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어떤 이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던 말이 이렇게 실감 날 수 없었다. 잃어버린 내 의식을 되찾게 해준 건 까맣게 시야를 가리는 차가운 물이었으니까. 눈을 떴을 때의 그 황당한 상황과 숨을 쉬려다 물을 들이킨 아찔함은 아무리 훈련된 사람도 참기 힘든 두려움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차 안인 것은 분명했다. 창문이 열려있어 안에까지 물이 가득한 덕에 문을 열기 어렵지는 않았다. 안전벨트도 잘 풀렸다. 어느새 몸의 고통 따위는 두려움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차 밖으로 나와 위로 솟구쳤다.
“크어어!”
괴물 같은 비명을 지르며 폐에 가득히 공기를 집어 넣고야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의 호흡 후에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풍경. 서울이다. 그것도 한강 중간. 위를 쳐다보니 다리의 밑바닥이 보였다. 짐작이 갔다. 추락이다. 혹시나 싶어 귀를 쫑긋하고 다리 위의 동태를 살펴보니 몇몇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리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어둠이 가득한 밤.
(지혜는?)
맙소사!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나는 다시 숨을 들이쉬고 아래로 잠수해 들어갔다. 어두운 밤의 물속이 보일 리 만무했다. 다만 내가 조금 전에 나온 위치를 짐작해서 더듬을 수 밖에. 느껴졌다. 딱딱한 밴의 지붕이. 그렇게 더듬더듬 운전석 옆으로 갔다. 문은 닫혀있었다. 열기 위해 손잡이를 당겼지만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무언가에 부딪힌 충격으로 고장이 난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반대편 내가 나온 조수석 쪽으로 돌아갔다. 내가 나오며 열어젖힌 그대로 문은 열려있었다. 더듬어 조수석 의자를 지나 운전석을 만지자 그녀가 느껴졌다!
(지혜!)
의식이 없는 듯 했다. 서둘러 벨트를 풀려 했지만 이것마저 고장인지 풀리지 않았다. 점점 더 다급해졌다. 그렇지만 위급할 수록 침착 하라고 수없이 훈련을 받지 않았던가! 일단 가슴을 받히고 있는 벨트를 젖혀 지혜의 상체를 벗겨내고 벨트를 당겨 허리부분을 느슨하게 했다. 왼손으로 지혜를 당기고 오른 손으로 벨트를 당기며 씨름하다 보니 지혜의 몸이 마침내 풀려 나왔다. 그런 지혜를 끌고 나는 물 위로 올라왔다.
“푸우!”
다리기둥 밑의 평평한 곳에 지혜를 올려 놓고 상태를 봤다. 외상은 없어 보였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가슴을 누르고 호흡을 불어넣기를 얼마쯤 했을까, 지혜가 울컥 물을 토해내며 숨을 쉬었다. 그런 지혜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하아, 하아…… 아저… 씨……”
“그래, 지혜야. 정신 들어?”
“아저씨, 괜찮아?”
“난 괜찮아. 어디 아픈데 없어?”
“아저씨 피났었는데…… 총… 맞았죠?”
그제서야 통증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총알은 심장을 비켜갔지만 그 옆에 박혀있었다.
“지혜 수영할 줄 아니?”
“아뇨. 나 맥주병. 히히……”
이 상황에서도 히죽이며 웃는 지혜가 귀여워서 슬펐다.
(어떻게 하지? 내 몸 하나만도 지금은 도하가 어려울 것 같은데……)
“아, 그 자식 치사하게 우리를 밀었어요. 완전 살인자야. 아니 우리 죽진 않았으니 살인미수인가? 암튼 아주 나쁜 놈이에요.”
“그래. 맞아. 나쁜 놈.”
“그니까 아저씨가 혼내 줘.”
“그럴까?”
“응!”
“후후후……”
(할 수 없군.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는 수 밖에.)
주머니를 뒤져보니 다행히 전화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물에 빠진 이 전화기가 과연 통화가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 전원은 이미 나간 상태. 이것은 보통 전화기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차단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우선 배터리를 분리하고 손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전화기를 흔들어 털어 물기를 빼내려 했다.
