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나 좀 봐."
"말해."
"나 보라니까."
그제야 시현이가 고개를 들어 진우를 본다.
"무슨 문제 있어?"
"없어."
"그럼 태도가 왜 그러는데?"
시현이의 눈이 샐쭉하게 가늘어진다. 한참 진우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린다.
"문제 없다니까. 아파, 놔."
진우의 손을 뿌리치고 저만치 앞서서 걸어가버린다. 뿌리쳐진 그대로 잠시 멍하니 섰다가 따라 걷는다.
최근 시현이의 태도가 좀 이상했다. 처음엔 혼자 사는 데 적응하느라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긴 커녕 더 심해졌다. 점점 거리를 둔다는 느낌이랄까. 오피스텔로 이사한 후부터 부쩍 심해진 것 같다. 아니, 그러기 조금 전부터던가. 한동안은 그러려니 하던 진우도 조금씩 그런 태도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볼 시간이 줄어든게 마음에 들지 않는터다.
10월 마지막 주에 시현이가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없다 없다 했지만, 정말 없는 단출한 이삿짐이었다. 옷을 담은 박스 몇개만 옮기고 나자 끝이었다. 풀옵션 원룸이었기에 가져갈 살림살이도 거의 없었다. 워낙 적은 짐이라 화물차 부르기도 민망했다. 오피스텔을 소개해준 성우가 본인 차로 짐을 옮기자고 제안했다. 시현이는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진우는 또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니, 언니!"
"응?" 알바 동생에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카운터 앞에 손님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주문하시겠어요?"
시현이답지 않게 멍 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개인적으로 머리 복잡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군 신체검사가 11월까지인 탓에, 병사용진단서를 떼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돌아다녔다. 어떤 날은 정신과로, 어떤 날은 내과로 가야했다. 개인병원에 갔다가, 종합병원을 가야했고, 여러가지 검사에도 응해야했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었지만 정말 힘든 일은 그런게 아니었다.
처음 병원에 들어가면 모두가 방긋한 얼굴로 맞아준다. 시현이의 외모는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호감을 줬다. 하지만 검사를 마치고 나오면 태도가 270도 변해버린다. 괴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일자로 굳게 다문 입으로 혹시나 손이라도 닿을까 무서워하는 것처럼 손을 뺀다. 마치 특이 전염병 환자라도 다루는 태도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사는 입장은 시현이였지만, 한마디 항의도 못하고 쫓기듯 병원을 빠져나온다. 외모 어느 곳에서도 남자의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가 1자로 시작한다면 쉽게 평정심을 발휘하긴 어려운 일이겠지, 라는 생각도 하지만, 역시 서럽고 억울하다. 사실 평소에는 웬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을 찾지 않는다. 같은 이유 때문이다.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는다. 주민등록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하지만 신체검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또 하나는 문제의 카톡. 그날 진우의 카톡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묻지도 않았고, 떠보지도 않았다. 어떤 말이 나올지 무서웠기 때문이다. 진우는 외박한 다음날부터 열이 심하게 올라 며칠을 드러누웠다. 핑계 차 체육관에 전화도 했었다.
"관장님, 전데요.." 진우가 아파서 운동을 쉬어야겠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은근슬쩍 물었다. "체육관에서 자고 와서 감기 완전 심하게 걸렸잖아요. 어쩔꺼에요?" 혹시나 하며 장난스레 떠보는 시현이에게 돌아온 대답은 "어, 최근에 체육관에서 잔 적 없는데." 라는 말이었다. 가장 두려워하던 말을 듣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바람피는 애인에게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뭐가 있을까. 화를 내거나, 토라지거나, 머리를 쥐어뜯거나, 참거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눈을 희번떡 거리는 것들이 있을테다. 하지만 시현이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저런 행동들은 용서하거나 헤어지기 위해 하는 행동들인데, 시현이는 진우와 헤어질 수 없었다. 세상에 유일하게 있는 "가족"이었고, 애인 이상의 "동생"이었다. 그런 상황에 처하고나자 처음으로 이런 관계가 된게 후회됐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시현이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여고생을 이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해도, 본인은 생채기난 출고 불가 저품질 과일이고, 상대는 상(上)품질의 과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다보니 자꾸 멍 때리게 된다. 또 저도 모르게 멍을 때렸는지, 누군가 톡톡 건드리는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아, 죄송합...어? 오빠?!"
