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날 형님이라고 부르는 녀석과 나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지금의 내가 삼십 대 초반의 헬스클럽 트레이너하고 붙어서 승산이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누구라고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고... 내가 이런데 녀석은 더 머리가 아플 것이다. 누구 길래 와서 여자와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옛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지...
원래 이렇게 의심이 많은 놈일까? 그다지 실수한 기억은 없는 데... 어디서 의심을 샀지? 화장실에 다녀오기 전에 한 이야기 중에 실수가 있었나?
난 지연이와 연이 있었던 사람이다. 경찰 간부를 사칭하게 된 건 니가 가지고 있는 여자를 함락시키는 비법에 대해 정말 궁금한데... 그냥 물어보는 것보다 경찰 고위직이라고 하면 더 잘 말해줄 것 같아서였다. 지연이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하게 된 걸 묻는다면 대충 예전에 선승철에게 들려줬던 접촉 사고가 나서 우연히...
속으로 이렇게 스토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이유성이 먼저 선공을 시작했다.
“맨 처음엔 형님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혼 확인을 받던 날 부하 직원에게 절 미행시켰다고 하셨는데 그 날은 제가 여수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침 10시 경에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여수로 내려갔는데... 그 게 보통 승용차를 운전하시는 분이 쫓아올 수 있는 속도가 아닙니다. 단속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150Km 이상 200Km를 넘길 때도 있었고... 많이 밟았거든요.
누가 150km이상 같은 속도로 달렸다고 해도 제 차는 가속도 붙는 시간이 국산 승용차보다 월등히 빠른 차라... 쫓아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마 톨 게이트 나가서 10분도 안돼서 사라졌을 텐데...
그래서 아는 경찰 형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서남원 계장님을 아시냐고 물었더니 그 분도 서울에서 근무를 하시지만 잘 모른다고 해서 나이하고 인상착의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몇 분만 통화하면 금방 알기야 하겠지만 왜 그러냐고 물으셔서 대충 둘러댔죠. 아는 사람이 사기를 당한 것 같은데 확인만 좀 하려고 그런다고...“
“음... 그랬군... 그런데 왜 그 때 이야기를 안했지?”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뭔지 몰라서요. 그냥 지루한 예전 이야기를 계속 하다보면 무언가 다른 걸 이야기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 걸 알고 나서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하려고 했어요.
여기 모시고 온건 혹시 혼자 온 게 아니시라면 일행과 차단시키려고 했는데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뒤 돌아 보지 않으신 걸 보고 그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언주 누나와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됐는지 단순히 그 걸 알고 싶어서 혼자 여기까지 오셨단 이야기인데...
제가 어디로 모실 줄 알아서 그런 모험을 하신 거죠?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인가요?“
“말했지 않나. 요즘 만나는 여자와 일이 잘 안 풀려 고민하던 중에 자네 생각이 났다고... 난 그 여자를 안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네.”
“그게 경찰을 사칭하고 자신과 관계가 있던 여자의 전 남편에게 다른 여자들과의 사진을 들이대며 몰아세울 이유가 된다는 말입니까?”
“세상에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건 아닐 텐데...”
“쉽게 이야기 하지 않으실 줄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는데 머리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버리네요.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형님도 알고 계신 선승철 형님이 지연 누나와 헤어지지 않으면 언주 누나와의 일을 지연 누나에게 이야기하겠다고 겁을 준 적이 있었는데 전 승철 형님 말대로 헤어지려 했지만 지연 누나가 너무 완강해서 그러지 못했어요.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형님의 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왜 그 수를 둔 건지...
돈을 원한다면 당연히 언주 누나를 찾아가 여자를 협박하는 게 쉬웠을 것이고... 혹시 언주 누나에게 다녀오셨나요? 누나가 저한테 말을 안 할 수도 있으니...“
“아니... 간 적 없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렵네요... 하지만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긴 한데...
음... 군에 있을 때 전 헌병대에 근무했습니다.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처음엔 군단헌병대에 행정병으로 배치되었다가 나중에 보직이 바뀌어 헌병 수사관을 보조 하는 군탈 체포조에 있다가 제대했죠.
