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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8 2,070회 0건




저는 이 글을 소라넷(http://soraros.info)에만 연재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 소라넷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분명 그 글은 불법으로 퍼간 글입니다.

몰래 와서 글을 도둑질해다가 올리신,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바퀴벌레이십니다.

아오~ 얄미워.
홈키퍼로 날리고싶다.



* * * * * * * * * *

이 글 앞에는
1. Prologue : 알바자리 구하기 & 아이린(IRENE) PC방
2. 서지혜와 정혜영 여사
가 있읍니다.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3. 아이린의 고민 & 첫 출근



아이린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우리가 태현씨를 안지가 아직 두 달이 채 안됐죠?"
"시간이 .. 벌써 그렇게 됐네요."

"경식이나 지혜가 태현씨를 엄청 잘 따르는 것 같지 않아요?"
"네. 둘 다 착하니까 저에게도 제 동생처럼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애들 아빠가 없는 것은 알고 계시죠?"
"네. 아까 지혜한테 들었어요."

"나 혼자 얘네들 둘을 저만큼은 키웠는데, ..."
"정말 수고하셨어요. 존경합니다."

"그런데, 둘 다 이렇게 고등 학생이 되니까, 이제는 내 능력이 딸려요."
"예? 왜요? 애들이 엄마 마음을 상하게 하나요?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



나는 고개를 돌려서 아이린의 옆에 앉아있는 지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런데 지혜의 입은 오물거리면서 열심히 씹고 있다. 저 표정도 너무 깜찍하고 귀엽다.



"마음 상할 일은 전혀 없었어요. 나는 엄마로서 잘 해주고 싶은데, 그게 더 이상 .. 힘들어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

"이제는 애들이 공부하는 것이나 진로 문제로 힘들어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안타까워요."

"예에..."
"그래서 태현씨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하려고 ..."

"예? 편하게 말씀 하십시오. 무슨 부탁인데요?"
"혹시 우리 애들 공부하는 것을 조금씩 봐주시면 안될까요? 경식이가 형한테 배우니까 너무 쉽다고 몇 번을 얘기하던데."

"지금 저에게 애들 과외를 맡으라는 말씀이신가요?"
"예. 그래요. 지혜도 오빠가 없어서인지 많이 외로워했는데, 태현씨랑 가깝게 지내면서 많이 밝고 명랑해졌어요. 며칠 전에 얘기해보니까 태현씨랑 같이 공부하면 자신이 생길 것 같다고 하던데. .."

"그럼 .. 지혜도 공부를 힘들어해요?"
"나한테 말은 안 하는데, 지금은 아마 거의 손을 놓은 것 같던데. .."

"아이 참. 엄마. ... 그런 말을 할 거였으면, 미리 나한테 얘기를 하지. 그럼 나는 안 왔는데."
"뭐가 어때서? 너네들이 말해달라는 것을 말하는 것 뿐인데?"

"그래도 그런 말은 내가 없을 때 했어야지."



나는 또 지혜를 쳐다보았다. 지혜는 고개를 약간 숙여서 일부러 내 눈길을 피하고 있다. 지혜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커다란 체구에 맞지 않게, 하는 짓은 너무 귀엽다. 저런 귀염둥이 지혜가 공부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내 마음이 아파온다. 아마도 아이린의 마음 보다는 내 마음이 훨씬 더 많이 아플 것 같다.



"사장님, 고등학생 과외는 대학입시를 목표로 해야 하는데, 제가 도움이 될까요?"
"저는 잘 몰라요. 그런데 애들 둘이 태현씨를 원해요.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글쎄. .. 이걸 어떻하나?"
"왜요? 태현씨 시간이 안되나요?"



내가 지금까지 허구헌날 PC방에 가서 살았는데, 이제 와서 시간이 안된다는 것은 말해봤자 거짓말이라고 알아듣기가 딱 알맞은 상황이다.

