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의 첫키스야.
아이린과 나의 눈길이 마주쳤다. 나는 아이린의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빠졌다.
아이린은 지금 자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고 나에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 뿐 아니라 어제 밤 와인바에서도 그랬다. 나는 냉혈인간이 아니고, 또 나도 성인이다. 아이린이 표현하는 것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아이린이 어제 오늘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이는 통에 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순간 만큼은 아이린이 정말 밉다. 아이린이 자기 한 사람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마저 자칫 정신줄을 놓는다면 이 사태는 겉잡을 수 없게 흘러갈 것 같다. 아이린의 모습을 보고있으려니까 내 마음이 안타까워지고, 또 지혜의 애처로운 모습까지 떠오른다.
아이린도 생각이 없는 여자가 아닐것이다. 지금까지 인생 경험도 있고, 생각 없이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순간의 잘못된 생각이나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를 아이린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린은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까?
그렇다고 오늘도 아이린을 무시하게 되면 아이린은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또는 울어버릴 지 모른다. 그러면 아이란과 나 사이는 어색해지고, 그 피해는 아이린이 사랑하는 지혜와 경식이에게까지 갈 것이다. 지혜는 오늘 처음으로 나와 공부하고나서 이제 자기가 공부하겠다고 덤벼든다고 했다. 이런 지혜에게 또다시 좌절과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다. 이것은 나나 아이린이 성인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이럴 때에는 내가 아이린을 안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이린의 몸을 안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아이린의 마음, 그리고 생각까지, 그녀가 깊숙이 감춰두고있을 지도 모르는 아픔까지도 같이 감싸서 안을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마음 속으로 또 겉으로도 아이린을 좋아한다. 내가 지혜나 경식이를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아이린도 좋아한다. 어느 누구도 나 때문에 아파하거나 상처를 입어서는 안된다.
"누나."
"......"
"어제랑 오늘 누나 엄청 야하고, 엄청 섹시한 것 알아? 내가 숨이 막힐 정도야."
"피이. .. 거짓말."
"누나는 내가 진심을 말하면 립서비스다 아니면 거짓말이다 그러네?"
"태현씨가 그렇게 생각하면 뭐해? 나한테 넘어오지 않잖아?"
"내가 넘어가면?"
"......"
"누나는 쇼핑가서 좋은 물건을 보면 앞뒤 생각없이 그냥 질러?"
"몇만원짜리 물건들은 그렇게 하는 편이지. 몇십만원짜리는 살떨려서 못그러고."
"그러고 나면 나중에 후회 안해?"
"할 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고. .."
"아하. .. 그럼 누나한테 나라는 인간는 결국 몇만원짜리구나. 아무 생각 없이 질러도 후회하지 않을 싸구려 남자네."
"태현씨.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지현이 그게 얼마나 독종인 줄 알아? 자기는 우리 지현이를 울게하고, 또 지현이 때문에 나까지도 울게한 남자라고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어?"
"그럼 누나는 나랑 얽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고 앞뒤를 따져본거야?"
"그건 .. 으음 .."
"누나는 내 나이가 몇이고, 남자들은 이 나이에 어떤 줄 알아, 몰라?"
"알아."
"지금 내가 참고 버티느라고 얼마나 노력하는가 모르겠어?"
"모르겠어. 나는 내가 태현씨 마음에 차지않아서 그러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누나가 왜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까? 누나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아름답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쓰는 것도 착하거든요. 지혜 아빠가 누나랑 이혼했다는 사실을 믿을수 없을 만큼 누나는 아름다운 여성이야."
"그런데 자기는 나한테 왜 안넘어와? 내가 아름답기는 한데, 나한테 매력은 꽝인가?"
"누나는 정말로 내가 누나한네 넘어가기를 원해? 내가 아름다운 여자라면 누구나 다 끌어안고 키스하고 그럴까?"
"자기 말은 .. 그럼 내가 너무 비싼 물건이라는 거네?"
나는 지금이 적절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린을 안았다. 아이린도 조심스러웠는지 거리를 두고 살짝 안긴다. 아이린의 얼굴이 내 어깨로 향하고, 내 얼굴은 아이린의 뒷목으로 향했다. 아이린의 머릿결에 내 얼굴을 얹었다. 아이린의 머리에서 샴푸나 린스 냄새가 난다. 나는 가슴이 요란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참으며 아이린의 등을 토닥였다.
