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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5 1,070회 0건





42. 한수정과 지혜 아빠의 비지니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한수정을 안았다. 그런데 한수정은 몸에서 제법 열이 느껴졌다. 말을 시켜보니까 목도 부어있는 것 같다. 한수정이 그 동안 무리를 하다가 긴장이 풀리면서 아마도 감기 몸살이 온 것 같다.

한수정은 이 정도는 별 일 아니라며 괜찮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일요일에는 캐나다로 돌아가기로 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나와 한수정이 지혜의 아빠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이다. 아이린이 우리와 같이 가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한수정이 이 몸으로 갈 수 있을지 염려된다.

나는 아이린을 전화로 불렀다. 아이린은 PC방에 있다가 내 전화를 받고 바로 건너왔다.

아이린은 한수정을 살펴보더니 몇 일 전에 지혜가 아팠을 때와 똑같다면서 지혜가 먹다 남겨둔 약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약을 먹는다고 바로 낫는 것도 아닐텐데, 오늘 지혜 아빠한테 가기로 한 것은 어떡하죠?"

"내가 지혜 아빠한테 사정을 얘기해보고, 저녁에 올 수 있으면 이리로 오라고 할께요.
두 분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세요.
키스도 하지 말고, 태현씨는 되도록 떨어져 있으셔야 해요.
금방 옮아요."

"언니, 죄송해요. 지혜 아빠를 꼭 뵙고 싶었는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일단은 쉬면서 기다려봐요.
나는 지금 밖에 나가서 죽을 사올께요.
호박죽이나 잣죽이면 맛도 좋고, 감기몸살에도 좋대요."

"아이. 언니. 죽 먹고 무슨 힘이 나겠어요?
차라리 나가서 고기를 먹는 것이 어때요? 하하."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고기집이 아직 문을 안 열어요.
그러니까 고기를 먹더라도 저녁에 먹고, 낮에는 죽을 먹어두세요.
그 잣죽은요,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내는 죽이래요."




아이린은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한수정이 샤워를 하겠다며 욕실로 갔다. 나는 말렸지만 한수정의 고집도 역시 만만치 않다.



"열이 40도 가까운데, 샤워를 하면 어떻해?"
"아파도 내 미모는 내가 지켜야 하거든."

"넌 샤워 안해도 충분히 예뻐요.
제발 말 좀 들어라."



그러나 한수정은 샤워를 했다. 그녀는 나와서 옷을 챙겨 입고 화장을 간단하게 한다. 그런데 아이린이 죽과 약을 들고 들어왔다.

아이린은 한수정이 하는 것을 보고 놀라면서 다시 침대에 가서 쉬라고 했다. 그런데 한수정은 차라리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아이린은 한수정에게 우선 잣죽을 먹도록 했다. 한수정이 죽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자 아이린은 호박죽을 또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한수정은 또 한 그릇 다 먹었다. 아이린은 가루약과 알약들이 들어있는 약봉지를 열어서 한수정의 손에 쥐어주고 물 한 컵을 가져온다.



"김태현. 이 약들이 무슨 약이겠어?"

"감기몸살에는 어차피 쉬는 것이 최고일테니까.
신경안정제, 진통제, 아니면 알코올이나 수면제, 해열제, 소화제 뭐 이런 정도가 아닐까?"

"이 약 먹고, 배 아프지 말고, 잠이나 푹 자라 이거네."
"항생제는 없을꺼니까 안심하고 먹어."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모르니? 하하."
"일요일에 비행기 탈꺼면, 알아서 해."

"약 먹어도 낫지 않으면 어쩌지?"
"병원에 가서 왕주사를 엉덩이에 콱 하고 맞어야지."

"돌겠네."
"왜 약을 안 먹으려고 하는데?"

"쓰니까."
"뭐야?
너 진짜 어이없는 애다.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쓰다고 약을 안 먹어?
커피는 써도 잘 마시면서."



나와 아이린은 약을 먹으라고 계속 권했고, 한수정은 결국 약을 먹었다. 아이린은 가게로 간다고 오피스텔을 나갔고,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TV를 켰다. 우리는 사극 드라마를 보기로 했다. 한수정은 내게 몸을 기대온다. 얼굴은 내 어깨에 얹는다.

