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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6 798회 0건
“오늘 이집 왜 이렇게 어수선해요?”
“어이~ 박 기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당신 때문에 나 서장한테 엄청 깨졌잖아”
“뭐 때문에요?”
“아침에 A아파트 건이지 뭐긴 뭐야. 누구에게 들었기에 그렇게 상세하게 보도했어?”
“듣기는 뭘 들어요. 툭 하면 뒷집 호박 떨어지는 소리지.”
“아무튼 빨리나가요. 여기가 박 기자 사무실도 아니고.”
“아~ 팀장님 저도 좀 먹고 삽시다.”
“당신 때문에 내 밥줄 떨어지는 건 어떻게 하고. 의경 저 양반 바깥으로 내보내.”
“아~ 참 팀장님 정말 이러시깁니까?”
“당분간은 형사계 출입하지 마. 내 아침부터 당신 때문에 서장께 깨진 거 생각하면 이빨 갈리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어수선해요? 총이라도 분실했어요?”
“이양반 정말 누구 잡을 소리를 하고 있어. 누구 목 날아가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팀장님 오늘 진짜 예민하시네요. 여자도 아닌데 멘스하시나?”
“야! 의경 너 임마! 뭐하고 있는 거야!”


결국 박 기자는 의경에게 떠밀려 바깥으로 나갔다. 형사계 직원들은 다시 잃어버린 소설을 찾기 위해 각자의 책상서랍을 뒤지고, 혹시 책상 아래에 떨어지지나 않았는지 하고 고개를 숙여 책상 밑을 찾고 있었다.


“팀장님! 이거 아닙니까?”
“그거 어디서 났어?”
“여기에서요.”
“거긴 2팀 자리 아니야? 그게 왜 거기에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그 자리 주인 누구야?”
“2팀 박 형삽니다.”
“박 형사 불러봐.”
“박 형사 지금 연가내서 출근 안했습니다.”
“그럼 그걸 누가 거기 가져다 놓은 거야?”
“아무튼 살았습니다. 일단 찾았으니까요.”
“김 형사. 앞으로 서랍 잠그고 다녀.”
“넵 각하!”
“지랄하고 있다. 니가 지금 각하 찾을 때가? 사람 죽이는 것도 가지가지다.”


아무튼 그렇게 형사계 사무실 내의 의도된 소동은 끝이 났다. 박 기자는 의도치 않게 늦게 도착해서 김 형사님의 책상에 다시 가져다 놓을 기회를 잃었고, 형사계 직원들이 소설원고를 찾느라 분주한 틈을 이용해 그것을 2팀의 팀원자리에 던져놓고 돌아갔던 것이었다.


“예. 서장님! 즉시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받았던 팀장이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서장에게서 호출이 온 모양이다.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던 팀장은 30여분이 지난 후 형사계로 돌아와 팀원들을 집합시켰다.


“뭐라 합디까?”
“예상했던 대로야. 가능한 조용히 덮는 방향으로 가라더군. 양쪽 당, 부산시당 위원장들이 같이 전화가 온 모양이야. 거기에다 OO당에서는 당 윤리위원장이 자기네 쪽에서 적절한 징계를 할 테니까 가능한 당을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요청까지 했다고 하니.”
“적절한 징계요? 기껏해야 출당이니 뭐니 하는 거 그것밖에 더합니까?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소리 소문 없이 복당하고, 다음 선거에 출마하면 그걸로 명예회복 되었다고 큰소리치고”
“아무튼 여, 야를 막론하고 그런 것은 어떻게 다 똑 같은지. 개 같은 것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집권당인 SS당 입장에서야 이번 건을 도와주면 OO당에게 하나의 빚을 지운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다 자신들 당 내부에서도 심심찮게 성추문 사건이 터지니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그냥 조용히 덮어지길 원할 수밖에 없었고 그년이 속한 OO당 역시 이번 건으로 타격을 입는 것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의 확산을 막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니 여, 야공조가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셈이다. 아무튼 정치를 하는 놈들이라는 것들이 좋은 쪽에서 서로 공조하는 일은 힘들어도 자신들의 약점을 숨기기 위한 공조는 그 무엇보다 빨랐다.




