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키로 뒷문을 따고 들어가자, 조용한 로비가 펼쳐졌다. 경비실은 반대편이고, 그나마도 경비 아저씨는 졸고 있다. 1층은 그저 로비일 뿐이고, 대출은 각 층의 데스크에서 이루어진다. 입구마다 있는 것은 그저 도난방지기 뿐. 잠시 기다렸다가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계단으로 잽싸게 달려가는 가을.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발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학교와는 달리, 이곳에선 발소리가 울리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순조롭게 2층을 돌파한 그녀는 연이어 3층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3층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전문 서적 및 외국어 서적 영역. 아니나 다를까 백열등만 덩그러니 곳곳에 켜져 있는 이곳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책장에 몸을 숨기고 주위를 열심히 살펴보아도 누구도 찾을 수 없다.
허나 이곳은 지금까지의 어느 곳보다도 엄폐물이 많고, 사각이 많은 곳. 온 몸이 떨리고 심장이 진동하고 오줌이 마려워진다. 천천히, 집중해서. 책장 하나를 건너뛰고 또 하나를 건너뛴다. 정반대편에 위치한 남자 화장실까지 가는 도중에 정중앙에 대출 데스크가 위치하지만, 이렇게 책장을 돌아서 걸어가면 시야를 가릴 수 있다.
잔뜩 긴장하여 천천히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도서관 내부는 가을의 그 긴장을 점점 풀어주었다. 아무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아도 들리는 것은 자신의 발소리와 숨소리. 사실 천왕고의 도서관이 시설도 좋고 장서도 많아서 일반인들도 자주 찾아오기는 하지만, 굳이 이 시간에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학생들도 귀가후 내지는 자습중이기 때문에, 도서관 3층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가 운 좋게도 중앙 대출 데스크의 사서들도 어디론가 자리를 비운 뒤였다. 근무태만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가을에게는 더 없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갈 수 있겠어. 다행이야.”
기쁜 마음에 가을은 서둘러서 도서관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장 사이사이를 숨어가면서 천천히 가던 그녀였지만, 완전히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 뒤에는 거침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식의 보고이자, 학교의 두뇌라고도 할 수 있는 도서관을 지금 음탕한 속옷 차림의 여교사가 신나서 달리고 있다.
가을은 이번 조교 후 처음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여전히 두근거리는 가슴은 이제 두려움과 긴장이 아니라 뭔가 설명하지 못할 설렘으로 서서히 변해간다는 것을, 그녀는 잠시 후에 깨닫게 된다.
놀라울 정도로 쉽게 목표인 남자 화장실 입구까지 다가온 가을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그러나 아직까지도 신중을 가해 화장실 내부로 들어갔다. 최대한 하이힐의 소리를 줄이면서 내부로 들어간 가을은, 내부에도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청소도구함의 문을 열었다. 역시나 어울리지 않는 상자가 하나 놓여있었고, 속에는 드디어 옷다운 옷인 블라우스가 쪽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 일단 상자를 가지고 좌변기칸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가을은 재빨리 넥타이를 푸르고 블라우스를 입었다.
‘역시 네가 해낼 줄 알았단다. 이제 마지막 단계야. 스커트와 자켓이 널 기다리고 있단다. 장소는 이 도서관의 840-3야32 번 책 사이에 끼워놓았단다. 마지막까지 힘내렴.’
이제 이 막막했던 야외 노출 조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은 책의 번호를 확실히 암기하고, 혹시 모르는 마음에 쪽지를 팬티에 꽂아 넣었다.
지금 시간은 8시 42분. 시간도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가을은 오줌을 싸고 싶은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이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 직전까지 너무나 긴장을 한 탓이라고 생각되었다. 얼른 소변을 보고 나가려고 팬티를 내린 가을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이건...! 어째서 보짓물이 이렇게...”
분명히 깨끗이 닦아 내었고, 교장실에서 절정까지 맞았었지만, 어째서인지 가을의 팬티는 보짓물 한 모금을 머금고 있었다. 자신의 보지에서 보짓물이 또 흘러내리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던 가을은 정말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설마 조교 시작 때부터 이상하게 많이 흐르던 보짓물은 바이브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나...느끼고 있어...?”