거기 가보니 밖에 있을 때 생각하는 것보다 은근히 탈영병이나 휴가 미복귀자가 많아서 거의 일주일에 한 명 꼴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베테랑 헌병 수사관들이 탈영병들의 부모나 애인, 친구 들을 만나 녀석들이 있을 만한 곳을 어렵지 않게 실토하게 만들기 때문에 잡는 건 별 애로사항이 없었습니다.
실토하게 만드는 방법을 옆에서 지켜보자니 의외로 단순하더군요. 한 방향으로 몰아가면 됩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막아버리고 그 쪽으로... 약간의 왜곡... 거짓이죠.... 그리고 약간의 과장... 겁을 주는 겁니다. 그 걸 듣는 일반인이 왜곡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으면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 실토.... 실토하는 게 탈영병을 돕는 거라는 걸 깨닫거든요.
그런 기법 자체가 군대 기밀이라 자세히 말씀 드리기는 좀 어렵지만...
지금까지 형님에게 제가 느낀 건 상당히 숙련된 수사관의 분위기였습니다. 저한테 한 이야기 중에 뭘 숨기고 뭘 왜곡하셨을까요? 일단 한 가지는 밝혀졌습니다. 부하 직원에게 절 미행시킨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 몰라 위치 추적 센서 같은 걸 제 차에 부착하셨을까 해서 확인해 본건데 서남원 계장님은 다른 분이라는 걸로 판명되었으니 그 것도 아니고...“
이놈은 도대체 왜 체조 같은 운동을 한 거냐? 그런 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지금쯤 과기원 교수나 서울대 박사 같은 거 하고 있겠다.
“그 다음 의문점은 어떻게 제가 여수에 있는 걸 알아냈냐는 겁니다. 전 지연 누나에게 여수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어떻게 아셨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공항에서 오정희가 비행기 타는 걸 보고... 김유미와 통화를 해서... 이게 정답이나 알려줄 수 없다. 핑계 댈 것도 마땅히 생각나지 않고... 위치 추적... 괜찮은데... 요즘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목걸이 위치 추적기도 달아준다 던데... 일단 그 걸로 가자.
이혼 확인을 위해 법원에 온 날 난 일부러 늦게 온 척 해서 네 놈 차 밑에 위치추적기를 붙였어. 내 핸드폰으로 전송되는 시스템인데 실시간 별로 주소까지 찍히지. 그렇게 자네가 여수에 있는 걸 확인한 후에 다음 날 일찍 여수로 내려가서 공항에서 첫 번째 사진의 여인을 보내는 것과 저녁 무렵 이언주와 M호첼에 들어가는 걸 보게 된 거야.
이 정도면 대충 답이 될 것 같은데...
내가 정리한 답을 녀석에게 제출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녀석이 또 내 입을 막았다.
“잠깐만요. 형님... 형님이 무슨 말을 하면 제 머리가 더 복잡해질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나온 것만 가지고 일단 풀어볼게요.
제가 여수에 간 걸 형님이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것은 잠깐 보류... 그 사진을 누가 찍었을까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찍었다면 첫 번째 사진의 누나가 몇 시 무슨 비행기를 탔는 지도 이야기를 해 줬을 것 같은 데... 형님은 언주 누나만 공항에서 기다리다 누구인지 알아냈다고 하셨습니다.
그 건 첫 사진의 누나를 만나러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거나 아니면 만나러 갔으나 누군지 알아보는 데 실패 했거나 혹은 만나서 알아냈으니 저한테 언급할 필요가 없거나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식집에서 저한테 사진을 건넬 때부터 이상한 건 첫 사진의 누나에 대해서는 형님이 일관되게 무언가를 축소시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어보는 것도 언주 누나와 관계된 이야기에 한정시켰고... 추가로 무언가 원하시는 게 있냐고 했을 때도 지연 누나로 화제가 돌아갔어요.
왜... 첫 사진의 누나도 미인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관심이 없으신 걸까? 언주 누나와 있었던 일은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물어보셨으면서...
만약에 제가 형님이라면 지연 누나보다는 첫 사진의 누나에게 더 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인지는 제가 대답을 안할 지 몰라도 어차피 그 누나를 안았던 방법 정도는 알려줄테니까요. 지금까지 제가 형님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말입니다.