내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아이린이 사주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려고 마음 먹고 나왔다. 그런데 아이린이 자식을 위해서 저렇게 고민하는 것을 나는 나몰라라 하고 봐 넘길 강심장이 결코 아니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상황은 이미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나는 지금까지 족발 두쪽, 보쌈 세쪽을 먹었고, 소주 두잔을 마셨다. 더 이상 먹고 싶거나,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기로 했거든요. 처음 하는 일이라서 퇴근 시간이나 일하는 것을 봐야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애들이 태현씨를 원하고, 또 태현씨라면 나도 마음 놓을 수 있으니까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부탁해요."

"너무 뜻밖의 말씀을 하시니까 너무 당황스러워서요."
"애들 둘 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형편없게 됐나 봐요. 지혜는 지금 엄청 겁을 내는 것 같아요. 경식이는 중학교 때는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이번에 저렇게 망치니까 엄청 실망해요. 애들이 둘 다 저러는 것을 보는 제 마음이 너무 괴롭네요. 지혜는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조급해 하는데, 이 일을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아이린이 말하는 것이 이제는 막무가내로 밀어부치려는 것 같다. 나를 향한 그녀의 예쁜 얼굴에는 애절함이 가득하다. 저러다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다. 그녀의 커다란 검은 눈망울이 눈물에 젖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내가 이런 아이린에게 무슨 재주로 거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경우를 가리켜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이고 왔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사태를 마무리한다는 각오로 한마디 했다.



"사장님, 일단 알았으니까 조금 더 드시지요?"



이때 지혜가 날카롭게 덤벼들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뜻밖이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오빠, 지금 이 자리에서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 오빠가 한다, 안한다 이렇게 분명하게 선을 그어줘야하지 않나?"
"지혜야.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함부로 결정을 내릴 일이 아닌 것 같아."

"나나 엄마는 오빠한테 함부로 결정하라고 말한 적이 없어. 지금 오빠가 다니는 그 대학은 아무나 가는 대학이 아니잖아? 오빠도 고딩때 열공해서 그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나나 경식이 한테는 오빠면 충분하거든요."
"내가 다니게 될 회사가 나한테 어떤 일을 어떻게 시킬지는 일단 다녀봐야 알수 있다는 것이 문제야. 지금은 뭐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란 말이다. 내가 회사를 일주일 정도 다녀보고 내쪽 일이 어떻게 되는가를 봐가면서 다시 이야기 하면 안될까?"

"엄마, 차라리 오빠가 그 회사 다니지 말고, 그 월급을 엄마가 오빠한테 주면 안돼? 어차피 우리도 오빠한테 공짜로 배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
"지혜야. 돈을 벌기 위해서도 회사에 다니지만, 일을 배우기 위해서도 다니거든. 그렇게 조급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일주일 후에 다시 얘기해요."

"만일 일주일 후에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어쩌라고?"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만일 못하게 되면, 지혜 말대로 내가 그 회사를 고만 둘께. 됐지?"

"오빠, 방금 한 그 말 진심?"
"완전 내 진심 그 자체야. 내가 거짓말 하는 것 본 적 있어?"



이 말을 하면서 내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아까 여친 문제에 대해서 지혜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어딘가로 강하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도대체 나는 무슨 정신으로 그 회사를 고만두고라도 지혜와 경식이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것일까? 내가 한 이 말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

나는 아이린이나 지혜가 날더러 과외를 맡아달라는 그 생각을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그녀들의 생각을 오히려 내가 더 적극적으로 긍정을 해버렸다. <내가 책임지고 하겠다>는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게 돼버린 것이고, 지혜는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말을 함부로 뱉을 수 있었을까?

나는 후회의 한숨을 내쉬지만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화장실에 간다고 말하고 룸 밖으로 나와서 소주 한 병 더 들여보내달라고 하고 계산을 해버렸다. 그리고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룸으로 돌아갔다. 아이린과 지혜는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내가 룸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입을 다무는 것 같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족발과 보쌈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아이린과 지혜는 킥킥대면서 다른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답답한 내 마음은 나 혼자만의 몫이었다. 그런데 엄마와 딸이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고 노는 것을 보니까 너무 평화스러운 가정의 모습이다. 공부가 뭐라고 저 가정에 먹구름이 끼게 한단 말인가? 지금은 그 먹구름이 나에 의해서 잠시나마 걷혔다는 사실에 내 가슴이 뿌듯해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주제넘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웬만큼 먹고 나서 나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더 드시지 않으실 거면, 우리 이제 그만 나가죠?"