“부산에서 엽기적인 자살사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사망자는 OO당의 중진 원외위원장의 비서인 박 모 씨로, 사망자 박 씨는 현역 구의회 의원인 S씨가 살고 있는 부산진구 부전동의 A아파트 옥상에 밧줄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 현장에 나가있는 박 OO기자로부터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 박 OO기자 나와 주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박 모 비서가 자살을 기도한 A아파트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현장은 아직까지 현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경찰들이 쳐 놓은 police라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사망자 박 비서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운 후, 바로 여기에 밧줄을 묶은 후 아래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박 기자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여기 이 책자를 좀 자세히 비춰주시기 바랍니다. 사망한 박 모 비서는 자살을 기도하면서, 여기 보시는 A4용지 약 500매, 즉 원고지 약3,500매 분량, 일반소설로 2권에 달하는 소설형식의 유서를 옥상에 남겨놓은 채 자살을 강행했습니다. 제가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자는 경찰이 현장에서 확보한 박 모 비서가 옥상에 남긴 원고와 같은 분량의 A4용지 묶음이며 저희 AAA방송국은 모처로부터 원고 전채를 단독으로 입수하여 현재 내용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박 기자, 그런데 그 원고의 내용은 어떤 거죠?”
“예. 박 모 씨가 남긴 원고에는 현직 기초단체의원인 S의원과의 관계 전반에 대해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직 원고의 검토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자세한 사항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만약 이미 밝혀진 내용이 사실로 증명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부산 정가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박 기자, 그럼 그 원고에 대한 검토는 언제쯤 끝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나요?”
“단순히 원고를 읽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몇 시간 후면 모든 일이 끝이 나겠지만, 저희 AAA방송국의 신뢰문제가 담보된 이상 그 원고내용의 사실관계까지 따져야 하기에 지금 현 시점에서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을 확정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입니다. 다만 사실관계가 확인된 내용부터 본 기자는 그 사실을 즉각 여러분들께 전해드릴 것을 말씀드립니다.”
“박 기자, 이번 사건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정치권에 연루된 사안이라 정치권의 입장도 곤란할 것이라 예상되는데 정치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박 모 씨와, 박 씨가 남긴 원고에 거명된 S의원이 소속된 정당인 OO당 부산시당은 겉으로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이 사건의 파장을 죽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집권여당인 SS당 역시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과거 SS당에서 발생했던 성추문 사건이 불거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이번 사건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권 일부에서 경찰에 외압을 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이번 박 모 씨의 자살사건은 부산 정관계 전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예, 박 기자 수고 많았습니다. 계속 밀착취재 부탁드립니다.”
“예. 지금까지 AAA방송 박 준철입니다.”



저녁뉴스에 내 사건이 Top으로 보도되었다. 박 OO기자가 아마도 내가 쓴 원고를 모두 읽어보았다 보다. 그리고 당분간 그 내용들을 하나, 하나 조금씩 풀어내면서 자신이 속한 방송사의 시청률을 올리면서 그 자신의 입지도 올려보겠다는 계산이 눈에 훤히 보인다.


AAA방송국을 제외한 다른 방송사나 신문사들은 특종을 놓쳤기에 내 사건에 대한 스케치기사로나마 전세를 회복하기 위해 바빴다. 부전동 A아파트에 기자들은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우르르 몰려서 아파트 경비원들과 주민들에게 인터뷰를 따고, 관할서인 부산진경찰서에 죽치고, 심지어 내 육신을 장사지내는 장례식장까지 찾아와 집사람과 동생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무례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기자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한 집사람과 동생은 병원 측에 부탁을 해서 아예 장례식장에 기자들의 출입을 막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튿날부터 AAA방송국의 박 기자는 내 원고를 세밀히 풀어가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은 나와 그년의 관계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죽음을 택하기 전에 계약을 한 출판사에서 움직일 순간이 다가왔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남편과 어떻게 되시는 사이이신지?”
“예. 저희는 박 진호님 심부름을 온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박 진호님께서 며칠 전, 제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셨습니다. 참 여기 이분은 청솔출판사 석 청호 대표십니다.”
“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군 되시는 박 진호님께서 저희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셔서 지금 AAA방송국 뉴스에 나오는 저 원고의 출판에 대한 모든 권한의 행사를 저희 변호사 사무실에 위임하셨습니다. 또한 그 원고를 여기 석 대표께서 운영하시는 청솔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하기로 계약을 하시고, 그 책에서 나오는 인세에 관한 권리를 약정하시고 그 내용에 대한 집행 또한 저희 변호사 사무실에 위임 하셨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남편장례식을 끝나고 들었으면 합니다.”
“물론 황망 중에 이런 문제로 찾아뵌 것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부군의 요구이기도 하고, 또 당장 AAA방송사에 대해 더 이상의 원고 내용에 대한 보도를 중지하라는 소송을 제기해야 하기에 이렇게 급하게 찾아 뵌 것입니다. 이 내용 역시 고인이 되신 부군께서 저희에게 요구하신 내용입니다.”
“정말 잔인한 사람이네요. 내 남편이라는 사람은.”
“부군께서는 사모님과 따님, 그리고 부군의 모친 되시는 분과 동생들에게 살아오신 평생을 폐만 끼치고 살아오셨던 그것에 대해 많이 미안해 하셨습니다. 어차피 극단적인 선택을 할 바에야 이렇게라도 사모님과 따님, 가족들에게 그 미안한 마음을 갚으시고자 이렇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부군의 어머니와 동생 분을 불러주시지 않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역시 변호사는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양반에게 예전에도 신세를 진 일이 있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을 보니 괜찮은 변호사를 골랐다 싶은 생각이 든다. 강 변호사는 집사람이 동생을 데리고 오자 어머니를 찾는다.


