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컴퓨터 하드를 찾다가 우연히 작년에 써 놓은 글을 찾았네요. 당시에는 정말 재미있게 썼는데... 지금 읽어보니 글을 쓴 저도 피식하고 웃게 만드네요. 요즘에 맞게 각색하여 올려드립니다.
재미있게 즐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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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엘리베이터에서 옆집여자를 만지다.
상편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최소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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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여름 그 어느 날.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출근준비를 하고 입에 빵조각 하나를 문 채 집을 나서고 있다. 집사람은 내가 그냥 집을 나서려 하자 호통을 치며 들고 가야 할 짐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봉투. 비위가 약한 탓에 이런 허드렛일은 잘 하지 못했고 출근하는 길에 버리고 가달라는 잔소리는 어제 저녁부터 줄기차게 하던 집사람이다.
“여보, 이거 가져다 버려 달라니까!”
“그런 것은 당신이 좀 해.”
“나 지금 바쁘다고, 애들 밥 먹기고 어린이집 보내야 한단 말이야.”
“나도 늦었어!”
“여보!”
집사람의 부탁을 시원하게 거절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물론 이따 저녁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마도 날 죽일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 말이다. 그래도 쓰레기 같은 것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집사람이 집에서 살림하는 범위 내에 포함된 잡일 아닌가.
우리 집은 15층 아파트에서 14층. 그 당시 엘리베이터는 2층에 있었기에 위로 올라오는데 시작이 걸렸다. 위로 올라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집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봤다. 살짝 풀려진 머리와 아담하고 귀여운 체형, 그리고 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며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제 새로 이사 왔어요. 몇 호 사세요?”
“1405호요. 1401호 사시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네...”
상냥한 목소리와 매력 있는 얼굴이 내 마음에 들었다. 왜일까... 그 여자와 잠시 대화를 하는 동안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으니... 하얀 피부와 말하며 웃을 때 생기는 눈웃음... 남자를 꼬실 수 있는 최적의 얼굴이다. 몸매도... 이정도면 애를 둘이나 낳고 사는 집사람보다 훨씬 준수하며 만족스럽고 좋다.
“띵동~”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도착하였고 나와 1401호 아주머니는 함께 탑승하였다. 내가 1층 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을 뻗으려 하자 그녀도 1층 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을 뻗으려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행동을 멈추고 아주머니가 버튼을 누를 때 쯤 나도 손을 뻗어 그녀의 손과 내 손이 부딪힐 수 있도록 시간차를 조절했다.
“이크...!”
“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 손이 더러운데... 죄송합니다.”
작전 성공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의 손이 아주머니의 손등을 덥자 놀라며 급하게 손을 뒤로 빼는데... 그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아주머니의 양보로 내가 1층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시 침묵과 고요함이 우리가 있는 좁은 공간을 뒤덮고 있다. 10층 쯤 지날 때 쯤 내가 간단한 대화라도 하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전에는 어디에 사셨어요?”
“아파트는 아니고 작은 빌라였어요.”
“그렇군요, 오늘 비가 온다고 했던가?”
“일기예보에는 그런 소식은 없던데... 왜요?”
“그냥... 비가 오거나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호호호. 신기가 있으신가 봐요?”
“그런가요?”
그냥 평범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별다른 이상조짐도 없는 그저 그런 모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7층을 지날 때 쯤, 엘리베이터가 조금씩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더니 기계가 큰 굉음을 내며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정지되었다.
“우우우... 쿵!!”
“뭐... 뭐야?”
“무슨 일이죠?!”
갑작스럽게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기계고장이라도 일으킨 것일까.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도 긴장하고 말았다. 다급한 생각에 비상버튼을 누르며 경비실에 호출을 보냈고 스피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아저씨!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있는데 멈췄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말을 없었다. 경비아저씨가 자리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빨리 경비아저씨가 나의 음성을 듣기 기도했다.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하여 스피커에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없나요? 아저씨?!”
그리고 곧...
“아, 아... 제 목소리 들리시나요?”
“네, 저와 1401호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에 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확인해보겠습니다.”
“빨리요, 기계가 멈춘 것 같아요!”
“네.”
다행이다. 우리는 곧 구출 될 것이고 아주머니와 나는 재미있는 추억을 간직한 채 앞으로 만날 때 마다 이 이야기를 곱씹으며 관계의 발전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아주 평범한 삶을 각자 살아가겠지... 그런데 왜 아쉽다는 생각이 들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에서 구출된다면...
조심스럽게 고개를 뒤로 돌려 엘리베이터 한 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인중을 찡그린 채 나만 바라보고 있다. 멋쩍은 미소를 지어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기계가 갑자기 멈췄어요, 무서워요.”
“걱... 걱정하지 마세요, 곧 구출해 주실 거니까.”
“엘리베이터가 자주 이랬나요?”
“아니요, 오늘이 처음입니다.”
“무섭네요.”
이사 온 다음 날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남자와 함께 좁은 공간에 갇힌 아주머니의 심정을 어떨까. 그냥 무섭기만 한 것인가. 나와 함께 이 공간에 있다는 설렘과 기대는 전혀 없는 건가... 그렇다면 나 혼자 설레고 있는 것인가.
“오래 걸릴까요?”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지 나에게 자꾸 질문을 했고 나는 최대한 평온하다는 모습을 보이며 대답해 주었다.
“글쎄요... 저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빨리 기계를 고쳐주어야 하는데...”
“급하신 일이라도?”
“아, 아니에요...”
내 질문에 당황하며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이 조금 의아해 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나도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며 사람이 언제 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좀처럼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고... 다리가 아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도 나를 따라 구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침부터 참... 거시기 하네요.”
“그러게요, 그런데 에어컨도 고장인가 봐요. 조금 더워지네요.”
“그런가? 하긴... 저도 살짝 덥긴 하네요.”
기계가 고장이 나며 에어컨까지 가동을 멈춘 모양이다. 조금 덥다는 말과 함께 나도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더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목에 메고 있던 넥타이를 풀기 위해 손을 올려 넥타이 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를 쳐다보니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는 아주머니... 그 안은 어깨까지 들어난 짧은 반팔 티셔츠 한 장만이 있었다.
“와...”
“조금 더워서요, 왜 이렇게 덥지?”
