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글을 소라넷(http://soraros.info)에만 연재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 소라넷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분명 그 글은 불법으로 퍼간 글입니다.
몰래 와서 글을 도둑질해다가 올리신,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바퀴벌레이십니다.
아오~ 얄미워.
홈키퍼로 날리고싶다.
* * * * * * * * * *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1. Prologue : 알바자리 구하기 & 아이린(IRENE) PC방
내가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것은 3월 중순이었다. 당장 복학을 할 수도 있었지만, 가을 학기에 하기로 미뤄두고, 그 때까지는 토익 공부나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등록금이야 학자금 대출로 어떻게 해본다고 해도, 용돈이나 학원비 등의 생활비 만큼은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내 생각을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엄마는 반대하셨다.
"무슨 .. 용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공부나 꾸준히 하지 그러니?"
"졸업하면서 바로 취직을 해야하니까 스펙도 필요하거든요."
"그런 데로 들어가는 돈을 내가 모르는 척 할까봐? 일한다고 공부를 등한시하면 어쩌게?"
"그래도 하는 데 까지는 해볼께요."
"다른 남자들은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던데, 너는 좀 이상해진 것 같아. 고집만 늘었어."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제대 1주일만에 학교 후문 앞에 있는 오피스텔을 얻어서 이사를 계획한다. 물론 집에서는 반대했지만. 엄마는 내 마음이 굳은 것을 아시고, 결국은 동의해주셨다. 나는 이사를 했고, 엄마는 가끔씩 와서 냉장고에 밑반찬을 넣어주고 가신다. 나는 집에 일주일에 한두번 들어가서 생존 신고를 하고, 용돈을 타온다.
나는 왕따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어쩌다 한번씩 복학생들의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에는 나가서 같이 어울린다. 그런 모임에 나가면 같이 밥도 먹고, PC방에 가서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당구장에도 간다.
그런데 나는 영화보러 가는 일은 안한다. 친한 친구가 아니면 남자들끼리 가기에는 좀 그렇고, 나 혼자가려면 왠지 처량해진다. 주변에 있는 쌍쌍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군에 가기 전에 정리하면서 여친과도 과감하게 헤어졌다. 물론 내가 차였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 * *
그러니까 요새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알바 광고를 열심히 뒤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4, 5 시간 하는 일들로는 하루에 버는 돈이 2, 3 만원 안팎이다. 교통비, 식비를 빼고 나면 이런 일들은 돈도 안 되고, 괜히 시간만 아깝다.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되는 일이라면서 오랜 시간 동안 너무 힘들게 일을 하면 공부를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저런 핑계로 토익 공부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칼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 만큼은 변함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일은 사무실에서 하는 알바이다. 서류정리나 워드작업, 청소, 복사, 정리 등등. 그런데 이런 일들은 주로 여자애들에게 간다.
나는 요새 평균 하루에 한번은 꼭 면접에 다닌다. 그런데 면접에 들어가서 어떤 일인가를 이야기하다보면 대부분 내가 그냥 나온다. 내 입맛에 맞는 떡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이러는 내가 아직은 배부른 짓을 한다고 나무랜다.
"그냥 편의점이나 PC방에서 하면 되지."
"주유소도 좋던데."
"호프집 서빙은 어때?"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남자면 해볼만 해."
그런데 이런 것은 내 생각에는 아니다.
친구들 말대로 아마도 내가 아직은 배가 부른 것 같다.
이제는 엄마에게 손벌리고 용돈을 타쓰기도 민망하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고 .. 지옥이 따로 없다.
* * *
그러다가 4월 말쯤해서 어느 날 눈에 띈 구인광고.
<나라마트. 사무보조. 1명>
이 광고를 읽으면서 갑자기 온 몸이 긴장되면서 짜릿해온다. 그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광고가 올라온 것이 며칠 지났음 것을 알았다. 그 사이에 벌써 해결됐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신이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당장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여자였는데, 다음 날 일요일 아침 9시에 이력서를 들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일요일에 면접보러 오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 날 밤에는 집으로 들어가서 잤다. 일요일인데도 아침 9시라면 나에게는 이른 새벽이었지만, 이 날 아침에는 전혀 불만없이 7시 반에 일어났다. 내가 샤워를 하고, 커피를 끓여 마시면서 욕실과 주방을 오가며 설쳐대자 엄마가 이상해하신다.
"여행 가니?"
"여행은 무슨 여행? 알바 면접 가요."