아이린과 지혜는 내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얼른 자리에서 일어선다. 지혜는 화장실에 간다고 급히 사라졌다. 나는 다시 룸을 나와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아이린이 급하게 내 뒤를 따라나온다.



"태현씨, 이건 아니죠."
"뭔지는 몰라도, 저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 참. 왜 태현씨가 계산을 해요?"
"저는 저녁 먹으러 같이 간다고만 들었지, 사장님께서 사신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무슨 그런 억지가 다 있어요?"
"죄송해요. 다시는 안그럴께요."

"알았어. 다음에는 꼭 내가 살께."
"그러세요."

"지금 .. 우리 지혜가 너무 좋아해요."
"왜요?"

"회사를 고만두고라도 지혜 공부하는 것을 봐주겠다고 태현씨가 아까 말했잖아요."
"이것이 잘 하는 결정인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몰라요. 그렇지만 애들이 하자는 것을 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나는 단순한 엄마일 뿐이거든요."
"알아요. 사장님의 그 마음 때문에 제가 어떻게 하지를 못하겠어요."

"어머. 정말요?"
"그럼 애들을 학원에 보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벌써 다 해봤지, 안해봤겠어요? 중학생들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가능했어요. 고등학생이 되니까, 학교마다 진도나 과목이 달라서, 학원 수업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대요."



지혜가 우리에게로 왔다. 그런데 지혜는 이번에는 내 팔을 잡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팔을 잡는다. 나는 약간 서운했다.


우리는 걸어서 그녀들의 아파트 입구까지 갔다.




"태현씨, 잘 먹었어요."
"뭐야? 오늘 저녁 엄마가 산 것이 아니었어?"

"언제 사도 내가 지혜에게 살 것이었으니까 그냥 내가 계산했다. 그럼 약속 지킨 거지?"
"와아아. 오빠 완전 나쁘다."

"이러언. .. 저녁 사주고도 나쁘다는 소리를 듣네."
"오늘꺼는 완전 무효야. 엄마가 같이 있었잖아?"

“그럼 우리 둘이만 있어야 해?”
“당근이지.”



우리는 인사하고, 그녀들은 내게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혼자 걸어서 아파트 단지의 정문으로 나왔다. 걸어오는 동안 지혜와 아이린의 모습은 계속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옷을 갈아입는데 전화가 온다. 발신인으로 <사장님>이 뜬다. 지혜 엄마다.



"사장님?"
"하하하. .. 오빠, 나야."

"어? 지혜? 왜?"
"엄마가 아니라서 엄청 서운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농담이고, .. 아까 오빠 전화번호를 엄마한테는 전해줬는데, 나한테 저장하는 것을 깜빡했잖아."

"엄마 전화기에 들어있잖아? 그거 보고 그냥 입력하면 안돼?"
"싫어. 내가 왜 엄마꺼를 컨닝하냐? 오빠가 나한테 지금 전화 걸어줄래?"

"알았어. 잘자."
"오빠도 잘자."



지혜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제대로 가는 것을 보고 바로 끊었다.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카톡이 들어온다.
또 지혜다.



"오빠."



카톡은 벌써 지혜랑 지혜엄마가 새 친구로 등록이 되어있다.



"또 왜?"
"나 모르게 오빠가 엄마한테 뭐라고 말한 것이 있어?"

"무슨 말?"
"엄마가 씻으러 들어가는데 계속 노래를 흥얼거리거든."

"그게 이상해? 너는 노래 안 부르냐?"
"그게, 완전 처음 있는 일이니까 그렇지."

"나한테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혹시 나 화장실에 간 사이에 오빠가 엄마한테 무슨 말 했나 해서."

"난 별말 한 것 없어."
"알았어. 했어도 나한테는 말 안 하겠지?"

"야아. 자꾸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들래?"
"오빠는 원래 이상하거든. 그것도 아주 많이."