카운터 너머에서 시현이를 툭툭 치던 성우가 씨익 웃는다.
"아가씨, 주문도 안 받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죄송해요. 요새 자꾸 이래요. 어쩐 일이세요. 사무실 이쪽 아니잖아요."
"응, 시현이 도움 좀 받아볼까 하고 찾아왔지."
"제 도움이요? 잠시만요. 저 조금 있으면 근무 끝나거든요. 잠깐만 앉아 계실래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석으로 가 자리를 잡는다. 죽돌이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쏟아졌지만,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누구에요, 언니?"
"응, 교회 오빠."
"완전 훈남이다잉...."
오후에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 앉은 성우는 그럴 듯하게 테가 났다. 댄디하게 카디건을 덧 입은 편한 캐쥬얼 차림이 어울리는 전형적인 귀공자 타입이다. 하지만 남자의 기준이 진우에게 맞춰진 시현이 눈에는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진우와 달리 선도 가늘고, 호리호리하다.
요점은 프러포즈를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에에엣?! 오빠 결혼하세요?"
"야, 그럼~ 오빠가 몇 살인데. 오빠도 더 늦기 전에 가야지."
하긴, 그랬다. 시현이가 초등학생 때 군대를 제대하고 주일학교 교사를 맡고 있었다. 손가락을 펴서 세보니 벌써 36살이다. 저도 모르게 혀를 낼름 빼물자, 성우가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 민다. 시현이가 남자아이였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다가, 최근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에 이런 모습도 보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가족 외에 시현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에 가야하니까, 이브날 프러포즈 하려고."
"이브날도 교회 가시지 않아요?"
"올해 한 번 빠지지, 뭐."
성우가 장난스럽게 웃자, 시현이도 따라 웃었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탓일까. 구김살 하나 없는 성우를 마주하다보면 저절로 웃는 일이 많아졌다. 밝은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다.
"좋아요, 그럼.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요?"
"응, 교회 사람 몇 명이랑 같이 할꺼긴한데, 스위트룸을 빌려서 이벤트 해볼까 해."
"와...스위트룸. 세게 가시네."
"딱~ 한 번! 할껀데, 통 크게 한번 쓰는거지."
성우가 눈을 찡긋거리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눈다.
사실 이런 면에서 시현이는 매력적인 파트너였다. 남자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그리 찾기 쉽지 않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연애에 관심 없으면서도 남녀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졌다. 흔히 하는 농담으로 게이는 여자들과 쉽게 친해진다고 하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꽁꽁 둘러싸고 있는 마음의 벽만 걷어내고 나면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뭐하냐?"
거의 얘기가 끝나갈 무렵, 뒤에서 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돌아보니 진우가 서있다. 평소 이 시간에는 카페에 오지 않는다. 일이 있어서 카페에 남아있다고 뭉그려서 보낸 문자를 보고 찾아온 것 같다. 성우가 손을 내밀며 아는 척 했지만 깨끗이 무시당했다.
"어, 나 이제 가볼게."
진우가 자기를 싫어하는 걸 잘 아는 성우가 눈치껏 빠진다. 성우는 그런 진우의 태도가 밉지 않았다. 어떤 마음인지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 나이에는 그런 법이다. 오히려 시현이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내심 기뻤다. 시현이의 착한 마음씨는 성우도 잘 알고 있다.
"네,네. 가시게요. 연락 드릴게요, 그럼."
"응,응. 전화할게."
연락한다는 말에 진우의 눈초리가 다시 가늘어진다. 성우를 배웅하고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진우에게 말을 거는 시현이의 말투가 조금 차갑다. 카톡사건 이후로 저도 모르게 자꾸 틱틱 거리게 된다. 차라리 부딪혀서 오해를 풀면 되겠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
진우는 진우대로 화가 난다. 시현이를 부르기 전부터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동그랗게 반달진 눈웃음을 치며 꺄르르- 웃는 시현이의 모습은 낯설기까지 했다. 진우 앞에서는 그런 식으로 웃지 않는다. 아니, 가족들이랑 있을 때는 자주 보는 모습이지만, 남자로서 진우와 있을 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후의 햇빛 속에서 밝게 웃는 시현이의 모습은 생기가 가득해보였다. 그런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놈이라는 점에 화가 났다. 거기다 성우를 대하던 모습과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울컥 치민다.
