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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5 1,005회 0건

43. 잠시 헤어지는거야.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아.




한수정은 활짝 웃는 얼굴로 최박사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우리들의 눈길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로 쏠린다.

최박사가 입고있는 검정색 투피스가 타이트하다. 안에 받쳐입은 흰색 블라우스로 그녀는 단정하면서 깨끗한 이미지이다. 한수정에게서 들은 것처럼 그녀는 과연 시원스럽고 미끈하게 빠진 글래머인 몸을 갖고있다. 그녀의 몸에서 드러나는 굴곡 하나하나가 결코 심상치 않다. 깎은 듯한 얼굴도 차가운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30을 넘었다는 나이에 비하면 아직은 귀염상이다. 아이린이 풍기는 엄마라는 따뜻한 표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두 사람은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향하여 당당하고 자신있게 걸어온다. 둘 다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니다. 지혜 아빠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혜 아빠가 모두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최박사님, 늦은 시간에 뵙게되어서 죄송하기도 하지만 또 영광입니다.
어서 이리 앉으시지요."

"저도 뜻하지 않게 서박사님을 이 자리에서 뵙는군요.
너무 반갑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리에 앉았다. 최박사를 바라보는 여자들 3명의 눈은 호기심에 빛난다. 내 왼쪽에는 최은희가, 오른 쪽에는 한수정이, 그리고 한수정 옆에는 지혜가 앉아있다. 우리 건너편에는 서전무, 그리고 두 여인이 앉아있다.

한수정이 소개를 한다.



"언니, 이 아이가 고2 서지혜,
건너편에는 지혜아버님, 제일그룹 서영환 전무이사님,
지혜 아빠의 지금 부인,
지혜 어머님이시자 지혜 아빠의 전 부인이시고,
그리고 이 언니는 최은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은희입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지혜입니다."

"네가 지혜면, 말로만 듣던 과외 수업을 받는다는 학생이구나."
"네. 맞아요. 수업은 태현이 오빠한테 받아요."

"지혜 어머님, 아버님.
제 친구같은 동생 수정이를 아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저도 잘 부탁합니다.
야, 한수정. 그런데 왜 딱 한 명은 소개를 안하는거지?"

"어? 누구? 나는 다 했는데?"
"야아아. 바로 이 꽃미남을 빠트렸거든요?"

"하아. .. 그 남자는 너무 잘생겼잖아.
언니가 넘볼까봐 일부러 뺐는데? 하하."

"이런, 그럼 수정이 남친이라는 말이네?
김태현씨죠? 반가워요. 나, 최은희예요."

"예. 김태현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은희는 나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고, 나는 최은희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정말 부드럽고 가지런한 손이다. 지혜가 대뜸 한마디 했다.


"무슨 악수를 그렇게 오래할까?
저 오빠는 언니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모르네. .. 하하."

"야아. 이거 절대 오래 한 것 아니거든."

"됐습니다.
와아아. 그런데 두 분 언니는 진짜 너무 닮았다. 완전 붕어빵이네."

"그래? 내가 은희 언니처럼 못생겼니? 하하."

"왜 못생겼다고 하세요?
내가 보기에는 훨씬 더 예쁘신 것 같은데.. 하하."

"너, 진짜 이럴래?"
"어라? 나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건데요? 하하."


"알았어요. 지혜는 나중에 따로 나 좀 봅시다.
언니, 우리 여기서 그냥 얘기 할까?
아니면 저 쪽 조용한 자리로 옮길까?"

"그냥 터놓고 다 같이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놀자.
나한테는 뭐 숨겨둘 비밀 얘기도 없거든."

"예스, 레이디."
"Merci bien. (메씨 비야 - 대단히 고마워요.)"



지혜 아빠가 최은희와 한수정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고 이들의 말을 듣고있다. 아이린은 회와 소주로 상을 차려왔다. 우리는 또 다시 소주를 마시면서 회를 먹는다. 최은희는 회가 부드럽고 연해서 맛있다고 칭찬을 한다. 한수정이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는 그럼 캐나다로 언제쯤 들어가?"
"추석은 여기서 보내고 10월 말쯤에 갈까 생각중인데, 아직은 몰라. 두고 봐야 해."