첫 사진을 보여준 이유는 여러 여자를 만나는 걸로 보아 제게 비법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좋았을지 몰라도 두 사람의 사진에 보여준 형님의 전혀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로 보아...
첫 사진의 누나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 말은 형님이 왜곡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짓이죠. 그게 거짓이 되면... 또 하나의 가설이 생깁니다. 첫 사진의 누나는 제가 여수에 있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믿기는 힘들지만 그 누나가 형님에게 알려줬을 수도 있다는...
그렇게 가정하면 다른 일들도 대부분 맞아 떨어집니다. 누가 사진을 찍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사진은 언주 누나가 여수를 떠나기 전날 저녁에 찍힌 것이고 언주 누나의 비행시간을 좀 빨리 알아냈다면 여수에서 김포공항으로 먼저 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결론은 형님이 누구인지는 첫 사진의 누나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잠깐만요. 형님 얼굴 좀 한 장만 찍을 게요. 전송해보면 알겠죠.“
이유성이 내 얼굴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그 1~2초 사이에 난 김유미가 내 사진을 보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녀석에게 할까 하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사진 찍는 걸 완강히 막는 다면 이 놈은 자신의 가설에 대해 확신을 가질 것이다.
김유미의 성격을 봐서는... 바로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나한테 연락을 해보고 나서 결정을... 고로 난 사진 찍히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난 오른 손을 살짝 들어 녀석의 행동을 제지하는 척만 했다.
“잠깐... 주객이 전도됐군. 내 사진을 찍고 그 걸 첫 사진의 여자에게 보내겠다는 건가? 그 걸 어떻게 믿지? 자넨 내가 아직 자네와 이언주의 관계에 대해서 폭로할 힘이 있다는 건 깜박하고 있는 것 같군... 어이가 없는데... 나에 대해서 캐보려다 긁어 부스럼 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자네가 들려준 이야기도 있고 나도 거기까지만 허락하지... 일단 찍어. 그리고 전송한 뒤에 답장을 받고 나서 내 사진은 지워. 메시지 기록에서도... 다른 곳에 내 사진을 사용하는 건 막고 싶으니까...
그럼 되겠나?“
핸드폰을 들어 올리던 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왜지?
“찍는 걸 허락은 하시는데 첫 번째 누나한테만 보내는 걸 허용한다는 거군요. 또 어려워지네요. 보내도 된다...
첫 번째 누나가 형님을 모르거나 아니면 형님을 모른다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데... 그게 아니면... 뭘까요? 혹시 형님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복잡해지네요. 차라리 그럼... 이렇게 하시죠. 형님의 핸드폰 안에 첫 번째 누나의 폰 번호가 없다면 제가 진 걸로 하겠습니다. 그 누나와 형님은 모른다는 걸로 인정하죠.“
이런 여우 같은 자식... 김유미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왔어야 했나?
“내 핸드폰을 뒤져 보겠다? 그 건 허락할 수 없는데... 어쩌지?”
“역시 그러시겠죠. 하지만 지연 누나와도 첫 번째 누나와도 관계가 있으시다면 혹시... 저와 관계있는 여자들의 약점을 협박해서 몸을 취하신 걸 수도 있겠네요.
첫 번째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도 좋다는 건 형님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거 같은 데... 저와 오랜 인연인 그 분에게 그런 자신감을 보이시다니...
혹시, 그 걸 오해라고 생각하신다면 핸드폰을 보여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윽... 신이시여! 어찌 저 놈에게는 조각 같은 얼굴과 신체, 그리고 저런 말도 안돼는 머리까지 모든 걸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오늘 자네를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나?
첫 번째 사진의 여자와 지연이와 관계를 했고 이언주의 정체도 아는 데 뭐 하러 여길 오겠어?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내가 이언주를 찾아가지 않은 건 미국으로 가기 전에 이언주에게 이유성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였다. 오정희는 커피 전문점에 매일 나오고 몇 개월 동안 그 곳에 가서 내 얼굴을 알기 때문에 내 말에 신빙성을 더 할 수 있었지만 이언주가 움직이는 동선은 잘 모르고 갑자기 찾아간 내가 몇 개월 전 사진과 정황 정도로 압박을 가하는 건 실패의 부담도 안아야 한다.