"나도 누나를 안고 싶고, 또 누나에게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
"정말? 그럼 왜 안했어?"
"참았지. 왜 참았겠어? 누나가 모르지는 않겠지?"
"응? 모르겠는데? 내가 유부녀라서? 아니다. 이혼 했으니까, 이제 유부녀가 아니네. 자기가 원하는 만큼 내가 예쁘지 않거나, 아니면 내가 애가 둘 딸린 이혼녀거나 .. 뭐 그런 정도 아니겠어? 이런 내가 태현씨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대한대학 학생이 뭐가 아쉬워서 나같은 여자를 ..."
"그럼 누나는 나 김태현이 좋은 것이 아니라, 대한대학 학생이 좋은 거구나? 누나가 정말 완전 속물이고, 바보같다. 누나가 그런 말을 하니까, 나 엄청 화나려고 해."
"그건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이 전혀 아닌 것은 아니지만 ... 그건 아주 조금밖에 안돼. 다시 말하는데, 자기는 내가 낳아서 키운 지혜나 경식이가 믿고 따르는 남자거든. 나한테도 그렇고 ... 그런 자기가 훨씬 더 좋아."
"내가 누나 입술에 키스하려고 마음을 먹었거든. 그런데 누나 입술에 대한 생각보다 제일 먼저 지혜가 떠올라."
"뭐야? 자기한테 우리 지혜가 왜? 지혜가 자기한테 뭘 어쨌는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어?"
"지혜가 날더러 자기 엄마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면 나를 콱 없애버리겠다고 말하는 것 같아.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
"누나가 나한테 그러면 지혜가 누나한테 떠올라서 정신 차리라고 안그래?"
아이린은 나를 밀쳐내고 바로 앉는다.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아이린이 손을 뻗어와서 내 뺨을 쓰다듬으며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아이린이 내 어깨를 당겨서 안는다. 나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지, 아이린데게 이끌려가서 깊숙이 안긴다. 아이린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여인의 향기에 취할 것 같다. 아이린은 손으로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자기야. 전혀 안그래. .. 나도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남자, 내가 좋아하는 남자 품에 안기고 싶어. 그게 다야. 내가 왜 자기를 싸구려 취급한다는 거야?"
"......"
"만일 내가 자기를 싸구려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어떻게 내 애들을 자기에게 맡기겠어? 내 애들한테 내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을 자기가 누구보다도 더 잘 해주는 남자야. 그것도 나는 모르는데, 애들이 그래."
"......"
"내가 자기한테 얼마나 고마워하는 줄 알기나 해? 내가 남자가 그립고, 남자 생각을 못참고 자기랑 엔조이나 하려고 덤비는 그런 꽃뱀같은 여자로밖에 안보여? "
"......"
"이게 나한테 어제 오늘 생긴 마음이 아니야. 자기가 가게에 와서 나 청소하는 것을 도와주고, 가게 봐주고 할 때부터 시작됐어. 그 때는 자기가 뭐하는 남자인지,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
"나. .. 결혼도 내가 사랑해서, 내가 사랑하는 남자랑 한 결혼이 아니었어.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아직 사랑해본 남자가 한 명도 없어. 나 진짜 바보지? 자기는 여자가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 받지도 않고, 하루하루를 일이나 하면서 산다는 것이 뭔지 모르지?"
"......"
"나 .. 자기 사랑해보면 안될까? 자기한테 사랑 받는 것은 바라지도 않을께. 그런다고 내가 절대로 자기 발목잡고 늘어지지 않을꺼야. 자기도 자기 인생이 있는데, 결혼도 하고 직장에도 다녀야지. 좋은 사람이 생기면 만나야지. 그냥 이렇게 지금처럼, .. 자기가 혼자 있을 때 조금씩 잠시동안 만이라도 사랑하면 안될까?"
"누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 그러면 나중에 누나 엄청 아플텐데. 그 아픔을 어쩌려고? 다 감당할 수 있겠어?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 그것 뿐인가? 나는 어쩌라고? 누나가 아파하는 것을 날더러 어떻게 보라고?"
"자기가 왜? 자기는 나를 사랑하면 안돼요. 내가 자기 인생에 도움 되는 것이 한가지도 없잖아? 자기는 아무 여자나 마음에 든다고 함부로 사랑하면 안돼. 밖에 나가면 여자들이 줄을 설꺼잖아? 자기는 젊고, 예쁘고, 갖출 것 다 갖춘, 자기 수준에 맞는 여자를 사랑해야해. 나는 그런 여자가 절대 아니야. 때가 되면 나는 조용히 사라져줄께."
