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조해수의 황당한 잠자리
내가 지혜와 함께 나가는데 아이린도 따라 나온다. 아이린은 지혜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면서 지혜에게 말했다.
"지혜 너 지금 일을 키우는 것 아니니?"
"어제 일을 덜컥 벌여놓고, 학교에서 오늘 하루 종일 걔 꼴이 말이 아니었거든.
내가 한 짓이 있어서 그런지, 이 밤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너무 걱정돼."
"아무리 그렇다고 이런 일을 네가 전부 다 저질러놓고, 고스란히 태현씨한테 떠밀면 어떡해?"
"나한테는 오빠 밖에 없는데, 난 그럼 어떡해?
엄마한테 부탁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엄마가 오빠를 하나 낳지 그랬어?
나도 이런 일 처음 겪는 일이거든요.
지금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그냥 내 절친이니까, 이럴 때 혼자 있게 그냥 두면 안될 것 같아서 이렇게 하기는 하는데 .."
"누나. 나 때문에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차라리 잘 됐어요.
지혜 혼자 공부한다고 해도, 정신이 그 친구 쪽으로 쏠려서 집중도 제대로 안될 것 같아요."
"내 생각에도 그런데, 얘네 둘이 오늘 같이 있다고 해서 공부나 하겠어요?"
"내 생각에도 그래.
엄마. 그렇지만 나도 이건 어쩔 수 없어.
오늘 밤에는 나한테 지식보다 인성이 훨씬 더 중요해."
아이린은 PC방으로 올라갔다.
나와 지혜는 내 차에 타고 조해수네 집으로 출발했다.
"오빠. 내가 조해수한테 엄청 잘 못한 것 맞지?"
"글쎄. .. 지혜의 말 한마디가 그런 사건을 만들어 낼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는 것이 문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그런 뻥을 왜 쳤겠어?
아침에 해수한테 그 얘기 처음 들었을 때 내 속이 얼마나 떨렸는데.
무섭고, 겁도 나고."
"피임은 이상 없었겠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했어.
남친은 정신이 제대로 박혔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 남친은 몇 살인데? 대학생이야?"
"대학생은 무슨? 같은 고2지."
"그럼 위험해.
꼭 확인해야 할꺼야.
솔까말로 어제 밤에 걔네들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사고를 친거야.
저 나이에 사고치는 데 앞뒤 따질 것 같니?
네 친구랑 너랑 하는 짓이 똑같을 것 같아."
"뭐야아.
내가 지금까지 계속 오빠한테 그렇게 한 것은 맞아.
그렇지만 나는 아직 오빠랑 사고는 안쳤거든요.
이것은 인정해 줘야 하는 것 아냐?"
"그거야 맞는 말이야.
내가 안따라줬으니까 그렇기도 하거든요.
이것도 인정해줘야죠."
"오빠, 말 잘 꺼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할꺼야?
하기는 할꺼야?
할 마음은 있어?
내가 오빠 마음에 그렇게도 안들어?"
"얘가 지금 뭐라는거야?"
"조해수는 한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그날 바로 해치우잖아.
그런데 나는 몇달째 이게 뭐야?
애들한테 뻥이나 치고.
진짜 내 자존심 엄청 망가지고 있는 것 안보여?"
"일등급 약속은 지켜야겠지?
그리고 나서 캐나다에 있는 수정이한테 물어봐."
"진짜? 언니가 하라고 하면 하는 거지?"
"그래."
"그럼 얼마 안남았네.
오빠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내가 언니한테 지난 번에 허락을 받아놨어."
"뭐야?"
"내 말 못 믿겠으면 오빠가 직접 물어보든가."
"아무리 그래도 아직 일등급 아니거든."
"그건 성적표 고쳐서 복사하면 되거든."
"요게?"
"오빠도 없던 조건을 자꾸 창조해내면서 치사하게 나오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다 이거야."
"내가?"
"지난 번에 언니 허락 받는다는 말은 없었거든요."
"오늘은 보니까 너 진짜 화려하더라.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결혼한다는 둥.
과외 시작하면서 뻑 갔다는 둥.
이렇게 뻥이나 치면서 살면 행복해?"
"오빠. 그 정도는 뻥도 아냐.
남친도 없으면서 우리한테 말할 때는 있다고 뻥치는 애도 있고,
집에서 TV 틀어놓고 데이트 중이라고 사기치는 애도 있고.