나는 한수정을 등받이에 기대고 앉게 하고, 물을 적신 수건으로 이마, 뺨 그리고 목을 지긋이 눌러가면서 열이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는 한수정의 종아리와 허벅지에도 미지근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덮었다. 대야에 물을 담고, 수건을 여러 장 갖다가 더워진 수건을 바꿔가면서 계속했다.



"방금 약을 먹었는데, 물수건은 안하면 안돼?"

"약을 먹었다고 해서 열이 금방 떨어지는 것이 아니야.
약이 흡수돼서 작용을 하려면 한두시간 걸려.
또 열이 높을 수록 해열제가 열을 낮추기는 어려워.
그 대신 체온이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막아주니까, 그 체온이 계속 유지가 돼.
이럴 때에는 이렇게 도와주면 열이 떨어져."


"아플거였으면 집에 갔었을 때 아플 일이지.
그랬더라면 우리 엄마 아빠가 엄청 잘 해 줬을텐데.
나는 왜 이렇게 뒷북일까?"

"문제아니까 그렇지."
"그래도 오늘은 태현이 너랑 언니가 있어서 진짜 다행이다."

"좋은 징조야.
환자가 마음을 놓고 안심을 해야 그 때부터 병이 낫기 시작한대요."

"야아. 김태현."
"어?"

"아름다우신 누나께서 이제 슬슬 졸립기 시작한다."
"죽을 두 그릇이나 먹어서 배가 엄청 부를텐데, 잠이 안오면 비정상이거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수정은 하품을 하면서 졸립다고 하면서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갔다. 나도 한수정 옆에 누워서, 한수정에게 팔벼개를 해주고 앞가슴을 토닥거렸다.

한수정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내가 군에서 온 몸에 열이 펄펄 끓으면서 앓았던 때가 떠오른다. 나는 그 때 의무대 침대에서 해열제를 먹고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그 때는 전신 뼈 마디마다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였다.

캐나다에서 혼자 살면서 아플 때에 과연 한수정도 슬퍼할까?

그런데 지금 한수정에게는 슬퍼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지극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을 청하고 있다. 어디 아프다는 곳도 없다. 열 때문에 버얼개진 얼굴을 보니까 오히려 내 마음이 안타깝다.




"아이. 참."
"왜 그래? 어디가 또 안 좋아?"

"그게 아니고 침대에만 오면 생각이 나네. 헤헤."
"아휴. 밝히기는."

"네가 내 몸을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하하."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푹 자.
너한테는 지금 잠이 보약이거든요."

"너는 뭐할껀데?"
"누나 PC방에 가볼께. 이따가 일어나면 전화해."

"전염 될까봐 도망가는구나?
가슴 좀 만져주다가 가."

"그게 아니라 잠자는 네 옆에서 나 혼자 앉아있으면 청승맞잖아."



나는 한수정이 말한 대로 한수정의 옷 위에서 가슴을 꼭 쥐었다. 한수정의 손이 내 손등에 가볍게 얹힌다. 잠옷이 얇고 또 브래지어가 없어서 그냥 탱탱한 맨살의 느낌이 들었다. 가슴을 이쪽 저쪽 번갈아 가며 만지는데 반응은 엉뚱하게도 내 몸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한수정은 잠이 들었다.


나는 한수정의 전화기를 머리맡에 놓아주고 PC방으로 갔다. 아이린이 웃으며 한수정이 잠들었느냐고 묻는다.



"방금 잠들었어요."
"당연하지. 내가 두번 먹을 약을 한 번에 먹게 했거든."

"그럼 약간 심한 것이 아닐까요? 수면제가 있을 텐데."

"수면제는 저녁 약에 있을 거야.
낮에 먹는 약에는 진통제나 안정제 정도?
하긴, 그것들도 수면제 역할을 하기는 한다더라."

"남은 약이 많이 있어요?"

"주말이랑 공휴일이 끼어있어서 5일분을 받아왔는데,
얘는 딱 하루분을 먹더니 더 이상 안 아프다면서 안 먹었어요."

"오늘 저녁에는 술을 마시게 해서라도 내일 아침 늦게까지 푹 재워야겠죠?"
"글쎄? 술은 어제 저녁에도 마시지 않았어요?"

