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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1 23:53 1,237회 0건



제 협박(?)에 넘어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아직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역시 댓글이나 추천은 약 3배 가까이 풍성해졌네요.
깜짝 놀라서 허겁지겁 이렇게 몇자 적어서 올립니다.

이번 얘기에서는 협박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볼 것을 보고 결정해서 다음 얘기를 쓰겠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저녁에 회식했고 주말에는 최박사를 만났다. - 끝-"

ㅋㅋㅋ


- - - - -



60. 임영선과 같이






다음날 아침에 나는 알람 소리를 저주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와 최수희는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서 회사에 30분 정도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업무일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제는 외근을 따라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수희가 커피를 가져왔다.


출근 시간이 됐는지 다른 여직원들이 우루루 들어온다.



"좋은 아침!"



평상시 같으면 지금쯤 참새들의 합창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도 우리를 놀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불안하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강은영 과장은 들어오자마자 전화를 받고, 바로 사무실을 나간다.

우리는 오늘도 두 팀으로 나가기로 했다. 한 팀은 나라마트, 또 한 팀은 그 마트 근처에 있는 다른 마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를 남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오늘 가기로 한 다른 마트는 애니홈이다. 미국에 있는 대형마트 애니홈이 미국에서 운영하는 방식 그대로 우리나라에 와서 영업을 하고있다. 위대하신 한미 FTA 의 결과이다. 나는 이경숙만 데리고 둘이 가기로 했다. 최수희는 방효은과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나라마트에 간다. 우리는 강은영과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온 사람은 강은영 과장이 아니라 회장님의 딸 임영선이다. 그녀는 열린 문으로 노크도 없이 그냥 들어와버린다. 문 바로 옆이 내 자리이다. 불쑥 들어오는 임영선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김태현씨."
"앗! 깜짝이야."

"왜 이렇게 놀라세요?"
"노크라도 하고 들어오시든가."

"문이 열려있는데 어떻게 노크를 해요?"



그녀가 오늘은 비서들이 입는 오피스룩을 입지 않고, 우리 외근팀처럼 청바지에 체크무늬 남방 그리고 가디건을 걸치고 있다. 하얀 운동화에 밝은 갈색의 야구 모자 때문에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그녀는 마치 피크닉이라도 가는 것 같다. 향긋한 가을 냄새가 내게로 물씬 풍긴다. 향수는 아마도 샤넬인것 같다.

남방과 청바지는 그녀의 두번째 피부처럼 그녀의 몸에 붙어있는 것 같다. 그녀의 몸에 옷으로 감추고 있는 모든 것들을 볼륨만으로 나타내고 있다. 오늘 임영선은 곡선의 여인이다. 그녀가 만일 재채기나 기침을 한다면 가슴 때문에 남방은 터질지도 모르겠다. 저런 청바지는 입고 벗을 때에 얼마나 불편할까? 아마도 한바탕 전쟁을 치뤄야 할 것이다. 안봐도 비디오이다.



"김태현씨, 회장님께서 찾으시는데요."
"예? 지금요? 무슨 일로?"

"내가 어떻게 알아요?"
"잠시만요."

"회장님께서 지금 기다리고 계신데요?"
"나 숨 안넘어가요. 보채지 마세요."



회장실에서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일까? 나를 보는 최수희의 표정이 밝지 않다. 박은희 대리도 우리에게 왔다.

갑자기 벌어진 이 사태를 우선 나는 최수희와 해결해야 했다. 내가 회장실에 가면 언제 돌아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팀원 모두가 나 한 사람을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최수희는 팀원들과 먼저 출발하고, 이경숙은 혼자 남아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나중에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

나는 마시던 커피를 계속 마시고 있다. 최수희, 이경숙, 방효은 그리고 박은희 대리까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다른 사람들은 구경을 한다.



"어라? 지금 빨리 가야 하거든요!"
"하던 일을 마무리 해야 갈 수 있는데요."

"그래도 회장님을 기다리시게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요."
"그런 예의에 관심 없거든요."

"뭐라구요?"



최수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팔을 가볍게 친다. 나는 머그잔을 마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참나. .. 진짜 어이없네.
회장님께서 부르시는데, 태현씨 지금 너무 여유 부리는 것 아닌가요?"

"자꾸 회장님, 회장님 하시는데.
내가 회장님 애완견도 아니고.
오라고 하면 만사 제껴 놓고 헐레벌떡 달려가야 해요?
외근팀이 출발할 수 있도록 하고, 겨우 한 모금 남은 커피 마저 마셨잖아요?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렇게 보채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됐으니까 짜증부리지 마시고, 이제 가요."