나는 어제 안하고도 했다고 했잖아."
나는 차를 주차장에 주차했고, 지혜는 차에서 내리면서 조해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내가 올라가서 데려올게."
지혜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이 보였다.
지혜가 한수정에게서 허락을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지혜가 수정이에게 정말로 물어봤고, 또 수정이는 지혜가 하는 말에 정말로 동의했을까?
혹시 지혜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혜가 장난 삼아 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여러 번 있다. 요새는 오히려 내가 지혜에게 거짓말을 심하게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지혜가 아직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거짓말을 나에게 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수정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
친한 여자들끼리는 한 여자의 남친이랑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말은 나도 여러 번 들었다. 한수정이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지혜랑 가까우면 얼마나 가까워졌다고 그런 동의를 했을까? 물론 두 여자가 동시에 같이 침대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수정이가 동의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아는 한수정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다.
지혜와 조해수가 왔다. 조해수는 뒷자리로, 지혜는 내 옆자리로 탔다. 우리는 출발했다. 뒤에서 조해수가 말했다.
"나쁜 계집애."
"누구? 나?"
"완전 감쪽같이 속이고 .."
"말 했거든."
"두달 지나서 말해놓고도 말했다고?"
"늦게 했어도 말은 했지."
"그런 일 있으면 바로 말하기로 했잖아!"
"시간이 쫌 걸린 것은 미안하다고.
그래서 오늘 오빠가 쐈잖아."
"야아. 오빠가 나한테만 쐈냐?
사기는 나한테 쳐놓고, 쏘는 데로는 너네 패꺼리들을 죄다 불러들이냐?"
"기다려 봐.
말은 새 나갔고, 오늘은 애들 입부터 막아야 했으니까 그런 것이고.
좀 있다가 너한테 특별히 쏠꺼야.
오빠, 그럴 꺼지?"
"그러자. 지혜가 그래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 대신에 이번 시험 끝나면."
"오빠! 그럼 한달 정도 있어야 하는데?"
"나 지금 회사 일로 바쁘다고 했거든."
"알았어. 한달 정도야 뭐."
"너한테는 <한달 정도>지만, 나한테는 <한달 씩이나>거든요."
"걱정하지 마시고, 시험 공부나 하셔.
우리 오빠 엄청 착하거든.
몇 일 있다가 내가 또 빡씨게 졸라대면 한달 안 걸려도 돼."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지혜는 나에게 웃으며 윙크를 한다.
우리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지혜는 조해수를 데리고 5층에 있는 자기 텔로 가고, 나는 내 텔로 올라왔다.
나는 노트북에서 USB에 담아온 PT파일을 열어보았다. 이경숙이 꼼꼼하게 만들어놓은 파일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내일 회의에서 있을 PT를 머리 속에서 준비했다.
밤 11시가 넘고 있다.
아무래도 분위기로 보면 오늘 공부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혜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빠, 늦어서 미안한데.
우리 와인 딱 두 잔만 하면 안될까?
안주는 내가 들고 올라갈께."
"새삼스럽게 왜 이러실까?
밤 11시가 뭐가 늦어?
이 시간에 술 마신 것이 어디 한두번이야?"
"아이. ..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니잖아."
"그 대신 내일 학교에 가니까 많이는 안돼."
"딱 두잔이면 된다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올라와.
그 대신에 공부부터 하고."
"하이잉. .. 오빠아."
"수학 딱 다섯 문제만 풀고."
"하아. .. 돌겠다. 진짜 이럴꺼야?”
“싫으면 말고.”
“알았어. 갈께."
지혜와 해수가 들어왔다. 지혜는 먹을 것들이 들어있는 종이 팩을, 그리고 해수는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왔다.
나는 얘네들을 데리고 내 책상으로 가서 약속한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이번 학기의 수학은 확률과 통계부분이다. 그런데 지혜는 비록 한 문제를 틀리기는 했지만 다 풀었다. 우리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공식 찾기부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개념을 다시 짚고, 조심해야 할 곳을 체크해주었다. 그런데 조해수는 손도 대지 못하고 내 설명도 알아듣지 못한다. 조해수의 상태는 심각한 것 같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이 문제들은 엄청 길어. 그래서 글을 읽고 이해를 못하는 이과 애들한테는 쥐약이야."