하얀 피부가 내 눈을 고정시키며 입이 살짝 벌어지게 만든다. 나도 모를 감탄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고 넥타이를 푸르기 위한 행동도 멈추게 만들었다. 목구멍에 침이 넘어가며 반판 티셔츠 사이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살결에 정신을 놓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 뒤로 땀방울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많이 더우신가 봐요?”
“네,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지겠죠.”
“그렇게 더우시면...”
나는 출근 할 때 들고 온 내 서류가방 안에서 종이서류 몇 장을 꺼내 부채를 만들었고 아주머니 얼굴에 바람을 일으켜 주었다.
“이렇게라도 하시면 덜 더 우실 것 같아서요.”
“어머, 감사해요. 이렇게 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땀을 많이 흘리시네요.”
“......”
그리고 엘리베이터 밖에서 드디어 인기척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1층 쪽에서 기계 하강 레일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여기는 이상이 없는데?! 위에서 걸린 거 아니야?”
“내가 올라가 볼게. 일단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있다니까 말 좀 걸어보고.”
“어라? 에어컨 센스가 고장 났네. 저기 안은 무척 덥겠는 걸?”
“여보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수리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온 모양이다. 에어컨이 고장 난 사실은 알고 있기에 덥다는 것도 현재 피부로 느끼고 있다. 누구 없냐는 질문에 나는 엘리베이터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대답했다.
“두 명 있어요, 엄청나게 덥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빨리 고쳐드릴게요.”
“네.”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최대한 천천히 하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수리할 필요는 없다는 의사다. 하지만 그들이 내 생각을 인지했을지가 걱정이다. 아마도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완벽한 수리와 신속한 정비를 볼 테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이제 사람들이 왔으니 곧 밖으로 나갈 수 있겠네요.”
“그... 그러게요, 빨리... 꺼내 줘야 하는데...”
“?”
그녀는 뭔지 모르겠지만 다급해 보였다. 얼굴도 갑자기 빨갛게 변하고 아까부터 한 손은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있다. 혹시...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밀폐된 이 좁은 공간에서... 안 될 말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만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끔직한 상황이...
“저, 사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요.”
...벌어지고야 말았다. 젠장... 모처럼 마음에 든 여자를 만났고 하늘에서 기회를 주듯 좁은 엘리베이터에 갇혀 둘만의 다정하고 로멘스 같은 사건을 만들 수 있건만... 여자의 똥 누는 모습을 보며 악취를 내 코로 느껴야 하다니... 나는 비위가 정말 약해 쓰레기봉투조차 버리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런 망할 상황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기계를 수리하려고 온 사람들에게 말해 볼게요.”
“네?!”
나도 다급했다. 아주머니가 이곳에서 볼일을 본다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다. 아니, 코를 막고 죽어야 할지도 몰랐다. 곧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저기요, 여기 화장실이 급한...”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네?”
내가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며 도움을 요청하자 아주머니가 내 팔을 잡고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나를 막아섰다. 왜? 급하다더니... 급하니까 빨리 꺼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막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소문을 내실 필요까지는...”
“네? 급하시다면 서요.”
“급한데... 그래도 그렇게 소리치시면 제가... 창피하잖아요.”
“뭐... 뭐라고요?”
어이없다. 자기가 창피한 이유로 나의 애절한 요청을 방해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집에서 나올 때 진작 좀 싸고 나올 것이지...
“쓰레기만 버리고 올라와서 화장실에 가려고 했어요.”
유비무환이란 사자성어도 모르는 무식한... 조금 전 아주머니에 대한 나만의 야릇한 상상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게 되었다. 화장실은 미리미리 사전에 다녀와야 할 것을... 왜 미루고 있다 이런 사단을 만들고 마는 것인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답답하다.
“버티실 수... 있으세요?”
“아직은... 조금씩 힘이 들지만 참아 볼게요.”
“당혹스럽네요...”
“저도 그렇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
쿵쾅거리는 소리가 엘리베이터에 까지 소리가 전해지며 뭔가 긴박한 수리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재난영상을 보면 소방대원들이 문을 열어주며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해주던데... 실제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망치로 어딘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며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기요, 아직 멀었나요?”
조급한 마음에 수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고 등을 기댄 채 문이 열리기만 기다릴 뿐. 서로 조용한 공간에 수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잡음만을 듣고 있으니 뻘쭘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만 했다. 옆에서 괴로워하며 힘들어하는 아주머니의 급한 용무가 나오지 않도록 진정시킬만한 대화가 필요했다.
“아주머니, 결혼은 하셨어요?”
“네...”
“자녀는?”
“딸 한 명이요... 윽...”
“아, 저도 결혼하고 아들만 둘입니다. 올해 나이는 35살이고요.”
“......”
얼굴이 창백해지기까지 한 아주머니가 나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시 질문을 했다. 최대한 아주머니가 잘 들릴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이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네?”
“나이요, 나이!”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세요?”
“아, 잘 안 들리나 해서요.”
“작게 말씀하셔도 다 들려요, 잠시 참고 있어서 그렇지...”
“콜록콜록.”
“저는 올해 32살이요.”
“네?”
자신이 올해 32살이라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하긴 나도 지금까지 계속 아주머니라는 호칭으로 그녀를 표현하지 않았던가. 얼굴은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데 굉장한 동안이었다. 그래서 나도 아주머니라는 호칭보다 그녀라는 호칭으로 인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녀는 점점 쪼여오는 자신의 참을성에 한계가 온 모양이다. 많은 땀을 흐리며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천장을 바라보고는 쉼 호흡을 하기 시작한다. 마치 임신한 여자가 하는 라마다 호흡과도 비슷했다.
“후웁... 후... 후웁... 후...”
“출산하시는 분 같네요.”
“할 것... 같아요... 정말로... 후웁... 후...”
“네? 흐흐흐...”
갑자기 웃음이 절로 나왔는데 그 이유는 정말 할 것 같다는 그녀의 표현 때문이었다.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게 내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손으로 코를 막으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살짝살짝 삐져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버텨내지 못했다.
“크크큭...”
“왜... 왜요?”
“아니, 갑자기 웃음이... 큭큭큭...”
“헐...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어머, 어머...”
“그게... 할 것 같다니까... 큭큭큭...”
“참 네... 흐흐흐...”
“웃기죠? 킥키킥...”
“호호호!”
“하하하!”
