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억!”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운천은 눈을 떴다. 그리고 흐릿한 시선을 천장에 고정시킨 채 지금 자신이 살아 있나 죽었나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았음을 느끼곤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약간 당황했다. 중년남자가 무장 간첩이었는지 폭탄을 터뜨렸고 그 폭발 영향권에 들지 않았음에도 정말 멍청하게 거기다 스스로 손을 대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부상을 입었다면 군 병원 침실에 있어야지 이런 장지문 달린 방안에 이부자리 깔아서 한의원에 입원시키진 않는다. 게다가 여긴 사극을 주제로 꾸민 듯 낮은 농에 벽에 약재 장이 있었고 천정엔 한약재 이름을 적어놓은 주머니까지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그가 누워 있는 곳은 방바닥이 아니라 바닥보다 높은 그렇다고 침대는 아닌 곳이었다. 그래서 운천은 바닥에 내려서 장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려 했다.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오른손을 보곤 몸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그리곤 일단 안심하는 운천이었다.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환자복은 저고리 였다.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또 한번 놀랐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낮은 토담 밖에 싸리담이 보였다. 한쪽엔 절구도 있었고 저편엔 우물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정말 믿기지 않았지만 나무작대기를 휘두르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가 문제가 아니라 여자가 입은 옷이 문제 였다. 순간 운천의 머리에 다른 것 보다 먼저 떠오른 건 코스프레 였다.
‘저 간호사는 매니아 인가보군… 그것도 열렬한…’
그 모습을 보면서 운천은 말 걸기가 껄끄러워 졌다. 코스츔 매니아 간호사는 정말 열심히 휘두르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멀뚱히 서서 보고 있는데 간호사가 말을 걸어 왔다. 운천은 물어 보고 싶은 게 많았다. 자신이 이런 병원에 후송된 이유부터 간첩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신이 살수 있었던건… 하여튼 살아나니까 갑자기 이말 저말 하고 싶어지는 운천이었다.
그리고 운천은 정말 놀랐다. 여자가 중국어로 말을 걸어 왔기 때문이었다. 잠시지만 운천은 그저 입만 뻐끔 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운천은 한자를 배울 때 중국어를 배운적도 있기에 대충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웬지 자신이 아는 중국어하곤 상당히 달랐지만…
“아~! 깨어 나셨나요?”
“예…”
“다행히 걸으실 수 있는 걸 보니 몸엔 큰 무리는 없는 것 같군요…안에 누워 게세요 탕재를 가져다 그릴께요.”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려 마당 한쪽의 약탕기를 달이던 곳으로 갔다. 그리고 운천은 생각했다. ‘정말 뼈까지 코스츔 메니아구나…’
어쨌든 다시 방안 그저 단순히 코스츔 매니아라고 보기엔 너무 이상했다. 경황이 없어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상당한 미인인 간호사에 여긴 아무리 봐도 무협드라마 세트 같았다. 게다가 간호사의 어투가 이상한 것도 의심이 갔다. 그때…
‘끼익…딸깍’
문의 경첩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소반으로 대접을 받쳐들고 간호사가 들어왔다…약사발을 마시고 쓴맛에 인상을 좀 쓰자 간호사는 하얀 덩어리를 내밀었는데 단맛이 나는 게 쓴맛이 좀 가셨다… 약사발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운천은 다급하게 불렀다.
“저기요.”
“……”
“저기 이보세요…”
“……”
몇 번을 불러봐도 고개만 갸웃 거릴 뿐 묵묵부답 ‘제길 이럴 때까지 코스츔 이냐?’ 이번엔 다시 중국어로 물어 봤다.
“전 어떻게 된거죠?”
“아~ 말을 할 줄 아시는군요. 처음 듣는 말을 하시길래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는 중이었어요.다행이다.”
‘쯧 불쌍하군 저 정도면 병이야…쯔쯔’ 얼굴도 이쁜 사람이 중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이고 알아야 할건 알아야 했다. 지금 여기 있는 건 그녀 밖에 없어 보이니까 말이다.
