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최수희와 외근
나는 아이린이 겨우 와인 두 잔에 취했는가 하고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사장님, 어지러우세요?"
"아니야. 갑자기 밖에 나오니까 잠시 ..."
"취하신 것 같은데 .."
"나, 이래 보여도 와인 두 병 정도는 거뜬하게 비우고도 말짱했어."
"그건 한참 때 아니었나요?"
"뭐라는 거야? 그럼 지금은 내가 한 물 갔다고?"
"그게 아니라 ..."
"됐네요."
아이린이 약간 토라진 척 하는 것 같다. 내 눈에는 이러는 아이린이 지혜만큼이나 귀엽게 보이면서, 내 마음도 울렁거리고 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아이린은 내 팔을 더 세게 잡아당긴다. 아이린은 내 팔에 가슴을 대고 지긋이 누르는 것 같다. 비틀거리는 것을 참고 걷느라고 힘드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횡단보도에 보행자용 신호등은 이미 초록색이어서 우리는 바쁘게 길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아이린은 너무 느리다. 이러다가는 중간쯤 가다가 서야 할 지도 모른다.
"죄송해요. 우선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이 말을 하고 아이린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내 쪽으로 약간 당기며 앞으로 밀듯이 해서 아이린의 걸음이 빨라지도록 했다. 아이린도 몸을 내 몸에 밀착시키며 나를 부등켜 안고 마치 내게 매달리듯 해서 우리는 간신히 길을 끝까지 건널 수 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횡단보도 뒤쪽에 빈 택시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대로 계속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서 뒷문을 열고 아이린을 타게 했다. 아이린은 기사 뒤로 가면서 나를 당겼다.
아까 올 때에는 내가 기사 옆자리에, 그리고 아이린은 뒷좌석에 혼자 앉아서 왔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갈 때에는 내가 아이린의 옆자리에 앉아서 가는 것이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런데 아이린은 내게 기대면서 내 귀에 소곤거린다. 아마도 기사를 의식하는 것 같다.
"태현씨."
"네?"
"나 오늘 이상하지?"
"전혀 안 이상해요. 엄청 귀여우신데요?"
"정말? 립서비스 아냐?"
"에이. 내가 뭐하러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해요? 말 해도 안 믿으면서 왜 물어봤어요?"
"하아. 이 나이에도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구나."
"한잔 들어가니까 그런가 봐요."
"그럼 자기랑 자주 마셔야겠네. 하하."
아이린의 몸에서 향긋한 여인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나는 내 심장에게 조용해지라고 속으로 타이르면서 두 눈을 감았다. 그 대신에 팔을 들어서 아이린의 어깨에 둘렀다. 아이린은 쑥스러워하지 않고 내게 더 밀착해온다.
거리가 워낙 짧고, 또 밤에 차들이 없어서 우리는 금방 도착했다. 택시가 아이린의 아파트 입구를 통과하자 아이린은 몸을 일으켜서 자세를 바로 했다. 아이린의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는 내렸고, 나는 택시비를 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린이 팔짱을 껴오지도 않고, 투정을 부리지도 않는다. 당연한 것이지만 왜 나에게는 뭔가 허전함과 아쉬움이 밀려올까?
우리는 손을 흔들며 작별하고, 나는 걸어 나왔다. 조금 가다가 뒤돌아보니까 아이린은 아직도 입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물방울 무늬가 있는 하얀 원피스가 가벼운 바람에 약간 흩날린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서 아이린을 향하여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나 아이린은 꼼짝도 하지 않고 계속 그대로 서있다. 아마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야 아이린이 들어갈 것 같다. 아이린을 들여보내기 위해서 나는 빠른 걸음으로 단지를 빠져 나왔다.
오피스텔에 들어와서 씻고 누웠다. 그런데 자정은 이미 훌쩍 넘었는데도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오히려 더 맑아진다.
나는 아까 아이린과 나갈 때 휴대전화기를 식탁 위에 두고 갔던 것을 생각하고, 전화기를 열어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부재중 전화다. 집, 지혜, 친구 등등. 다음은 카톡이다. 지혜의 카톡이 제일 궁금하다.
"오빠, 엄마랑 뭐해? 엄마가 왜 우리보고 먼저 집에 가라고 하는데?"
"엄마 언제 집에 보낼껀데?"
"왜 씹어? 내 카톡이 껌이야?"
"돌겠다. 정말."
"오빠, 엄마 살아있나 좀 봐줄래? 전화기가 꺼져있어."
"엄마가 이제 들어왔다. 그런데 오빠는 살아있는 거야?"
나는 답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혜가 내일은 또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가면서 전화기를 집에 두고 갔었어. 미안."
그런데 아이린도 카톡을 보내왔다.