"아침에 살아있는 너도 보고, .. 이런 면접 매일 있었으면 좋겠다. 돈은 있어?"
"차비 정도 있어요."
"밥은 굶지말고 다녀."
엄마는 돈봉투 하나를 내게 주셨는데, 열어보니까 5만원 짜리가 5장 들어있다.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 것 같다.
* * *
나라마트라는 그 회사는 마포에 있었고, 찾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집에서 지하철로 20분이 채 안되는 거리이니까 출퇴근 시간이 30분이면 완전 딱이다.
면접하는 자리에는 장학생 안경을 낀 여자가 나타나서 나와 마주앉았다. 말투로 봐서는 어제 나랑 전화로 통화한 그 여자인 것 같다.
그녀는 사진이 붙어있는 회사 신분증을 목에 걸고있었다. 그런데 그 신분증은 그녀의 큼직한 젖가슴에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게 붙어있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거기 쓰인 글자를 알아보겠다고 그녀의 젖가슴을 들여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포기했다.
그녀는 내가 내민 이력서를 주욱 훑어본다. 나는 읽는 사람을 배려해서 이력서에 많은 것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많이 쓰고싶어도 많이 쓸 것도 없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복무 이것이 전부이다.
"김태현씨는 복학하면 3학년?"
"네."
"가끔씩 여기 저기 다니면서 다른 매장을 지원해주는 일도 해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군대 만큼 힘들겠습니까?"
"하긴 .. "
그녀는 지금까지 지원한 대학생들 중에서 이미 어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하는 바람에 나까지 만나고 나서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나는 일요일에 면접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월요일부터는 누가 하더라도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일을 하게 되면, 일단 시급은 8천원으로 시작하고, 한달간 일해보고 나서 계속할 경우에는 만원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 한달은 뭐죠?"
"태현씨가 알바 자리를 고르는 것처럼, 우리도 알바생을 고를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력서만 보고 판단하기는 불가능해요. 한달 후에 우리 쌍방이 만족하면 계속 가는거죠."
이것은 기업이 사람을 쓰는데 있어서 상당히 합리적인 방법같다. 그녀는 무슨 뜻에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날더러 오늘 오후 4시쯤에 내 휴대폰으로 연락해주겠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회사라면 만원으로 올려주지 않고 8천원으로 주욱 가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는 제발 됐으면 좋겠다. 그 회사를 나올 때에는, 들어갈 때보다는 훨씬 더 초조한 마음이다. 이번에 안되면 공장에 다니는 것까지 생각해야할 정도로 요새 나는 심각하다.
이대로 집에 가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결국 또 잠을 잘 것 같다. 이제 10시가 막 넘어서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재학생들은 중간고사 때문에 바쁠 것 같고, 복학생들은 아직 자고있을 시간이다.
* * *
나는 망설이지않고 혼자서 오피스텔 바로 앞에 있는 PC방으로 갔다. 이럴 때 PC방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요새 들어서 나는 이 PC방에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한다. 그런데 오전에 이 PC방을 나간 적은 있지만, 오늘처럼 오전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일요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성인은 군데군데에 몇명 안되고, 자리를 거의 다 초딩이나 중딩들이 점령했다. 성인들이 아침부터 PC방에 와서 게임을 할 리는 없고, 아마도 밤샘이 연장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꼬맹이들 수다때문에 엄청 시끄럽다.
오늘은 서지혜가 나와서 일한다. 그녀는 빈 자리를 정리하다가 들어서는 나를 본다. 초록색 미니스커트에 하얀 라운드 티. 별로 길지 않은 머리를 뒤로 묶어내린 서지혜가 하늘하늘 내게로 다가온다. 카운터에 있는 그녀의 자리에는 붉은 가디건과 가방이 있다. 그녀에게서 여고생의 상큼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엄청 기다렸거든요."
"나를?"
"그래. 전화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꼭두새벽부터 웬일이래?"
"지혜가 엄청 보고싶어서 잠이 안와. 하하."
"느끼하잖아? 뭐 좀 먹었어?"
"라면 하나 먹자. 떡살 넣고. 너는 먹었니?"
"나도 9시에 와서 잠결에 교대했어. 헤헤."
"두개 해서 같이 먹자. 사장님 오신대?"
"두시는 넘어야 ..."
나는 만원짜리 한장을 지혜에게 건네주지만, 지혜는 받지 않는다.
"뒀다가 나중에 밥 사."