"...하아...씨.."
욕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겨우 누르고 카페를 박차고 나온다.
"야, 김진우!"
금세 시현이가 뒤따라 나왔다. 근무는 벌써 끝났기에 사복 차림이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롱카디건을 덧입은 깔끔한 모양새다.
"너 태도가 왜 그래?"
"내 태도가 뭐."
"몰라서 물어? 지금 니 태도가 어떤지 몰라?"
시현이가 소리를 높였다. 성우를 만날 때마다 보이는 불량한 태도를 몇 번인가 눈 감아줬던터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악수를 청하는 성우에 손을 깔끔히 무시하는 오늘 모습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게다가 "하아..씨"라니. 욕이라도 할 기세였다. 누나로의 모습이 나온다.
"됐다. 그만 하자." 진우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 지나간다.
"뭘 그만 해."
"아, 그만 하자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시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아..씨발....!"
시현이를 내버려두고 홱 돌아섰다. 눈이 벌개지는 기분이다. 운동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카페를 찾아왔다. 대체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성우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성우에게 친절한 시현이의 태도만 보면 화가 난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뜨거운 열덩어리가 가슴에 뭉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진우가 가버리고도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시현이에게 한 욕은 아니었지만, 그런 식으로 시현이 앞에서 욕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나쁜 새끼....화를 내야 하는게 누군데..."
눈가가 뜨끈해지더니, 결국 눈물이 터진다. 가뜩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진우의 태도가 야속해서,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미소는 그 사건 이후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시청 앞 호텔 커피숍 아르바이트였다. 페이도 세고, 분위기도 좋았다. 껄렁껄렁한 양아치나 질 낮은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한잔에 만원씩 하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태도는 확실히 달랐다.
모텔 사건 이후로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보낸 카톡도 씹혔고, 학교에서의 태도도 여전히 심드렁했다. 솔직히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미소 좋다고 줄 선 남자들이 진짜 한 트럭이다. 물론, 대부분은 양아치 새끼들이었지만 개중에는 괜찮은 놈들도 한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많은 놈들이 얼굴 한번 보겠다고 줄을 선 몸인데, 진우는 길가에 개똥 보듯 취급했다.
"야, 커터."
"미소라고."
"어, 미소야."
"왜?"
"배고프다. 빵 사줘라."
이런 식이었다. 미적 감각이 마비된 새끼가 분명했다. 천하의 박미소를 여자가 아니라 빵셔틀로 취급하는 새끼는 처음이었다.
"아, 니 돈으로 사쳐먹어!!!" 하고 소리를 빽 지르면,
"야, 내가 빵 얻어먹을 값은 했잖아!"하고 같이 소리를 지른다. 모텔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초딩같다. 게다가 이놈이 붙으면 양쪽에 날개처럼 두 놈이 더 붙는다.
"미소야, 나도 빵 좋아하는데." 김본좌와 빠삭이다.
"아, 씨발 새끼들아. 말 까지말라고!!"
악에 받쳐서 주먹을 휘두르면 세 놈이 뽀르르 도망간다. 여름 밤 들러붙는 모기새끼 같다.
"억관이 형."
"어? 왜? 후딱 말해라. 형 바쁘다."
억관이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여자들은 왜 그래요?"
"원래 그래. 이해하려 하지마."
"아, 진짜. 저 좀 봐봐요."
"시끄러, 새꺄. 클라이맥스란 말야."
등을 홱 돌리는 억관이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시현이의 태도가 너무 섭섭했다. 드러내는 것보다 더 많이 섭섭했다. 집을 나간 뒤부터 계속되는 차가운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바람 난거 아냐?"
옆에서 듣던 관장님이 말했다.
"에이, 그런 애 아니에요."
진우가 손사래를 쳤다. 대충 얼버무려서 말할 뿐,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시현이와 사귄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미드에 집중하던 억관이가 진우를 보며 씨익 웃는다.
"어이구, 우리 진우 순진하네. 야, 바람피는 애가 따로 있냐?"
"아, 진짜. 형들이 몰라서 그래요. 그런 애는 아니에요."
"글쎄다. 내가 보기엔 바람이 들어간 거 같은데. 완전히 바람 피우는게 아니더라도, 벌써 바람이 찼네. 너랑 그놈이랑 놓고 저울질 하는거다."
