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야, 잘 되고 있는 거 맞지?"
작업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갈 때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질문만 하는 철호를 보며 민수 또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철호야, 한동안 괜찮다 했는데 또 그 의심병 도진거냐?"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줄 아냐? 의뢰인이 허구헌날 전화를 하니깐 그러지"
"한 두 번 겪는 일이냐? 사람이 이제는 적당히 넘어갈 줄을 알아야지"
"그래도..."
"그래 이자식아! 알았다. 았았어"
내내 장난끼를 유지하던 민수의 눈에 순간적으로 장난끼가 사라지고 진지해진다.
"음... 너도 대충은 내 패턴을 알아서 예상을 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아주 좋다고 말할 수 있어"
"그렇지"
"하지만 항상 내가 말하는 거 있지? 여자는 감정적인 동물이라 변수가 많다고"
"그렇지"
"지금은 상황이 좋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게 정말 상황이 좋은지는 나도 몰라. 단순히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지"
"매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불안해 지는데?"
"맞아! 일부러 내가 불안함을 느끼려고 이런 말을 꺼내는 거야"
"..."
"항상 마음 속에 불안감을 가지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생각을 해놔야지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적절하게 대처를 할 수가 있지"
"그래서 네가 이 바닥에서 최초이고 또 최고 아니겠냐"
철호의 칭찬에 민수의 얼굴에 뿌듯함이 느껴진다.
"풉... 내가 최고가 아니라 우리가 최고다! 너의 그 정보수집 능력과 물질동원 능력이 없다면 내가 있겠냐?"
갑자기 남자끼리의 대화가 진지해지자 철호가 얼굴을 붉히며 주제를 환기 시킨다.
"닭살 돋는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칫... 재미 없는 자식"
약간의 투정을 뱉은 민수가 이제는 정말 본론을 말하려는지 속사포 같이 입을 연다.
"일단 오늘 그년을 달아오르게 만드는데는 성공한 것 같다. 심장 소리가 아주 요란을 떨더라. 상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고 얼굴과 몸매도 군침이 돌아서 참느냐고 힘들었다. 가사가 기억나지도 않는 애국가만 즉석으로 창작했다"
"참았다고? 분위기 좋으면 그냥 마무리 하지 그랬어?"
"오늘 했으면 일이 더 쉬워졌을거야. 하지만 그 뿐이야... 단순히 엔조이로 변질될 우려가 크지"
"그래서 오늘은 달아오르게만 만들고 다음번에 마무리를 하겠다? 또 당연히 연락처도 안 물어봤을테고 밤새 아쉬움에 너를 그리워하며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는 그녀에게 우연적으로 접근을 하겠다?"
"잘 아네~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유부녀가 아니라는 거짓말을 유도한 후 마무리 지으면 끝나지. 이제 네가 해야 할 일도 잘 알겠지?"
민수의 말에 조금은 소심해 보이던 철호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놈아! 나랑 상의도 없이 전략을 수정하면 어쩌자는 거냐? 나라고 항상 모든 상황에 맞춰서 밑밥을 깔 수 있는 줄 알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내는 화는 유달리 무서운 법이다. 민수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철호의 눈치를 본다.
"미리 문자라도 할걸 그랬나..."
민수의 조심스러운 눈치 작전에 철호의 표정이 풀리는 게 감지된다. 아마 철호 역시 단순한 투정이였나 보다.
"사람은 항상 정해진 시간, 정해진 길을 다니게 되있어. 내가 누구냐? 문제될 거 없다"
"역시 철호 네가 최고다!"
"근데 넌 진짜 그 버릇 좀 고쳐라. 나도 내 생활이 있는데 이렇게 함부로 전략을 수정하면... 에휴... 오늘도 밤새야 하나?"
민수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이년 성공하면 너도 먹게 해줄게"
"됐다. 나도 이제 곧 유부남인데 가정에 충실해야지... 아차!"
철호의 갑작스런 감탄성에 민수가 의문을 표한다.
"아차?"
"민애 그년 동생 민아에 대해서 정보가 들어왔더라"
"그래? 읊어봐"
"고딩이라서 별다른 건 없더라"
"고딩?"
