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nter is coming." (겨울이 온다.)
- 조지 R.R. 마틴의 왕좌의 게임 중 - ]
물끄러미 진우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쌔근쌔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여린 숨소리를 낸다. 잠자리에서는 그렇게나 터프하고 남자다우면서도 이런 모습은 마냥 아기같다. 이제 겨우 18살일 뿐이니까.
손을 내밀어 진우의 볼을 살포시 쓰다듬는다. 여드름 자국 하나 없는 까무잡잡한 피부. 수염이 조금 나는걸까? 면도도 시작한 것 같다. 손등으로 조금 꺼칠한 느낌이 느껴진다. 남자피부지만, 아직 보드런 볼을 지나 턱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군살없이 날카로운 턱선. 호리호리한 미남자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듬직한 느낌을 주는 상남자 진우의 턱은 건실하게 다부지다. 손가락 끝으로 간질이듯 쓰다듬어 본다. 솜털만 뽀송하니 아직 매끈하다.
간질이는 느낌에 진우가 눈을 떳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현이를 올려다 본다. 어깨에 이불을 걸친 채 진우를 바라보고 있는 시현이 얼굴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미소가 가득하다. 어느새 가슴보다 더 아래로 늘어지게 된 긴 머리가 조용히 흘러 내려와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한 눈에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을만큼 부드럽고 깊은 시선으로 진우를 바라본다. 셔츠 앞 섬의 단추가 몇 개 풀려있다. 진우의 잠버릇 때문일까. 진우는 시현이의 가슴을 만지며 잠드는 걸 좋아한다. 애무와는 조금 다르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풍만한 그 느낌이 정말 좋다. 연인관계가 된 후에 얻은 큰 기쁨 중 하나였다. 때로는 입이나 손으로 위로해주는 행위보다도 훨씬 더 깊은 만족을 느끼게 한다. 한창 더울때만 해도 알몸으로 잠들기도 했지만, 조금 쌀쌀해진 밤 공기 탓에 셔츠를 걸치고 있다.
턱을 쓰다듬는 손을 장난스럽게 앙 문다. 시현이의 하얀 손가락.
아무리 예쁜 외모를 가진 트랜스젠더라도 숨길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손, 발, 목젖, 몸의 형태. 그 중에서 몸의 형태는 호르몬 투여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바꾸기 어렵다. 투박하거나, 너무 크거나, 뼈가 불거진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부조화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시현이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완벽했다. 작고 앙증맞은 손발, 매끈한 목선. 연예인처럼 잘 빠진 몸매. 언제나 자연스럽게 발성하지만 위화감이 전혀 없는 간드러진 목소리. 시현이의 외모에서 남성의 흔적을 찾을 도리는 없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빚어낸 천상 여자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더 뼈아픈 것이겠지만.
잠시 시현이의 손가락을 물고 장난치던 진우의 눈빛이 변한다. 봄날의 강아지마냥 천진하던 분위기는 옅어지고, 수컷의 분위기를 풍겨낸다. 시현이의 손을 잡아 옆에 눕혔다. 가볍게 고개를 젓는 시현이의 목선에 입을 맞춘다. 어느덧 진해진 키스에 저도 모르게 탄성이 삐져나온다.
며칠째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청명한 봄, 눈이 시리도록 파랗던 여름, 구름 한 점 없이 높던 가을을 지나 어느 덧 겨울의 느낌을 물씬 주는 하늘이다. 12개의 달 중에서도 가장 회색에 어울리는 계절은 10월. 늦가을 생명이 스러지고, 겨울의 숨결이 만물에 불어넣어지는 계절. 뒤따라 닥칠 겨울이 죽음같은 추위를 몰고 온다면, 10월은 그런 죽음에 대한 선고다. 높이 불타오르던 단풍잎이 생애 처음으로 바닥에 고꾸라지는 계절. 고꾸라진 낙엽은 흔적도 없이 바스라져 사라진다.
시현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들린 편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답답한 숨덩어리를 몰고 올라왔다. 대한민국 국민의 약 절반은 평생 받아 볼 기회가 없는 편지. "신체검사통지서"라고 적힌 한 장의 편지가 가슴을 날카롭게 찌른다. 재차 답답한 한숨이 올라온다.
언제나 사회에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보통은 사회를 인식하지 못한다. 시현이의 경우엔 일부러 사회를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기도 하는데, 대한민국 남자가 갖는 병역의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으로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하는 강력한 힘. 원망스런 눈으로 편지를 내려다 보자, 편지가 말을 걸어온다.
"너 가짜인거 다 알아." 라고. 그 말이 아프다.
"야, 뭐해." 진우의 외침에 저도 모르게 편지를 뒤로 감췄다. "밥 먹어. 왜 이렇게 놀라냐." 가족들이 있는 자리라 진우의 말투가 투박하다. 조금 의심스러운 눈으로 시현이를 살핀다.
