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녀의 과거...
지금 내 눈을 의심하며 손으로 눈을 비비고 있다. 믿을 수 없는... 믿겨지지 않는 일인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납득해야 할까. 의식이 없이 뇌사상태로 갈 수도 있다던 그녀가 두 가지 모습으로 내 앞에 있다. 침대의 그녀와 부드러운 웃음으로 말을 걸고 있는 그녀. 귀신인가? 유체이탈과 같은 그런 현상인가? 의대를 다니는 나에게 의학적으로 이해불가의 상황이다.
“이... 이게... 어떻게...”
“나도 모르겠어, 그냥 눈을 떠보니... 내가 분명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란...”
“귀신인가... 요...?”
“뭐? 그럼 나 죽은 거야?!”
“옴마나...”
죄 없는 내 볼을 꼬집어보며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났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위에 눌린 악몽인가 아니면 그녀가 깨어날 거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예지몽인가. 아프다. 내 볼에서 열이 나고 통증을 느낀다. 꿈은 아니라는 소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심정을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현실을 부정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하며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할 것이다. 귀신과 대화하는 내가 미친놈처럼 보였으니.
“당... 당신... 대체 누... 누구야?!”
“동생, 나야. 누나라고.”
“그렇다면 침대의 저 여자는 누구란 말이야?”
“그것도 나야, 나도 지금 이런 현실이 믿겨지지 않아. 나... 설마 죽은 거니?”
“헐...”
미쳐버릴 노릇이다. 귀신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보고 자기가 죽었냐며 물어보는데...
“의... 의사, 의사 선생님!”
“그래, 빨리 불러. 나도 사실을 알아야겠어.”
“간호사, 간호사!”
내가 뒤로 물러나며 놀란 모습으로 급하게 소리를 지르자 병실 밖에 있던 간호사들이 불이나케 달려왔다.
“무슨 일이세요?”
“저... 저기!”
“네?”
“저기... 저기 보세요!”
“어디요?”
“저기!”
내가 있는 곳으로 간호사 두 명이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나를 향해 아직도 앉아 있는 그녀를 가리키며 확인해 보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 말에 간호사들이 내가 가리킨 곳을 일제히 쳐다본다. 그곳에는 얌전하게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그녀가 있었고 나의 소리를 그냥 혼자 짓거리는 미친짓에 불과했다.
“저기 여자가 앉아 있는 것 안 보이세요?!”
“여... 자?”
“아, 답답하네. 저기 앉아 있잖아요!”
“저기... 보호자님, 지금 시간이 많이 늦은 시간인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안 됩니다.”
“소란? 이게 소란처럼 보이세요?”
아무런 일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돌아가는 간호사들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미친 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침대를 확인하려 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보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왜 그냥 돌아가?”
“헉...!!”
고개를 돌리자 바로 뒤에서 나에게 간호사들이 그냥 돌아가는 이유를 묻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 넘어졌다. 웬만한 호로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순간이다.
“간호사! 간호사!!”
“왜 그러세요?”
다시 달려온 간호사들이 넘어져 있는 나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운다. 그러며 도대체 이 새벽에 왜 그런지 이유를 물으며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귀... 귀신... 저기 귀신...”
“네?”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저기...”
“두리번두리번.”
“어디요?”
“안 보이세요?”
“하...”
한숨을 깊게 내 쉬는 간호사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을 했다.
“보호자님, 자꾸 이렇게 하시면 경비를 부르겠어요.”
“헐...”
소란을 피운 다는 이유로 경비를 부르겠다는 협박아닌 협박을 하는 간호사에게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눈에만 보이는 그녀가 나를 협박하고 있는 간호사 옆으로 다가가 손으로 간호사의 얼굴 앞에서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운 장면에 두 눈이 커져 지켜보기만 했다.
“그럼 위급한 상황에 불러 주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가는 간호사... 내가 미친 게 확실했다.
“어머, 저 언니는 나 안 보이나봐. 진짜 내가 죽었나봐.”
“크흑...”