임영선은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임영선을 따라 나섰다. 최수희가 손을 흔다. 내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임영선 옆으로 가서 나란히 걷는다.

나는 회장실 밖에서 기다리고, 임영선 혼자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임영선이 날더러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모두 소파에 앉았다.



"내가 김태현군을 오라고 한 것은, 오늘 외근 때문이야."
"예?"

"자네가 외근 나가면서 임비서를 데리고 같이 나갈 수 있나 해서 ..."

"임비서를요?"

"자네 오해하지 말게.
내가 보내는 것이 아니고, 임비서가 따라가고 싶어해.
또 나도 나중에 임비서한데 보고 받을 특별한 일이 있나 궁금하기도 한데."

"회장님, 재고해주십시오.
저희가 하는 외근이 임비서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쉽다고 한 적이 없는데?
힘들다고 김태현씨한테 업어달라고 하지 않을껀데요? 하하."

"이번에 자네들이 일등공신이라는 것을 알더니 같이 가게 해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면 회장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 대신 임비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저희 팀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합니다.
중간에 돌발적인 행동으로 팀이 일을 중단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임비서. 김태현군이 하는 말 알아들었나?"
"예. 아빠. 아니고 회장님. 헤헤."

"그럼 오늘은 김태현군이 혹을 하나 붙인 셈 치고 수고해주게."
"아닙니다. 본인이 각오를 했으니까 별 이상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빠. 나도 짐이 안되게 열심히 할께요."
"그래요. 김태현씨 방해하지 말고 잘 도와줘라."



나와 임영선은 회장실을 나왔다. 임영선은 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 비서들이 사용하는 방에서 자기 가방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총무과 사무실로 왔다.



"정말 자신 있죠?"
"오빠가 지금 나를 겁주나요?"

"내가 왜 임비서님에게서 오빠 소리를 듣죠?"
"별 의미 없어요.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아서 그냥 부른 거니까."

"내가 좀 삭아 보인다는 말인가?
나이는 나보다 임비서님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팀장님?"
"팀장님은 내가 아니라 최수희 누나거든요."

"알았어요. 그럼 태현씨."



나는 임영선을 내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고 강과장에게 갔다. 강과장이나 다른 여직원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본다. 나는 강과장에게 회장실에서 잇었던 일을 말해주고 임영선과 같이 나간다는 말을 해주었다. 강과장은 조용히 발끈하는 표정을 짓는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걱정 마세요.
오늘 하루 고생하면 다시는 따라오겠다는 말을 안하겠죠."

"그래. 어쩔 수 없다. 우리 막내가 총대를 메야지.
저녁에 회식이니까 너무 늦지 않게, 알아서 잘 해."



나는 내 자리로 갔고, 강과장도 나를 따라왔다. 이경숙과 임영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나는 임영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앗!"
"태현씨. 왜요?"

"차가 없어요.
최수희 누나 팀이 전부 다 가져갔어요.
나도 오늘 차 안가져왔는데."

"우리 회사에 차가 없어요?"

"차야 있겠지. 우리가 쓸 수 있는 차가 없지.
차 한대 마련하려면 여기 저기 알아봐야 하고, 쉬운 일이 아닌데 .."

"그럼 내 차로 가면 안돼요?"

"임비서님 차로? 좋죠."



임영선이 선뜻 자기 차로 가자고 했다. 강과장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사무실을 나섰다.

우리는 회사 정문에서 기다리고, 임영선은 옅은 갈색 그렌져를 가져왔다. 이경숙이 임영선 옆에, 나는 뒷자리에 탔다. 임영선이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림픽 공원 쪽으로 가서 애니홈이 방이동 지점으로 갔다. 도로도 한산해서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았다.


매장에 도착해서 임영선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김태현씨. 이 매장은 차들도 별로 없는데 주차장이 왜 이렇게 넓어요?
땅값 비싼 강남에서 주차장이 이 정도면 너무 넓지 않아요?"

"차들이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는 말이야.
매장의 안과 밖에는 식당, 카페, 패스트푸드점들도 있어.
한 쪽 구석에는 어린이들을 맡길 수 있는 곳도 있어.
그런데 정작 매장 안에는 상품들이 마치 창고처럼 쌓여있어.
고객들을 안내하고 상담하는 직원들도 우리만큼 많지 않아.
그래서인지 상품 값도 엄청 싸."

