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김태현과 엄마의 거래
"누나, 우리 애들은 지금 도서관에 있고, 아직 회사는 일과가 끝난 것이 아니잖아.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뺏으면 어떻게 해요?"
"아아. 미안해요."
아이린은 나에게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그런데 발신인은 임영선이다. 그 전화는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서 바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엄마가 자기 보고 싶대. 나중에 다시 전화할께."
애들이나 송실장이 한 전화가 아니어서 일단 안심이다. 나는 전화기를 옆으로 밀어두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린은 내 몸 위로 올라온다. 아이린의 알몸이 내 몸 위에서 몸부림을 치다시피 하면서 내 몸 구석구석을 자극한다. 더운 여름날의 분수는 쉬지 않고 물을 뿜어서 세상을 식히지만, 아이린은 쉬지 않고 내 몸을 자극하여 나를 뜨겁게 달군다.
내 몸은 이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녹아 내리는 기분이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런 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아이린의 몸은 활짝 열리고, 내 몸은 아이린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하아.. 자기야. .."
"누나. .."
서로 다른 우리의 두 몸이 또 다시 하나가 된다. 이제부터 몸부림은 아이린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둘이 똑같이 한다. 그녀의 온 몸이 흔들리면서 출렁거린다. 우리는 혼신을 다하여 서로를 탐닉한다.
이제는 몸 뿐 아니라 마음도 하나가 된다. 우리는 서로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몽롱한 상태로 들어간다. 서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싫어서 우리는 서로를 부등켜 안는다. 이 순간에 우리는 잠시 이 세상을 벗어난다. 우리에게 잠시만 허용된 이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등켜 안고 치를 떤다. 우리의 몸을 휘감던 열기와 폭풍이 가라앉고, 우리에게 휴식이 찾아온다.
"흐윽. .. 자기야. .. 으흐흑. .."
"누나. .. 하아. .."
"하아. .. 나 자기 여자 맞지?"
"착한 누나. .."
"하아아. .. 지금 이 순간 만이라도 좋아. .. 나 자기 여자야."
"그래. 맞아. .. 지금 누나는 내 여자야."
"아아. .. 너무 행복해."
"그렇게 좋아?"
"행복이라는 것. 그거 진짜 별것 아니거든.
그런데 그것이 나한테 없는 거 자기 모르지?"
"음..."
"자기한테 안기기만 하면, 거기에 내 행복이 있단 말이야."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아이린은 내 입술을 빨아당긴다. 나는 아이린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그녀의 몸을 내 쪽으로 힘껏 당겼다.
그녀에게 내가 붙인 이름은 아이린이다. 그렇지만 여지껏 내가 이 이름으로 그녀를 부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아이린은 그녀의 이름임에 틀림없지만, 내가 붙인 이름이면서도 내 입 밖으로 나와본 적이 없다.
바로 이 이름 아이린처럼, 그녀는 내 여자이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날이 길수록 이것은 나에게 점점 더 사실로 굳어져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나도 아이린의 이 말을 수긍했다. 언젠가 나도 아이린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슬픈 이름 아이린, 또 아이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인을 보면 내 가슴이 저려온다.
아이린은 일어나서 침대를 내려갔다.
"자기 그거 알아?"
"어?"
"지혜만 백점이 아니라, 자기도 백점이야. 헤헤."
"아이. 참. 뭐야아아."
이것은 애교인가? 아이린은 내게 키스하고 침실을 나갔다. 아마 욕실로 가는 것 같다. 나는 눈 을 감고 그대로 계속 누워 있었다.
갑자기 아까 임영선에게서 걸려왔던 전화 생각이 났다. 나는 임영선에게 전화를 했다. 임영선도 역시 아까 이사회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자기한테 엄마가 할 말이 있는데 .."
"내일 아침 출근 길에 데리러 갈꺼니까, 내가 올라갈까?"
"그게 아니고 내일 오전에 회사로 오실꺼야."