“저희 어머니께서 형의 이야기를 또 듣게 되면 쓰러지십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제게 말씀해주시지요. 형이 살아있다면 동의했을 겁니다.”
“예.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인이 되신 박 진호씨가 저희 사무실에 일을 의뢰하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뉴스에 나오는 것이 바로 박 진호씨가 남기신 유작입니다.”
“그런데요?”
“박 진호씨께서 목숨을 끊으시기 전에 부인 되시는 분과 따님,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 분께 평생 폐만 끼쳤다고 많이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네 분께 미안했던 마음을 갚는 방법으로 그 원고를 소설로 출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사건현장에 원고를 두고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수를 위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박 진호씨 사건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내용이 들어있는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게 되면 그 책이 많이 팔릴 것이라는 판단에 저와 여기 석 대표님을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인은 그 책의 인세를 어머님과 동생 분, 그리고 고인의 부인과 따님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공증을 하셨습니다.”
“지랄. 누가 돈 달라고 했어? 언제 누가 지보고 돈 벌어서 보태달라고 했냐고. 나나 엄마는 그 돈 한 푼도 필요 없으니 그냥 형수가 진영이 학비에나 쓰세요.”
“말씀도중에 죄송하지만 그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고인께서 무조건 4등분으로 나누라고 공증을 마치셨습니다.”
“도대체 그게 얼마나 대단한 돈이 길래 공증까지 하고 그럽니까?”
“물론 책이 얼마나 팔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처럼 이슈가 된 사건에 관련된 책이라면 최소 몇 만권은 팔릴 거란 것이 저희 예상입니다. 저희가 고인과 계약을 하면서 고인께서 인쇄와 디자인, 출판등록만 원하시고 홍보에 관해서는 고인께서 알아서 하신다고 하셨기에 인세를 일반적인 계약보다 훨씬 높게 책정 했습니다. 만권이 팔린다고 가정하면 4천만 원 정도를 인세로 받으실 수 있고, 그 돈은 네 분께 1천만 원씩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저희 출판사 예상으로는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최소 3~5만권은 판매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럼 이제 끝이 났지요?”
“아닙니다. 지금 네 분의 동의를 받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동의요?”
“지금 이번 사건은 AAA방송사를 통해서 대부분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의 홍보는 필요가 없는 상황입니다. 고인께서는 내일 오전에 법원에 언론사를 상대로 고인이 남기신 원고에 대한 내용공개를 금지하는 보도중지 가처분신청을 낼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물론 네 분께서 동의를 하시면 그 사법적인 절차는 저희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행할 것입니다.”
“예. 그렇게 해주세요. 형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강 변호사는 집사람과 동생의 동의를 받고, 출판사 대표와 함께 장례식장을 떠났다. 이제 박 기자의 역할은 거의 끝이 났다. 하지만 박 기자의 사적인 입을 통해서 내가 쓴 소설의 이야기들이 퍼져 나갈 것이고, 그 내용은 과장되고 또 과장이 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책이 많이 팔리는 만큼 내 가족에게 돌아가는 금전적 이익도 많아지겠지만 그에 비례하여 그년은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며,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란 생각에 후련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강 변호사는 집사람과 동생의 동의를 얻어 다음날 아침 법원에다가 보도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리고 그 가처분은 신청은 내 장례식이 끝이 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만할 즈음 보도중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AAA방송국의 야심찬 계획은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AAA방송국 입장에서는 손해 본 것이 없는 아니, 이익이 엄청 남는 장사였으니 불만이 있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자 언론에서는 과연 내가 세상에 남기고 떠나온 원고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하는 내용으로 연일 추측성 기사를 남발하면서, 심지어 AAA방송국의 박 기자까지 취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 기자. 오늘 법원에서 지난 번 자살한 박 모 씨의 유족측이 제기한 보도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부산지방법원은 박 모 씨의 유족을 대신한 법무법인 낙동강이 제출한 보도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따라 본 방송국에서 입수한 박 모 씨의 원고 내용을 더 이상 여러분들께 소개시켜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그 사건의 내막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인가요?"
"그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박 모 씨는 사망하기 이전에 법무법인 낙동강에 이 원고에 대한 처리방안을 협의하고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요?"
"그 자세한 내용은 법무법인 낙동강의 대표변호사로 계시는 강 OO변호사께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안녕 하십니까 변호사님."
"예. 반갑습니다."
"어떻게 이번 사건을 맡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시죠."
"예. 고인이 되신 의뢰인은 사건이 발생하기 일주일 전 저희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AAA 방송국에서 입수한 원고의 원본을 맡기셨습니다. 또한 그 원고의 처리방안에 대하여 본 변호사 사무실에 일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원고에 대한 보도금지 가처분신청을 내셨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고인이 되신 의뢰인께서 그 원고를 작성하신 이유는 한 여자의 파렴치한 행위를 고발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그 원고를 책으로 출판해서 그 여자의 파렴치한 행동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원고는 조만간 한 출판사에서 출판하기로 이미 계약이 된 상태입니다."
"그럼 그 소설의 제목은 그 원고 앞에 있는 나쁜 여자가 되는 것입니까?"
"예. 그것이 고인의 유지입니다."
"그렇다면 고인이 변호사님을 찾아왔을 때 이미 자살을 결심하신 것이네요?"
"이미 당시에는 소위 말해서 산 게, 살아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셨습니다."
"자살을 말려보실 생각은 없었습니까?"
"당연히 말렸지요. 저도 사람이고 또 고인과는 이미 이전부터 친분이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말리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제 능력으로는 말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에서 변호사님을 자살방조죄로 걸고 나올 수도 있는데 그 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나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분을 뒤따라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언제 일을 저지를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경찰관서에 신고를 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단지 제 변호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저는 그분을 살리기 위해 제가 가진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사실을 말씀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부산에서 AAA 방송국 박 준철 기자가 전해드렸습니다."