"주무세요?"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답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늘 아이린은 둘 중의 하나였다. 고의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격의 없이 가족처럼 대했거나.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린은 내가 지혜와 경식이에게, 특히 지혜에게 친오빠 이상으로 대해주는 것을 보아왔다. 또 지혜 나름대로 위기의식을 느끼는 지금, 내가 덤벼드는 것으로 인하여 불안한 마음이 어느 정도는 가라앉은 것 같다. 거기에 와인 두 잔이 아이린에게 편안함을 주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평소에 나에게 가졌던 거리감을 내려놓게 했을 것이다.
내가 만일 답장을 하지 않으면 내일부터 우리 두 사람 사이는 삐꺽 댈지도 모른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이제 자려고요. 안녕히 주무십시오."
아침을 위하여 알람을 확인하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돈다. 지혜에 대한 걱정, 아이린에 대한 생각들,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그녀들은 어떤 일을 시킬까? 등등.
그런데 내 생각 속에 아이린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아까 아파트 입구에 서서 나를 바라보던 바로 그 모습이다. 그런데 지혜를 향했던 아이린의 젖은 눈망울이 떠오른다. 너무 애처로운 아이린이다.
아이린과 얘기한 500 만원이라는 과외비도 물론 많은 돈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돈이다. 그 돈을 받으면서 굳이 나라마트에 다녀야 할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그렇다고 당장 그만두면 그 시간에 나는 PC방에 가서 게임이나 할 것이 뻔하므로 그냥 다니기로 했다.
지혜나 경식이가 허무해하지 않고, 공부한 것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는 날이 오면, 아이린의 눈망울은 더 이상은 젖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마음이 가라앉고 또 서서히 잠에 빠져든다.
*- *- *- *
다음날 아침에 나는 너무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그 결과, 나는 9시까지 출근해야 했지만 8시 반에 이미 내 자리에 도착해있었다. 6인방은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오는 길에 나는 쵸콜렛 6개를 샀다. 나는 PC를 켜고 사무실 안을 한바퀴 돌면서 바닥, 쓰레기통 그리고 6인방의 책상 위를 점검했다. 미화원들이 일을 너무 깔끔하게 끝낸 것 같다.
나는 6개의 책상 위에 쵸콜렛 한개씩을 놓아주었다. 메모지에 <오늘도 힘내세요. 으라차차차!> 라고 적어서 초콜렛 아래에 끼워두었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9시 정각에 나는 화장실을 나서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6개의 책상에는 6명의 여자들이 와있었다. 최수희는 강은경 과장과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내게는 멀어서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어제나 다름없이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강과장 옆에 서있던 최수희가 나를 부른다.
"우리 이쁜 막내, 이리 와봐."
최수희는 몸매나 얼굴이 되니까 이런 말을 해도 내가 들어줄 만 하다. 그런데 다른 여자 같았으면 다시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서 급하게 도망쳤을 것이다. 강과장이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면서 강과장의 손을 잡았다. 최수희는 한술 더 뜬다.
"우리 막내가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데, ..."
"과장님. 우리 막내 때문에 회식을 당겨야 할 것 같아요."
"회식은 알았으니까, 일단 막내 데리고 현장에 나가봐."
"예. 과장님."
최수희는 내 팔을 잡고 자기 자리로 갔다.
"지금 외근 나가거든. 어쩌면 오늘 밖에서 퇴근할 수도 있으니까 퇴근 준비 해서 따라와."
나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손에 들었다. 최수희는 나에게 박스 하나를 들게 했다. 우리는 주차장으로 갔다. 최수희가 운전하겠다는 것을 말려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는 한강을 건너서 구리시로 갔다. 그 곳에 있는 마트가 바로 본부에서 운영하는 직영점이라고 한다.
나는 박스를 들고 최수희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마트의 직원인 듯한 사람들과 노인 한분이 계셨다. 나는 대충 눈치를 보니까, 이곳 점주가 노인에게 납품을 받은 것 같고, 뭔가 그 과정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가격문제가 아닐까?
최수희와 어르신 사이에 이야기는 역시 내 예상대로 오고가고 있다. 최수희가 나에게 박스를 열라고 했다. 점주는 저울을 들고 왔다. 최수희가 어르신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포장에는 분명 1.4킬로그램이라고 나와있지만, 우리가 저울에 얹어보면 항상 200 그램 정도까지 부족합니다. 이렇게 되면 판매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그거야 그 동안 말라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면 판매 기간 동안에 마를 것을 고려해서 아예 1.2 킬로그램이라고 표시를 했어야지요."
"저울에서 1.4 킬로그램인 것으로 자동으로 읽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소?"
둘이 주고 받는 얘기는 항상 똑같은 얘기이다. 듣다 못해 최수희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가 나섰다.