“아저씨 지금 그거 말려서 쓸려고?”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언제 말라? 큭……”
“뭐 하다보면……”
“바보팅이! 내 전화기 써요.”
지혜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거도 젖었잖아.”
“방수코팅 한 거 거든요.”
“그래?”
“응. 일하다 보면 술에 적시고 화장실 가서 빠뜨리고 해서 지난 번 핸드폰 새로 하며 그것도 해놨지.”
“그, 그래……”
방수코팅을 했다고? 그렇다고 몇 미터 물 속에 빠져있던 그것이 제대로 동작을 할까? 하긴 그래도 내 것보다야 낫겠지. 그렇게 반신반의 하며 핸드폰을 보니 살아있다!
“여보세요?”
“……”
“부탁이 있는데.”
“……”
“데리러 와줘야겠어.”
“……”
“한강 성수대교 밑”
“……”
“고마워.”
전화를 끊고 안도의 숨을 쉰다.
“누구에요?”
“음? 어…… 있어. 아는 사람.”
“온데요?”
“음.”
“어떻게?”
“기다려 보면 알아.”
“그 트럭 몰던 놈 갔을까?”
“글쎄.”
“아직 있으면 어떻게 해요?”
“걱정 안 해도 돼.”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그 놈 때문에 거의 죽다 살았는데. 에이, 분해! 그 자식 우리 차를 밀면서 징그럽게 웃는 거 있죠? 얼굴에 점은 손톱만큼이나 큰 거 달고서는……”
“그 놈 얼굴 봤어?”
“어떻게 안 봐요? 바로 옆에 붙어서 밀어 붙이는데.”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 해볼 테야?”
“꼭 생쥐처럼 생겼어요. 오른쪽 턱쯤에 큰 점이 있구요. 뭐 일견 봐서도 덩치는 좋더라구요. 뒤에서 밀어붙이다가 재미가 들렸는지 옆에 와서는 날 보고 씩 웃는 거 있죠? 아구 소름 끼쳐. 정말 재수 없게 생겼다니까요.”
“차량 번호판은 봤어?”
“나도 확인하고 싶기는 했지만 정신 없이 달리기도 바쁘고 뒤에서 밀어붙여서 죽다 살았는데 그거 볼 시간이 어디 나야 말이죠. 근데 다리에 올라서서 우리 들이받기 전에 룸미러로 얼핏 보니까 그 자식 번호판이 안보이던데요?”
번호판도 없다? 그럼 추적하기 쉽지 않단 얘기군. 그나저나 제길, 잊었던 통증이 또 다시 밀려 온다. 계속 누르고 있었어도 피는 멈추지 않고. 이런 상태면 과다출혈로 쇼크가 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어? 저기 보트가 와요!”
“쉿! 소리내지 마. 위에 들려.”
그러자 지혜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설마 저 보트에요?”
“아마도.”
“아저씨 능력 있다! 이 밤중에 보트가 다 출동하고. 그렇죠? 아저씨?”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보트가 다가와 접안을 하고 누군가 내리는 모습이 흐릿하다. 제길!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아저씨! 정신차려봐요! 아저씨? 내가 죽지 말라고 했잖아. 죽지 말란 말야! 흑……”
(죽긴 누가 죽는다고 난리지? 나 그렇게 약하지 않아. 내가 예전엔… 이 나라에서 제법… 제법… 알아주……)
앞이 캄캄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눈은 떠지지 않고 누군가의 소리만 귓가에 들려온다.
“정말 괜찮은 거죠?”
“기다려 보세요. 곧 깨어날 테니.”
“죽는 거 아니죠?”
“죽어요? 이 친구가요? 허……”
“총에 맞았다면서요.”
“이 친구가 총 맞은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요? 겨우 한 방, 그것도 제대로 맞지도 않고서 이렇게 쓰러진 게 어이가 없구만. 은퇴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골골해졌대? 명성이 허명이 되겠구만.”
우씨! 저 놈의 주둥이를!
“야…… 너… 죽는… 다!”
“어? 깼냐? 깼으면 눈을 떠야지 눈감고 지금 죽은 척 하냐?”