"싼 값으로 물건을 사고, 식사도 하고. ..
아예 외출을 이리로 와서 여가를 보내라는 말이네."

"글쎄. ..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미국 방식이거든.
우리 나라와는 소비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을까?"

"무슨 소비문화가 어떻게 달라요?"

"우리 나라는 무엇보다도 노동시간이 길어.
그래서 장보는 것은 주로 엄마들이 바쁜 시간에 틈을 내서 하거든.
아줌마들끼리 장보러 나온다고 하더라도 집 밖에서 즐기는 것 까지는 쉽지 않아.
즐기면 누가 이런데서 즐겨요?
시내 빵빵한 백화점이나 아니면 교외로 나가야지.
가족이 모두 같이 장보러 간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현실성이 약해."

"음. .."

"이 매장은 주거지역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어서 대로에서는 눈에 잘 띄지도 않아.
그렇지만 대중 교통으로 오기에는 편리한 편이야."



우리는 매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른 식당에 비해서 음식은 양이 많고 가격도 싼 편이다. 그렇지만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식사 후에 우리는 매장 입구로 갔다. 이경숙은 마치 내 아내인 것처럼 내게 팔짱을 끼고, 우리는 카트를 밀고 들어갔다. 임영선이 우리를 째려본다.



"이 그림은 뭐야? 둘이 지금 사귀는 사이?"
"우리는 부부예요. 결혼했거든요. 하하."

"예에?"

"임비서님.
우리가 매장에 나오면 원래 오빠랑 나랑은 부부인 것처럼 행세를 해요."

"왜 그러는데요?"
"왜는요? 우리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그러죠."

"그럼 김태현씨는 왜 나랑은 안하고 이경숙씨랑만 해요?"

"그거야 당연히 이경숙이 예쁘니까 그렇죠.
내 마누라처럼 보이지 않아요? 하하."

"오빠, 농담이 지나치다.
그러면 임비서님 오해하시잖아.
임비서님은 아직 일을 잘 모르니까 위험해요."

"아니. .. 모르니까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가 공부하러 나온 곳이 아니잖아요.
프로패셔널이거든요.
또 임비서님은 오늘만 나오신거잖아요?"

"그건 두고 봐야 하거든요?
빨랑 이혼하고 나랑 재혼하세요.
아니면 내 남편을 한명 따로 구해주든가."



우리는 아래층과 위층 매장을 돌면서 이것 저것을 구경하면서 관찰했다. 이경숙은 몰카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중간에 임영선이 다리 아프다고 해서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했다. 나도 어제 밤에 잠을 너무 조금 자서 그런지 무척 피곤하다.

이 애니홈에서는 고객들이 약간은 불편하더라도 그 불편을 감수하면서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가격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그렇게 많이 싼 것은 아니었다.

오후 3시가 되어 우리는 회사로 돌아왔다. 이경숙은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곧 최수희 팀도 돌아왔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조용하던 사무실이 북적거린다.


박은희 대리가 회식을 알렸다.



"예고했던 대로 오늘 회식입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입니다.
빠지는 사람은 짤리니까 사표서 제출하세요."



이 말을 들은 임영선이 내게 말했다.



"와아. 엄청 살벌하네요."



그런데 임영선은 비서실로 돌아가려고 한다.



"피곤하시죠?"
"오래 만에 걸어서 그러나봐."

"옷이 몸에 너무 붙어서 더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것도 그렇고 .."

"그런데 벌서 가시게요?"
"외근 끝나지 않았어요?"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셔야 끝이죠."
"나도 써야 해요?"

"원래는 그래야 하지만, 오늘은 눈감아 드릴께요.
그 대신 나중에 이경숙이 쓴 보고서를 읽으시고 싸인만 하시면 돼요."

"다 되면 전화해주세요."


그녀는 자기 일자리로 간다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보나마나 자기 아빠한테 가서 피곤하다며 엄살을 부리겠지.



그런데 내 전화기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최은희 박사이다.



"끝나고 전화 기다릴께."



나중에는 윤기숙에게서 전화도 왔다.



"오빠, 우리 오늘 만나면 안될까?"

"미안. 오늘은 정말 안돼.
차라리 일요일에 보기로 하자."



이번 주말에는 복학생들 모임도 있다고 했다.
다른 선배가 제대했다면서 같이 룸사롱에 가기로 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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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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