“에~ 제가 여기 후송 된지 얼마쯤 되었죠? 다른 간부들은 여긴 군병원 내 인가요?”
“아~ 군인 이셨나 보죠? 그래서 그런 복장을 하셨나 보군요. 여긴 서녕의 노야산이에요. 절벽에서 떨어지신 것 같던데 나무에 걸려서 몸엔 큰 이상 없으세요.”
순간 떠오른 건 이 여자가 아직도 장난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투가 달라 알아듣기 힘들지만 여기가 서녕이란건 알아 들었다. 서녕은 중국내륙에 있는 흔히 아는 사천보다 깊숙한 곳이다. ‘코스프레 놀이는 자기만할 것이지 사람을 놀려 먹나? 뭐~ 서녕?!’
“아! 진짜 계속 장난칠 겁니까?! 그런 건 혼자 하십시오!…이상한 중국어 쓰지 말고”
소리쳐 장난 그만 하라고 크게 떠들어 봐야 여자는 못 알아 들었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잡고 절규 아닌 절규를 하고 있었는데
“허허~ 젊은 친구가 왜 그리 소리를 지르는가…아픈 몸으로 화를 내면 쓰나..허허”
문을 열고 신선풍의 노인이 틀어 왔다. 더불어 운천은 기가 막혔다. ‘이건 여자나 노인이나 너무 하는거 아냐?’ 운천은 혹시나 하고 중국어로 말을 걸어 봤다.
“어르신 여기가 어딥니까? 서녕이 맞나요?”
“허허 여긴 서녕 노야산이라고 청해에 있는 곳이네… 내 자네를 발견했을 땐 정말 놀랐지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 졌으니 말일세…이리 옮긴 지 3일만에 깨어나는 것일세…나는 그저 의술 조금 아는 약초꾼이지 백노야 라고 부르게 저 애는 내 손녀고 그저 백소저 라고 부르면 될것이네…”
기가 막혔다. 정말 기가 막혔다.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때 유행했던 ‘몰래 카메라 같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한국방송에서 중국어 써가며 전투중 부상을 입은 군인을 가지고 놀릴리도 없다.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그렇게 현 상황에 대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정신이 없자.. 백노야는 가볍게 운천의 혼혈을 집어 잠들게 했다.
그렇게 1달이 지났다.
운천은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할 만한 논리적 지식이 없었다. 아픔이 느껴지니 살아 있다는 증거고 주변 상황을 보니 이건 정말 중세의 중국이었다. 처음엔 주변 마을들을 돌아 다녀 보고 백노야에게 부탁해 서녕이란 큰 도시에도 가봤지만 자신은 타임슬립도 제대로 그것도 과거로 왔다.
처음 한 달은 패닉의 연속이었다. 컴퓨터도 티비도 전화도 우체국도 아무것도 없는 해지면 자야하는 그런 중세시대… 현대인인 운천에겐 정말 고역이었다. 게다가 가족도 몇 안되는 친구도 모두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자긴 정말 외따로 떨어진 연 신세 인 것이다.
정신적 공화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을 때 제일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이 백소저 였다. 이름을 물어 보니 여자의 이름은 함부로 알려 주는 것이 아니며 지인이나 연인에게만 알려 주는 것이라 했다. 아무 것도 없던 운천에겐 그녀의 미소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산중에 외따로 떨어진 초가에서 그녀와 생활하며 운천은 점점 삶의 목표를 찾아 갔다. 백소저를 사랑하기로 백소저를 위해 살기로…하지만 백소저가 운천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크게 달라 지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째 백노야에게 자신의 병명을 들었다.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구양절맥이란다. 구양절맥은 몸에 양기가 가득해 양기를 풀어 주지 않으면 밤에 음기의 공격을 받아 25살 이상 살지 못하는 병이란다. 하지만 이 신체를 타고난 사람은 머리가 좋고 몸이 튼튼하며 무공을 익히게 되면 대성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부터 집장촌을 찾아다닌 것하며 군에 있을 땐 몇 달 동안 섹스를 할 수 없으니 양기가 쌓여 그렇게 바만 되면 아펐던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운천은 병을 낳게 해주는 무공을 배우기로 했다.
