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얘들아...이과에 전학생 한명 왔대...”
“어디서 왔대? 벌써 교실 들어온거야?
“칫....보나마나 뻔하지 ...내신 딸려고 어디서 어중이떠중이 흘러왔겠지 뭐...”
“아니야...성적은 전국 탑이래.....도내 탑도 아니고 전국 탑.....”
“푸흡........야 그게 말이 되냐? 전국탑이 뭐가 좋아서 이런 깡촌엘 와...더구나 고3이.....”
“진짜라니까...나 방금 교무실서 쌤들 하는 말 듣고 온거란 말야....”
“얼굴은? 얼굴은 봤어?”
“아니...교감선생님이랑 면담중이라나 뭐래나....교무주임..이과반 담임...전부 같이 올라가있대..”
“호오~~~꼴보기 싫은 이과년.. 1등 놓쳐 우는 모습이 벌써부터 생생하게 느껴진다....아우 고소해....”
“야 비교할걸 비교해라...그년두 전학생이 자기랑은 비교대상이 아니란거 알겠지 뭐...110점왔다리갔다리 하는 성적으로 항상 180이상이라는 괴물이랑 어찌 비교를 해...양심도 없다..”
“우와 180점? 그게 어느나라 점수래? 그게 가능하긴 한거야? 하아...그정도 되면 진짜 비교대상조차 못되는구나........근데 정말 그런 인간이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대...우리 희정이야 고향이 여기니까 당연하다 여기지만.....희정아 너두 궁금하지?”
“글세...난 그닥......”
“정말 공부만 잘하게 생긴....돋보기안경에 땅딸보 아닐까싶다...”
“에효....걔 인생도 참......취업반 꼴통들한테 또 엄청 시달리겠구만.....쩝..”
“분위기 보니까 쌤들 보호가 엄청날거 같은데...모르긴 몰라도 걔들도 쉽지 않을거야..까딱 잘못 건드렸다간....정말 줄초상날지도 몰라...”
“그 인간들이 어디 그런거 무서워하디? 달리 꼴통들이라 불리냐....난 걔 한달도 못버티고 다시 전학간다에 만원!!!”
“나도!!!!나도 거기에 만원!!!”
“이것들이 정말........나는......나도 전학간다에 만원......”
“야 그럼 내기가 성립이 안되잖아......이게 뭐야...”
“희정아...네가 안간다에 걸어......그럼 되겠다..키키키..”
“..................”
“오케이...희정이는 안간다에 만원!!!!!!우리가 지면 전부 만원씩 토해내고...희정이가 지면...희정양 부자되는거구...”
“깔깔깔.........”
새 학기
고등학교의 마지막이 되는 해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떨어져 있어 그런지...
그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심해져만 갔다.
문과 1반.....이과 1반....취업반 1반이라는 초라한 시골 고등학교의 삶은..
시내 고등학교들의 치열한 면학분위기와는 동떨어져있어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었고..
그곳에서의 중간 겨우 가던 성적이...
이곳에서는 문과내 수위를 다투던 등수로 변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금껏 받아보지 못했던 교사들의 애정어린 눈길과...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다닌다는 안락함은
그런 소소한 당황기마저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몸속을 한바탕 휘젓고 빠져나간 듯한 공허함은...
그때의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 그 자체였고.......
“우와~~~~~~~~#$!#!@$#@!!@[email protected]
“야~~~이게 누구야.........!@#$@!$@[email protected]
“그 새끼들 더럽게 시끄럽네....수업종 쳤는데 저 꼴통 새끼들 왜 안기어들어가고 저 지랄이래...야 누가 나가서 조용히 좀 하라고 해봐봐...”
“진심? 가서 전해줘?”
“당연히 ............농담이지.....키키...근데 정말 왜케 시끄러운거야...저 취업반놈들 오늘 어디 놀러라도 가나?”
“야 아침부터 어딜 놀러가....쟤들도 정규수업은 다 마쳐야 하는 신센데...”
“그럼 뭐해...하루 종일 자는게 일인 인간들인데....”
반갑기 그지없지만...
정말 황망할 수 밖에 없었던 전학생(?)의 등장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학교도 다닐 수 없었을 만큼......
그 무기력감은 날로 심해져만 갔었는데............
취업반...이과반....문과반........
3반 통틀어 70% 이상은 익히 아는 인물......
남..녀.....
꼴통....얼뜨기...공부 좀 하는 인간....
너나 할 것 없이..환영 하던 인물.....
그가 돌아왔다...........
그곳 학교 선생들과....동문회등등의 여러 만류를 무릅쓰고....
내 사랑(?).......
윤민수....................
마침내...
그가 돌아오고야 말았다...
“낮에 어디 갔었어?”
“왜요? 연락했어요?”
“응.....갑자기 시간이 떠서 전화했더니 전화 안받던데...”
“핸드폰으로 하지 그랬어요....언제 했는데요?”
“점심 때 안돼서...핸드폰으로 했는데도 안받길래..”
“아...그땐 수영장에 있을 시간이잖아요....그러고보니 부재중 전화 확인도 못했네..급한 일은 아니었구요?”
“아니야...오전 수술 스케줄이 캔슬되는 바람에....같이 점심이나 하자고 연락했었어..”
“아......그랬구나...아깝다...히...........근데 갑자기 왜 스케줄이 취소된거에요?”
“사망..”
“....................”
“87세 여성 환자...”
“아 혹시...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할머니...그 분이에요?”
“어.....아침에 조용히 가셨어...”
“휴우....그랬구나.....자기 기분 별로겠네요?.....”
“가족들은 좋아하더라......”