"뭐가 이상한데?"
"오빠가 우리 엄마한테 뭘 어떻게 하는데 요새 우리 엄마가 저러느냐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라는거야? 난 모르겠으니까 엄마한테 직접 물어봐."
"물어봐도 웃기만 하고 안 가르쳐 주거든. 그니까 오빠한테 이러지."

"알았다. 내가 다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어봐줄께."
"완전 어이없다. 그럼 내가 오빠한테 고자질 한 것 밖에 더 돼?"

"알았어. 나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거든. 이제 그만 자자."

"오빠, 미안해. 잘 자요."
"우리 지혜여신도 잘 자세요."



* * *



다음날, 월요일 아침에 나는 9시 50분에 나라마트에 도착했다. 어제 전화에서 그녀가 말한 대로 2층에 있는, 면접했던 그 방으로 가서,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몇 분 되지 않았지만 내게는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는지. 혼자 벼라별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나타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아마도 10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난 후일 것이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여자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김태현씨?"
"네?"

"이리 들어오세요."



내가 기다리던 방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에서 문이 열리고, 어떤 모르는 여자가 나를 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방에는 모두 여섯명이 일하는 곳인데 파티션에 의하여 칸막이가 돼있다. 각 칸마다 여자들이 한명씩 들어있고, 그녀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를 동물원의 동물을 구경하듯 보고 있다. 가장 안쪽 모퉁이에는 어제 나를 면접한 여자가 웃으며 자기에게 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한다.

내가 그녀에게 가자 그녀는 나를 다른 5명의 여자들에게 소개했다.



"어제 면접했던 김태현씨입니다. 군에서 제대한지 두달 됐고, 앞으로 한국 대학 건축과 3학년에 복학할 예정입니다. 나이는 지금 24살이니까 이 방에서 막내입니다. 어제 면접한 결과 여친은 없다고 했고, 연상취향이랍니다."



서있는 여자들은 모두 깔깔대고 웃으며 박수를 쳐서 나를 환영해주었다. 여친이나 연상취향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나도 그냥 웃으면서 굽신하고 인사를 했다.



"김태현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최수희씨. 김태현씨 데려다가 일하는 것 몇 가지만 가르쳐주세요."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나를 불러들인 여자가 최수희이다. 그녀가 나에게 자기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그녀에게로 갔다. 그녀가 제일 어려 보인다.

최수희는 나에게 내 책상을 가리킨다. 그녀들의 자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내 책상은 깨끗이 치워져 있다. 나는 거기에 가방을 내려놓고, 습관적으로 컴퓨터의 전원스위치를 넣고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 최수희가 나에게 오더니 A4 용지에 지금 이 방안에 배치된 책상을 대충 표시하고, 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그녀들의 이름과 직책 나이를 적었다.



"일단 이것부터 외워. 이따가 시험칠거야. 하하하."


최수희, 27
박은희, 29, 대리
등등

이런 식이다. 내가 제일 궁금하게 생각한 사람은 어제 나를 면접했던 그녀이다. 그녀는 <강은경, 36, 과장>이다. 그러니까 이 방에서 일하는 여섯명의 여자들 중에서 나이도 제일 많고, 직위도 가장 높다.


최수희는 나에게 A4 용지를 하나 더 주고 자기가 말해주는 것을 꼼꼼하게 메모해두라고 했다. 한참 후에 최수희는 내 책상에 있는 컴퓨터에서 이 동네 지도를 열었다. 그리고 우체국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점심 먹기 전까지 네 책상에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일 거야. 점심 먹고 들어오면서 바로 그것들을 전부 저 우체국에 가져가서 발송시켜야 해. 오늘은 첫날이니까 나랑 같이 가는 거야."



점심은 다같이 밖에 나가서 먹고 들어왔다. 점심 먹고 나서 편지뭉치를 들고 최수희와 함께 우체국에 갔다 왔다. 그녀는 또 복사기와 복사용지들을 내게 보여줬으나, 그 정도의 사용법은 나도 알기 때문에 따로 배울 필요는 없었다. 오후 4시에는 각 책상에 쌓여있는 파일들을 모두 갖다가 제 자리에 다시 꽂아두는 일을 했다. 또 중간 중간에 여자들이 시키는 잔 심부름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첫날 일을 해보니까 바쁘지는 않다. 오히려 일이 적어서 남아 도는 것이 시간이었다.