지혜가 라면을 챙기는 것을 보고, 나는 흡연실로 갔다. 담배를 물고 다시 한 번 그 알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면접하던 그 여자랑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그녀의 신분증을 보려고 하다가 얼핏 본 큼직한 젖가슴이 떠오른다.
이 PC방 사장은 <아이린>이다. 나이는 40대 후반 정도인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고, 아무튼 미모의 여인이다. 원래 이름은 따로 있겠지만, 나는 그녀를 이 PC방의 이름을 따서 <아이린>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내가 그녀를 부를 때에는 이름을 부를 일이 없고, 그냥 <사장님> 하면 된다. 그러니까 아이린은 나 혼자만 알고있는 그녀의 애칭이다. 아이린은 오피스텔 바로 뒤쪽에 있는 아파트에서 산다.
서지혜는 아이린의 딸이고, 이번에 고2라고 했다. 그런데 애가 얼마나 잘 컸는지, 덩치나 몸매는 누가봐도 성인이다. 지혜에게는 1년 연하인 고1 남동생 서경식이 있다.
오늘처럼 알바생이 펑크를 내면 서지혜가 땜빵하러 나온다. 지혜는 별 일 없으면 주말에도 나온다. 나랑 같이 밤새워 게임을 한 적도 있다.
"고딩은 저녁에 PC방에 있으면 안되는데?"
"오빠. 헤헤."
지혜는 가방에 있는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자기 이종사촌 언니의 것이라는데, 사잔과 지혜는 생긴 것이 진짜 완전 붕어빵이다. 민증의 주인인 그녀는 지금 대학 2학년이라고 했다.
어떨 때는 대타를 지혜가 하지않고, 아이린이 직접 할 때도 있다. 지혜나 아이린이 일할 때에, 그녀들이 화장실이나 흡연실을 청소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서 해준다. 또 바깥 복도나 계단까지 밀대질도 그녀들을 대신해서 내가 해준 적도 있다. 서지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아이린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한다.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하면서 말한다.
"컴퓨터에 너무 오래 붙어서 게임만 하면 병생겨요."
지혜가 머리만 흡연실 안으로 들이밀고 나를 부른다.
"오빠, 라면 다 됐거든요. 얼른 와서 먹자."
카운터 옆에 있는 테이블에 은박지로 된 그릇 두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다. 자리에 앉자 지혜가 내게 나무젓가락을 건네준다.
"오늘은 지혜가 하루 종일 일하니?"
"이따가 한시에는 나가봐야 하는데, 엄마는 두시 전에는 안된다고 하고 .."
"뭐야? 그럼 또 날더러 하라고?"
"오빠, 딱 오늘 한 번. 오늘은 정말 꼭 가봐야 하거든요."
"이러언. 아까 라면 값 안받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그건 나중에 밥 사라고 적립했다니까."
"에휴. 차라리 내가 여기서 알바를 하고 말지."
"그니까 내 말이."
며칠 전에는 9시에 교대하러 오는 애가 두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다고 아이린에게 전화를 해온 모양이다. 아이린은 엄청 당황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집에 잠시 갔다와야 하거든. 한시간만 카운터 지켜줄래요?"
아이린으로부터 사정 얘기를 들은 나는 한시간동안 카운터를 지켰다.
그런데 오늘 또 날더러 가게를 봐달라는 것이다.
12시 반이 조금 지나서 나는 카운터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서지혜는 가디건을 걸치고, 가방을 메더니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PC방을 나갔다. 특별히 내가 할 일은 자리를 지키는 것 말고는 별로 없다. 다들 자기가 적립해 둔 돈으로 게임을 하고, 모자라면 자기들이 충전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이란 기껏해야 돈을 입금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면서 같이 해주는 것 뿐이다. 오후가 되니까 초딩들이 제법 빠져나가고 고딩들이 들어온다. 얘네들은 그렇게 시끄럽지 않다.
* * *
내가 아이린이나 서지혜와 가까워지게 된 동기는 서지혜의 남동생 서경식 때문이었다.
제대한 후 얼마 되지않아서였다. 저녁에 PC방에 갔는데, 서경식이 교복차림으로 카운터에 앉아있는 것이다.
"웬 고딩이 이 시간에 알바하냐?"
"엄마가 급한 일 때문에 잠시만 봐달라고 해서요."