"놀라긴." 태연한 척 진우를 따라가며 뒷 주머니로 편지를 쑤셔넣었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신검통지서를 보여주고 싶을까. 아니, 보통의 여자는 이런 것을 받지도 않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입 맛이 쓰다.
"야, 그래서 언제 이사하는데?"
"아마 다음 주 쯤 할걸."
"가서 도와주면 짜장면이라도 한그릇 사주냐?"
"됐어, 짐도 별로 없을텐데.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너희에게 노출시킬 순 없지."
진우가 손을 절레 절레 흔들자, 김본좌의 표정이 억울하다는 듯이 구겨진다.
"야!! 내가 뭐 이상한 짓이라도 하겠냐."
"이놈, 반응이 수상하네. 이상한 짓 할 것 같다." 빠삭이가 낄낄거리며 김본좌를 놀리더니 금세 둘이 투닥거린다.
시현이의 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 자라왔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언제나 함께 했고 뿐만 아니라 챙겨왔다.
그런 시현이가 보육원에서 떨어져 나간다.
보육원 아이들의 독립은 일반 가정의 독립과는 느낌이 다르다. 사회초년생들의 독립은 그저 생활공간의 분리 쯤되는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언제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고, 아무리 먼 곳으로 떨어지더라도 혈연의 끈으로 끈끈하게 이어진다.
보육원 아이들의 독립은 다르다. 가끔 찾아가서 볼 수도 있고, 일 년에 며칠 정도는 자고 올 수도 있겠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들 사이엔 가족보다 더 깊은 유대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사람의 관계는 계속해서 형성되고, 해체되는 것이다. 일단 시설을 떠나 사회생활에 부딪히다 보면 점점 더 먼 곳으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일부의 아이들은 시설 출신이라는 걸 부끄러워한 나머지 일부러 연을 끊는다. 남아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섭섭한 일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름 없는 대학만 나와도 출신을 숨기려는 세상이다.
그런 이유로 진우의 마음은 복잡했다. 좋은 점도 있겠지. 시내에 있는 시현이의 집은 진우가 방문하기도 편했다. 원장선생님이나 선미누나의 눈치 보는 일 없이 애정을 나눌 수도 있을테다. 가끔은 신혼부부 같은 느낌도 들지 않을까.
하지만 끌어안고 잘 수는 없을 것이다. 선미누나가 눈 감아준다고 해도, 원장선생님의 눈을 속이기는 힘들다. 외박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침 로드웍을 마중 나온 시현이와 가벼운 키스도 할 수 없다. 급식이 끊기는 날 싸주던 도시락도 없을꺼고, 마루에서 TV를 보며 티격태격 할 수도 없겠지.
시현이는 진우를 꼬옥 안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C컵의 큰 가슴이 얼굴을 누르자, 진우가 부드럽게 고개를 부빈다. 성적 긴장감은 전혀 없다. 얼핏 야해보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조용하고 애처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최근 진우는 밤마다 시현이를 찾아왔다. 시현이도 진우를 거부하지 않았다. 때론 애무하고, 사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잠자리에서 예전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시현이가 진우의 뒷머리를 정성스레 쓸어준다.
"진우야."
"...응?"
"자주 놀러와."
진우는 쪽팔리게 눈물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날도 하늘은 회색이었다. 아프도록 차가운 가을비도 조금씩 날리는 그런 날이었다. 저녁이 되자 한층 날씨가 싸늘하다.
머릿 속에 뭔가를 털어버리려는 듯 미친듯이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을 때, 시현이에게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받은 전화는 별로 좋지 못한 내용이었다.
"응...언제?..어..친구집 간거 아니야?..응..그래...신고는 아직이고?...응응..알았어..그럼 내가 이쪽에서 한번 찾아볼게..시내에 애들 잘 가는 곳도 있고 그러니까...응..너무 걱정 하지말고...응..목소리 별로 안 좋다. 좀 쉬고 있어...응..알았어.."
보육원에서는 왕왕 생기는 일이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 갈등도 많이 겪고, 눈물도 많이 흘린다. 그러다보니 가출 사건도 종종 터졌다. 중학교 2학년인 여동생이 아직 집에 안들어왔다는 전화였다. 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에 간다고 나섰다는데 아직도 집에 오지 않는단다.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도 없었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8시다. 후둑 후둑 가을비가 날리는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현이에게는 별 거 아닌 것처럼 얘기했지만, 내심 걱정이 된다. 여동생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다. 교복마이를 챙겨입고 체육관을 나섰다.