"그래 고3이더라고... 조심해라 잘못하면 물린다"
"오랜만에 고딩이라서 이거 흥분 되는데? 가끔씩 별미를 먹어줘야 하는데 말이야"
"조심해라 복어일 수도 있다"
"그 나이 때는 그저... 남들이 좋아라 하면 나도 좋고... 남들이 멋있다 하면 좋고... 오히려 공략하기가 쉽지"
"어쨋든 조심하고 대충 정보에 대해서 말해줄게"
"그래"
"고딩이라서 별달리 특이한 점은 없고, 매일 6시부터 12시까지 서면동에 제일 독서실이라는 곳에서 공부를 하더라"
"범생인가 보네?"
"그래, 성적은 학급에서는 2등, 학년에서는 13등이니깐"
"으음... 범생이라..."
"미모는 역시 핏줄 탓인지 제법 떡잎이 보이지만, 언니와는 다르게 여중, 여고를 다니는 범생이라 아직까지 남자친구는 못 사겨봤고"
"남자에 대한 로망이 마음속에 가득하겠구만"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아차! 밤 12시에 독서실이 끝나면 아버지가 독서실 앞으로 데리러 온다"
"공주님이구만"
"그리고..."
"그리고?"
"없다. 끝!"
한창 시나리오를 그리던 민수의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혈액 공급이 중단된다.
"참나... 정보가 너무 없는 거 아니야?"
"고3이 다 똑같지... 발 사이즈라도 알려주랴?"
"됐다. 됐어... 그건 그렇고 다음 개시일이 언제냐?"
"일요일 6시쯤? 4시쯤에 나랑 만나자"
"아니 그년 말고 동생년 말이야"
"아... 그건 일요일? 12시 전에 언니년 빨리 마무리 짓고 동생년한테 가자"
"힘들겠구만..."
몇 일간의 꿈같은 휴식을 보내다 복귀를 하니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일종의 월요병 일까?
"민수야, 뭐하냐?"
잠시 멍을 때려서인지 악셀을 계속 밟은 채로 있었나보다. 백미러로 위협을 감지한 앞차가 길게 크락션을 울린다.
-부아아앙-
상념에서 깨어난 민수가 머쓱한지 농담을 한다.
"근데 티코 따위가 무슨 크락션은 덤프트럭 저리 가라냐"
"아스팔트에 붙은 껌에도 붙는 차인데 위기감을 많이 느꼈나보지"
사람들은 섹스 청부업자라는 직업이 호스트나 카사노바처럼 자신의 욕심을 채워가며 즐기는 일종의 오락같은 직업인줄 착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목표물 하나와 한마디를 하자고 10시간이 넘게 죽치고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오. 상대의 말에 있어 보이게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독서량... 독서량 하니 생각나는 건데 목표물의 취미가 독서... 거기에 철학쪽을 좋아한다면...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흥미롭게 말하기 위해 원치 않게 여성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 여성 잡지 등을 읽어야 하고, 또한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항상 웃으며 경계심 없이 멋지고 편안한 남자인척 연기를 해야 하는 게 섹스 청부업자라는 직업이다.
"다 왔다"
"편의점에서 먼저 물건 사들고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어. 보이면 전화 줄게"
"알았다. 으휴... 오늘은 제발 빨리 좀 왔으면 좋겠다"
사람의 이동 동선과 시간대는 90% 정도는 일치하게 되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매일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길로 출근을 하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길로 퇴근을 하지 않는가?
-부우우웅-
"이제 시작이군"
민수가 건물 안쪽 구석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역시나 익숙한 빨간색의 귀여운 차가 느릿느릿 지나간다.
"제발 멈춰라"
그녀의 생각이 그동안 바뀌었을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허름한 트럭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처음부터 새하얀 백지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답지 않게 민수의 가슴이 떨린다.
"옳지!"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폐차 직전의 트럭,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 사이에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주차단속 요원들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는 트럭은 의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느리게 기능을 상실한 도로를 빠져 나오던 미니쿠퍼가 이제는 기어 다니다시피 천천히 지나간다.
"타이밍이다"
검은 봉다리를 들고 민수가 허름한 트럭으로 다가가니 미니쿠퍼 또한 트럭 뒤편으로 정차한다.
"풉..."
"어머! 진달래의 눈물! 그 책 나도 정말 재밌게 봤는데..."
여자의 자존심 일까? 분명 민수를 보고 차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며 자신의 존재감만 드러낸다.
"하여튼 여자들이란... 안 그래도 아는 척 하려고 했었다"
민수가 자신을 인지하도록 고개를 크게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순간 그녀가 움찔거린다. 그리고 민수가 기억이 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접근을 하니 의식을 하나보다. 그녀의 발음이 점점 꼬인다.