관장님이 한마디로 정리하자, 억관이 형이 감격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와, 형님,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제 생각이랑 완전히 똑같으시네."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진우를 쳐다본다. "100%다. 어장에 놓고, 저울질 하는거야."
"그런 애 아니라니까 그러네 정말."
벌떡 일어나서 샌드백을 차러 가는데도 억관이 형이 집요하게 붙어서 괴롭힌다. 저리 가라고 팔을 휘두르다가 관절기에 당했다. 다음에도 내가 고민 상담을 하면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혼자 오피스텔에 돌아와 문을 닫으면 사방이 조용하다. 아직 입주자가 그리 많지 않은 건물이다. 시끌벅적한 보육원과는 참 대조적이다.
"후.."
최근들어 자꾸 진우랑 부딪히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 먹어도 말이 틱틱 나간다. 가슴에 쌓인 섭섭함이 저절로 풀어지질 않는 것 같다. 덕분에, 진우가 오피스텔을 찾는 횟수도 줄었다. 며칠 전, 카페에서 싸운 다음에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문자도 없다. 자존심이 상해서 먼저 문자하기도 싫다. 사과하겠거니, 기다리고 있다.
그 주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문 앞에 서있던 위병의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 말을 걸때만 해도 눈에서 하트가 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신검 받으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되요?" 하고 묻자마자 퍼렇게 질려서 어버버한다.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웃길 정도로 극과극의 반응이었다. 5급으로 제2 국민역 판정이 났다. 다행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씁쓸하다.
"여자친구가 제2 국민역이라니, 진우가 들으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진우에겐 신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신검영장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직 어린 탓에 신검에 대해 생각하지도 못하는게 분명했다. 나올 때 되지 않았냐고 묻지도 않는다. 위병소를 빠져나오다가 문득, 진우가 보고 싶어졌다. 핸드폰 폴더를 열어보지만 문자함은 텅 비었다. 갑자기 카톡이 떠오른다.
"나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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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자가 넘는 2회 분량을 써놓고 싹 갈아엎어버렸네요. 너무 우울한 분위기가 강해서 안되겠습니다.
적당히 터치하고 넘겨야겠습니다!
읽어주시고, 추천댓글쪽지 주시는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__)
"말해."
"나 보라니까."
그제야 시현이가 고개를 들어 진우를 본다.
"무슨 문제 있어?"
"없어."
"그럼 태도가 왜 그러는데?"
시현이의 눈이 샐쭉하게 가늘어진다. 한참 진우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린다.
"문제 없다니까. 아파, 놔."
진우의 손을 뿌리치고 저만치 앞서서 걸어가버린다. 뿌리쳐진 그대로 잠시 멍하니 섰다가 따라 걷는다.
최근 시현이의 태도가 좀 이상했다. 처음엔 혼자 사는 데 적응하느라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긴 커녕 더 심해졌다. 점점 거리를 둔다는 느낌이랄까. 오피스텔로 이사한 후부터 부쩍 심해진 것 같다. 아니, 그러기 조금 전부터던가. 한동안은 그러려니 하던 진우도 조금씩 그런 태도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볼 시간이 줄어든게 마음에 들지 않는터다.
10월 마지막 주에 시현이가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없다 없다 했지만, 정말 없는 단출한 이삿짐이었다. 옷을 담은 박스 몇개만 옮기고 나자 끝이었다. 풀옵션 원룸이었기에 가져갈 살림살이도 거의 없었다. 워낙 적은 짐이라 화물차 부르기도 민망했다. 오피스텔을 소개해준 성우가 본인 차로 짐을 옮기자고 제안했다. 시현이는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진우는 또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니, 언니!"
"응?" 알바 동생에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카운터 앞에 손님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주문하시겠어요?"
시현이답지 않게 멍 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개인적으로 머리 복잡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군 신체검사가 11월까지인 탓에, 병사용진단서를 떼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돌아다녔다. 어떤 날은 정신과로, 어떤 날은 내과로 가야했다. 개인병원에 갔다가, 종합병원을 가야했고, 여러가지 검사에도 응해야했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었지만 정말 힘든 일은 그런게 아니었다.