“이, 이걸 그냥……”
간신히 힘을 줘서 눈을 뜬다. 낯익은 얼굴이 비릿한 미소로 나를 반기고 있다.
“그새 허약체질이 된 거야? 겨우 한 방 맞고 이 난리게?”
“한 방 맞고 다 죽어가는 거 살려준 게 누군데 그래?”
“그러게 말야. 그거 아무래도 니가 살린 게 아니라 딴 사람이 살린 거 아니었어?”
“이런 된장! 너하고 나 밖에 파견 안됐는데 다른 사람이 있을 턱이 있냐?”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는단 말야. 의식불명 환자를 이틀씩이나 들춰 업고 도저히 불가능 할거라던 사선을 넘으셨다는 기록적인 사나이께서 겨우 가슴 언저리에 한 방 맞고 그리 쉽게 쓰러지다니. 쯔쯧!”
“니가 명을 재촉하는구나.”
“아서! 난 아직 현역이거든. 은퇴한 퇴물하고는 급이 다르다고.”
“실력으로 증명해봐.”
“언제든지!”
녀석이 이렇게 약을 올리니 더 아프다.
“아저씨 괜찮아?”
“괜찮아.”
“정말이지?”
“음. 이런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뭐어? 아무 것도 아닌데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했단 말야? 이 씨!”
지혜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쳤다. 멎었던 통증이 다시 도진다.
“아아! 하지마. 아프다고.”
“안괜찮구만!”
“때리지만 않으면.”
“알았어. 안 때릴게.”
“근데 지혜, 언제부터 아저씨에게 말 놓기로 했어?”
“그랬어? 그랬군. 왜, 싫어?”
“싫다기보다……”
“아무래도 아저씨 내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뭔 소리야?”
“보아하니 저 아저씨도 아저씨처럼 어디 가서 총이나 맞고 다니는 거 같은데 나라도 옆에서 돌봐줘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안 그러면 제명대로 살 수가 없을 거 같아.”
“누가? 내가?”
“아니, 내가!”
“왜?”
“그거 몰라서 물어?”
“뭘?”
“죽을래요?”
“아니!”
“그럼 말해!”
“뭘?”
“나 사랑하지?”
“응?”
“해, 안 해?”
“그게 지금 중요해?”
“응. 중요해.”
“왜?”
“말이나 해요. 해, 안 해?”
지혜보다 녀석의 얼굴이 더 무섭다. 슬쩍 쳐다보니 생전 처음 동그랗게 뜬 녀석의 눈이 보인다. 이게 뭔 시츄에이션인가 그런 뜻인가?
“해, 안 해요?”
지혜가 다시 가슴을 내리칠 듯 손을 올린다.
“아, 알았어. 해! 한다고!”
“정확히!”
“뭘?”
“말을 정확히!”
“아……”
“어서!”
손이 더 높이 치솟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사랑해.”
“뭐라구요?”
“사랑한다구!”
“누구를!”
“지혜를!”
“누가!”
“우이씨……”
“정말!”
손이 내려 꽂힌다. 저절로 눈이 질끈 감긴다. 사람 살려!
“나는, 아니 재복이는 지혜를 사랑한다!”
아, 쪽 팔려! 저 친구 앞에서 이게 무슨 개망신이람! 아니나 다를까 저 쪽에서 누군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저 놈 소리가 아니다.
“누구?”
“험. 저기… 선배님 접니다. 예전 막내요.”
(오 마이 갓!)
“아저씨, 근데 그 아저씨들은 누구에요?”
“몰라도 돼.”
“궁금한데……”
“모르는 게 더 안전한 거야.”
“힝!”
“어허!”
“치! 근데 마지막에 둘이서 무슨 밀담을 그리 한 거에요?”
“밀담은……”
“것두 말하면 안돼요?”
“별 거 없어. 그냥 고맙다는 인사 한 거지.”
“그냥 그거?”
“뭘 더 바래?”
“아저씨, 오늘 밤에 내가 진하게 한 번 줄 테니까 말해봐! 응?”
“뭘 줘?”
“그거!”
“그거 뭐?”
“장난해요?”
“누가?”
“에이씨, 정말!”