황당한 일이 벌어졌고 그렇게 나는 새벽에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병원 밖으로 나섰다. 물론 그녀와 함께 말이다. 병원 밖에 있는 작은 벤치를 발견하고 자리에 앉아 하늘에 보이는 별을 쳐다봤다. 이것은 현실이 아닌 꿈이라 믿으며 말이다.
“뭘 그렇게 쳐다봐?”
“깜짝이야!”
그녀가 하늘을 바라보는 내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밀어 눈을 마주치게 했다. 그 때문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그렇게 얼굴을 대시면... 놀라잖아요.”
“자기는 내가 보이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보이지 않을까?”
“정말... 돌아가신 것 같은데...”
“정말? 나 죽었어?”
“모르겠어요, 내가 미쳐서 죽을 것 같아요.”
“아직 젊은 나인데... 이렇게 죽으면 아까워서 어쩌지?”
“그게 지금 말이라고...”
“에잇! 모르겠다!”
“......”
벤치에 앉아 있는 내 무릎에 머리를 베고는 대자로 벌러덩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특별히 해줄 말이 없었다. 뭐랄까... 지금 내 기분은 신기함과 어색함이 공존하고 있다. 무릎을 베고 있는 그녀, 아직 호흡이 끊기지 않은 상태인데... 영혼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런데 동생, 나는 여기 왜 온거야?”
“그게... 아침에 어디를 급하게 가시다가 교통사고가 나셨어요. 그래서...”
“여기는 어딘데?”
“대전이요.”
“대전?”
“사고가 나고 남편 분과 연락이 되었어요. 군인이시던데...”
“......”
남편 얘기에 그녀의 입이 굳게 다물어 졌다. 말하면 안 될 사람의 존재를 밝히게 되어 실수했다는 기분까지 들만큼 그녀에게 남편이란 존재는 비밀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말이 없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남편 분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 사람이 날 이곳으로 부른 건가? 왜 일까...”
“그 분이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누나 다친 모습을 보고요.”
“그 사람이? 설마...”
“정말이에요. 눈물까지 흘리셨는데.”
“훗... 웃기는 소리.”
“?”
무슨 이유였을까. 남편의 눈물 얘기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심한 코웃음을 치는 모습이 왠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궁금한 마음에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남편 분과... 싸우셨어요?”
“......”
“그렇다고 해도 남편을 존중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사정이야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껄이지마.”
“네?”
나의 얘기에 욱한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먼 곳을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분명...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부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궁금해 할 이유는 없었지만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에 화색이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쓰레기 같은 놈.
“그 사람... 날 버리고 도망쳤어.”
“뭐라고요?”
“우리 아이와 함께 같이 살자고 얼마나 부탁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릴 버렸어.”
“아... 아이...”
“맞아, 내가 잘못 한 거야. 그때 그렇게 쉽게 몸을 허락하는 게 아니었어.”
“누... 누나...”
............
..................
.........................
내 나이 18살 때, 교복을 입은 모습은 인형처럼 귀엽게만 보였지. 학교를 가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함께 등교를 하기 위해서 친구 집으로 가는 길이였어.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내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지. 그래서 돌아보게 되었어.
“응?”
“헉...”
“야, 거기. 너 누구야?”
돌아서서 누구냐고 물어보니 깜짝 놀란 남편... 도균이가 급하게 가로수 뒤로 몸을 숨기는 거야. 하지만 몸 전체를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민망했던지 느릿느릿 얼굴을 보이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더군.
“안... 안녕.”
“응, 안녕. 그런데 넌 누구야? 왜 내 뒤를 ?아오는 거야?”
“너무... 예뻐서...”
“뭐?”
“......”
“하하하! 내가 예뻐?”
“응.”
“데이트 신청하고 싶어서?”
“응...”
“푸하하! 좋아, 바쁜데 잠깐 얘기만 해줄게.”
“정... 정말?!”
“응.”
