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막내 과장 - 농담이라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린이 나를 깨운다. 그런데 그녀가 오늘 아침에는 키스로 깨우지 않고 그냥 흔들어서 깨우는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지금 소파에, 그리고 내 침대에는 지혜가 있다. 눈을 뜨자 내 얼굴 바로 위에 아이린의 얼굴이 와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아이린에게 물었다.
"지혜는요?"
"이제 깨워야지."
나는 두 손으로 아이린의 얼굴을 잡아서 당겼다. 우리의 입술이 맞닿으면서 나는 아이린의 입술이 말랑말랑한 감촉을 느끼고 싶었지만, 아이린은 바로 내 입술을 빨아당긴다. 나도 아이린의 입술을 빨았다. 그녀가 약간 서두르는 것 것 같다.
"이제 고만하고 일어나."
"몇시죠? 알람 아직 안 울었는데?"
"내가 껐어. 7시 40분이야.
커피 끓여놓았으니까 일어나서 마셔.
난 지혜한테 가봐야 해."
"지혜 오늘 소풍이라고 했죠?"
"응."
나는 일어나면서 아이린의 스커트 위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내 손등을 탁 치고 침실로 들어갔다.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데 아이린이 나오고 지혜가 왼전 부시시로 침실에서 나온다. 지혜는 나를 보고 입을 비쭉거리면서 한마디 한다.
"오빠, 내가 소파에서 자지 말라고 했잖아!"
"잘 놀고 와!"
아이린과 지혜는 오피스텔을 나간다.
최수희에게서 전화가 온다.
"자기 오늘 출근 해? 어제 과장님 그러시던데 .."
"지금 커피 마시고 출발할껀데요."
내가 차를 가져가기로 하고, 내가 최수희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샤워하고 출근 준비를 끝냈다. 오늘은 20분 정도 일찍 도착할 계획이다. 최수희랑 만나기로 한 시간 까지는 아직 10분 정도가 남아있다. 커피 한잔을 더 마시고 집을 나섰다.
최수희네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도 나를 알아보고 빠른 걸음으로 나를 향하여 걸어온다. 하얀 운동화와 청바지에 흰 남방과 갈색 가디건. 어깨에서 찰랑거리는 머리. 그리고 야구모자. 등에 지고 있는 조그만 검정 가방. 그녀가 내 옆 자리의 문을 열고 차에 탄다. 향긋한 화장품과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랫만."
"누나도 오랫만."
"향이 상큼하고 부드럽다고 해야하나?"
"자기 만난다고 신경 좀 썼거든.
지난 번 그거. 안나 수이 페어리 댄스 (Anna Sui Fairy Dance)."
"아무튼 향이 누나다워. 정말 상쾌하고, 산뜻하다."
"고마워. 그런데 오늘 립서비스 엄청 맘에 든다."
"진짜거든."
"알았어. 여친 일요일에 갔다며? 괜찮은거지?"
"내가 왜? 누나, 왜 그러는데?"
"어제 안와서."
"나 보고싶었구나?"
"그걸 말이라고 해? 어제 밤에 우리 집에 올 줄 알았는데."
"왜?"
"와서 같이 자고 같이 출근하게."
"저쪽 알바가 새벽 네시쯤 끝났어."
"어떡해? 아직 졸립겠구나."
"지금은 괜찮아."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캔커피와 쵸콜렛 15인분을 샀다.
"웬걸 이렇게 많이 사?"
"예쁜 누나들을 2주일 동안이나 못 봐서."
"이렇게 귀여운 짓을 한다니까."
"미안하잖아. 열심히 일하는데 혼자 2주일 동안 펑펑 놀고 .."
"자기 오늘 심하게 잡히고 낚이고 그럴 것 같다."
"누나, 오늘은 아침 일찍 도망치자."
"어차피 외근이니까."
우리는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예상대로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나와 최수희는 책상 위에 캔커피와 쵸콜렛을 놓아주고 자리에 앉았다. 최수희가 업무일지를 들고 와서 나에게 지난 일주일 간 있었던 일을 얘기해준다. 나는 방효은과 이경숙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갑자기 복도가 왁자지껄 하면서 여자들이 사무실로 들어선다. 곽은숙과 조애린이다.
"와앙. 우리 막내 왔다."
"야! 막내. 어디 얼굴 좀 보자."
박은희 대리와 강은영 과장이 들어온다.
"꺄아악."
"뭐야?"
"과장님, 저게 누구죠?"
"하하. 우리 막내 왔구나."
나혜지가 탄성을 뱉고, 곽은숙이 말을 받는다.
"하아. .. 어떡해?"
"워?"
"언니, 책상에.."
"하아. .. 저거 완전 귀염 귀염."
사무실에 빈 자리가 모두 찼다. 알바생들도 모두 들어왔다. 최수희가 알바생들에게도 커피와 쵸콜렛을 돌린다. 방효은과 이경숙도 들어와서 나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한다.
"우리 막내가 다시 출근하면서 주는 거야."
"고맙습니다."