"그래. 그럼 내일 오시면 뵙자."
"은혜 언니가 오늘 밤에 회식하는 데로 자기도 오라는데?"
"애들 시험 내일이 마지막 날이야. 나는 안 돼."
우리는 통화를 끝냈다. 나는 임영선의 엄마가 아마도 이사회와 주주총회에 대한 일 때문에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주은혜의 디자인팀 회식에는 갈 마음이 없었다. 지난 번 회식 때 그녀의 횡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이린이 침실 안으로 머리만 들이밀고 내게 물었다.
"자기, 커피 마실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갔다.
내가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주방에서 아이린이 나를 오라고 부른다. 나는 옷을 외출복으로 입고, 주방으로 갔다. 아이린은 내 잔에 커피를 담아서 내게 준다. 아이린은 내 앞 자리로 나와 마주앉는다. 나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기 그 한강유통 사모님 말인데. .."
"그 분이 왜?"
"사모님 그러는데, 지분을 자기한테 양도해주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 쪽으로 나는 잘 모르겠는데. .. 지금 왜 그런 말이 나오지?"
"주주총회에서 자기가 대표이사로 선출이 되려면 자기 지분이 있어야 하거든.
안그러면 자기는 말 그대로 바지회장이란 말이야."
"그럼 날더러 최대주주 역할도 하라고?"
"그런 일이 따로 있는 것은 절대 아니야."
"나중에 주주총회 끝나면 되돌려 주면 되는거지?"
"거기 대해서는 나도 아직 몰라.
내일 오전에 나보고 자기 회사로 오래."
"그 문제는 나 대신에 누나랑 송실장이 맡아서 했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깊이 개입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모님 생각은 다른 것 같던데. .."
"나 지금 집에 엄마한테 가서 저녁 먹어야 하거든."
"모셔다 드릴까?"
"나는 신경쓰지 말고, 나중에 애들이나 시간 맞춰서 데려와요."
"집에서 잘꺼야?"
"아직 모르겠어. 일단 엄마가 오라고 하시니까 가는 거야."
"따라와. 지금 자기도 데려다 주고, 나중에 애들도 실어올께."
아이린은 내 차로 우리 아파트 입구까지 나를 태워다 주었다. 그녀는 나중에 보자는 말을 하고 갔다. 나는 집으로 올라갔다. 엄마의 정겨운 잔소리가 시작된다.
"돈 웬만큼 벌었니? 공부는 언제 시작해?"
"아직 멀었어요."
"한 학기만 휴학한다더니 거짓말만 하고."
"거짓말 아니거든.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 거지."
그런데 엄마가 한마디 했는데, 나를 기절할 것 같다."
"너 저기 상가에 약국집 딸 다미 알지?"
"어?"
"그 집에서 선보라는데 어쩔래?"
"뭐라고?"
"다미 걔도 이번 학기만 다니면 졸업이라. .."
"졸업은 다미가 하지, 나도 해요?"
"다미 엄마가 태현이 어디를 잘 봤는지, 너 놓치면 안된다고 .."
"요새 세상에 무슨 맞선이야?"
"너희는 어려서부터 같이 컸는데 그런게 필요하냐고 했더니 .."
"엄마 그런 얘기 하려고 나 불렀어?"
"나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
"안되겠다. 이제 우리 엄마도 요양원에 가실 때가 .."
"이 녀석이!"
"그런 어이없는 소리 자꾸 할꺼면, 나 다음부터 집에 안온다."
"누가 당장 결혼하래? 그냥 만나기나 .."
"엄마! 내가 할 일이 그렇게도 없어보여?"
"아냐. 내 아들 김태현 엄청 있어보여. 그러니까 우리 거래 하자."
"무슨 거래를 해? 그 맞선 얘기면 꺼내지 마."
"너네 2층에 있는 그 오피스텔 2억 달라는데, .."
"어? 어쩌지? 나 돈 한 푼도 없거든요."