침대 위에 걸터앉은 미소는 저도 모르게 손톱을 뜯었다. 손톱 옆으로 올라온 가스래기를 뜯자, 빠알간 피가 배어나온다. 자꾸 시계를 보게 된다. 핸드폰 액정은 10시 20분을 나타내고 있다.
"침착하자..침착하자...괜찮아. 많이 해봤잖아. 아, 씨발. 왜 이렇게 가슴이 뛰냐 진짜. 쪽팔리게"
지금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쿵쿵 거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샤워기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전에도 몇 번 해봤지만, 그땐 다른 패거리들과 함께였다. 한동안 손을 털었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나자 돈이 궁해졌다. 가뜩이나 찔끔찔끔 버는 돈이 마음에 안들었는데 손님들의 불만이 심하다는 점장에 타박을 듣고 때려쳤다. 4개월이나 근무했으니 최장 근무였다.
늘 가던 채팅사이트에 들어가 방을 만들었다. "ㅈㄱㅁㄴ 18살 ㄱㄷ"(조건만남 18살 고딩)이라는 비밀 대화방을 개설하자마자 쪽지가 폭주한다. 잠깐의 채팅 후 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몸을 팔 생각은 없었다. 저녁을 얻어먹고, 모텔방에 들어간다. 남자가 샤워하러 들어가면 지갑을 가지고 도망가는 것이다. 때론 다른 패거리들이 현장을 덮치기도 했다. 조건 아저씨들은 돈을 뜯기고도 신고하지 못했다.
심호흡을 깊게 했다. 이번엔 혼자다. 다른 패거리들은 모두 연락 끊긴지 오래였다.
개새끼들이 돈을 다 쳐먹으려고 하니까, 라는 미소의 말이다.
샤워기가 만들어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살금살금 지갑을 꺼냈다.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제법 두툼하다. 40대에 배가 불룩한 아저씨였다. 아마도 어딘가에 사장님이 아닐까.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왔다.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을 친다. 풀릴 것 같은 다리를 부여잡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심장소리 뛰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온 몸이 흠뻑 젖었지만, 몸이 뜨겁다.
"어,어, 알았어...아..진짜...집에 가면 오빠한테 혼 줄 알라고 그래."
장난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다.
2시간이 넘게 거리를 해매고 다녔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저도 모르게 벽에 기댔다. 하늘에서 촘촘히 빗방울이 날린다. 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PC방, 먹자골목, 카페촌을 다 뒤지고 다녔지만 동생을 찾을 순 없었다. 처음에 가볍던 발걸음도 밤이 깊어지자 점점 다급해졌다. 비가 내리든, 땀이 흐르든 상관않고 뛰어다녔다.
보육원 아이들은 모두 가족이다. 내 가족. 같은 배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끔찍하게 여기는 내 가족이다. 특히, 진우는 더욱 그랬다. 보육원에서 가장 큰 형인 탓도 있었지만, 성격이 그랬다. 남자다운 성격은 본인의 테두리 안에 존재들을 강하게 보호하기 마련이다. 때론 애정이고, 때론 집착이지만 그것이 수컷의 타고난 본성이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골목을 벗어나 유흥가까지 뒤지고 다녔다. 술집과 모텔, 노래방 등 온갖 시설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교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진우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회색의 마이가 비에 젖어 검정색이 되고나서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보육원 근처 빈 공장건물에 있다가 왔다고 했다. "쬐끄만게 무섭게 거긴 왜 들어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마음이 탁 놓인다.
골목에 기대어 한참 비를 맞았다. 이슬비보다 가는 가을비가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어처피 흠뻑 젖은 옷이다. 신경쓰지 않고 실컷 비를 맞았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끝으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잠시 숨을 돌리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DMB 안테나 밑에 달린 뽀로로 액정닦이가 달그락 거린다. 미소가 준 생일선물이다. 이런걸 어디서 샀냐는 시현이에 물음을 얼버무렸었다.
어느덧, 10시 40분이나 됐다. 서두르지 않으면 보육원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끊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어디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다. 모텔들이 촘촘히 서있는 모텔촌이다. 떨어지는 가을비 사이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 거린다. 그런 모텔들 사이 좁은 골목에 서있었다. 담배꽁초가 흩어져 있고, 앞쪽으로 쓰레기봉투도 조금 쌓여있는 그런 골목이었다.
"읏차" 벽에서 몸을 떼고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귀를 파고들었다.
솥뚜껑 같은 손이 뺨다귀를 후려친다. 10대 아이들이 갖는 보들보들한 손이 아니라, 그야말로 솥뚜껑 같은 손이다. 크고, 두꺼우며 손바닥 전체에 굳은살이 배겨있다. 오랜 노동에 세월이 주고 간 손이다. 다시금 손이 올라간다.
"이, 썅년아, 씨발년아" 사정없이 몸 이곳 저곳을 때린다. 등, 어깨, 머리. 보이는 곳은 닥치는 대로 후려 갈긴다.