"앗. 그럼 오늘부터 오빠가 다시 나오는 건가요?"
강은영 과장이 최수희와 나를 부른다.
"막내야. 최수희씨랑 이리 와 봐요."
"얍."
최수희는 외근 일정을 방효은에게 넘겨주고 나와 함께 강은영 과장에게 갔다.
"내 말 잘들어.
우리가 매장 감시팀을 운영하면서 지금 그룹 전체에 완전 비상이야."
"갑자기 비상은 웬 비상?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나요?"
"그게 아니야.
결산 준비 하면서 회사가 완전 뒤집어진대.
몇달 내에 벌서 매출액이 20% 정도가 증가하고 있단다.
이번에 부장님도 상무로 승진하실 것 같대."
"와아아. 그럼 우리 과장님은 차장으로?"
"아냐. 난 부장으로 바로. 이건 아직 확실한 건 아냐."
"뭐가 급하셔서 추월까지 하신대?"
"우리 부장님은 자기가 믿는 사람만 고집하거든.
자기 자리에는 나만 앉히겠대."
"지진이라도 났나? 하하."
"우리 막내가 전생에 나 강은영을 위해서 뭔가를 구했나봐. 하하."
"과장님, 그럼 4분기 인사발령은 10월인데요?"
"수희씨. 그래서 말인데.
매장 감시팀을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아이디어를 짜래."
"효율? 무슨 말이죠?
우리 지금 충분히 효율적인데?
안그러니 막내야?"
"팀도 더 잘 운영하고, 또 그동안 보아온 매장의 운영실태도 종합적으로 개선하도록."
"대략난감이네."
"이번에 간부회의에서 브리핑을 원래는 부장님께서 하셔야 하는데,
부장님은 내용을 잘 모르시니까 나보고 회의장에 들어와서 직접 하랜다."
"과장님, 그런 정도면 PT파일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내용이라도 우선 먼저 짜보라고."
"그럼 오늘 외근은 어쩌죠?"
"막내한테 이 일을 넘기고, 오늘 외근은 최수희씨가 데리고 나가."
"어떡해. .. 막내 오자마자 이런 골치 아픈 일을 .."
"누나, 괜찮아요. 시간은 얼마나 있어요?"
"늦어도 내일까지는 끝내야 해."
"아니. .. 너무 촉박. .."
"부장님께서 어제 최수희씨 퇴근하고 나서 말씀하시는데.
나는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미치는 줄 알았어."
"막내야, 할 수 있겠지?"
"할께요."
나는 외근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최수희를 안심시켜서 내보내고, 사무실에 남았다. 강은영 과장은 이경숙에게 사무실에 남아서 나를 도우라고 했다. 나를 향하는 방효은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진다.
우선 그 동안 업무일지를 검토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그런데 그 업무일지는 대부분 나와 최수희가 작성한 것이므로 내용은 거의 다 알고 있다. 최근 것으로 몇 개만 보면 된다.
나는 문제점으로 지금 업무를 지원받아서 하는 형식을 우선 문제로 삼았다. 인원은 많지만 다들 자기 일이 따로 있으므로 1인 2역이 문제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담인력을 둔다면 시간도 여유가 생기고, 무엇보다도 전문성과 노우하우가 쌓이기 때문에 좋을 것 같다. 우리 팀의 공식 명칭도 "업무지원팀"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번째 문제는 매장에서 인력을 배치하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부지런하고 일을 잘 한다고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의식하자는 것이다. 식품 코너나 생활 필수품 코너에는 미혼 여성만 배치하는 것 보다는 가정 주부가 함께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육아용품을 판매하는 코네에는 최근에 아기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엄마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
세번째 문제로는 우리가 다른 마트들의 실태를 너무 모른다는 점을 들었다. 대형 또는 중형 마트들이 성공하는 데에는 고객이 느끼는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물건을 쌓아놓고 사가라는 동네 슈퍼식으로 운영한다. 독불장군이 성공하는 경우는 엄청 드물다.
등등 ..
나는 10가지의 문제로 압축했다. 나는 이 문제들을 최수희에게 카톡으로 날려주었다. 또 점심 시간이 끝나자 강과장은 나를 불러서 진행되는 것을 점검을 했다.
"얼만큼 했어?"
"골격은 다 잡았고 살 붙이는 중입니다."
"너무 빠른데. 완전 날탕으로 한 것은 아니겠지?"
"함 보세요."
나는 이경숙에게 파일을 USB에 담아오라고 해서 강과장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이경숙은 강과장의 컴퓨터에서 파일을 열고, 한페이지씩 천천히 넘겨주었고, 강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여다 본다.
"거의 끝나가는 중입니다."
"뭐가 이리 복잡해?"
"이건 과장님을 생각해서 엄청 간단하게 만든 건데요?"
"아니. 이런 일이 있었으면 지금까지 왜 나한테 아무 말이 없었지?
이런 내용으로 가면 되레 우리가 깨지겠는데."