토라진 지혜를 보며 속으로 피식 웃는다. 아직 통증이 다 가시진 않았지만 견딜 만 하다. 낙엽이 거의 다 떨어진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며 머리도 서늘한 바람을 따라 차갑게 가라 앉는다.
“내 예전 비트 제로에 있던 물건들 아직 그냥 있지?”
“그건 자네와 나만 아는 거잖아. 더구나 몇 년 동안 난 가보지도 않았어. 현장근무는 나도 손 뗀지 꽤 되잖아. 별일 없었다면 그냥 있겠지. 왜?”
“내가 좀 필요해서.”
“그 물건이 필요할 정도의 일이야?”
“아무래도.”
“흠…… 그 정도 일이면 내가 덮어줄 수 있는 정도가 아닌데……”
“괜찮아. 자네는 모르는 것으로 하면 돼. 그리고 일이 끝나면 비트 제로는 내가 처리할 테니 그리 알고.”
“그래. 원래부터 비공식적인 것들이니까 정리만 잘하면 문제될 건 없지.”
“고맙네.”
“고맙긴. 참, 이건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내가 마련해 놨어.”
“이건!”
“두 사람, 새로 시작할 기반은 될 거야.”
“이렇게까지!”
“생명의 은인에게 이 정도 은혜도 못 갚는다면 평생 짐이 돼서 어찌 살겠나?”
“고맙네, 정말.”
“아마도 이게 우리 마지막 보는 것일 테지?”
“아마도……”
“잘 가게. 그리고 저 아가씨, 괜찮아 보이더구만.”
“착한 사람이지.”
“두 사람 잘 되길 빌겠네.”
“그럼, 다음에 저 세상에서 보세나.”
“잘 가게, 친구!”
창문을 열고 차가운 늦가을의 바람을 맞는다. 운전대를 잡은 지혜의 손이 보기 좋게 하얗다.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으로 만져본다. 내 몸에서 뺀 총알. 그것으로 만든 목걸이. 이걸 갖고 있으면 다음 번 치명적인 총알을 피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하곤 했지. 나는 생각한다. 더 이상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령 내 심장이 다음 번 총알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던 말이 이렇게 실감 날 수 없었다. 잃어버린 내 의식을 되찾게 해준 건 까맣게 시야를 가리는 차가운 물이었으니까. 눈을 떴을 때의 그 황당한 상황과 숨을 쉬려다 물을 들이킨 아찔함은 아무리 훈련된 사람도 참기 힘든 두려움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차 안인 것은 분명했다. 창문이 열려있어 안에까지 물이 가득한 덕에 문을 열기 어렵지는 않았다. 안전벨트도 잘 풀렸다. 어느새 몸의 고통 따위는 두려움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차 밖으로 나와 위로 솟구쳤다.
“크어어!”
괴물 같은 비명을 지르며 폐에 가득히 공기를 집어 넣고야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의 호흡 후에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풍경. 서울이다. 그것도 한강 중간. 위를 쳐다보니 다리의 밑바닥이 보였다. 짐작이 갔다. 추락이다. 혹시나 싶어 귀를 쫑긋하고 다리 위의 동태를 살펴보니 몇몇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리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어둠이 가득한 밤.
(지혜는?)
맙소사!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나는 다시 숨을 들이쉬고 아래로 잠수해 들어갔다. 어두운 밤의 물속이 보일 리 만무했다. 다만 내가 조금 전에 나온 위치를 짐작해서 더듬을 수 밖에. 느껴졌다. 딱딱한 밴의 지붕이. 그렇게 더듬더듬 운전석 옆으로 갔다. 문은 닫혀있었다. 열기 위해 손잡이를 당겼지만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무언가에 부딪힌 충격으로 고장이 난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반대편 내가 나온 조수석 쪽으로 돌아갔다. 내가 나오며 열어젖힌 그대로 문은 열려있었다. 더듬어 조수석 의자를 지나 운전석을 만지자 그녀가 느껴졌다!
(지혜!)
