냥 길거리에 깔려 있는 재미없다는 차들이쟎아??”
대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희.....미안했어. 고맙게 생각해, 그전부터 오래전부터 말이지......”
주희는 자칫했으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그전부터 고마왔다는 것은 도대체 언제적부터 무엇이 고마왔다는 의미일까.
준형이라는 다른 남자를 만나 혼외정사를 즐긴것을 말하는건 아닐 것이다.
그로 인한 혼외임신이나 이혼요구를 고마와 한다는 것도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녀가 가슴의 피를 토하듯 했던 애원들일 것이다.
가정에 충실해라.
가정이 소중하다.
지금의 부가 평생 간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제발 save하자.
취미는 모든게 남아 돌때 즐기자.
제발 하나밖에 없는 아내를 소중히 여겨달라.
가장의 책임을 염두에 두고 지냈으면 한다.
주로 이런 말들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런 말을 했던 그때의 그 아내는 결국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잠시나마 그의 아이를 가졌었고, 뱃 속의 아이는 사그라들었지만 그에게로 가는 것을 막을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던 그 사내는 다른 여자에게 주희가 늘 조언하고 부탁하고 애원하던 그런 것들을 실천하고 있으니, 인생은 역설인가보다.
그땐 별로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를 얻고 대니는 체험해보지 못한 기쁨과 보람, 그리고 의무감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주희는 어색하게나마 그의 손을 잡아주었고, 두 ex-couple 사이엔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흐른다.
“나도 고마와요......그리고 미,미안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대니씨 행복한 모습보니깐 나도 좋아”
대니의 억센 손이 주희의 허리를 낚아챘고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의 주희의 입술은 대니의 입술에 점령당했다.
주희는 순간 놀라 남은 한손을 치켜 올렸지만 이내 힘없이 내려갔다.
그리고 대니의 두 손은 공손하게 주희의 턱과 뒷목을 붙잡는다.
쪽! 쪽! 쪽.....쪼쪽! 쪼옥!
대니의 입술에서 오는 크고 두툼한 촉감은 주희에겐 잊어버린 익숙함의 기억이다.
(안, 안돼....모, 몰라)
주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감기며 목이 뒤로 조금 재껴진다.
대니는 주희의 허리를 슬쩍 앞으로 끌어당겼다.
조금 탄탄하면서도 물컹한 부드럽고 작은 풍선같은 촉각이 그의 아랫가슴에 전해져 왔다.
대니는 주희가 하드브래지어가 아닌 소프트 브래지어를 착용했음에도, 마치 하드브래지어 차림처럼 보이고 있음에 놀랐고,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주희에게서만 느낄수 있는 유방의 감촉에 반가왔다.
쪼옥....읍후!
대낮의 공공장소에서 두 ex-couple의 강렬한 키스는 계속되었다.
대니는 본능적으로 왼손을 내려 주희의 등아래를 살짝 간지럽히며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를 거쳐 가운뎃편의 팬티라인을 손으로 부드럽게 긋는다.
주희는 역시 거들을 차지 않았음에도 히프가 탄력있게 살아 있었다.
그녀의 팬티라인을 느끼자 대니는 숫컷의 본능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손으로 익숙하게 주희의 허리를 살짝 받치고 다른 손을 올려 주희의 정장 자켓으로 손을 넣어 여성용 와이셔츠와 소프트 브래지어에 가려진 주희의 젖을 살짝 만진다.
턱!
주희는 대니의 가슴의 압력에 밀려나 그녀의 차의 본넷에 히프가 엉거주춤 걸쳐졌고 재빨리 대니의 손은 그녀의 짧은 치맛속으로 침투한다.
거절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입속으로 대니의 혀가 들어와 있었고, 대니는 그녀의 안허벅지를 쓰다듬으며 팬티라인을 족집게처럼 잡아낸뒤 다시 손가락을 그 속으로 침투시킨다.
(읍우우우우)
주희는 속으로 신음을 낸다.
그녀의 예민한 곳, 엉덩이 갈라진 부위로 그 대니란 전남편 녀석의 크고 육중한 손가락이 넘나들고 있고, 항문 괄약근의 호흡이 가빠졌기 때문이다.
그의 손가락은 그러나 주희의 항문 따위는 관심이 없는듯 아래로 더 내려와 주희의 밑보지 외음부를 살짝 건든다.