"글쎄요. 맥주 한 두잔 정도 마셨나?"



나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고 또 게임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세시간 정도 후에 한수정이 일어났다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와 아이린은 죽을 사서 들고 내 오피스텔로 올라갔다.

아이린은 한수정의 이마에 손을 짚어보며 물었다.



"자고 나니까 좀 어때요?"
"그냥 그래요."

"아직 열도 그대로이고, 목소리도 그대로네.
괜찮아지려면 아직 멀은 것 같다."

"또 죽 먹어요?"

"딱 한 번만 더 먹으면, 저녁에 고기 먹으러 가도 돼요.
그런데 몸이 이 정도로 아플 때에는 고기보다 생선이 더 좋을텐데."

"나 회도 잘 먹어요."

"이 죽을 먹고, 약도 먹고, 한번 더 푹 자요.
그리고 나서 횟집에 가요."

"알았어요."

"차라리 지금 이렇게 태현씨 옆에서 아픈 것이 낫지 않아요?
여기서 건강하게 있다가 캐나다에 가서 혼자 있으면서 아프면 서러울 것 같은데."

"언니 말이 맞아요.
차라리 여기서 아프고, 어리광도 좀 부리고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헤헤."



아이린은 마치 어린애를 달래듯이 한수정을 달래서 죽을 먹게 한다. 한수정은 나중에 약도 먹었다.



"지혜 아빠가 저녁때 이리로 오겠대요.
미리 푹 자두고, 나중에 회도 먹고, 술도 마셔요."

"알았어요. .. 언니, 너무 고마워요."
"아니야. 빨리 좋아져서 우리 지혜 공부하는 것을 더 봐주고 가세요. 하하."

"하아. .. 지혜. .. 그럴께요."



아이린이 한수정에게 쏟는 정성이 마치 엄마가 지혜에게 하는 것 같다. 아이린은 다시 PC방으로 갔다. 그런데 한수정은 침대로 갔지만 자려는 기색이 전혀 없다.




"내가 잠팅이도 아니고, .. 무슨 잠을 이렇게 몰아서 잔대?"

"원래는 지금 감기몸살이 엄청 더 심해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네가 약도 먹고, 잠을 푹 자는 바람에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잖아?
감기몸살은 잘 먹고 잘 자면 낫는다니까."

"낮에 이 정도로 많이 자면, 밤에 잠이 오겠냐?"
"그래도 넌 아프니까 잘껄?"

"하긴. .. 잠은 안 와도 상관 없겠다.
너랑 할 일이 있으니까. 헤헤."

"너, 자꾸 그럴래?"
"그래. 그럴꺼다. 왜? 하하."



한수정은 웃으며 내 손을 자기 가슴으로 가져갔다.



"만져줘."
"그 대신 가슴만이야."

"키스는 안 해줄래?"

"그럼 나한테도 당장 옮을껄?
나랑 같이 아프고 싶니?"

"네가 그래 주면, 나야 고맙죠.
우리 나란히 누워서 같이 앓자. 헤헤."

"완전 도둑놈 심뽀네."
"감기몸살은 사랑하는 사람이 가져가야 낫는다던데 .."

"끝까지 낫지 않고 너를 괴롭히면 내가 가져갈께."
"말이라도 고맙다."



한수정은 원피스 잠옷의 앞에 있는 단추를 모두 풀고 내 손을 잠옷 안으로 넣었다. 나는 한수정의 잠옷 속에서 맨살의 가슴을 한참 동안 어루만졌다. 그런데도 한수정은 잠들 생각을 안 한다.

나는 아까처럼 대야에 물과 수건을 가져다가 이마, 뺨, 목, 그리고 다리까지 물수건으로 감쌌다. 물수건은 금방 더워지기 때문에 계속 바꿔주었다.



"지혜 아빠가 우리를 무슨 일로 보자고 한다고?"
"몬트리올에 캐나다 법인 설립한다면서 뭐라고 하던데."

"그럼 영어랑 불어 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네.
태현이 너 정도면 될텐데."

"너는 토론토에 있고, 너도 제법 하잖아?"

"에이. 네가 여기 있으면 나도 빨리 해치우고 와야지.
그런 일 해가면서 하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리고, 잘 안나오고 .."