우리는 둘 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막을 수 없는 웃음을 대 놓고 웃기 시작했고 나의 웃음을 시작으로 그녀도 함께 웃었다. 정신없이 웃다보니 아랫배가 아플 정도였다. 정신을 못 차리며 웃기 시작하니 그녀의 인내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웃음으로 감춰진 참을성이 탄력을 받으며 급하게만 보였던 모습도 어느새 편안해 보인다.
“웃고 나니... 참을 만 하네요.”
“그래요? 아무튼 죄송했습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훗... 아니에요, 제가 아저씨께 고맙죠.”
“별말씀을...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 할까요? 문이 열리기 전까지.”
“음... 뭘 물어 보셨었죠?”
“뭐였더라?”
“뭐에요... 킥킥킥.”
“너무 웃어서 그런지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네요.”
“저기...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민수요, 하민수. 아주머니는?”
“정아요, 박정아.”
통성명을 하고 나니 전보다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다. 연인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편한 친구 사이... 또는 선후배 관계?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아무튼 가까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에 만족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대화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아들이 둘이면 정말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애들 커가는 걸 보면 힘들어도 키울만 하던데요.”
“사모님이 대단하시네요, 남매도 아니고 형제라니...”
“그렇게 막무가네 씩으로 힘들지는 않아요. 어쩔 때는 오히려 형제로 애들을 낳았다는 생각이 잘 된 것이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언제요?”
“음... 형이 동생 챙겨주며 놀아줄 때?”
“뭐에요~ 그게.”
“정아 씨는 어때요? 동생 한 명 더 낳아 줘야죠.”
“에이...”
“에이? 외동딸로 키우실 생각이에요?”
“그게...”
딸이 한 명 있다는 말에 동생을 만들어 주라는 나의 말을 듣고는 대답을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무슨 말하지 못할 비밀이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애를 낳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인가. 궁금하기만 했다.
“처음 본 남자 분께 이런 말 드리기... 조금 그렇네요.”
“그... 그런가요?”
나와 아직 거리감을 두고 있는 그녀에게 포근하고 친밀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녀에게 친오빠까지는 아니지만 믿을 만한 남자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런 재난(?) 속에서 관계형성을 하고 있는데 불편해 하고 있다니... 밀어붙이기로 그녀의 속내를 알아보고 싶었다.
“어허, 같은 아파트! 같은 층! 같은 엘리베이터 이용뿐만 아니라 함께 고립되었는데 부끄러워하시다니요! 괜찮으니 말해 보세요.”
“훗...”
내 말을 듣던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이제 나에게 조금 편하게 다가오는 것인가?
“사실... 딸은 시험관으로 낳았어요.”
“시험관...”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임신이 잘 되지 않는 체질이라고...”
“아, 그렇군요...”
괜히 물었다. 내 질문에 엘리베이터 안은 더욱 조용하고 침묵하게 되었다. 불필요한 부분이었는데 억지로 질문의 답을 들으려 한 내가 원망스럽다. 불임은 아니라 다행이다. 만일 불임이었다면 지금보다 배는 무거운 분위기였겠지.
“그래서 둘째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저도 외동딸이라 그게 얼마나 외로운지 잘 알아요. 하지만 모든 외동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그... 그렇죠. 외동들도 활기차고 잘 놀던데요.”
“외롭지 않은 딸로... 여자로 키우고 싶어요.”
“......”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무엇이 있을까? 음... 고민을 해보았다. 내가 그녀에게 도움 될 만한 말은 바로...
“제가 아들 둘이 있으니 삼남매처럼 같이 키우면 되겠네요!”
“네? 삼남매?”
“네...”
헐... 괜한 소리를 한 것인가. 이놈의 입이 방정이었다. 내 말에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스러웠고 긴장되었다. 더 이상 자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다는데 남매라니... 그것도 삼남매...
“좋아요! 정말 그렇게 해주실 거죠?!”
“아...”
“앞으로 우리 자주 만나요, 아이들과 함께.”
“좋... 좋죠. 그럽시다!”
“호호호.”
“하하하.”
우리 사무실에 미스 김이 있는데 별명이 뜬금포다. 한 가지 중요한 사항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고 무거운 분위기에 뜬금없이 배가 고프다는 둥, 발에 무좀이 생겨 가렵다는 등의 말을 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능력이 있는 여자다. 지금 그녀도 사무실 미스 김처럼 무겁고 딱딱한 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를 뜬금없이 바꾸는 능력이 있다.
서로 만족스럽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그때, 엘리베이터가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기계 모터가 움직이는 소리...
“위이잉~”
“어? 수리가 끝났나?”
“그러게요, 이제 문이 열리지 않을까요?”
“위이이~ 두두... 두둥... 쿵!”
“어멋!”
엘리베이터가 밑으로 내려가는 듯하더니 이내 동작을 멈추며 심하게 흔들렸고 엘리베이터는 다시 멈췄다. 수리를 하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 안까지 들려온다.
“이봐! 그렇게 하면 체임이 끊어진다고!”
“어이코, 큰일이네. 여기 고장이 심한데. 어쩌지?”
“이 사람, 내가 그러니까 무조건 작동시키지 말라고 했잖아! 부품도 지금 없는데.”
“사무실에 전화해 볼게, 부품 있으면 가져오라고.”
“빨리 해봐, 저녁까지는 수리를 해야 하는데... 기계 안에 사람도 타 있잖아.”
“오메나...”
저녁까지는 수리를 해야 한다는 말에 내 귀가 쫑긋 섰다. 지금 오전 9시도 안 됐는데 저녁이라는 말... 그렇다면 수리가 굉장히 길어진다는 말... 그녀를 바라보며 우리가 언제 나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하려 했다. 그런데 내 오른쪽 어깨가 무겁다. 왜 그렇지...
“응?”
“......”
아까 기계가 심하게 흔들릴 때 무서움에 내 어깨를 붙잡고 매미처럼 매달려있는 그녀를 보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녀의 이마가 내 입술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고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내 팔을 꼭 잡고 있다. 숨이 거칠게 쉬어지며 콧김이 그녀의 앞머리를 팔랑 거리게 만들게 되었고...
“쿵... 쿵... 쿵...”
내 심장이 요동치며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게 되었다. 나를 붙잡고 있는 그녀 귀에 내 심장 소리가 들릴까 조마조마한 채 날 붙잡고 있는 그녀를 때어 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여 밑을 바라보니 짧은 반팔 티셔츠 안으로 귀여운 젖가슴 골이 보였고 마음으로 믿지도 않는 주님을 부르고 있다.
