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혹에 빠지다.
“야, 김주오.”
“네?”
“너 이 새끼... 며칠간 어디서 뭐했는지 빨리 보고해.”
선배가 나를 보더니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차분한 목소리로 자초지정을 설명해 보라며 말을 걸었다. 섬뜩한 눈빛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두 손은 공손하게 앞으로 모아진 상태가 되었다. 우리 학과에서 제일 무섭고 엄하기로 소문한 선배의 물음에 내 목소리가 석화되고 있는 기분이다.
“그... 그게요...”
“그게요? 그게 지금 네가 말하고 싶은 말의 전부야?”
“아닙니다, 아니고요...”
“빠져가지고... 너 이따가 시험 끝나고 연구동으로 와. 알겠어?”
“네...”
무서운 선배가 나를 스쳐가자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수정이가 정지된 상태로 그 선배를 응시하며 나를 향해 묻는다.
“친구야, 저 오빠... 누구야?”
“왜?”
“정말... 내 스타일이다.”
“그렇지? 너의 스타일에 남자야. 하지만 저 선배는 널 싫어 할 걸?”
“뭐라고?”
“진심이야. 꿈 깨.”
“흥! 그렇게 말하면 내가 삐져서 너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협박이냐?”
“응.”
“재수 없어.”
“뭐?!”
나와 수정이가 말다툼을 벌이려고 하자 이를 지켜보던 강희 누나가 우리를 말리며 말한다.
“너희들 정말... 그만 좀 해라.”
“누나, 쟤가 먼저 나를...”
“내가 뭐라고 했는데? 저 오빠 잘 생겼다고 했지, 너 욕했냐?”
“윽...”
“오호라, 너 혹시...”
“혹시 뭐?”
“훗...”
자신의 입을 가린 채 웃기만 하는 수정이의 표정을 보며 나는 당황스러웠다. 또 무슨 이상한 말로 나를 폄하하려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너, 나 좋아하냐?”
“뭐... 뭐라고?!”
“호호호. 맞네, 맞아. 나 좋아하는 구나?”
“미친...”
억울했다.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솔직하게 외형의 모습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수정이는 뭔가 잔뜩 자신의 모습에 엄청난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미친... X가 아닐지...
“마음속으로 욕하지 마라, 다음에 내가 너의 생각을 읽었을 때 내 욕 한마디만 나와 봐. 그땐 진짜 너 죽고 나 죽자야.”
“흥!”
우리의 모습을 보고 꺄르르 웃기만 하는 강희 누나가 왜 이렇게 얄립게 보이던지... 지금은 내가 을의 입장이다. 수정이가 갑인 이상 그냥 억울해도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주변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험시간이 얼추 다 되어 갔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시험을 보는 강의실로 달렸다.
“드르륵~”
“휴... 늦지는 않았네.”
“어? 야! 김주오! 저 새끼 어디 있다 이제 나타는 거야?”
“어, 정훈아. 나 지금 대전에서 불나게 달려오는 중이야.”
“대전? 거기는 뭣하러 갔어?”
“그냥... 일이 좀 있었어.”
“공부는? 너 이번 시험 교수님이 누군지는 알지?”
“알지, 그 유명한 독사... 한경숙 교수라는 것...”
“아는 녀석이 수업도 빼먹고 시험도 잊고 있냐? 너 이번 시험에 낙제하면 아마도 죽을지도 몰라.”
“......”
겁을 잔득 주는 이유는 한경숙 교수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악랄하고 잔인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여자 교수다. 젊은 나이에 전임교수가 되었지만 그 실력 하나만은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의학계에서 알아주는 여자 교수다. 그리고 잠시 후...
“떴다!”
“우르르...”
한 교수가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아주 부자연스럽게 넘어가며 그녀를 관찰한다. 오늘따라 유독 짧게 보이는 검정 치마와 살색 스타킹을 신고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가 섹시하게 보인다. 요즘... 내가 너무 굶었던 이유인가... 얼마전 강희 누나와의 회포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여러분, 모두 안녕.”
“안녕하세요.”
“오늘 시험 준비는 잘 들 해왔나요?”
“......”
“이런 질문을 하니 정말 시험을 보는 수험생의 모습 같군요. 긴장들 하고 있어요.”
“네...”
“오늘 시험 볼 문제는...”
이번 시험은 시험지에 지문이 있고 그 지문에 따라 문제를 맞추는 시험이 아닌 즉흥 시험이다.