"그 때, 누나가 사라져야할 그 때, 누나는 어떻게 사라질껀데? 나는 사라지는 누나를 어떻게 보내라고? 누나는 사라질 자신이 있는지 몰라도, 나는 누나가 사라지게 내버려 둘 자신이 없어."
"자기야. 자기는 좀 오만하고, 도도하면 안되겠니? 내가 물러설 때가 되면 확 걷어차서 쫓아버려. 자기는 그래도 돼. 자기한테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거든. 그 회사에서 알바하는 것, 그 돈을 우리가 줄테니까 고만 두라고 지혜나 내가 말했는데도, 자기는 계속 다니잖아? 그것을 보고, 자기는 돈을 밝히는 남자가 절대 아니라면서, 우리 지혜가 또 얼마나 감동 먹은 줄 알기나 해? 자기는 생각하는 것이 .. 뭐랄까? 내가 아는 사람들하고 달라. 달라도 아주 많이 달라. "
"......"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아주 조금만이라도 자기를 사랑하게 해줘. 나 자기 사랑하고싶다. 끝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ㅏ래도 시작을 해보고싶어. 이게 내 진심이야."
"그럼 내 여친은 어쩌고?"
"지금 당장은 캐나다에 있다며? 귀국하면 나는 조용히 빠질께. 됐지?"
"누나는 무슨 말을 이렇게 쉽게 해? 누나가 한 말 다 지킬 수 있어?"
"그럼 각서 쓸까?"
"참나 .."
"나 ... 인생 살면서, 이런 저런 경험 제법 했거든요. 믿기도 해보고, 배신도 당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 그런데 아직 사랑은 해보지 못했어. 그런데 자기가 내 마음에 들어와서 나를 계속 흔드네. 나, 자기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내가 아이린에게 정신차리자고 말하려고 한마디 시작을 했다가, 오히려 아이린에게 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게는 더 이상 할 말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의 언어는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이성, 교육, 철학, 지식, 상식이 한 순간에 모두 정지해버린다. 내 머리에서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아이린이 갖고있는 여성의 직감만 남아있는 것 같다. 이래서 인류의 역사를 만들고 또 흐름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하는 것일까?
더 이상 생각하고 머리를 쓴다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해졌다. 아이린의 이런 말을 듣고도 나는 내 감정을 끝까지 숨겨야 하나?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사랑인가? 그렇다면 이 사랑의 끝이 어디인가를 아이린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린은 이 사랑을 시작하겠단다. 내가 뭐라고 아이린은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가슴이 울렁거린다.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리고 아이린의 품에 안긴채로, 나도 아이린을 당겨서 안아버렸다. 나의 어깨와 목을 안은 아이린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아이린은 내 귀에 속삭였다.
"자기야. 고마워요."
나를 안고있던 아이린의 팔이 빠져나갔다. 아이린의 두 손이 내 양쪽 뺨에 닿았다. 아이린은 내 머리를 당겨올렸다.
우리의 눈과 눈이 지척에서 마추쳤다. 나도, 아이린도, 우리는 눈을 감거나 서로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아이린은 얼굴에 화장을 진하게 한 것도 아닌데, 화장품 냄새가 은근하게 풍긴다.
우리의 두 얼굴은 상당히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음에도 더 가까워진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이제 오직 한가지. 그것은 서로에 대한 갈급함 뿐인 것 같다.
나는 입술로 아이린의 이마를 가볍게 눌렀다. 그 순간에 아이린의 두 눈이 감긴다. 내 목을 감고있는 아이린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내 뺨을 아이린의 뺨에 댔다. 아이린이 뺨을 부빈다.
우리의 얼굴이 더 돌아갔다. 우리의 입술은 서로의 입술을 찾는다. 우리의 입술이 맞닿는다. 아이린의 두 눈이 또 감긴다. 아이린의 입술이 내 입술에 눌린다.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천천히 빨아들였다.
우리의 입은 떨어지고, 우리의 목이 서로 엇갈리며 서로를 부등켜안았다. 아이린이 작은 소리로 내게 물었다.
"하아. .. 이것이 우리 첫키스야?"
"그러네."
"나 키스 잘해? 내가 키스하는 것이 자기 마음에 들어?"
"믿어지지가 않아. 내가 누나랑 ..."