“백노야 제 병이 낳으려면 어찌 해야 합니까…”
“음……”
백노야는 묵묵 부답 이었다. 뭔가 엄청난 고민을 하는 듯… 그래서 운천은 그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의 시위를 하기로 했다. 이윽고 백노야의 입이 열렸다.
“자네… 무공을 배우고 싶은가?”
“예 어르신”
“이런말 하긴 뭣하지만 대신 조건이 있네…나중에 내 부탁을 하나 들어 주게 이건 반드시 들어 줘야 하는 것 일세… 어떤가? 아! 물론 자네에겐 오히려 득이 됐으면 됐지 손해는 안될걸세 내 장담하지. 그래도 배울텐가?”
운천은 부탁이라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득이 된다는 말에 큰 고민없이 허락하고 말았다. 배사지례(하늘에 세 번 절한 후 스승에게 9번 절하는 것) 치르고 무공을 배우기 시작 했다.
백노야가 가르쳐 주는 무공은 자연을 음양으로 나누어 태극의 단전을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를 태극심공 이라 부르는데 운천은 음기를 다루는 법을 먼저 배웠다. 구양절맥의 양기를 다루기 위해선 음기를 다루어 양기를 조절하는 공능을 필요로 하는데 선천적인 양기를 전부 갈무리 한 다음부터 양기를 다루는 법을 수련하라 배웠다.
“천아 세상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음양, 삼재, 사상, 오행, 육합, 칠성, 팔방, 구정, 등 대표적인 것을 필두로 무수히 많은 이론들이 나오고 사장되고 있지, 이런 것들은 인간의 기준에서 본 자연을 그린 것이지 무릇 자연은 그대로 존재 하는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그걸 다룰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손발이 머리에 명령을 내릴 수 없듯이 말이야… 그래서 공력을 다루기 위해선 자연의 하위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 그 중에 천이 넌 선천적으로 구양절맥이라 하여 양기 즉 음과 양에 해당하는 기운을 타고 났다 해서 필요한게 태극심공…”
운천의 스승 백노야는 친절히 여러 가지에 대해 설명해 줬다. 이미 운천은 그 뛰어난 오성으로 어느덧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할 줄 알았음으로 어려운 말들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운천에게 남은 시간은 4년정도 그 안에 양기를 갈무리 하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태극심공을 배우고 경혈과 기혈에 대해 공부하고 태극선공이라는 도인체조를 배운 뒤에 하루종일 심공을 운용해 내기를 다스려 갔다. 먼저 내기를 느끼고 내기를 소주천 시키면 1단계는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달…
운천은 12경락(심장으로부터 피를 받는 12부위와 그 경로)의 통로를 뚫었으며 그 이후로는 욕정이 끓어 오르지 않으며 밤에 아프던 일도 없어 졌다.
그리고 또 한달뒤… 이젠 양기를 어느 정도 갈무리 해서 백노야의 말대로 라면 벌써 10년정도의 공력을 쌓았다 한다. 심공을 배운지 두 달… 이는 경이적인 일이며 구양절맥의 신체를 타고난 운천의 특성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특별히 영약을 복용한 일도 없으니…
이제부터의 노력 여하에 따라 내공으론 누구도 당할 수 없는 신진 강호 고수가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운천이 10년 공력을 갈무리하자 그때부터 백노야는 경공 검법 장법 투술 의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천아 기본 공력을 쌍아 내력이 균형을 잡고 있으니 지금부터 공부를 배워보자꾸나 공부란 공격하는 법과 방어 하는 법을 일컬음 인데 이는 외공부와 내공부로 나뉜다. 외공부는 신체를 다듬어 그 역량을 늘이는 것이고 내공부는 내력으로 신체를 다루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단순한 구분에 지나지 않지만 무공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것이다. 너는 어떤 것을 수련하고 싶으냐?”