처음 병원에 들어가면 모두가 방긋한 얼굴로 맞아준다. 시현이의 외모는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호감을 줬다. 하지만 검사를 마치고 나오면 태도가 270도 변해버린다. 괴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일자로 굳게 다문 입으로 혹시나 손이라도 닿을까 무서워하는 것처럼 손을 뺀다. 마치 특이 전염병 환자라도 다루는 태도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사는 입장은 시현이였지만, 한마디 항의도 못하고 쫓기듯 병원을 빠져나온다. 외모 어느 곳에서도 남자의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가 1자로 시작한다면 쉽게 평정심을 발휘하긴 어려운 일이겠지, 라는 생각도 하지만, 역시 서럽고 억울하다. 사실 평소에는 웬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을 찾지 않는다. 같은 이유 때문이다.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는다. 주민등록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하지만 신체검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또 하나는 문제의 카톡. 그날 진우의 카톡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묻지도 않았고, 떠보지도 않았다. 어떤 말이 나올지 무서웠기 때문이다. 진우는 외박한 다음날부터 열이 심하게 올라 며칠을 드러누웠다. 핑계 차 체육관에 전화도 했었다.
"관장님, 전데요.." 진우가 아파서 운동을 쉬어야겠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은근슬쩍 물었다. "체육관에서 자고 와서 감기 완전 심하게 걸렸잖아요. 어쩔꺼에요?" 혹시나 하며 장난스레 떠보는 시현이에게 돌아온 대답은 "어, 최근에 체육관에서 잔 적 없는데." 라는 말이었다. 가장 두려워하던 말을 듣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바람피는 애인에게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뭐가 있을까. 화를 내거나, 토라지거나, 머리를 쥐어뜯거나, 참거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눈을 희번떡 거리는 것들이 있을테다. 하지만 시현이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저런 행동들은 용서하거나 헤어지기 위해 하는 행동들인데, 시현이는 진우와 헤어질 수 없었다. 세상에 유일하게 있는 "가족"이었고, 애인 이상의 "동생"이었다. 그런 상황에 처하고나자 처음으로 이런 관계가 된게 후회됐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시현이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여고생을 이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해도, 본인은 생채기난 출고 불가 저품질 과일이고, 상대는 상(上)품질의 과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다보니 자꾸 멍 때리게 된다. 또 저도 모르게 멍을 때렸는지, 누군가 톡톡 건드리는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아, 죄송합...어? 오빠?!"
카운터 너머에서 시현이를 툭툭 치던 성우가 씨익 웃는다.
"아가씨, 주문도 안 받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죄송해요. 요새 자꾸 이래요. 어쩐 일이세요. 사무실 이쪽 아니잖아요."
"응, 시현이 도움 좀 받아볼까 하고 찾아왔지."
"제 도움이요? 잠시만요. 저 조금 있으면 근무 끝나거든요. 잠깐만 앉아 계실래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석으로 가 자리를 잡는다. 죽돌이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쏟아졌지만,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누구에요, 언니?"
"응, 교회 오빠."
"완전 훈남이다잉...."
오후에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 앉은 성우는 그럴 듯하게 테가 났다. 댄디하게 카디건을 덧 입은 편한 캐쥬얼 차림이 어울리는 전형적인 귀공자 타입이다. 하지만 남자의 기준이 진우에게 맞춰진 시현이 눈에는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진우와 달리 선도 가늘고, 호리호리하다.
요점은 프러포즈를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에에엣?! 오빠 결혼하세요?"
"야, 그럼~ 오빠가 몇 살인데. 오빠도 더 늦기 전에 가야지."
하긴, 그랬다. 시현이가 초등학생 때 군대를 제대하고 주일학교 교사를 맡고 있었다. 손가락을 펴서 세보니 벌써 36살이다. 저도 모르게 혀를 낼름 빼물자, 성우가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 민다. 시현이가 남자아이였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다가, 최근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에 이런 모습도 보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가족 외에 시현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에 가야하니까, 이브날 프러포즈 하려고."
"이브날도 교회 가시지 않아요?"
"올해 한 번 빠지지, 뭐."
성우가 장난스럽게 웃자, 시현이도 따라 웃었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탓일까. 구김살 하나 없는 성우를 마주하다보면 저절로 웃는 일이 많아졌다. 밝은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다.
"좋아요, 그럼.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요?"
"응, 교회 사람 몇 명이랑 같이 할꺼긴한데, 스위트룸을 빌려서 이벤트 해볼까 해."
"와...스위트룸. 세게 가시네."
"딱~ 한 번! 할껀데, 통 크게 한번 쓰는거지."