“임상학적으로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구조에 대해 잘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중 뼈의 개수는...”
얘기를 하던 한 교수가 말을 멈추고 시험을 보기 위해 모인 우리를 쳐다보며 누군가를 지목해 물어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럴 때 항상 지목이 될까... 이번만은 절대 비켜 갈 것이라 생각되었고 다른 친구가 한 교수의 지목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젖는다.
“거기, 뒤에서 두 번째 앉은 학생. 대답해보세요.”
나는 아니겠지... 절대 아니겠지... 무조건 아니겠지... 나는 뒤에서... 두 번째다...
“저요?!”
“그래요, 학생이요. 우리의 몸에서 뼈의 개수는 총 몇 개로 되어 있나요?”
“그... 그게...”
분명 알고 있는 답이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머릿속이 백지가 된 듯했다. 떨려오고 답을 말할 수 없어 손만 벌벌 떨고 있다. 그러던 순간 수정이가 다른 의학 서적을 뒤적이며 나를 향해 손가락을 펼친다.
‘둘... 영... 여섯...’
손가락을 펴며 나에게 숫자를 말해주는 수정. 그 모습에 자동적으로 내 입이 반응했다.
“이... 이백여섯 개입니다.”
“맞아요, 의대 학생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네.”
“휴... 너 의대생 맞냐?”
강희 누나는 나에게 한숨을 쉬며 내 정체를 의심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뭐라고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시험시간이니까.
“우리 몸은 모두 206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뼈대들의 이름을 모두 나열해 보세요. 이게 이번 시험문제입니다.”
“뼈대의 이름을 나열해 보라니... 너무 쉬운 거 아니야?”
다른 학생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했고 너무 쉬운 시험이라 기쁘다는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패닉상태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고 있는데 수정이와 강희 누나가 내 앞으로 와서는 손바닥으로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고 있다.
“야, 너 왜 그래? 의대생이 그것도 몰라?”
“동생, 정신 차려.”
“나 지금... 머리가 빙빙...”
“뭐라니? 얘 정말 한심하네.”
“동생... 정신 좀 차려봐.”
뼈대의 이름은 몇 개 되지 않는데... 긴장을 해서 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문제를 낸 한 교수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 밖을 응시하며 학생들에게 문제를 풀 것을 묵언의 신호로 보내고 있었다. 서로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들이 문제를 풀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멍한 표정으로 칠판 쪽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이구... 이 화상아... 내가 불러 줄게. 받아 적어.”
“저... 정말?”
“넌 정말...”
“너무 긴장해서 그래.”
“윽...”
수정이가 창문 밖을 쳐다보는 한 교수의 뒤로 접근해 그녀의 몸으로 들어가자 한 교수는 잠시 비틀 거리더니 다시 중심을 잡고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한다. 지금 한 교수는 진짜 한 교수가 아닌 수정이 일 것이다. 그렇게 나를 쳐다보고 있으며 아마도 한 교수의 머릿속을 읽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쳐다보던 한 교수가 다시 비틀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잡더니 어지럽다고 빈자리에 앉아 쉼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정이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달려와 선심이라도 쓰는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받아 적을 준비 되었나?”
“......”
“그럼 시작한다.”
“고마워.”
“이마뼈, 광대뼈, 빗장뼈, 어깨뼈, 위팔뼈, 자뼈, 노뼈, 넙다리뼈...”
우리 몸을 이루는 뼈대의 수가 이렇게 많다니... 수정이가 불러주는 가운데 그 말들을 받아 적느라 나의 손이 바쁘다. 다른 학생들이 몇 가지 뼈대 이름을 적다 고민하는 사이 나는 모든 뼈대의 이름을 적게 되었고 제일 먼저 시험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고 수정이가 미웠기는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제일 고마웠다.
다른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동안 나는 먼저 시험을 끝내고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수정이가 재미있는 말을 꺼낸다.
“저 여교수... 그런 사람인지 몰랐어.”
“응? 뭐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수정이의 말에 강희 누나도 궁금했던지 어떤 내용이냐며 물었다.
“뭔데? 무슨 사연이 있니?”
“여기 학과에 최승호라는 사람이 있니?”
“승호? 승호라면... 아까 그...”
“응? 누구?”
“그 선배 이름이 최승호인데...”
“뭐라고? 정말?!”
“왜?”
“헐...”
“뭐가 헐이야? 말해 봐. 궁금하니까.”