"응? 이 씨발년. 아주 세상이 우습게 보이지. 어? 사람을 좆같이 봐?" 다시금 손을 내려친다.
"아악" 최대한 몸을 움츠리며 손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솥뚜껑 같은 손은 사정없이 미소를 내려쳤다. 막은 팔이 저리도록 아프다.
"잘못했어요..악! 잘못했어요...돌려드릴게요. 아악. 그만..." 벌벌 떨며 비는 미소의 애원도 소용없다.
모텔을 나와 얼마가지도 못하고 잡혔다. 다리가 떨려 걷기가 힘들었다. 담배라도 한 대 피워야겠다는 생각에 골목으로 들어선게 화근이었다. 그대로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 들어왔다.
처음엔 쌍욕을 하며 거칠게 반항도 해봤다.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커터칼을 꺼내봤지만 아랑곳 않고 달려드는 남자에겐 속수무책이었다. 사실 한번도 커터칼로 누굴 찔러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위협용으로 들고 다닐 뿐이었다. 칼을 보고 흥분한 돼지가 더 격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뭘 돌려줘, 이 씨발년아. 좆같은 년. 너 같은 년은 버릇을 고쳐놔야 돼!"
주먹과 발길질이 쉬지 않고 달려든다. 놀았느니 어쩌느니 해봤자 겨우 18살 여고생이다. 커터칼을 휘두를 정도로 깡은 있지만 제대로 운동조차 해본 적 없는 몸뚱이는 허약하기 그지 없다.
그렇게 한참을 패고나서야 주먹이 멈췄다.
미소의 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는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져 산발이고,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찢어지는 바람에 검정 라이더 재킷 안으로 받쳐입은 하얀색 티가 피범벅이다. 긴 바지와 라이더 재킷으로 가
려진 탓에 몸상태는 알 수 없었지만, 파르르 떨리는 몸과 뜨끈하게 젖은 바지가 상태를 짐작하게 해준다. 너무나 포악한 폭력 앞에 저도 모르게 오줌을 싸버렸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돼지가 지갑에서 만원짜리 몇 장을 꺼내 던진다.
"옛다, 이건 치료비다."
"이제 끝난건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살았다. 하지만 돼지의 눈이 음흉하게 번쩍 거린다.
"이 개같은 년아. 몸 팔겠다고 돈을 받았으면 돈 값은 해야지?" 솥뚜껑 같은 손이 허리춤에서 벨트를 풀어낸다. 미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골목 구석을 더듬는다.
"잘못했어요...제발...아저씨....살려주세요..돈 돌려 드릴게요...제발.."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네온사인 불빛에 반짝인다. 눈물과 피가 범벅되서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제법 반반한 얼굴이다. 퀸카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어디서 외모로 꿀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넣어둬, 넣어둬. 이 씨발년아."
유행어까지 인용할 정도로 여유 넘치는 돼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대로 달려들어 티를 끌어올렸다.
"아악, 제발요!" 미소가 필사적으로 손을 끌어잡지만 어림도 없었다. 재차 뺨다귀를 올려붙인다. 쫙- 쫙- 가을비에 젖은 피부가 손에 쩍쩍 달라붙는다. 금세 티셔츠가 올려지고 브래지어가 노출된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땡땡이 무늬 브래지어. 속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제법 실한 가슴이 손에 쥐어졌다. 손바닥으로 까슬한 유두가 느껴진다.
"씨발년, 크네?" 돼지에 입가에 광기어린 미소가 지어진다.
손을 빼기 위해 온 몸을 비틀며 몸부림을 치자 잠깐 멈칫하던 돼지가 미소 위에 걸터앉아 가슴을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미소의 움직임이 멈춘다. 여자의 가슴은 남자의 고환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급소다. 그 부위를 얻어맞고 반항한다는 건 쉽지 않다.
"아아, 이거 졸라 흥분된다. 반항하니까 더 좋네, 씨발. 종종 해봐야겠네 이거."
돼지는 미소의 바지 단추를 풀었다. 검정색 팬티 위로 손을 집어넣어 더듬는다. 오줌과 비로 잔뜩 젖은 팬티 위로 뚜렷하게 보지의 윤곽이 느껴진다.
"아흑, 제발.....살려주세요 아아아아악-------------------!!!!"
처절한 외침이 모텔 골목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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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 뭐 별 거 있습니까. 때론 외출하고, 때론 취미생활하고 그러는게지요. 제 취미는 글쓰기입니다. 이번주는 글을 써야겠군요.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추천,쪽지,댓글 달아주시는 적극적인 독자분들께 더욱 감사드립니다. 격려는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있지요? 폭력은 나쁜거니까요. ㅎㅎ
- 조지 R.R. 마틴의 왕좌의 게임 중 - ]
물끄러미 진우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쌔근쌔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여린 숨소리를 낸다. 잠자리에서는 그렇게나 터프하고 남자다우면서도 이런 모습은 마냥 아기같다. 이제 겨우 18살일 뿐이니까.