그러고 보니까 이 머시마가 엄마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나에 대한 얘기를 들어서 알고있었다. 내가 카운터 앞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자 그는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경식이는 내게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처음으로 고등학교에서 겪은 일들을 얘기했고, 나는 들어주었다. 내가 조용히 들어주면서 간간이 장단을 맞춰주자 서경식은 신이 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다음에는 경식이가 영어나 수학을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을 나에게 들고 와서 물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서경식과 아는 사이가 되고, 금방 아이린과 그 다음에는 서지혜와도 가까워진다.
* * *
아이린이 PC방에 나타난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그녀는 들어서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또 고맙다고 했다. 화사한 외출복 차림의 그녀가 10년은 젊어보인다. 나는 그녀에게 카운터를 넘겨주고 뒤쪽에 있는 자리로 갔다.
한참 게임을 하고 있는데 아이린이 내 뒤를 지나가면서 나에게 카운터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흡연실에 가서 담배를 피운 후에 카운터로 갔다. 아이린은 500짜리 맥주잔에 냉커피를 타주었다.
"오늘이 친정 엄마 생일이거든. 70이 넘은 노인네한테 점심 한끼 사드리고 오느라고 늦었어. 정말 미안해."
"괜찮아요."
"지혜가 오늘 하루 종일 있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봐. 아침에 나가면서 얼마나 당황했었나 몰라. 태현씨가 아니었으면 밥 한그릇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올 뻔 했어. 정말 고마워."
"괜찮다니까."
"오늘 별 일 없으면 이따가 나랑 같이 저녁 먹고 들어가."
"네."
나는 동아리 멤버들이나 복학생들을 우루루 몰고 이리로 와서 게임을 한 적도 있다. 걔네들이랑 여기서 밤샘을 한 날도 있다. 그녀는 초저녁에는 꼭 PC방에 나와있다. 저녁 교대가 9시라는데, 그 교대가 이상없이 되는 것을 보고 들어간다. 그런데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날에는 자정이 넘어서 들어간다. 그 때까지 있으면서 그녀는 우리에게 음료수나 야식을 서비스로 챙겨준다. 아이린이 워낙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훌륭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하니 좋고, 게다가 서비스까지 좋아서인지 내가 오라고 하면 친구들은 잔소리 없이 온다.
* * *
오후 4시가 넘었다. 그런데 나라마트에서는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나는 내 휴대폰에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전화기는 배터리까지 아무 이상이 없다.
역시 아닌가?
나는 은근히 열받았다. 그래서 게임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다.
드디어 5시가 넘자 나는 전화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지혜가 들어왔다. 지혜는 내 옆에 있는 빈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했다. 나는 게임할 맛이 나지 않아서 게임을 쉬고있었다.
그런데 내 휴대전화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한두번이 아니라 계속 울린다.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받아야 하나를 망설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회사가 아닐까봐 무서워서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가 끊겼다. 전화기를 보니까 부재중으로 떠있는데, 발신인은 나라마트였다. 억울했다. 옆에서 지혜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내게 물었다.
"오빠, 무슨 전화인데 안받아?"
"스팸 아닐까?"
"일요일에도 스팸 전화가 와?"
"글쎄."
나는 이제는 완전히 물건너갔겠지 생각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휴대전화기가 또 진동음을 낸다. 이번에는 재빨리 전화기를 들여다 보았다. 역시 나라마트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전화기를 들고 흡연실로 가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김태현씨죠?"
전화기에서 귀에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너무 긴장했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네."
"아까 우리 면접하던 방에서 아침 10시에 만나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합격이라는 것 같기도 한데. ..
통화가 끝나고 나는 머엉한 상태로 그냥 넋놓고 앉아있었다.
아이린이 흡연실로 와서 웃는 얼굴을 하고 내게 묻는다.
"태현씨, 우리 몇시에 저녁 먹으러 갈까?"
"사장님 괜찮은 시간에요."
사실 통화가 이렇게 끝난 후에 나는 아이린과 저녁식사를 같이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므로 같이 나갈 각오는 돼있다.
아이린은 저녁 9시 교대가 정상으로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이제 나가면 미친듯이 게임만 하다보면 시간은 갈 것 같다.
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서지혜가 내게 물었다.
"오빠, 우리 엄마 오늘 엄청 예쁘지?"
"응."
"그런데 엄머가 왜 오빠랑 저녁 먹으러 가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너도 같이 가니?"
"아냐. 나보고는 가게 보래."
"너도 같이 가도록 해볼까?"
"치사해서 싫어. 나는 나중에 오빠랑 둘이 가면 되잖아."