수정이는 나와 강희 누나의 물음에 고민을 하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다. 나는 그런 수정이의 표정이 답답했고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소리를 지렀다.
“뭔데?! 빨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주변 학생들과 한 교수가 나를 쳐다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한 교수가 나를 향해 말했다.
“경고, 다음에는 낙제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얼굴이 빨개진 내 모습을 보며 강희 누나와 수정이는 자신의 배를 잡으며 웃기 시작했고 나는 부끄러웠다. 입맛만 다시며 수정이에게 어서 한 교수의 생각을 말해보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수정이가 말했다.
“저 여자... 어제 그 잘생긴 오빠와... 찐한 밤을 보냈어.”
“정말?!”
“지금도 어제의 경험에 대해 회상하며 만족하고 있다고. 그 남자가 정말 대단했나봐.”
“설마... 그럴 리가.”
“너 지금 날 무시하니?”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더 대단한 게 뭔지 알아?”
“뭔데?”
“이번 시험 끝나고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 또 다른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뭐? 정말? 또 다른 남자가 누군데.”
“없어.”
“응? 뭔 소리야? 없다니?”
“그냥... 아무나... 아무나 자신의 연구실로 와 자신을 범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헉!”
“발정난 여자야.”
수정이의 말에 내 아랫돌이가 빳빳하게 일어서며 내 시선에서 한 교수를 땔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강희 누나는 불쾌했던 모양이다.
“동생, 너...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아... 아니에요.”
“수정아, 이 녀석 머릿속에 지금 무슨 생각이 있는지 들여다 봐.”
“정말요? 그럼 한 번 볼까요?”
“아... 안 돼! 나도 사생활이 있다고!”
“조용히 말해. 너 그러다가 들키면 낙제야.”
“......”
“분명히 말하는데, 동생. 절대 안 돼. 넌 절대로... 안 된다.”
강희 누나는 나를 엄하게 단속하고 있었다. 하긴, 자신과 하룻밤 보낸 나를 다른 여자와 섹스하게 내버려 둘리 만무했다. 하지만 왠지 수정이의 말을 들으니 시험이 끝난 뒤 한 교수의 연구실로 가고 싶었다. 문제는 강희 누나를 어떻게 때어 놓느냐였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처음부터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상황이다. 이건...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련 없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꿈도 꾸지 않으려 할 때... 강희 누나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 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상하여 내 눈을 비비며 강희 누나를 쳐다보았다. 강희 누나는 내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왜 자꾸 자신을 보느냐고 묻는다.
“왜... 왜 자꾸 그런 눈으로 봐... 부끄럽게.”
“뭐야? 둘이 지금 나 있는데?”
“누나, 누나 모습이...”
“나? 왜?”
“점점 흐릿해 져요.”
“정말? 내 모습이 왜... 윽!”
누나는 말을 하다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잡고 괴로운 듯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가슴이 하늘로 치솟았다 내려가는 모습을 취하며 자신의 육체에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 누가 내 가슴에 따가운 것을 대고 있어.”
“따갑다고?”
“어떻게 하지? 무슨 일이지?”
지금 당장 누나의 육체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 누나의 몸을 만지고 있다는 얘긴데 그게 어떠한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더 있어, 내 두 다리를 잡고 있다고... 윽...”
“대체 이게 무슨...”
***
대전의 국군병원 응급실. 이곳은 긴박함이 느껴질 정도로 급박한 순간이다. 의사들이 누나의 침실 앞에 서서 신속한 응급처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어?”
“조금 전부터입니다. 제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왔는데 쇼크 상태였어요.”
“제세동기 가동 준비 해! 빨리.”
“둘, 셋!”
“팍!”
“아직 심장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다시! 둘, 셋!”
“팍!”
“출력을 조금 더 높여 봐!”
“둘, 셋!”
“팍!”
누나의 심장은 멎어 있었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도착한 간호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영혼의 누나 모습이 점점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고... 누나의 음성도 점점 약해져만 갔다.
***
“윽... 동생... 나... 가슴이 너무 아파...”
“어... 어쩌지...”
“주오...”
“누나...”
“슈우웅...”
순간적으로 누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와 수정이는 믿을 수 없다며 누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 빠르게 눈동자를 돌려 사방을 보았지만 강희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불안함에 휩싸인 나는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무턱대고 나갈 수 없어 한 교수를 향해 조용히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죠?”