운천은 잠시 생각했다. 그 때 생각난 건 언젠가 읽은 무협지에서 외.내공을 동시에 수련하여 위력을 배가 시키는 방법이 기억났다. 운천은 외공과 내공을 병행 하기로 했다.
양손과 발 허리에 모래주머니를 두르고 산을 뛰어 다녀야 했으며 그 무게는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밤엔 운공을 하고 오전엔 체력을 단력하고 오후엔 초식을 배웠다.
그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일념에 하루 20시간을 운공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말 한번 못 붙여 보던 백소저 의 이름이 백가연이란 것도 알게 되고 오후에 초식을 가르쳐 주는 것은 백가연이었다. 이 둘이 같이 있게 됨으로 운천의 마음속엔 점점 백가연의 존재가 차지하는 공간이 커져갔다.
“백사저, 이 초식의 변초는 좀 의문인데요? 연환 3초에서 좌우로 베는 것보다는 사선으로 그어올려 내려치는 초식으로의 전환이 더 좋을거 같은데 말이에요…”
백가연 보다는 운천이 나이가 4살이 많았다, 백가연은 18살 한국으로 치자면 19세 였으니 이제 대학생 뻘인 그녀에게 원조교제라는 생각은 지워버리고 그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현대인의 매너 좋은 점을 계속 어필하고 있었으나 백가연은 요지부동 운천으로선 한만 남는 일이었다.
“아 그건. 검법의 변초는 지정된 연환식을 외우기 위한게 아니라 연환식을 짜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게 변초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너무 초식에 연연하지 마시고 적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꿔 나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연은 다시 자신의 검술에 매진한다. 그렇게 수련의 날과 가연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나날이 쏜살같이 지나 갔다. 그러던 어느날
“천아 연아 내 다녀 올때가 있으니 한동안 너희 둘이 생활 하려무나”
“예…”
“예 스승님…”
그리고 백노야는 작은 봇짐을 등에 메고 휘적휘적 싸리문을 나섰다. 그때 운천은 속으로 외쳤다. ‘이건 찬스야!!!’
“억!”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운천은 눈을 떴다. 그리고 흐릿한 시선을 천장에 고정시킨 채 지금 자신이 살아 있나 죽었나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았음을 느끼곤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약간 당황했다. 중년남자가 무장 간첩이었는지 폭탄을 터뜨렸고 그 폭발 영향권에 들지 않았음에도 정말 멍청하게 거기다 스스로 손을 대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부상을 입었다면 군 병원 침실에 있어야지 이런 장지문 달린 방안에 이부자리 깔아서 한의원에 입원시키진 않는다. 게다가 여긴 사극을 주제로 꾸민 듯 낮은 농에 벽에 약재 장이 있었고 천정엔 한약재 이름을 적어놓은 주머니까지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그가 누워 있는 곳은 방바닥이 아니라 바닥보다 높은 그렇다고 침대는 아닌 곳이었다. 그래서 운천은 바닥에 내려서 장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려 했다.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오른손을 보곤 몸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그리곤 일단 안심하는 운천이었다.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환자복은 저고리 였다.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또 한번 놀랐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낮은 토담 밖에 싸리담이 보였다. 한쪽엔 절구도 있었고 저편엔 우물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정말 믿기지 않았지만 나무작대기를 휘두르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가 문제가 아니라 여자가 입은 옷이 문제 였다. 순간 운천의 머리에 다른 것 보다 먼저 떠오른 건 코스프레 였다.
‘저 간호사는 매니아 인가보군… 그것도 열렬한…’
그 모습을 보면서 운천은 말 걸기가 껄끄러워 졌다. 코스츔 매니아 간호사는 정말 열심히 휘두르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멀뚱히 서서 보고 있는데 간호사가 말을 걸어 왔다. 운천은 물어 보고 싶은 게 많았다. 자신이 이런 병원에 후송된 이유부터 간첩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신이 살수 있었던건… 하여튼 살아나니까 갑자기 이말 저말 하고 싶어지는 운천이었다.