"누나, 잠시만요. 제가 나서 볼께요."
"네가?"
노인은 자기가 사용하는 디지털 자동 저울을 직접 들고 왔는데, <감량>의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시는 것 같아서, 나는 설명을 해드렸다.
"지금 마트쪽에는 일본이나 외국 마트들이 엄청 많습니다. 그들은 200그램이 줄어들 것 같으면, 아예 300그램이 줄어들 것으로 표시를 합니다. 우리나라 제품들이 이런 면에서 저들에게 밀리면 안되거든요."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러세요? 그럼 다행입니다."
"나도 납품 경력이 그럭저럭 벌써 10년이 넘는데.."
"이 저울은 여기에 있는 <시작> 버튼을 누르시고, 시작을 할 때, 먼저 이 <감량> 버튼을 누르시면 감량이 얼마인지를 입력하게 되어있거든요. 여기에 지금 300 이라고 한번만 입력하시면, 끄기 전까지는 항상 300그램이 빠집니다."
"오호. 내가 그걸 몰랐네."
"어르신께서 모르시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알았어야 하는데요."
"나랑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노인 인력센터에서 온 늙은이들이야. 젊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
최수희는 이 점주에게 납품된 물품 전량을 파기시키지 말고, 일단 전부 반송시켜서, 레이블을 다시 붙인 후에, 다시 납품하기로 합의를 보라고 했다. 노인도 나와 최수하희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와 최수희는 약간 시내를 벗어나서 시골로 나갔다. 한강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최수희는 내게 물었다.
"이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지?"
"사실대로 쓰시면 안돼요?"
"그럼 저 점주가 짤려."
"흐으음... 이번 사례를 적고, 수분 증발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감량> 사용법을 확실하게 숙지시켜라. 뭐 이렇게 쓰면 안돼요?"
"이 점주는 어쩔 수 없이 짤려야겠네."
"제가 볼 때도 그 분은 너무 무관심하신 것 같아요."
"그럼 우리 밥 먹고 매장 한 바퀴 둘러보고 갈래?"
"시간 남으면 누나 마음대로 하시죠?"
최수희와 나는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었다. 내 생각에 이 미꾸라지는 굵기가 엄청 가는 것이 중국산일 것 같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해서 식욕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매장으로 갔다. 매장 안에 있는 직원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당연히 모른다.
최수희는 한 바퀴 돌면서 매장에 상품이 진열된 상태, 그리고 유통기간이 지난 상품들이 버젓이 진열되어 있는 것, 그리고 분류방침을 따르지 않고 무질서하게 늘어놓은 점 들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도 누구도 우리를 제지하려 들지 않는다. 이 것은 도난을 감시하는 CCTV 에 직원이 배치되어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면 계산원들이 거울을 보아야 하는데, 줄이 이렇게 긴 상황에서 그것은 말도 안된다.
우리는 3시쯤에 본부로 들어갔다. 최희하는 이런 저런 것들을 모두 보고서에 적어서 정과장에게 제출했다. 또 최수희는 그 매장에서 내가 노인과 해낸 일을 정과장에게 설명했다. 정과장은 나를 불렀다.
내가 보는 자리에서 정과장은 최수희에게 말했다.
"최수희씨는 당장 내일부터 막내랑 같이 그 직영매장 관리를 하셔야겠어요."
"과장님, 어쩌시게요?"
"이건 점주가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 이러니 우리가 항상 밀리죠. 이거 당장 짤라야 해요."
"그래도 자르는 건 쪼옴 ..."
"우리 막내 오늘이 이틀째야. 얘도 해결하는데, 그건 뭔데? 노인 양반을 상대로 법무팀을 끌어대면 그 동네에서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이건 아무래도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요. 내가 지금 당장 부장님께 보고하고 올테니까 기다려요."
나는 그제서야 지혜의 과외가 떠올랐다. 그래서 정과장에게 퇴근 후에 다른 알바가 있어서 그 매장에서는 더 일찍 퇴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 일단은 기다려보라고 말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최수희도 나에게 울상을 한다.
"너만 그런 게 아냐. 나도 집이랑은 정 반대쪽이거든. 어떻해?"
"누나도 혹시 퇴근 후에 다른 알바 하세요?"
"나는 엄마랑 살아. 엄마한테 살짝 치매가 있거든. 내가 일찍 들어가지 않으면 난리가 나.요"
"그럼 과장님께 다른 팀을 꾸리시라고 하면 안돼요?"
"매장에서 납품은 주로 오전에 끝나거든요. 너는 납품 관리만 한다면 일찍 퇴근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에이. 수희누나가 그 매장에 안 가면, 나도 안 갈래요."
"나는 차도 없어."