"주말에 가서 조금씩 하는 일이면 안되나?"

"큰 회사 같으면 몰라도, 이제 설립한다며?
그런 회사에서는 주말에 조금씩 일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을꺼야.
차라리 최박사님이 어떨까?"

"누구? 최박사? 최박사가 누구야?"

"나 어렸을 때 과외샘.
그 언니 때문에 내가 지금 토론토에 있잖아."

"그 언니도 지금 토론토에 있니?"

"여기서 우리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에도 다녔거든.
박사학위는 토론토에서 했고, 지금은 토론토에서 은행에 다녀.
이번 8월, 9월에는 서울에 와서 있겠다고 했는데 이따가 한번 연락이나 해봐야겠네."

"그 정도 스펙이나 경험이면 지혜 아빠한테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이따가 지혜아빠 오시면 얘기나 들어보자.
둘이 사이는 좋아?"


"바보. .. 나한테 잘 못해주는 사람은 없어.
우리는 완전 친자매처럼 이웃에서 가깝게 지내.
물수건 고만하고 가슴 만져줘.
이제 잠이 올 것 같다."

"아까는 가슴 만지니까 잠이 잘 안 온다며?"

"잠이 오려고 할 때 만져주면 더 잘 오는 것 같던데?
이번에는 젖꼭지까지 같이 만져줘."



한수정의 말 대로 나는 젖꼭지를 두 손가락으로 잡고 마찰시킨다. 또 두 손가락으로 잡고 지긋이 누르면서 돌리기도 한다.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함몰시키기도 하고 또 젖꼭지를 뽑아내듯이 당겨올리기도 했다. 나중에 젖꼭지가 부풀어 올라서 제법 커볐을 때에는 한 손가락을 세워서 유륜을 따라서 회전시키며 젖꼭지의 옆부분을 살짝씩 접촉시키기도 했다.

한수정은 잠 잘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다. 한수정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몸을 비틀기도 했다. 내 손을 잡은 한수정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젖꼭지와 가슴을 만지는 사이에 내가 곤란한 입장에 처해버렸다.



"그런데 너 왜 안자는거야?"
"이렇게 가슴을 만져주는데, 너 같으면 잠이 오겠어?"

"만져주면 잠이 온다며?"
"이번에는 안오네."

"돌겠다. 완전 제 멋대로구만."
"잘 때 젖 만져주는 것은 나도 지금이 처음이라서 잘 몰라. 헤헤."

"그럼 손을 옷 밖으로 뺀다?"

"완전 치사하네.
그럼 나 잠 안자고, 일어나서 옷 입고 밖에 나갈꺼다."

"지금 협박하니?"
"네가 치사하게 나오니까."

"손 안 뺄테니까 빨리 자."



잠을 안 자려고 바둥거리던 한수정은 드디어 잠이 들었다. 아이린이 아마도 또 약 두 봉지를 한꺼번에 먹인 것 같다.

그런데 한참 후에 아이린이 도시락을 들고 와서 나와 함께 먹었다. 식사 후에 아이린은 PC방으로 가고, 나는 한수정 옆에 누웠다가 나도 잠이 들었다. 두 시간쯤 지나서 한수정은 잠에서 깨어나고, 나도 일어났다.



"죽 두번, 약 두번 먹고, 잠도 두번 잤거든.
내가 인간으로서 오늘 할 일은 다 했겠지? 하하하."

"얘가 먹고 자는 것으로 얘기하네.
너 돼지냐?
네 의무는 건강을 되찾는거야.
아직도 아프면 한참 멀었지."



한수정은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또 샤워한다며 욕실로 가고, 나는 침실을 정리했다. 한수정이 열은 제법 내린 것 같다. 나중에 우리는 PC방에가서 게임을 하고 놀았다.

아이린이 와서 한수정을 불러다가 죽을 먹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수정은 울것 같은 표정을 하고 제발 봐달라면서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아이린은 한수정에게 약만 한번 더 먹게 하고, 지혜를 데리러 간다며 PC 방을 나섰다. 나와 한수정도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지혜가 올라와서 한수정에게 같이 공부하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나서서 감기몸살 옮는다면서 나랑 하자고 했다. 그러나 지혜는 나를 거부하고 내려갔다.