귀여웠어. 그 때의 도균이는... 나에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쉬를 한 남자도 없었지만 너무 귀여웠어. 그래서 쉽게 시간을 허락했던 것 같아. 근처 공원에서 음료수를 같이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나와 마음이 딱 맞더라고. 우리는 그 뒤 몇 번 더 만나 사귀자는 약속을 하고 연인이 되었어.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모두 외출하시고 없다며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도균이가 자기 방에서 할 얘기가 있다고 집으로 찾아간 날 안내했어.
“나... 독일로 떠나. 부모님과 함께...”
“도균아, 정말 가는 거야?”
“아버지가 회사에서 발령을 받았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러면... 언제 오는데?”
“2년 후.”
“나는 그 동안 어떻게 해? 너 보고 싶은데...”
“나도... 그래서... 그래서...”
“응?”
도균이가 천천히 나에게 몸을 밀며 다가왔고 놀란 내가 뒷걸음질로 뒤로 물러서자 계속 나를 향해 걸어왔어. 그리고 내 등이 방 벽에 닿자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음을 인지하게 되었지. 도균이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제일 먼저 이마에 뽀뽀를 하고는 귀와 목에 키스를 해주더군.
“내가 외국에서 잠시 살다 오지만... 절대 너를 잊을 수 없어.”
“나도, 나도 도균이를 못 잊어.”
“그럼... 내 사랑을 허락해 줘.”
“......”
도균이는 나의 입술을 훔치고 손으로는 아직 영글지 않고 앙증맞은 젖가슴을 훔치기 시작했어.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 무섭기보다 황홀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썩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지. 우리의 입술이 서로 닿고 도균의 혀가 내 혀를 찾아 입 안으로 들어오며 끈끈한 타액이 길게 늘어졌고 도균이의 손에 벗겨진 내 블라우스 안의 젖가슴을...
“으음...”
“헉헉... 강희야... 쭙쭙...”
“어헉...”
나의 젖꼭지를 빨며 내가 입고 있던 치마를 들어 올리고 팬티를 내리더군. 그 순간 놀란 내가 도균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지만 이미 흥분한 도균이의 행동을 멈출 수는 없었어. 내 팬티를 벗겨 낸 뒤 나를 자신의 책상 위로 오려 놓고는 다리를 벌리게 하고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도균이에게 물었지.
“우리... 이렇게 해도 될... 까?”
“내 사랑을 받아줘. 제발...”
“하... 하지만... 흐윽!”
“아...”
딱 한 번의 섹스... 내 질구 안에 뜨거운 사정을 하더군. 그게 내 인생의 첫 경험이었어. 도균이는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멀리 독일로 향했고 연락이 닿지 않은 채 2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왔고 나를 만난다는 사실에 도균이는 너무 기뻐 쏜살 같이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달려왔어. 부모님을 일찍 여윈 나는 그 때 동네에 작은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강희야! 최강희~ 나왔어!!”
“도균아...”
“응애~ 응애~!”
우리 사이에서 나온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쳐다만 보다 조용히 문을 닫고는 사라졌어. 나도 그때는 어떻게 해명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만 한 상태였고... 그리고 며칠 뒤 도균이에게 짧은 쪽지 편지를 받게 되었지.
“미안해... 어디에서든 잘 살아. 그리고 나는 절대... 그 아이의 아빠가 아니야.”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한 번만 만나달라고... 우리 아이가 입양을 가게 생겼다고... 사정하며 울고불고 부탁했지만 도균이는 나와 그 아이를 인정하지 않았어. 그렇게... 내 아이가 외국으로 입양을 가고 우리의 사이는 끝이 났지. 그리고 다시 1년이 흐른 뒤, 도균이는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술이 잔득 취한 채 찾아왔어.
“강희야... 내가 잘 못했어. 내가 정말 죽일 놈이야...”
“됐어, 더 이상 할 말 없어. 그만 돌아가 줘.”
“날 죽여도 좋아... 하지만... 우리 사랑스러운 아기를 다시 찾아오자.”
“뭐라고?”
“진심이야, 나 정말 내 새끼 꼭 찾고 싶다고.”
“도균아... 정말이지?”
“응.”