지혜와 나는 각자 게임에 몰두했다.
만일 당신이 지금 소라넷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분명 그 글은 불법으로 퍼간 글입니다.
몰래 와서 글을 도둑질해다가 올리신,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바퀴벌레이십니다.
아오~ 얄미워.
홈키퍼로 날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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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입니다.
1. Prologue : 알바자리 구하기 & 아이린(IRENE) PC방
내가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것은 3월 중순이었다. 당장 복학을 할 수도 있었지만, 가을 학기에 하기로 미뤄두고, 그 때까지는 토익 공부나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등록금이야 학자금 대출로 어떻게 해본다고 해도, 용돈이나 학원비 등의 생활비 만큼은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내 생각을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엄마는 반대하셨다.
"무슨 .. 용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공부나 꾸준히 하지 그러니?"
"졸업하면서 바로 취직을 해야하니까 스펙도 필요하거든요."
"그런 데로 들어가는 돈을 내가 모르는 척 할까봐? 일한다고 공부를 등한시하면 어쩌게?"
"그래도 하는 데 까지는 해볼께요."
"다른 남자들은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던데, 너는 좀 이상해진 것 같아. 고집만 늘었어."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제대 1주일만에 학교 후문 앞에 있는 오피스텔을 얻어서 이사를 계획한다. 물론 집에서는 반대했지만. 엄마는 내 마음이 굳은 것을 아시고, 결국은 동의해주셨다. 나는 이사를 했고, 엄마는 가끔씩 와서 냉장고에 밑반찬을 넣어주고 가신다. 나는 집에 일주일에 한두번 들어가서 생존 신고를 하고, 용돈을 타온다.
나는 왕따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어쩌다 한번씩 복학생들의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에는 나가서 같이 어울린다. 그런 모임에 나가면 같이 밥도 먹고, PC방에 가서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당구장에도 간다.
그런데 나는 영화보러 가는 일은 안한다. 친한 친구가 아니면 남자들끼리 가기에는 좀 그렇고, 나 혼자가려면 왠지 처량해진다. 주변에 있는 쌍쌍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군에 가기 전에 정리하면서 여친과도 과감하게 헤어졌다. 물론 내가 차였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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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요새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알바 광고를 열심히 뒤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4, 5 시간 하는 일들로는 하루에 버는 돈이 2, 3 만원 안팎이다. 교통비, 식비를 빼고 나면 이런 일들은 돈도 안 되고, 괜히 시간만 아깝다.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되는 일이라면서 오랜 시간 동안 너무 힘들게 일을 하면 공부를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저런 핑계로 토익 공부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칼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 만큼은 변함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일은 사무실에서 하는 알바이다. 서류정리나 워드작업, 청소, 복사, 정리 등등. 그런데 이런 일들은 주로 여자애들에게 간다.
나는 요새 평균 하루에 한번은 꼭 면접에 다닌다. 그런데 면접에 들어가서 어떤 일인가를 이야기하다보면 대부분 내가 그냥 나온다. 내 입맛에 맞는 떡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이러는 내가 아직은 배부른 짓을 한다고 나무랜다.
"그냥 편의점이나 PC방에서 하면 되지."
"주유소도 좋던데."
"호프집 서빙은 어때?"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남자면 해볼만 해."
그런데 이런 것은 내 생각에는 아니다.
친구들 말대로 아마도 내가 아직은 배가 부른 것 같다.
이제는 엄마에게 손벌리고 용돈을 타쓰기도 민망하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고 .. 지옥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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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4월 말쯤해서 어느 날 눈에 띈 구인광고.
<나라마트. 사무보조. 1명>
이 광고를 읽으면서 갑자기 온 몸이 긴장되면서 짜릿해온다. 그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광고가 올라온 것이 며칠 지났음 것을 알았다. 그 사이에 벌써 해결됐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신이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당장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여자였는데, 다음 날 일요일 아침 9시에 이력서를 들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일요일에 면접보러 오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 날 밤에는 집으로 들어가서 잤다. 일요일인데도 아침 9시라면 나에게는 이른 새벽이었지만, 이 날 아침에는 전혀 불만없이 7시 반에 일어났다. 내가 샤워를 하고, 커피를 끓여 마시면서 욕실과 주방을 오가며 설쳐대자 엄마가 이상해하신다.
"여행 가니?"
"여행은 무슨 여행? 알바 면접 가요."
