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미녀랑 산다는 것이 뭔지 모를꺼야.
열차가 플랫홈에서 멈추고 자동문이 활짝 열린다. 나도 한수정도 열차에서 내려서 사람들의 흐름 속으로 묻혀 들어간다. 한수정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출구에서 우리 엄마가 기다리셔."
그런데 내 전화기에서 진동음이 난다. 최수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수정이 웬 전화냐고 발끈한다.
"뭔데?"
"회사야. 받아야 해."
"쉬는 날 아냐?"
"내가 쉬는 날이야. 회사는 아니고 .."
시간은 오후 4시 반. 최수희는 아직 퇴근 전이다. 지금 아마도 보고서를 써야 하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희 누나!"
"자기야, 어떡해?"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방효은이 잠수타네."
"뭐야? 이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게 문제가 아니고, 우리는 이거를 전산 시스템으로 돌릴 줄을 모르는데."
"이러언. .. 대형사고네."
"과장님 지금 엄청 열받아서 당장 자기를 잡아오랜다."
"어? 나 지금 부산에 막 도착했는데.. 어쩐다?"
"지난 주에 부산에서 휴가 보내지 않았나?"
"외국에서 유학파가 들어왔거든."
"어머머. .. 그럼 캐나다에서 자기 여친이 들어온거니?"
"응. 지금 걔네 집에 가려고 열차에서 막 내렸어."
"난리네. 자기 안 나온 것도 다 들통나고 .. 히히."
"내가 지금 여기서 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차를 타도 여덟 시 전에는 회사에 못 들어가는데?"
"자기야, 알았으니까 그럼 일단 전화 끊고 기다려봐."
통화하는 사이에 우리는 이미 출구를 빠져 나와 있었다.
한수정은 벌써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겨있다.
나도 통화를 끝내고 그들에게로 갔다.
청바지에 하얀 남방의 수학 선생님이라는 수정이 아빠.
검은 스커트에 칼라풀한 블라우스의 역사선생님인 수정이 엄마.
외모에 관한 한 한수정은 분명 수정이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
혹시 한수정 아빠가 돈이 엄청 많은 집안일까?
그는 혹시 대입 수학의 최강인가?
아니면 결혼 전에 미리 사고를 쳐서 혼전임신이라도?
도대체 한수정 엄마는 무슨 이유로 한수정 아빠와 결혼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하긴. 한수정도 나 같은 남자한테 덤벼드는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니까.
엄마나, 딸이나, 미녀들은 남자 고르는 안목이 하나같이 왜 이럴까?
"우리 엄마, 아빠셔. .. 김태현 알지?"
"처음 뵙겠.. 아닌데? 전에 고등 학교 때 뵌 것 같은데요? 김태현입니다."
"맞다.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하네. .. 우리 고1때, 엄마 아빠 학교에 와서 만난 적이 있어."
"자네가 그 유명한 외계인인가? 하하하."
"오느라고 수고했어요."
"잠시만요. 수정아 나 좀 보자."
나는 수정이에게 회사의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수정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래서, 지금 이 길로 다시 올라간다는 말이니?"
"그래도 늦어. 비행기로 가도 안돼."
"내일 해주면 안되나?"
"우리 보고서를 매일 감사팀으로 넘겨주는 것이라서 .."
"그럼 그 동영상 파일을 편집이라도 하는 거야?"
"그러면 좋지만, 안 그래도 괜찮아."
"그럼 원격조정을 하든가, 아니면 영상통화로 하면 안돼?"
"인트라넷이라서 접근이 안되니까 원격조정은 안되고 .. 영상통화로 될까?"
"정 안되면 전산실로 넘겨주면 간단하게 해결되겠구만. 그럼 안돼?"
"영상통화로 해볼께. .. 아아. .. 이 누나들 완전 컴맹들이라서 장난 아닐텐데."
"집으로 갈까? 아니면 PC방으로 갈래?"
"PC방은 쫌 그렇고 .. 일단 집으로 가자."
그런데 강은영 과징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한수정에게 과장님 전화라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한수정은 부모님께로 가서 회사가 나 때문에 비상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서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고 강과장과 통화를 했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어쭈? 죄송이면 다야?
방효은은 잠수.
김태현은 도망.
너네들 지금 날더러 과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말이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제가 있는 곳은 부산역이니까 당장은 안되거든요.
일단 집에 도착하면 영상통화로 해결하도록 할께요."
"집에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데?"
"넉넉잡고 한 시간이면 도착해요."
"그리고 너 말이야. .. 야, 김태현!"
"예."
"내가 너한테 뭐 섭섭하게 한 것 있니?"
"전혀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캐나다에 있는 여친이 왔으면 그렇다고 나한테 말을 했어야죠.
그걸 최수희씨랑 둘이 짜고 나한테는 왜 숨기는데?
하루도 못 가서 들통날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야.
돌대가리들 같으니라고."
"과장님누나, 엄청 죄송요.
일단 집에 가서 빨리 어떻게든 손을 써볼께요.
누나과장님 열 안받고 무사히 퇴근하시게 할께요.
"요게, 그냥, 콱!