잠시 아주 잠시나마 무너졌던 주희지만 과거의 오래된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주희는 즐기고 싶지 않았다.
주희는 몸을 흔들었고 자연스레 서로의 입술부터 시작하여 서로의 몸은 떨어졌다.
"헉헉!.....아아, 그만해! 이러지마! 우린 부부가 아니쟎아. 이런 열정과 로맨스는 당신 애들 엄마한테나 발휘해"
"Ohooo! 나도 모르게 그만"
"대니씨.....난, 난.......미안해. 하지만 불륜은 한번으로 족해."
실은 대니가 그냥 놓아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성을 찾은 주희는 대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니씨....방금 이건 그냥 못다한 인사 정도로 받아준거야. 행복해 하면서도 늘 마음 한켠이 찝찝했으니깐.”
주희는 한 손으로 잠시 살짝 흐트러진듯한 머리결을 다듬고, 또 다른 손으로는 자캣과 와이셔츠를 정돈하고 히프를 만지면서 약간 끌어내려진 팬티끈을 바깥에서 잡아 올리면서 진지하게 대니의 행동을 나무랬다.
하지만 그에 대한 혐오감이나 증오감, 거부감은 남아 있지 않았다.
대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희의 어깨를 툭친뒤 한손으로 주희에게 그녀의 차에 탈 것을 권한다.
마침 주희는 어떻게 대니가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궁금했다.
“말해줘, 어떻게 우리집 전화를 알았지?”
“그게 뭐 어렵다구. 네 지금 남편의 full name을 화이트페이지 웹에 들어가서 찍었더니 그냥 일착으로 나오던데. 팔로스버디스에 산다 하니, 아 성공했구나, 편안하게 살고 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아래에 네 이름도 나오던데 뭘.”
“참 안되는게 없는 세상이네? 우리 남편 풀네임을 어떻게 알어? 그것도 영어 스펠로?”
거기까지 말하고 주희는 갑자기 말문을 닫았다.
주희는 외도를 들켰던 직후에 침대에 패대기쳐대고 카펫바닥에 쓰러져 딩굴고 온통 뺨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맞았었다.
사실 준형에게 보낸 이메일은 그 모든 상황을 다 적진 못했다.
주희는 강제로 땅에 엎어지고 무릎이 벌려진 상태에서 대니의 억센 손가락이 그녀의 항문을 마구 쑤셔댔고, 질에서 흘러나와 허벅지를 적시고 항문 주름까지 흘러 들어간 준형의 정액이 그의 손에 묻어났고, 대니는 그의 손가락을 주희의 눈과 코에 갖다 대면서 자백을 강요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주희는 절대로 준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맞다가 죽으면 죽겠다고 결심했었다.
대니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한참전부터 주희의 외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대니의 입장에서 볼때 주희는 남편에게 갑자기 오버스러운 사랑표현을 하거나 너무 신경을 쓰거나, 혹은 무신경하거나, 냉정하거나 그런 행각들이 부조화스럽게 일어났던 것이 의심을 산 것이다.
게다가 부부관계를 할때도 그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희의 피부는 더 탱탱해졌고 성숙해졌고 윤기가 흐르며 얼굴이 진분홍으로 달아 오른 외적 변화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니는 주택단지 측의 협조를 얻어 그 집에 드나들던 차량들에 대한 차적조회를 하다가 준형의 이름 영어 스펠링까지 알게 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주희.....행복해, 부디......”
“대니씨도, 행복하고.....앞으로 나한테 연락하거나 하진 마. 대니씨가 행복한거 확인했으면 됐어. 와이프 외롭게나 하지 말고, 지금처럼 쭉가.”
소리없는 하이브리드 전기 엔진이 작동되며 지랄맞게 찬연한 햇살 사이를 뚫고 주희의 자동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묘한 해방감과 서운함이 함께 하긴 한다.
그녀 스스로가 배반녀이자 불륜녀라는 타이틀에 고민하던 것을 완전히 벗을수 있었던 것은 전 남편 대니와의 만남과 그의 근황에 대한 고백을 듣고 나서다.
하지만, 대니와의 첫 결혼에서 대니의 철없음이 주희를 행복으로 이끌었고, 대니도 더 나은 행복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복잡다단하기는 하다.