"나는 믿어져. 나는 내가 마음을 열고 자기를 받아들였고, 내가 자기를 사랑하기로 결심했거든. 그래서 드디어 우리는 키스한거야."
"그래. .. 우리는 제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지 말자."
"아니지. 웬만한 아픔이나 상처가 있어야 성숙이라는 것이 있대. 내가 아직도 천방지축으로 이러는 것은, 내가 상처도 아픔도 너무 모르고 살아서 이럴꺼야. 나 이제껏 헛나이 먹은 것 같다니까."
"......"
우리는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아이린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아이린을 따라서 일어섰다.
"가야 하는데, .. 진짜 가기 싫다."
"누나, 나는 잠을 자야 내일 출근하거든요."
"그래. 가야 할 사람은 빨리 가야지."
"말은 바로 해요. 누나가 가야 할 사람은 아니지. 누나는 사랑하는 애들을 보살펴야 할 엄마지."
"어쨌든 가야 사랑도 하고, 보살피기도 하죠."
우리는 현관으로 걸어나간다. 아이린은 내게 팔짱을 낀다. 우리는 신발을 신고 문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는 동안 아이린은 내게 안겨있었다. CCTV가 있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이린은 내게서 떨어진다.
도로로 내려서자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몸을 감싼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이다.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 그리고 하얀 티셔츠 차림의 아이린이 내 옆에서 걷는다. 가로등 불빛만으로도 아이린은 빛난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또각거리며 걷는 아이린은 오늘따라 정말 천사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아이린이 나를 사랑하겠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하얀 액센트 옆에 멈춰섰다.
"아이 ..."
"왜요?"
"차를 가져왔는데, 와인을 마셨네."
"그냥 두고 가요. 밤새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가까운데, 그냥 타고 갈까? 내일 아침에 애들 학교에 싣고가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내일은 버스타고 가라고 해요."
우리는 나란히 서서 걸었다. 오피스텔을 나서서 조금 올라가다가 모퉁이를 돌면 바로 아파트 정문이고, 두번째 건물에 아이린의 입구가 있다. 걸어서 불과 10분이면 충분하다. 나는 아이린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넣고,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은 커녕 후회가 밀려온다.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오늘 또 무슨 짓을 저질렀나? 이제 앞으로 지혜나 경식이를 무슨 낯으로 어떻게 봐야 하나?
전화기를 열어본다. 지혜에게서 카톡이 와있다.
"오빠, 엄마 방금 들어왔어. 나도 지금까지 안자고 공부했다. 믿어져?"
"자러 간다더니 거짓말이었구나? 이제 고만 자고 내일 하세요."
지혜에게 답장을 보내놓고 아이린에게서 온 카톡을 연다.
"잘자요."
"지혜 어머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나도 아이린에게도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알람을 확인한 후에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은 나에게 엄청 도도했다.
=*=*=*=
다음날 아침에 나를 잠에서 깨운 것은 알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입술을 빨고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아이린이다. 아이린이 키스하면서 나를 깨운다.
"아니. 누나가 어떻게..?"
"애들 학교 보내고, 자기 출근시키러 왔어."
"지금 몇시죠?"
"7시 반."
"오늘은 키스알람이네. 하하"
나는 알람을 끄고 욕실로 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 준비를 해서 주방에 오니까 아이린이 커피를 끓여놓았다.
"한 잔 마실 시간 되죠?"
"안돼도 되게 해야지."
우리는 같이 커피를 마셨다. 아이린은 어제 밤에 집에 들어갔을 때, 지혜가 거실에서 TV 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얘기를 했다. 지혜가 무슨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고 있는 줄로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까 영어책을 펴놓고 단어를 외우고 있었단다. 밤 12시까지 안자고 영어공부 하는 것은 처음보았다면서, 내가 출근하기 전에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서 달려왔다고 한다.
지혜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지혜가 공부하는 모습 한가지 만으로 아이린은 감격하는 것 같다. 아침부터 아이린이 울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자기 혹시 ... 차 필요해?"
"차? 왜?"
"내 차 여기 밑에 있는데,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내 차도 집에 있는데, 세워두고 안타거든요."
"오늘은 여기 있으니까."
"하긴. .. 오늘 외근이 있기는 있는데 ..."
아이린은 내게 키를 내주었다. 자기는 지혜 아빠와 함께 오늘 오피스텔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했다. 내가 현관을 나서는데, 아이린은 내게 키스를 한다.
"누나, 안나가?"