“그렇죠. 이유... 제가 머리가 아팠던 것도 그 것 때문인데... 마지막에 튀어나온 게 앞의 것들과 매치가 잘 안돼요.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중학교 여선생님을 내 여자로 만들기 위해 비법이 있다면 알려줘라. 그게 아니라면 언주 누나와 제 스토리를 들려줘라.
제 부담을 약간 덜어주면서 결국 언주 누나와의 스토리를 토해내게 했죠. 결국 마지막에 남은 건 언주 누나와의 스토리.... 그 걸 듣고 어디에... 그 걸 어디에... 쓰려고 ...
형님이 첫 번째 누나, 그리고 지연 누나와 관계가 있다는 가정 하에 중학교 여선생님은 왜곡이라면...
한 가지 더, 사진을 찍은 건 몇 개월 전이었는데 왜 지금 오셨을까? 그 이유는 지연 누나의 자살 시도...
형님은 지연 누나의 자살 소식을 듣고 그 이유가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래서 지연 누나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제가 다른 여자를 어떤 식으로 함락시킨 건지 알아내려 한 거죠. 그 것들이 심경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전 남편은 나쁜 녀석이었다. 이런 식으로 여자들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고 넌 희생양일 뿐이다...
음... 형님에게 이야기를 하며 풀어가다 보니 상당히 근접한 답이 나왔네요.
정체를 밝히지 않으시니 잘 모르겠지만 정말 괴물 같은 분이네요. 첫 번째 누나와 제 스토리는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을 것 같고... 그 누나와 그 정도 관계에다가 지연 누나와도... 무시무시합니다.
하지만 형님이 모르시는 게 있군요. 지연 누나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저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을 떠난 이유도...“
난 녀석의 추리에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묵묵히 듣는 척 하고 있다가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뭐... 그럼 다른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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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거의 끝나 가네요.. 10월까지 끝내고 홀가분해 지려고 노력중입니다. ㅎㅎㅎㅎ
추석 보내고 돌아오겠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누구라고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고... 내가 이런데 녀석은 더 머리가 아플 것이다. 누구 길래 와서 여자와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옛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지...
원래 이렇게 의심이 많은 놈일까? 그다지 실수한 기억은 없는 데... 어디서 의심을 샀지? 화장실에 다녀오기 전에 한 이야기 중에 실수가 있었나?
난 지연이와 연이 있었던 사람이다. 경찰 간부를 사칭하게 된 건 니가 가지고 있는 여자를 함락시키는 비법에 대해 정말 궁금한데... 그냥 물어보는 것보다 경찰 고위직이라고 하면 더 잘 말해줄 것 같아서였다. 지연이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하게 된 걸 묻는다면 대충 예전에 선승철에게 들려줬던 접촉 사고가 나서 우연히...
속으로 이렇게 스토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이유성이 먼저 선공을 시작했다.
“맨 처음엔 형님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혼 확인을 받던 날 부하 직원에게 절 미행시켰다고 하셨는데 그 날은 제가 여수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침 10시 경에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여수로 내려갔는데... 그 게 보통 승용차를 운전하시는 분이 쫓아올 수 있는 속도가 아닙니다. 단속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150Km 이상 200Km를 넘길 때도 있었고... 많이 밟았거든요.
누가 150km이상 같은 속도로 달렸다고 해도 제 차는 가속도 붙는 시간이 국산 승용차보다 월등히 빠른 차라... 쫓아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마 톨 게이트 나가서 10분도 안돼서 사라졌을 텐데...
그래서 아는 경찰 형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서남원 계장님을 아시냐고 물었더니 그 분도 서울에서 근무를 하시지만 잘 모른다고 해서 나이하고 인상착의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몇 분만 통화하면 금방 알기야 하겠지만 왜 그러냐고 물으셔서 대충 둘러댔죠. 아는 사람이 사기를 당한 것 같은데 확인만 좀 하려고 그런다고...“
“음... 그랬군... 그런데 왜 그 때 이야기를 안했지?”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뭔지 몰라서요. 그냥 지루한 예전 이야기를 계속 하다보면 무언가 다른 걸 이야기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 걸 알고 나서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하려고 했어요.