“저... 시험문제를 모두 풀었는데... 먼저 일어 날 수 있을까요?”
“문제의 답을 모두 작성했다는 말인가요?”
“네.”
“자신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
나의 부탁에 한 교수는 팔짱을 끼며 잠시 고민하더니...
“급한 일이란 것이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있나요?”
“그건...”
“학생의 신분으로써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시험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제가 그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나요?”
“......”
“시험보다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는 소리군요. 그렇다면 안 됩니다. 기다리세요.”
“교... 교수님...”
“뭐죠?”
“정말... 급한 일인데...”
“그게 어떤 일인지 말해 달라는 건 실례가 아닌 것 같은데요.”
“윽...”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며 진정할 수 없었다. 누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겨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평생 자책하며 삶을 망칠지도 모른다. 빨리 누가의 육체가 있는 대전으로 향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때 수정이가 나를 향해 말한다.
“진정해, 언니는 괜찮을 거야.”
“......”
“내가 너보다 빨리 대전으로 갈 수 있으니 지금 대전으로 갈게. 너는 시험을 다 보고 내려와.”
“정말? 그래도 될까?”
“응, 내가 먼저 대전으로 가서 언니의 상태를 확인해 볼게.”
“빨리 가줘. 누나가 위험할지도 몰라.”
“걱정 마.”
그렇게 말한 수정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고 내 옆에 붙어 있던 강희 누나와 수정이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강희 누나의 상태가 걱정되어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그런 모습이 한 교수에게는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학생 이름이 어떻게 되죠?”
“김... 김주오...입니다.”
“김주오 학생은 지금 당장 내 연구실로 시험지를 들고 가 있어요.”
“네?”
“학생이 제 과목을 우습게 알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군요. 상담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연구실로... 어서요.”
“네...”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을 빠져나와 한 교수의 연구실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폭발 할 것처럼 불안했고 누나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한 교수의 연구실 앞에 도착하여 복도에 몸을 쭈그리고 앉아 온통 머릿속에는 누나의 걱정만 가득했다. 그렇게 몇 십분 후, 복도 반대편에서 하이힐을 신은 여자 걸음걸이 소리가 울려 펴지며 내 귀에 들려왔다.
“또각, 또각...”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았고 반대편 창문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에 후광이 비추는 한 교수를 발견했다. 그리고 수정이가 아까 해준 말이 생각이 나자 아랫돌이가 다시 빳빳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오래 기다렸군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네...”
그녀의 연구실은 처음 들어와 봤다. 두 평 남짓한 크기에 여자가 쓰는 방이라 그런지 풋풋한 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고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 모습이 포근하기 까지 했다. 한 교수가 자신의 책상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모습으로 의자를 돌려 나를 향한다.
“어서 들어오고 문을 닫아요. 그리고 그곳에 앉으세요.”
“......”
“학생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야 당연히... 존경하는 교수님이시죠.”
“존경? 그런데 아까와 같은 행동을 보여야 했나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1학년 주제에... 내 과목 시험시간에 그런 행동을 보인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반대편 다리를 꼬며 나에게 살짝 벌려진 입으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왜 이렇게 흥분이 되는 것일까.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누나의 걱정이 한 가득이데... 한 교수의 의도를 알고 있기에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누나가 우선이데... 한 교수가 누나의 걱정을 막고 서 있는 듯했다.
“교... 교수님.”
“왜 그러죠?”
“저... 저기...”
“응?”
옆으로 삐딱하게 앉아 있는 한 교수의 한 쪽 히프가 짧은 치마에 꽉 낀 모습으로 나를 향하고 있었고 둥근 엉덩이가 자극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내가 한 교수에게 먼저 꺼낸 말은...
“사... 사랑해요.”
“!”
“그리고...”
“......”
나의 고백을 들은 한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걸어온다. 나의 뺨이라도 때리며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 라는 명대사를 날리는 타이밍이었다.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고 무릎 위에 올려 진 두 주먹이 바지를 잡으며 힘을 주고 있었다.
“학생...”
“교수님...”
내 머리에 한 교수가 손을 올려놓고는 나를 지나쳐 자신의 연구실 문 쪽으로 걸음을 계속 걷기 시작했다.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살짝 떠 그녀가 지나간 동선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한 교수가 도착한 자신의 연구실 문 앞에서 문고리에 달린 잠금장치에 손을 올리더니...
“딱...”
문을 잠군 뒤 나를 향해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바지 위로 텐트가 쳐진다.