"아침에 살아있는 너도 보고, .. 이런 면접 매일 있었으면 좋겠다. 돈은 있어?"
"차비 정도 있어요."
"밥은 굶지말고 다녀."
엄마는 돈봉투 하나를 내게 주셨는데, 열어보니까 5만원 짜리가 5장 들어있다.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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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트라는 그 회사는 마포에 있었고, 찾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집에서 지하철로 20분이 채 안되는 거리이니까 출퇴근 시간이 30분이면 완전 딱이다.
면접하는 자리에는 장학생 안경을 낀 여자가 나타나서 나와 마주앉았다. 말투로 봐서는 어제 나랑 전화로 통화한 그 여자인 것 같다.
그녀는 사진이 붙어있는 회사 신분증을 목에 걸고있었다. 그런데 그 신분증은 그녀의 큼직한 젖가슴에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게 붙어있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거기 쓰인 글자를 알아보겠다고 그녀의 젖가슴을 들여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포기했다.
그녀는 내가 내민 이력서를 주욱 훑어본다. 나는 읽는 사람을 배려해서 이력서에 많은 것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많이 쓰고싶어도 많이 쓸 것도 없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복무 이것이 전부이다.
"김태현씨는 복학하면 3학년?"
"네."
"가끔씩 여기 저기 다니면서 다른 매장을 지원해주는 일도 해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군대 만큼 힘들겠습니까?"
"하긴 .. "
그녀는 지금까지 지원한 대학생들 중에서 이미 어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하는 바람에 나까지 만나고 나서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나는 일요일에 면접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월요일부터는 누가 하더라도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일을 하게 되면, 일단 시급은 8천원으로 시작하고, 한달간 일해보고 나서 계속할 경우에는 만원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 한달은 뭐죠?"
"태현씨가 알바 자리를 고르는 것처럼, 우리도 알바생을 고를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력서만 보고 판단하기는 불가능해요. 한달 후에 우리 쌍방이 만족하면 계속 가는거죠."
이것은 기업이 사람을 쓰는데 있어서 상당히 합리적인 방법같다. 그녀는 무슨 뜻에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날더러 오늘 오후 4시쯤에 내 휴대폰으로 연락해주겠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회사라면 만원으로 올려주지 않고 8천원으로 주욱 가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는 제발 됐으면 좋겠다. 그 회사를 나올 때에는, 들어갈 때보다는 훨씬 더 초조한 마음이다. 이번에 안되면 공장에 다니는 것까지 생각해야할 정도로 요새 나는 심각하다.
이대로 집에 가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결국 또 잠을 잘 것 같다. 이제 10시가 막 넘어서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재학생들은 중간고사 때문에 바쁠 것 같고, 복학생들은 아직 자고있을 시간이다.
* * *
나는 망설이지않고 혼자서 오피스텔 바로 앞에 있는 PC방으로 갔다. 이럴 때 PC방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요새 들어서 나는 이 PC방에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한다. 그런데 오전에 이 PC방을 나간 적은 있지만, 오늘처럼 오전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일요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성인은 군데군데에 몇명 안되고, 자리를 거의 다 초딩이나 중딩들이 점령했다. 성인들이 아침부터 PC방에 와서 게임을 할 리는 없고, 아마도 밤샘이 연장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꼬맹이들 수다때문에 엄청 시끄럽다.
오늘은 서지혜가 나와서 일한다. 그녀는 빈 자리를 정리하다가 들어서는 나를 본다. 초록색 미니스커트에 하얀 라운드 티. 별로 길지 않은 머리를 뒤로 묶어내린 서지혜가 하늘하늘 내게로 다가온다. 카운터에 있는 그녀의 자리에는 붉은 가디건과 가방이 있다. 그녀에게서 여고생의 상큼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엄청 기다렸거든요."
"나를?"
"그래. 전화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꼭두새벽부터 웬일이래?"
"지혜가 엄청 보고싶어서 잠이 안와. 하하."
"느끼하잖아? 뭐 좀 먹었어?"
"라면 하나 먹자. 떡살 넣고. 너는 먹었니?"
"나도 9시에 와서 잠결에 교대했어. 헤헤."
"두개 해서 같이 먹자. 사장님 오신대?"
"두시는 넘어야 ..."
나는 만원짜리 한장을 지혜에게 건네주지만, 지혜는 받지 않는다.
"뒀다가 나중에 밥 사."
