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성공과 위기
내가 인사를 하기 전에 한상무가 먼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상무님. 그 동안 수고 많이 하셨지요?"
"김비서. 이런 수고라면 1년 365일 동안 해도 전혀 아깝지 않아."
"무슨 말씀이신지는 모르겠는데, 우선, 회장님은 어떠십니까?"
"회장님은 고비는 일단 넘기신 것 같아.
오늘 오후에 강남 오성 대학 병원으로 모셔올꺼야.
사모님께서 옆에 계시니까 김비서는 회장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말게.
이번 일에 우리 명운이 걸린 것이니까, 여기에 집중해주게."
"불행중 다행입니다."
한상무와 나는 소파에 마주 앉았다. 최수희와 임영선은 커피를 가져와서 같이 앉았다. 긍금해 하기는 한상무를 제외하고 우리 세 사람 모두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한상무를 쳐다보며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기다리고 있다.
"김비서는 어제 일이 궁금하겠지?"
"궁금한 정도가 아니죠.
어제 밤에는 밤잠을 완전히 설쳤습니다.
어제 매출 결과는 언제쯤 나옵니까?"
"이미 나와있을걸. 첫날인데도 엄청 좋으니까 이제 자네는 마음을 놓아도 좋아.
얼마나 좋았으면 회장님께서 쓰러지기까지 하셨겠나?"
"그렇게 좋았습니까?"
"PB 대 NB 가 평균 5 : 5 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나?"
"그 정도면 일단 압승 아닙니까?
그럼 전체 매출액에 미친 파급 효과는요?"
"어제 회장님과 같이 서울, 인천, 수원, 대전에서 직영 매장 10개를 들러봤거든.
우리 계산으로는 증가폭이 10% 를 넘은 것이 확실해.
언론 매체를 통한 광고가 전혀 없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자네 상상이 가나?"
"첫날인데도 그런 정도라면 직영 매장 쪽은 일단 안심이네요.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 대박을 기대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주말 물량은 충분하게 공급되겠습니까?"
"물량 공급은 신경쓰지 말게.
이번 의류 상품들이 이번 주말에 출시가 된다면 완전 금상첨화이겠는데."
"상무님, 그것은 그렇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알았네. 자체 홍보 효과가 이 정도면 이번 주말에 가능한 한 전부 터뜨리는 것이 좋겠어.
이제부터 우리 판매 정책은 직영 매장 위주로 갈 계획이야.
다른 매장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일단 데이터가 나오면 매장별로 분석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계획은 어떠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우선 매출액을 기준으로 엄선해서 PB 상품을 점차로 확대시켜야지."
"첫번째 고비는 일단 이번 주말이 되겠네요."
"내가 한 말이 바로 그 얘기였어.
어제 오늘 이틀 동안 매출 상황을 분석해서 주말에 필요한 물량을 충분하게 공급해야지."
한상무의 표정에서는 비장한 각오가 보였다. 그는 매장을 돌아보겠다면서 내 방을 나섰다. 나는 임영선을 전산실로 보내서 어제 매출 결과의 데이터를 분석하게 했고, 최수희를 디자인팀의 작업실로 보내서 이번 주말에 출시할 계획이라는 것을 주은혜에게 알리라고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에게 의류 상품을 위해서는 웹사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한강유통이나 나라 마트와는 관계없이 오직 의류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것이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고객이 만족하면 웹사이트에 문제가 없지만, 고객의 불만이 폭발하면 이것은 공격 당하기에 좋은 목표물이 된다. 또한 경쟁사들도 고객을 가장하여 악플로 공격해오기가 다반사이다.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못하느냐는 것이 내 입장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나는 소파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최수희가 깨운다.
"자기야. 어디 아픈 것 아니야?"
"아냐. 그냥 잠이 쏟아져서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잠시 자고 오자."
"집에서? 임비서가 가져온다는 데이터는?"
"분석이 끝나면 파일로 전송하라고 전화하면 되지."
최수희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나를 내 차에 태우고 그녀 스스로 운전대를 잡는다. 순식간에 나는 그녀의 침대에 눕혀졌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최수희의 손에 의하여 나는 곧 알몸이 되었다. 잠시 후에는 최수희도 알몸이 되어 내 품으로 미끄러져 왔다. 나는 최수희를 안았고, 우리는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오후 두 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옆에 있어야 할 최수희가 없다. 나는 일어나서 욕실로 갔으나 최수희는 욕실에도 없다.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주방으로 가서 커피메이커에 보니까 유리 주전자에 커피가 들어있는데 금방 내린 것 같다. 나는 커피를 따라 마시면서 최수희를 기다렸다. 전화기도 없다. 회사에 두고 온 것 같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배도 고프다.
나는 혼자 회사로 가기로 마음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최수희가 들어온다. 상가에 가서 도시락을 사오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도시락을 먹고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최수희는 한상무의 방으로 간다며 나와 헤어졌다.