"서울에서는 무슨 미션을 하는데?"

"한미 FTA때문에 금융개방이라고 해서 지금 미국 은행이 한국에 와있어.
역시 미국 애들은 일단 빵 터뜨리고 보거든.
우리 맥꼴 은행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겁이 나서 아직은 시작도 못하고 있어."


"역시 미국 애들은 겁이 없고 용감하단 말아야."
"와서 보니까 내가 할 일은 여기서 미국 은행이 어떻게 하는지 벤치마킹 하는 거야."

"그럼 언니네 은행도 우리 나라에 들어오려고 하는거야?"

"1년 아니면 2년 정도 지나면?
그러면 미국 은행이 여기서 기반을 닦는 일이 끝나.
그럼 걔네들도 본격적으로 일을 할꺼거든.
그 때 가서 얘네들 한 것을 평가해보고, 우리가 올지, 말지를 결정하게 될꺼야.
만일 오는 것으로 결정이 나면, 나는 선발대로 훨씬 일찍 올꺼야."

"내가 여기 있으면, 언니가 오는 것이 좋고,
내가 캐나다에 있으면, 언니가 안오는 것이 좋은데, .."

"이 지독한 욕심쟁이, 깍정이, 구두쇠, 고집쟁이.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어도, 지꺼 챙기는 저 고집은 절대로 안 변한단 말이야. 하하."

"내꺼 내가 안챙기면, 다른 사람이 챙겨주나? 하하."
"가끔씩은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잖아?"

"양보 할 것이 따로있지.
그건 절대로 안돼. 하하."



한수정과 최은희는 이 말을 하면서 나를 보고 웃는다. 내 양쪽에서 두 여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통에 내 얼굴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것 같다. 지혜의 아빠 서전무가 한동안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연다.



"최박사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
"예, 말씀하십시오."

"밤늦게 오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수정이가 캐나다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만난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런데 수정이가 저한테 깜작 놀랄만한 손님께서 저를 기다리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서이사님이시네요."

"우리 제일 그룹의 일에 협조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 싶은데요."

"만일 일의 규모가 클 경우에는 제가 캐나다로 다시 들어가야 가능하겠죠?
그런데 어차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칸설테이션 정도 아니겠어요?
그런 정도라면 여기서도 충분히 가능하겠고."

"저희 미주 지사가 이번에 캐나다로 확장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결례를 ...
우리는 해밀턴이나 킹스턴, 몬트리올 등 몇 군데를 놓고, 어느 곳으로 들어갈지를 조사하는 중입니다."

"뭐. .. 제일 그룹이 들어온다면, 조건으로 놓고 본다면 당연히 해밀턴으로 결정나겠죠."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법인 설립이나 주 정부로부터 외국 투자 자본에 대한 특혜 부분에서 주마다 차이가 큽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들이 겉으로 제시하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또 뭔가가 숨겨져있을텐데, 우리로서는 접근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제일그룹 정도의 기업이 들어오면 캐나다 연방 정부나 주 정부로부터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안심하고 오셔도 될 것입니다. 저나 저희 법무팀에서는 최대한 제일그룹편에 서서 자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일그룹은 저희 맥꼴 은행의 고객이 돼주시는 거죠?"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면 맥꼴 은행을 저희 주 거래 은행으로 하겠습니다."

"능력있는 직원은 이렇게 밤중에 놀러와서도 VIP고객을 얻는다니까요. 하하하.
지금 세상은 제가 서울에 있더라도 캐나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처리하는 세상 아닙니까? 언제라도 필요하신 부분을 말씀하십시오."

"되도록 빨리 우리가 확보한 자료를 박사님께 보여드릴테니까 검증을 부탁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명함을 교환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한수정은 이날 밤에 지혜의 아빠 서전무와 최은희 박사를 만나게 해 주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맥꼴 은행과 제을 그룹을 연결시켜준 것이 되었다. 서전무는 이것을 한수정의 위대한 업적이라면서 고맙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지혜는 최은희에게도 언니라고 부르며 당연히 어리광을 부렸다. 최은희도 지혜가 한수정 다음으로 서울에서 알게 된 두번째 동생이라면서 귀여워해준다.