AAA방송국의 메인뉴스에까지 나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나오고, 내가 쓴 책의 이름까지 거명되었다. 이 정도라면 돈을 주고 광고를 산 것의, 몇 배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제 청솔에서 책만 발간하면 모든 것은 내 의도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출판사가 책을 세상으로 내 보낼 시기만 잘 잡으면 될 일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내 장례식은 우리집안의 그것처럼 사흘장으로 치러졌고 내 육신은 내 고향 선산의 자락에 묻혔다. 이제 빨리 내 영혼도 영원한 안식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그년과의 만남 이후에도 한번은 더 그년과의 관계를 끝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했기에 그년이 내 행동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그것이 두려워 난 그년과의 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노래주점을 다녀온 이후에 난, 그년의 행동에 실망을 하여 가능한 그년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하지만 도대체 가진 것 없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외모도 아닌 나에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년은 끊임없이 아침마다 톡을 보내고, 이따금은 사무실을 찾아와 잡담을 나누다 돌아가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시간에 그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 박 진홉니다."
"진호씨 저 청라인데요."
예. 선 여사님 잘 알고 있습니다."
"치~ 아직까지 선 여사라 부르세요?"
"그냥 청라씨 하거나 청라야 하시면 되잖아요."
"아뇨. 어떻게 그렇게 부릅니까. 그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요 오늘 저녁에 시간 좀 있으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신랑이 시골에 가서 따분해서 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
"아, 예."
"그런데 제가 차도 없고, 믿을만한 남자도 없어서요."
"예.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러 갈까요?"
"그래 주시면 고맙죠. 아파트 앞에 도착하시면 전화 주실래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빨리 도착 하셨네요?"
"아. 퇴근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럼 제가 사모님과 오붓한 시간 방해한 건 아니었나요?"
"아이고 20년 가까이 산 부부가 오붓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그렇죠. 저도 그래요. 차라리 오늘 같이 시골에라도 가면 숨통이 트이니까요."
"그런데 어디 가시고 싶어서요?"
"그냥 조용한데로 가죠."



송정을 가려니 한창 밀릴 시간이었고, 또 전날 밤에도 다녀왔기에 굳이 송정을 갈 이유가 없었다. 결국 그년이 영화이야기를 하다가 자동차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를 원했다. 부산에 자동차 극장이라고 해봐야 을숙도 밖에 없었기에 을숙도로 향했다.

한참 영화를 보다가 그년이 옆 차를 향해 손짓을 한다.


