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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00:04 882회 0건
7일의 휴가

Written by 검은나비

*이 소설은 픽션이며, 현실의 인물과 절대로! 전혀! 네버! 연관이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연상된다면 그것은 눈의 착각.

[4일차 낮] 윤하와 병간호 (1)

---------------------

"에에에엑!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우우우! 우린 휴가 중이라구요!"
"착취억압 물러가라, 물러가라! 휴가를 보장하라!"
"회사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나, 나한테 말해도....."

지금 우리는 열심히 데모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벌떼 같은 우리의 공격에 매니저는 난색에 처해 있었다.

응?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으음, 조금 전으로 돌아가 보자면...


띵동~

"에? 누구 올 사람 있나?"
"글쎄. 택밴가? 누구 택배 시킨 사람~"

나와 함께 쇼파에서 열심히 TV를 보던 태은이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하나둘 목소리가 방과 거실 구석에서 흘러나왔다.

"없어!"
"없어요~"
"난 아냐."
"미투."
"미쓰리."
"미포."
"으음... 없나?"
"혹시 하은이 꺼 아냐? 나가봐."
"그런가...?"

태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으로 향하... 려다 말고 멈춰 인상을 찡그렸다.

"잠깐. 근데 왜 내가 나가?"
"니가 제일 가까웠잖아."
"...내가 제일 문에서 먼데?"

사실 나랑 태은이가 있던 쇼파는 가장 안쪽에 있다.
하지만.....

"나한테 제일 가깝잖아."

중요한 건 그거지 뭐.
누가 내 말에 대답하래?
내가 쿨하게 대답하자 태은이는 살짝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한 번 더 벨이 울리자 주변에 있던 애들이 지원사격을 했다.

"일어난 김에 그냥 갔다오지?"
"고마워요 언니~"
"...니들은 내가 뭘로 보이냐?"

뭘로 보이냐고? 그거야...

"엄마."
"보모요."
"가정부!"
"하녀 아니야?"
"이, 이것들이...! 야! 나 리더야, 리더! 내가 제일 언니라고!"

우리의 진심어린 대답(?)에 태은이는 발광했지만, 애들은 가볍게 무시해 주었다.
훗. 네가 아무리 날뛰어 봤자 너는 하찮은 태은일 뿐이란다. 잔소리말고 얼른 손님이나 맞으렴.
우리가 쿨하게 태은이를 무시하지 태은이는 얼굴을 구기고는 투덜거리며 현관을 향했다.

"두고봐... 이것들이 진짜....."

두고보라는 년 하나도 안 무섭더라.
할테면 해 보시징~

나는 태은이를 보내고 다시 TV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있길 잠깐, 거실 입구에서 태은이가 큰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다들 주목!!"

에이씨, 뭐야? 한참 재밌는데.
잉, 저건 누구?

나는 태은이 옆에 서있는 검은 옷의 사람을 보고는 살짝 이마를 좁혔다. 그리고 슬쩍 시선을 위로 올리자, 많이 본 얼굴이 보였다.
어라? 매니... 저?
잠깐. 매니저가 왜 여기있어?

나와 모든 애들이 함께 어리둥절해 하는데 살짝 얼굴을 붉힌 매니저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아무리 휴가중이라지만 좀 옷들은 입고..."

헉!!! 마, 맞다. 옷!
나 지금 엄청 대강 입었는데!

내가 경악하는 것과 동시에 애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꺄아아악!!"
"나, 나가요! 어딜 들어왓!!"
"아악! 내 속옷!"

우와, 애들 진짜 빠르네.
어머나,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나도 옷!

나와 애들은 바닥에 깔린 속옷과 함께 순식간에 거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대부분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반팔 티에 핫팬츠 차림이었으니만큼 -지금은 7월이다- 급한 것이다.
다급히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데 거실에서부터 태은이의 아줌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움홧홧홧. 내 복수가 어떠냐!"