손을 내밀어 진우의 볼을 살포시 쓰다듬는다. 여드름 자국 하나 없는 까무잡잡한 피부. 수염이 조금 나는걸까? 면도도 시작한 것 같다. 손등으로 조금 꺼칠한 느낌이 느껴진다. 남자피부지만, 아직 보드런 볼을 지나 턱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군살없이 날카로운 턱선. 호리호리한 미남자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듬직한 느낌을 주는 상남자 진우의 턱은 건실하게 다부지다. 손가락 끝으로 간질이듯 쓰다듬어 본다. 솜털만 뽀송하니 아직 매끈하다.
간질이는 느낌에 진우가 눈을 떳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현이를 올려다 본다. 어깨에 이불을 걸친 채 진우를 바라보고 있는 시현이 얼굴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미소가 가득하다. 어느새 가슴보다 더 아래로 늘어지게 된 긴 머리가 조용히 흘러 내려와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한 눈에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을만큼 부드럽고 깊은 시선으로 진우를 바라본다. 셔츠 앞 섬의 단추가 몇 개 풀려있다. 진우의 잠버릇 때문일까. 진우는 시현이의 가슴을 만지며 잠드는 걸 좋아한다. 애무와는 조금 다르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풍만한 그 느낌이 정말 좋다. 연인관계가 된 후에 얻은 큰 기쁨 중 하나였다. 때로는 입이나 손으로 위로해주는 행위보다도 훨씬 더 깊은 만족을 느끼게 한다. 한창 더울때만 해도 알몸으로 잠들기도 했지만, 조금 쌀쌀해진 밤 공기 탓에 셔츠를 걸치고 있다.
턱을 쓰다듬는 손을 장난스럽게 앙 문다. 시현이의 하얀 손가락.
아무리 예쁜 외모를 가진 트랜스젠더라도 숨길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손, 발, 목젖, 몸의 형태. 그 중에서 몸의 형태는 호르몬 투여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바꾸기 어렵다. 투박하거나, 너무 크거나, 뼈가 불거진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부조화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시현이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완벽했다. 작고 앙증맞은 손발, 매끈한 목선. 연예인처럼 잘 빠진 몸매. 언제나 자연스럽게 발성하지만 위화감이 전혀 없는 간드러진 목소리. 시현이의 외모에서 남성의 흔적을 찾을 도리는 없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빚어낸 천상 여자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더 뼈아픈 것이겠지만.
잠시 시현이의 손가락을 물고 장난치던 진우의 눈빛이 변한다. 봄날의 강아지마냥 천진하던 분위기는 옅어지고, 수컷의 분위기를 풍겨낸다. 시현이의 손을 잡아 옆에 눕혔다. 가볍게 고개를 젓는 시현이의 목선에 입을 맞춘다. 어느덧 진해진 키스에 저도 모르게 탄성이 삐져나온다.
며칠째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청명한 봄, 눈이 시리도록 파랗던 여름, 구름 한 점 없이 높던 가을을 지나 어느 덧 겨울의 느낌을 물씬 주는 하늘이다. 12개의 달 중에서도 가장 회색에 어울리는 계절은 10월. 늦가을 생명이 스러지고, 겨울의 숨결이 만물에 불어넣어지는 계절. 뒤따라 닥칠 겨울이 죽음같은 추위를 몰고 온다면, 10월은 그런 죽음에 대한 선고다. 높이 불타오르던 단풍잎이 생애 처음으로 바닥에 고꾸라지는 계절. 고꾸라진 낙엽은 흔적도 없이 바스라져 사라진다.
시현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들린 편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답답한 숨덩어리를 몰고 올라왔다. 대한민국 국민의 약 절반은 평생 받아 볼 기회가 없는 편지. "신체검사통지서"라고 적힌 한 장의 편지가 가슴을 날카롭게 찌른다. 재차 답답한 한숨이 올라온다.
언제나 사회에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보통은 사회를 인식하지 못한다. 시현이의 경우엔 일부러 사회를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기도 하는데, 대한민국 남자가 갖는 병역의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으로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하는 강력한 힘. 원망스런 눈으로 편지를 내려다 보자, 편지가 말을 걸어온다.
"너 가짜인거 다 알아." 라고. 그 말이 아프다.
"야, 뭐해." 진우의 외침에 저도 모르게 편지를 뒤로 감췄다. "밥 먹어. 왜 이렇게 놀라냐." 가족들이 있는 자리라 진우의 말투가 투박하다. 조금 의심스러운 눈으로 시현이를 살핀다.