이 판국에 어딜 또 애교야?
그 일이 해결 될 때까지는 총무과 전원 야근 걸었으니까 알아서 해."
"와아아 .. 누나아아아!"
"과장님이야!"
"과장니이이임!"
"누나라며?"
"돌겠네."
"너는 돌겠지? 우리는 속이 시커멓게 타서 미친다."
강과장의 화가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다.
우리는 통화를 끝냈다.
방효은이 회사를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줄을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한수정에게로 갔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이 휴가 바로 다음주라서 회사에 말을 하지 않고 살짝 도망을 나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대형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이 난리네요."
"방금 수정이한테 들었어.
우리 수정이가 그렇게 좋았나? 하하."
"일단 집으로 가야 한다며?
그럼 식당 예약한 것은 취소해야 하나?"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전혀 없습니다."
"하여간에.. 이 외계인. .. 참나."
"살려줘."
"누가 죽인대?"
우리는 부산역 광장으로 내려왔다.
한수정 아빠가 차를 가져와서 우리는 모두 그 차에 탔다.
나는 수정이와 뒷자리에 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화상통화로 해결할 일이 너무도 꿈만 같다.
그런데 최수희가 카톡을 보냈다.
"방효은 하루 종일 전화기 꺼져있고,
자기랑 통화하고 나서 과장님 화가 쫌 풀린 것 같다.
뭐라고 했어?"
"누나 혹시 전산실에 친한 사람 없어?"
"딱히? 거기는 내 구역이 아니거든."
"알바생 중에 이경숙 아직 있어요?"
"응. 아직 퇴근 전."
"이경숙도 오늘 야근 해요?"
"노. .. 알바생들은 칼퇴근."
"이경숙 야근하라고 해봐요."
"콜. 기다려."
한수경은 옆에서 카톡 대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최수희가 누구야?"
"우리 팀장."
"이경숙은?"
"알바생. 얘가 컴퓨터를 조금 다룰 줄 알거든."
최수희는 이경숙이 야근을 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나는 이경숙과 연락을 해서 카톡으로 한가지씩 해결하기로 했다.이 경숙은 컴퓨터로 가서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나와 카톡을 하기로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우선 우리 카메라에 들어있는 칩을 꺼내서, 컴퓨터에 연결되어있는 리더기에 꽂고, 읽어서 컴퓨터로 저장을 한다. 그 중에서 필요한 동영상 파일을 찾아서 보고서에 첨부파일로 연결 시키면 끝이다. 이 작업이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이라고.
방효은은 지금까지 자기 혼자 이 일을 하고 있다가 잠수를 타버렸다. 그런데 이 I.T. 강국에 있는 나라마트의 총무과에는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거실에 앉았고, 한수정은 엄마와 함께 주방에서 과일 접시를 들고 온다.
"오빠, 경숙이에요. 준비 됐어요."
"카메라 3대 전부 다 전원에 연결돼있지?"
"예."
"메모리 카드 어디 있는 줄은 알아?"
"모르는데요."
"그럼 한대만 들고 밑에 보면 화살표가 보일꺼야. 거기를 살짝 누른 상태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밀어."
"뚜껑 열렸어요."
"메모리카드 꽁무니가 보일꺼야. 손가락 끝으로 살짝 눌러."
"튀어나왔어요."
"그거 리더기에 꽂아."
"넣었어요."
"컴퓨터 화면에서 [컴퓨터]로 보면 이동식 디스크로 인식 될텐데."
"드라이브 [G:]?"
"더블클릭."
"파일이 전부 17개인데."
"그거 [컴퓨터]에 드라이브 [C:]에 [경숙_01] 폴더 만들고 그리로 옮겨."
"하는중."
"두번째 카메라는 [경숙_02] 폴더로, 세번째 카메라는 [경숙_03] 폴더로"
"그 다음은요?"
"보고서 에 있는 내용을 보고 그 파일을 찾아서 거기에 링크 시켜."
"링크 시킬 줄 모르는데."
"그럼 파일 이름 적고, 파일을 USB에 복사해서 갖다 줘. 링크는 다음에 해준다고 해."
"알았어요. 해볼께요."
"USB는 수희 누나한테 달라고 해."
"도망가지 말고 끝날 때까지 기다려요."
옆에서 보고 있던 한수정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쉰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안 그래?"
"그러게. 넌 내일 올라가서 링크시키는 것을 해야겠네?"
"전산과 직원한테 부탁해보려고."
"너 나중에 이경숙한테 단단히 한턱 쏴야겠네?"
"왜 내가 쏘냐? 그것은 팀장이 알아서 해야지."
"우리 밥 먹으러 나갈 시간이야."
"가자. 나머지는 밥 먹으면서 해도 돼."
한수정 아빠는 우리를 차에 태워서 송정 해수욕장이라는 곳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처음 와보는 곳인데, 조용해서 좋다.
우리는 해물탕을 주문했다.
한수정 아빠는 차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와 한수정 엄마 그리고 한수정은 소주를 마셨다.
한수정 엄마는 혼자서 소주 한 병을 거뜬하게 마신다.