.....참 빠른 복수 고맙구나.
그럼 나도 보답은 해 줘야겠지? 뿌득!

나는 오른쪽에 있는 은영이를 살짝 쳐다보았고,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은영이도 하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은이 너, 죽었어!


그리고 잠시 후.

"다 모였냐?"
"넵. 근데 무슨 일이에요? 우리 휴가중인데."

모두 거실에 모이자 태은이가 대표로 매니저에게 질문했다.
물론 그 사이에 약간의 에피소드 -태은이가 제니랑 나, 은영이한테 좀 맞고 매니저도 덤으로 좀 맞고-가 있긴 했지만 그거야 뭐... 별일 아니니까.

잠시 머리를 문지르던 매니저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두 명이 비는데? 하은이랑 윤하는?"
"하은이는 여행 갔고, 윤하는 아파요. 지 방에 누워있어요."

윤하는 대체 뭘 하고 놀았는지 감기가 제대로 걸려 낑낑대고 있었다. 쯧쯧. 십중팔구 희라랑 실컷 뒹군 게지.
하기사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뭐라고 할 처지는 못 되나? 큼큼.

내가 슬쩍 윤하에게 공감하며 얼굴을 붉히는데, 매니저가 살짝 볼을 긁적거리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음... 그래? 그래도 뭐 사람 수는 맞으니..."

응? 사람 수? 이게 뭔 소리래?

"무슨 말이에요? 사람 수라니?"

내가 의아해하는 걸 서연이도 같이 느꼈는지 서연이가 묻자 매니저가 별거 아니라는 듯 던진 말은 숙소 안에 폭풍을 불러왔다.

"아, 너희 중에 몇 명을 차출해야 돼서."
".....엥?"
"뭐시라?"
"지금 뭐라 그랬어요?"

차출? 그러니까 지금, 우리 일 시키겠단 의미지?
우리 휴가 아니었나?

"우리 지금 휴가잖아요? 스케줄 안 잡는다면서요!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요!"

오오! 나인걸즈 대변인 리더 태은, 잘한다!
악독한 매니저를 물리쳐랏!!

그리고 상황을 눈치 챈 멤버들도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그리고 상황은 처음으로.

"에에에엑!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우우우! 우린 휴가중이라구요!"
"착취억압 물러가라, 물러가라! 휴가를 보장하라!"
"회사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나, 나한테 말해도....."

아니 휴가래 놓고 일시키는 게 어딨어!
이게 대체 몇 개월 만에 받는 휴간데엣!!! 우리의 휴가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자아, 순순히 차출을 취소하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아, 아니 그러니까 그걸 나한테 말해도....."
"에에잇!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다니! 얘들아, 처리해!"
"와아아아!"
"악덕업주 물러가라!"
"아아아악!! 나보고 어쩌라고오오오!!!"

퍽! 퍽! 콰직! 우득!

밟아! 밟아!
치사하게 휴가라고 해놓고 일을 시키다니!

나와 멤버들은 루나의 주도 하에 열심히 매니저를 밟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내 권한이 아니라니까..."
"쳇. 진짠가 보네."
"에이씨, 나도 하은이처럼 여행이나 갈껄!"

그렇게 밟았는데도 포기하지 않다니.
끙, 좀 밟으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칫칫.

나와 멤버들은 아무리 밟아도 포기하지 않는 매니저를 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전에 가끔 밟다 보면 포기하고 다른 애들을 차출하러 가는 경우가 있었기에 일단 밟고 본 건데, 아쉽게도 이번엔 차선책이 없었나 보다.

이씨, 일하기 싫은데... 힝.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다음엔 그거 먼저 물어보고 밟아주면 고맙겠구나."

매니저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태은이에게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총 여섯명인데, 한명짜리 한 개랑 다섯 명짜리 하나야."
"엥, 하나도 아니에요? 대체 이런 일이 왜 생긴 거예요?"
"맞아요! 왜 우릴 끌어들여요!"