“설마요...아무리 그래도......”
“이 짓 하다보면....그런게 눈에 보여.......그래서 더 후회도 들고.....”
“하아...어쩐지..그래서 자기가 평소보다 더 다운돼 보였구나.......”
“그럴 수 밖에 없지 뭐......후우.............”
“위스키라도 한잔 드릴까요?”
“그래줄래?”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내가 얼른 준비해올게요..”
“그냥 술만 따라와.....”
“네...그럴게요.........”
내 품(?)으로 돌아온 사랑....
항상 곁만 맴돌았지만...
우리는 결국 또다시 재회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그러했기에.....
“요즘도 마사지 다녀?”
“네...못가도 일주일에 한번은 가려고 노력중인데.......왜....줄일까요?”
“아니...덕분에 내가 이런 호사 누리잖아..줄일 필요 없어.......”
“.....좋아요?.................”
“괜찮네.....................”
“밑에두 벗을까요?”
“이거 다 마시고...지금은 그냥 이대로가 좋아..”
“그래요...그렇게 해요....하아...”
거실 쇼파에 등을 묻은 채....쓰디쓴 술을 머금어가던 그의 옆을 차지할 수 있었고..
잔을 들지 않은 그의 한 손이..
발가벗겨진 나의 상체를 쓸어오기도 전부터 피어난
이 짜릿한 느낌마저 만끽할 수 있었다.
“웁웁~~~~욱~~~~”
“벅차?”
“욱~~~아니.....아니요.......쭙쭙~~”
“눈물이나 닦고 거짓말 해....”
“정말 괜찮아요....더 깊이 해두......웁웁~~”
더불어...
그의 키만큼이나 거대하고....
잘 벼리워진 칼날의 근육을 보는 듯이 빳빳한...
그 속에 더없이 뜨거운 용암을 머금고 있는 남성을 물어가는 것 또한...
모두 나의 소유일 수밖에 없고 일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기회의 재회....그 시절...
“우와....2년동안 도대체 뭘 먹었길래 저렇게 변한거야....정말 장난 아니다..그치 얘들아..”
“중학교 다닐때랑 많이 변했나봐?”
“아...윤희 넌 민수 모르겠구나....”
“엉....그때랑 많이 달라?”
“아니야...꼭 그렇지도 않아...해를 못봐서 그런지 얼굴은 더 하얘졌고..음...안그래도 잘생겼었는데...지금은 뭐..보다시피 영화배우 뺨치게 빠졌고...아우~~저 키 봐......쟤 보다가 다른 애들은 정말 못봐주겠다야...눈에도 안들어와..”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키키..”
“야...그래도 임자 있는 몸이니까 괜한 생각 마라...”
“희정이?”
“그래...저년도 정말 끈질기긴 해..벌써 몇 년째 짝사랑인지...쯧쯧...”
“희정이가 문제가 아니라...보영이도 난리고...이과반년들 취업반년들 너나 할 것없이...쟤만 쳐다보던데 뭘.....”
“걔들뿐이라면 말도 안한다...1,2학년 어린 년들두 쟤 보려고 안하던 공부한답시고 학교 독서실 주변에서만 논다더라...쩝...”
“덕분에 울 희정이만 몸살 앓는거지 뭐...”
“쉿...희정이 온다...조용히....”
“에혀....윤희야....그냥 하고 싶은말 다 해도 돼....희정이 저게 말은 안해도..우리가 뭔말 하는지...무슨 생각하는지...이미 다 알아요....쟤 이런 생활이 몇 년째라고..?”
“7년?”
“그래 7년....내가 아는것만 7년이고....아마 저년은 젖망울 잡혀 올라올때부터 좋아했을지도 몰라..그럼 10년 가까이 된거니까...이제 이깟일로 쉬쉬하지 않아도 돼...알거 다 안다고...”
“그래두........”
“무슨 얘기를 하길래 그리들 좋아해...나도 같이 해...”
“어서 와......그래 담임이 뭐래?...”
“그냥 비슷비슷해.....수학이 너무 약하다...수능 보기전에 좀 분발해보자..뭐 이런...”
“그 인간 레파토리는 어찌된 게 변함이 없다니..얘나 쟤나...모두 수학이 약하대...우리가 솔직히 수학만 약하나 뭐...외국어 ...언어.....과학...전부 약하지...쒸.....”
“키키키키..하긴......에효~~누군 좋겠다...우리가 약한 모든 과목...강하다 못해...부러질만큼 세서....이그 내 팔자야~~~쩝........”
“민수?”
“그래...저기 보이네...네 사랑 민수......쟤 얘기 중이었어...”
“풉.....사랑은 무슨....”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이년아..열받으면 내가 확 대쉬해서 안겨버린다..”
“키키키....야야야...어디 한번 그 꼴 좀 보자....아휴 ~~생각만 해도 몸살난다 야...얼마나 좋을까...키키...”
“정말 그래봐? 내가 이래뵈두 한번 한다고 하면...”
“응...해봐...”
“희정아!!!!너 정말....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응....해봐..나도 기대돼...”
“에휴~~~이년아 정신차려....보영이년 딱지맞고 찔찔거리는거 보고도 그러고 싶냐..”
“야 ..사람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는거야....누가 알아? 민수가 나같이 푸짐한 애들 좋아할지....”
“키키키키...........퍽이나..........저 야들야들한 보영이년두...예전 생각하고 들이댔다가 저 꼴 났는데....”
“희정아..그러지 말고...1차 수능 끝나는 걸 디데이로 삼아서 뭣 좀 준비해야하는거 아냐?”
“뭔 준비? 아니 그것보다 왜?”