"차요? 내가 내 차 가져올테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이 말을 함으로써 최수희에게 점수를 와장창 땄다.
"직원 한 명만 더 데리고 가면, 나도 오전에 매장 관리 깔끔하게 끝내놓고 일찍 퇴근해도 될꺼야. 어쨌든 과장님 오실때까지 기다려보자."
한참 후에 강과장이 다시 돌아왔다. 나와 최수희는 강과장에게 갔다.
"부장님은 최수희씨가 막내랑 같이 하루에 매장 하나씩을 둘러보라고 하시는데. .."
"그럼 구리시 직영 매장은요?"
"거기는 다른 사람 보내자고 했어. 아마 영업부에서 갈 것 같아."
최수희도 찬성이었다. 나와 최수하는 사고가 있는 매장을 우선으로 정해서, 고객으로 가장을 하고, 매일 매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했다.
"오늘은 밖에 나가서 수고하고 왔으니까 일찍 퇴근해요. 그럼 막내 대신 사무실 보조원은 한명을 더 구해야겠네."
"과장님, 그럼 제 자리는요?"
"나중에 막내한테 전부 맡기고, 최수희씨는 자리로 돌아와야지. 최수희씨 없으면 우리 어쩌라고?"
"네. 알겠습니다."
"막내, 너 나좀 보자."
"네."
"너는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 마음에 들어?"
"저야 시키는 대로 하는 거죠.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있나요?"
"그럼 밖에서 할래? 시급은 15000원이면 되겠니?"
"그래 주시면 고맙죠."
"알았어. 그렇게 해줘요. 너도 퇴근해."
"과장님, 고맙습니다."
"과장님이라고 하지 말고 누나라고 하면 어디 덧나니?"
"누나, 덧 안 나는데요. 하하."
"내 동생은 조금 있으면 장가간다는데, 너 여친은 있어?"
"면접에서 말씀 드렸는데요. 여친 없고, 연상 취향이라고 .. 하하하."
"요게. 싱겁기는."
"내일 뵙겠습니다."
최수희는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었고, 나는 그녀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최수희는 내게 물었다.
"시간이 쫌 이르네. 우리 어디 가서 커피 한잔 할래?"
"누나, 저는 다른 알바가 있는데요."
"뭐라는 거야? 여기 퇴근이 아직 멀었잖아?"
"그럼 딱 한잔만요."
우리는 본부를 나서서 택시를 타고 신촌으로 갔다. 그런데 최수희는 나를 데리고 이탈리아 식당으로 갔다. 그녀는 스파게티와 와인을 주문해버렸다.
"누나도 참. .. 무슨 대낮에 술이래?"
"낮술 싫어?"
"누나. 나 알바 있다고 했잖아요?"
"이중 계약의 금지. 꼭 하려면 일차 고용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넌 노동법도 모르니?"
"그..으..래..애..요..오?"
"나같은 미모의 누나가 한잔 마시자면 그냥 조용히 마시는 거야."
"알았어요."
"나는 집에 들어가면 엄마 때문에 외출을 못해. 밤에 나와서 술 마시고, 영화보고 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해. 막내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늘 나랑 데이트 한다고 생각해라."
"영광입니다."
"시방 나한테 뎀비냐?"
"나는 진심인데?"
나는 스파게티를 엄청 맛있게 먹는 최수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포크 대신에 젓가락으로 소스 속에 잠겨있는 면을 먼저 건져서 먹고, 소스를 따로 스푼으로 떠서 입안으로 넣고 있다. 참으로 어이없는 광경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서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면발에 포크질을 여어엉 못 하겠어서 ..."
수줍은 얼굴로 이 한마디를 하고 또 면발을 건지는 그녀가 한없이 귀엽다.
우리는 와인 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그런데 내게는 최수희가 어제 밤에 와인바에서 같이 있었던 아이린으로 보인다. 그녀는 나처럼 시큼한 레드와인 드라이를 마신다. 향기가 있고 단 맛이 나는 와인은 나중에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란다. 적어도 우리는 와인을 마시는 취향 만큼은 같은 것 같다.
최수희가 27살이라고 했는데, 어머님 되시는 분께서 치매라면 70 정도로 잡는다고 해도, 엄마와 딸의 나이 차이가 43살? 그렇다면 아무래도 일반적인 엄마와 딸 사이는 아닌 것 같다. 최수희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최수희는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섰다. 식당 앞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택시를 타고 헤어졌다. 나는 오피스텔로 서둘러서 갔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지혜가 올 시간이 아직 한 시간 정도가 남아있다. 나는 어제처럼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서 또 잠에 빠져든다. 나중에 지혜가 오면 깨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잠이 쏟아진다.
한참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깨운다. 분명 지혜는 아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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