"끄으래? 음! 음! 하여튼 진달래... 음... 그거 말고도..."
어느덧 민수와 그녀와의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고, 차 안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정확히 말하면 전화통화를 하는 척 하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우연이! 또 뵙네요!"
민수의 말에 그녀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몸을 들썩이며 탄성을 토해낸다.
"어머! 깜짝이야!"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친구랑 통화에 너무 집중을 해서..."
고백 받은 자의 여유 일까? 그녀가 민수에게 관심을 받으려 이러한 행동을 한순간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민수 쪽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말을 이어나가기 힘든 그녀의 답변을 들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고는 마치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갈 듯 뒤로 한 걸음 물러나니 그녀가 급하게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고아원 다녀오시나 봐요?"
"네, 오늘도 막내 녀석 때문에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네요. 이제 시간도 널널하고 자유롭네요"
"아... 그럼 이제 놀러 가시겠네요?"
"놀러가긴요... 저녁 먹고 집에서 푹 쉬어야죠. 너무 피곤하거든요"
"아... 벌써 저... 녁... 시간이구나"
그녀가 저녁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민수를 바라본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녁식사 같이 하실래요?"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가지만 이내 다시 내려오고 곤란한 표정으로 바뀐다.
"제가 시간이..."
"시간이 없으시면 어쩔 수 없구요"
"괜찮을 거 같네요.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친한 친구라서 취소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쪽 말대로 이것도 인연인데 말이죠"
"풉... 저녁 식사는 무슨... 마트에서 장보고 집에 가는 길이면서"
속으로는 비웃지만 겉으로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민수가 말한다.
"오늘은 친구랑 같이 고아원에 가서요. 친구한테 말하고 다시 올게요. 숙녀 분 차 타고 가죠"
민수가 다시 트럭으로 걸음을 옮겨 검은 봉다리를 놓고 민애의 조수석에 타니 그녀의 아찔한 옆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바비인형을 닮은 유명 연예인을 연상케 하는 오똑한 코, 한 손에 잡힐 듯한 길고 가녀린 목, 무거워 대신 받쳐주고 싶을만큼 부성본능(?)을 자극하는 풍만한 가슴, 편안하고 타이트해 보이는 원피스이지만 가슴과는 상반되게 여유가 남아 허리라인 부근에서 세로로 길게 접힌 가녀린 허리, 초등학생이 원피스 밑단을 잡고 아이스께끼를 하여도 초등학생의 힘만으로는 골반 위로 들어올리기 쉽지 않아 보이는 옷 위로 터져 나올 듯한 엉덩이, 베이지색 원피스 밑단이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에 율동을 칠 때마다 수많은 남자들의 정복욕을 자극한다.
"어디로 가죠?"
민수가 자신의 몸매를 훔쳐본다는 것을 눈치 챘던 것인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민수가 당당하게 시선을 떼지 않고 말한다.
"미니쿠퍼는 작은 차라 불편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편안하네요. 그쪽도 자세가 딱 잡힌 게 편안해 보여요"
민수의 말에 그녀의 뿌듯한 표정이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네... 그렇네요"
"저는 김민수라고 합니다"
민수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니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으로 민수의 손을 잡는다.
"저는 김민애라고 해요"
서로의 손을 잡으며 잠시 눈빛교환을 한 후 민수가 말을 잇는다.
"민애씨! 일단, 한북동으로 가시죠"
악셀을 가볍게 밟고 도로를 빠져나가며 그녀가 묻는다.
"한북동에 괜찮은 곳이 있나 봐요?"
"아... 좀 거리가 있죠? 제가 한북동에 살거든요"
"아..."
"저희 집에 가는 거에요"
"네?"
그녀의 놀람에도 전혀 영향 받지 않고 민수가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저희집 근처에 돈까스가 죽이는 배달 전문점이 있거든요"
"네? 풉... 저번에도 모텔... 에서 짜장면 시켜 드시더니..."
아무래도 낯선 남자와 모텔에 갔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나보다. 모텔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다.
"저번에도 게눈 감추듯이 짜장면 드셨잖아요. 이번에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머! 제가 언제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고 그래요?"
"어쨋든요! 아! 그리고 이번에도 제가 당부 드리지만... 남자랑 둘만 있다고 절 덮치시거나 그러면 안 되요!"
"풉... 덮치긴 누가 덮쳐요! 돈까스 맛 없으면 각오나 하세요!"