의식이 없는 듯 했다. 서둘러 벨트를 풀려 했지만 이것마저 고장인지 풀리지 않았다. 점점 더 다급해졌다. 그렇지만 위급할 수록 침착 하라고 수없이 훈련을 받지 않았던가! 일단 가슴을 받히고 있는 벨트를 젖혀 지혜의 상체를 벗겨내고 벨트를 당겨 허리부분을 느슨하게 했다. 왼손으로 지혜를 당기고 오른 손으로 벨트를 당기며 씨름하다 보니 지혜의 몸이 마침내 풀려 나왔다. 그런 지혜를 끌고 나는 물 위로 올라왔다.
“푸우!”
다리기둥 밑의 평평한 곳에 지혜를 올려 놓고 상태를 봤다. 외상은 없어 보였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가슴을 누르고 호흡을 불어넣기를 얼마쯤 했을까, 지혜가 울컥 물을 토해내며 숨을 쉬었다. 그런 지혜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하아, 하아…… 아저… 씨……”
“그래, 지혜야. 정신 들어?”
“아저씨, 괜찮아?”
“난 괜찮아. 어디 아픈데 없어?”
“아저씨 피났었는데…… 총… 맞았죠?”
그제서야 통증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총알은 심장을 비켜갔지만 그 옆에 박혀있었다.
“지혜 수영할 줄 아니?”
“아뇨. 나 맥주병. 히히……”
이 상황에서도 히죽이며 웃는 지혜가 귀여워서 슬펐다.
(어떻게 하지? 내 몸 하나만도 지금은 도하가 어려울 것 같은데……)
“아, 그 자식 치사하게 우리를 밀었어요. 완전 살인자야. 아니 우리 죽진 않았으니 살인미수인가? 암튼 아주 나쁜 놈이에요.”
“그래. 맞아. 나쁜 놈.”
“그니까 아저씨가 혼내 줘.”
“그럴까?”
“응!”
“후후후……”
(할 수 없군.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는 수 밖에.)
주머니를 뒤져보니 다행히 전화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물에 빠진 이 전화기가 과연 통화가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 전원은 이미 나간 상태. 이것은 보통 전화기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차단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우선 배터리를 분리하고 손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전화기를 흔들어 털어 물기를 빼내려 했다.
“아저씨 지금 그거 말려서 쓸려고?”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언제 말라? 큭……”
“뭐 하다보면……”
“바보팅이! 내 전화기 써요.”
지혜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거도 젖었잖아.”
“방수코팅 한 거 거든요.”
“그래?”
“응. 일하다 보면 술에 적시고 화장실 가서 빠뜨리고 해서 지난 번 핸드폰 새로 하며 그것도 해놨지.”
“그, 그래……”
방수코팅을 했다고? 그렇다고 몇 미터 물 속에 빠져있던 그것이 제대로 동작을 할까? 하긴 그래도 내 것보다야 낫겠지. 그렇게 반신반의 하며 핸드폰을 보니 살아있다!
“여보세요?”
“……”
“부탁이 있는데.”
“……”
“데리러 와줘야겠어.”
“……”
“한강 성수대교 밑”
“……”
“고마워.”
전화를 끊고 안도의 숨을 쉰다.
“누구에요?”
“음? 어…… 있어. 아는 사람.”
“온데요?”
“음.”
“어떻게?”
“기다려 보면 알아.”
“그 트럭 몰던 놈 갔을까?”
“글쎄.”
“아직 있으면 어떻게 해요?”
“걱정 안 해도 돼.”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그 놈 때문에 거의 죽다 살았는데. 에이, 분해! 그 자식 우리 차를 밀면서 징그럽게 웃는 거 있죠? 얼굴에 점은 손톱만큼이나 큰 거 달고서는……”
“그 놈 얼굴 봤어?”
“어떻게 안 봐요? 바로 옆에 붙어서 밀어 붙이는데.”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 해볼 테야?”
“꼭 생쥐처럼 생겼어요. 오른쪽 턱쯤에 큰 점이 있구요. 뭐 일견 봐서도 덩치는 좋더라구요. 뒤에서 밀어붙이다가 재미가 들렸는지 옆에 와서는 날 보고 씩 웃는 거 있죠? 아구 소름 끼쳐. 정말 재수 없게 생겼다니까요.”
“차량 번호판은 봤어?”