그리고 운천은 정말 놀랐다. 여자가 중국어로 말을 걸어 왔기 때문이었다. 잠시지만 운천은 그저 입만 뻐끔 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운천은 한자를 배울 때 중국어를 배운적도 있기에 대충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웬지 자신이 아는 중국어하곤 상당히 달랐지만…
“아~! 깨어 나셨나요?”
“예…”
“다행히 걸으실 수 있는 걸 보니 몸엔 큰 무리는 없는 것 같군요…안에 누워 게세요 탕재를 가져다 그릴께요.”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려 마당 한쪽의 약탕기를 달이던 곳으로 갔다. 그리고 운천은 생각했다. ‘정말 뼈까지 코스츔 메니아구나…’
어쨌든 다시 방안 그저 단순히 코스츔 매니아라고 보기엔 너무 이상했다. 경황이 없어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상당한 미인인 간호사에 여긴 아무리 봐도 무협드라마 세트 같았다. 게다가 간호사의 어투가 이상한 것도 의심이 갔다. 그때…
‘끼익…딸깍’
문의 경첩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소반으로 대접을 받쳐들고 간호사가 들어왔다…약사발을 마시고 쓴맛에 인상을 좀 쓰자 간호사는 하얀 덩어리를 내밀었는데 단맛이 나는 게 쓴맛이 좀 가셨다… 약사발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운천은 다급하게 불렀다.
“저기요.”
“……”
“저기 이보세요…”
“……”
몇 번을 불러봐도 고개만 갸웃 거릴 뿐 묵묵부답 ‘제길 이럴 때까지 코스츔 이냐?’ 이번엔 다시 중국어로 물어 봤다.
“전 어떻게 된거죠?”
“아~ 말을 할 줄 아시는군요. 처음 듣는 말을 하시길래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는 중이었어요.다행이다.”
‘쯧 불쌍하군 저 정도면 병이야…쯔쯔’ 얼굴도 이쁜 사람이 중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이고 알아야 할건 알아야 했다. 지금 여기 있는 건 그녀 밖에 없어 보이니까 말이다.
“에~ 제가 여기 후송 된지 얼마쯤 되었죠? 다른 간부들은 여긴 군병원 내 인가요?”
“아~ 군인 이셨나 보죠? 그래서 그런 복장을 하셨나 보군요. 여긴 서녕의 노야산이에요. 절벽에서 떨어지신 것 같던데 나무에 걸려서 몸엔 큰 이상 없으세요.”
순간 떠오른 건 이 여자가 아직도 장난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투가 달라 알아듣기 힘들지만 여기가 서녕이란건 알아 들었다. 서녕은 중국내륙에 있는 흔히 아는 사천보다 깊숙한 곳이다. ‘코스프레 놀이는 자기만할 것이지 사람을 놀려 먹나? 뭐~ 서녕?!’
“아! 진짜 계속 장난칠 겁니까?! 그런 건 혼자 하십시오!…이상한 중국어 쓰지 말고”
소리쳐 장난 그만 하라고 크게 떠들어 봐야 여자는 못 알아 들었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잡고 절규 아닌 절규를 하고 있었는데
“허허~ 젊은 친구가 왜 그리 소리를 지르는가…아픈 몸으로 화를 내면 쓰나..허허”
문을 열고 신선풍의 노인이 틀어 왔다. 더불어 운천은 기가 막혔다. ‘이건 여자나 노인이나 너무 하는거 아냐?’ 운천은 혹시나 하고 중국어로 말을 걸어 봤다.
“어르신 여기가 어딥니까? 서녕이 맞나요?”
“허허 여긴 서녕 노야산이라고 청해에 있는 곳이네… 내 자네를 발견했을 땐 정말 놀랐지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 졌으니 말일세…이리 옮긴 지 3일만에 깨어나는 것일세…나는 그저 의술 조금 아는 약초꾼이지 백노야 라고 부르게 저 애는 내 손녀고 그저 백소저 라고 부르면 될것이네…”
기가 막혔다. 정말 기가 막혔다.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때 유행했던 ‘몰래 카메라 같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한국방송에서 중국어 써가며 전투중 부상을 입은 군인을 가지고 놀릴리도 없다.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그렇게 현 상황에 대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정신이 없자.. 백노야는 가볍게 운천의 혼혈을 집어 잠들게 했다.