여기 모시고 온건 혹시 혼자 온 게 아니시라면 일행과 차단시키려고 했는데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뒤 돌아 보지 않으신 걸 보고 그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언주 누나와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됐는지 단순히 그 걸 알고 싶어서 혼자 여기까지 오셨단 이야기인데...
제가 어디로 모실 줄 알아서 그런 모험을 하신 거죠?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인가요?“
“말했지 않나. 요즘 만나는 여자와 일이 잘 안 풀려 고민하던 중에 자네 생각이 났다고... 난 그 여자를 안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네.”
“그게 경찰을 사칭하고 자신과 관계가 있던 여자의 전 남편에게 다른 여자들과의 사진을 들이대며 몰아세울 이유가 된다는 말입니까?”
“세상에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건 아닐 텐데...”
“쉽게 이야기 하지 않으실 줄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는데 머리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버리네요.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형님도 알고 계신 선승철 형님이 지연 누나와 헤어지지 않으면 언주 누나와의 일을 지연 누나에게 이야기하겠다고 겁을 준 적이 있었는데 전 승철 형님 말대로 헤어지려 했지만 지연 누나가 너무 완강해서 그러지 못했어요.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형님의 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왜 그 수를 둔 건지...
돈을 원한다면 당연히 언주 누나를 찾아가 여자를 협박하는 게 쉬웠을 것이고... 혹시 언주 누나에게 다녀오셨나요? 누나가 저한테 말을 안 할 수도 있으니...“
“아니... 간 적 없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렵네요... 하지만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긴 한데...
음... 군에 있을 때 전 헌병대에 근무했습니다.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처음엔 군단헌병대에 행정병으로 배치되었다가 나중에 보직이 바뀌어 헌병 수사관을 보조 하는 군탈 체포조에 있다가 제대했죠.
거기 가보니 밖에 있을 때 생각하는 것보다 은근히 탈영병이나 휴가 미복귀자가 많아서 거의 일주일에 한 명 꼴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베테랑 헌병 수사관들이 탈영병들의 부모나 애인, 친구 들을 만나 녀석들이 있을 만한 곳을 어렵지 않게 실토하게 만들기 때문에 잡는 건 별 애로사항이 없었습니다.
실토하게 만드는 방법을 옆에서 지켜보자니 의외로 단순하더군요. 한 방향으로 몰아가면 됩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막아버리고 그 쪽으로... 약간의 왜곡... 거짓이죠.... 그리고 약간의 과장... 겁을 주는 겁니다. 그 걸 듣는 일반인이 왜곡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으면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 실토.... 실토하는 게 탈영병을 돕는 거라는 걸 깨닫거든요.
그런 기법 자체가 군대 기밀이라 자세히 말씀 드리기는 좀 어렵지만...
지금까지 형님에게 제가 느낀 건 상당히 숙련된 수사관의 분위기였습니다. 저한테 한 이야기 중에 뭘 숨기고 뭘 왜곡하셨을까요? 일단 한 가지는 밝혀졌습니다. 부하 직원에게 절 미행시킨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 몰라 위치 추적 센서 같은 걸 제 차에 부착하셨을까 해서 확인해 본건데 서남원 계장님은 다른 분이라는 걸로 판명되었으니 그 것도 아니고...“
이놈은 도대체 왜 체조 같은 운동을 한 거냐? 그런 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지금쯤 과기원 교수나 서울대 박사 같은 거 하고 있겠다.
“그 다음 의문점은 어떻게 제가 여수에 있는 걸 알아냈냐는 겁니다. 전 지연 누나에게 여수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어떻게 아셨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공항에서 오정희가 비행기 타는 걸 보고... 김유미와 통화를 해서... 이게 정답이나 알려줄 수 없다. 핑계 댈 것도 마땅히 생각나지 않고... 위치 추적... 괜찮은데... 요즘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목걸이 위치 추적기도 달아준다 던데... 일단 그 걸로 가자.