"언니, 그럼 나도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면 방학때 언니가 있는 캐나다로 가도 돼요?"

"당연히 와도 되지.
그 때에도 수정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우리 다 같이 꼭 만났으면 좋겠다."

"언니 남편은 뭐하시는 분이시죠?"
"지혜야. 그 얘기는 나중에 우리끼리 하자. 오케이?"

"뭐. .. 그러시든가."




최은희는 자기가 하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대신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돌려서 하는 성격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그러나 완곡한 표현을 사용해서 한다. 그녀는 지혜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다. 지혜는 그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인지 아닌지를 헷갈리게 했다.



"지혜야. 수정이를 잘 보세요.
얘는 캐나다에 와서 공부하면서도,
미국이나 유럽 이번에는 일본에 까지 다니면서
전시회도 보고, 학술회의에도 가고 그러잖아."

"수정이 언니는 제 롤모델이어요.
언니야 과학고에 다닐 때 영어랑 불어를 해 둔 것이 있으니까 지금 그렇게 할 수 있죠."

"그래, 맞아요. 잘 봤어요.
사람은 어디에 가든 컴뮤니케이션이 돼야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사랑도 한단 말이야.
너도 학교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고, 외국어 공부도 많이 해야해요.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다른 나라에는 나보다 잘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
눈을 뜨고 넓게 보면 공부할 것이 그만큼 많다는 거야."

"아아. 내가 왜 공부에서 손을 놨지?
서지혜 지인짜 완전 개빡이다."

"지금 너는 나이가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늦은 것이 절대로 아니거든.
수정이 말로는 태현씨한테도 배울 것이 많대.
지금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열심히 공부해두면 나중에는 그것달이 전부 네 재산이 돼요.
네 나이에는 정신줄 놓고, 멍때리면서, 공부 안하는 것이 가장 멍청한 짓이야."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지금 공부를 못하니까, 오빠도 만나고,
수정이 언니도 만나고 또 박사님 언니도 만났잖아요?
이렇겦 되면 공부를 안한 것이 그닥 나쁜 것 만은 아니죠? 하하."

"지혜, 이 엉터리. 또 말을 갖다 붙인다. 하하."



지혜네 식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와 한수정 그리고 최은희 이렇게 세 사람은 내 오피스텔로 올라갔다.

내 집에 들어서자 최은희는 욕실로 들어갔다. 한수정은 와인, 잔, 그리고 접시에 과일과 과자를 담아서 주섬주섬 식탁으로 놓는다. 나는 이것들을 소파에 있는 탁자로 옮겨갔다. 나는 와인 병에서 코르크 마개를 뽑아냈다. 우리 세명은 소파애 모여앉았다.

한수정과 최은희는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는 조용히 듣고있었다. 한참 있다가 드디어 두 사람의 관심이 나에게로 건너왔다.



"김태현씨라고 했죠?"
"네. 말씀 놓으십시오."

"좋아. 그럴께.
수정이한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태현씨 얘기를 많이 들었어.
그런데 이렇게 직접 보니까 진짜 멋있는 남자네.
수정이가 가고 나면 나랑도 데이트 해줄꺼죠?"

"예?"
"하하하. 왜 이렇게 놀래?"

"언니. 쟤는 언니가 만나자고 하면 절대로 싫다고 안할꺼야.
언제든지 안심하고 불러내.
돈도 잘 벌으니까 걱정말고 팍팍 씌워도 돼.
딱 한가지는 얘가 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언니 시간에 될 지 모르겠어."

"뭐. .. 태현씨가 내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내가 태현씨 시간에 맞추면 되지."

"언니, 그렇게 심심해?"
"일 할 때는 미친듯이 일하면 그런 것 모르는데, 일이 끝나면 혼자잖아."

"남자도 사귀고 그러지?"

"아이. .. 어떻게 그해?
오래 있을 꺼라면 몰라도, 금방 갈껀데."

"태현아, 나 가고 나면 언니한테 잘해줄꺼지?"
"그래."

"너무 잘해주면 곤란한데. 하하."
"얘는? 내가 네 남침 뺏을까봐?"