작업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갈 때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질문만 하는 철호를 보며 민수 또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철호야, 한동안 괜찮다 했는데 또 그 의심병 도진거냐?"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줄 아냐? 의뢰인이 허구헌날 전화를 하니깐 그러지"
"한 두 번 겪는 일이냐? 사람이 이제는 적당히 넘어갈 줄을 알아야지"
"그래도..."
"그래 이자식아! 알았다. 았았어"
내내 장난끼를 유지하던 민수의 눈에 순간적으로 장난끼가 사라지고 진지해진다.
"음... 너도 대충은 내 패턴을 알아서 예상을 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아주 좋다고 말할 수 있어"
"그렇지"
"하지만 항상 내가 말하는 거 있지? 여자는 감정적인 동물이라 변수가 많다고"
"그렇지"
"지금은 상황이 좋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게 정말 상황이 좋은지는 나도 몰라. 단순히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지"
"매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불안해 지는데?"
"맞아! 일부러 내가 불안함을 느끼려고 이런 말을 꺼내는 거야"
"..."
"항상 마음 속에 불안감을 가지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생각을 해놔야지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적절하게 대처를 할 수가 있지"
"그래서 네가 이 바닥에서 최초이고 또 최고 아니겠냐"
철호의 칭찬에 민수의 얼굴에 뿌듯함이 느껴진다.
"풉... 내가 최고가 아니라 우리가 최고다! 너의 그 정보수집 능력과 물질동원 능력이 없다면 내가 있겠냐?"
갑자기 남자끼리의 대화가 진지해지자 철호가 얼굴을 붉히며 주제를 환기 시킨다.
"닭살 돋는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칫... 재미 없는 자식"
약간의 투정을 뱉은 민수가 이제는 정말 본론을 말하려는지 속사포 같이 입을 연다.
"일단 오늘 그년을 달아오르게 만드는데는 성공한 것 같다. 심장 소리가 아주 요란을 떨더라. 상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고 얼굴과 몸매도 군침이 돌아서 참느냐고 힘들었다. 가사가 기억나지도 않는 애국가만 즉석으로 창작했다"
"참았다고? 분위기 좋으면 그냥 마무리 하지 그랬어?"
"오늘 했으면 일이 더 쉬워졌을거야. 하지만 그 뿐이야... 단순히 엔조이로 변질될 우려가 크지"
"그래서 오늘은 달아오르게만 만들고 다음번에 마무리를 하겠다? 또 당연히 연락처도 안 물어봤을테고 밤새 아쉬움에 너를 그리워하며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는 그녀에게 우연적으로 접근을 하겠다?"
"잘 아네~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유부녀가 아니라는 거짓말을 유도한 후 마무리 지으면 끝나지. 이제 네가 해야 할 일도 잘 알겠지?"
민수의 말에 조금은 소심해 보이던 철호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놈아! 나랑 상의도 없이 전략을 수정하면 어쩌자는 거냐? 나라고 항상 모든 상황에 맞춰서 밑밥을 깔 수 있는 줄 알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내는 화는 유달리 무서운 법이다. 민수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철호의 눈치를 본다.
"미리 문자라도 할걸 그랬나..."
민수의 조심스러운 눈치 작전에 철호의 표정이 풀리는 게 감지된다. 아마 철호 역시 단순한 투정이였나 보다.
"사람은 항상 정해진 시간, 정해진 길을 다니게 되있어. 내가 누구냐? 문제될 거 없다"
"역시 철호 네가 최고다!"
"근데 넌 진짜 그 버릇 좀 고쳐라. 나도 내 생활이 있는데 이렇게 함부로 전략을 수정하면... 에휴... 오늘도 밤새야 하나?"
민수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이년 성공하면 너도 먹게 해줄게"
"됐다. 나도 이제 곧 유부남인데 가정에 충실해야지... 아차!"
철호의 갑작스런 감탄성에 민수가 의문을 표한다.
"아차?"
"민애 그년 동생 민아에 대해서 정보가 들어왔더라"
"그래? 읊어봐"
"고딩이라서 별다른 건 없더라"
"고딩?"