아마도 둘이 행복했더라면, 최소 마이너스적 결혼생활이 아니었다면, 대니가 최소한의 책임감을 보이고 사는 남편이었다면, 보수적이고 정숙한 주희는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주희가 느끼고 있는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감과 사랑, 이후 찾은 다른 짝과 느끼고 있는 대니의 행복은 공유할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희는 결론내린다.
역시 결혼생활중 준형을 만난 것을 필연일수밖에 없고, 대니에게도 더 나은 행복을 위한 필연일수밖에 없었노라고.
(오늘 전남편 대니한테 입술 허용한거 준형씨한테 이야기할까?)
미국식 인사로 가벼운 입술맞춤은 허용이 되는 터였지만, 아무래도 정서상 한국인들에게는 용인되는 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아까 주차장에서 대니와의 키스는 가벼운 입맞춤이 아닌, 농도가 짙은 키스씬이었고 잠시나마 그의 손에 히프와 젖을 맡긴건 사실이었다.
주희는 거즈를 꺼내 커피잔과 대니에게 빼앗긴 립글로스를 지웠다.
(아아......)
뜨거워진 가죽쇼파 위에 걸친 그녀의 엉덩이 속이 무언가에 끈쩍끈쩍하면서도 촉촉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그냥 본성적인 것이었을 뿐, 주희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흘러나와 팬티를 적신 질액이 남편에게 의심받을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희는 자기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용납할수가 없었다.
(실수는 한 순간이구나)
주희는 이런 상황을 지나오면서 자기뿐만 아니라 정숙한 유부녀들의 혼외정사를 이해할수 있었다.
하지만 주희에겐 12년전에 시작한 지금은 남편이 된 준형과의 혼외정사가 결코 순간적인 실수가 아니라는 것은 알수 있었다.
준형과 재혼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을때 화장도 안하고 청바지만 입고 학교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강사들이나 외국인 연하남들이 들이대는 것을 경험했던 주희는 냉정하고 단칼에 그들의 접근을 끊어냈던 것을 기억했다.
결국 자신과 배우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사를 명확히 하고 끊을때 끊는것만이 불륜을 예방하는 길이라 생각해 본다.
주희는 다시는 혼외데이트와 혼외정사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 마음 속으로 수십번이나 다짐했다.
준형 이외에 더 이상 사랑하는 남자가 없다는 것에 대하여 최면을 걸지만, 설령 그걸 깨고 누군가 앞에 나타나더라도 주희에겐 더 이상의 옵션이나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이들 부부는 서로에게 절대로 비밀이 없기를 약속한 터였다.
말하면 어찌될지 모른다.
주희는 야단맞게 되겠지만 준형의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주희는 무슨 이유던지 남편 준형에게 야단맞거나 꾸중을 듣는 상황 자체에 대하여 전혀 거부감이 없는터였다.
그럼에도 주희는 사랑을 의심해 본적이 없고, 그런 남편을 존경한다.
그보다도 준형은 그녀가 사랑하고 쟁취한 여자의 전남편이 행복을 찾았고, 주희에게도 덕담과 행복을 빌어주며 인사성 화해 차원의 입맞춤을한 것이라면 그도 기뻐해줄 것이라고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준형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아내를 빼앗은 것에 대한 윤리적 죄책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어쩌면 이번 일을 통해서 그의 마음 한켠에 존재하는 담석을 빼낼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슴과 엉덩이를 순간이나마 내어 맡긴 일은 준형에게 비밀로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녀가 사는 주택 단지로 올라가기 위해 신호대기를 하며 앞유리를 살짝 내리자 초봄의 따사로운 기운이 차 안으로 스며든다.
맞은편에 다가오는 차량, 야한 핑크빛의 94년식 현대 액센트가 그녀의 반대편으로 스쳐지나간다.
작고 동글동글했던 차체에 유난히도 야한 색깔이 많았던 모델이며, 한국에서는 자취를 감춘 차량이다.
대학 2학년때 미술도구를 실어나르라고 아버지가 사주었던 것으로 색깔도 똑같은 차고 미국 오기 전에 팔아치웠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 반대편으로 42세의 성숙한 주부가 된 연주희의 최신형 렉서스 하이브리드 차량이 소리없이 치고 올라가다가 경사가 급했던지 결국엔 엔진 부밍음을 낸다.
(앗! 잠깐만요!)
주희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반대편 차량을 향해 소리쳤다.
물론 그 차주인은 당연히 못들었을 것이다.