"아니,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



한수정은 이 자리에서 나와 최은희를 견고하게 맺어주는 역할도 해냈다. 우리는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나는 그녀들에게 내 오피스텔을 양보하고, 택시를 타고 엄마에게 가서 잤다. 다음날이 금요일이라서 최은희는 하루 쉬어도 된다면서 늦잠을 자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10시가 넘어서 나는 전화로 한수정을 깨웠다.



"잘 잤어?"
"응. 지금 몇시야?"

"10시 넘었어."
"벌써? 왜 이제 깨운대?"

"미안. 내가 도착하면 아침 먹으러 나가도록 준비해."
"알았어. 천천히 와."



내가 오피스텔로 갔을 때 최은희는 샤워중이었고, 한수정은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신 후에, 최은희가 옷을 갈아입겠다고 해서, 우리는 내 차로 최은희가 살고있는 오피스텔로 갔다. 그곳은 공항동이다. 그 동네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한수정은 아프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술마시고, 언니랑 재미있게 놀고나니까 감기 몸살이 싹 없어진 것 같아."



돌아오는 길에 한수정은 여행사에 들러서 일요일에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일요일에는 예정대로 오후 3시에 출국해서, 일단 로스앤젤스에서 이틀 동안 머물렀다가 캐나다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 집에 전화해서 인사를 하면서, 이번에 들어갔다가 별 일 없으면 내년 여름에 다시 들어오겠다는 말도 했다.



드디어 일요일이다. 간밤에 애정행각이 격렬했던 탓에 한수정은 늦게까지 잠을 잤다. 우리는 12시에 집을 나서기로 하고 준비를 했다. 짐을 챙겨서 나가기 직전에 한수정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나, 엄청 불안해."
"어? 뭐가?"

"너, 지혜네랑 너무 가까운 것 아니야?"
"그게 왜?"

"지혜 엄마나, 지혜가 너무 예쁘고, 너한테 너무 잘해."
"진심을 왜곡하지 말아요."

"은희 언니도 너한테 너무 적극적일 것 같고,
윤기숙도 너한테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고..."

"네가 가려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나보네."

"지난 번에는 우리 둘이 다 서로를 떠나갔지만, 이번에는너를 두고 나 혼자 가잖아?
불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냐."

"이해 해."

"태현이 너 내년에 진짜로 복학 할꺼야?"
"응."

"그럼 졸업까지 할꺼니?"
"그래야지."

"하아.. 이 고집을 누가 어쩌겠어? 그럼, 내가 대학원은 여기 들어와서 다니는 것으로 생각해볼께."

"네가 대학원에 가는 것은 내년에 할 일이잖아?"
"그래도 지금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얘기가 돼야 뭘 해도 하죠."

"하긴 그래."
"우리 또 잠시 헤어지는거야. 그렇지만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아."

"알았어. Return To Love. 기다릴께."

"고마워. ...
그런데 우리가 지난번에는 왜 이렇게 헤어지지 못했을까?"

"엄청 서툴렀던거지. 우리가 처음으로 헤어지는 것이었잖아."
"그래. .. 이제 앞으로 자주 헤어지다 보면 더 멋있게 헤어질 수도 있겠다."




이상하게도 한수정은 앞으로 더 자주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 나는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물어보려고 했으나, 지혜가 올라오는 바람에 참았다.



"언니, 12시인데. 아직 멀었어요?"
"어서 와. 우리 지금 막 나가려는 참이야."



지혜는 뒤에, 한수정은 내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한수정은 출발하면서 대한대학교를 한바퀴 돌자고 했다. 캠퍼스를 지나가는 동안에 한수정은 창밖을 보면서 조용했다. 아마도 지난 날을 생각하는 중인 것 같다.

우리는 공항동에 가서 최은희를 태우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는 윤기숙과 주영심이 지하철을 타고 벌써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수정의 짐을 들고 체크인을 하는 것을 도왔다.

우리는 작별하기 위해 출국게이트 앞에 모두 모였다. 지혜와 한수정은 서로를 안았다. 지혜는 눈물을 글썽였다.



"하아. .. 언니. .."

"그래. 태현이랑 같이 열공해."
"알았어요. 언니를 기다리면서 열공할께요."