지혜가 라면을 챙기는 것을 보고, 나는 흡연실로 갔다. 담배를 물고 다시 한 번 그 알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면접하던 그 여자랑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그녀의 신분증을 보려고 하다가 얼핏 본 큼직한 젖가슴이 떠오른다.
이 PC방 사장은 <아이린>이다. 나이는 40대 후반 정도인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고, 아무튼 미모의 여인이다. 원래 이름은 따로 있겠지만, 나는 그녀를 이 PC방의 이름을 따서 <아이린>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내가 그녀를 부를 때에는 이름을 부를 일이 없고, 그냥 <사장님> 하면 된다. 그러니까 아이린은 나 혼자만 알고있는 그녀의 애칭이다. 아이린은 오피스텔 바로 뒤쪽에 있는 아파트에서 산다.
서지혜는 아이린의 딸이고, 이번에 고2라고 했다. 그런데 애가 얼마나 잘 컸는지, 덩치나 몸매는 누가봐도 성인이다. 지혜에게는 1년 연하인 고1 남동생 서경식이 있다.
오늘처럼 알바생이 펑크를 내면 서지혜가 땜빵하러 나온다. 지혜는 별 일 없으면 주말에도 나온다. 나랑 같이 밤새워 게임을 한 적도 있다.
"고딩은 저녁에 PC방에 있으면 안되는데?"
"오빠. 헤헤."
지혜는 가방에 있는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자기 이종사촌 언니의 것이라는데, 사잔과 지혜는 생긴 것이 진짜 완전 붕어빵이다. 민증의 주인인 그녀는 지금 대학 2학년이라고 했다.
어떨 때는 대타를 지혜가 하지않고, 아이린이 직접 할 때도 있다. 지혜나 아이린이 일할 때에, 그녀들이 화장실이나 흡연실을 청소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서 해준다. 또 바깥 복도나 계단까지 밀대질도 그녀들을 대신해서 내가 해준 적도 있다. 서지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아이린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한다.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하면서 말한다.
"컴퓨터에 너무 오래 붙어서 게임만 하면 병생겨요."
지혜가 머리만 흡연실 안으로 들이밀고 나를 부른다.
"오빠, 라면 다 됐거든요. 얼른 와서 먹자."
카운터 옆에 있는 테이블에 은박지로 된 그릇 두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다. 자리에 앉자 지혜가 내게 나무젓가락을 건네준다.
"오늘은 지혜가 하루 종일 일하니?"
"이따가 한시에는 나가봐야 하는데, 엄마는 두시 전에는 안된다고 하고 .."
"뭐야? 그럼 또 날더러 하라고?"
"오빠, 딱 오늘 한 번. 오늘은 정말 꼭 가봐야 하거든요."
"이러언. 아까 라면 값 안받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그건 나중에 밥 사라고 적립했다니까."
"에휴. 차라리 내가 여기서 알바를 하고 말지."
"그니까 내 말이."
며칠 전에는 9시에 교대하러 오는 애가 두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다고 아이린에게 전화를 해온 모양이다. 아이린은 엄청 당황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집에 잠시 갔다와야 하거든. 한시간만 카운터 지켜줄래요?"
아이린으로부터 사정 얘기를 들은 나는 한시간동안 카운터를 지켰다.
그런데 오늘 또 날더러 가게를 봐달라는 것이다.
12시 반이 조금 지나서 나는 카운터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서지혜는 가디건을 걸치고, 가방을 메더니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PC방을 나갔다. 특별히 내가 할 일은 자리를 지키는 것 말고는 별로 없다. 다들 자기가 적립해 둔 돈으로 게임을 하고, 모자라면 자기들이 충전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이란 기껏해야 돈을 입금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면서 같이 해주는 것 뿐이다. 오후가 되니까 초딩들이 제법 빠져나가고 고딩들이 들어온다. 얘네들은 그렇게 시끄럽지 않다.
* * *
내가 아이린이나 서지혜와 가까워지게 된 동기는 서지혜의 남동생 서경식 때문이었다.
제대한 후 얼마 되지않아서였다. 저녁에 PC방에 갔는데, 서경식이 교복차림으로 카운터에 앉아있는 것이다.
"웬 고딩이 이 시간에 알바하냐?"
"엄마가 급한 일 때문에 잠시만 봐달라고 해서요."