"맞아요. 문제를 몇 번을 읽어도 도통 뭐라는 지 도대체 감이 안 와요."
조혜수는 처음부터가 허당이다. 조해수는 공부를 다시 하겠다면서 손을 들었다.
나는 이들을 소파로 앉게 하고 와인 병을 열었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자리를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조해수가 나에게 물었다.
"오빠, 첫경험은 언제였어요? 어땠어요?"
"야아아. 조해수. 그런 얘기 꺼내면 안되지. 여기 내가 있잖아?"
"하이구우. 서지혜가 그런 말은 또 듣기 싫어하나? 하하하."
"우리 오빠한테 그런 말 시키지 말고 너나 얘기해봐.
어제 밤에 어땠어?"
"어제 밤?
어제 밤에 뭐가?"
"계집애야. 어제 밤에 준석이랑 어쨌냐고."
"준석이가 왜?"
"너 어제 밤에 준석이랑 잤다며?"
"그래. 그게 뭐 잘못됐어?"
"그 잠자리가 어땠냐고!"
"얘는 지금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준석이랑 잤다고 안했어?"
"잤다. 왜? 그게 뭐 이상해?"
"이상한 것이 아니고, 그 잠자리가 어땠냐고."
"너 지인짜 이상하다.
도대체 뭐가 어떻다는 거야?
너네들 다 집에 가고 나서, 치우면서 보니까 맥주가 남았더라.
준석이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잖아?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전화했더니, 금방 오던데?
둘이 소파에서 TV보면서 그 맥주 마시다가 그대로 잠들었어.
정신차리고 보니까 아침 6시반이 넘었던데?
그래서 준석이 깨워서 집에 보냈고, 나도 준비해서 학교로 갔지.
하루 종일 속쓰려서 죽을 맛이었고.
그래. 아침에 정신차리고 보니까 엄청 황당하긴 하더라.
뭘 더 알고 싶은 거야?"
"뭐? .. 뭐야?"
"내 말 이해 못했어?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냥 살아.
나, 똑같은 얘기 두 번은 못하거든.
그런데 너 표정이 왜 이모양이야?"
“어? .. 아냐. .. 너네 참 딱하다고.”
순식간에 지혜의 얼굴이 완전 빨개지고, 지혜는 고개를 숙인다. 나는 지혜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참기로 했다. 비어있는 세 잔에 와인을 따랐다.
"이제 세잔째거든.
마시고 자러 가세요.
이제 잠도 잘 올껄?"
우리는 잔을 비우고, 수다를 떨다가 지혜는 조해수와 같이 내려갔다. 지혜의 얼굴 표정은 밝지가 않다. 나는 내일 있을 PT 준비를 하느라고 제법 늦게까지 있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아이린은 달콤한 키스로 나를 깨웠다.
"애들은요?"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어."
나도 출근 준비를 끝냈다. 오늘은 회의 때문에 외근을 나가지 않으므로 차를 갖고 가기로 했다. 평상시보다 30분정도 일찍 최수희를 태워서 회사로 갔다.
나는 PT 준비를 하고, 최수희는 빵과 커피를 가져왔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면 안돼."
"누나, 고마워."
"얘네들 지금 노숙자야?"
"과장님도 이리 앉으세요."
강은영 과장이 들어오면서 우리를 보고 한마디 했다.
최수희는 강과장을 앉히고, 그녀에게도 커피를 따라준다.
"부장님 전화 받고 어제 밤에 잠을 별로 못 잤어.
막내, 오늘 잘 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심각해요?"
"이번에 부장님이 노땅들을 약간 밀어내야 하는 일이거든.
그럼 그 노땅들이 쉽게 밀리려고 하겠어?
우리가 해낸 이번 분기 20% 증가율이라는 숫자는 지금까지 이 회사 생긴 이후 처음이야.
이번이 완전 기회거든.
이번 아니면 부장님도 가망이 없다고 봐야지."
"그럼 난 뭔지도 모르고 이렇게 해도 돼요?"
"네가 하는 PT가 시작이란 말이야.
일단 오늘 일이 잘 되면 알게 돼.
넌 아무것도 모르니까 마음 푹 놓고 준비한 대로 하면 돼."
"알았어요. 실력껏 할 테니까, 과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과고 출신에 대한대생이니까 그런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을꺼야."