"맞선 보면 그거 사줄께."
"안해. 안보고 안사."
"저 고집 또 시작이네."
"엄마. 그럼 한수정은 어떡해?"
"왜? 너네 그런 사이니?"
"이제 알았지? 그런 얘기 다시는 하지마."
"선생 딸보다 약사 딸이 더 낫지 않나?"
"딸은 다 같은 딸이지 다를게 뭐 있어?
부모가 뭘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 학비 다 대서 졸업 시키겠대잖아."
"관두라니까! 그 집 없어도 나 대학 졸업 하거든요."
"이게 어딜 엄마 앞에서 버러럭이야?"
"나 간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엄마는 내 팔을 당겨서 자리에 앉혔다. 나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내가 내일 그 오피스텔 계약하고, 인테리어 맡기려고."
"인테리어는 내 학생 아빠가 하면 되니까, 엄마는 사기만 해요."
"너는 한 푼도 못 보태?"
"이번에 번 돈 다 썼어. 다시 시작해야 해."
"날린 것은 아니고?"
"엄마도 참."
"당장 집으로 들어올래?"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짓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이번 주말에 다미네 식구들 만나자. 알았지?"
"엄마!"
"나 귀 안먹었는데?"
"이번 주말에 나 일본가요."
"이번 주말에 안되면 다음 주말에 하면 되지."
"다음 주말에는 나 홍콩 가."
"너 아무리 그래도 주말은 온다."
"엄마 아무리 그래도 갈 곳은 많거든."
"요게 정말."
우리 아파트 상가에 제법 큰 약국이 있다. 그 집에 딸이 있는데, 걔 이름이 조다미이다. 나랑은 어린이집 시절부터 같이 컸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우리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일년에 한두번, 그것도 우연히 지나가다 만나는 것이 전부다. 조다미는 어려서부터 발레로 음악으로 컸다. 학교에 다니면서 이런 저런 과외도 해서 공부도 제법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조다미가 대학에 가면서는 결과가 그리 탐착치 않게 돼버렸다. 엄마 말로는 한 동안 어느 대학에 다니는가를 숨겼다고 한다.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데, 얼굴도 대대적으로 갈아엎은 것 같았다. 한동안 조다미는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피하기도 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무슨 맞선?
지금 나는 졸업은 커녕, 아직 휴학 중이고 복학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나한테 자기네 딸이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들이 민다고? 약사도 약사 나름인가?
엄마는 나한테 몇 번이고 강요를 했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싫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오피스텔로 돌아오는데, 오피스텔 값이 2억이라는 말에 신경 쓰인다. 2층에 있는 오피스텔의 면적이 넓은 것은 이해를 할 수 있는데, 그 가격은 내 수준에는 너무 심하게 비싼 것 같다. 나는 내 잔고를 모두 아이린에게 주고 주식을 사들이는 데에 시용해버렸기 때문에, 지금 몇백만원이 전부이다.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엄마에게도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다. 혹시 엄마가 그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오피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린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 지금 어디야?"
"해수 텔. 해수 엄마랑 얘기하는 중인데요."
"잠시만 내려오실래요?"
"지금? 급해요?"
아이린은 놀래서 달려 내려왔다. 나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했지만, 결국은 조다미와 맞선 얘기와, 2억에 대해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엄마가 무슨 일을 저지를 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걸 사는데 2억이 필요하다고?"
"안그러면 맞선 보러 .."
"어머님도 참. 요새 세상에 무슨 맞선까지 보라고 그러신대?
조다미가 그렇게 마음에 드시나? 하하."
"내 잔고는 없죠?"
"거의 없지. 나도 닥닥 긁었고."
아이린은 전화를 했다. 조해수 엄마랑 통화하는 것 같다. 아이린은 나를 침실로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에 조해수 엄마가 내려왔다. 나는 귀를 문에 대고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아이린은 일부러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내가 엿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야. 윤미진. 너 내일 아침에 5억만 풀어라."