“나도 확인하고 싶기는 했지만 정신 없이 달리기도 바쁘고 뒤에서 밀어붙여서 죽다 살았는데 그거 볼 시간이 어디 나야 말이죠. 근데 다리에 올라서서 우리 들이받기 전에 룸미러로 얼핏 보니까 그 자식 번호판이 안보이던데요?”
번호판도 없다? 그럼 추적하기 쉽지 않단 얘기군. 그나저나 제길, 잊었던 통증이 또 다시 밀려 온다. 계속 누르고 있었어도 피는 멈추지 않고. 이런 상태면 과다출혈로 쇼크가 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어? 저기 보트가 와요!”
“쉿! 소리내지 마. 위에 들려.”
그러자 지혜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설마 저 보트에요?”
“아마도.”
“아저씨 능력 있다! 이 밤중에 보트가 다 출동하고. 그렇죠? 아저씨?”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보트가 다가와 접안을 하고 누군가 내리는 모습이 흐릿하다. 제길!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아저씨! 정신차려봐요! 아저씨? 내가 죽지 말라고 했잖아. 죽지 말란 말야! 흑……”
(죽긴 누가 죽는다고 난리지? 나 그렇게 약하지 않아. 내가 예전엔… 이 나라에서 제법… 제법… 알아주……)
앞이 캄캄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눈은 떠지지 않고 누군가의 소리만 귓가에 들려온다.
“정말 괜찮은 거죠?”
“기다려 보세요. 곧 깨어날 테니.”
“죽는 거 아니죠?”
“죽어요? 이 친구가요? 허……”
“총에 맞았다면서요.”
“이 친구가 총 맞은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요? 겨우 한 방, 그것도 제대로 맞지도 않고서 이렇게 쓰러진 게 어이가 없구만. 은퇴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골골해졌대? 명성이 허명이 되겠구만.”
우씨! 저 놈의 주둥이를!
“야…… 너… 죽는… 다!”
“어? 깼냐? 깼으면 눈을 떠야지 눈감고 지금 죽은 척 하냐?”
“이, 이걸 그냥……”
간신히 힘을 줘서 눈을 뜬다. 낯익은 얼굴이 비릿한 미소로 나를 반기고 있다.
“그새 허약체질이 된 거야? 겨우 한 방 맞고 이 난리게?”
“한 방 맞고 다 죽어가는 거 살려준 게 누군데 그래?”
“그러게 말야. 그거 아무래도 니가 살린 게 아니라 딴 사람이 살린 거 아니었어?”
“이런 된장! 너하고 나 밖에 파견 안됐는데 다른 사람이 있을 턱이 있냐?”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는단 말야. 의식불명 환자를 이틀씩이나 들춰 업고 도저히 불가능 할거라던 사선을 넘으셨다는 기록적인 사나이께서 겨우 가슴 언저리에 한 방 맞고 그리 쉽게 쓰러지다니. 쯔쯧!”
“니가 명을 재촉하는구나.”
“아서! 난 아직 현역이거든. 은퇴한 퇴물하고는 급이 다르다고.”
“실력으로 증명해봐.”
“언제든지!”
녀석이 이렇게 약을 올리니 더 아프다.
“아저씨 괜찮아?”
“괜찮아.”
“정말이지?”
“음. 이런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뭐어? 아무 것도 아닌데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했단 말야? 이 씨!”
지혜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쳤다. 멎었던 통증이 다시 도진다.
“아아! 하지마. 아프다고.”
“안괜찮구만!”
“때리지만 않으면.”
“알았어. 안 때릴게.”
“근데 지혜, 언제부터 아저씨에게 말 놓기로 했어?”
“그랬어? 그랬군. 왜, 싫어?”
“싫다기보다……”
“아무래도 아저씨 내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뭔 소리야?”
“보아하니 저 아저씨도 아저씨처럼 어디 가서 총이나 맞고 다니는 거 같은데 나라도 옆에서 돌봐줘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안 그러면 제명대로 살 수가 없을 거 같아.”
“누가? 내가?”
“아니, 내가!”
“왜?”
“그거 몰라서 물어?”
“뭘?”
“죽을래요?”
“아니!”
“그럼 말해!”