"놀라긴." 태연한 척 진우를 따라가며 뒷 주머니로 편지를 쑤셔넣었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신검통지서를 보여주고 싶을까. 아니, 보통의 여자는 이런 것을 받지도 않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입 맛이 쓰다.
"야, 그래서 언제 이사하는데?"
"아마 다음 주 쯤 할걸."
"가서 도와주면 짜장면이라도 한그릇 사주냐?"
"됐어, 짐도 별로 없을텐데.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너희에게 노출시킬 순 없지."
진우가 손을 절레 절레 흔들자, 김본좌의 표정이 억울하다는 듯이 구겨진다.
"야!! 내가 뭐 이상한 짓이라도 하겠냐."
"이놈, 반응이 수상하네. 이상한 짓 할 것 같다." 빠삭이가 낄낄거리며 김본좌를 놀리더니 금세 둘이 투닥거린다.
시현이의 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 자라왔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언제나 함께 했고 뿐만 아니라 챙겨왔다.
그런 시현이가 보육원에서 떨어져 나간다.
보육원 아이들의 독립은 일반 가정의 독립과는 느낌이 다르다. 사회초년생들의 독립은 그저 생활공간의 분리 쯤되는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언제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고, 아무리 먼 곳으로 떨어지더라도 혈연의 끈으로 끈끈하게 이어진다.
보육원 아이들의 독립은 다르다. 가끔 찾아가서 볼 수도 있고, 일 년에 며칠 정도는 자고 올 수도 있겠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들 사이엔 가족보다 더 깊은 유대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사람의 관계는 계속해서 형성되고, 해체되는 것이다. 일단 시설을 떠나 사회생활에 부딪히다 보면 점점 더 먼 곳으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일부의 아이들은 시설 출신이라는 걸 부끄러워한 나머지 일부러 연을 끊는다. 남아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섭섭한 일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름 없는 대학만 나와도 출신을 숨기려는 세상이다.
그런 이유로 진우의 마음은 복잡했다. 좋은 점도 있겠지. 시내에 있는 시현이의 집은 진우가 방문하기도 편했다. 원장선생님이나 선미누나의 눈치 보는 일 없이 애정을 나눌 수도 있을테다. 가끔은 신혼부부 같은 느낌도 들지 않을까.
하지만 끌어안고 잘 수는 없을 것이다. 선미누나가 눈 감아준다고 해도, 원장선생님의 눈을 속이기는 힘들다. 외박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침 로드웍을 마중 나온 시현이와 가벼운 키스도 할 수 없다. 급식이 끊기는 날 싸주던 도시락도 없을꺼고, 마루에서 TV를 보며 티격태격 할 수도 없겠지.
시현이는 진우를 꼬옥 안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C컵의 큰 가슴이 얼굴을 누르자, 진우가 부드럽게 고개를 부빈다. 성적 긴장감은 전혀 없다. 얼핏 야해보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조용하고 애처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최근 진우는 밤마다 시현이를 찾아왔다. 시현이도 진우를 거부하지 않았다. 때론 애무하고, 사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잠자리에서 예전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시현이가 진우의 뒷머리를 정성스레 쓸어준다.
"진우야."
"...응?"
"자주 놀러와."
진우는 쪽팔리게 눈물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날도 하늘은 회색이었다. 아프도록 차가운 가을비도 조금씩 날리는 그런 날이었다. 저녁이 되자 한층 날씨가 싸늘하다.
머릿 속에 뭔가를 털어버리려는 듯 미친듯이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을 때, 시현이에게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받은 전화는 별로 좋지 못한 내용이었다.
"응...언제?..어..친구집 간거 아니야?..응..그래...신고는 아직이고?...응응..알았어..그럼 내가 이쪽에서 한번 찾아볼게..시내에 애들 잘 가는 곳도 있고 그러니까...응..너무 걱정 하지말고...응..목소리 별로 안 좋다. 좀 쉬고 있어...응..알았어.."
보육원에서는 왕왕 생기는 일이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 갈등도 많이 겪고, 눈물도 많이 흘린다. 그러다보니 가출 사건도 종종 터졌다. 중학교 2학년인 여동생이 아직 집에 안들어왔다는 전화였다. 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에 간다고 나섰다는데 아직도 집에 오지 않는단다.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도 없었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8시다. 후둑 후둑 가을비가 날리는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현이에게는 별 거 아닌 것처럼 얘기했지만, 내심 걱정이 된다. 여동생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다. 교복마이를 챙겨입고 체육관을 나섰다.
침대 위에 걸터앉은 미소는 저도 모르게 손톱을 뜯었다. 손톱 옆으로 올라온 가스래기를 뜯자, 빠알간 피가 배어나온다. 자꾸 시계를 보게 된다. 핸드폰 액정은 10시 20분을 나타내고 있다.