"그래 고3이더라고... 조심해라 잘못하면 물린다"
"오랜만에 고딩이라서 이거 흥분 되는데? 가끔씩 별미를 먹어줘야 하는데 말이야"
"조심해라 복어일 수도 있다"
"그 나이 때는 그저... 남들이 좋아라 하면 나도 좋고... 남들이 멋있다 하면 좋고... 오히려 공략하기가 쉽지"
"어쨋든 조심하고 대충 정보에 대해서 말해줄게"
"그래"
"고딩이라서 별달리 특이한 점은 없고, 매일 6시부터 12시까지 서면동에 제일 독서실이라는 곳에서 공부를 하더라"
"범생인가 보네?"
"그래, 성적은 학급에서는 2등, 학년에서는 13등이니깐"
"으음... 범생이라..."
"미모는 역시 핏줄 탓인지 제법 떡잎이 보이지만, 언니와는 다르게 여중, 여고를 다니는 범생이라 아직까지 남자친구는 못 사겨봤고"
"남자에 대한 로망이 마음속에 가득하겠구만"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아차! 밤 12시에 독서실이 끝나면 아버지가 독서실 앞으로 데리러 온다"
"공주님이구만"
"그리고..."
"그리고?"
"없다. 끝!"
한창 시나리오를 그리던 민수의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혈액 공급이 중단된다.
"참나... 정보가 너무 없는 거 아니야?"
"고3이 다 똑같지... 발 사이즈라도 알려주랴?"
"됐다. 됐어... 그건 그렇고 다음 개시일이 언제냐?"
"일요일 6시쯤? 4시쯤에 나랑 만나자"
"아니 그년 말고 동생년 말이야"
"아... 그건 일요일? 12시 전에 언니년 빨리 마무리 짓고 동생년한테 가자"
"힘들겠구만..."
몇 일간의 꿈같은 휴식을 보내다 복귀를 하니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일종의 월요병 일까?
"민수야, 뭐하냐?"
잠시 멍을 때려서인지 악셀을 계속 밟은 채로 있었나보다. 백미러로 위협을 감지한 앞차가 길게 크락션을 울린다.
-부아아앙-
상념에서 깨어난 민수가 머쓱한지 농담을 한다.
"근데 티코 따위가 무슨 크락션은 덤프트럭 저리 가라냐"
"아스팔트에 붙은 껌에도 붙는 차인데 위기감을 많이 느꼈나보지"
사람들은 섹스 청부업자라는 직업이 호스트나 카사노바처럼 자신의 욕심을 채워가며 즐기는 일종의 오락같은 직업인줄 착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목표물 하나와 한마디를 하자고 10시간이 넘게 죽치고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오. 상대의 말에 있어 보이게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독서량... 독서량 하니 생각나는 건데 목표물의 취미가 독서... 거기에 철학쪽을 좋아한다면...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흥미롭게 말하기 위해 원치 않게 여성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 여성 잡지 등을 읽어야 하고, 또한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항상 웃으며 경계심 없이 멋지고 편안한 남자인척 연기를 해야 하는 게 섹스 청부업자라는 직업이다.
"다 왔다"
"편의점에서 먼저 물건 사들고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어. 보이면 전화 줄게"
"알았다. 으휴... 오늘은 제발 빨리 좀 왔으면 좋겠다"
사람의 이동 동선과 시간대는 90% 정도는 일치하게 되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매일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길로 출근을 하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길로 퇴근을 하지 않는가?
-부우우웅-
"이제 시작이군"
민수가 건물 안쪽 구석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역시나 익숙한 빨간색의 귀여운 차가 느릿느릿 지나간다.
"제발 멈춰라"
그녀의 생각이 그동안 바뀌었을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허름한 트럭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처음부터 새하얀 백지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답지 않게 민수의 가슴이 떨린다.
"옳지!"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폐차 직전의 트럭,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 사이에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주차단속 요원들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는 트럭은 의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느리게 기능을 상실한 도로를 빠져 나오던 미니쿠퍼가 이제는 기어 다니다시피 천천히 지나간다.
"타이밍이다"
검은 봉다리를 들고 민수가 허름한 트럭으로 다가가니 미니쿠퍼 또한 트럭 뒤편으로 정차한다.
"풉..."
"어머! 진달래의 눈물! 그 책 나도 정말 재밌게 봤는데..."
여자의 자존심 일까? 분명 민수를 보고 차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며 자신의 존재감만 드러낸다.
"하여튼 여자들이란... 안 그래도 아는 척 하려고 했었다"
민수가 자신을 인지하도록 고개를 크게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순간 그녀가 움찔거린다. 그리고 민수가 기억이 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접근을 하니 의식을 하나보다. 그녀의 발음이 점점 꼬인다.