그렇게 1달이 지났다.
운천은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할 만한 논리적 지식이 없었다. 아픔이 느껴지니 살아 있다는 증거고 주변 상황을 보니 이건 정말 중세의 중국이었다. 처음엔 주변 마을들을 돌아 다녀 보고 백노야에게 부탁해 서녕이란 큰 도시에도 가봤지만 자신은 타임슬립도 제대로 그것도 과거로 왔다.
처음 한 달은 패닉의 연속이었다. 컴퓨터도 티비도 전화도 우체국도 아무것도 없는 해지면 자야하는 그런 중세시대… 현대인인 운천에겐 정말 고역이었다. 게다가 가족도 몇 안되는 친구도 모두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자긴 정말 외따로 떨어진 연 신세 인 것이다.
정신적 공화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을 때 제일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이 백소저 였다. 이름을 물어 보니 여자의 이름은 함부로 알려 주는 것이 아니며 지인이나 연인에게만 알려 주는 것이라 했다. 아무 것도 없던 운천에겐 그녀의 미소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산중에 외따로 떨어진 초가에서 그녀와 생활하며 운천은 점점 삶의 목표를 찾아 갔다. 백소저를 사랑하기로 백소저를 위해 살기로…하지만 백소저가 운천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크게 달라 지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째 백노야에게 자신의 병명을 들었다.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구양절맥이란다. 구양절맥은 몸에 양기가 가득해 양기를 풀어 주지 않으면 밤에 음기의 공격을 받아 25살 이상 살지 못하는 병이란다. 하지만 이 신체를 타고난 사람은 머리가 좋고 몸이 튼튼하며 무공을 익히게 되면 대성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부터 집장촌을 찾아다닌 것하며 군에 있을 땐 몇 달 동안 섹스를 할 수 없으니 양기가 쌓여 그렇게 바만 되면 아펐던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운천은 병을 낳게 해주는 무공을 배우기로 했다.
“백노야 제 병이 낳으려면 어찌 해야 합니까…”
“음……”
백노야는 묵묵 부답 이었다. 뭔가 엄청난 고민을 하는 듯… 그래서 운천은 그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의 시위를 하기로 했다. 이윽고 백노야의 입이 열렸다.
“자네… 무공을 배우고 싶은가?”
“예 어르신”
“이런말 하긴 뭣하지만 대신 조건이 있네…나중에 내 부탁을 하나 들어 주게 이건 반드시 들어 줘야 하는 것 일세… 어떤가? 아! 물론 자네에겐 오히려 득이 됐으면 됐지 손해는 안될걸세 내 장담하지. 그래도 배울텐가?”
운천은 부탁이라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득이 된다는 말에 큰 고민없이 허락하고 말았다. 배사지례(하늘에 세 번 절한 후 스승에게 9번 절하는 것) 치르고 무공을 배우기 시작 했다.
백노야가 가르쳐 주는 무공은 자연을 음양으로 나누어 태극의 단전을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를 태극심공 이라 부르는데 운천은 음기를 다루는 법을 먼저 배웠다. 구양절맥의 양기를 다루기 위해선 음기를 다루어 양기를 조절하는 공능을 필요로 하는데 선천적인 양기를 전부 갈무리 한 다음부터 양기를 다루는 법을 수련하라 배웠다.