에이씨, 휴가중에 일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짜증나네!
.....좀더 밟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애들의 눈이 번득이자 매니저는 크게 몸을 떨었다. 으음, 꽤 눈치가 빨라졌네. 좀 많이 때렸나?

"그게, 원래 하정이네 애들이랑 이연이 해야하는 건데... 일이 좀 꼬여서 걔들이 지방에서 발이 묶였거든. 그래서 너희가 땜빵 좀 해줘야겠다."
"으으... 다른 사람 없어요?"
"응. 너희 빼고 다 스케줄 나갔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격이 안 맞아서... 대신 이번에는 출연료 전액 회사에서 안 떼고 너희들에게 지급하기로 했어."
"우우우우~"
"에에에~"

우씨. 왜 하필 오랜만에 우리도 휴가 좀 누리자는데 이런 일이 생겨?
어휴, 짜증나! 돈 버는 것보다 휴식이 더 좋다고요!

우리는 다 함께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매니저의 목소리가 번뜩 귀에 들어왔다.

"다섯명짜리는 예능이니까 좀 걸리는데... 한명짜리는 라디오니까 두세 시간 정도면 돼. 미안한데 얼른 정해주지 않을래?"
"흐음... 우리끼리 정하면 되요?"
"어."

매니저의 대답을 듣고 우리는 매니저를 치워버리(?)고 한군데 옹기종기 뭉쳤다.

"윤하는 못 보내니까, 한명이 남아서 윤하 간호하고 하면 되겠네. 그럼 정하는 건..."

모두의 눈이 마주쳤다.
이럴 땐 언제나 똑같지. 하나 둘 셋!

"아싸!!"
"어흑!"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수가!"
"으흑!"

우하핫! 난 축복받았어!
꺄아~ 가위 만세!

나 혼자 가위를 내고 폴짝폴짝 뛰는데 보를 낸 나머지 6명이 인상을 살짝 구기며 한마디씩 날렸다.

"에이씨, 부럽다."
"좋겠다... 칫."
"잉..."

그리고 자신의 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니가 고개를 쓰윽 들어 나를 쳐다보더니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눈을 빛냈다.

"리카야! 나랑 바꾸자!!"

히히, 너도 놀고 싶구나? 하지만...

"잘 다녀와~"
"쳇!"

후후,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잘 다녀오셩~

"자자, 리카는 냅두고, 안내면 진거~ 가위바위보!"
"아악!"
"이건 말도안돼!"
"Oh my god!"
"에이씨!"
"우하하! 가위 만세다!"

아까와 거의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딱 하나 다른 손을 내민 희라만이 대폭소를 터트렸다.

"쿠쿠쿠. 그럼 내가 라디오지?"
"쳇... 라디오는 내가 제일 잘하는데! 난 DJ도 해봤다구! 바꾸자!"
"나도 잘하는데... 칫. 리카야, 진짜 안 바꿔줄래?"
"잘 다녀오셩~ 밤에 봐~"
"쳇!"

대강 상황이 정리되고 나자 우리는 매니저 앞으로 모였다.

"결정 됐어?"
"희라가 라디오고 저랑 제니, 루나, 서연이, 은영이가 예능이요. 근데 언제 나가야 돼요?"
"지금. 늦겠다 얼른 입고 나와."
".......네?"

엥, 지금 저 아자씨가 뭐라고 한겨? 지금? now?
.....헐?!

우리 모두는 경악으로 입을 쩍 벌리고 굳어버렸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언제나 침착한 바른생활 막냉이 서연이였다.

"며, 몇 시까진데요?"
"늦어도 12시엔 나가야 돼."

그와 함께 모든 애들의 시선이 거실 시계로 홱 돌아갔다.
지금 시간이...
11시 40분?!