나와 한수정은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한수정 엄마가 나와 한수정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더니, 한수정에게 말했다.
수정 엄마 : "나는 아빠랑 결혼했는데, 너는 김태현이랑 결혼할래?"
수정 : "엄마도 참.
우리 나이가 몇인데, 무슨 결혼 얘기를 벌써 해?"
수정 아빠 : "너희는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었어?"
수정 : "글쎄? 그럼 이 참에 함 생각해 볼까?
에이.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나랑 태현이랑은 고등학교 동창에 대학 입학 동기일 뿐이거든요."
한수정 엄마는 또 한잔을 비운다.
나는 그녀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른다.
수정 엄마 : "만나다 보면 금방이야.
어쩌다 보면 드레스 입고 결혼하고,
또 어쩌다 보면 배부르고, 애 낳고,
애 키워놓으면 늙었고 ..."
수정 : "하아. .. 걱정 마세요.
우리는 아직 할 일이 엄청 많거든요."
수정 아빠 :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결혼해서 애 낳고 애 키우는 일 말고는 실속있는 일이 없어."
수정 엄마 : "이 나이 먹으니까, 나한테 남은 거라고는 한수정밖에 없잖아."
수정 : "그런데 엄마는 지금이라도 내가 후딱 시집이나 갔으면 좋겠어?"
수정 엄마 : "나야 싫지. 늙어 죽을 때까지 나는 너랑 살고 싶지."
엄마가 한 이 말에 한수정은 두 눈이 동그래지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수정 : "엄마! 김태현도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늙어 죽는다는 그 말을 꼭 해야겠어?"
수정 엄마 : "야아. 말이 그렇다고.
이제 앞으로 두고 봐라. 세월 진짜 빠르거든요. 금방이다."
수정 : "뭐가 또 금방이라는 거야?"
수정 엄마 : "나 늙어 죽는 것 말이야."
수정 : "엄마! 진짜. .. 엄마 지금 술 취했어?"
수정 엄마 :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취할 만큼 마시기라도 했니?
그러니까, 몇년만에 한국에 왔으면 엄마한테 먼저 와야지,
어쩌자고 김태현한테 먼저 갔어?"
수정 : "그게 그렇게 엄마 가슴에 맺혔어?"
수정 아빠 : "맺히기만 해? 이번 일은 네 엄마가 두고두고 안 잊어먹을꺼야. 하하하."
한수정 엄마는 나를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수정 엄마 : "하아. .. 그런데 오늘 김태현을 실물로 보니까 우리 수정이가 그럴 만도 하네."
수정 : "왜?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수정 엄마 : "김태현씨가 인물 하나는 참 잘 생겼다고."
수정 : "엄마도 참 .. 내가 얘 인물 보고 이러는 줄 알아?"
수정 엄마 : "하긴.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 얼굴만 쳐다보고 살 것도 아닌데 .."
수정 : "엄마. .. 정 할일 없으면 신랑 얼굴이라도 쳐다보고 살아야죠. 헤헤."
수정 아빠 : "그건 나중에 늙어 꼬부라져서 얘기야.
그 때 되면 .. 지금 잘생긴 얼굴이 그때 가서 무슨 소용이겠니?
쭈글쭈글 쪼그라들면 다 마찬가지인데."
수정 : "아냐. 김태현은 늙어도 주름살 생기면 절대로 안돼.
생기는 주름살마다 내가 전부 보톡스로 콱 없앨꺼야."
수정 아빠 : "그런데 그게 어디 한두개라야지."
수정 : "생기는 즉시, 내 눈에 띄면, 무조건, 그날 그 시간 부로, 바로 보톡스야."
한수정의 단호한 이 말에 내게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수정은 고집스러운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고 엄청 진지하다.
한수정 아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기 딸 한수정을 쳐다본다.
수정 아빠 : "김군은 인물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도 강하구만."
수정 엄마 : "그래. 맞아. 우리 수정이 데리고 내려오는 것도 그렇고,
회사 도망치고 나온 것이나, 또 여기서 사고 난 것을 처리하는 것도 .."
이경숙은 세 대의 카메라에 있는 파일을 컴퓨터로 모두 옮겼다고 했다.
"메모리카드 세 개를 전부 포맷해서 다시 끼우고 내일 촬영해."
"그럼 끝?"
"그래. 수고했어."
"오빠, 나중에 밥 사."
"수희 누나한테 말해."
"싫어. 오빠가 사주는 밥 먹을꺼다."
"알았어."
한수정이 우리 대화를 같이 들여다 보다가 말했다.
"하아. .. 내가 뭐라대?"
"너는 얘가 이럴 줄 알았어?"
"걔 이쁘니?"
"아니. 전혀. 그런데 참 착해빠진 애야."
"그러니까 그렇지."
"뭐가?"
"조심하라고!"
"얘가, 부모님 계신데 못하는 말이 없네."
"아냐. 너희 마음 놓고 얘기해.
요새 나나 네 아빠는 귀가 잘 안 들려."
"여보, 우리 여기 오래만인데, 밖에 나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까?"