"끄으래? 음! 음! 하여튼 진달래... 음... 그거 말고도..."
어느덧 민수와 그녀와의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고, 차 안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정확히 말하면 전화통화를 하는 척 하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우연이! 또 뵙네요!"
민수의 말에 그녀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몸을 들썩이며 탄성을 토해낸다.
"어머! 깜짝이야!"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친구랑 통화에 너무 집중을 해서..."
고백 받은 자의 여유 일까? 그녀가 민수에게 관심을 받으려 이러한 행동을 한순간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민수 쪽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말을 이어나가기 힘든 그녀의 답변을 들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고는 마치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갈 듯 뒤로 한 걸음 물러나니 그녀가 급하게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고아원 다녀오시나 봐요?"
"네, 오늘도 막내 녀석 때문에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네요. 이제 시간도 널널하고 자유롭네요"
"아... 그럼 이제 놀러 가시겠네요?"
"놀러가긴요... 저녁 먹고 집에서 푹 쉬어야죠. 너무 피곤하거든요"
"아... 벌써 저... 녁... 시간이구나"
그녀가 저녁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민수를 바라본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녁식사 같이 하실래요?"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가지만 이내 다시 내려오고 곤란한 표정으로 바뀐다.
"제가 시간이..."
"시간이 없으시면 어쩔 수 없구요"
"괜찮을 거 같네요.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친한 친구라서 취소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쪽 말대로 이것도 인연인데 말이죠"
"풉... 저녁 식사는 무슨... 마트에서 장보고 집에 가는 길이면서"
속으로는 비웃지만 겉으로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민수가 말한다.
"오늘은 친구랑 같이 고아원에 가서요. 친구한테 말하고 다시 올게요. 숙녀 분 차 타고 가죠"
민수가 다시 트럭으로 걸음을 옮겨 검은 봉다리를 놓고 민애의 조수석에 타니 그녀의 아찔한 옆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바비인형을 닮은 유명 연예인을 연상케 하는 오똑한 코, 한 손에 잡힐 듯한 길고 가녀린 목, 무거워 대신 받쳐주고 싶을만큼 부성본능(?)을 자극하는 풍만한 가슴, 편안하고 타이트해 보이는 원피스이지만 가슴과는 상반되게 여유가 남아 허리라인 부근에서 세로로 길게 접힌 가녀린 허리, 초등학생이 원피스 밑단을 잡고 아이스께끼를 하여도 초등학생의 힘만으로는 골반 위로 들어올리기 쉽지 않아 보이는 옷 위로 터져 나올 듯한 엉덩이, 베이지색 원피스 밑단이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에 율동을 칠 때마다 수많은 남자들의 정복욕을 자극한다.
"어디로 가죠?"
민수가 자신의 몸매를 훔쳐본다는 것을 눈치 챘던 것인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민수가 당당하게 시선을 떼지 않고 말한다.
"미니쿠퍼는 작은 차라 불편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편안하네요. 그쪽도 자세가 딱 잡힌 게 편안해 보여요"
민수의 말에 그녀의 뿌듯한 표정이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네... 그렇네요"
"저는 김민수라고 합니다"
민수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니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으로 민수의 손을 잡는다.
"저는 김민애라고 해요"
서로의 손을 잡으며 잠시 눈빛교환을 한 후 민수가 말을 잇는다.
"민애씨! 일단, 한북동으로 가시죠"
악셀을 가볍게 밟고 도로를 빠져나가며 그녀가 묻는다.
"한북동에 괜찮은 곳이 있나 봐요?"
"아... 좀 거리가 있죠? 제가 한북동에 살거든요"
"아..."
"저희 집에 가는 거에요"
"네?"
그녀의 놀람에도 전혀 영향 받지 않고 민수가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저희집 근처에 돈까스가 죽이는 배달 전문점이 있거든요"
"네? 풉... 저번에도 모텔... 에서 짜장면 시켜 드시더니..."
아무래도 낯선 남자와 모텔에 갔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나보다. 모텔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다.
"저번에도 게눈 감추듯이 짜장면 드셨잖아요. 이번에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머! 제가 언제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고 그래요?"
"어쨋든요! 아! 그리고 이번에도 제가 당부 드리지만... 남자랑 둘만 있다고 절 덮치시거나 그러면 안 되요!"
"풉... 덮치긴 누가 덮쳐요! 돈까스 맛 없으면 각오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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