“야, 김주오.”
“네?”
“너 이 새끼... 며칠간 어디서 뭐했는지 빨리 보고해.”
선배가 나를 보더니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차분한 목소리로 자초지정을 설명해 보라며 말을 걸었다. 섬뜩한 눈빛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두 손은 공손하게 앞으로 모아진 상태가 되었다. 우리 학과에서 제일 무섭고 엄하기로 소문한 선배의 물음에 내 목소리가 석화되고 있는 기분이다.
“그... 그게요...”
“그게요? 그게 지금 네가 말하고 싶은 말의 전부야?”
“아닙니다, 아니고요...”
“빠져가지고... 너 이따가 시험 끝나고 연구동으로 와. 알겠어?”
“네...”
무서운 선배가 나를 스쳐가자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수정이가 정지된 상태로 그 선배를 응시하며 나를 향해 묻는다.
“친구야, 저 오빠... 누구야?”
“왜?”
“정말... 내 스타일이다.”
“그렇지? 너의 스타일에 남자야. 하지만 저 선배는 널 싫어 할 걸?”
“뭐라고?”
“진심이야. 꿈 깨.”
“흥! 그렇게 말하면 내가 삐져서 너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협박이냐?”
“응.”
“재수 없어.”
“뭐?!”
나와 수정이가 말다툼을 벌이려고 하자 이를 지켜보던 강희 누나가 우리를 말리며 말한다.
“너희들 정말... 그만 좀 해라.”
“누나, 쟤가 먼저 나를...”
“내가 뭐라고 했는데? 저 오빠 잘 생겼다고 했지, 너 욕했냐?”
“윽...”
“오호라, 너 혹시...”
“혹시 뭐?”
“훗...”
자신의 입을 가린 채 웃기만 하는 수정이의 표정을 보며 나는 당황스러웠다. 또 무슨 이상한 말로 나를 폄하하려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너, 나 좋아하냐?”
“뭐... 뭐라고?!”
“호호호. 맞네, 맞아. 나 좋아하는 구나?”
“미친...”
억울했다.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솔직하게 외형의 모습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수정이는 뭔가 잔뜩 자신의 모습에 엄청난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미친... X가 아닐지...
“마음속으로 욕하지 마라, 다음에 내가 너의 생각을 읽었을 때 내 욕 한마디만 나와 봐. 그땐 진짜 너 죽고 나 죽자야.”
“흥!”
우리의 모습을 보고 꺄르르 웃기만 하는 강희 누나가 왜 이렇게 얄립게 보이던지... 지금은 내가 을의 입장이다. 수정이가 갑인 이상 그냥 억울해도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주변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험시간이 얼추 다 되어 갔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시험을 보는 강의실로 달렸다.
“드르륵~”
“휴... 늦지는 않았네.”
“어? 야! 김주오! 저 새끼 어디 있다 이제 나타는 거야?”
“어, 정훈아. 나 지금 대전에서 불나게 달려오는 중이야.”
“대전? 거기는 뭣하러 갔어?”
“그냥... 일이 좀 있었어.”
“공부는? 너 이번 시험 교수님이 누군지는 알지?”
“알지, 그 유명한 독사... 한경숙 교수라는 것...”
“아는 녀석이 수업도 빼먹고 시험도 잊고 있냐? 너 이번 시험에 낙제하면 아마도 죽을지도 몰라.”
“......”
겁을 잔득 주는 이유는 한경숙 교수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악랄하고 잔인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여자 교수다. 젊은 나이에 전임교수가 되었지만 그 실력 하나만은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의학계에서 알아주는 여자 교수다. 그리고 잠시 후...
“떴다!”
“우르르...”
한 교수가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아주 부자연스럽게 넘어가며 그녀를 관찰한다. 오늘따라 유독 짧게 보이는 검정 치마와 살색 스타킹을 신고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가 섹시하게 보인다. 요즘... 내가 너무 굶었던 이유인가... 얼마전 강희 누나와의 회포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여러분, 모두 안녕.”
“안녕하세요.”
“오늘 시험 준비는 잘 들 해왔나요?”
“......”
“이런 질문을 하니 정말 시험을 보는 수험생의 모습 같군요. 긴장들 하고 있어요.”
“네...”
“오늘 시험 볼 문제는...”
이번 시험은 시험지에 지문이 있고 그 지문에 따라 문제를 맞추는 시험이 아닌 즉흥 시험이다.