“허어...이년이 끝까지 잡아떼네.....너 정말 민수 안좋아해? 이젠 사랑이 식었어?”
“풉..글쎄요....”
그럴리 없다는 ..
절대 그러할 수 없다라는 외침이...
식도를 타고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던 그 때...
홀로 삭여야만 했던 그 아픔이..
수년의 세월에 또 다른 시간이 겹쳐진다 한들...
절대 변할 수 없을거라..변하지 않을거라 외치고 싶었지만...
운동장 한켠에 서서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던 그의 얼굴이...
그러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상쇄하고도 남았기에...
차마 밖으로 쏟아낼 수는 없었고....
“중간고사도 끝났는데..또 공부?”
“아..희정이 왔구나....”
“저녁은 먹고 하는거야?”
“어...아까 자전거타고 휑~~하니 갔다왔지...그러는 넌....시험도 끝났는데 어쩐 일로 독서실에 왔어..?”
“나도 고3이잖아.....설마 잊은건 아니지?”
“크.....그래...너나..나나...고3.....쩝....잊을수 없지..잊으면 인간도 아니지..키키......”
“몇시까지 하다 갈거야?”
“대중없어...그냥 문닫을때까지...하다 갈까하고..”
“고3에 한해서 1차수능일 전까지 24시간 개방한다는 사실 못들었어?”
“아니...정말 그렇대?”
“응...어제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데....너흰 말안해줬나보구나..?”
“글쿠나...시험 끝나고 책상위에 엎어져 자느라 못들었나부다..좋은 정보 고마워...”
“풉.....그래....옆자리 비었지?”
“옆자리 뿐 아니라...시험 끝나니까 여기 독서실 찾는 인간들 씨가 말랐다..전부 비었어...앉고 싶은데 마음껏 앉아..”
“그럼 난...옆옆....이 자리로 할게...”
“어.......”
그 작은 인내가 맺어준 열매는...
풍성한 가을걷이의 결실로 금세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민수야....”
“...............”
“................”
옆에서 마이크로 노래를 불러도 신경쓰지 않을 집중력...
그런 그의 모습이 나로 인해 방해가 될까싶어...
일직을 서던 선생님의 방문 이후로 나의 입은 더 이상 그를 향해 노래 부를 수 없었고...
그저...
가자미눈을 한 채...
맑디맑은 그의 옆모습만 훔쳐보는 시간만 가져야 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어......응?”
“아까부터 왜 자꾸 곁눈질해......김치국물이라도 묻은거야?”
“아...,아니.......아닌데...안봤어..”
“거짓말하는 인간들 정말 싫어해....세상에서 제일 ..........”
“.........................”
“공부 안되면 그냥 집에가서 쉬어...그게 낫지 않아?”
“아냐...이제 해야지....할게 너무 많아서 뭣부터 해야할지 감이 안와서 그래..”
“옆에 그건 보온병이야?”
“응....오미자차......좀 마셔볼래?”
“아고고고고..............그래........그럼 덕분에 나도 좀 쉬어보자......한잔 줘....많이...”
“푸흡.........”
차갑게 던져지던 그의 한마디로...
그 행복한 시간은 금방 막을 내려야 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따뜻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그 당시의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렵기만 했고...
“돌아온거 후회안해?”
“아니....거기나 여기나...공부하는건 똑같은데 뭐...”
“그래도...분위기는 훨씬 못하잖아...”
“공부가 분위기따라 좌우된다면....그것도 좀 웃기는 일 아니야?”
“..............”
“아...널 나무라자고 한 말은 아니고...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야..”
“응...알어...”
“넌 돌아온거 후회하나봐?”
“아니.........절대 아니야..”
“큭...누가 뭐랬냐....왜 화들짝놀라고 그래...”
“후회.....안해............정말...”
“그래...그럼 된거지 뭐........그나저나 이거 맛있다......”
“한잔 더 줘?”
“너 먹을거 다 뺏어먹었다고 집에가서 욕할려고 그러지?”
“아니야!!!! 이런걸로 무슨........컵 줘봐...따라줄게...”
“차가우면 더 좋겠다....”
“응.........나도 차가운게 더 좋은데.......그럼 내일은 차가운걸로 준비할까?”
“하하하하.......야........말이 좀 그렇다......뭘 준비씩이나 해.....”
“그렇지? 내 말이 좀 .........웃기게 들렸지?”
“응.....좀......”
“..................”
드문드문...
내 속내를 내보인 것 같아 철렁거리던 순간은...
자꾸만 책으로 눈길을 주던 그로 인해 아무일 없었다는 듯 무마되기도 했지만..
“본고사 공부하는거야?”
“응....시험땜에 며칠 쉬었더니......머리 아프다...”
“본고사 준비는 우리학교에서...너가 유일하지?”
“몰라...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다른 애들한테까지 신경쓸 겨를이 있나....우리반에선 미영이가 하는것 같기도 하고...나머지는 못본것 같기도 하다....너희반에는 없어?”
“응....문과는...없지 뭐...”
“넌?...넌 안해?”
“나는 본고사 보는 학교 갈 성적이 못돼...”
“내신 좋잖아.....수능시험 보고 아무데나 되는대로 막 집어넣어보는거지 뭘....”
“풉.....1,2학년때 너무 안좋아서.......그것도 안될걸..”
“흠....그럴수도 있겠다.....그럼 오로지 수능에 올인해야 하는거네.....?”
“그렇긴 한데.....말그대로 글쎄지 뭐...”
나와는 달리...
아니..
어쩌면 나와 같이.....
상대에게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지 않는 것에 익숙했던 그는..