내 방으로 들어가는데 임영선이 나를 째려본다. 나는 전화기를 찾았다. 임영선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수두룩 하다.
"태현씨, 혹시 뭔가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 안해?"
"너무 졸려서 집에 가서 자고 왔어."
"집에 갔으면, 집에 그냥 있을 것이지, 퇴근 시간 다 돼가는데 뭐하러 다시 와?"
"미안해요. 화내지 말고 데이터 분석한 것이나 줘봐요."
나는 임영선이 주는 어제 매출 분석자료를 열어보았지만 깨알 같은 숫자만 적혀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임영선도 모르겠단다.
나는 자료를 들고 2층의 총무과로 내려갔다. 사무실 안은 텅 비어있고, 박은희 대리가 혼자 앉아있다가 나를 보고 손짓을 한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나는 박대리에게 가서 그녀의 옆으로 보조의자를 당겨놓고 앉았다. 그녀의 테이블에 매출 분석자료를 펼쳐놓자, 그녀가 몸을 내 쪽으로 굽혀온다. 그녀의 가슴이 내 팔에 와서 살짝 누른다. 향긋한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내가 박대리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녀는 내게 웃으며 윙크를 한다. 내 남성이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한다.
"누나는 볼 때마다 예뻐져요?"
"하하하. 내가 원래 쪼오옴. .. 그런데 막내 비서님께서 어인 발걸음을 하셨지?"
"이거 보는 법 좀 가르쳐주세요."
"이게 뭔데?"
"몰라요. 뭐가 이렇게 많이 적혀있는지."
"처음 보는 거네. 이게 뭐지? 이런 것은 없었는데?"
그녀는 한참을 뒤적거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한 대로 보니까 그 작은 숫자들이 내 눈에도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갈수록 그녀의 가슴이 점점 더 강하게 눌러온다.
그러니까 결론은 간단하다.
1. 품목별로 PB 와 NB 를 합한 개수는 5% ~ 20% 증가했다.
2. 또 품목별로 PB 대 NB 는 4 : 6 부터 7 : 3 사이에 있다.
3. 전체 매출액의 증가는 5% ~ 15% 이다.
4. 한상무가 예견한 대로 직영 매장들은 모든 수치가 훨씬 높고, 매출액도 증가도 높다.
"뭐야아. 기껏 이것 때문에 온거여?"
"누나도 볼 겸. .. 겸사겸사. 하하."
"이렇게 되면 NB들한테 불만이 많겠는데."
"우리 매장 전부 다 합해도 양이 그리 많지 않아서 괜찮을껄요?"
"안그래도 작은 매장 점주들이 PB 상품을 더 달라고 전화를 해오는데."
"그것은 우리가 나누어주는 것이 전부니까 그렇게는 안된다고 하시면 돼요."
"물류센터에 재고도 없나?"
"입고 들어가자마자 전부 100% 다 내보냈다니까."
"다음에 또 언제 나오지?"
"주말 판매용이 금, 토요일에 나가요. 자세한 것은 한상무님이랑 통화해보세요."
"벌써 갈려고?"
"다음에 또 올께요. 수고하세요."
"그런데 우리 회식은 언제 할꺼지?"
"일단 이달에는 안되고, 다음 달에 함 보고 .."
나는 올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박은희 대리가 뒤에서 내 허벅지의 안쪽을 살살 쓰다듬는다. 내가 버러럭 하자 박대리는 고개를 홱 돌리고 딴전을 피운다.
"아! 지인짜아!"
"우리 막내, 왜 그래?
내가 뭘?
뭘 어쨌는데?"
"방금 누나가 만졌잖아요?"
"내..가? 증거 있어? 본 사람 있어?"
"에이. 관두세요."
나는 의자를 밀어 넣고 돌아서자 그녀도 따라서 일어서며, 그녀의 손이 이번에는 내 엉덩이를 친다.
짝!
"아얏! 누나!"
"어? 우리 막내, 왜 그래?"
"안되겠다. 신고해야지."
"여직원들이 가서 신고하는 데는 있어도, 남자 직원한테서 신고 받는 곳은 없을껄? 하하."
"맞네. 그럼 할 수 없다. 그런 부서를 빨리 만들라고 해야지."
"그럼 아직은 없으니까, 에잇."
박대리는 내 엉덩이를 또 한번 탁 치고 살살 쓰다듬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억울해?"
"음.. 생각 좀 해보고."
"억울하면 너도 해."
"뭘 해?"
"내 가슴을 만지든가, 엉덩이를 만지든가. 하하."
"방금 그 말 진짜죠?"
"당장 가서 신고하면 되지. 하하하."
"신고 하려면 하세요. 에잇."
나는 박대리의 옆에서 갑자기 그녀의 가슴을 꼬옥 움켜쥐었다. 박대리는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내 손을 잡고 자기 가슴으로 꼬옥 누른다. 오히려 나에게 안겨온다. 나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박대리도 가슴은 큰 편인데도 티셔츠 위로 잡히는 것은 브래지어의 컵이다.