“임상학적으로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구조에 대해 잘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중 뼈의 개수는...”
얘기를 하던 한 교수가 말을 멈추고 시험을 보기 위해 모인 우리를 쳐다보며 누군가를 지목해 물어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럴 때 항상 지목이 될까... 이번만은 절대 비켜 갈 것이라 생각되었고 다른 친구가 한 교수의 지목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젖는다.
“거기, 뒤에서 두 번째 앉은 학생. 대답해보세요.”
나는 아니겠지... 절대 아니겠지... 무조건 아니겠지... 나는 뒤에서... 두 번째다...
“저요?!”
“그래요, 학생이요. 우리의 몸에서 뼈의 개수는 총 몇 개로 되어 있나요?”
“그... 그게...”
분명 알고 있는 답이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머릿속이 백지가 된 듯했다. 떨려오고 답을 말할 수 없어 손만 벌벌 떨고 있다. 그러던 순간 수정이가 다른 의학 서적을 뒤적이며 나를 향해 손가락을 펼친다.
‘둘... 영... 여섯...’
손가락을 펴며 나에게 숫자를 말해주는 수정. 그 모습에 자동적으로 내 입이 반응했다.
“이... 이백여섯 개입니다.”
“맞아요, 의대 학생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네.”
“휴... 너 의대생 맞냐?”
강희 누나는 나에게 한숨을 쉬며 내 정체를 의심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뭐라고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시험시간이니까.
“우리 몸은 모두 206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뼈대들의 이름을 모두 나열해 보세요. 이게 이번 시험문제입니다.”
“뼈대의 이름을 나열해 보라니... 너무 쉬운 거 아니야?”
다른 학생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했고 너무 쉬운 시험이라 기쁘다는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패닉상태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고 있는데 수정이와 강희 누나가 내 앞으로 와서는 손바닥으로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고 있다.
“야, 너 왜 그래? 의대생이 그것도 몰라?”
“동생, 정신 차려.”
“나 지금... 머리가 빙빙...”
“뭐라니? 얘 정말 한심하네.”
“동생... 정신 좀 차려봐.”
뼈대의 이름은 몇 개 되지 않는데... 긴장을 해서 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문제를 낸 한 교수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 밖을 응시하며 학생들에게 문제를 풀 것을 묵언의 신호로 보내고 있었다. 서로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들이 문제를 풀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멍한 표정으로 칠판 쪽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이구... 이 화상아... 내가 불러 줄게. 받아 적어.”
“저... 정말?”
“넌 정말...”
“너무 긴장해서 그래.”
“윽...”
수정이가 창문 밖을 쳐다보는 한 교수의 뒤로 접근해 그녀의 몸으로 들어가자 한 교수는 잠시 비틀 거리더니 다시 중심을 잡고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한다. 지금 한 교수는 진짜 한 교수가 아닌 수정이 일 것이다. 그렇게 나를 쳐다보고 있으며 아마도 한 교수의 머릿속을 읽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쳐다보던 한 교수가 다시 비틀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잡더니 어지럽다고 빈자리에 앉아 쉼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정이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달려와 선심이라도 쓰는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받아 적을 준비 되었나?”
“......”
“그럼 시작한다.”
“고마워.”
“이마뼈, 광대뼈, 빗장뼈, 어깨뼈, 위팔뼈, 자뼈, 노뼈, 넙다리뼈...”
우리 몸을 이루는 뼈대의 수가 이렇게 많다니... 수정이가 불러주는 가운데 그 말들을 받아 적느라 나의 손이 바쁘다. 다른 학생들이 몇 가지 뼈대 이름을 적다 고민하는 사이 나는 모든 뼈대의 이름을 적게 되었고 제일 먼저 시험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고 수정이가 미웠기는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제일 고마웠다.
다른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동안 나는 먼저 시험을 끝내고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수정이가 재미있는 말을 꺼낸다.
“저 여교수... 그런 사람인지 몰랐어.”
“응? 뭐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수정이의 말에 강희 누나도 궁금했던지 어떤 내용이냐며 물었다.
“뭔데? 무슨 사연이 있니?”
“여기 학과에 최승호라는 사람이 있니?”
“승호? 승호라면... 아까 그...”
“응? 누구?”
“그 선배 이름이 최승호인데...”
“뭐라고? 정말?!”
“왜?”
“헐...”
“뭐가 헐이야? 말해 봐. 궁금하니까.”