마주하고 있는 나의 생각을 엿듣고 싶어하지도 않아 했고....
그렇게 첫날(?)의 만남은...
유야무야..........
내게 진한 가슴앓이만 던진 채 저물어가고 있었다.
“몇시야?”
“교실 벽시계 멈췄나봐.......지금이.......11시 45분......12시 다 됐어...”
“너 집에 안가냐? 다른 애들은 다 갔는데......너두 얼른 가...”
“넌 몇시까지 할려구?”
“난 늘 똑같지 뭐.....내가 하고 싶을때까지.....”
“머리는 안아파? 그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나는 막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엉덩이 아파....방석을 누가 훔쳐가서.........썅......”
“풉........”
“내 이 도둑놈 걸리기만 해....확......사지를 전부 ”
“도둑놈인지.....도둑년인지.......”
“크......말이 그렇게 되냐?”
“내 생각엔 아마...도둑년일 확률이 99% 이상일듯 해....”
“그 낡아빠진 방석이 뭐가 좋다고......내가 가끔 방귀도 뀌어서 냄새 무쟈게 날텐데....”
“푸하......하하하하하........”
“넌 이 말이 웃겨?”
“응.......아니아니......미안......”
“미안할것도 많다......아오.....엉덩이 종기 돋겠다 진짜.........”
“좀 쉬었다 해......”
“넌 정말 언제 가려고 그래?”
“음.......같이 가.....가는길에 좀 바래다주면 더 고맙구....”
“이게 점점 뻔뻔해지네.......야......너희집까지 갔다가 우리집까지 갈려면...”
“돌아가는거 아니잖아.......”
“킁........그런가? 그런데 너희 집이 어디였지?”
“바래다주면 가르쳐줄게.....”
“에잇 진짜.........나 2시나 돼야 갈건데...그때까지 괜찮겠어?”
“응......네 덕분에 나도 성적 좀 오르고 좋지 뭐....”
“하하하........에휴....그럼 얼마나 좋겠냐만.....쩝......일직 쌤 이제 안오지?”
“응...아마도 그럴거야..보통 11시 넘어서 한번 오시고는.....주무시니까........아까 너 잠깐 화장실 갔을때...다녀가셨어...불 잘 끄고 가라고 하시곤.....”
“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나 화장실 다니는거까지 체크하고 있냐.....?”
“세수 하고 온거....여기 있던 애들 다 봤잖아...”
“어우.......공부 안되니까 점점 히스테리만 늘고.....내가 왜 이러는지......”
“쉬었다 해....쉬엄쉬엄 해두 되잖아...”
“뭐하고 쉬어? 놀아본 놈들이 더 잘 놀고...쉬어봤던 인간들이 더 유익하게 쉰다는데...난 무식해서 그런거 잘 몰라.....우리 뭐하고 쉴래?”
“..........................음........”
“거봐......너두 잘 모르잖아...너도 나랑 비슷한 부류구만 뭘....그치?”
“그냥.....얘기해....수다떨면.....머리도 제법 상쾌해지구...”
“네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나 남자다........”
“...................?”
“수다로는 제대로 된 휴식이 될 수 없는.....”
“아.............그냥....내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이었어..”
“그러지 말고..우리 운동장이나 두어바퀴 돌고 오자.....”
“지금? 이 캄캄한 밤에...?”
“뭐 어때?.......12시 땡!!!!!!공동묘지에서 울려퍼지는 귀신들의 노랫소리 들으며........으흐흐흐.....얼른 일어나...다녀오자.....”
“나 무서워.....그냥 여기 있고 싶어...”
“그럼 혼자 있든가.......난 좀 걷다올게..”
“휴우,...........같이 가!!!!!!!!”
새털같은 날들이....
그보다 더욱 경쾌하게 나의 일상을 스쳐지나가고...
구름같이 들뜨던 나의 마음은...
성큼 다가온 초여름의 날씨만큼이나 상기되어 피어올랐던 둘만의 밤...
언제나 앓던 가슴의 통증은...
그 시간의 묘약으로 인해 느끼지도 못할만큼 희미해져만 갔고...
그래서..
그맘때의 내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기만 했다.
싱그러운 녹음이 뿜어내던 밤공기는...
그와 함께 거닐어 더욱 상쾌하게만 느껴졌었고......
무섭다는 핑계로...
살짝 손에 쥔 그의 긴소매에선....
그 상쾌함의 무게에 한 겹의 청량함까지 더해..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뿜어내는 듯 했으니..
“너 아직도 나 좋아해?”
이 말이 그 어둠속에서 나의 전신을 옭아매오기 전까지는.........
그러 했는데......
“너 나 좋아했잖아....아니야?”
“.........................”
“아니면 말구.............좋구나..........이놈의 공기.......가슴속까지 뻥 뚫리는듯해.......”
“사랑해...”
“뭐?”
“.............”
“뭐 한다고?”
“미안........”
“뭐가?”
“그냥.........전부.......”
“여기 아주 대단한 바보 하나 나셨네......난 바보 싫어해.....”
“...................”
“사랑이 뭔지나 알고 말하는거야?”
“......................”
“날 왜 사랑하냐 물어보면...너무 잔인한건가?”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해?”
“아니.........그건 아닌것 같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그렇지만....사랑한다는 마음은....진심이야...”
“어렸을적부터.....?”
“.....................”
“후우........난 네가 잘 이해가 안돼.....모르겠어...그래서 더...사랑 안해.........”
“민수야.......”
“그만 들어가자....오늘 공부는 끝......바래다줄게....”
“...................”
그러했는데............
그렇지만.......
또 다시.........
그의 걸음은 나의 반대편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있었고.......