"보시면 안돼요."
"차안에서 저렇게 하면 사람들 다 볼 건데?"
"차에 선팅을 해놓았다는 생각에 안심을 하는 거죠. 여기 오는 차들 대부분이 저러고 있을 걸요?"
"정말요?"
"예. 저런 이유 아니면 굳이 이 외곽까지, 그리고 불편한 차에서 영화를 왜 봅니까?"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오자고 했었는데."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런데 진호씨는 저런 거 보면 이상하지 않아요? 옆에 여자도 있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봐야 뭐합니까?"
"제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요?"
"그게 아니라 우리 당원이신데 이상한 생각을 품는 그 자체가 나쁜 거죠."
"치~ 내가 매력이 없구먼."
"아이고 아니라니까요."
"정말 그렇다면 한번 안아 줘 봐요. 진호씨 가슴이 뛰는지 아닌지 보게."
"여사님 저도 남잡니다. 여기서 스톱하시죠."


어색한 분위기가 차안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최대한 부드럽게 하느라 했는데 내 말이 그년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난 슬며시 그년의 손을 잡았다. 내 손길을 느낀 그년 역시 손을 맞잡아 오고 우리는 손을 꽉 잡은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가 끝이 나고 난 을숙도 공원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창밖을 바라보며 그년이 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 듣고 있었다. 한참동안 담배를 참았더니 드디어 몸이 견디질 못한다.


"여사님 잠깐만요."
"예."
내가 차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려니 그년이 나를 보면서 말한다.

"진호씨 맥주 하나만 사다주실래요?"
"예."


난 매점으로 달려가 맥주 하나와 짭짤한 맛이 나는 과자, 그리고 내가 마실 물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년은 내게서 맥주를 받아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킨 후 나를 바라보았다. 입술에 묻은 맥주의 거품 때문인지 그년의 얼굴이 섹시하게 느껴진다. 그년은 내 눈길을 느끼면서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맥주의 거품을 핥는다.


"진호씨는 정말 여자 가지고 싶을 때 없어요?"
"저도 남자라니까요."
"그런데 왜 지금은? 보통 남자들은 이럴 때 덮친다면서요?"
"전 그만한 배짱이 없는 놈입니다. 더구나 앞으로도 계속 사무실에서 얼굴을 볼 건데……."
"치~ 핑계는……."
"핑계가 아니라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무튼 난 그년의 유혹을 꿋꿋하게 이겨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년의 미친 짓 때문에 결국 내가 키스를 한 것도 아닌데 내가 키스를 한 것처럼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진호씨 담배 얼마나 피워요?"
"하루 세 갑 정도요."
"좀 줄이면 안돼요? 담배 냄새 엄청 나는데."
"예. 줄여보도록 노력하지요."


희한하게 키스를 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미 선은 넘어 버렸으니까. 결국 그년의 청을 들어줄 수밖에. 그날 이후 난 그녀의 운전기사 아닌 운전기사 신세가 되었다. 키스 한 번의 위력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년은 그날 이후 차에 타면 항상 내 손을 조몰락거리며 손잡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이따금은 과자를 사와서 내 입에 넣어주는 상냥함도……. 그렇게 나는 그년에게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진호씨 요즘은 담배 얼마나 피워?"
"응 한 갑반."
"정말?"
"그런 거짓말을 왜해?"
"그럼 내가 진호씨에게 상 줘야겠다."
"무슨 상?"
"진호씨 소원 들어줄게."
"소원? 나 그런 거 없는데?"
"나 가지고 싶지 않아?"
"……."


결국 그날 밤의 대화가 문제였다. 그년은 아예 노골적으로 나와의 잠자리를 기정사실화 했고 내가 그년을 거부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년은 토요일 오전에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이야길 하고, 난 그 약속을 한 후 그년을 아파트에 데려다준 후 집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약속한 토요일이다. 아파트 도착을 10분 남기고 그년에게 전화를 했다. 10분 후에 아파트 입구로 나오라고.


"타세요."
"진호씨 오늘 차가 깨끗하네요."
"예. 어제 세차를 했거든요."
"예."

백양터널로 향했다.
"어디로 가려고요?"
"양산요?"
"양산은 왜요?"
"부산서 혹시 아는 사람 눈에 뜨일까 걱정이 되어서요."
"예."


그렇게 부산을 출발해 양산까지 달렸다. 양산에 내려 바로 모텔을 향하기에는 조금은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점심을 먹기를 권했다. 마침 모텔이 모여 있는 모텔 촌 입구에 그럴싸한 식당이 보여 우린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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