‘주여... 주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소서... 주여...’
콩닥이는 심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녀가 잡고 있는 내 팔을 조심스럽게 빼보려 노력했다. 만일 이게 그녀에게 잘못 비추어 보인다면 자신의 몸을 만지기 위해 팔을 움직이는 동작으로 오인 받을 수 있기에 최대한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다. 천천히 내 팔을 빼려고 하자... 어머나... 세상에나...
내 손등이 그녀의 가슴에 닿았고 가슴에 손이 닿자마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뭐... 뭐하시는 거...”
“아... 아니, 그게... 그게 아니고요.”
“지금 제 가슴에...”
“아...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며 엘리베이터 반대편 구석으로 도망치듯 떨어져 두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주저앉는 모습... 나, 완전히 새 됐어...
“이런 분인지... 몰랐어요.”
“만지기 위해 그런 게 아니라...”
“뭐라고요? 만진다고요?”
“아니요...”
짐승... 말미잘... 돌대가리... 조금 더 조심스럽게 팔을 뺐어야지... 이렇게 들켜버리면 나는 변태로 낙인찍힐 것이 분명한데... 답답한 현실이다. 나를 불신하는 표정으로 노려보는 눈빛에는 이미 나를 악의 구덩이, 여자를 노리는 치한... 이런 씩의 불편함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후... 오해입니다. 저는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요.”
나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합장하며 빌듯이 사과를 했다. 그녀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엎어진 물이란 표현이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의 가슴에 내 손등이 닿았으니 치한은 치한인데... 의도가 전혀 없는 행동이란 사실을 알아주길 바랬다. 그리고...
“푸하하! 아저씨 굉장히 순진하시네요?”
“응?”
무슨 소린지...
“그냥 장난 친 거예요. 아저씨 놀리기 위해 일부러 한 연기라고요.”
“뭐... 뭐라고요?”
뜬금포 같은 여자 같으니...
“하하하... 하하하!”
“왜 웃어요? 아저씨.”
“저도 일부러 연기하시는 것 같아 당황한 듯 당황하지 않는 연기 한 겁니다.”
“설마요...”
“정말이에요! 하하하...!”
뻥이었다. 그녀에게 내가 긴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허풍이다. 내 허풍을 그녀가 눈치를 채지는 못할 것이니 어떻게 말하든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허풍쟁이.”
“윽...”
눈치 채고 있었다. 뜬금포 같은 그녀는 눈치도 남다르게 빠르다. 고수다.
“흠... 정아 씨, 아무튼 그런 장난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피, 당황하셨으면서.”
“아니라니까요!”
“알겠어요, 화내지 마시고 진정하세요.”
“화는 무슨...”
아직 그녀의 직업이라든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 그녀의 직업은 점쟁이가 확실하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는 귀신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지금 하고 생각하고 있고 말하고 있는 마음 속 혼잣말도 모두 듣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말 뿐만 아니라 생각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저러나... 문이 과연 언제 열릴까요?”
“그러게요, 수리를 시작한지 한 참 지났는데... 아까 수리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저녁이라고 하던데...”
“들었어요, 저도 귀 있어요.”
“귀엽지요?”
자신도 귀가 있다는 그녀에게 나는 두 손으로 내 귀를 가리며 농담을 던졌다. 갑자기 떠오른 유머라 서로 이해하는데 오차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정도의 농담은 애교로 받아 줄 수 있지 않는가.
“대단하네요, 아저씨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콜록콜록, 메르스에 걸렸나... 갑자기 부끄러워지며 열이 나네요.”
“뭐라고요? 하하하.”
“웃었죠? 지금 웃었어요? 제가 이런 유머 있는 남자랍니다.”
“아무튼... 재미있으셔.”
“흐흐흐.”
부드럽게 잘 대처한 것 같다. 우리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결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의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조금씩조금씩 쌓아가고 있다. 그럴 때쯤 그녀의 배에서 다시 신호가 온 모양이다. 급격하게 찡그러진 인상이 이를 설명해 주고 있다. 내 손을 갑자기 잡으며 참기 위해 그녀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으윽... 또 왔어요...”
“헉... 어떻게 하죠? 비상사태인데...”
“아저씨, 밑에 사람들에게 언제 문이 열리냐고... 문이라도 좀 열어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잠... 잠깐 만요.”
물에 빠져 살려달라는 사람처럼 내 손을 붙잡고 극도의 한계와 싸우고 있는 그녀의 부탁을 받아 엘리베이터 바닥을 두드리며 소리를 쳤다.
“쾅쾅쾅!”
“저기요, 여기 엘리베이터 문이라도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사람이... 사람이 죽어가요!”
“뭐라고요? 죽는다고요?!”
“아니, 죽을지도 몰라요. 정말 급한 사람이 있다고요!”
“누가 죽어요?”
“아... 답답하네... 화장실 가야 한다고요!!”
“......”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떤 남자가 우리 위에 있는 것 같다. 그 남자는 우리 쪽을 향해 말을 한다.
“화장실 가셔야 한다고요?”
“네!”
“지금 문이 중간 층 사이에 끼었는데 문을 열어주는 베어링이 고장 나서 강제로 열리지도 않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급하신 대로 사용하시라고 천장 문으로 물건 하나 넣어 드릴게요.”
“천장 문?”
“우선 받아 보시고 안 되겠다 싶으면 119 불러 드릴게요.”
뭔가 고리 같은 게 우리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덜그럭 거리던 소리가 어딘가 고정이 되거니 사람 한 명 정도 빠져나갈 크기의 문이 열리고 그 위로 엘리베이터 통로가 보였다. 이게 영화에서나 보던 천장 지붕으로 올라가는 비상문이구나 싶었고 줄에 매달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깡... 통...?”
“급하신 대로 일단 사용하세요!”
“저... 저기요, 남자가 아니고...”
“여기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이라 사람이 내려갈 수는 없네요. 작업 빨리 해서 문 열어드릴게요.”
“저기요, 저기요!”
“......”
밖에 있는 사람들은 화장실에 가야 하는 사람이 남자인줄 아는 모양이다. 깡통에 여자가 어떻게... 나름 신경 써준다고 입구는 좁게 만들었다. 딱 내 물건 사이즈 만하게... 잘도 만들었네... 기술자들이란...
“이거 가지고는 불가능 한데...”