성우가 눈을 찡긋거리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눈다.
사실 이런 면에서 시현이는 매력적인 파트너였다. 남자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그리 찾기 쉽지 않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연애에 관심 없으면서도 남녀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졌다. 흔히 하는 농담으로 게이는 여자들과 쉽게 친해진다고 하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꽁꽁 둘러싸고 있는 마음의 벽만 걷어내고 나면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뭐하냐?"
거의 얘기가 끝나갈 무렵, 뒤에서 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돌아보니 진우가 서있다. 평소 이 시간에는 카페에 오지 않는다. 일이 있어서 카페에 남아있다고 뭉그려서 보낸 문자를 보고 찾아온 것 같다. 성우가 손을 내밀며 아는 척 했지만 깨끗이 무시당했다.
"어, 나 이제 가볼게."
진우가 자기를 싫어하는 걸 잘 아는 성우가 눈치껏 빠진다. 성우는 그런 진우의 태도가 밉지 않았다. 어떤 마음인지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 나이에는 그런 법이다. 오히려 시현이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내심 기뻤다. 시현이의 착한 마음씨는 성우도 잘 알고 있다.
"네,네. 가시게요. 연락 드릴게요, 그럼."
"응,응. 전화할게."
연락한다는 말에 진우의 눈초리가 다시 가늘어진다. 성우를 배웅하고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진우에게 말을 거는 시현이의 말투가 조금 차갑다. 카톡사건 이후로 저도 모르게 자꾸 틱틱 거리게 된다. 차라리 부딪혀서 오해를 풀면 되겠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
진우는 진우대로 화가 난다. 시현이를 부르기 전부터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동그랗게 반달진 눈웃음을 치며 꺄르르- 웃는 시현이의 모습은 낯설기까지 했다. 진우 앞에서는 그런 식으로 웃지 않는다. 아니, 가족들이랑 있을 때는 자주 보는 모습이지만, 남자로서 진우와 있을 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후의 햇빛 속에서 밝게 웃는 시현이의 모습은 생기가 가득해보였다. 그런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놈이라는 점에 화가 났다. 거기다 성우를 대하던 모습과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울컥 치민다.
"...하아...씨.."
욕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겨우 누르고 카페를 박차고 나온다.
"야, 김진우!"
금세 시현이가 뒤따라 나왔다. 근무는 벌써 끝났기에 사복 차림이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롱카디건을 덧입은 깔끔한 모양새다.
"너 태도가 왜 그래?"
"내 태도가 뭐."
"몰라서 물어? 지금 니 태도가 어떤지 몰라?"
시현이가 소리를 높였다. 성우를 만날 때마다 보이는 불량한 태도를 몇 번인가 눈 감아줬던터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악수를 청하는 성우에 손을 깔끔히 무시하는 오늘 모습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게다가 "하아..씨"라니. 욕이라도 할 기세였다. 누나로의 모습이 나온다.
"됐다. 그만 하자." 진우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 지나간다.
"뭘 그만 해."
"아, 그만 하자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시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아..씨발....!"
시현이를 내버려두고 홱 돌아섰다. 눈이 벌개지는 기분이다. 운동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카페를 찾아왔다. 대체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성우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성우에게 친절한 시현이의 태도만 보면 화가 난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뜨거운 열덩어리가 가슴에 뭉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진우가 가버리고도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시현이에게 한 욕은 아니었지만, 그런 식으로 시현이 앞에서 욕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나쁜 새끼....화를 내야 하는게 누군데..."
눈가가 뜨끈해지더니, 결국 눈물이 터진다. 가뜩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진우의 태도가 야속해서,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미소는 그 사건 이후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시청 앞 호텔 커피숍 아르바이트였다. 페이도 세고, 분위기도 좋았다. 껄렁껄렁한 양아치나 질 낮은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한잔에 만원씩 하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태도는 확실히 달랐다.
모텔 사건 이후로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보낸 카톡도 씹혔고, 학교에서의 태도도 여전히 심드렁했다. 솔직히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미소 좋다고 줄 선 남자들이 진짜 한 트럭이다. 물론, 대부분은 양아치 새끼들이었지만 개중에는 괜찮은 놈들도 한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많은 놈들이 얼굴 한번 보겠다고 줄을 선 몸인데, 진우는 길가에 개똥 보듯 취급했다.