이혼 확인을 위해 법원에 온 날 난 일부러 늦게 온 척 해서 네 놈 차 밑에 위치추적기를 붙였어. 내 핸드폰으로 전송되는 시스템인데 실시간 별로 주소까지 찍히지. 그렇게 자네가 여수에 있는 걸 확인한 후에 다음 날 일찍 여수로 내려가서 공항에서 첫 번째 사진의 여인을 보내는 것과 저녁 무렵 이언주와 M호첼에 들어가는 걸 보게 된 거야.
이 정도면 대충 답이 될 것 같은데...
내가 정리한 답을 녀석에게 제출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녀석이 또 내 입을 막았다.
“잠깐만요. 형님... 형님이 무슨 말을 하면 제 머리가 더 복잡해질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나온 것만 가지고 일단 풀어볼게요.
제가 여수에 간 걸 형님이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것은 잠깐 보류... 그 사진을 누가 찍었을까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찍었다면 첫 번째 사진의 누나가 몇 시 무슨 비행기를 탔는 지도 이야기를 해 줬을 것 같은 데... 형님은 언주 누나만 공항에서 기다리다 누구인지 알아냈다고 하셨습니다.
그 건 첫 사진의 누나를 만나러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거나 아니면 만나러 갔으나 누군지 알아보는 데 실패 했거나 혹은 만나서 알아냈으니 저한테 언급할 필요가 없거나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식집에서 저한테 사진을 건넬 때부터 이상한 건 첫 사진의 누나에 대해서는 형님이 일관되게 무언가를 축소시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어보는 것도 언주 누나와 관계된 이야기에 한정시켰고... 추가로 무언가 원하시는 게 있냐고 했을 때도 지연 누나로 화제가 돌아갔어요.
왜... 첫 사진의 누나도 미인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관심이 없으신 걸까? 언주 누나와 있었던 일은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물어보셨으면서...
만약에 제가 형님이라면 지연 누나보다는 첫 사진의 누나에게 더 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인지는 제가 대답을 안할 지 몰라도 어차피 그 누나를 안았던 방법 정도는 알려줄테니까요. 지금까지 제가 형님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말입니다.
첫 사진을 보여준 이유는 여러 여자를 만나는 걸로 보아 제게 비법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좋았을지 몰라도 두 사람의 사진에 보여준 형님의 전혀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로 보아...
첫 사진의 누나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 말은 형님이 왜곡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짓이죠. 그게 거짓이 되면... 또 하나의 가설이 생깁니다. 첫 사진의 누나는 제가 여수에 있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믿기는 힘들지만 그 누나가 형님에게 알려줬을 수도 있다는...
그렇게 가정하면 다른 일들도 대부분 맞아 떨어집니다. 누가 사진을 찍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사진은 언주 누나가 여수를 떠나기 전날 저녁에 찍힌 것이고 언주 누나의 비행시간을 좀 빨리 알아냈다면 여수에서 김포공항으로 먼저 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결론은 형님이 누구인지는 첫 사진의 누나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잠깐만요. 형님 얼굴 좀 한 장만 찍을 게요. 전송해보면 알겠죠.“
이유성이 내 얼굴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그 1~2초 사이에 난 김유미가 내 사진을 보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녀석에게 할까 하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사진 찍는 걸 완강히 막는 다면 이 놈은 자신의 가설에 대해 확신을 가질 것이다.
김유미의 성격을 봐서는... 바로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나한테 연락을 해보고 나서 결정을... 고로 난 사진 찍히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난 오른 손을 살짝 들어 녀석의 행동을 제지하는 척만 했다.
“잠깐... 주객이 전도됐군. 내 사진을 찍고 그 걸 첫 사진의 여자에게 보내겠다는 건가? 그 걸 어떻게 믿지? 자넨 내가 아직 자네와 이언주의 관계에 대해서 폭로할 힘이 있다는 건 깜박하고 있는 것 같군... 어이가 없는데... 나에 대해서 캐보려다 긁어 부스럼 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자네가 들려준 이야기도 있고 나도 거기까지만 허락하지... 일단 찍어. 그리고 전송한 뒤에 답장을 받고 나서 내 사진은 지워. 메시지 기록에서도... 다른 곳에 내 사진을 사용하는 건 막고 싶으니까...