백밀러를 향해 혼잣말로 외친 소리가 들렸을리 만무하다.
어쩌면 주희가 스스로의 내면과 과거를 향해 소리친 것일런지도 모른다.
주희는 백밀러로 반대편의 자기가 소유했던것과 같은 모델과 색상의 모델을 액센트 차량을 발견했을때 그녀의 여대생시절의 모습과 흡사한, 살짝 길쭉한 계란형의 얼굴에 긴 쌩머리를 한 젊은 동양인 여성 운전자를 붙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차는 한점이 되고 반점이 되며 사라져 갔고 더 이상 시야에 잡히지 않았을때에야 진정한 인생의 1막이 내려졌음을 실감한다.
그 차가 한국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과거에서 자유로와질 자신을 생각해본다.
이리저리 뱀처럼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산꼭대기의 2/3쯤 올라와서 오른편으로 돌고, 대여섯채의 집을 지나 왼편으로 도니 그녀의 집이 나온다.
집의 정면을 지난다.
정면을 돌아야 차고가 나오기 때문이다.
[Joon Hyung Yeon"s]
주희는 집의 정면에 걸린 문패를 잠시 바라보다가 예전에 대니와 결혼생활을 하며 준형을 만날때 준형이 격렬한 정사의 순간에 외치던 말이 떠오른다.
대담하게 외간남자인 준형을 자기의 집으로 끌어들였던 주희, 그들의 결혼사진이 내려다보는 앞에서 그 전남편 대니와 쓰는 침대 위에서 뒹굴었을때 준형은 "네 집에 내 문패를 걸고야 말겠어"라고 몇번이나 숨이 가쁜 상황에서 외치는 것을 들었을때, 주희는 흥분 중에서도 묘한 기분이 와 닿았었다.
이 집을 구했을때 주희는 제일 먼저 그때 일을 떠올리고는 새 남편 준형의 문패를 주문하며 이리저리 까다롭게 디자인을 골랐다.
결국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주희가 폰트와 프레임을 직접 디자인해서 맡겼을 때의 일이다.
(그냥 대충 주문해)
이 말에 주희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준형에게 처음으로 공격적으로 대들었다.
그리고 준형이 주희를 억지로 달랬지만 주희는 진심으로 울음을 터뜨렸었다.
변한 것인가, 아니면 그때 그 정사의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했던 말을 바보같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준형은 비로서 그때의 일을 기억해 내고 주희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주희는 다시금 준형의 문패를 바라보며 12년전 일과 8년전 옛일 돌이켜본 뒤 의미를 알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오후 세시가 되면 렛슨생이 온다.
불편한 정장을 벗고 학생을 맞아야 한다.
학생을 보내고 나면, 집안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밥을 앉혀 놓고 난뒤 우아하고 섹시한 홈드레스를 입을 것이다.
때로는 노팬티, 때로는 섹시한 팬티, 맨스중일때는 멋없는 팬티.
그리고 매스터 베드룸에 있는 메이크업 룸에서 학생들도, 학생 엄마들도 거의 보지 못한 풀메이크업을 하는데 반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다.
차고문을 닫고 차에서 내려 주방으로 통하는 쪽문을 열자 이제 그런 과업을 요구하고 있는 그녀의 세간이 그녀의 시야에 펼쳐진다.
같은 여자들도 이런 것에 대하여 요란떤다고 말할지도 모르고, 괜히 민망스럽다고 할수도 있는 행위를 주희는 10여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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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3
주희는 그녀 남편 대니와 결별한뒤 몇개월 간의 유산후 몸조리를 겸한 휴식과 소강상태를 벗어난뒤 나와 결혼하면서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때 전남편 Cho씨 성과 자신의 Jeon씨 성을 완전히 삭제하고 나의 연씨성을 그대로 따랐다.
소위 말하는 미국식 호주제도이다.
그렇게 해서 10여년이 흘렀다.
현재 나의 수입은 세후 연봉이 25만불고, 별도로 전년도 순익의 인센티브인 대략 10~15만불을 삼개월마다 한번씩 분할해서 받는다.
규모가 작은 회사이지만 이사라는 직함으로 오너를 대신해 관리해 주고 있다.
이 정도면 팔로스버디스같은 고급 주택가에서 집을 소유하고 전업주부에 가까운 아내와 단둘이 사는데는 넘치도록 남는다.
오랫만에 엘에이의 코리아타운에서 친한 사람들과 만났다.