“고마워.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나에게 무릎 꿇고 잘못했다며 사정을 하고 빌더군. 입양을 간 아이를 꼭 찾고 싶다고... 자기의 소중한 생명이라며 나에게 화해를 신청했고 난 도균의 마음을 받아주었지. 그 날도 뜨거운 밤을 보내며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어. 다음 날 아이를 찾기 위해 입양을 보낸 시설에 찾아가니 혼인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찾는다 해도 돌려받기 힘들다는 거야.
“강희야, 혼인신고를 하자.”
“고마워. 정말...”
그렇게 우리는 혼인신고를 하며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지. 하지만 우린 너무 어렸고 힘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도균이는 군대로 도망가듯 입대를 결정했어. 도균이가 입대를 하는 전날 밤... 술에 취한 도균이가 집으로 돌아왔어.
“끄윽... 아, 취한다.”
“어디서 이렇게 술을 마셨어? 똑바로 걸어 봐.”
“야! 어디서 하늘 같은 남편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질이야?!”
“돈도 없으면서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
“돈? 야, 너 내가 돈으로 밖에 안 보이지?”
“뭐... 뭐라고?”
“더러운 년...”
“도균아,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아이도 아닌데 내가 그 아이를 찾겠다고 쓴 돈이 얼만지 알아?”
“!”
“솔직히 나 독일에 있을 때... 어떤 놈이랑 붙어서 만들어 놓고 내 아이라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너... 정말...”
“꺼져, 이 걸레 같은 년.”
“......!”
.........................
..................
............
잠시 사색에 잠겼던 그녀가 조용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게... 남편이라 불리는 남자와의 마지막이었지.”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남편? 웃기지 말라고 해.”
“누나...”
뜻하지 않게 듣게 된 그녀의 과거... 남편이라는 존재와 있었던 어두운 얘기를 듣자 내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고 등을 돌리며 앉아 있는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불쌍한 여자를 내가 마음에 담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한의 책임감을 느낀다. 황당한 그녀의 영혼 같은 모습과 첫날을 보내게 된 첫날 새벽이었다.
지금 내 눈을 의심하며 손으로 눈을 비비고 있다. 믿을 수 없는... 믿겨지지 않는 일인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납득해야 할까. 의식이 없이 뇌사상태로 갈 수도 있다던 그녀가 두 가지 모습으로 내 앞에 있다. 침대의 그녀와 부드러운 웃음으로 말을 걸고 있는 그녀. 귀신인가? 유체이탈과 같은 그런 현상인가? 의대를 다니는 나에게 의학적으로 이해불가의 상황이다.
“이... 이게... 어떻게...”
“나도 모르겠어, 그냥 눈을 떠보니... 내가 분명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란...”
“귀신인가... 요...?”
“뭐? 그럼 나 죽은 거야?!”
“옴마나...”
죄 없는 내 볼을 꼬집어보며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났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위에 눌린 악몽인가 아니면 그녀가 깨어날 거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예지몽인가. 아프다. 내 볼에서 열이 나고 통증을 느낀다. 꿈은 아니라는 소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심정을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현실을 부정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하며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할 것이다. 귀신과 대화하는 내가 미친놈처럼 보였으니.
“당... 당신... 대체 누... 누구야?!”
“동생, 나야. 누나라고.”
“그렇다면 침대의 저 여자는 누구란 말이야?”
“그것도 나야, 나도 지금 이런 현실이 믿겨지지 않아. 나... 설마 죽은 거니?”
“헐...”
미쳐버릴 노릇이다. 귀신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보고 자기가 죽었냐며 물어보는데...
“의... 의사, 의사 선생님!”
“그래, 빨리 불러. 나도 사실을 알아야겠어.”
“간호사, 간호사!”
내가 뒤로 물러나며 놀란 모습으로 급하게 소리를 지르자 병실 밖에 있던 간호사들이 불이나케 달려왔다.
“무슨 일이세요?”
“저... 저기!”
“네?”
“저기... 저기 보세요!”
“어디요?”
“저기!”