전달 된 깡통을 어루만지며 구석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말 최고조에 달한 듯한 표정이다. 살짝 건드리면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휴지도 안 주고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편에서 계속...
재미있게 즐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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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엘리베이터에서 옆집여자를 만지다.
상편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최소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
...............
...................
지난 해 여름 그 어느 날.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출근준비를 하고 입에 빵조각 하나를 문 채 집을 나서고 있다. 집사람은 내가 그냥 집을 나서려 하자 호통을 치며 들고 가야 할 짐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봉투. 비위가 약한 탓에 이런 허드렛일은 잘 하지 못했고 출근하는 길에 버리고 가달라는 잔소리는 어제 저녁부터 줄기차게 하던 집사람이다.
“여보, 이거 가져다 버려 달라니까!”
“그런 것은 당신이 좀 해.”
“나 지금 바쁘다고, 애들 밥 먹기고 어린이집 보내야 한단 말이야.”
“나도 늦었어!”
“여보!”
집사람의 부탁을 시원하게 거절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물론 이따 저녁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마도 날 죽일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 말이다. 그래도 쓰레기 같은 것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집사람이 집에서 살림하는 범위 내에 포함된 잡일 아닌가.
우리 집은 15층 아파트에서 14층. 그 당시 엘리베이터는 2층에 있었기에 위로 올라오는데 시작이 걸렸다. 위로 올라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집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봤다. 살짝 풀려진 머리와 아담하고 귀여운 체형, 그리고 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며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제 새로 이사 왔어요. 몇 호 사세요?”
“1405호요. 1401호 사시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네...”
상냥한 목소리와 매력 있는 얼굴이 내 마음에 들었다. 왜일까... 그 여자와 잠시 대화를 하는 동안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으니... 하얀 피부와 말하며 웃을 때 생기는 눈웃음... 남자를 꼬실 수 있는 최적의 얼굴이다. 몸매도... 이정도면 애를 둘이나 낳고 사는 집사람보다 훨씬 준수하며 만족스럽고 좋다.
“띵동~”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도착하였고 나와 1401호 아주머니는 함께 탑승하였다. 내가 1층 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을 뻗으려 하자 그녀도 1층 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을 뻗으려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행동을 멈추고 아주머니가 버튼을 누를 때 쯤 나도 손을 뻗어 그녀의 손과 내 손이 부딪힐 수 있도록 시간차를 조절했다.
“이크...!”
“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 손이 더러운데... 죄송합니다.”
작전 성공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의 손이 아주머니의 손등을 덥자 놀라며 급하게 손을 뒤로 빼는데... 그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아주머니의 양보로 내가 1층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시 침묵과 고요함이 우리가 있는 좁은 공간을 뒤덮고 있다. 10층 쯤 지날 때 쯤 내가 간단한 대화라도 하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전에는 어디에 사셨어요?”
“아파트는 아니고 작은 빌라였어요.”
“그렇군요, 오늘 비가 온다고 했던가?”
“일기예보에는 그런 소식은 없던데... 왜요?”
“그냥... 비가 오거나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호호호. 신기가 있으신가 봐요?”
“그런가요?”
그냥 평범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별다른 이상조짐도 없는 그저 그런 모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7층을 지날 때 쯤, 엘리베이터가 조금씩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더니 기계가 큰 굉음을 내며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정지되었다.
“우우우... 쿵!!”
“뭐... 뭐야?”
“무슨 일이죠?!”
갑작스럽게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기계고장이라도 일으킨 것일까.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도 긴장하고 말았다. 다급한 생각에 비상버튼을 누르며 경비실에 호출을 보냈고 스피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아저씨!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있는데 멈췄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말을 없었다. 경비아저씨가 자리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빨리 경비아저씨가 나의 음성을 듣기 기도했다.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하여 스피커에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없나요? 아저씨?!”
그리고 곧...
“아, 아... 제 목소리 들리시나요?”
“네, 저와 1401호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에 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확인해보겠습니다.”
“빨리요, 기계가 멈춘 것 같아요!”
“네.”
다행이다. 우리는 곧 구출 될 것이고 아주머니와 나는 재미있는 추억을 간직한 채 앞으로 만날 때 마다 이 이야기를 곱씹으며 관계의 발전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아주 평범한 삶을 각자 살아가겠지... 그런데 왜 아쉽다는 생각이 들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에서 구출된다면...
조심스럽게 고개를 뒤로 돌려 엘리베이터 한 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인중을 찡그린 채 나만 바라보고 있다. 멋쩍은 미소를 지어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기계가 갑자기 멈췄어요, 무서워요.”
“걱... 걱정하지 마세요, 곧 구출해 주실 거니까.”
“엘리베이터가 자주 이랬나요?”
“아니요, 오늘이 처음입니다.”
“무섭네요.”
이사 온 다음 날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남자와 함께 좁은 공간에 갇힌 아주머니의 심정을 어떨까. 그냥 무섭기만 한 것인가. 나와 함께 이 공간에 있다는 설렘과 기대는 전혀 없는 건가... 그렇다면 나 혼자 설레고 있는 것인가.
“오래 걸릴까요?”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지 나에게 자꾸 질문을 했고 나는 최대한 평온하다는 모습을 보이며 대답해 주었다.
“글쎄요... 저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빨리 기계를 고쳐주어야 하는데...”
“급하신 일이라도?”
“아, 아니에요...”
내 질문에 당황하며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이 조금 의아해 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나도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며 사람이 언제 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좀처럼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고... 다리가 아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도 나를 따라 구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침부터 참... 거시기 하네요.”
“그러게요, 그런데 에어컨도 고장인가 봐요. 조금 더워지네요.”
“그런가? 하긴... 저도 살짝 덥긴 하네요.”
기계가 고장이 나며 에어컨까지 가동을 멈춘 모양이다. 조금 덥다는 말과 함께 나도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더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목에 메고 있던 넥타이를 풀기 위해 손을 올려 넥타이 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를 쳐다보니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는 아주머니... 그 안은 어깨까지 들어난 짧은 반팔 티셔츠 한 장만이 있었다.
“와...”
“조금 더워서요, 왜 이렇게 덥지?”
하얀 피부가 내 눈을 고정시키며 입이 살짝 벌어지게 만든다. 나도 모를 감탄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고 넥타이를 푸르기 위한 행동도 멈추게 만들었다. 목구멍에 침이 넘어가며 반판 티셔츠 사이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살결에 정신을 놓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 뒤로 땀방울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많이 더우신가 봐요?”