‘함께 사는 아내 주희’가 차려주는 음식보다는 못하지만, 무제한 고기라던지 사시미라던지, 각종 전골에 소주가 기본인 식당들, 그곳에 가면 한국서 즐기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할수 있다.
맥주로는 기본적으로 한국산 맥주가 서브된다. 솔직히 맛대가리 하나 없다.
왜냐면 제대로 된 호프의 양이 들어가지 않고 원매뉴얼대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오만 세계의 맥주의 맛을 다 보기에 한국맥주가 얼마나 맛이 없는지를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곳에서 한국맥주를 시킨다는 것은 그저 한국적인 분위기와 추억을 실감하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이곳은 미국인지 한국인지도 분간이 안된다.
안주를 비롯한 음식과 술상은 아내 주희가 해주는 것보다 못하다.
아내 주희가 나를 위해서 와인이나 위스키, 소주를 서브할때 만들어주는 안주는 정말 깔끔하면서도 맛이 깊었다.
그리고 종종 아내 주희는 직장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술 한잔 걸치자는 제안을 한다.
그 의미는 집에서 우리 둘이 술을 마시는 것이었고 주희는 익숙한 솜씨로 위스키나 댓클라 칵테일을 만들거나 와인을 따르고, 거기에 맞는 안주를 조리해서 서브한다.
때로는 소주나 맥주를 서브하기도 하는데, 맥주는 라거계통보다는 에일즈계통을 선호한다.
최근엔 한국소주도 희석식보다는 증류식소주를 가져다 놓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것과 어울리는 안주를 만들어 놓는다.
아내 주희는 또한 그런 날엔 어느때보다도 더 섹시한 차림과 화장으로 내 술시중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서너잔 정도는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분위기를 맞춰준다.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나 지인들은 나름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맨날 얼굴쳐다볼 사이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즐기고 있는 상황이란, "옆에 아내 주희가 없는" 상황이다.
일년에 서너번 정도에 불과했지만 내겐 정말 보약같은 시간이다.
난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이런 아내 주희가 옆에 없는 시간을 연장시킬까 고민하다가 과음해 버렸다.
친구들이 불러준 대리운전기사와 함께 내 집으로 끌려 내려갈수 밖에 없었다.
대리운전사업이라는거, 한국에는 꽤 활성화되어 있지만 원래 엘에이 한인타운이 대리운전의 원조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한국에 별로 없다.
음주단속이 심한 미국에서, 무허가 자가용 택시 기사들이 술집이나 룸싸롱 근방에 진치고 있다가 차를 두대를 보내주는 그런 시스템이다.
한국에는 그것이 정규적인 시스템으로 정착했고, 미국의 현지 경찰국에서는 무허가 사업이라면서 가끔 으름짱을 놓긴 하지만서두 음주운전 사고를 예방한다는 측면과, 경기활성화 측면에서 그저 묵인하고 있다.
취중이긴 하지만 내 차에 실려 프리웨이에 올라서자 안도감보다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은 심정이 든다.
결혼후 ‘아내 주희’는 내가 별도의 취미생활을 갖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았다.
대니 조라는 첫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트라우마인듯 싶다.
그래서 대학원시절부터의 취미인 산악자전거 라이딩도 버렸고, 기껏해야 매일 저녁 식사후 혼자 피트니스 센터에서 한시간반 정도 단련을 하고 오는 것이 운동이자 취미의 모든 것이 되어 버렸다.
그 덕에 아직도 내 몸은 몸짱에 가까운 상태가 유지되고 있긴 하다.
이만하면 내가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것이다.
아내 주희에게 오늘 시내 나가서 술먹고 온다고 물론 이야기는 했다.
"오랫만에 친구분들 만나시는거니깐 잘 즐기세요. 과음하시지 말고요. 일찍 들어오셔야 해요"
그 말을 분석하면 짧고 굵게 즐기며 술 조금 먹고 일찍 들어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잘해야 9시까지가 귀가 통금시간이라는건데, 만취 상태가 되어버린데다가 1차 저녁을 겸한 술집, 2차로 노래방에서 맥주와 안주를 시켜 먹었으니 12시가 가까와 버렸다.
내 차는 캐딜락 CTS 쿠페 3.6이다.
문이 두짝밖에 없어 기사의 옆에 앉은채 드문드문 차내 시계를 들여다보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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