“얘들아...이과에 전학생 한명 왔대...”
“어디서 왔대? 벌써 교실 들어온거야?
“칫....보나마나 뻔하지 ...내신 딸려고 어디서 어중이떠중이 흘러왔겠지 뭐...”
“아니야...성적은 전국 탑이래.....도내 탑도 아니고 전국 탑.....”
“푸흡........야 그게 말이 되냐? 전국탑이 뭐가 좋아서 이런 깡촌엘 와...더구나 고3이.....”
“진짜라니까...나 방금 교무실서 쌤들 하는 말 듣고 온거란 말야....”
“얼굴은? 얼굴은 봤어?”
“아니...교감선생님이랑 면담중이라나 뭐래나....교무주임..이과반 담임...전부 같이 올라가있대..”
“호오~~~꼴보기 싫은 이과년.. 1등 놓쳐 우는 모습이 벌써부터 생생하게 느껴진다....아우 고소해....”
“야 비교할걸 비교해라...그년두 전학생이 자기랑은 비교대상이 아니란거 알겠지 뭐...110점왔다리갔다리 하는 성적으로 항상 180이상이라는 괴물이랑 어찌 비교를 해...양심도 없다..”
“우와 180점? 그게 어느나라 점수래? 그게 가능하긴 한거야? 하아...그정도 되면 진짜 비교대상조차 못되는구나........근데 정말 그런 인간이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대...우리 희정이야 고향이 여기니까 당연하다 여기지만.....희정아 너두 궁금하지?”
“글세...난 그닥......”
“정말 공부만 잘하게 생긴....돋보기안경에 땅딸보 아닐까싶다...”
“에효....걔 인생도 참......취업반 꼴통들한테 또 엄청 시달리겠구만.....쩝..”
“분위기 보니까 쌤들 보호가 엄청날거 같은데...모르긴 몰라도 걔들도 쉽지 않을거야..까딱 잘못 건드렸다간....정말 줄초상날지도 몰라...”
“그 인간들이 어디 그런거 무서워하디? 달리 꼴통들이라 불리냐....난 걔 한달도 못버티고 다시 전학간다에 만원!!!”
“나도!!!!나도 거기에 만원!!!”
“이것들이 정말........나는......나도 전학간다에 만원......”
“야 그럼 내기가 성립이 안되잖아......이게 뭐야...”
“희정아...네가 안간다에 걸어......그럼 되겠다..키키키..”
“..................”
“오케이...희정이는 안간다에 만원!!!!!!우리가 지면 전부 만원씩 토해내고...희정이가 지면...희정양 부자되는거구...”
“깔깔깔.........”
새 학기
고등학교의 마지막이 되는 해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떨어져 있어 그런지...
그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심해져만 갔다.
문과 1반.....이과 1반....취업반 1반이라는 초라한 시골 고등학교의 삶은..
시내 고등학교들의 치열한 면학분위기와는 동떨어져있어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었고..
그곳에서의 중간 겨우 가던 성적이...
이곳에서는 문과내 수위를 다투던 등수로 변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금껏 받아보지 못했던 교사들의 애정어린 눈길과...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다닌다는 안락함은
그런 소소한 당황기마저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몸속을 한바탕 휘젓고 빠져나간 듯한 공허함은...
그때의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 그 자체였고.......
“우와~~~~~~~~#$!#!@$#@!!@[email protected]
“야~~~이게 누구야.........!@#$@!$@[email protected]
“그 새끼들 더럽게 시끄럽네....수업종 쳤는데 저 꼴통 새끼들 왜 안기어들어가고 저 지랄이래...야 누가 나가서 조용히 좀 하라고 해봐봐...”
“진심? 가서 전해줘?”
“당연히 ............농담이지.....키키...근데 정말 왜케 시끄러운거야...저 취업반놈들 오늘 어디 놀러라도 가나?”
“야 아침부터 어딜 놀러가....쟤들도 정규수업은 다 마쳐야 하는 신센데...”
“그럼 뭐해...하루 종일 자는게 일인 인간들인데....”
반갑기 그지없지만...
정말 황망할 수 밖에 없었던 전학생(?)의 등장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학교도 다닐 수 없었을 만큼......
그 무기력감은 날로 심해져만 갔었는데............
취업반...이과반....문과반........
3반 통틀어 70% 이상은 익히 아는 인물......
남..녀.....
꼴통....얼뜨기...공부 좀 하는 인간....
너나 할 것 없이..환영 하던 인물.....
그가 돌아왔다...........
그곳 학교 선생들과....동문회등등의 여러 만류를 무릅쓰고....
내 사랑(?).......
윤민수....................
마침내...
그가 돌아오고야 말았다...
“낮에 어디 갔었어?”
“왜요? 연락했어요?”
“응.....갑자기 시간이 떠서 전화했더니 전화 안받던데...”
“핸드폰으로 하지 그랬어요....언제 했는데요?”
“점심 때 안돼서...핸드폰으로 했는데도 안받길래..”
“아...그땐 수영장에 있을 시간이잖아요....그러고보니 부재중 전화 확인도 못했네..급한 일은 아니었구요?”
“아니야...오전 수술 스케줄이 캔슬되는 바람에....같이 점심이나 하자고 연락했었어..”
“아......그랬구나...아깝다...히...........근데 갑자기 왜 스케줄이 취소된거에요?”
“사망..”
“....................”
“87세 여성 환자...”
“아 혹시...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할머니...그 분이에요?”
“어.....아침에 조용히 가셨어...”
“휴우....그랬구나.....자기 기분 별로겠네요?.....”
“가족들은 좋아하더라......”