"침착하자..침착하자...괜찮아. 많이 해봤잖아. 아, 씨발. 왜 이렇게 가슴이 뛰냐 진짜. 쪽팔리게"
지금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쿵쿵 거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샤워기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전에도 몇 번 해봤지만, 그땐 다른 패거리들과 함께였다. 한동안 손을 털었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나자 돈이 궁해졌다. 가뜩이나 찔끔찔끔 버는 돈이 마음에 안들었는데 손님들의 불만이 심하다는 점장에 타박을 듣고 때려쳤다. 4개월이나 근무했으니 최장 근무였다.
늘 가던 채팅사이트에 들어가 방을 만들었다. "ㅈㄱㅁㄴ 18살 ㄱㄷ"(조건만남 18살 고딩)이라는 비밀 대화방을 개설하자마자 쪽지가 폭주한다. 잠깐의 채팅 후 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몸을 팔 생각은 없었다. 저녁을 얻어먹고, 모텔방에 들어간다. 남자가 샤워하러 들어가면 지갑을 가지고 도망가는 것이다. 때론 다른 패거리들이 현장을 덮치기도 했다. 조건 아저씨들은 돈을 뜯기고도 신고하지 못했다.
심호흡을 깊게 했다. 이번엔 혼자다. 다른 패거리들은 모두 연락 끊긴지 오래였다.
개새끼들이 돈을 다 쳐먹으려고 하니까, 라는 미소의 말이다.
샤워기가 만들어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살금살금 지갑을 꺼냈다.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제법 두툼하다. 40대에 배가 불룩한 아저씨였다. 아마도 어딘가에 사장님이 아닐까.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왔다.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을 친다. 풀릴 것 같은 다리를 부여잡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심장소리 뛰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온 몸이 흠뻑 젖었지만, 몸이 뜨겁다.
"어,어, 알았어...아..진짜...집에 가면 오빠한테 혼 줄 알라고 그래."
장난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다.
2시간이 넘게 거리를 해매고 다녔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저도 모르게 벽에 기댔다. 하늘에서 촘촘히 빗방울이 날린다. 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PC방, 먹자골목, 카페촌을 다 뒤지고 다녔지만 동생을 찾을 순 없었다. 처음에 가볍던 발걸음도 밤이 깊어지자 점점 다급해졌다. 비가 내리든, 땀이 흐르든 상관않고 뛰어다녔다.
보육원 아이들은 모두 가족이다. 내 가족. 같은 배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끔찍하게 여기는 내 가족이다. 특히, 진우는 더욱 그랬다. 보육원에서 가장 큰 형인 탓도 있었지만, 성격이 그랬다. 남자다운 성격은 본인의 테두리 안에 존재들을 강하게 보호하기 마련이다. 때론 애정이고, 때론 집착이지만 그것이 수컷의 타고난 본성이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골목을 벗어나 유흥가까지 뒤지고 다녔다. 술집과 모텔, 노래방 등 온갖 시설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교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진우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회색의 마이가 비에 젖어 검정색이 되고나서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보육원 근처 빈 공장건물에 있다가 왔다고 했다. "쬐끄만게 무섭게 거긴 왜 들어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마음이 탁 놓인다.
골목에 기대어 한참 비를 맞았다. 이슬비보다 가는 가을비가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어처피 흠뻑 젖은 옷이다. 신경쓰지 않고 실컷 비를 맞았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끝으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잠시 숨을 돌리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DMB 안테나 밑에 달린 뽀로로 액정닦이가 달그락 거린다. 미소가 준 생일선물이다. 이런걸 어디서 샀냐는 시현이에 물음을 얼버무렸었다.
어느덧, 10시 40분이나 됐다. 서두르지 않으면 보육원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끊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어디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다. 모텔들이 촘촘히 서있는 모텔촌이다. 떨어지는 가을비 사이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 거린다. 그런 모텔들 사이 좁은 골목에 서있었다. 담배꽁초가 흩어져 있고, 앞쪽으로 쓰레기봉투도 조금 쌓여있는 그런 골목이었다.
"읏차" 벽에서 몸을 떼고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귀를 파고들었다.
솥뚜껑 같은 손이 뺨다귀를 후려친다. 10대 아이들이 갖는 보들보들한 손이 아니라, 그야말로 솥뚜껑 같은 손이다. 크고, 두꺼우며 손바닥 전체에 굳은살이 배겨있다. 오랜 노동에 세월이 주고 간 손이다. 다시금 손이 올라간다.
"이, 썅년아, 씨발년아" 사정없이 몸 이곳 저곳을 때린다. 등, 어깨, 머리. 보이는 곳은 닥치는 대로 후려 갈긴다.
