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강은영 과장의 성추행
나나 아이린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지만, 지혜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너무 천하 태평이다. 오히려 나와 아이린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뭐야아?"
"뭐야가 뭐야?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나 엄마가 가슴 조이며 기다렸던 것을 생각 좀 해봐."
"물론 엄마나 오빠는 화가 나기도 하겠지.
그치만 이런 것 정도는 얼마든지 애교 정도로 봐줄 수 있잖아?"
"그야 .. 그렇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난 아가 오빠 등에 업히니까 기분은 무지 좋더라.
아빠 등에 업혀본 일은 내 기억에 전혀 없거든. 하하"
"제발 정신줄 놓지 말고 살자."
"나도 알아. 오빠한테는 지금 내가 아마 엄청 사랑스럽고 귀여울꺼다. 헤헤."
"요걸 그냥. 아휴 .."
"오빠. .. 얼마 되지도 않는 인생 살면서 괜한 일로 스트레스 받지 마.
스트레스가 남자한테는 정력 감퇴의 원인이라더라.
난 오늘 무리했더니, 피곤해서 자야겠어. 술기운도 좀 있고.
오늘 공부는 쉬자."
"알았어. 가서 푹 쉬어."
"그런데 엄마는 나한테 왜 그렇게 불만이 많아?
그것이 진짜 궁금하다."
"몰라서 묻는거니?
네가 오늘 나나 오빠한테 한 것을 생각하면 .."
"뭐야아. 엄마 왜 또 오바하셔?"
"오바라니?
소풍을 가서 끝났으면, 집으로 바로 왔어야지.
이건 뭐 일진도 아닌 주제에, 어디 쳐박혀서 술판이야?
이 정도면 해도 너무한 것 아냐?
너 거기서 그러는 동안에 우리가 지금까지 기다리면서 애태운 것은 생각도 안하지?"
"엄마 진짜 완전 어이없다.
엄마야말로 진짜 나한테 그러면 안되죠."
"왜? 뭘? 도대체 뭘 갖고 네가 더 큰 소리야?"
"나는 할 말이 있어도, 참고, 그냥 두고 보고만 있었는데, ..
경식이는 여친도 생기고, 걔가 엄마한테 해달라는 것을 엄마는 다 해주거든.
나는 남친이 있어? 해달라는 것이 있어?
난 닥치고 공부밖에는 한 것이 없거든?
내가 아무리 맨탈이 강해도 참고 참아왔단 말이야.
왜냐고?
내 동생이고, 내 엄마니까.
오늘 있었던 일?
내가 정신줄을 완전히 놔버린 것도 아니고, 연극을 쪼금 했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이야?"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너 술 취했니?"
"엄마, 나랑 경식이랑 왜 차별해?
경식이는 뭘 하든 엄지척.
나는 겨우 단 한번 그런 걸 갖고 나한테 그렇게 구박해?
내 출생에 비밀이 있기라도 한거야?"
"야! 서지혜!
얘가 듣자듣자 하니까,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네."
"오빠한테나 엄마한테 나 할 말 아직 엄청 많아.
그래도 난 엄마도 오빠도 사랑하니까, 오늘은 여기서 끝낼꺼야.
나 엄청 피곤하거든.
오빠, 이제 나 진짜로 내려가서 잘꺼야."
"아까 그러라고 했는데.
그런데 너 괜찮니?"
"아니야. 안괜찮아.
그래도 내일을 위해서 자야지."
지혜는 한바탕 쏟아 붓더니, 나에게 키스를 하고 방을 나갔다. 그런데 지혜의 걸음걸이가 전혀 피곤한 것 같지가 않다.
지혜는 아이린한테 분명 언발란스한 과잉 반응을 보였다. 아이린이 지혜에게 한 말이 그렇게 지혜에게 자극적인 말도 아니었다. 또 아이린은 지혜나 경식이를 차별한 적도 없다. 아이린은 오히려 경식이보다는 지혜에게 더 잘했다. 그런데도 지혜는 버러럭 한 것이다.
나도 아이린과 함께 그녀의 아파트로 간다.
"지혜 때문에 자기가 열 받은 것은 내가 대신 사과할께."
"아니야. 나 열 받은 것 없거든요.
지혜가 저렇게 .. 지금 그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경험하잖아.
그러면서도 요새는 공부도 제법 하고, 건강하게 잘 크면 됐지."
"자기야, 나도 그것이 참 좋다고 생각해.
그러는 통에 자기가 피해를 보니까, 그것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해요."
"피해? 피해 전혀 없어.
그 동안 걔가 공부한다고 스트레스가 심했나봐.
오늘 봐서 알겠지만 거의 짜증 수준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누나,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나는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생각해 보면 오늘 하루 동안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너무 피곤하다. 지난 밤에도 잠을 너무 조금 잤기 때문인지 잠은 쏟아진다.