"야, 커터."
"미소라고."
"어, 미소야."
"왜?"
"배고프다. 빵 사줘라."
이런 식이었다. 미적 감각이 마비된 새끼가 분명했다. 천하의 박미소를 여자가 아니라 빵셔틀로 취급하는 새끼는 처음이었다.
"아, 니 돈으로 사쳐먹어!!!" 하고 소리를 빽 지르면,
"야, 내가 빵 얻어먹을 값은 했잖아!"하고 같이 소리를 지른다. 모텔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초딩같다. 게다가 이놈이 붙으면 양쪽에 날개처럼 두 놈이 더 붙는다.
"미소야, 나도 빵 좋아하는데." 김본좌와 빠삭이다.
"아, 씨발 새끼들아. 말 까지말라고!!"
악에 받쳐서 주먹을 휘두르면 세 놈이 뽀르르 도망간다. 여름 밤 들러붙는 모기새끼 같다.
"억관이 형."
"어? 왜? 후딱 말해라. 형 바쁘다."
억관이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여자들은 왜 그래요?"
"원래 그래. 이해하려 하지마."
"아, 진짜. 저 좀 봐봐요."
"시끄러, 새꺄. 클라이맥스란 말야."
등을 홱 돌리는 억관이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시현이의 태도가 너무 섭섭했다. 드러내는 것보다 더 많이 섭섭했다. 집을 나간 뒤부터 계속되는 차가운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바람 난거 아냐?"
옆에서 듣던 관장님이 말했다.
"에이, 그런 애 아니에요."
진우가 손사래를 쳤다. 대충 얼버무려서 말할 뿐,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시현이와 사귄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미드에 집중하던 억관이가 진우를 보며 씨익 웃는다.
"어이구, 우리 진우 순진하네. 야, 바람피는 애가 따로 있냐?"
"아, 진짜. 형들이 몰라서 그래요. 그런 애는 아니에요."
"글쎄다. 내가 보기엔 바람이 들어간 거 같은데. 완전히 바람 피우는게 아니더라도, 벌써 바람이 찼네. 너랑 그놈이랑 놓고 저울질 하는거다."
관장님이 한마디로 정리하자, 억관이 형이 감격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와, 형님,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제 생각이랑 완전히 똑같으시네."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진우를 쳐다본다. "100%다. 어장에 놓고, 저울질 하는거야."
"그런 애 아니라니까 그러네 정말."
벌떡 일어나서 샌드백을 차러 가는데도 억관이 형이 집요하게 붙어서 괴롭힌다. 저리 가라고 팔을 휘두르다가 관절기에 당했다. 다음에도 내가 고민 상담을 하면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혼자 오피스텔에 돌아와 문을 닫으면 사방이 조용하다. 아직 입주자가 그리 많지 않은 건물이다. 시끌벅적한 보육원과는 참 대조적이다.
"후.."
최근들어 자꾸 진우랑 부딪히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 먹어도 말이 틱틱 나간다. 가슴에 쌓인 섭섭함이 저절로 풀어지질 않는 것 같다. 덕분에, 진우가 오피스텔을 찾는 횟수도 줄었다. 며칠 전, 카페에서 싸운 다음에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문자도 없다. 자존심이 상해서 먼저 문자하기도 싫다. 사과하겠거니, 기다리고 있다.
그 주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문 앞에 서있던 위병의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 말을 걸때만 해도 눈에서 하트가 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신검 받으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되요?" 하고 묻자마자 퍼렇게 질려서 어버버한다.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웃길 정도로 극과극의 반응이었다. 5급으로 제2 국민역 판정이 났다. 다행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씁쓸하다.
"여자친구가 제2 국민역이라니, 진우가 들으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진우에겐 신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신검영장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직 어린 탓에 신검에 대해 생각하지도 못하는게 분명했다. 나올 때 되지 않았냐고 묻지도 않는다. 위병소를 빠져나오다가 문득, 진우가 보고 싶어졌다. 핸드폰 폴더를 열어보지만 문자함은 텅 비었다. 갑자기 카톡이 떠오른다.
"나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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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자가 넘는 2회 분량을 써놓고 싹 갈아엎어버렸네요. 너무 우울한 분위기가 강해서 안되겠습니다.
적당히 터치하고 넘겨야겠습니다!
읽어주시고, 추천댓글쪽지 주시는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__)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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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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