소변이 마려운 것도 잊어버린 채 곰곰이 되짚어 보던 가을은, 자신이 도서관에서 느낀 그 느낌이 확실히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 차렸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공공장소에서의 음탕한 노출. 학교 내에서 누구보다 도덕적이고 모범적이어야 할 교사라는 사람의 변태적인 일탈. 그리고 그렇게 사회적인 규범에 도전하면서 얻어지는 특이한 종류의 쾌감.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가을은 이번 조교의 의미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가...그런 거야...”
처음 맛본 새로운 종류의 금단의 과일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손을 댄 보지에서 걸쭉하게 보짓물이 묻어 나오고, 가을은 그것을 조용히 입에 가져다 대었다.
“음탕한 맛이 나.”
조용히 그렇게 말한 그녀는 좌변기칸의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상기된 표정으로 남성용 소변기 앞에 다가섰다. 보지 둔덕을 손가락으로 벌린 그녀는 이내 세찬 오줌 줄기를 내뿜었다. 마치 소변기가 전압을 내뿜는 전원이라도 되어 오줌줄기를 타고 전류가 흐르는 듯이, 그녀의 몸에 쾌감의 전류가 흘렀다. 상기된 표정을 소변보는 것이 힘든 일도 아니건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몸은 움찔움찔 떨리고 있었다.
“후우...”
오줌 줄기가 멎고, 휴지로 정성껏 닦아낸 그녀는 다시 팬티를 올리고 길을 서둘렀다. 여전히 3층에는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녀는 찬찬히 책장을 둘러보면서 목표를 찾았다. 그리고 이내 그 책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뚜벅...”
그 책장까지 다가온 가을은 갑자기 존재를 드러낸 인기척에 흠칫 놀랐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책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책장에 꽂힌 책들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남자치고는 키가 작고 약간 마른 듯한,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 불행히도 그도 이내 가을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더욱 불행히도 그는 작년에 가을이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어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얼굴 가득히 부드러운 웃음을 띄고 그 학생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만약 이 학생이 인사라도 한다고 책장을 넘어오면 가을은 끝장이다. 일단 블라우스는 갖춰 입었지만, 스커트나 바지 없는 블라우스는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을 터. 허나 그녀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눈 딱 감고 그 빈 공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응 안녕, 오랜만이네.”
“잘 지내셨어요?”
“그럼. 이 밤중에 도서관까지 오고, 열심이구나.”
최대한 떨리는 감정을 숨기고 평소의 태연하고 천진한 자신을 연기하는 가을. 온 몸이 떨리는 가운데 안면만은 떨리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렇게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그럼, 그럼. 이 많고 많은 책 중에 한 책이 빠진 곳으로 대화하다니 놀랍구나.”
“정말 그렇네요.”
다행이 그 학생은 그녀가 장난을 치는 걸로 이해하고는 그 자리에서 계속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별로 이쪽으로 넘어올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또한 다행히, 전문서적 영역인 관계로 크고 두꺼운 책이 많아, 하체로의 시선이 차단된 상태였다.
“선생님은 무슨 책을 찾으러 오셨나요?”
책들 사이의 틈에 더욱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댄 그 학생은 재밌다는 미소를 띄고 말했다. 가을 역시 그에 응수하였다.
“음...내가 볼 책은 아니고, 다른 선생님한테 부탁을 받아서.”
“아하, 그렇군요.”
이제 처음의 놀라운 마음은 사라지고, 그녀는 편하게 대화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끝내고 원하는 책을 찾아 도서관에서 빠져 나가느냐, 였지만 갑자기 최대한 정리가 되어야 할 그녀의 머릿속에 다른 감정이 쑤시고 들어와 버렸다.
그것은 책장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블라우스 아래로 훤히 드러난 젖은 팬티를 겨우겨우 위태롭게 가리고 있다는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쾌감이었다. 이제 자신의 쾌감에 솔직해진 탓인지, 쾌감을 느끼는 것도 더욱 빨라져 있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어가고, 그 와중에 가을의 머리엔 또 다른 새로운 생각이 들어섰다. 손 하나 뻗을 만한 거리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대. 나를 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되는 상황.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음탕한 행동으로 쾌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욕정.
이 세 가지의 요소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혼란스러운 윤무를 벌이고 있었다.
“근데, 선생님 얼굴이 조금 빨개요. 열이 있으신 것 아닌가요?”
“으, 으응...그런...것 같네.”
가을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손끝으로 블라우스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거 큰일이네요. 환절기엔 감기 걸리기 쉬운데.”
그리고 이내 계속 젖어가는 망사팬티로 향하는 손끝.