수정이는 나와 강희 누나의 물음에 고민을 하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다. 나는 그런 수정이의 표정이 답답했고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소리를 지렀다.
“뭔데?! 빨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주변 학생들과 한 교수가 나를 쳐다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한 교수가 나를 향해 말했다.
“경고, 다음에는 낙제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얼굴이 빨개진 내 모습을 보며 강희 누나와 수정이는 자신의 배를 잡으며 웃기 시작했고 나는 부끄러웠다. 입맛만 다시며 수정이에게 어서 한 교수의 생각을 말해보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수정이가 말했다.
“저 여자... 어제 그 잘생긴 오빠와... 찐한 밤을 보냈어.”
“정말?!”
“지금도 어제의 경험에 대해 회상하며 만족하고 있다고. 그 남자가 정말 대단했나봐.”
“설마... 그럴 리가.”
“너 지금 날 무시하니?”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더 대단한 게 뭔지 알아?”
“뭔데?”
“이번 시험 끝나고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 또 다른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뭐? 정말? 또 다른 남자가 누군데.”
“없어.”
“응? 뭔 소리야? 없다니?”
“그냥... 아무나... 아무나 자신의 연구실로 와 자신을 범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헉!”
“발정난 여자야.”
수정이의 말에 내 아랫돌이가 빳빳하게 일어서며 내 시선에서 한 교수를 땔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강희 누나는 불쾌했던 모양이다.
“동생, 너...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아... 아니에요.”
“수정아, 이 녀석 머릿속에 지금 무슨 생각이 있는지 들여다 봐.”
“정말요? 그럼 한 번 볼까요?”
“아... 안 돼! 나도 사생활이 있다고!”
“조용히 말해. 너 그러다가 들키면 낙제야.”
“......”
“분명히 말하는데, 동생. 절대 안 돼. 넌 절대로... 안 된다.”
강희 누나는 나를 엄하게 단속하고 있었다. 하긴, 자신과 하룻밤 보낸 나를 다른 여자와 섹스하게 내버려 둘리 만무했다. 하지만 왠지 수정이의 말을 들으니 시험이 끝난 뒤 한 교수의 연구실로 가고 싶었다. 문제는 강희 누나를 어떻게 때어 놓느냐였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처음부터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상황이다. 이건...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련 없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꿈도 꾸지 않으려 할 때... 강희 누나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 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상하여 내 눈을 비비며 강희 누나를 쳐다보았다. 강희 누나는 내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왜 자꾸 자신을 보느냐고 묻는다.
“왜... 왜 자꾸 그런 눈으로 봐... 부끄럽게.”
“뭐야? 둘이 지금 나 있는데?”
“누나, 누나 모습이...”
“나? 왜?”
“점점 흐릿해 져요.”
“정말? 내 모습이 왜... 윽!”
누나는 말을 하다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잡고 괴로운 듯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가슴이 하늘로 치솟았다 내려가는 모습을 취하며 자신의 육체에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 누가 내 가슴에 따가운 것을 대고 있어.”
“따갑다고?”
“어떻게 하지? 무슨 일이지?”
지금 당장 누나의 육체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 누나의 몸을 만지고 있다는 얘긴데 그게 어떠한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더 있어, 내 두 다리를 잡고 있다고... 윽...”
“대체 이게 무슨...”
***
대전의 국군병원 응급실. 이곳은 긴박함이 느껴질 정도로 급박한 순간이다. 의사들이 누나의 침실 앞에 서서 신속한 응급처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어?”
“조금 전부터입니다. 제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왔는데 쇼크 상태였어요.”
“제세동기 가동 준비 해! 빨리.”
“둘, 셋!”
“팍!”
“아직 심장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다시! 둘, 셋!”
“팍!”
“출력을 조금 더 높여 봐!”
“둘, 셋!”
“팍!”
누나의 심장은 멎어 있었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도착한 간호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영혼의 누나 모습이 점점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고... 누나의 음성도 점점 약해져만 갔다.
***
“윽... 동생... 나... 가슴이 너무 아파...”
“어... 어쩌지...”
“주오...”
“누나...”
“슈우웅...”
순간적으로 누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와 수정이는 믿을 수 없다며 누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 빠르게 눈동자를 돌려 사방을 보았지만 강희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불안함에 휩싸인 나는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무턱대고 나갈 수 없어 한 교수를 향해 조용히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죠?”
“저... 시험문제를 모두 풀었는데... 먼저 일어 날 수 있을까요?”