"내년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너는 고3이고, 수시 원서 쓴다고 한참 바쁘겠구나.
우리 지혜 화이팅!"



한수정은 한사람씩을 모두 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를 안았다.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빨면서 한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한수정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너는 여기서 살으니까 나를 덜 생각하고, 덜 보고싶겠지.
나는 혼자니까 너를 더 많이 생각하고, 나를 더 사랑할꺼거든."

"나도 너를 생각하고, 보고싶어하고, 그리워할꺼야."

"아냐. 태현이 너는 그러고 싶어도 그렇 수 없을꺼야.
너는 그런 것 할 줄을 모르는 애야."

"나도 사람이고, 남자야."
"그런데 너는 사랑 받는 것은 또 몰라도, 사랑할 줄은 모르거든."



그러니까 윤기숙과 주영심이 투덜거린다. 그렇지만 지혜는 한수정의 편을 들어준다.



"비행기 탄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어? 3시 출발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아니었나?"

"언니, 오늘 3시가 아니고 내일 3시 비행기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우리가 하루 일찍 나온 것 같아."


"언니들, 걍 냅둬요. 이제 가면 몇 달 동안 저러지 못할텐데."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모두 내 차로 왔다. 먼저 공항동 최은희의 오피스텔 근처에서 다같이 저녁을 먹었다. 최은희는 집으로 올라가고, 나는 학교로 와서 주영심과 윤기숙을 내려주었다. 나는 지혜와 함께 내 오피스텔로 왔다.

거실에 앉자마자 지혜는 만해 한용운님의 시 "님의 침묵"으로 나를 놀린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그만해. .. 진짜 딱 거기까지만 맞고, 나머지는 맞지 않아."

"오빠, 슬퍼?"
"별로."

"이러언. 언니한테 일러줘야지."

"언니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
한동안은 다시 오지도 못하는데."

"허쭈? 비행기는 떠났으니까 고자질 하려면 해라 이거야?"
"내말은 그게 아니라 .."

"오빠. 그런데 윤기숙 언니 좀 이상하더라."
"왜? 너한테 뭐라고 했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 언니가 오빠 쳐다볼 때 보면 좀 느끼해."
"얘가 또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무슨 말이냐 하면. .. 그 언니 분명 오빠 좋아해."
"나 싫어하는 사람 봤니?"

"그렇게 좋아하는 것 말고."
"너도 참."

"어찌되나 앞으로 두고 보셔."



한수정과 같이 보낸 일주일이 허무하게 막을 내린 것이다. 일주일 동안에 나는 아마도 계속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혜와 와인을 마시면서 키스하고, 지혜를 내려보냈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에 들어가서 뻗어버렸다.

한참을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나는 놀라서 가슴이 철렁했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여자를 수정이로 잘못 보았기 때문이다. 침대 옆에 있는 미등을 켰다. 역시 수정이가 아니고 지혜였다. 수정이일 리가 없지.

지혜는 발가벗은 몸이 아니고, 다행히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있었다. 원피스는 말려올라가서 하얀 팬티와 엉덩이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나는 원피스 자락을 당겨서 바로 해주고, 조용히 침실을 빠져나왔다.

화장실에 갔다가 나와서 다시 침대로 갔다. 그런데 지혜가 몸을 벽쪽을 향하여 옆으로 세워서 웅크린 채로 곤하게 잠을 자고있다.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흩어져있지만, 잠자는 지혜는 오목조목한 눈, 코 입 때문에 18살 소녀의 예쁜 얼굴 그대로이다. 곤하게 자고있는 지혜를 깨워서 내려보낼 정도로 나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잠자는 지혜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밤이 제법 선선하므로 9월의 새벽은 날씨가 쌀쌀할 것이다. 나는 지혜의 몸을 안쪽으로 밀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내 엉덩이가 침대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대로 앉아서 아침까지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동화에 나오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지켜보던 왕자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같았을까?

지혜가 갑자기 내 쪽으로 돌아눕더니 눈을 뜨고 두리번거린다.



"오빠, 왜 안자고 일어났어?"
"화장실에 갔다왔어. 너는 왜 깼어?"

"오빠가 나를 안으로 미는 바람에.
이리 와서 누워."