“...그러게. 얼른...책을 빌리고 집에 가서 푹...쉬어야지.”
그리고 이어지는 용감하고 음란한 결정. 그녀의 손은 팬티를 꼭 쥐고는 아래로 휙 내려갔다. 실내의 공기가 보지에 닿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이 갑자기 하얗게 되는 느낌이 사르르 몰려왔다. 제자의 바로 앞에서 팬티를 벗어 내린 여교사. 그리고 드러난 보지와 그걸 적시는 보짓물. 곧이어 손가락까지 집어넣자, 욱신거리는 질벽이 평소보다 훨씬 뜨겁고 축축하게 느껴졌다.
“네. 그게 좋겠네요. 건강관리 잘 하시구요. 전 이만 가 볼게요.”
“응, 고마워. 잘 가렴.”
그 학생은 그녀에게 미소를 다시 한 번 띄우고는 뒤를 돌아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하아...하아...하아...”
가을은 자신이 한 행위가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학생 바로 앞에서 팬티를 스스로 내리다니...
“난 역시...음탕한 변태인가...”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자, 가을은 그제서야 팬티를 올리고 원하던 책을 찾았다. 책을 펼치자, 종이가 끼워져 있는 페이지가 알아서 펼쳐졌다.
‘이제 마지막 관문. 미로 정원 가운데의 분수로.’
그 쪽지의 내용 덕분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녀는 마지막까지 난코스를 부여한 그녀의 언니를 살짝 원망했다. ‘미로 정원’이라고 하는 것은 학교 내에서도 동쪽 끝에 위치한 잘 관리된 미로 모양의 정원을 뜻한다. 실제 그리 복잡하진 않았지만, 그곳은 특유의 미관 덕분에 밤에도 사람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곳의 조명은 언제나 밝다.
“8시 45분...”
이제 시간도 안심할 수 없다. 쪽지를 구겨서 대충 던진 가을은 급히 계단으로 향했다. 먼저 내려간 아까의 학생은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계단은 조용했다. 그러나 언제 2층이나 4층, 1층에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곳. 이라고 아까까지는 생각했겠지만, 쾌감에 완전히 눈을 뜬 가을에게는 더없이 자극적인 곳이었다. 더 짜릿한 것을 바라는 본능은 그녀의 손이 팬티의 엉덩이 부분을 당겨서 엉덩이 사이에 끼어 끈팬티를 만들도록 하였다.
“좋아, 가자.”
이제 거칠 것도 없었다. 마치 술에 취하기라도 한 느낌. 크게 울려 퍼지는 하이힐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뛰어 내려간 그녀는 역시나 아무런 문제없이 1층까지 내려갔다. 여전히 로비에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는 안전하게 뒷문으로 나가서 차에 올라탔다.
“끼이익-”
차를 운전하여 순식간에 미로 정원에 도착한 가을은, 그곳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를 보았다. 물론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것은 현경도 이 정원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지막 관문은 직접 전해준다는 건가...”
정원의 구조는 잘 손질된 가슴 높이 정도의 관목들로 이루어진 미로형태였다. 그 것은 혹시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바로 앞이나 뒤가 아니라면 어떻게 가려 볼만한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끝이 보이는 조교를 확실히 끝맺기 위해, 그녀는 의욕적으로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실수였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구조이고, 몇 번 와 본 기억이 있던 그녀는 일사천리로 정원을 헤치고 걸어갔다. 예상과 달리 산책하는 사람도 없었고, 정원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그러나 중앙의 분수가 눈에 들어올 즈음.
“앗, 남 가을 선생님!”
“...앗!!”
갑자기 미로 가장자리의 야트막한 동산 쪽에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잽싸게 몸을 벽 쪽으로 붙인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이름을 부른 상대를 바라보았다.
“아, 안녕. 희정이구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미소를 지으며 달려온 여학생은 역시 그녀가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 그녀 이외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가을은 안도했지만, 그녀의 동아리를 떠올린 가을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이,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는 거니? 혹시...”
“네, 오늘 밤에 우리 동아리 이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거든요. 오늘은 평소와 달리 되게 많이 참여했어요.”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 가을은 막판에 이르러 자신이 너무 부주의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 그랬구나...”
“네. 그런데...왜 그러세요? 안색이 나빠 보여요.”