“네,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지겠죠.”
“그렇게 더우시면...”
나는 출근 할 때 들고 온 내 서류가방 안에서 종이서류 몇 장을 꺼내 부채를 만들었고 아주머니 얼굴에 바람을 일으켜 주었다.
“이렇게라도 하시면 덜 더 우실 것 같아서요.”
“어머, 감사해요. 이렇게 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땀을 많이 흘리시네요.”
“......”
그리고 엘리베이터 밖에서 드디어 인기척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1층 쪽에서 기계 하강 레일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여기는 이상이 없는데?! 위에서 걸린 거 아니야?”
“내가 올라가 볼게. 일단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있다니까 말 좀 걸어보고.”
“어라? 에어컨 센스가 고장 났네. 저기 안은 무척 덥겠는 걸?”
“여보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수리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온 모양이다. 에어컨이 고장 난 사실은 알고 있기에 덥다는 것도 현재 피부로 느끼고 있다. 누구 없냐는 질문에 나는 엘리베이터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대답했다.
“두 명 있어요, 엄청나게 덥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빨리 고쳐드릴게요.”
“네.”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최대한 천천히 하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수리할 필요는 없다는 의사다. 하지만 그들이 내 생각을 인지했을지가 걱정이다. 아마도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완벽한 수리와 신속한 정비를 볼 테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이제 사람들이 왔으니 곧 밖으로 나갈 수 있겠네요.”
“그... 그러게요, 빨리... 꺼내 줘야 하는데...”
“?”
그녀는 뭔지 모르겠지만 다급해 보였다. 얼굴도 갑자기 빨갛게 변하고 아까부터 한 손은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있다. 혹시...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밀폐된 이 좁은 공간에서... 안 될 말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만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끔직한 상황이...
“저, 사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요.”
...벌어지고야 말았다. 젠장... 모처럼 마음에 든 여자를 만났고 하늘에서 기회를 주듯 좁은 엘리베이터에 갇혀 둘만의 다정하고 로멘스 같은 사건을 만들 수 있건만... 여자의 똥 누는 모습을 보며 악취를 내 코로 느껴야 하다니... 나는 비위가 정말 약해 쓰레기봉투조차 버리지 못하거늘... 어떻게 이런 망할 상황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기계를 수리하려고 온 사람들에게 말해 볼게요.”
“네?!”
나도 다급했다. 아주머니가 이곳에서 볼일을 본다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다. 아니, 코를 막고 죽어야 할지도 몰랐다. 곧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저기요, 여기 화장실이 급한...”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네?”
내가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며 도움을 요청하자 아주머니가 내 팔을 잡고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나를 막아섰다. 왜? 급하다더니... 급하니까 빨리 꺼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막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소문을 내실 필요까지는...”
“네? 급하시다면 서요.”
“급한데... 그래도 그렇게 소리치시면 제가... 창피하잖아요.”
“뭐... 뭐라고요?”
어이없다. 자기가 창피한 이유로 나의 애절한 요청을 방해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집에서 나올 때 진작 좀 싸고 나올 것이지...
“쓰레기만 버리고 올라와서 화장실에 가려고 했어요.”
유비무환이란 사자성어도 모르는 무식한... 조금 전 아주머니에 대한 나만의 야릇한 상상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게 되었다. 화장실은 미리미리 사전에 다녀와야 할 것을... 왜 미루고 있다 이런 사단을 만들고 마는 것인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답답하다.
“버티실 수... 있으세요?”
“아직은... 조금씩 힘이 들지만 참아 볼게요.”
“당혹스럽네요...”
“저도 그렇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
쿵쾅거리는 소리가 엘리베이터에 까지 소리가 전해지며 뭔가 긴박한 수리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재난영상을 보면 소방대원들이 문을 열어주며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해주던데... 실제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망치로 어딘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며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기요, 아직 멀었나요?”
조급한 마음에 수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고 등을 기댄 채 문이 열리기만 기다릴 뿐. 서로 조용한 공간에 수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잡음만을 듣고 있으니 뻘쭘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만 했다. 옆에서 괴로워하며 힘들어하는 아주머니의 급한 용무가 나오지 않도록 진정시킬만한 대화가 필요했다.
“아주머니, 결혼은 하셨어요?”
“네...”
“자녀는?”
“딸 한 명이요... 윽...”
“아, 저도 결혼하고 아들만 둘입니다. 올해 나이는 35살이고요.”
“......”
얼굴이 창백해지기까지 한 아주머니가 나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시 질문을 했다. 최대한 아주머니가 잘 들릴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이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네?”
“나이요, 나이!”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세요?”
“아, 잘 안 들리나 해서요.”
“작게 말씀하셔도 다 들려요, 잠시 참고 있어서 그렇지...”
“콜록콜록.”
“저는 올해 32살이요.”
“네?”
자신이 올해 32살이라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하긴 나도 지금까지 계속 아주머니라는 호칭으로 그녀를 표현하지 않았던가. 얼굴은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데 굉장한 동안이었다. 그래서 나도 아주머니라는 호칭보다 그녀라는 호칭으로 인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녀는 점점 쪼여오는 자신의 참을성에 한계가 온 모양이다. 많은 땀을 흐리며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천장을 바라보고는 쉼 호흡을 하기 시작한다. 마치 임신한 여자가 하는 라마다 호흡과도 비슷했다.
“후웁... 후... 후웁... 후...”
“출산하시는 분 같네요.”
“할 것... 같아요... 정말로... 후웁... 후...”
“네? 흐흐흐...”
갑자기 웃음이 절로 나왔는데 그 이유는 정말 할 것 같다는 그녀의 표현 때문이었다.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게 내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손으로 코를 막으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살짝살짝 삐져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버텨내지 못했다.
“크크큭...”
“왜... 왜요?”
“아니, 갑자기 웃음이... 큭큭큭...”
“헐...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어머, 어머...”
“그게... 할 것 같다니까... 큭큭큭...”
“참 네... 흐흐흐...”
“웃기죠? 킥키킥...”
“호호호!”
“하하하!”
우리는 둘 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막을 수 없는 웃음을 대 놓고 웃기 시작했고 나의 웃음을 시작으로 그녀도 함께 웃었다. 정신없이 웃다보니 아랫배가 아플 정도였다. 정신을 못 차리며 웃기 시작하니 그녀의 인내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웃음으로 감춰진 참을성이 탄력을 받으며 급하게만 보였던 모습도 어느새 편안해 보인다.