그럼 되겠나?“
핸드폰을 들어 올리던 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왜지?
“찍는 걸 허락은 하시는데 첫 번째 누나한테만 보내는 걸 허용한다는 거군요. 또 어려워지네요. 보내도 된다...
첫 번째 누나가 형님을 모르거나 아니면 형님을 모른다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데... 그게 아니면... 뭘까요? 혹시 형님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복잡해지네요. 차라리 그럼... 이렇게 하시죠. 형님의 핸드폰 안에 첫 번째 누나의 폰 번호가 없다면 제가 진 걸로 하겠습니다. 그 누나와 형님은 모른다는 걸로 인정하죠.“
이런 여우 같은 자식... 김유미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왔어야 했나?
“내 핸드폰을 뒤져 보겠다? 그 건 허락할 수 없는데... 어쩌지?”
“역시 그러시겠죠. 하지만 지연 누나와도 첫 번째 누나와도 관계가 있으시다면 혹시... 저와 관계있는 여자들의 약점을 협박해서 몸을 취하신 걸 수도 있겠네요.
첫 번째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도 좋다는 건 형님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거 같은 데... 저와 오랜 인연인 그 분에게 그런 자신감을 보이시다니...
혹시, 그 걸 오해라고 생각하신다면 핸드폰을 보여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윽... 신이시여! 어찌 저 놈에게는 조각 같은 얼굴과 신체, 그리고 저런 말도 안돼는 머리까지 모든 걸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오늘 자네를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나?
첫 번째 사진의 여자와 지연이와 관계를 했고 이언주의 정체도 아는 데 뭐 하러 여길 오겠어?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내가 이언주를 찾아가지 않은 건 미국으로 가기 전에 이언주에게 이유성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였다. 오정희는 커피 전문점에 매일 나오고 몇 개월 동안 그 곳에 가서 내 얼굴을 알기 때문에 내 말에 신빙성을 더 할 수 있었지만 이언주가 움직이는 동선은 잘 모르고 갑자기 찾아간 내가 몇 개월 전 사진과 정황 정도로 압박을 가하는 건 실패의 부담도 안아야 한다.
“그렇죠. 이유... 제가 머리가 아팠던 것도 그 것 때문인데... 마지막에 튀어나온 게 앞의 것들과 매치가 잘 안돼요.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중학교 여선생님을 내 여자로 만들기 위해 비법이 있다면 알려줘라. 그게 아니라면 언주 누나와 제 스토리를 들려줘라.
제 부담을 약간 덜어주면서 결국 언주 누나와의 스토리를 토해내게 했죠. 결국 마지막에 남은 건 언주 누나와의 스토리.... 그 걸 듣고 어디에... 그 걸 어디에... 쓰려고 ...
형님이 첫 번째 누나, 그리고 지연 누나와 관계가 있다는 가정 하에 중학교 여선생님은 왜곡이라면...
한 가지 더, 사진을 찍은 건 몇 개월 전이었는데 왜 지금 오셨을까? 그 이유는 지연 누나의 자살 시도...
형님은 지연 누나의 자살 소식을 듣고 그 이유가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래서 지연 누나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제가 다른 여자를 어떤 식으로 함락시킨 건지 알아내려 한 거죠. 그 것들이 심경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전 남편은 나쁜 녀석이었다. 이런 식으로 여자들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고 넌 희생양일 뿐이다...
음... 형님에게 이야기를 하며 풀어가다 보니 상당히 근접한 답이 나왔네요.
정체를 밝히지 않으시니 잘 모르겠지만 정말 괴물 같은 분이네요. 첫 번째 누나와 제 스토리는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을 것 같고... 그 누나와 그 정도 관계에다가 지연 누나와도... 무시무시합니다.
하지만 형님이 모르시는 게 있군요. 지연 누나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저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을 떠난 이유도...“
난 녀석의 추리에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묵묵히 듣는 척 하고 있다가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뭐... 그럼 다른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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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거의 끝나 가네요.. 10월까지 끝내고 홀가분해 지려고 노력중입니다. ㅎㅎㅎㅎ
추석 보내고 돌아오겠습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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