저녁 5시가 되자 여자들은 퇴근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강은경 과장이 나를 불렀다.



"오늘 어땠어? 힘들었지?"
"전혀요. 일도 별로 많지 않고."

"첫날이니까 아무래도 최수희씨가 봐준거겠지. 내일은 단단히 각오하고 와."
"예."

"출근, 퇴근시간은 알지?"
"아직요."

"출근은 아침 9시, 별 일 없으면 퇴근은 5시 반."
"예."

"만일 무슨 일이 생겨서 출근 시간이 늦어질 것 같으면 최수희씨한테 전화할 것. 알았죠?"
"예."

"그럼 오늘은 이만 퇴근해."



나는 첫날 일을 무사히 해냈다. 그제서야 가방에 들어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 문자메시지, 카톡들이 엄청 화려하다. 나는 서지혜에게서 온 카톡을 먼저 열었다.



"오빠, 점심 먹었어?"
"퇴근하고 PC방으로 꼭 와."



나는 또 엄마에게 전화해서, 어제 면접했던 얘기와 오늘 일한 얘기를 해드렸다. 엄마는 당장 이달에 쓸 돈을 내 계좌로 입금하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월급타면 갚으라는 말도 잊지 않으신다. 나는 나중에 갚겠다는 말을 지금까지 여러 번 했다. 그러나 갚아본 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다.


지혜 엄마에게서도 카톡이 와있다. 은근히 긴장된다.


"태현씨, 어떻하죠? 지혜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오늘 당장 공부 시작하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나는 일단 오피스텔로 가서 샤워를 하고 소파에 퍼져 앉았다.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한 것은 아니지만, 긴장했던 때문인지 잠이 쏟아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잠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깼다.
아이린이다.



"퇴근 하셨어요?"
"예."

"지혜 말로는 가게로 오신다면서요?"
"네. 곧 나갈께요."

"도시락 싸왔으니까 저녁 먹지 말고 그냥 오세요."



나는 지혜의 카톡을 보기는 했지만, 가겠다고 답장을 보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혜는 자기 엄마한테 내가 갈 것이라는 말을 했나보다. 시간은 벌써 8시가 다돼간다.

나는 아이린에게 가려고 욕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관에서 벨소리가 났다. 치솔을 입에 문 채로 나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문 밖에는 지혜가 활짝 웃으며 서있다. 지혜를 거실 소파에서 기다리게 했다.

나는 양치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지혜와 함께 오피스텔을 나섰다.



"무슨 일이야?"
"엄마가 가보래잖아."

"엄마가? 왜?"
"아까 오빠가 곧 온다고 했다며?"

"양치하고 옷 갈아입는데 15분이나 걸렸을까?"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 15분은 15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라?"



지혜가 하는 말이 사실일까?
지혜가 기다리기가 지겨웠다는 말이 아닐까?
설마 아이린이 나를 기다리는 것이 지겹다고 지혜를 내게 보냈을까?


우리는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PC방 입구의 바깥쪽에 아이린이 서서 우리를 반긴다. 그런데 그녀는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있다. 어제만큼이나 화사하다. 지혜가 엄마에게 묻는다.



"왜 밖에 나와있어?"
"응? 여기가 너무 지저분해서 청소하느라고..."



그렇지만 내가 보니까 아이린이 한 말은 거짓말 같다. 평소보다 별로 지저분한 것도 아니고, 그녀가 청소를 한 흔적도 없다.

우리는 같이 PC방 안으로 들어섰다.



- - - - - - - - - -



전개가 너무 느려서 지루하시죠?
잘써보려고 머리를 짜내지만
제가 경험부족이라 밍기적거리는 중입니다.

계속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주세요.


한마디의 칭찬은 힘이 나게 하고
한마디의 질책은 더 좋은 글이 되게 합니다.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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