“웃고 나니... 참을 만 하네요.”
“그래요? 아무튼 죄송했습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훗... 아니에요, 제가 아저씨께 고맙죠.”
“별말씀을...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 할까요? 문이 열리기 전까지.”
“음... 뭘 물어 보셨었죠?”
“뭐였더라?”
“뭐에요... 킥킥킥.”
“너무 웃어서 그런지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네요.”
“저기...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민수요, 하민수. 아주머니는?”
“정아요, 박정아.”
통성명을 하고 나니 전보다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다. 연인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편한 친구 사이... 또는 선후배 관계?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아무튼 가까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에 만족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대화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아들이 둘이면 정말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애들 커가는 걸 보면 힘들어도 키울만 하던데요.”
“사모님이 대단하시네요, 남매도 아니고 형제라니...”
“그렇게 막무가네 씩으로 힘들지는 않아요. 어쩔 때는 오히려 형제로 애들을 낳았다는 생각이 잘 된 것이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언제요?”
“음... 형이 동생 챙겨주며 놀아줄 때?”
“뭐에요~ 그게.”
“정아 씨는 어때요? 동생 한 명 더 낳아 줘야죠.”
“에이...”
“에이? 외동딸로 키우실 생각이에요?”
“그게...”
딸이 한 명 있다는 말에 동생을 만들어 주라는 나의 말을 듣고는 대답을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무슨 말하지 못할 비밀이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애를 낳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인가. 궁금하기만 했다.
“처음 본 남자 분께 이런 말 드리기... 조금 그렇네요.”
“그... 그런가요?”
나와 아직 거리감을 두고 있는 그녀에게 포근하고 친밀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녀에게 친오빠까지는 아니지만 믿을 만한 남자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런 재난(?) 속에서 관계형성을 하고 있는데 불편해 하고 있다니... 밀어붙이기로 그녀의 속내를 알아보고 싶었다.
“어허, 같은 아파트! 같은 층! 같은 엘리베이터 이용뿐만 아니라 함께 고립되었는데 부끄러워하시다니요! 괜찮으니 말해 보세요.”
“훗...”
내 말을 듣던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이제 나에게 조금 편하게 다가오는 것인가?
“사실... 딸은 시험관으로 낳았어요.”
“시험관...”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임신이 잘 되지 않는 체질이라고...”
“아, 그렇군요...”
괜히 물었다. 내 질문에 엘리베이터 안은 더욱 조용하고 침묵하게 되었다. 불필요한 부분이었는데 억지로 질문의 답을 들으려 한 내가 원망스럽다. 불임은 아니라 다행이다. 만일 불임이었다면 지금보다 배는 무거운 분위기였겠지.
“그래서 둘째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저도 외동딸이라 그게 얼마나 외로운지 잘 알아요. 하지만 모든 외동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그... 그렇죠. 외동들도 활기차고 잘 놀던데요.”
“외롭지 않은 딸로... 여자로 키우고 싶어요.”
“......”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무엇이 있을까? 음... 고민을 해보았다. 내가 그녀에게 도움 될 만한 말은 바로...
“제가 아들 둘이 있으니 삼남매처럼 같이 키우면 되겠네요!”
“네? 삼남매?”
“네...”
헐... 괜한 소리를 한 것인가. 이놈의 입이 방정이었다. 내 말에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스러웠고 긴장되었다. 더 이상 자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다는데 남매라니... 그것도 삼남매...
“좋아요! 정말 그렇게 해주실 거죠?!”
“아...”
“앞으로 우리 자주 만나요, 아이들과 함께.”
“좋... 좋죠. 그럽시다!”
“호호호.”
“하하하.”
우리 사무실에 미스 김이 있는데 별명이 뜬금포다. 한 가지 중요한 사항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고 무거운 분위기에 뜬금없이 배가 고프다는 둥, 발에 무좀이 생겨 가렵다는 등의 말을 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능력이 있는 여자다. 지금 그녀도 사무실 미스 김처럼 무겁고 딱딱한 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를 뜬금없이 바꾸는 능력이 있다.
서로 만족스럽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그때, 엘리베이터가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기계 모터가 움직이는 소리...
“위이잉~”
“어? 수리가 끝났나?”
“그러게요, 이제 문이 열리지 않을까요?”
“위이이~ 두두... 두둥... 쿵!”
“어멋!”
엘리베이터가 밑으로 내려가는 듯하더니 이내 동작을 멈추며 심하게 흔들렸고 엘리베이터는 다시 멈췄다. 수리를 하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 안까지 들려온다.
“이봐! 그렇게 하면 체임이 끊어진다고!”
“어이코, 큰일이네. 여기 고장이 심한데. 어쩌지?”
“이 사람, 내가 그러니까 무조건 작동시키지 말라고 했잖아! 부품도 지금 없는데.”
“사무실에 전화해 볼게, 부품 있으면 가져오라고.”
“빨리 해봐, 저녁까지는 수리를 해야 하는데... 기계 안에 사람도 타 있잖아.”
“오메나...”
저녁까지는 수리를 해야 한다는 말에 내 귀가 쫑긋 섰다. 지금 오전 9시도 안 됐는데 저녁이라는 말... 그렇다면 수리가 굉장히 길어진다는 말... 그녀를 바라보며 우리가 언제 나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하려 했다. 그런데 내 오른쪽 어깨가 무겁다. 왜 그렇지...
“응?”
“......”
아까 기계가 심하게 흔들릴 때 무서움에 내 어깨를 붙잡고 매미처럼 매달려있는 그녀를 보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녀의 이마가 내 입술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고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내 팔을 꼭 잡고 있다. 숨이 거칠게 쉬어지며 콧김이 그녀의 앞머리를 팔랑 거리게 만들게 되었고...
“쿵... 쿵... 쿵...”
내 심장이 요동치며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게 되었다. 나를 붙잡고 있는 그녀 귀에 내 심장 소리가 들릴까 조마조마한 채 날 붙잡고 있는 그녀를 때어 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여 밑을 바라보니 짧은 반팔 티셔츠 안으로 귀여운 젖가슴 골이 보였고 마음으로 믿지도 않는 주님을 부르고 있다.
‘주여... 주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소서... 주여...’