"얘가. 내가 그 큰 돈을 어떻게 .."
"내가 그 돈이 있었는데, 이번에 전부 주식 사는데 밀어 넣고 완전 무일푼이야.
저 PC방 곧 팔리니까 돈 나오는 대로 바로 돌려줄께."
"아이. .. 참. .."
"너 이제 왜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니?"
"그래? 그 큰 돈을 왜 그러는데?"
"이 건물 2층에 텔 두개가 났는데, 그거 2층을 통째로 다 사버리자."
"그걸 다 사서 어쩌게?"
"태현씨를 그리로 이사시키고, 이쪽에서는 살고, 건너쪽에서는 애들 공부시키게."
"지금 처럼 계속하면 안돼? 꼭 그래야 해?"
"내가 여기 오르내리기도 너무 힘들어.
또 여기는 너무 작아서 세 명이 같이 공부하는데는 무리가 있어.
이번 시험에 해수 결과 잘 나왔다고 말 안했니?
지혜랑 경식이 백점짜리 우루루 못들었어?"
"들었어."
"그럼 잔소리 말고 너 내일 해결해.
명의는 아무래도 태현씨 명의로 하고.
아. 그리고 너 신랑보고 인테리어 깔끔하게 하라고 해. 알았지?"
"그게. .. 그 .."
"나 내일 아침에 한강 유통에 가거든.
임회장 와이프가 보재.
거기서 매장 건설업체 얘기가 나오면 뭐라고 해야겠는데 .."
"어머? 그래? 이 아래층 문제는 내일 꼭 해야 해?"
"목이 워낙 좋아서 내일은 나간대. 서둘러서 잡아야지."
"알았어. 그거 사놓고 공사까지 끝내놓을께."
"이번 시험 끝났으니까, 다음 기말 시험 거기서 준비하게 깔끔하게 빨리 해."
"알았어. 그럼 나 집에 가서 애 아빠랑 얘기."
"야아. 그 정도 네 손에서 해결 안돼?
너 요새 자꾸 삐딱 할꺼니?
내일 신랑 내가 만날까?"
"아니야. 걱정마.
사는 것은 신랑 모르게 하고, 공사는 신랑한테 하라고 할게. 됐지?"
"나 내일 회사에 있으니까 늦어도 11시까지 전화 해.
4억은 사는데 쓰고 1억은 내 통장으로 넣어. 알았지?"
"걱정 마. 너 돈 하나도 없니?"
"응. 나도, 태현씨도 완전 무일푼이다."
"그럼 2천 정도는 현금으로 따로 빼줄께."
"3천!"
"알았어. 3천."
"너 지난 번에 그 찌질한 새X 떨구는데 얼마 들었어?"
"이거 저거 다 해서 5천 정도."
"그거 .. 해수 아빠는 모르지?"
"알 리가 없지. 알면 난리 나지."
"알았어."
"어? 그럼 3천은 너무 작나? 5천으로 할께."
"얘가 이제 좀 똑똑해지네.
우리 얘기 처음부터 다시 할까?"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내일 아침에 2층 통째로 사고, 네 통장으로 1억 넣고, 현금 5천 빼놓고,
너한테 11시까지 전화로 보고하고. 됐지?"
"그 간단한 얘기하는데 시간이 꼭 이렇게 오래 걸려야 하니?"
"아니야. 다음부터는 좀 빨리 해보자."
"이 일 애들 모르게 해라."
"미쳤어? 이 일은 비밀로 해야지."
"돈 나오는 대로 바로 줄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아냐. 서두를 필요 없어. 천천히 줘도 돼.
"나가자. 애들 데려와야지."
아이린은 조해수 엄마의 팔을 잡고 같이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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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 추천이 500을 넘었네요.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
오늘 애들이랑 놀러 나가기로 약속했었는데,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식구들 다 내보내고,
혼자 남아서 이 글 써서 올립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 Ja"dore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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