"남자가 젊었을 때 이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잖아?
나이 먹고 늙어서 그 버릇을 개한테 줘도 개도 그거 안 가져가.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 짓이라니까."
"왜? 아빠가 또 사고 쳤어?"
"아빠가 그 정도로 늙었니?"
"아직은 아닐껄?"
"글쎄 몇일 전에 자기 새까만 후배가 새로 왔다고 .."
"여보, 빨리 나가자니까!"
한수정 아빠는 수정이 엄마를 데리고 재빨리 서둘러서 식당 밖으로 나갔다.
한수정은 화장실에 간다고 뒤따라 나갔다.
룸에는 나 혼자 남았다.
최수희가 카톡을 보내왔다.
"이경숙이 일을 끝내서 모두 야근 마치고 퇴근한다"
강과장도 나에게 전화를 했다
"너 언제 올래?"
"내일 아침에요. 서울에 도착하는 대로 갈께요."
"장인 장모가 널 별로로 아니?"
"예에?"
"아니면, 오늘 내려간 애가 왜 내일 올라 와?"
"아니. .. 저는 . .."
"회사일 걱정은 하지 말고 볼 일 다 보고 와.
서울 부산이 자주 다닐 수 있는 거리도 아니잖아?
하긴 너는 자주 다닌다더라만은."
"아. 예에."
"그 대신 무슨 일 생기면 나 몰라라 하면 죽을 각오 해."
"그럴 리가 있어요?"
"그래. 오늘처럼 같이 해줘야 해. 알았지?"
"당연하신 말씀."
"야, 막내야. .. 내가 누구야?"
"누나."
"아오.. 귀여운 것. 그래. 그럼 끊어."
한수정이 들어와서 나와 함께 식당 밖으로 나갔다.
"방금 엄마 아빠 하시는 말씀 들었지?"
"어? 응. 두 분 재미있게 사시네."
"저 나이 먹어서도 사고 치며 사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거니?"
"안 그랬으면 일상적이고 지루했을텐데."
"하긴. .. 교사라는 직업이 쫌 그렇지?"
"난 안 해봐서 모르지."
나와 한수정은 식당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한수정이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와서 우리는 원탁에 앉아서 같이 먹었다.
저 멀리 모래사장에서는 한수정 아빠가 한수정 엄마에게 혼나는 모습이 보인다.
한수정 아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한수정 엄마는 삿대질을 한다.
말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마치 판토마임을 보는 기분이다.
한수정도 뒤늦게 그 장면을 보았다.
"에이. 앞에 보이는 풍경이 여어엉 별로네."
"왜 그래?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이야."
"그럼 너도 나중에 저러겠다는 얘기냐?"
"나라고 별 수 있겠니?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라며?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선조들이 살던 길을 답습하면서 사는 거지."
"야아아. 너 진짜 이럴꺼야?"
"어? 왜? 내가 뭘?"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그래도 말만 잘하는데? 하하하."
한참 후에 한수정의 부모님은 우리에게로 오셨고, 우리는 집을 향해 출발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다.
한수정이 나에게 소근거린다.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른데, 우리 벌써 집에 들어가?"
"너는 몇년만에 집에 왔으면 하루 저녁 정도는 엄마 아빠랑 보내면 안돼?"
"나도 그러고는 싶거든.
그런데 오늘은 너도 있고,
엄마 아빠 분위기도 여엉 그런데?"
"아냐. 심각한 것은 아닌 것 같으니까 괜찮을꺼야."
"네가 괜찮다고 하면 나야 고맙지."
한수정은 반대했지만 한수정 엄마는 기어코 술자리를 마련했다.
한수정의 엄마는 한수정에게 저 엄청난 고집까지도 물려준 것 같다.
그런데 한수정 아빠가 그 술자리를 엄청 반긴다.
"아까는 구경만 하느라고 죽을 맛이었거든."
"착각하지 마요. 당신 때문에 내가 이 술상을 본 것은 아니니까."
"인생, 착각으로 살아야지. 괜히 뚜껑 열면 속만 상해."
"당신, 그 말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절대 아니지. 내가 간덩이가 붓지 않고야 어찌 감하..."
그렇지만 주거니 받거니를 몇 잔 한 후에 한수정 아빠는 자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한마디 충고를 했다.
"김군. 자네는 미녀랑 산다는 것이 뭔지 모를꺼야.
보통 남자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야."
"아빠. 아빠는 보통 남자 아니고 수학샘이거든.
태현이 마음 건드리지 말고 어서 들어가."
"그래. .. 들어가야지. .. 나야 뭐. ..
수정아. 사랑해."
"하아. .. 내일 아침이면 달라질꺼면서. .."
한수정 아빠가 들어가자 술자리는 싱거워졌다.
한수정은 엄마도 들여보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나도 한수정을 도와서 같이 끝냈다.
한수정은 나를 2층으로 데리고 가서 욕실과 내가 잘 방을 보여주었다.
"내가 아래층 눈치 보고, 나중에 조용해지면 올라올께."
이 말을 하고 한수정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이번 얘기는 별로죠?
전개하는 과정이니까 이해해주세요.