저녁 아홉시가 거의 됐는데 아이린이 내게 전화를 해서 지혜의 아빠가 새엄마와 함께 횟집에 도착했다고 했다. 아빠가 오신다니까 지혜도 경식이도 모두 내 오피스텔로 왔다. 지혜는 우리를 데리고 횟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이린은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아이린에게 전화를 했다.



"먼저 가서 먹고 있어요.
이따가 9시에 교대하는 것을 보고 갈께."



지혜가 한수정을 자기 아빠와 새엄마에게 소개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 회가 가득 담긴 엄청나게 큰 접시를 거의 비울 정도까지 먹었다. 지혜 아빠, 나 그리고 한수정은 소주까지 곁들여가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새엄마는 운전한다면서 술은 마시지 않았다. 지혜와 경식이도 이상하게 술을 마시겠다고 하지 않는다.

경식이가 아빠에게 더 먹어야 한다고 해서 조금 작은 접시로 또 한번 주문했다. 그제서야 아이린이 왔다. 아이린도 소주를 마시면서 회를 먹었다. 그제서야 경식이가 말했다.



"회는 소주 없이 먹으면 기생충 때문에 건강에 안 좋다는데요?"
"아빠, 경식이 말이 진짜야. 인터넷 신문에서 나도 읽었어."



아이린은 지혜와 경식이에게 딱 한잔씩이라면서 소주를 따라주었다.



지혜 아빠가 한수정에게 물었다.



"한수정씨라고 했죠?"

"예. 그냥 수정이라고 부르시고, 말씀 놓으십시오.
제가 오히려 거북하고 불편합니다."

"그럼 그래도 될까?"
"감사합니다."

"지금 토론토 대학에 있다고?"
"학부 5학년과정에 있습니다."

"영어와 불어를 한다고 들었는데."
"퀘벡 대학교 몬트리올 캠퍼스에서 불어로 공부했습니다."

"그럼 토론토 대학에 다닌다는 말은?"
"5학년만 건축법, 건축 실무 그리고 졸업 논문만 토론토대학에서 이수합니다."

"지혜 엄마가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우리가 미국 지사를 나누게 되는데, 하나를 캐나다에 열기로 결정했어요. 아직 몬트리올이 될지, 해밀턴이 될지는 미정이지만 지금 조사중이니까 이달 안으로 결정 나요."

"네."
"한수정씨가 혹시 현지에서 우리 회사에 와서 법인 설립 실무 과정을 도울 수 있을까요?"

"저보다는 최은희 박사님이 적임자 같은데, 제가 최박사님을 추천하면 안될까요?"
"어떤 분이죠?"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대학과 대학원은 대한대학에서 했습니다. 토론토 대학에서 MBA 와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 했습니다. 지금은 토론토에 있는 맥꼴은행에서 근무합니다."

"흐으음... 토론토 대학이면 로트만 스쿨에서 하셨겠군. 거기는 세계 MBA 랭킹 20번째 정도되는 빵빵한 경영학입니다. 최박사님이 한수정씨랑은 어떤 사이죠?"

"그 분이 서울에서 학부에 다닐 때,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분이 제 과외선생님이셨습니다.
지금도 토론토에서는 이웃에서 살고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방학때 그분을 따라서 토론토에서 방학을 두 번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제가 과학고에 간 것이나 캐나다에 간 것도 그 분께서 어려서부터 이끌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언니한테 그냥 과외샘이 아니라 완전 인생의 멘토네."
"지혜 말이 맞습니다. 나중에 결혼식 때 주례도 부탁할 생각입니다."

"으으음. .. 한수정씨는 공부 끝나면 어쩔 생각이죠?"

"제일 좋은 것은 김태현이 건너오고 제가 거기서 대학원에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태현은 대한대학을 졸업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고민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내년에 일단 들아와서 있다가, 나중에 태현이가 졸업하면 같이 나갈까 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아직 태현이와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내 생각은 최박사님, 한수정씨 그리고 김태현씨 이 세 사람이 트리플로 같이 일해준다면 환상적일 것 같은데 .."



이때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혜가 껴들었다.