“설마요...아무리 그래도......”
“이 짓 하다보면....그런게 눈에 보여.......그래서 더 후회도 들고.....”
“하아...어쩐지..그래서 자기가 평소보다 더 다운돼 보였구나.......”
“그럴 수 밖에 없지 뭐......후우.............”
“위스키라도 한잔 드릴까요?”
“그래줄래?”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내가 얼른 준비해올게요..”
“그냥 술만 따라와.....”
“네...그럴게요.........”
내 품(?)으로 돌아온 사랑....
항상 곁만 맴돌았지만...
우리는 결국 또다시 재회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그러했기에.....
“요즘도 마사지 다녀?”
“네...못가도 일주일에 한번은 가려고 노력중인데.......왜....줄일까요?”
“아니...덕분에 내가 이런 호사 누리잖아..줄일 필요 없어.......”
“.....좋아요?.................”
“괜찮네.....................”
“밑에두 벗을까요?”
“이거 다 마시고...지금은 그냥 이대로가 좋아..”
“그래요...그렇게 해요....하아...”
거실 쇼파에 등을 묻은 채....쓰디쓴 술을 머금어가던 그의 옆을 차지할 수 있었고..
잔을 들지 않은 그의 한 손이..
발가벗겨진 나의 상체를 쓸어오기도 전부터 피어난
이 짜릿한 느낌마저 만끽할 수 있었다.
“웁웁~~~~욱~~~~”
“벅차?”
“욱~~~아니.....아니요.......쭙쭙~~”
“눈물이나 닦고 거짓말 해....”
“정말 괜찮아요....더 깊이 해두......웁웁~~”
더불어...
그의 키만큼이나 거대하고....
잘 벼리워진 칼날의 근육을 보는 듯이 빳빳한...
그 속에 더없이 뜨거운 용암을 머금고 있는 남성을 물어가는 것 또한...
모두 나의 소유일 수밖에 없고 일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기회의 재회....그 시절...
“우와....2년동안 도대체 뭘 먹었길래 저렇게 변한거야....정말 장난 아니다..그치 얘들아..”
“중학교 다닐때랑 많이 변했나봐?”
“아...윤희 넌 민수 모르겠구나....”
“엉....그때랑 많이 달라?”
“아니야...꼭 그렇지도 않아...해를 못봐서 그런지 얼굴은 더 하얘졌고..음...안그래도 잘생겼었는데...지금은 뭐..보다시피 영화배우 뺨치게 빠졌고...아우~~저 키 봐......쟤 보다가 다른 애들은 정말 못봐주겠다야...눈에도 안들어와..”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키키..”
“야...그래도 임자 있는 몸이니까 괜한 생각 마라...”
“희정이?”
“그래...저년도 정말 끈질기긴 해..벌써 몇 년째 짝사랑인지...쯧쯧...”
“희정이가 문제가 아니라...보영이도 난리고...이과반년들 취업반년들 너나 할 것없이...쟤만 쳐다보던데 뭘.....”
“걔들뿐이라면 말도 안한다...1,2학년 어린 년들두 쟤 보려고 안하던 공부한답시고 학교 독서실 주변에서만 논다더라...쩝...”
“덕분에 울 희정이만 몸살 앓는거지 뭐...”
“쉿...희정이 온다...조용히....”
“에혀....윤희야....그냥 하고 싶은말 다 해도 돼....희정이 저게 말은 안해도..우리가 뭔말 하는지...무슨 생각하는지...이미 다 알아요....쟤 이런 생활이 몇 년째라고..?”
“7년?”
“그래 7년....내가 아는것만 7년이고....아마 저년은 젖망울 잡혀 올라올때부터 좋아했을지도 몰라..그럼 10년 가까이 된거니까...이제 이깟일로 쉬쉬하지 않아도 돼...알거 다 안다고...”
“그래두........”
“무슨 얘기를 하길래 그리들 좋아해...나도 같이 해...”
“어서 와......그래 담임이 뭐래?...”
“그냥 비슷비슷해.....수학이 너무 약하다...수능 보기전에 좀 분발해보자..뭐 이런...”
“그 인간 레파토리는 어찌된 게 변함이 없다니..얘나 쟤나...모두 수학이 약하대...우리가 솔직히 수학만 약하나 뭐...외국어 ...언어.....과학...전부 약하지...쒸.....”
“키키키키..하긴......에효~~누군 좋겠다...우리가 약한 모든 과목...강하다 못해...부러질만큼 세서....이그 내 팔자야~~~쩝........”
“민수?”
“그래...저기 보이네...네 사랑 민수......쟤 얘기 중이었어...”
“풉.....사랑은 무슨....”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이년아..열받으면 내가 확 대쉬해서 안겨버린다..”
“키키키....야야야...어디 한번 그 꼴 좀 보자....아휴 ~~생각만 해도 몸살난다 야...얼마나 좋을까...키키...”
“정말 그래봐? 내가 이래뵈두 한번 한다고 하면...”
“응...해봐...”
“희정아!!!!너 정말....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응....해봐..나도 기대돼...”
“에휴~~~이년아 정신차려....보영이년 딱지맞고 찔찔거리는거 보고도 그러고 싶냐..”
“야 ..사람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는거야....누가 알아? 민수가 나같이 푸짐한 애들 좋아할지....”
“키키키키...........퍽이나..........저 야들야들한 보영이년두...예전 생각하고 들이댔다가 저 꼴 났는데....”
“희정아..그러지 말고...1차 수능 끝나는 걸 디데이로 삼아서 뭣 좀 준비해야하는거 아냐?”
“뭔 준비? 아니 그것보다 왜?”