"과장님, 그게 아니고 우리는 업무일지에 조금씩 건의를 했었거든요. 이거는 내 머리 속에서 지금 뽑아낸 것이 아니고 그 건의사항들을 요약한 건데요."
"하아. .. 업무일지 결재하면서 나나 부장님이나 누가 건의 사항까지 꼼꼼하게 다 읽었나?
이걸 어떻게 하지?"
"이경숙이 PT파일 만들고 있으니까 이것을 워드파일로 다시 풀어서 오늘 드릴께요. 미리 검토하시면 안되나요?"
"그럴 시간이 나한테 있냐? 나는 내일 하루 종일 경리과에 있어야 해. 이번 3분기 감사 준비하는 중이거든."
"흐으음.. 그럼 과장님 야근하셔야 .."
"야아.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일로 야근까지?"
"어쩐다죠? 제가 대신 해드릴 수도 없고."
"대신? 우리 막내가 내 대신?"
"대신 하려면 저 보다는 수희 누나가 .."
"아니야. 나중에 질문이 들어오기 때문에 내용도 모르면서 중얼거리기만 하면 안돼."
강과장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날보고 계속 하라고 했다. 이경숙은 PT 파일을 만드는 데는 완전 달인이다. 글자 포인트나 색깔 음영까지 너무 마음에 든다.
"경숙아. 너 지금 너무 빨리 하는데? 금방 끝나겠네."
"왜? 급하다며?"
"우리가 이런 스피드로 해치우면, 다른 누나들이 일 못한다고 책잡혀."
"빨리 해도 문제네."
"과장님은 내일까지라고 하셨는데."
"오빠가 문제야. 초안 작성을 너무 빨리 했잖아.
나야 자판만 두들기면 되는데, 몇 글자 되지도 않는데 오래 걸릴 이유가 없거든."
"그럼 이거는 일단 끝내서 오빠한테 줄께. 그 다음에 이것을 다른 파일로 복사해서 중간 중간에 몇 줄씩 지워서 진행형 파일을 따로 만들면 돼요. 하하."
강과장은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바로 나를 자기 자리로 불렀다.
"오늘 끝낼 수 있어?"
"해볼께요."
"부장님이 이따 막내 너한테 시켜보겠대.
부장님 마음에 들게 잘 하면 아마 네가 직접 하게 될거야."
"예에? 제가요?"
"혹시 알아? 잘만 하면 네가 이 과장자리까지도 물려 받을지. 하하하"
"과장이라뇨?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으이구우. 농담이야!"
"과장님! 깜짝 놀랬잖아요!"
"누나라니까!"
"누나! 비기 싫어요!"
"아오.. 귀여버라."
"그러지 말고 최수희 누나 불러들여요."
"걔는 무슨 일을 하면 처음에는 항상 버벅거리는 습관이 있어서 안돼."
다섯명의 여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등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은영 과장은 내 등에 대고 한마디 했다.
"막내야. 지금 두시 반이거든.
부장님 이따가 네시 쯤에 내려오실꺼야."
내 자리로 돌아오자 이경숙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한다.
"과장 오빠!"
"콱!"
"끝났어요. 함 보세요. 헤헤."
"너무 빠르다니까."
"이건 오빠꺼라니까."
나는 이경숙이 만든 파일 내용을 체크하면서 머리 속에서 시나리오를 짰다. 원래는 시나리오를 따로 짜야 하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침착하게 하는 수 밖에 없다.
최수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자기 과장 달았다며? 하하하."
"뭐야?"
"지금 들어가는 길이야. 기다려."
박은희 대리가 지나가면서 내 어깨를 툭 친다.
"막내 과장님. 하하."
최수희가 팀을 전부 데리고 들어왔다. 4시가 넘었다는 얘기다 나는 긴장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최수희는 업무 보고서와 업무일지를 쓰도록 시키고 나에게 왔다. 이경숙은 최수희에게 PT파일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팀장님. 막내 오빠 시간 없으니까 건드리지 마시고, 차라리 이것을 보세요."
이경숙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촤수희에게 앉아서 보라고 했다. 강은영 과장은 박은희 대리에게 회의실에 가서 준비하라고 했다. 이경숙이 머그컵에 커피를 가져왔다.
강은영 과장이 나를 부른다.
"막내야. 부장님 회의실에 도착하셨단다.
최수희씨, 막내랑 이경숙도 같이 가자."
나는 부장이라는 남자를 몇 번 보고 인사를 한 적은 있지만 얘기를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은근 걱정이 된다. 이런 정도의 브리핑이야 금방 그리고 깔끔하게 끝낼 자신은 있다. 그런데 내가 빠른 시간에 일을 해치우면 다른 누나들이 앞으로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내가 군에 있을 때 체험한 것이다.
우리는 회의실로 들어섰다. 강은영 과장은 나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박은희 대리는 이경숙과 함께 PT 파일을 빔 프로젝트에 쏘았다. 부장이 말했다.
"퇴근 준비들 해야 하는데 미안해요.
김태현이라고 했지?
그럼 시작해봐."
나는 앞에 있는 연설대로 나갔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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