"그걸 왜 지금말해, 이 화상앗!"
"시간을 먼저 말해야 될 거 아냐!"
"여자한테 20분 만에 나오라고 하는 경우가 어딨어?!"

퍽퍽퍽!

"아아아악!! 그, 그러게 누가 시간끌래! 나 온지 한 시간도 넘었어!"

엥? 그렇게 오래 됐나?
으음, 태은이랑 매니저 패는데 한 이십분, 옷 입는데 십분, 매니저 밟는데 한 삼십분, 또 가위바위보랑...
.....진짜네?

"아무튼, 얼른 준비하고..."
"에이씨!"
"아우우! 나 안 씻었는데!"
"으윽, 화장... 급하다 급해!"
"나오... 빠르구나."

채 매니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실에는 매니저와 나만이 남았다.
뭐 나야 널널하니까~ 히힛.

"애들도 다 프로니까 20분 안에 준비될 걸요? 기다려요."

보통 준비할 때는 한 시간도 더 걸리지만... 급하니까.
사실 정 급하면야 10분 안에도 준비 가능하다. 물론 메이크업은 차 안에서 해야겠지만.

근데 솔직히 그런 건 별로다. 급히 씻으려면 한꺼번에 씻어야 하는데, 여자끼리라도 같이 씻는 게 좋지만은 않으니... 물론 제니랑 나처럼 연인관계인 애들은 예외다. 오히려 들어가서 서로 씻겨주다가 은근슬쩍 섹스로 넘어갈 정도지.

뭐 어쨌든, 이 몸은 쉬어보실까? 후후.

내가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좀 누워볼까 쇼파로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내 방에서 제니가 쏙 튀어나왔다.

"리카야! 컴!"
"에? 자 잠..."

우왁! 갑자기 난 왜 끌고가?!


그리고 20분 후.

"준비 끝! 출발해요!"
"...역시 너희들은 프로구나. 동네 여자애 6명이 20분 만에 아이돌로 변신하다니..."

나른하게 휴가를 즐기는 귀차니스트 여자애 6명이 자체발광 아이돌 나인걸즈 6명으로 바뀐 게 새삼 신기한지 매니저는 감탄을 터트렸다.

하긴 내가 봐도 좀 차이나긴 하지. 근데 한두번 본 것도 아닌데 왠 새삼 감탄이래?
에고고, 팔이야.

"응? 근데 리카는 왜 저래? 축 늘어졌다?"
"우리 도우느라고요."

그게 도운 거냐?! 수발든 거지!
그리고 제니 네 메이크업은 아예 내가 다 했다?

내가 제니를 가늘게 뜬 눈으로 노려봤지만 제니는 꿋꿋이 무시했다. 큭, 이런 당당한 년 같으니라고.

그리고 태은이가 다급한 표정으로 매니저를 재촉했다.

"아이참, 급하다면서 무슨 여유가 그리 많아요! 지금 12시에요!"
"우리 욕먹게 할 거예요?"
"빨리 가요!"

그러게, 이 아자씨가 왜이리 늑장이래? 지각은 인맥의 적이라며 설교할 땐 언제고?

내가 갸웃거리는데 매니저가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으음, 사실 말이야... 난 너희가 늦을 줄 알고 좀 당겨 말한 건데. 사실 12시 반에 나가면 넉넉해."
"......"*7

매니저의 고백(?)에 우리 일곱은 모두 말을 잊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릴 낚았단 말씀? 허허허, 이 양반이 정말...

죽을라고 환장했나!!!

"야 이 인간아! 지금 장난햇!"
"낚을게 따로있지 이런 걸 속이냐!"
"에라 이 화상아! 나가 죽엇!"
"30분? 그래, 어디 30분만 맞아보셔!"
"끄아아아악!!!!!"

퍼걱! 콰득! 우지직! 퍼퍼퍼퍽!!!

죽엇! 죽엇! 어디 할 게 없어서 시간을 속여!
너땜에 괜히 나까지 고생했잖앗!!