“허어...이년이 끝까지 잡아떼네.....너 정말 민수 안좋아해? 이젠 사랑이 식었어?”
“풉..글쎄요....”
그럴리 없다는 ..
절대 그러할 수 없다라는 외침이...
식도를 타고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던 그 때...
홀로 삭여야만 했던 그 아픔이..
수년의 세월에 또 다른 시간이 겹쳐진다 한들...
절대 변할 수 없을거라..변하지 않을거라 외치고 싶었지만...
운동장 한켠에 서서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던 그의 얼굴이...
그러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상쇄하고도 남았기에...
차마 밖으로 쏟아낼 수는 없었고....
“중간고사도 끝났는데..또 공부?”
“아..희정이 왔구나....”
“저녁은 먹고 하는거야?”
“어...아까 자전거타고 휑~~하니 갔다왔지...그러는 넌....시험도 끝났는데 어쩐 일로 독서실에 왔어..?”
“나도 고3이잖아.....설마 잊은건 아니지?”
“크.....그래...너나..나나...고3.....쩝....잊을수 없지..잊으면 인간도 아니지..키키......”
“몇시까지 하다 갈거야?”
“대중없어...그냥 문닫을때까지...하다 갈까하고..”
“고3에 한해서 1차수능일 전까지 24시간 개방한다는 사실 못들었어?”
“아니...정말 그렇대?”
“응...어제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데....너흰 말안해줬나보구나..?”
“글쿠나...시험 끝나고 책상위에 엎어져 자느라 못들었나부다..좋은 정보 고마워...”
“풉.....그래....옆자리 비었지?”
“옆자리 뿐 아니라...시험 끝나니까 여기 독서실 찾는 인간들 씨가 말랐다..전부 비었어...앉고 싶은데 마음껏 앉아..”
“그럼 난...옆옆....이 자리로 할게...”
“어.......”
그 작은 인내가 맺어준 열매는...
풍성한 가을걷이의 결실로 금세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민수야....”
“...............”
“................”
옆에서 마이크로 노래를 불러도 신경쓰지 않을 집중력...
그런 그의 모습이 나로 인해 방해가 될까싶어...
일직을 서던 선생님의 방문 이후로 나의 입은 더 이상 그를 향해 노래 부를 수 없었고...
그저...
가자미눈을 한 채...
맑디맑은 그의 옆모습만 훔쳐보는 시간만 가져야 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어......응?”
“아까부터 왜 자꾸 곁눈질해......김치국물이라도 묻은거야?”
“아...,아니.......아닌데...안봤어..”
“거짓말하는 인간들 정말 싫어해....세상에서 제일 ..........”
“.........................”
“공부 안되면 그냥 집에가서 쉬어...그게 낫지 않아?”
“아냐...이제 해야지....할게 너무 많아서 뭣부터 해야할지 감이 안와서 그래..”
“옆에 그건 보온병이야?”
“응....오미자차......좀 마셔볼래?”
“아고고고고..............그래........그럼 덕분에 나도 좀 쉬어보자......한잔 줘....많이...”
“푸흡.........”
차갑게 던져지던 그의 한마디로...
그 행복한 시간은 금방 막을 내려야 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따뜻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그 당시의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렵기만 했고...
“돌아온거 후회안해?”
“아니....거기나 여기나...공부하는건 똑같은데 뭐...”
“그래도...분위기는 훨씬 못하잖아...”
“공부가 분위기따라 좌우된다면....그것도 좀 웃기는 일 아니야?”
“..............”
“아...널 나무라자고 한 말은 아니고...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야..”
“응...알어...”
“넌 돌아온거 후회하나봐?”
“아니.........절대 아니야..”
“큭...누가 뭐랬냐....왜 화들짝놀라고 그래...”
“후회.....안해............정말...”
“그래...그럼 된거지 뭐........그나저나 이거 맛있다......”
“한잔 더 줘?”
“너 먹을거 다 뺏어먹었다고 집에가서 욕할려고 그러지?”
“아니야!!!! 이런걸로 무슨........컵 줘봐...따라줄게...”
“차가우면 더 좋겠다....”
“응.........나도 차가운게 더 좋은데.......그럼 내일은 차가운걸로 준비할까?”
“하하하하.......야........말이 좀 그렇다......뭘 준비씩이나 해.....”
“그렇지? 내 말이 좀 .........웃기게 들렸지?”
“응.....좀......”
“..................”
드문드문...
내 속내를 내보인 것 같아 철렁거리던 순간은...
자꾸만 책으로 눈길을 주던 그로 인해 아무일 없었다는 듯 무마되기도 했지만..
“본고사 공부하는거야?”
“응....시험땜에 며칠 쉬었더니......머리 아프다...”
“본고사 준비는 우리학교에서...너가 유일하지?”
“몰라...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다른 애들한테까지 신경쓸 겨를이 있나....우리반에선 미영이가 하는것 같기도 하고...나머지는 못본것 같기도 하다....너희반에는 없어?”
“응....문과는...없지 뭐...”
“넌?...넌 안해?”
“나는 본고사 보는 학교 갈 성적이 못돼...”
“내신 좋잖아.....수능시험 보고 아무데나 되는대로 막 집어넣어보는거지 뭘....”
“풉.....1,2학년때 너무 안좋아서.......그것도 안될걸..”
“흠....그럴수도 있겠다.....그럼 오로지 수능에 올인해야 하는거네.....?”
“그렇긴 한데.....말그대로 글쎄지 뭐...”
나와는 달리...
아니..
어쩌면 나와 같이.....
상대에게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지 않는 것에 익숙했던 그는..