"오늘 하는 PT가 학교랑은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내가 지혜와 함께 나가는데 아이린도 따라 나온다. 아이린은 지혜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면서 지혜에게 말했다.
"지혜 너 지금 일을 키우는 것 아니니?"
"어제 일을 덜컥 벌여놓고, 학교에서 오늘 하루 종일 걔 꼴이 말이 아니었거든.
내가 한 짓이 있어서 그런지, 이 밤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너무 걱정돼."
"아무리 그렇다고 이런 일을 네가 전부 다 저질러놓고, 고스란히 태현씨한테 떠밀면 어떡해?"
"나한테는 오빠 밖에 없는데, 난 그럼 어떡해?
엄마한테 부탁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엄마가 오빠를 하나 낳지 그랬어?
나도 이런 일 처음 겪는 일이거든요.
지금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그냥 내 절친이니까, 이럴 때 혼자 있게 그냥 두면 안될 것 같아서 이렇게 하기는 하는데 .."
"누나. 나 때문에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차라리 잘 됐어요.
지혜 혼자 공부한다고 해도, 정신이 그 친구 쪽으로 쏠려서 집중도 제대로 안될 것 같아요."
"내 생각에도 그런데, 얘네 둘이 오늘 같이 있다고 해서 공부나 하겠어요?"
"내 생각에도 그래.
엄마. 그렇지만 나도 이건 어쩔 수 없어.
오늘 밤에는 나한테 지식보다 인성이 훨씬 더 중요해."
아이린은 PC방으로 올라갔다.
나와 지혜는 내 차에 타고 조해수네 집으로 출발했다.
"오빠. 내가 조해수한테 엄청 잘 못한 것 맞지?"
"글쎄. .. 지혜의 말 한마디가 그런 사건을 만들어 낼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는 것이 문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그런 뻥을 왜 쳤겠어?
아침에 해수한테 그 얘기 처음 들었을 때 내 속이 얼마나 떨렸는데.
무섭고, 겁도 나고."
"피임은 이상 없었겠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했어.
남친은 정신이 제대로 박혔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 남친은 몇 살인데? 대학생이야?"
"대학생은 무슨? 같은 고2지."
"그럼 위험해.
꼭 확인해야 할꺼야.
솔까말로 어제 밤에 걔네들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사고를 친거야.
저 나이에 사고치는 데 앞뒤 따질 것 같니?
네 친구랑 너랑 하는 짓이 똑같을 것 같아."
"뭐야아.
내가 지금까지 계속 오빠한테 그렇게 한 것은 맞아.
그렇지만 나는 아직 오빠랑 사고는 안쳤거든요.
이것은 인정해 줘야 하는 것 아냐?"
"그거야 맞는 말이야.
내가 안따라줬으니까 그렇기도 하거든요.
이것도 인정해줘야죠."
"오빠, 말 잘 꺼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할꺼야?
하기는 할꺼야?
할 마음은 있어?
내가 오빠 마음에 그렇게도 안들어?"
"얘가 지금 뭐라는거야?"
"조해수는 한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그날 바로 해치우잖아.
그런데 나는 몇달째 이게 뭐야?
애들한테 뻥이나 치고.
진짜 내 자존심 엄청 망가지고 있는 것 안보여?"
"일등급 약속은 지켜야겠지?
그리고 나서 캐나다에 있는 수정이한테 물어봐."
"진짜? 언니가 하라고 하면 하는 거지?"
"그래."
"그럼 얼마 안남았네.
오빠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내가 언니한테 지난 번에 허락을 받아놨어."
"뭐야?"
"내 말 못 믿겠으면 오빠가 직접 물어보든가."
"아무리 그래도 아직 일등급 아니거든."
"그건 성적표 고쳐서 복사하면 되거든."
"요게?"
"오빠도 없던 조건을 자꾸 창조해내면서 치사하게 나오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다 이거야."
"내가?"
"지난 번에 언니 허락 받는다는 말은 없었거든요."
"오늘은 보니까 너 진짜 화려하더라.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결혼한다는 둥.
과외 시작하면서 뻑 갔다는 둥.
이렇게 뻥이나 치면서 살면 행복해?"
"오빠. 그 정도는 뻥도 아냐.
남친도 없으면서 우리한테 말할 때는 있다고 뻥치는 애도 있고,
집에서 TV 틀어놓고 데이트 중이라고 사기치는 애도 있고.