"사, 살려줘어어어!!!"

그냥 죽엇!!


잠시 숙소 안에 피바람이 불고 난 뒤.

"으으으, 난 나름대로 배려한 건데..."
"앞으론 그딴 배려 하지마요."
"으응..."

제니가 특유의 살기담긴 눈으로 째려보자 매니저는 흠칫하며 몸을 사렸다.
흥! 어디 그따위 수작을 배려랍시고!
아 정말, 한 번 더 밟어? 계속 밉상이네.

"자자, 때리는 건 이따 스케줄 끝나고 하던가 하고 일단 나가자. 30분 넘었어."
"컥! 더, 더 때리게?!"
"흥, 우리를 낚은 죄는 크다구요!"
"맞아요! 그리고 여자애 주먹이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다고."
"너희가 보통 여자냐?!"

루나의 말에 매니저는 애통한 목소리로 절규했고, 그 목소리에 담긴 처절함에 애들은 시선을 슬며시 돌렸다.

흠흠. 솔직히 우리 애들이 좀 세긴 하지?
일부러 모은 것도 아닌데 다 한수 하는 여자니. 생각해보면 저번에 이연이네 오빠들이랑 팔씨름으로 이겼었지? 으음, 그 표정을 꼭 사진으로 찍어놨어야 하는데. 9연패 후의 그 표정이란 참... 쿡쿡.

기묘한 침묵이 장내를 감돌자 태은이가 박수를 짝 쳤다.

"자자! 아무튼 나가자고! 지금 40분이야!"
"헉! 이, 이번엔 진짜로 급해! 당장 나가야 돼! 늦겠다!"

태은이의 말을 들은 매니저가 깜짝 놀라 시계를 확인하더니 황급히 애들을 재촉했다.
그 모습이 조금 진실해 보였는지, 애들도 이번엔 별 의심 없이 따라갔다.

하기사 두번이나 장난은 안 치겠지. 치면?
.....난 우리 매니저를 마조히스트라고 생각할 거야. 음음.

"리카야, 정말 안 바꿔줄 거야? 아이이~ 바꿔 주라아~"
"많이 웃기고 와~ 내가 방영할 때 꼭 챙겨볼게~"
".....쳇."

후후, 안 통한다구!
네 애교엔 이미 단련되었다! 그 눈웃음은 좀 위험하지만... 후훗.

내가 제니를 배웅(?) 하는데 갑자기 희라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리카야! 우리 윤하 잘 돌봐줘야 돼, 응? 나 라디오니까 금방 오긴 하겠지만 잘 부탁해. 믿어도 돼지?"
"뭐 당연한 소릴 다 하고 그래."

윤하는 귀여운 동생이니까 당연히 잘 돌봐줘야지.
뭐 별로 돌볼 일이 있나 싶긴 하지만. 물수건도 올라가 있고, 약도 먹었잖아?

내가 7명이 모두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희라가 닫히던 문을 열고는 한마디 내뱉었다.

"윤하한테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해!"
"알았어~"

쿵!

"...흐음, 조만간 하나 늘겠는데?"

이거이거, 윤하랑 희라 사이가 심상치 않은데?
분명히 아직 사귀는 사이까지는 아니라고 알았는데... 시간 문제겠는걸? 푸훗. 나랑 제니 사이를 보던 애들이 이런 심정인가?
그나저나 커플이 한쌍 더 들면 이제. 나인걸즈 9명이 전부 사랑을 하게 되는 건가? 하아, 근데 어째 다들 이리 힘들게 사는지... 참.

대체로 정상과 먼 사랑을 하는 나인걸즈 멤버들을 생각하자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금이야 그저 사랑으로 행복하지만 이런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세상이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사랑. 역시 어릴 때의 풋사랑일 뿐일까? 우리가 더 어른이 되면, 어릴 때의 추억으로만 남을까? 세상의 높은 벽 아래서,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와 제니는... 어떻게 될까.....?