- Ja"dore -
열차가 플랫홈에서 멈추고 자동문이 활짝 열린다. 나도 한수정도 열차에서 내려서 사람들의 흐름 속으로 묻혀 들어간다. 한수정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출구에서 우리 엄마가 기다리셔."
그런데 내 전화기에서 진동음이 난다. 최수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수정이 웬 전화냐고 발끈한다.
"뭔데?"
"회사야. 받아야 해."
"쉬는 날 아냐?"
"내가 쉬는 날이야. 회사는 아니고 .."
시간은 오후 4시 반. 최수희는 아직 퇴근 전이다. 지금 아마도 보고서를 써야 하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희 누나!"
"자기야, 어떡해?"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방효은이 잠수타네."
"뭐야? 이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게 문제가 아니고, 우리는 이거를 전산 시스템으로 돌릴 줄을 모르는데."
"이러언. .. 대형사고네."
"과장님 지금 엄청 열받아서 당장 자기를 잡아오랜다."
"어? 나 지금 부산에 막 도착했는데.. 어쩐다?"
"지난 주에 부산에서 휴가 보내지 않았나?"
"외국에서 유학파가 들어왔거든."
"어머머. .. 그럼 캐나다에서 자기 여친이 들어온거니?"
"응. 지금 걔네 집에 가려고 열차에서 막 내렸어."
"난리네. 자기 안 나온 것도 다 들통나고 .. 히히."
"내가 지금 여기서 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차를 타도 여덟 시 전에는 회사에 못 들어가는데?"
"자기야, 알았으니까 그럼 일단 전화 끊고 기다려봐."
통화하는 사이에 우리는 이미 출구를 빠져 나와 있었다.
한수정은 벌써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겨있다.
나도 통화를 끝내고 그들에게로 갔다.
청바지에 하얀 남방의 수학 선생님이라는 수정이 아빠.
검은 스커트에 칼라풀한 블라우스의 역사선생님인 수정이 엄마.
외모에 관한 한 한수정은 분명 수정이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
혹시 한수정 아빠가 돈이 엄청 많은 집안일까?
그는 혹시 대입 수학의 최강인가?
아니면 결혼 전에 미리 사고를 쳐서 혼전임신이라도?
도대체 한수정 엄마는 무슨 이유로 한수정 아빠와 결혼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하긴. 한수정도 나 같은 남자한테 덤벼드는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니까.
엄마나, 딸이나, 미녀들은 남자 고르는 안목이 하나같이 왜 이럴까?
"우리 엄마, 아빠셔. .. 김태현 알지?"
"처음 뵙겠.. 아닌데? 전에 고등 학교 때 뵌 것 같은데요? 김태현입니다."
"맞다.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하네. .. 우리 고1때, 엄마 아빠 학교에 와서 만난 적이 있어."
"자네가 그 유명한 외계인인가? 하하하."
"오느라고 수고했어요."
"잠시만요. 수정아 나 좀 보자."
나는 수정이에게 회사의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수정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래서, 지금 이 길로 다시 올라간다는 말이니?"
"그래도 늦어. 비행기로 가도 안돼."
"내일 해주면 안되나?"
"우리 보고서를 매일 감사팀으로 넘겨주는 것이라서 .."
"그럼 그 동영상 파일을 편집이라도 하는 거야?"
"그러면 좋지만, 안 그래도 괜찮아."
"그럼 원격조정을 하든가, 아니면 영상통화로 하면 안돼?"
"인트라넷이라서 접근이 안되니까 원격조정은 안되고 .. 영상통화로 될까?"
"정 안되면 전산실로 넘겨주면 간단하게 해결되겠구만. 그럼 안돼?"
"영상통화로 해볼께. .. 아아. .. 이 누나들 완전 컴맹들이라서 장난 아닐텐데."
"집으로 갈까? 아니면 PC방으로 갈래?"
"PC방은 쫌 그렇고 .. 일단 집으로 가자."
그런데 강은영 과징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한수정에게 과장님 전화라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한수정은 부모님께로 가서 회사가 나 때문에 비상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서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고 강과장과 통화를 했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어쭈? 죄송이면 다야?
방효은은 잠수.
김태현은 도망.
너네들 지금 날더러 과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말이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제가 있는 곳은 부산역이니까 당장은 안되거든요.
일단 집에 도착하면 영상통화로 해결하도록 할께요."
"집에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데?"
"넉넉잡고 한 시간이면 도착해요."
"그리고 너 말이야. .. 야, 김태현!"
"예."
"내가 너한테 뭐 섭섭하게 한 것 있니?"
"전혀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캐나다에 있는 여친이 왔으면 그렇다고 나한테 말을 했어야죠.
그걸 최수희씨랑 둘이 짜고 나한테는 왜 숨기는데?
하루도 못 가서 들통날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야.
돌대가리들 같으니라고."
"과장님누나, 엄청 죄송요.
일단 집에 가서 빨리 어떻게든 손을 써볼께요.
누나과장님 열 안받고 무사히 퇴근하시게 할께요.
"요게, 그냥, 콱!