희정이라는 이름의 학생은 걱정스럽게 한 발 그녀에게 다가섰다. 집에 들렀다 온 것인지 교복 대신에 캐쥬얼한 바지와 자켓 차림의 그녀는 여차하면 벽을 뛰어 넘어서 올 기세였다.
“으, 으응. 그게, 그, 그래! 소화가 안 되서 잠시 산책...중이야.”
대충 말을 지어낸 가을은 갑자기 몸이 싸해지는 느낌과 함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이 미로 정원에는 곳곳에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 지는 달리 생각할 가치도 없었다.
“그러셨군요...아깝다. 선생님 오실 줄 알았으면 선생님한테 모델을 부탁했을 텐데.”
제자의 그림 실력을 아는 그녀는 평상시라면 나쁘지 않을 소리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제발 그것만은 참아 줬으면, 아니 아예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였다. 그녀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어버렸다.
“그, 그랬구나...다음에, 다음에 기회 되면...그때 하도록 하자꾸나.”
“네, 그땐 부탁드릴게요. 그럼 전 이만...”
희정이라는 이름의 제자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지고, 가을은 몸을 가볍게 떨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로 쪽으로 쏟아지는 조명 때문에 가장자리 쪽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가장자리 쪽의 살짝 올라온 언덕이라든가, 중앙의 분수대 쪽이겠지. 그 둘 다 지금의 가을에게는 치명적인 선택이었지만.
“이, 이럴 수가...”
갑자기 쾌감이 다시 공포감 내지는 긴장으로 전환되고, 다리에 힘이 빠져나갔다. 꾸준히 보짓물을 쏟아내던 보지엔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왔고, 밝은 조명은 공포가 되어 그녀를 비췄다. 방금 소변을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소변이 마려워졌다. 그리고 10분여를 남기고 무자비하게 흐르는 시간이 갑자기 그녀의 목을 죄어왔다.
“어, 어떡해...”
결국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은 보이지만 주변의 사람이 보이지 않게 하는 조명이 마치 그녀의 시야 전체를 앗아가는 느낌이 그녀에게 온갖 불안을 안겨주었고, 그 불안은 이내 현실로 다가왔다.
“아 늦었네. 또 희정이한테 꾸사리 먹겠다.”
“그러게 말이다. 그냥 얼른 분수나 대충 그리고 끝내자.”
“그래, 그게 좋겠다.”
고요한 분수 소리만이 바람을 타고 울리던 정원에, 그 고요함을 깨는 남자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가을이 걸어오던 바로 그 코스로. 바로 뒤에서. 공포가 현실이 되는 순간, 오감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 그러나 가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이걸 어떡해...으흣...으흐흑...”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누가 튀어나올지 모르고, 누가 어디서 자신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단지 앞만을 향해서 달려야한다. 들키는 것은 곧 비참한 결말을 의미한다.
“타닥, 타닥...”
“야, 니 그림 여기가 좀 삐뚤지 않냐?”
“아, 그런가...”
그리고 앞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남학생들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까지는 갈림길도 없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 시야가 눈물에 일그러지고, 떨리는 사타구니에서는 오줌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건 아까 고등부 건물에서 느낀 절망 그 이상이었다.
‘어, 어쩔 수 없어...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이성을 짜내서 그녀가 판단내린 것은 벽을 이루는 관목을 뚫고 옆 코스로 빠져나가는 것. 대략 6~70 센티미터 정도의 두꺼운 벽이었지만 상황적으로도, 그녀의 이성 상태로도 어쩔 도리는 없었다.
“투둑, 투둑...!”
가까스로 뒤에서 걸어오는 학생들의 눈에는 걸리지 않았지만, 관목들은 그녀의 고운 살결과 스타킹에 흉한 상처를 입혔다. 허나 지금은 상처 따위가 문제 될 상황이 아니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그녀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순간.
“찰칵! 찰칵!”
“...!!!”
“어머나, 선생님. 여기서 뭘 하시는 건가요?”
갑자기 터지는 사진기의 플래쉬 소리와, 비웃는 듯한 여학생의 목소리. 순간적으로 경직된 가을은 결국 눈가에서 눈물을 터트렸고, 고개를 돌려 빛을 등진 그녀의 교복 실루엣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깊은 절망과 함께 고개를 떨궈버렸다. 눈이 매워지더니 이내 눈물이 맺히고, 자기도 모르게 팬티를 적셔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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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너무 오래 끄는 것 같네요;
이제 다음 번에 올리는 게 마지막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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