내가 있는 곳으로 간호사 두 명이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나를 향해 아직도 앉아 있는 그녀를 가리키며 확인해 보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 말에 간호사들이 내가 가리킨 곳을 일제히 쳐다본다. 그곳에는 얌전하게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그녀가 있었고 나의 소리를 그냥 혼자 짓거리는 미친짓에 불과했다.
“저기 여자가 앉아 있는 것 안 보이세요?!”
“여... 자?”
“아, 답답하네. 저기 앉아 있잖아요!”
“저기... 보호자님, 지금 시간이 많이 늦은 시간인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안 됩니다.”
“소란? 이게 소란처럼 보이세요?”
아무런 일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돌아가는 간호사들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미친 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침대를 확인하려 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보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왜 그냥 돌아가?”
“헉...!!”
고개를 돌리자 바로 뒤에서 나에게 간호사들이 그냥 돌아가는 이유를 묻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 넘어졌다. 웬만한 호로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순간이다.
“간호사! 간호사!!”
“왜 그러세요?”
다시 달려온 간호사들이 넘어져 있는 나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운다. 그러며 도대체 이 새벽에 왜 그런지 이유를 물으며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귀... 귀신... 저기 귀신...”
“네?”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저기...”
“두리번두리번.”
“어디요?”
“안 보이세요?”
“하...”
한숨을 깊게 내 쉬는 간호사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을 했다.
“보호자님, 자꾸 이렇게 하시면 경비를 부르겠어요.”
“헐...”
소란을 피운 다는 이유로 경비를 부르겠다는 협박아닌 협박을 하는 간호사에게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눈에만 보이는 그녀가 나를 협박하고 있는 간호사 옆으로 다가가 손으로 간호사의 얼굴 앞에서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운 장면에 두 눈이 커져 지켜보기만 했다.
“그럼 위급한 상황에 불러 주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가는 간호사... 내가 미친 게 확실했다.
“어머, 저 언니는 나 안 보이나봐. 진짜 내가 죽었나봐.”
“크흑...”
황당한 일이 벌어졌고 그렇게 나는 새벽에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병원 밖으로 나섰다. 물론 그녀와 함께 말이다. 병원 밖에 있는 작은 벤치를 발견하고 자리에 앉아 하늘에 보이는 별을 쳐다봤다. 이것은 현실이 아닌 꿈이라 믿으며 말이다.
“뭘 그렇게 쳐다봐?”
“깜짝이야!”
그녀가 하늘을 바라보는 내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밀어 눈을 마주치게 했다. 그 때문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그렇게 얼굴을 대시면... 놀라잖아요.”
“자기는 내가 보이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보이지 않을까?”
“정말... 돌아가신 것 같은데...”
“정말? 나 죽었어?”
“모르겠어요, 내가 미쳐서 죽을 것 같아요.”
“아직 젊은 나인데... 이렇게 죽으면 아까워서 어쩌지?”
“그게 지금 말이라고...”
“에잇! 모르겠다!”
“......”
벤치에 앉아 있는 내 무릎에 머리를 베고는 대자로 벌러덩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특별히 해줄 말이 없었다. 뭐랄까... 지금 내 기분은 신기함과 어색함이 공존하고 있다. 무릎을 베고 있는 그녀, 아직 호흡이 끊기지 않은 상태인데... 영혼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런데 동생, 나는 여기 왜 온거야?”
“그게... 아침에 어디를 급하게 가시다가 교통사고가 나셨어요. 그래서...”
“여기는 어딘데?”
“대전이요.”
“대전?”
“사고가 나고 남편 분과 연락이 되었어요. 군인이시던데...”
“......”
남편 얘기에 그녀의 입이 굳게 다물어 졌다. 말하면 안 될 사람의 존재를 밝히게 되어 실수했다는 기분까지 들만큼 그녀에게 남편이란 존재는 비밀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말이 없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남편 분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 사람이 날 이곳으로 부른 건가? 왜 일까...”
“그 분이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누나 다친 모습을 보고요.”
“그 사람이? 설마...”