이 판국에 어딜 또 애교야?
그 일이 해결 될 때까지는 총무과 전원 야근 걸었으니까 알아서 해."
"와아아 .. 누나아아아!"
"과장님이야!"
"과장니이이임!"
"누나라며?"
"돌겠네."
"너는 돌겠지? 우리는 속이 시커멓게 타서 미친다."
강과장의 화가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다.
우리는 통화를 끝냈다.
방효은이 회사를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줄을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한수정에게로 갔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이 휴가 바로 다음주라서 회사에 말을 하지 않고 살짝 도망을 나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대형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이 난리네요."
"방금 수정이한테 들었어.
우리 수정이가 그렇게 좋았나? 하하."
"일단 집으로 가야 한다며?
그럼 식당 예약한 것은 취소해야 하나?"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전혀 없습니다."
"하여간에.. 이 외계인. .. 참나."
"살려줘."
"누가 죽인대?"
우리는 부산역 광장으로 내려왔다.
한수정 아빠가 차를 가져와서 우리는 모두 그 차에 탔다.
나는 수정이와 뒷자리에 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화상통화로 해결할 일이 너무도 꿈만 같다.
그런데 최수희가 카톡을 보냈다.
"방효은 하루 종일 전화기 꺼져있고,
자기랑 통화하고 나서 과장님 화가 쫌 풀린 것 같다.
뭐라고 했어?"
"누나 혹시 전산실에 친한 사람 없어?"
"딱히? 거기는 내 구역이 아니거든."
"알바생 중에 이경숙 아직 있어요?"
"응. 아직 퇴근 전."
"이경숙도 오늘 야근 해요?"
"노. .. 알바생들은 칼퇴근."
"이경숙 야근하라고 해봐요."
"콜. 기다려."
한수경은 옆에서 카톡 대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최수희가 누구야?"
"우리 팀장."
"이경숙은?"
"알바생. 얘가 컴퓨터를 조금 다룰 줄 알거든."
최수희는 이경숙이 야근을 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나는 이경숙과 연락을 해서 카톡으로 한가지씩 해결하기로 했다.이 경숙은 컴퓨터로 가서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나와 카톡을 하기로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우선 우리 카메라에 들어있는 칩을 꺼내서, 컴퓨터에 연결되어있는 리더기에 꽂고, 읽어서 컴퓨터로 저장을 한다. 그 중에서 필요한 동영상 파일을 찾아서 보고서에 첨부파일로 연결 시키면 끝이다. 이 작업이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이라고.
방효은은 지금까지 자기 혼자 이 일을 하고 있다가 잠수를 타버렸다. 그런데 이 I.T. 강국에 있는 나라마트의 총무과에는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거실에 앉았고, 한수정은 엄마와 함께 주방에서 과일 접시를 들고 온다.
"오빠, 경숙이에요. 준비 됐어요."
"카메라 3대 전부 다 전원에 연결돼있지?"
"예."
"메모리 카드 어디 있는 줄은 알아?"
"모르는데요."
"그럼 한대만 들고 밑에 보면 화살표가 보일꺼야. 거기를 살짝 누른 상태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밀어."
"뚜껑 열렸어요."
"메모리카드 꽁무니가 보일꺼야. 손가락 끝으로 살짝 눌러."
"튀어나왔어요."
"그거 리더기에 꽂아."
"넣었어요."
"컴퓨터 화면에서 [컴퓨터]로 보면 이동식 디스크로 인식 될텐데."
"드라이브 [G:]?"
"더블클릭."
"파일이 전부 17개인데."
"그거 [컴퓨터]에 드라이브 [C:]에 [경숙_01] 폴더 만들고 그리로 옮겨."
"하는중."
"두번째 카메라는 [경숙_02] 폴더로, 세번째 카메라는 [경숙_03] 폴더로"
"그 다음은요?"
"보고서 에 있는 내용을 보고 그 파일을 찾아서 거기에 링크 시켜."
"링크 시킬 줄 모르는데."
"그럼 파일 이름 적고, 파일을 USB에 복사해서 갖다 줘. 링크는 다음에 해준다고 해."
"알았어요. 해볼께요."
"USB는 수희 누나한테 달라고 해."
"도망가지 말고 끝날 때까지 기다려요."
옆에서 보고 있던 한수정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쉰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안 그래?"
"그러게. 넌 내일 올라가서 링크시키는 것을 해야겠네?"
"전산과 직원한테 부탁해보려고."
"너 나중에 이경숙한테 단단히 한턱 쏴야겠네?"
"왜 내가 쏘냐? 그것은 팀장이 알아서 해야지."
"우리 밥 먹으러 나갈 시간이야."
"가자. 나머지는 밥 먹으면서 해도 돼."
한수정 아빠는 우리를 차에 태워서 송정 해수욕장이라는 곳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처음 와보는 곳인데, 조용해서 좋다.
우리는 해물탕을 주문했다.
한수정 아빠는 차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와 한수정 엄마 그리고 한수정은 소주를 마셨다.
한수정 엄마는 혼자서 소주 한 병을 거뜬하게 마신다.