마주하고 있는 나의 생각을 엿듣고 싶어하지도 않아 했고....
그렇게 첫날(?)의 만남은...
유야무야..........
내게 진한 가슴앓이만 던진 채 저물어가고 있었다.
“몇시야?”
“교실 벽시계 멈췄나봐.......지금이.......11시 45분......12시 다 됐어...”
“너 집에 안가냐? 다른 애들은 다 갔는데......너두 얼른 가...”
“넌 몇시까지 할려구?”
“난 늘 똑같지 뭐.....내가 하고 싶을때까지.....”
“머리는 안아파? 그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나는 막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엉덩이 아파....방석을 누가 훔쳐가서.........썅......”
“풉........”
“내 이 도둑놈 걸리기만 해....확......사지를 전부 ”
“도둑놈인지.....도둑년인지.......”
“크......말이 그렇게 되냐?”
“내 생각엔 아마...도둑년일 확률이 99% 이상일듯 해....”
“그 낡아빠진 방석이 뭐가 좋다고......내가 가끔 방귀도 뀌어서 냄새 무쟈게 날텐데....”
“푸하......하하하하하........”
“넌 이 말이 웃겨?”
“응.......아니아니......미안......”
“미안할것도 많다......아오.....엉덩이 종기 돋겠다 진짜.........”
“좀 쉬었다 해......”
“넌 정말 언제 가려고 그래?”
“음.......같이 가.....가는길에 좀 바래다주면 더 고맙구....”
“이게 점점 뻔뻔해지네.......야......너희집까지 갔다가 우리집까지 갈려면...”
“돌아가는거 아니잖아.......”
“킁........그런가? 그런데 너희 집이 어디였지?”
“바래다주면 가르쳐줄게.....”
“에잇 진짜.........나 2시나 돼야 갈건데...그때까지 괜찮겠어?”
“응......네 덕분에 나도 성적 좀 오르고 좋지 뭐....”
“하하하........에휴....그럼 얼마나 좋겠냐만.....쩝......일직 쌤 이제 안오지?”
“응...아마도 그럴거야..보통 11시 넘어서 한번 오시고는.....주무시니까........아까 너 잠깐 화장실 갔을때...다녀가셨어...불 잘 끄고 가라고 하시곤.....”
“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나 화장실 다니는거까지 체크하고 있냐.....?”
“세수 하고 온거....여기 있던 애들 다 봤잖아...”
“어우.......공부 안되니까 점점 히스테리만 늘고.....내가 왜 이러는지......”
“쉬었다 해....쉬엄쉬엄 해두 되잖아...”
“뭐하고 쉬어? 놀아본 놈들이 더 잘 놀고...쉬어봤던 인간들이 더 유익하게 쉰다는데...난 무식해서 그런거 잘 몰라.....우리 뭐하고 쉴래?”
“..........................음........”
“거봐......너두 잘 모르잖아...너도 나랑 비슷한 부류구만 뭘....그치?”
“그냥.....얘기해....수다떨면.....머리도 제법 상쾌해지구...”
“네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나 남자다........”
“...................?”
“수다로는 제대로 된 휴식이 될 수 없는.....”
“아.............그냥....내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이었어..”
“그러지 말고..우리 운동장이나 두어바퀴 돌고 오자.....”
“지금? 이 캄캄한 밤에...?”
“뭐 어때?.......12시 땡!!!!!!공동묘지에서 울려퍼지는 귀신들의 노랫소리 들으며........으흐흐흐.....얼른 일어나...다녀오자.....”
“나 무서워.....그냥 여기 있고 싶어...”
“그럼 혼자 있든가.......난 좀 걷다올게..”
“휴우,...........같이 가!!!!!!!!”
새털같은 날들이....
그보다 더욱 경쾌하게 나의 일상을 스쳐지나가고...
구름같이 들뜨던 나의 마음은...
성큼 다가온 초여름의 날씨만큼이나 상기되어 피어올랐던 둘만의 밤...
언제나 앓던 가슴의 통증은...
그 시간의 묘약으로 인해 느끼지도 못할만큼 희미해져만 갔고...
그래서..
그맘때의 내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기만 했다.
싱그러운 녹음이 뿜어내던 밤공기는...
그와 함께 거닐어 더욱 상쾌하게만 느껴졌었고......
무섭다는 핑계로...
살짝 손에 쥔 그의 긴소매에선....
그 상쾌함의 무게에 한 겹의 청량함까지 더해..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뿜어내는 듯 했으니..
“너 아직도 나 좋아해?”
이 말이 그 어둠속에서 나의 전신을 옭아매오기 전까지는.........
그러 했는데......
“너 나 좋아했잖아....아니야?”
“.........................”
“아니면 말구.............좋구나..........이놈의 공기.......가슴속까지 뻥 뚫리는듯해.......”
“사랑해...”
“뭐?”
“.............”
“뭐 한다고?”
“미안........”
“뭐가?”
“그냥.........전부.......”
“여기 아주 대단한 바보 하나 나셨네......난 바보 싫어해.....”
“...................”
“사랑이 뭔지나 알고 말하는거야?”
“......................”
“날 왜 사랑하냐 물어보면...너무 잔인한건가?”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해?”
“아니.........그건 아닌것 같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그렇지만....사랑한다는 마음은....진심이야...”
“어렸을적부터.....?”
“.....................”
“후우........난 네가 잘 이해가 안돼.....모르겠어...그래서 더...사랑 안해.........”
“민수야.......”
“그만 들어가자....오늘 공부는 끝......바래다줄게....”
“...................”
그러했는데............
그렇지만.......
또 다시.........
그의 걸음은 나의 반대편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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