“정말이에요. 눈물까지 흘리셨는데.”
“훗... 웃기는 소리.”
“?”
무슨 이유였을까. 남편의 눈물 얘기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심한 코웃음을 치는 모습이 왠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궁금한 마음에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남편 분과... 싸우셨어요?”
“......”
“그렇다고 해도 남편을 존중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사정이야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껄이지마.”
“네?”
나의 얘기에 욱한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먼 곳을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분명...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부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궁금해 할 이유는 없었지만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에 화색이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쓰레기 같은 놈.
“그 사람... 날 버리고 도망쳤어.”
“뭐라고요?”
“우리 아이와 함께 같이 살자고 얼마나 부탁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릴 버렸어.”
“아... 아이...”
“맞아, 내가 잘못 한 거야. 그때 그렇게 쉽게 몸을 허락하는 게 아니었어.”
“누...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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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18살 때, 교복을 입은 모습은 인형처럼 귀엽게만 보였지. 학교를 가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함께 등교를 하기 위해서 친구 집으로 가는 길이였어.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내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지. 그래서 돌아보게 되었어.
“응?”
“헉...”
“야, 거기. 너 누구야?”
돌아서서 누구냐고 물어보니 깜짝 놀란 남편... 도균이가 급하게 가로수 뒤로 몸을 숨기는 거야. 하지만 몸 전체를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민망했던지 느릿느릿 얼굴을 보이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더군.
“안... 안녕.”
“응, 안녕. 그런데 넌 누구야? 왜 내 뒤를 ?아오는 거야?”
“너무... 예뻐서...”
“뭐?”
“......”
“하하하! 내가 예뻐?”
“응.”
“데이트 신청하고 싶어서?”
“응...”
“푸하하! 좋아, 바쁜데 잠깐 얘기만 해줄게.”
“정... 정말?!”
“응.”
귀여웠어. 그 때의 도균이는... 나에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쉬를 한 남자도 없었지만 너무 귀여웠어. 그래서 쉽게 시간을 허락했던 것 같아. 근처 공원에서 음료수를 같이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나와 마음이 딱 맞더라고. 우리는 그 뒤 몇 번 더 만나 사귀자는 약속을 하고 연인이 되었어.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모두 외출하시고 없다며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도균이가 자기 방에서 할 얘기가 있다고 집으로 찾아간 날 안내했어.
“나... 독일로 떠나. 부모님과 함께...”
“도균아, 정말 가는 거야?”
“아버지가 회사에서 발령을 받았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러면... 언제 오는데?”
“2년 후.”
“나는 그 동안 어떻게 해? 너 보고 싶은데...”
“나도... 그래서... 그래서...”
“응?”
도균이가 천천히 나에게 몸을 밀며 다가왔고 놀란 내가 뒷걸음질로 뒤로 물러서자 계속 나를 향해 걸어왔어. 그리고 내 등이 방 벽에 닿자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음을 인지하게 되었지. 도균이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제일 먼저 이마에 뽀뽀를 하고는 귀와 목에 키스를 해주더군.
“내가 외국에서 잠시 살다 오지만... 절대 너를 잊을 수 없어.”
“나도, 나도 도균이를 못 잊어.”
“그럼... 내 사랑을 허락해 줘.”
“......”
도균이는 나의 입술을 훔치고 손으로는 아직 영글지 않고 앙증맞은 젖가슴을 훔치기 시작했어.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 무섭기보다 황홀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썩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지. 우리의 입술이 서로 닿고 도균의 혀가 내 혀를 찾아 입 안으로 들어오며 끈끈한 타액이 길게 늘어졌고 도균이의 손에 벗겨진 내 블라우스 안의 젖가슴을...
“으음...”
“헉헉... 강희야... 쭙쭙...”
“어헉...”
나의 젖꼭지를 빨며 내가 입고 있던 치마를 들어 올리고 팬티를 내리더군. 그 순간 놀란 내가 도균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지만 이미 흥분한 도균이의 행동을 멈출 수는 없었어. 내 팬티를 벗겨 낸 뒤 나를 자신의 책상 위로 오려 놓고는 다리를 벌리게 하고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도균이에게 물었지.