나와 한수정은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한수정 엄마가 나와 한수정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더니, 한수정에게 말했다.
수정 엄마 : "나는 아빠랑 결혼했는데, 너는 김태현이랑 결혼할래?"
수정 : "엄마도 참.
우리 나이가 몇인데, 무슨 결혼 얘기를 벌써 해?"
수정 아빠 : "너희는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었어?"
수정 : "글쎄? 그럼 이 참에 함 생각해 볼까?
에이.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나랑 태현이랑은 고등학교 동창에 대학 입학 동기일 뿐이거든요."
한수정 엄마는 또 한잔을 비운다.
나는 그녀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른다.
수정 엄마 : "만나다 보면 금방이야.
어쩌다 보면 드레스 입고 결혼하고,
또 어쩌다 보면 배부르고, 애 낳고,
애 키워놓으면 늙었고 ..."
수정 : "하아. .. 걱정 마세요.
우리는 아직 할 일이 엄청 많거든요."
수정 아빠 :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결혼해서 애 낳고 애 키우는 일 말고는 실속있는 일이 없어."
수정 엄마 : "이 나이 먹으니까, 나한테 남은 거라고는 한수정밖에 없잖아."
수정 : "그런데 엄마는 지금이라도 내가 후딱 시집이나 갔으면 좋겠어?"
수정 엄마 : "나야 싫지. 늙어 죽을 때까지 나는 너랑 살고 싶지."
엄마가 한 이 말에 한수정은 두 눈이 동그래지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수정 : "엄마! 김태현도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늙어 죽는다는 그 말을 꼭 해야겠어?"
수정 엄마 : "야아. 말이 그렇다고.
이제 앞으로 두고 봐라. 세월 진짜 빠르거든요. 금방이다."
수정 : "뭐가 또 금방이라는 거야?"
수정 엄마 : "나 늙어 죽는 것 말이야."
수정 : "엄마! 진짜. .. 엄마 지금 술 취했어?"
수정 엄마 :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취할 만큼 마시기라도 했니?
그러니까, 몇년만에 한국에 왔으면 엄마한테 먼저 와야지,
어쩌자고 김태현한테 먼저 갔어?"
수정 : "그게 그렇게 엄마 가슴에 맺혔어?"
수정 아빠 : "맺히기만 해? 이번 일은 네 엄마가 두고두고 안 잊어먹을꺼야. 하하하."
한수정 엄마는 나를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수정 엄마 : "하아. .. 그런데 오늘 김태현을 실물로 보니까 우리 수정이가 그럴 만도 하네."
수정 : "왜?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수정 엄마 : "김태현씨가 인물 하나는 참 잘 생겼다고."
수정 : "엄마도 참 .. 내가 얘 인물 보고 이러는 줄 알아?"
수정 엄마 : "하긴.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 얼굴만 쳐다보고 살 것도 아닌데 .."
수정 : "엄마. .. 정 할일 없으면 신랑 얼굴이라도 쳐다보고 살아야죠. 헤헤."
수정 아빠 : "그건 나중에 늙어 꼬부라져서 얘기야.
그 때 되면 .. 지금 잘생긴 얼굴이 그때 가서 무슨 소용이겠니?
쭈글쭈글 쪼그라들면 다 마찬가지인데."
수정 : "아냐. 김태현은 늙어도 주름살 생기면 절대로 안돼.
생기는 주름살마다 내가 전부 보톡스로 콱 없앨꺼야."
수정 아빠 : "그런데 그게 어디 한두개라야지."
수정 : "생기는 즉시, 내 눈에 띄면, 무조건, 그날 그 시간 부로, 바로 보톡스야."
한수정의 단호한 이 말에 내게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수정은 고집스러운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고 엄청 진지하다.
한수정 아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기 딸 한수정을 쳐다본다.
수정 아빠 : "김군은 인물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도 강하구만."
수정 엄마 : "그래. 맞아. 우리 수정이 데리고 내려오는 것도 그렇고,
회사 도망치고 나온 것이나, 또 여기서 사고 난 것을 처리하는 것도 .."
이경숙은 세 대의 카메라에 있는 파일을 컴퓨터로 모두 옮겼다고 했다.
"메모리카드 세 개를 전부 포맷해서 다시 끼우고 내일 촬영해."
"그럼 끝?"
"그래. 수고했어."
"오빠, 나중에 밥 사."
"수희 누나한테 말해."
"싫어. 오빠가 사주는 밥 먹을꺼다."
"알았어."
한수정이 우리 대화를 같이 들여다 보다가 말했다.
"하아. .. 내가 뭐라대?"
"너는 얘가 이럴 줄 알았어?"
"걔 이쁘니?"
"아니. 전혀. 그런데 참 착해빠진 애야."
"그러니까 그렇지."
"뭐가?"
"조심하라고!"
"얘가, 부모님 계신데 못하는 말이 없네."
"아냐. 너희 마음 놓고 얘기해.
요새 나나 네 아빠는 귀가 잘 안 들려."
"여보, 우리 여기 오래만인데, 밖에 나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까?"
"남자가 젊었을 때 이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잖아?