나는 어제 안하고도 했다고 했잖아."
나는 차를 주차장에 주차했고, 지혜는 차에서 내리면서 조해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내가 올라가서 데려올게."
지혜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이 보였다.
지혜가 한수정에게서 허락을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지혜가 수정이에게 정말로 물어봤고, 또 수정이는 지혜가 하는 말에 정말로 동의했을까?
혹시 지혜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혜가 장난 삼아 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여러 번 있다. 요새는 오히려 내가 지혜에게 거짓말을 심하게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지혜가 아직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거짓말을 나에게 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수정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
친한 여자들끼리는 한 여자의 남친이랑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말은 나도 여러 번 들었다. 한수정이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지혜랑 가까우면 얼마나 가까워졌다고 그런 동의를 했을까? 물론 두 여자가 동시에 같이 침대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수정이가 동의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아는 한수정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다.
지혜와 조해수가 왔다. 조해수는 뒷자리로, 지혜는 내 옆자리로 탔다. 우리는 출발했다. 뒤에서 조해수가 말했다.
"나쁜 계집애."
"누구? 나?"
"완전 감쪽같이 속이고 .."
"말 했거든."
"두달 지나서 말해놓고도 말했다고?"
"늦게 했어도 말은 했지."
"그런 일 있으면 바로 말하기로 했잖아!"
"시간이 쫌 걸린 것은 미안하다고.
그래서 오늘 오빠가 쐈잖아."
"야아. 오빠가 나한테만 쐈냐?
사기는 나한테 쳐놓고, 쏘는 데로는 너네 패꺼리들을 죄다 불러들이냐?"
"기다려 봐.
말은 새 나갔고, 오늘은 애들 입부터 막아야 했으니까 그런 것이고.
좀 있다가 너한테 특별히 쏠꺼야.
오빠, 그럴 꺼지?"
"그러자. 지혜가 그래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 대신에 이번 시험 끝나면."
"오빠! 그럼 한달 정도 있어야 하는데?"
"나 지금 회사 일로 바쁘다고 했거든."
"알았어. 한달 정도야 뭐."
"너한테는 <한달 정도>지만, 나한테는 <한달 씩이나>거든요."
"걱정하지 마시고, 시험 공부나 하셔.
우리 오빠 엄청 착하거든.
몇 일 있다가 내가 또 빡씨게 졸라대면 한달 안 걸려도 돼."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지혜는 나에게 웃으며 윙크를 한다.
우리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지혜는 조해수를 데리고 5층에 있는 자기 텔로 가고, 나는 내 텔로 올라왔다.
나는 노트북에서 USB에 담아온 PT파일을 열어보았다. 이경숙이 꼼꼼하게 만들어놓은 파일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내일 회의에서 있을 PT를 머리 속에서 준비했다.
밤 11시가 넘고 있다.
아무래도 분위기로 보면 오늘 공부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혜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빠, 늦어서 미안한데.
우리 와인 딱 두 잔만 하면 안될까?
안주는 내가 들고 올라갈께."
"새삼스럽게 왜 이러실까?
밤 11시가 뭐가 늦어?
이 시간에 술 마신 것이 어디 한두번이야?"
"아이. ..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니잖아."
"그 대신 내일 학교에 가니까 많이는 안돼."
"딱 두잔이면 된다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올라와.
그 대신에 공부부터 하고."
"하이잉. .. 오빠아."
"수학 딱 다섯 문제만 풀고."
"하아. .. 돌겠다. 진짜 이럴꺼야?”
“싫으면 말고.”
“알았어. 갈께."
지혜와 해수가 들어왔다. 지혜는 먹을 것들이 들어있는 종이 팩을, 그리고 해수는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왔다.
나는 얘네들을 데리고 내 책상으로 가서 약속한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이번 학기의 수학은 확률과 통계부분이다. 그런데 지혜는 비록 한 문제를 틀리기는 했지만 다 풀었다. 우리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공식 찾기부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개념을 다시 짚고, 조심해야 할 곳을 체크해주었다. 그런데 조해수는 손도 대지 못하고 내 설명도 알아듣지 못한다. 조해수의 상태는 심각한 것 같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이 문제들은 엄청 길어. 그래서 글을 읽고 이해를 못하는 이과 애들한테는 쥐약이야."