“천아 세상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음양, 삼재, 사상, 오행, 육합, 칠성, 팔방, 구정, 등 대표적인 것을 필두로 무수히 많은 이론들이 나오고 사장되고 있지, 이런 것들은 인간의 기준에서 본 자연을 그린 것이지 무릇 자연은 그대로 존재 하는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그걸 다룰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손발이 머리에 명령을 내릴 수 없듯이 말이야… 그래서 공력을 다루기 위해선 자연의 하위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 그 중에 천이 넌 선천적으로 구양절맥이라 하여 양기 즉 음과 양에 해당하는 기운을 타고 났다 해서 필요한게 태극심공…”
운천의 스승 백노야는 친절히 여러 가지에 대해 설명해 줬다. 이미 운천은 그 뛰어난 오성으로 어느덧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할 줄 알았음으로 어려운 말들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운천에게 남은 시간은 4년정도 그 안에 양기를 갈무리 하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태극심공을 배우고 경혈과 기혈에 대해 공부하고 태극선공이라는 도인체조를 배운 뒤에 하루종일 심공을 운용해 내기를 다스려 갔다. 먼저 내기를 느끼고 내기를 소주천 시키면 1단계는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달…
운천은 12경락(심장으로부터 피를 받는 12부위와 그 경로)의 통로를 뚫었으며 그 이후로는 욕정이 끓어 오르지 않으며 밤에 아프던 일도 없어 졌다.
그리고 또 한달뒤… 이젠 양기를 어느 정도 갈무리 해서 백노야의 말대로 라면 벌써 10년정도의 공력을 쌓았다 한다. 심공을 배운지 두 달… 이는 경이적인 일이며 구양절맥의 신체를 타고난 운천의 특성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특별히 영약을 복용한 일도 없으니…
이제부터의 노력 여하에 따라 내공으론 누구도 당할 수 없는 신진 강호 고수가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운천이 10년 공력을 갈무리하자 그때부터 백노야는 경공 검법 장법 투술 의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천아 기본 공력을 쌍아 내력이 균형을 잡고 있으니 지금부터 공부를 배워보자꾸나 공부란 공격하는 법과 방어 하는 법을 일컬음 인데 이는 외공부와 내공부로 나뉜다. 외공부는 신체를 다듬어 그 역량을 늘이는 것이고 내공부는 내력으로 신체를 다루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단순한 구분에 지나지 않지만 무공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것이다. 너는 어떤 것을 수련하고 싶으냐?”
운천은 잠시 생각했다. 그 때 생각난 건 언젠가 읽은 무협지에서 외.내공을 동시에 수련하여 위력을 배가 시키는 방법이 기억났다. 운천은 외공과 내공을 병행 하기로 했다.
양손과 발 허리에 모래주머니를 두르고 산을 뛰어 다녀야 했으며 그 무게는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밤엔 운공을 하고 오전엔 체력을 단력하고 오후엔 초식을 배웠다.
그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일념에 하루 20시간을 운공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말 한번 못 붙여 보던 백소저 의 이름이 백가연이란 것도 알게 되고 오후에 초식을 가르쳐 주는 것은 백가연이었다. 이 둘이 같이 있게 됨으로 운천의 마음속엔 점점 백가연의 존재가 차지하는 공간이 커져갔다.
“백사저, 이 초식의 변초는 좀 의문인데요? 연환 3초에서 좌우로 베는 것보다는 사선으로 그어올려 내려치는 초식으로의 전환이 더 좋을거 같은데 말이에요…”
백가연 보다는 운천이 나이가 4살이 많았다, 백가연은 18살 한국으로 치자면 19세 였으니 이제 대학생 뻘인 그녀에게 원조교제라는 생각은 지워버리고 그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현대인의 매너 좋은 점을 계속 어필하고 있었으나 백가연은 요지부동 운천으로선 한만 남는 일이었다.
“아 그건. 검법의 변초는 지정된 연환식을 외우기 위한게 아니라 연환식을 짜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게 변초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너무 초식에 연연하지 마시고 적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꿔 나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연은 다시 자신의 검술에 매진한다. 그렇게 수련의 날과 가연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나날이 쏜살같이 지나 갔다. 그러던 어느날
“천아 연아 내 다녀 올때가 있으니 한동안 너희 둘이 생활 하려무나”
“예…”
“예 스승님…”
그리고 백노야는 작은 봇짐을 등에 메고 휘적휘적 싸리문을 나섰다. 그때 운천은 속으로 외쳤다. ‘이건 찬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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