나는 "그래서는 안되는데 잠시만" 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지혜의 옆자리로 누워버렸다. 지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팔을 베고 내 품으로 파고든다. 나는 지혜의 등을 토닥였다. 지혜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자장가 불러줘."
"내가 자장가 부르면 잠이 다 달아날껄."

"그럼 키스."
"그럼 잠을 못잔다니까."

"어차피 깼잖아."



지혜는 얼굴을 들고 내 목을 한팔로 감는다. 나는 지혜의 뺨에 키스했다. 그런데 지혜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을 누르며 입안으로 빨아들였다. 열린 내 입 안으로 지혜의 혀가 들어온다. 나는 지혜의 입술과 혀를 빨았다. 지혜의 등을 감고있는 내 팔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지혜의 몸을 당겨서 꼬옥 안았다.



"오빠, 완전 나쁜 것 알아?"
"내가?"

"언니 때문에 일주일 동안 나는 오빠 곁에 얼씬도 안했는데,
와보니까 혼자만 코까지 쿨쿨 골면서 자고 .."

"나도 그동안 긴장했다가 풀리면서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
"내 생각에도 그랬을 것 같아서 봐줬거든."

"고맙네."

"난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하잖아.
나 자는 것 깨워놨으니까 빨랑 다시 재워."

"어떻게 재워?"
"몰라아. 그건 오빠 알아서 해."



나는 손가락으로 빗질을 하듯이 지혜의 머리를 쓸어넘기고 지혜의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졌다.



"언니 어디쯤 가고 있을까?"
"11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지금이 한시니까, 아직 두시간 정도 더 가야해."

"언니 보고싶다."
"다시 오라고 할까? 하하."

"오빠가 오라고 한다고, 언니가 오냐?"



지혜는 나를 바로 눕게했다. 지혜의 몸은 내 몸 위로 올라오고, 지혜의 얼굴은 다시 내 얼굴 위로 왔다. 내 몸 위에 얹혀진 지혜의 몸이 엄청 가볍다. 그런데도 지혜의 가슴 만큼은 묵직하게 느껴진다. 지혜는 가슴으로 내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가슴 만져줘."
"얘는? 잔다며?"

"언니한테 했던 것처럼 나한테도 해봐."
"까불고 있어."



지혜는 내 손을 자기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내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눌려서 옆으로 삐져나오는 지혜의 가슴을 나는 두 손으로 만졌다. 한동안 내 입술을 빨던 지혜는 내 몸에서 내려와서 바로 누웠다.



"힘들어서 못하겠다."



지혜는 내 손을 가져다가 자기 가슴에 얹고 지긋이 누른다. 나도 지혜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지혜는 원피스 앞에 있는 단추를 열고 내 손을 안으로 넣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지혜의 가슴이 내 손에 잡힌다. 나는 지혜의 가슴을 꼬옥 쥐었다. 지혜는 얼굴을 내게로 돌려서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두 눈을 사르르 감는다.



"지혜야. 우리 이제 자자."
"나도 피곤해."



나는 거실 소파로 나와서 잤다.

아무래도 몸살이 날 지도 모르겠다. 한수정이 앓던 감기 몸살을 내가 가져온 것이 아닐까? 내일은 아침에 회사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데. ..



* * *



아침에 나를 깨운 것은 예상대로 역시 아이린이다. 지혜를 학교에 보내려고 깨우러 갔는데, 애가 방에 없어서 이리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나도 자다가 보니까 지혜가 내 옆에서 자고 있어서 이리로 피난왔어요."

"이따가 출근 시간에 맞춰서 깨워드릴테니까 더 주무세요.
나는 지금 지혜 깨워서 데리고 내려갈께요."

"지혜가 밤에 여기 와서 나랑 자는 것이 좋은지 자꾸 올라오네요.
오늘부터는 내가 내려가서 자든지 해야지."



아이린은 지혜를 깨워서 데리고 내려간다.
나도 아이린이 나중에 깨원준다는 말에 안심하고 더 잤다.




*=*=*=*=*=*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이 너무 바빠서 컴퓨터 앞에 얼씬도 못하다가 오늘에야 글을 써서 급하게 올립니다.
요새는 갈수록 먹고 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지네요.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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