“우리... 이렇게 해도 될... 까?”
“내 사랑을 받아줘. 제발...”
“하... 하지만... 흐윽!”
“아...”
딱 한 번의 섹스... 내 질구 안에 뜨거운 사정을 하더군. 그게 내 인생의 첫 경험이었어. 도균이는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멀리 독일로 향했고 연락이 닿지 않은 채 2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왔고 나를 만난다는 사실에 도균이는 너무 기뻐 쏜살 같이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달려왔어. 부모님을 일찍 여윈 나는 그 때 동네에 작은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강희야! 최강희~ 나왔어!!”
“도균아...”
“응애~ 응애~!”
우리 사이에서 나온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쳐다만 보다 조용히 문을 닫고는 사라졌어. 나도 그때는 어떻게 해명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만 한 상태였고... 그리고 며칠 뒤 도균이에게 짧은 쪽지 편지를 받게 되었지.
“미안해... 어디에서든 잘 살아. 그리고 나는 절대... 그 아이의 아빠가 아니야.”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한 번만 만나달라고... 우리 아이가 입양을 가게 생겼다고... 사정하며 울고불고 부탁했지만 도균이는 나와 그 아이를 인정하지 않았어. 그렇게... 내 아이가 외국으로 입양을 가고 우리의 사이는 끝이 났지. 그리고 다시 1년이 흐른 뒤, 도균이는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술이 잔득 취한 채 찾아왔어.
“강희야... 내가 잘 못했어. 내가 정말 죽일 놈이야...”
“됐어, 더 이상 할 말 없어. 그만 돌아가 줘.”
“날 죽여도 좋아... 하지만... 우리 사랑스러운 아기를 다시 찾아오자.”
“뭐라고?”
“진심이야, 나 정말 내 새끼 꼭 찾고 싶다고.”
“도균아... 정말이지?”
“응.”
“고마워.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나에게 무릎 꿇고 잘못했다며 사정을 하고 빌더군. 입양을 간 아이를 꼭 찾고 싶다고... 자기의 소중한 생명이라며 나에게 화해를 신청했고 난 도균의 마음을 받아주었지. 그 날도 뜨거운 밤을 보내며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어. 다음 날 아이를 찾기 위해 입양을 보낸 시설에 찾아가니 혼인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찾는다 해도 돌려받기 힘들다는 거야.
“강희야, 혼인신고를 하자.”
“고마워. 정말...”
그렇게 우리는 혼인신고를 하며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지. 하지만 우린 너무 어렸고 힘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도균이는 군대로 도망가듯 입대를 결정했어. 도균이가 입대를 하는 전날 밤... 술에 취한 도균이가 집으로 돌아왔어.
“끄윽... 아, 취한다.”
“어디서 이렇게 술을 마셨어? 똑바로 걸어 봐.”
“야! 어디서 하늘 같은 남편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질이야?!”
“돈도 없으면서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
“돈? 야, 너 내가 돈으로 밖에 안 보이지?”
“뭐... 뭐라고?”
“더러운 년...”
“도균아,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아이도 아닌데 내가 그 아이를 찾겠다고 쓴 돈이 얼만지 알아?”
“!”
“솔직히 나 독일에 있을 때... 어떤 놈이랑 붙어서 만들어 놓고 내 아이라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너... 정말...”
“꺼져, 이 걸레 같은 년.”
“......!”
.........................
..................
............
잠시 사색에 잠겼던 그녀가 조용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게... 남편이라 불리는 남자와의 마지막이었지.”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남편? 웃기지 말라고 해.”
“누나...”
뜻하지 않게 듣게 된 그녀의 과거... 남편이라는 존재와 있었던 어두운 얘기를 듣자 내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고 등을 돌리며 앉아 있는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불쌍한 여자를 내가 마음에 담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한의 책임감을 느낀다. 황당한 그녀의 영혼 같은 모습과 첫날을 보내게 된 첫날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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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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