"뭐. .. 잡히는 거라도 있니? 하하."
"엉덩이는 감이 좋은데, 브래지어 컵이 왜 이렇게 두꺼워요?
이건 뭐 완전 철로 된 갑옷이네?"
"아침에 지하철에서 너 같은 치한들이 자꾸 건드리잖아. 하하."
"저런. 그럼 폰으로 찍어서 신고하든가 해야지."
"그러게. 그놈 신고한다고 끝나냐? 그 놈이 안그러면 그 다음 놈이 또 그럴껄?"
"그런다고 그냥 당하고 다녀?"
"그러니까 갑옷을 입지. 하하."
"여름이었더라면 어쩔뻔 했어?"
"나도 내년에는 차를 사든가 해야지."
"이제 고만. 나도 올라가야지."
"싫어.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이러다가 누가 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무도 안와. 아침부터 계속 나 혼자 있었어.
한상무님이 오셔서 오늘은 업무를 중단하고 매장 지도 나가라고 다 내보냈어."
박은희가 내 복과 어깨로 팔을 걸면서 내 입술에 키스했다.
"너, 최수희랑 어디까지 갔어?"
"누나도 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우리 다 알거든."
"됐거든."
"흥!"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포개지면서 부드럽게 빨았다.
"와아. 누나 완전 키스의 달인이네."
"또 와. 또 해줄께. 하하."
나는 그녀의 몸을 힘주어 강하게 당겨 안았다. 박대리도 내 몸을 당겨서 안는다. 잠시 후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자기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문질러주었다.
"칠칠치 못하게 뭘 이렇게 쳐바르고 다니셔?"
"돌겠네. 자기가 해놓고."
그녀의 손가락은 내 입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나는 두세번 빨아주었다.
"아까 응아 하고 손 안씻었지롱. 하하."
"웨엑!"
나는 혼자 남은 박대리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총무과 사무실을 나와서 내 사무실로 갔다.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임영선이 또 째려본다.
"하여간에 하루 종일 없다니까."
"2층 총무과에 갔었어."
"휴대전화기는 갖고 다니라고 있는 거잖아."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커."
"하아. .. 아빠가 도착하셨대.
난 지금 아빠한테 갈꺼거든."
나는 매출 분석 자료를 펼쳐놓고 임영선에게 보는 방법과 내가 내린 결론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내쉰다.
"잘되면 잘돼서 쓰러지셨으니까, 잘못 됐었으면 잘못 됐다고 쓰러지셨을 껄?"
그런데, 그 때 임영선의 전화기에서 컬러링이 울린다. 임영선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엄마야? .. 어? .. 뭐어? .. 또? .. 한상무님은? .. 알았어. .."
아마도 자기 엄마와 통화를 하는 것 같다. 임영선은 통화를 끝내고 서둘러 자리를 정리한다.
"왜? 회장님께 무슨 일 생겼어?"
"도착 하자마자 또 정신을 잃으셨대."
"그럼 지금 병원으로 갈꺼지?"
"응."
"같이 가자."
"자기 시간 돼?"
"잠시 뵙고 갈 수는 있어."
나는 최수희를 불러서, 최수희와 임영선을 내 차에 타게 했다. 둘은 뒷좌석에 타고 종알거리기 시작한다. 최수희는 디자인 작업실에서 본 여성 란제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임영선은 최수희에게 어제 매출 분석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 아까 내가 임영선에게 해준 얘기다.
우리는 오성 대학 병원에 도착했다. 임영선은 인포 데스크에 가서 자기 아빠의 병동을 알아왔다. 6동 2층에 있는 중환자실이다. 우리가 2층에 도착했을 때 병실 앞에는 임영선의 엄마가 혼자 의자에 앉아있다. 우리는 인사를 했다.
임영선의 엄마는 임영선의 손을 잡고, 임영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쏟는다. 임영선의 뺨으로도 눈물이 흐른다. 최수희가 티슈로 임영선의 눈물을 닦아준다.
"엄마. .."
"영선아. .."
"아직이야?"
"글쎄. .. 너무 늦어서 수술을 해도 소용없다는데 .."
"하아. .. 하나님. .."
분위기가 갑자기 너무 침통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애들 때문에 집으로 와야 했다.
"죄송합니다. 뵙지 못하고, 그냥 갑니다."
"그러게. 아까 오시면서 정신이 들었을 때 계속 김비서 말씀을 하시던데. .."
"영선씨. 나중에 전화할께요."
"그래. 고마워."
나는 임영선 모녀는 남겨두고, 최수희만 데리고 병동을 나섰다. 최수희를 그녀의 아파트 입구에 내려주고 집으로 왔다. 애들과 공부를 하는데 계속 병원 생각이 난다. 자정이 훨씬 넘어서 공부가 끝나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회장에 대한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한참 몸부림을 치는데 충전기에 꽂혀있는 내 전화기에서 진동음이 계속 울린다. 저화가 온 것이다. 그런데 발신인은 임영선이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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