콩닥이는 심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녀가 잡고 있는 내 팔을 조심스럽게 빼보려 노력했다. 만일 이게 그녀에게 잘못 비추어 보인다면 자신의 몸을 만지기 위해 팔을 움직이는 동작으로 오인 받을 수 있기에 최대한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다. 천천히 내 팔을 빼려고 하자... 어머나... 세상에나...
내 손등이 그녀의 가슴에 닿았고 가슴에 손이 닿자마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뭐... 뭐하시는 거...”
“아... 아니, 그게... 그게 아니고요.”
“지금 제 가슴에...”
“아...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며 엘리베이터 반대편 구석으로 도망치듯 떨어져 두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주저앉는 모습... 나, 완전히 새 됐어...
“이런 분인지... 몰랐어요.”
“만지기 위해 그런 게 아니라...”
“뭐라고요? 만진다고요?”
“아니요...”
짐승... 말미잘... 돌대가리... 조금 더 조심스럽게 팔을 뺐어야지... 이렇게 들켜버리면 나는 변태로 낙인찍힐 것이 분명한데... 답답한 현실이다. 나를 불신하는 표정으로 노려보는 눈빛에는 이미 나를 악의 구덩이, 여자를 노리는 치한... 이런 씩의 불편함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후... 오해입니다. 저는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요.”
나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합장하며 빌듯이 사과를 했다. 그녀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엎어진 물이란 표현이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의 가슴에 내 손등이 닿았으니 치한은 치한인데... 의도가 전혀 없는 행동이란 사실을 알아주길 바랬다. 그리고...
“푸하하! 아저씨 굉장히 순진하시네요?”
“응?”
무슨 소린지...
“그냥 장난 친 거예요. 아저씨 놀리기 위해 일부러 한 연기라고요.”
“뭐... 뭐라고요?”
뜬금포 같은 여자 같으니...
“하하하... 하하하!”
“왜 웃어요? 아저씨.”
“저도 일부러 연기하시는 것 같아 당황한 듯 당황하지 않는 연기 한 겁니다.”
“설마요...”
“정말이에요! 하하하...!”
뻥이었다. 그녀에게 내가 긴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허풍이다. 내 허풍을 그녀가 눈치를 채지는 못할 것이니 어떻게 말하든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허풍쟁이.”
“윽...”
눈치 채고 있었다. 뜬금포 같은 그녀는 눈치도 남다르게 빠르다. 고수다.
“흠... 정아 씨, 아무튼 그런 장난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피, 당황하셨으면서.”
“아니라니까요!”
“알겠어요, 화내지 마시고 진정하세요.”
“화는 무슨...”
아직 그녀의 직업이라든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 그녀의 직업은 점쟁이가 확실하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는 귀신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지금 하고 생각하고 있고 말하고 있는 마음 속 혼잣말도 모두 듣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말 뿐만 아니라 생각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저러나... 문이 과연 언제 열릴까요?”
“그러게요, 수리를 시작한지 한 참 지났는데... 아까 수리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저녁이라고 하던데...”
“들었어요, 저도 귀 있어요.”
“귀엽지요?”
자신도 귀가 있다는 그녀에게 나는 두 손으로 내 귀를 가리며 농담을 던졌다. 갑자기 떠오른 유머라 서로 이해하는데 오차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정도의 농담은 애교로 받아 줄 수 있지 않는가.
“대단하네요, 아저씨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콜록콜록, 메르스에 걸렸나... 갑자기 부끄러워지며 열이 나네요.”
“뭐라고요? 하하하.”
“웃었죠? 지금 웃었어요? 제가 이런 유머 있는 남자랍니다.”
“아무튼... 재미있으셔.”
“흐흐흐.”
부드럽게 잘 대처한 것 같다. 우리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결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의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조금씩조금씩 쌓아가고 있다. 그럴 때쯤 그녀의 배에서 다시 신호가 온 모양이다. 급격하게 찡그러진 인상이 이를 설명해 주고 있다. 내 손을 갑자기 잡으며 참기 위해 그녀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으윽... 또 왔어요...”
“헉... 어떻게 하죠? 비상사태인데...”
“아저씨, 밑에 사람들에게 언제 문이 열리냐고... 문이라도 좀 열어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잠... 잠깐 만요.”
물에 빠져 살려달라는 사람처럼 내 손을 붙잡고 극도의 한계와 싸우고 있는 그녀의 부탁을 받아 엘리베이터 바닥을 두드리며 소리를 쳤다.
“쾅쾅쾅!”
“저기요, 여기 엘리베이터 문이라도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사람이... 사람이 죽어가요!”
“뭐라고요? 죽는다고요?!”
“아니, 죽을지도 몰라요. 정말 급한 사람이 있다고요!”
“누가 죽어요?”
“아... 답답하네... 화장실 가야 한다고요!!”
“......”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떤 남자가 우리 위에 있는 것 같다. 그 남자는 우리 쪽을 향해 말을 한다.
“화장실 가셔야 한다고요?”
“네!”
“지금 문이 중간 층 사이에 끼었는데 문을 열어주는 베어링이 고장 나서 강제로 열리지도 않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급하신 대로 사용하시라고 천장 문으로 물건 하나 넣어 드릴게요.”
“천장 문?”
“우선 받아 보시고 안 되겠다 싶으면 119 불러 드릴게요.”
뭔가 고리 같은 게 우리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덜그럭 거리던 소리가 어딘가 고정이 되거니 사람 한 명 정도 빠져나갈 크기의 문이 열리고 그 위로 엘리베이터 통로가 보였다. 이게 영화에서나 보던 천장 지붕으로 올라가는 비상문이구나 싶었고 줄에 매달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깡... 통...?”
“급하신 대로 일단 사용하세요!”
“저... 저기요, 남자가 아니고...”
“여기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이라 사람이 내려갈 수는 없네요. 작업 빨리 해서 문 열어드릴게요.”
“저기요, 저기요!”
“......”
밖에 있는 사람들은 화장실에 가야 하는 사람이 남자인줄 아는 모양이다. 깡통에 여자가 어떻게... 나름 신경 써준다고 입구는 좁게 만들었다. 딱 내 물건 사이즈 만하게... 잘도 만들었네... 기술자들이란...
“이거 가지고는 불가능 한데...”
전달 된 깡통을 어루만지며 구석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말 최고조에 달한 듯한 표정이다. 살짝 건드리면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휴지도 안 주고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편에서 계속...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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