"아빠가 언니랑 오빠를 욕심내는 이유는 과학고출신에 대한대라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학벌도 학벌이지만 능력이 더 중요하죠.
태현씨가 지혜 너를 데리고 공부시키는데, 이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니잖니? 하하하."

"아빠가 역시 사람 보는 눈이 확실하네.
그런데 아빠도 프린스턴에서 박사했잖아? 경영학 박사, 맞지?"

"지혜야. 경영학이 아니고 경제학이라니까.
벌써 몇 번을 말해줘도 계속 틀려?
경제학, 경영학을 구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니?
태현씨가 이런 너한테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면서 성과를 만들어내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하하하."

"쏘리, 쏘리. 경제학 박사님.
그런데 그거나 그거나 그게 그거 아냐? 헤헤."


"우리 제일 그룹은 미국에 지사가 있거든.
이 미국 지사가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일을 하려니까 일이 너무 많아졌어.
그래서 이번에 미국 지사에서 두 개를 독립시키려고 계획중이야.
하나는 캐나다에, 또 하나는 브라질에.
우선 캐나다에 먼저 해서 성과를 봐가면서,
그 다음에 중남미로 내려가려고 계획중이거든."


"부족한 제가 힘이 된다면, 기꺼이 일을 하겠지만,
저는 건축과라서 회사 업무랑은 거리가 좀 멀거든요."


"우리는 과를 가리지 않아요.
대학 졸업, 언어구사 능력, 현지의 사람과 문화를 이해할 것.
이 세가지면 돼요."


"그럼 제가 지금 일단 최박사님과 연락을 해볼까요?"
"지금 당장?"

"아마 지금 한국에 계실겁니다."
"한수정씨 출국이 언제지?"

"일요일 비행기인데, 지금 감기 몸살이라서 늦춰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이 늦은 시간에 결례를 범하지 말고, 차라리 내일 해요."

"하루 늦춰서 좋을 일도 별로 없고,
언니랑 나랑은 결례라는 것이 없어요.
언니가 새벽 네시에 애 방에 와서 같이 와인도 마시는데요?"

"그럼 만나서 얘기를 먼저 해봤으면 좋겠는데."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한수정은 전화기를 들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지혜 아빠가 나와 아이린을 보고 말했다.



"우리는 애들 공부시켜달라고 과외 선생님으로 태현씨를 모셔왔는데,
비지니스가 이렇게 발전적으로 전개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어.
지혜 엄마는 자기가 데려온 대학생이 누구인지를 알고 데려오지는 않았겠지?"

"나는 지혜랑 경식이가 하라는 대로 한 것 뿐인걸요."


"아빠, 아들 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회랑 소주가 생긴다. 몰라? 하하하"
"저 순 엉터리. 막 갖다 붙이는 것 봐요. 소름끼친다. 하하하."



한수정이 자리로 돌아왔다.



"제가 감기몸살로 아프다고 하니까, 언니가 당장 이리로 오겠대요.
제가 오라고 했더니 10분 후에 출발하겠대요.
언니가 여기에 오면, 만나시겠어요?
아니면 약속을 따로 잡을까요?"

"이 기회에 만나는 것이 좋지.
번거롭게 따로 약속을 잡을 필요는 없어요."
그럼 .. 애들은 들여보내고, 당신도 먼저 가요."

"싫어. 조금만 더 같이 있자.
아빠가 다른 자리로 가서 만나면 안돼?
저쪽 구석에 빈 자리 많거든요."

"그럼 그럴까?
지혜 너도 그 분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엄청 궁금하구나?"

"당연하죠. 이대로 들어가면 나 오늘 잠 못자요."


아이린은 경식이가 자야한다면서 경식이를 데리고 나갔다. 경식이는 가기 싫어했지만, 마치 끌려가듯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아이린을 따라갔다.

가족끼리 웃고 떠드는 사이에 벌써 4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수정은 피곤한 눈치가 전혀 없다. 아이린은 경식이를 들여보내고 다시 돌아왔다.



"언니예요. 근처에 왔나봐요."



한수정이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서전무의 얼굴이 긴장모드로 바뀐다.
지혜의 얼굴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다.
새엄마와 아이린은 아까부터 둘이 뭔가를 소근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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