그렇지만 나는 아까 지혜의 친구 조혜수네 거실에서 지혜가 널부러져 있던 장면이 떠오른다. 비록 그것이 연극이었다고는 하지만, 여고생인 지혜의 그런 모습이 나에게는 어느 정도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지혜를 업었을 때 지혜의 온몸에서 받은 자극 때문에 짜릿했던 순간들을 생각해냈다.
최수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아직도 바빠?"
"이제 자려고."
"여기 와서 같이 자면 안되나?
자야 하는데, 잠이 토옹 안오네."
나는 내일 아침에 출근 할 준비를 해서 택시를 타고 최수희네 집으로 갔다. 우리는 벗은 몸으로 침대로 갔다. 우리는 키스를 시작했으나, 어이없게도 나는 그냥 잠에 빠져들었다. 최수희가 말하는 소리가 까마득하게 먼 곳에서처럼 들린다.
"하아. .. 자는 거야?
이러면 난 어쩌라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우리가 지각을 하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둘이 헉헉대며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여자들이 난리다.
"얘네 둘은 어떻게 지각도 같이 할 판이야?"
"누나, 우리 아직 지각 아니거든요."
"아. 맞네. 아직 30초 남았다. 하하."
"둘 다 옷은 갈아 입었잖아. 외박은 아닌 것 같은데?"
"언니! 나 내집에서 내 침대에서 잤거든요."
"수희씨. 누가 뭐래? 누구랑 잤느냐가 문제지."
"예쁜 누나들이 오늘 아침에 왜 이러실까?"
"너네 둘 한테서 똑같은 샴푸 냄새가 난다. 어쩔래?"
"내가 어제 샴푸 2개 사서 한 개는 수희 누나한테 선물했거든요?"
"그럼, 그게 말이 돼?
막내가 여자 샴푸를 써?
아니면 수희씨가 남자샴푸를 써?"
"언니, 우리는 샴푸 남자꺼 여자꺼 가리지 않고, 값싸고 양 많으면 그냥 쓰는데?"
"우리? 누가 누구랑 우리라는 거야? 하하하."
"아오. .. 오늘 딱 걸렸지?"
"와아앙. .. 아니라니까. .. 돌겠다."
"그럼 돌으시든가. 하하."
"주여. 이 꽃다운 최수희를 아침부터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하하. & 깔깔깔."
나는 여자들이 이렇게 농담하는 것을 즐긴다. 이것은 거의 매일 있는 일이다. 그런데 최수희는 빨개진 얼굴로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바락바락 대든다. 그런데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최수희에게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강은희 과장이 들어오자 사건은 자동으로 교통정리가 된다. 최수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재빨리 외근 일정을 확인하고 나갈 준비를 서두른다. 강과장은 나와 최수희를 자기 자리로 부른다.
강과장은 어제 부장과 이야기 한 것이라면서 나와 최수희는 오후에 일찍 들어와서 부장에게 가보라고 했다.
"막내 너는 내일 간부회의에 들어가서 네가 PT 하는 걸로 알고 준비해."
"그런데, 그거 부장님보다 더 잘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야. 부장님은 자기 사람 실력이 이 정도로 빵빵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겠대."
"아니, 도대체 무슨 실력을 겨우 PT 하는 걸로 보여주겠다는 거죠?
지금 뻥을 치시겠다는 건가요?"
"겨우 PT 라고?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니거든요."
나는 최수희와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나에게 전화기를 열어볼 시간이 생겼다. 지혜에게서 카톡이 몇개 들어와있다.
"이 밤중에 어디를 나갔어?"
"늦었는데, 안들어와?"
"하루 쉰다고 하니까 바로 외박질이냐?"
"진짜 나 혼자 잘까?"
"간덩이를 이민 보냈어?"
"나 혼자 잤거든. 오늘 밤에 각오해."
등등.
아이린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
나와 최수희는 일하는 것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오늘 점검하는 매장에 가면서 그 주변에 있는 다른 마트의 매장도 같이 둘러보자는 것이다. 최수희는 방효은과 이 경숙에게 일하는 것을 나누어서 맡겼다.
우리가 오늘 가는 매장은 서울이 아니라 수원에 있다. 나와 최수희는 우리 팀에서 따로 떨어져서 플러스홈이라는 대형 매장으로 갔다. 이 매장은 지하 2층과 지상 5층으로 되어있는 빵빵한 대형매장이다. 나와 최수희는 카트를 밀면서 진열된 상품 사이를 지나다닌다. 최수희가 나에게 팔짱을 껴오면서 한마디 한다.
"자기야. 우리 꼭 부부 같지 않니?"
"글쎄. 듣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네.
그건데,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누나랑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일종의 산업스파이거든."
"꼭 그 말을 해서 이 분위기를 깨야겠어?"
우리 매장과는 너무 비교된다. 게다가 이 매장은 외국 자본이 얽혀있어서 그런지 더 꼼꼼하게 살피게 된다. 또 특이한 부분은 최수희가 몰카로 촬영도 했다. 몇몇 종업원과는 이야기도 했다.
"내일은 우리 매장을 서울에 있는 매장으로 정해요."