"맞아요. 문제를 몇 번을 읽어도 도통 뭐라는 지 도대체 감이 안 와요."
조혜수는 처음부터가 허당이다. 조해수는 공부를 다시 하겠다면서 손을 들었다.
나는 이들을 소파로 앉게 하고 와인 병을 열었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자리를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조해수가 나에게 물었다.
"오빠, 첫경험은 언제였어요? 어땠어요?"
"야아아. 조해수. 그런 얘기 꺼내면 안되지. 여기 내가 있잖아?"
"하이구우. 서지혜가 그런 말은 또 듣기 싫어하나? 하하하."
"우리 오빠한테 그런 말 시키지 말고 너나 얘기해봐.
어제 밤에 어땠어?"
"어제 밤?
어제 밤에 뭐가?"
"계집애야. 어제 밤에 준석이랑 어쨌냐고."
"준석이가 왜?"
"너 어제 밤에 준석이랑 잤다며?"
"그래. 그게 뭐 잘못됐어?"
"그 잠자리가 어땠냐고!"
"얘는 지금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준석이랑 잤다고 안했어?"
"잤다. 왜? 그게 뭐 이상해?"
"이상한 것이 아니고, 그 잠자리가 어땠냐고."
"너 지인짜 이상하다.
도대체 뭐가 어떻다는 거야?
너네들 다 집에 가고 나서, 치우면서 보니까 맥주가 남았더라.
준석이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잖아?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전화했더니, 금방 오던데?
둘이 소파에서 TV보면서 그 맥주 마시다가 그대로 잠들었어.
정신차리고 보니까 아침 6시반이 넘었던데?
그래서 준석이 깨워서 집에 보냈고, 나도 준비해서 학교로 갔지.
하루 종일 속쓰려서 죽을 맛이었고.
그래. 아침에 정신차리고 보니까 엄청 황당하긴 하더라.
뭘 더 알고 싶은 거야?"
"뭐? .. 뭐야?"
"내 말 이해 못했어?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냥 살아.
나, 똑같은 얘기 두 번은 못하거든.
그런데 너 표정이 왜 이모양이야?"
“어? .. 아냐. .. 너네 참 딱하다고.”
순식간에 지혜의 얼굴이 완전 빨개지고, 지혜는 고개를 숙인다. 나는 지혜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참기로 했다. 비어있는 세 잔에 와인을 따랐다.
"이제 세잔째거든.
마시고 자러 가세요.
이제 잠도 잘 올껄?"
우리는 잔을 비우고, 수다를 떨다가 지혜는 조해수와 같이 내려갔다. 지혜의 얼굴 표정은 밝지가 않다. 나는 내일 있을 PT 준비를 하느라고 제법 늦게까지 있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아이린은 달콤한 키스로 나를 깨웠다.
"애들은요?"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어."
나도 출근 준비를 끝냈다. 오늘은 회의 때문에 외근을 나가지 않으므로 차를 갖고 가기로 했다. 평상시보다 30분정도 일찍 최수희를 태워서 회사로 갔다.
나는 PT 준비를 하고, 최수희는 빵과 커피를 가져왔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면 안돼."
"누나, 고마워."
"얘네들 지금 노숙자야?"
"과장님도 이리 앉으세요."
강은영 과장이 들어오면서 우리를 보고 한마디 했다.
최수희는 강과장을 앉히고, 그녀에게도 커피를 따라준다.
"부장님 전화 받고 어제 밤에 잠을 별로 못 잤어.
막내, 오늘 잘 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심각해요?"
"이번에 부장님이 노땅들을 약간 밀어내야 하는 일이거든.
그럼 그 노땅들이 쉽게 밀리려고 하겠어?
우리가 해낸 이번 분기 20% 증가율이라는 숫자는 지금까지 이 회사 생긴 이후 처음이야.
이번이 완전 기회거든.
이번 아니면 부장님도 가망이 없다고 봐야지."
"그럼 난 뭔지도 모르고 이렇게 해도 돼요?"
"네가 하는 PT가 시작이란 말이야.
일단 오늘 일이 잘 되면 알게 돼.
넌 아무것도 모르니까 마음 푹 놓고 준비한 대로 하면 돼."
"알았어요. 실력껏 할 테니까, 과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과고 출신에 대한대생이니까 그런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을꺼야."
"오늘 하는 PT가 학교랑은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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