그러고 보니까 이 머시마가 엄마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나에 대한 얘기를 들어서 알고있었다. 내가 카운터 앞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자 그는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경식이는 내게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처음으로 고등학교에서 겪은 일들을 얘기했고, 나는 들어주었다. 내가 조용히 들어주면서 간간이 장단을 맞춰주자 서경식은 신이 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다음에는 경식이가 영어나 수학을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을 나에게 들고 와서 물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서경식과 아는 사이가 되고, 금방 아이린과 그 다음에는 서지혜와도 가까워진다.
* * *
아이린이 PC방에 나타난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그녀는 들어서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또 고맙다고 했다. 화사한 외출복 차림의 그녀가 10년은 젊어보인다. 나는 그녀에게 카운터를 넘겨주고 뒤쪽에 있는 자리로 갔다.
한참 게임을 하고 있는데 아이린이 내 뒤를 지나가면서 나에게 카운터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흡연실에 가서 담배를 피운 후에 카운터로 갔다. 아이린은 500짜리 맥주잔에 냉커피를 타주었다.
"오늘이 친정 엄마 생일이거든. 70이 넘은 노인네한테 점심 한끼 사드리고 오느라고 늦었어. 정말 미안해."
"괜찮아요."
"지혜가 오늘 하루 종일 있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봐. 아침에 나가면서 얼마나 당황했었나 몰라. 태현씨가 아니었으면 밥 한그릇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올 뻔 했어. 정말 고마워."
"괜찮다니까."
"오늘 별 일 없으면 이따가 나랑 같이 저녁 먹고 들어가."
"네."
나는 동아리 멤버들이나 복학생들을 우루루 몰고 이리로 와서 게임을 한 적도 있다. 걔네들이랑 여기서 밤샘을 한 날도 있다. 그녀는 초저녁에는 꼭 PC방에 나와있다. 저녁 교대가 9시라는데, 그 교대가 이상없이 되는 것을 보고 들어간다. 그런데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날에는 자정이 넘어서 들어간다. 그 때까지 있으면서 그녀는 우리에게 음료수나 야식을 서비스로 챙겨준다. 아이린이 워낙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훌륭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하니 좋고, 게다가 서비스까지 좋아서인지 내가 오라고 하면 친구들은 잔소리 없이 온다.
* * *
오후 4시가 넘었다. 그런데 나라마트에서는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나는 내 휴대폰에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전화기는 배터리까지 아무 이상이 없다.
역시 아닌가?
나는 은근히 열받았다. 그래서 게임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다.
드디어 5시가 넘자 나는 전화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지혜가 들어왔다. 지혜는 내 옆에 있는 빈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했다. 나는 게임할 맛이 나지 않아서 게임을 쉬고있었다.
그런데 내 휴대전화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한두번이 아니라 계속 울린다.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받아야 하나를 망설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회사가 아닐까봐 무서워서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가 끊겼다. 전화기를 보니까 부재중으로 떠있는데, 발신인은 나라마트였다. 억울했다. 옆에서 지혜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내게 물었다.
"오빠, 무슨 전화인데 안받아?"
"스팸 아닐까?"
"일요일에도 스팸 전화가 와?"
"글쎄."
나는 이제는 완전히 물건너갔겠지 생각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휴대전화기가 또 진동음을 낸다. 이번에는 재빨리 전화기를 들여다 보았다. 역시 나라마트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전화기를 들고 흡연실로 가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김태현씨죠?"
전화기에서 귀에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너무 긴장했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네."
"아까 우리 면접하던 방에서 아침 10시에 만나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합격이라는 것 같기도 한데. ..
통화가 끝나고 나는 머엉한 상태로 그냥 넋놓고 앉아있었다.
아이린이 흡연실로 와서 웃는 얼굴을 하고 내게 묻는다.
"태현씨, 우리 몇시에 저녁 먹으러 갈까?"
"사장님 괜찮은 시간에요."
사실 통화가 이렇게 끝난 후에 나는 아이린과 저녁식사를 같이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므로 같이 나갈 각오는 돼있다.
아이린은 저녁 9시 교대가 정상으로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이제 나가면 미친듯이 게임만 하다보면 시간은 갈 것 같다.
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서지혜가 내게 물었다.
"오빠, 우리 엄마 오늘 엄청 예쁘지?"
"응."
"그런데 엄머가 왜 오빠랑 저녁 먹으러 가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너도 같이 가니?"
"아냐. 나보고는 가게 보래."
"너도 같이 가도록 해볼까?"
"치사해서 싫어. 나는 나중에 오빠랑 둘이 가면 되잖아."
지혜와 나는 각자 게임에 몰두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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