“뭘?”
“나 사랑하지?”
“응?”
“해, 안 해?”
“그게 지금 중요해?”
“응. 중요해.”
“왜?”
“말이나 해요. 해, 안 해?”
지혜보다 녀석의 얼굴이 더 무섭다. 슬쩍 쳐다보니 생전 처음 동그랗게 뜬 녀석의 눈이 보인다. 이게 뭔 시츄에이션인가 그런 뜻인가?
“해, 안 해요?”
지혜가 다시 가슴을 내리칠 듯 손을 올린다.
“아, 알았어. 해! 한다고!”
“정확히!”
“뭘?”
“말을 정확히!”
“아……”
“어서!”
손이 더 높이 치솟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사랑해.”
“뭐라구요?”
“사랑한다구!”
“누구를!”
“지혜를!”
“누가!”
“우이씨……”
“정말!”
손이 내려 꽂힌다. 저절로 눈이 질끈 감긴다. 사람 살려!
“나는, 아니 재복이는 지혜를 사랑한다!”
아, 쪽 팔려! 저 친구 앞에서 이게 무슨 개망신이람! 아니나 다를까 저 쪽에서 누군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저 놈 소리가 아니다.
“누구?”
“험. 저기… 선배님 접니다. 예전 막내요.”
(오 마이 갓!)
“아저씨, 근데 그 아저씨들은 누구에요?”
“몰라도 돼.”
“궁금한데……”
“모르는 게 더 안전한 거야.”
“힝!”
“어허!”
“치! 근데 마지막에 둘이서 무슨 밀담을 그리 한 거에요?”
“밀담은……”
“것두 말하면 안돼요?”
“별 거 없어. 그냥 고맙다는 인사 한 거지.”
“그냥 그거?”
“뭘 더 바래?”
“아저씨, 오늘 밤에 내가 진하게 한 번 줄 테니까 말해봐! 응?”
“뭘 줘?”
“그거!”
“그거 뭐?”
“장난해요?”
“누가?”
“에이씨, 정말!”
토라진 지혜를 보며 속으로 피식 웃는다. 아직 통증이 다 가시진 않았지만 견딜 만 하다. 낙엽이 거의 다 떨어진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며 머리도 서늘한 바람을 따라 차갑게 가라 앉는다.
“내 예전 비트 제로에 있던 물건들 아직 그냥 있지?”
“그건 자네와 나만 아는 거잖아. 더구나 몇 년 동안 난 가보지도 않았어. 현장근무는 나도 손 뗀지 꽤 되잖아. 별일 없었다면 그냥 있겠지. 왜?”
“내가 좀 필요해서.”
“그 물건이 필요할 정도의 일이야?”
“아무래도.”
“흠…… 그 정도 일이면 내가 덮어줄 수 있는 정도가 아닌데……”
“괜찮아. 자네는 모르는 것으로 하면 돼. 그리고 일이 끝나면 비트 제로는 내가 처리할 테니 그리 알고.”
“그래. 원래부터 비공식적인 것들이니까 정리만 잘하면 문제될 건 없지.”
“고맙네.”
“고맙긴. 참, 이건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내가 마련해 놨어.”
“이건!”
“두 사람, 새로 시작할 기반은 될 거야.”
“이렇게까지!”
“생명의 은인에게 이 정도 은혜도 못 갚는다면 평생 짐이 돼서 어찌 살겠나?”
“고맙네, 정말.”
“아마도 이게 우리 마지막 보는 것일 테지?”
“아마도……”
“잘 가게. 그리고 저 아가씨, 괜찮아 보이더구만.”
“착한 사람이지.”
“두 사람 잘 되길 빌겠네.”
“그럼, 다음에 저 세상에서 보세나.”
“잘 가게, 친구!”
창문을 열고 차가운 늦가을의 바람을 맞는다. 운전대를 잡은 지혜의 손이 보기 좋게 하얗다.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으로 만져본다. 내 몸에서 뺀 총알. 그것으로 만든 목걸이. 이걸 갖고 있으면 다음 번 치명적인 총알을 피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하곤 했지. 나는 생각한다. 더 이상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령 내 심장이 다음 번 총알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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