"왜?"
"이 플러스홈 서울 매장이랑 비교하려고요."
"서울과 지방을 비교한다고?"
"우리나 얘네나 서울과 지방 사이의 격차를 줄여야 할텐데 .."
"서울과 지방은 소비 문화의 차이가 엄청 커요.
서울에서 하는 영업이나 마케팅은 정확한 정보 위주로 가야 해.
소비자가 정보를 많이 갖고 오거든.
직원이 정보에 강하지 못하면 소비자에게 당해.
그런데 지방은 그런 정보가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야.
여기는 정보보다는 믿음이 훨씬 더 중요해.
다 알아서 해줄 줄로 알고, 다 알아서 해 달라는 문화거든."
오후가 되자 강과장은 나와 최수희를 불러들였다. 우리가 사무실로 왔는데, 강과장이 우리에게 말했다.
"부장님께 말씀드릴께.
기다려. 부장님 곧 내려오실꺼야."
강과장은 나에게 휴게실에 가있으라고 했다. 나는 내 노트북을 들고 왔고, 최수희는 커피를 들고 와서 내 손에 쥐어준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플러스홈에서 촬영한 것을 노트북으로 전송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과장이 부장과 함께 들어왔다. 나와 최수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우리는 원탁에 둘러앉았다.
"내일 회의에서 잘 부탁하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번 분기 매출액이 예년에 비해서 거의 5배 정도 증가야.
이것은 자네들이 매장 감시팀에서 고생한 때문에 가능했어."
"감사합니다."
"이것은 깜짝 이벤트가 아니고, 앞으로 30%나 50%에 도전하겠다고 그랬지?
자네는 내일 이것이 절대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부각시켜야 해.
이 점을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가면서 설득력 있게 잘 부탁해.
그래야 파워 있는 부서가 한강 유통과 나라마트를 경쟁에서 살아남게 할 수 있거든.
자네는 그 동안 잠자던 간부들을 정신 바짝 차리도록 만들어야 해.
자네에게 너무 큰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부장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장은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강과장은 이경숙을 불러서 나를 돕게 했고, 나는 어제 만든 PT파일에서 몇가지를 보강했다. 최수희는 오늘 업무보고서와 업무일지를 정리했다.
퇴근 직전에 강은영과장은 나를 불러서 방금 완성된 PT파일을 체크했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매장감시반이 지금까지는 총무과에 속해있었잖아. 그런데 이제 곧 업무지원팀으로 승격 시킨대. 그러면 아마 최수희씨가 과장으로 승진해서 일단 팀장을 맡게 될꺼야. 우리 막내는 지금처럼 최수희씨를 열심히 도와주면 돼."
"수희 누나는 대리도 거치지 않고 바로 과장을 달 수 있어요?"
"나도 차장 안 달고 바로 부장 할꺼거든.
그만큼 이번 사건이 엄청나단 말이야.
요새 같은 불경기에 20%, 30%, 50% 이게 말이 돼?
그런데 우리는 해냈잖아?
앞으로 두고 봐.
우리가 지금 한강 유통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거야.
부장님이 상무님이 되시면 우리한테는 전망이 있어."
"브랜드의 인지도가 일년 이년 내에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요?
앞으로 다들 고생문이 훤하네요."
"그니까, 막내 네가 있는 동안에 이 동네를 빡씨게 업그레이드 해줘요.
그럴 수 있지?"
"하기로 한 약속이니까, 약속은 지켜야죠."
"아오.. 귀여운 것,"
찰싹!
강은영 과장의 손이 갑자기 내 엉덩이를 친다. 소리가 제법 컸다. 우리 근처의 자리에서 퇴근 준비를 하던 여직원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나는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조용히 말했다.
"과장님, 이건 확실한 성추행인데요."
"왜? 그래서 억울하니?"
"당연하죠. 억울한 정도가 아니거든요."
"그럼 너도 해.
그럼 되잖아?"
"에이. .. 그럼 나만 손핸데요."
"손해는 뭐가 손해?
너도 내 엉덩이를 치든가 가슴을 만지든가 하면 되잖아?"
"나는 새파란 영계고, 이렇게 샤방샤방이거든요.
이런 내가 왜 과장님처럼 할머니한테 그래요?"
찰싹!
"요게 어딜 할머니래?"
"앗. 실수. 할머니 아니고 누나. 헤헤."
나는 피하려고 몸을 비틀었으나 끝내 실패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만일 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내 손이 강과장의 가슴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식간에 엉덩이 두 방을 먹었다. 소리는 컸으나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내 자리로 갔다. 우리 팀은 모두 퇴근하고 최수희만 아직 자리에 남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퇴근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내가 집에 가면 나는 독기가 가득한 지혜를 만나야 할 것이다. 지혜에게서 카톡은 이미 한시간 전에 들어와있었다.
"오빠, 조해수랑 어제 걔네들이 오빠 너무 귀엽다고 한턱 쏘란다.
퇴근하고 우리 학교 앞으로 올래?"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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