"청소 대충 해놓고 .."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아이린의 액센트로 출근했다. 그런데 아이린도 이 차를 많이 타지 않아서, 차의 상태는 새 차와 비슷하다.
외근 나갈 때에는 회사 차가 아닌 아이린의 차로 갔다. 옆자리에 앉은 최수희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알바하는 학생 차 치고는 너무 좋잖아?"
"엄마 차야."
* * *
나는 엄마 말대로 마치 돈 독에 오른 것처럼, 낮에는 최수아와 외근을 다니고, 밤에는 지혜와 공부를 하면서 첫주를 정신없이 보냈다. 아이린도 내가 사는 건물에 새로 마련한 오피스텔로 물건을 사나르고 새로 꾸민다고 기분이 엄청 좋은 상태이다.
이 오피스텔 건물은 원래 개인 회사들을 위해서 공사한 것으로 다른 오피스텔과는 달리 평수가 웬만한 아파트만큼이나 크다. 보통 작은 방이 두개인데, 하나는 옷방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용도실로 쓴다. 침실로 쓸 수 있는 중간 정도 크기의 방이 있고, 엄청 큰 거실과 주방이 있다. 화장실을 겸한 욕실 그리고 베란다도 있다. 평수가 넓어서인지 보증금과 월세는 엄청 비싼 편이다.
3층 이상은 한 층에 4개씩이다. 그렇지만 2층에는 두 개 뿐이다. 2층에 있는 오피스텔들은 다른 층에 있는 것들보다 두배 정도 된다. 2층에는 한 개의 회사가 2개를 모두 쓰고 있다.
지혜 아빠는 비싼 월세를 내면서 살지 말라면서, 이 번에 아예 지혜와 경식이 명의로 이 오피스텔 두개를 사버렸다. 3층에 있는 오피스텔은 경식이, 그리고 5층에 있는 것은 지혜 명의이다.
그래서 아이린은 이번에 애들 둘을 이번에 자기가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이사를 내보낸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일을 크게 벌리는 것 같다. 지혜나 경식이는 나 때문에 오피스텔을 하나씩 갖게 되었다면서 요새 엄청 기분이 좋다.
그런데 2층에 있는 회사가 몇달 있으면 나간다고 한다. 우리 엄마도 처음에는 이 오피스텔을 사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좀 더 기다렸다가 2층에 있는 넓은 것을 사자고 했다. 그래서 일단은 7층에서 월세로 살고있다.
금요일에는 최수희가 저녁에 회식이 있다면서 날더러 퇴근하지 말라고 했다.
"회식도 엄연히 근무의 연장이거든."
"나는 시급 받는 알바생인데, 그럼 회식 시간도 초과급으로 해서 시급을 더 챙겨주나요?"
"글쎄. 그건 과장님께 물어봐야겠는데?"
"농담이야. .. 그럼 나 저쪽 알바는 어떻게 하지?"
"이번 회식은 우리 총무과만 하거든. 우리 막내 환영회야. 주인공인 네가 없으면 말이 되니?"
"그러네."
"그런데 왜 내 환영회를 이제야 한대요?"
"알바생들은 이삼일 일하다가, 하기 싫으면 잠수타버리거든.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안나와. 그래서 우리는 막내처럼 일주일이나 이주일 동안 일을 시켜봐서 살아남는 애들한테만 환영회를 해줘."
"힘드는 일도 아니던데, 왜 잠수까지 탄대?"
"그러게. 그나저나 우리 불쌍한 막내 오늘 어떻해?"
"왜요?"
"여자들 6명이랑 회식하기가 쉽지는 않을텐데. 하하."
"무슨 말이래?"
"내 입으로 말 못해. 이따 함 두고 봐. 하하하"
나는 할 수 없이 전화로 아이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어쩌죠? 회식때문에 오늘 저녁에는 공부를 못해요."
"잘됐어요."
"잘된 것이 아니거든요."
"요새 지혜가 안하던 공부를 한다고 코피도 쏟고, 너무 피곤해 해요. 오늘 하루 쉬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내일은 토요일이라 보충수업 다 빼서 학교도 안간다는데."
"그래요? 그럼 잘됐네."
"걱정 말고, 잘 놀고 오세요."
나와 최수희는 외근을 일찍 마치고 들어가서, 정과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시에 총무과 사무실에서 일단 퇴근했고, 최수희는 내 팔짱을 끼고 회식 장소로 갔다.
여자들 6명과의 회식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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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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