절로 무거워진 마음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띠링~ 문자왔어~

"응? 내건가?"

누가 문자를 보냈지? 하정인가? 아님 지금 나간 애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쇼파에 놓인 핸드폰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자를 읽은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리카야! 내가 잊어먹었는데, 윤하 죽 끓여서 좀 먹여주라! 냉장고에 전복죽 재료 있어! -희라-]

.....나보고 요리를 하라고?!
아니, 희라 얘가 미쳤나?
세상에 시킬게 따로 있지 요리를 시켜? 나한테???

나는 조금 전까지 하던 걱정도 깃털처럼 날려버린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황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 찰칵!

"여보세요?"
"희라야! 너 제정신이야?!"
"뭐,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어떻게 나한테 요리를 시킬 수 있어! 잘 알면서!!!"

내가 전력으로 소리를 빽 지르자 그게 들렸는지 갑자기 전화기 너머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리카한테 요리를 시켰단 말야?"
"누굴 잡으려고?"
"혹시 희라 너 윤하 싫어하니?"
"안 돼! 말려!"
"......."

.....예상했던 반응이긴 한데.....
조금 짜증나네? 이것들이!

내가 살짝 이를 가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희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카야, 너 대체 무슨 짓을 했니?"
"어?"

무슨 짓이라니? 나 여는데? 내가 하긴 뭘 해?

뜬금없는 희라의 발언에 내가 고개를 갸웃대는데, 이어진 희라의 말은 나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지금 제니가 엄청 무서워하는 얼굴로 덜덜 떨고 있는데... 나 제니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건 처음 봐."
"......."

.....할 말이 없다.....
그거, 트라우마가 될 정도였나? 혹시나 해서 안 먹길 잘했네.
나는 머릿속을 스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작년쯤, 애들이 다 나가고 나 혼자 숙소에 남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나름 애들을 위해서 진짜 열심히 저녁을 차린 적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흐뭇할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나는 요리였는데, 내가 식탁에 차려놓고 웃고 있으니까 마침 애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내가 요리했다니까 은영이나 윤하보다도 먼저 제니가 달려와서 한입 먹고서는....

그대로 쓰러졌었지.
웃는 얼굴로 그대로 쓰러져버린 제니의 모습은 당연히 충격적이라, 애들은 아무도 그 요리를 먹지 않았다. 나도 물론.
...그래도 그냥 버리긴 아까워서 조금 남겼다가 나가서 지나가는 고양이한테 먹였더니...
....전신을 비틀며 기절했지... 그 고양이의 눈빛이 참 거시기 하던데.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기에! 라는 듯한 눈빛으로.

으음, 독특한 추억(?)이군...

"리카야. 너한테 맡겼다간 윤하 죽이겠다. 그냥 나가서 좀 사다가 먹여주라."
"맞아! 네가 끓인 죽을 먹으면 윤하 죽을지도 몰라!"
"제니 응급실 실려 간 거 기억 안나?"
"네 저주받은 손으로 요린 무리야!"
"이 독극물 제조자!"

.....이것들이 진짜?
내가 아무리 요릴 못한다지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나, 나라도 죽 정도는 끓일 수 있다고! 그냥 밥에다 물 붓고 끓이면 되는 거 아냐!

"됐어! 내가 할 거야! 나도 죽 정도는 끓일 수 있다고!"
"자, 잠깐만! 리카야! 그..."

뚝-

흥. 날 뭘로 보고!
내가 확실하게 윤하에게 전복죽을 끓여주겠어!!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 뒤에서 진동으로 돌려놓은 핸드폰이 미친듯이 떨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가뿐히 무시해 주자.

난 할수있다!
I can do it!

-------------------

You can"t do it.
이번편에도 H신이 없어 죄송하네요. 그래도 다음편엔 진짜로 나옵니다. 레알.
1시간 10분 이따가 12시 넘어가면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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