“문제의 답을 모두 작성했다는 말인가요?”
“네.”
“자신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
나의 부탁에 한 교수는 팔짱을 끼며 잠시 고민하더니...
“급한 일이란 것이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있나요?”
“그건...”
“학생의 신분으로써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시험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제가 그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나요?”
“......”
“시험보다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는 소리군요. 그렇다면 안 됩니다. 기다리세요.”
“교... 교수님...”
“뭐죠?”
“정말... 급한 일인데...”
“그게 어떤 일인지 말해 달라는 건 실례가 아닌 것 같은데요.”
“윽...”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며 진정할 수 없었다. 누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겨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평생 자책하며 삶을 망칠지도 모른다. 빨리 누가의 육체가 있는 대전으로 향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때 수정이가 나를 향해 말한다.
“진정해, 언니는 괜찮을 거야.”
“......”
“내가 너보다 빨리 대전으로 갈 수 있으니 지금 대전으로 갈게. 너는 시험을 다 보고 내려와.”
“정말? 그래도 될까?”
“응, 내가 먼저 대전으로 가서 언니의 상태를 확인해 볼게.”
“빨리 가줘. 누나가 위험할지도 몰라.”
“걱정 마.”
그렇게 말한 수정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고 내 옆에 붙어 있던 강희 누나와 수정이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강희 누나의 상태가 걱정되어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그런 모습이 한 교수에게는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학생 이름이 어떻게 되죠?”
“김... 김주오...입니다.”
“김주오 학생은 지금 당장 내 연구실로 시험지를 들고 가 있어요.”
“네?”
“학생이 제 과목을 우습게 알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군요. 상담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연구실로... 어서요.”
“네...”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을 빠져나와 한 교수의 연구실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폭발 할 것처럼 불안했고 누나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한 교수의 연구실 앞에 도착하여 복도에 몸을 쭈그리고 앉아 온통 머릿속에는 누나의 걱정만 가득했다. 그렇게 몇 십분 후, 복도 반대편에서 하이힐을 신은 여자 걸음걸이 소리가 울려 펴지며 내 귀에 들려왔다.
“또각, 또각...”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았고 반대편 창문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에 후광이 비추는 한 교수를 발견했다. 그리고 수정이가 아까 해준 말이 생각이 나자 아랫돌이가 다시 빳빳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오래 기다렸군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네...”
그녀의 연구실은 처음 들어와 봤다. 두 평 남짓한 크기에 여자가 쓰는 방이라 그런지 풋풋한 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고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 모습이 포근하기 까지 했다. 한 교수가 자신의 책상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모습으로 의자를 돌려 나를 향한다.
“어서 들어오고 문을 닫아요. 그리고 그곳에 앉으세요.”
“......”
“학생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야 당연히... 존경하는 교수님이시죠.”
“존경? 그런데 아까와 같은 행동을 보여야 했나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1학년 주제에... 내 과목 시험시간에 그런 행동을 보인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반대편 다리를 꼬며 나에게 살짝 벌려진 입으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왜 이렇게 흥분이 되는 것일까.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누나의 걱정이 한 가득이데... 한 교수의 의도를 알고 있기에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누나가 우선이데... 한 교수가 누나의 걱정을 막고 서 있는 듯했다.
“교... 교수님.”
“왜 그러죠?”
“저... 저기...”
“응?”
옆으로 삐딱하게 앉아 있는 한 교수의 한 쪽 히프가 짧은 치마에 꽉 낀 모습으로 나를 향하고 있었고 둥근 엉덩이가 자극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내가 한 교수에게 먼저 꺼낸 말은...
“사... 사랑해요.”
“!”
“그리고...”
“......”
나의 고백을 들은 한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걸어온다. 나의 뺨이라도 때리며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 라는 명대사를 날리는 타이밍이었다.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고 무릎 위에 올려 진 두 주먹이 바지를 잡으며 힘을 주고 있었다.
“학생...”
“교수님...”
내 머리에 한 교수가 손을 올려놓고는 나를 지나쳐 자신의 연구실 문 쪽으로 걸음을 계속 걷기 시작했다.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살짝 떠 그녀가 지나간 동선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한 교수가 도착한 자신의 연구실 문 앞에서 문고리에 달린 잠금장치에 손을 올리더니...
“딱...”
문을 잠군 뒤 나를 향해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바지 위로 텐트가 쳐진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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