"응? 이 씨발년. 아주 세상이 우습게 보이지. 어? 사람을 좆같이 봐?" 다시금 손을 내려친다.
"아악" 최대한 몸을 움츠리며 손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솥뚜껑 같은 손은 사정없이 미소를 내려쳤다. 막은 팔이 저리도록 아프다.
"잘못했어요..악! 잘못했어요...돌려드릴게요. 아악. 그만..." 벌벌 떨며 비는 미소의 애원도 소용없다.
모텔을 나와 얼마가지도 못하고 잡혔다. 다리가 떨려 걷기가 힘들었다. 담배라도 한 대 피워야겠다는 생각에 골목으로 들어선게 화근이었다. 그대로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 들어왔다.
처음엔 쌍욕을 하며 거칠게 반항도 해봤다.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커터칼을 꺼내봤지만 아랑곳 않고 달려드는 남자에겐 속수무책이었다. 사실 한번도 커터칼로 누굴 찔러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위협용으로 들고 다닐 뿐이었다. 칼을 보고 흥분한 돼지가 더 격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뭘 돌려줘, 이 씨발년아. 좆같은 년. 너 같은 년은 버릇을 고쳐놔야 돼!"
주먹과 발길질이 쉬지 않고 달려든다. 놀았느니 어쩌느니 해봤자 겨우 18살 여고생이다. 커터칼을 휘두를 정도로 깡은 있지만 제대로 운동조차 해본 적 없는 몸뚱이는 허약하기 그지 없다.
그렇게 한참을 패고나서야 주먹이 멈췄다.
미소의 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는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져 산발이고,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찢어지는 바람에 검정 라이더 재킷 안으로 받쳐입은 하얀색 티가 피범벅이다. 긴 바지와 라이더 재킷으로 가
려진 탓에 몸상태는 알 수 없었지만, 파르르 떨리는 몸과 뜨끈하게 젖은 바지가 상태를 짐작하게 해준다. 너무나 포악한 폭력 앞에 저도 모르게 오줌을 싸버렸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돼지가 지갑에서 만원짜리 몇 장을 꺼내 던진다.
"옛다, 이건 치료비다."
"이제 끝난건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살았다. 하지만 돼지의 눈이 음흉하게 번쩍 거린다.
"이 개같은 년아. 몸 팔겠다고 돈을 받았으면 돈 값은 해야지?" 솥뚜껑 같은 손이 허리춤에서 벨트를 풀어낸다. 미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골목 구석을 더듬는다.
"잘못했어요...제발...아저씨....살려주세요..돈 돌려 드릴게요...제발.."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네온사인 불빛에 반짝인다. 눈물과 피가 범벅되서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제법 반반한 얼굴이다. 퀸카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어디서 외모로 꿀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넣어둬, 넣어둬. 이 씨발년아."
유행어까지 인용할 정도로 여유 넘치는 돼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대로 달려들어 티를 끌어올렸다.
"아악, 제발요!" 미소가 필사적으로 손을 끌어잡지만 어림도 없었다. 재차 뺨다귀를 올려붙인다. 쫙- 쫙- 가을비에 젖은 피부가 손에 쩍쩍 달라붙는다. 금세 티셔츠가 올려지고 브래지어가 노출된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땡땡이 무늬 브래지어. 속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제법 실한 가슴이 손에 쥐어졌다. 손바닥으로 까슬한 유두가 느껴진다.
"씨발년, 크네?" 돼지에 입가에 광기어린 미소가 지어진다.
손을 빼기 위해 온 몸을 비틀며 몸부림을 치자 잠깐 멈칫하던 돼지가 미소 위에 걸터앉아 가슴을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미소의 움직임이 멈춘다. 여자의 가슴은 남자의 고환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급소다. 그 부위를 얻어맞고 반항한다는 건 쉽지 않다.
"아아, 이거 졸라 흥분된다. 반항하니까 더 좋네, 씨발. 종종 해봐야겠네 이거."
돼지는 미소의 바지 단추를 풀었다. 검정색 팬티 위로 손을 집어넣어 더듬는다. 오줌과 비로 잔뜩 젖은 팬티 위로 뚜렷하게 보지의 윤곽이 느껴진다.
"아흑, 제발.....살려주세요 아아아아악-------------------!!!!"
처절한 외침이 모텔 골목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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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 뭐 별 거 있습니까. 때론 외출하고, 때론 취미생활하고 그러는게지요. 제 취미는 글쓰기입니다. 이번주는 글을 써야겠군요.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추천,쪽지,댓글 달아주시는 적극적인 독자분들께 더욱 감사드립니다. 격려는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있지요? 폭력은 나쁜거니까요. ㅎㅎ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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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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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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