나이 먹고 늙어서 그 버릇을 개한테 줘도 개도 그거 안 가져가.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 짓이라니까."
"왜? 아빠가 또 사고 쳤어?"
"아빠가 그 정도로 늙었니?"
"아직은 아닐껄?"
"글쎄 몇일 전에 자기 새까만 후배가 새로 왔다고 .."
"여보, 빨리 나가자니까!"
한수정 아빠는 수정이 엄마를 데리고 재빨리 서둘러서 식당 밖으로 나갔다.
한수정은 화장실에 간다고 뒤따라 나갔다.
룸에는 나 혼자 남았다.
최수희가 카톡을 보내왔다.
"이경숙이 일을 끝내서 모두 야근 마치고 퇴근한다"
강과장도 나에게 전화를 했다
"너 언제 올래?"
"내일 아침에요. 서울에 도착하는 대로 갈께요."
"장인 장모가 널 별로로 아니?"
"예에?"
"아니면, 오늘 내려간 애가 왜 내일 올라 와?"
"아니. .. 저는 . .."
"회사일 걱정은 하지 말고 볼 일 다 보고 와.
서울 부산이 자주 다닐 수 있는 거리도 아니잖아?
하긴 너는 자주 다닌다더라만은."
"아. 예에."
"그 대신 무슨 일 생기면 나 몰라라 하면 죽을 각오 해."
"그럴 리가 있어요?"
"그래. 오늘처럼 같이 해줘야 해. 알았지?"
"당연하신 말씀."
"야, 막내야. .. 내가 누구야?"
"누나."
"아오.. 귀여운 것. 그래. 그럼 끊어."
한수정이 들어와서 나와 함께 식당 밖으로 나갔다.
"방금 엄마 아빠 하시는 말씀 들었지?"
"어? 응. 두 분 재미있게 사시네."
"저 나이 먹어서도 사고 치며 사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거니?"
"안 그랬으면 일상적이고 지루했을텐데."
"하긴. .. 교사라는 직업이 쫌 그렇지?"
"난 안 해봐서 모르지."
나와 한수정은 식당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한수정이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와서 우리는 원탁에 앉아서 같이 먹었다.
저 멀리 모래사장에서는 한수정 아빠가 한수정 엄마에게 혼나는 모습이 보인다.
한수정 아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한수정 엄마는 삿대질을 한다.
말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마치 판토마임을 보는 기분이다.
한수정도 뒤늦게 그 장면을 보았다.
"에이. 앞에 보이는 풍경이 여어엉 별로네."
"왜 그래?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이야."
"그럼 너도 나중에 저러겠다는 얘기냐?"
"나라고 별 수 있겠니?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라며?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선조들이 살던 길을 답습하면서 사는 거지."
"야아아. 너 진짜 이럴꺼야?"
"어? 왜? 내가 뭘?"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그래도 말만 잘하는데? 하하하."
한참 후에 한수정의 부모님은 우리에게로 오셨고, 우리는 집을 향해 출발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다.
한수정이 나에게 소근거린다.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른데, 우리 벌써 집에 들어가?"
"너는 몇년만에 집에 왔으면 하루 저녁 정도는 엄마 아빠랑 보내면 안돼?"
"나도 그러고는 싶거든.
그런데 오늘은 너도 있고,
엄마 아빠 분위기도 여엉 그런데?"
"아냐. 심각한 것은 아닌 것 같으니까 괜찮을꺼야."
"네가 괜찮다고 하면 나야 고맙지."
한수정은 반대했지만 한수정 엄마는 기어코 술자리를 마련했다.
한수정의 엄마는 한수정에게 저 엄청난 고집까지도 물려준 것 같다.
그런데 한수정 아빠가 그 술자리를 엄청 반긴다.
"아까는 구경만 하느라고 죽을 맛이었거든."
"착각하지 마요. 당신 때문에 내가 이 술상을 본 것은 아니니까."
"인생, 착각으로 살아야지. 괜히 뚜껑 열면 속만 상해."
"당신, 그 말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절대 아니지. 내가 간덩이가 붓지 않고야 어찌 감하..."
그렇지만 주거니 받거니를 몇 잔 한 후에 한수정 아빠는 자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한마디 충고를 했다.
"김군. 자네는 미녀랑 산다는 것이 뭔지 모를꺼야.
보통 남자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야."
"아빠. 아빠는 보통 남자 아니고 수학샘이거든.
태현이 마음 건드리지 말고 어서 들어가."
"그래. .. 들어가야지. .. 나야 뭐. ..
수정아. 사랑해."
"하아. .. 내일 아침이면 달라질꺼면서. .."
한수정 아빠가 들어가자 술자리는 싱거워졌다.
한수정은 엄마도 들여보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나도 한수정을 도와서 같이 끝냈다.
한수정은 나를 2층으로 데리고 가서 욕실과 내가 잘 방을 보여주었다.
"내가 아래층 눈치 보고, 나중에 조용해지면 올라올께."
이 말을 하고 한수정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이번 얘기는 별로죠?
전개하는 과정이니까 이해해주세요.
- Ja"dore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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