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50부
지나는 택시에서 수혼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지만 그의 숨결은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임과 이대로 같이 있고 싶다. 자신이 성심을 다해 사랑하는 남자다. 이 남자가 좋다. 처음 댕기머리 소녀로 보았을 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 남자가 지금 이 남자다. 처음부터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갔다면 좋았을 것을.........그때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 남자를 미워했다. 그것이 자신을 속이는 거란 것도 모르고 이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어야 상처받은 자존심이 회복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시간이 지나고........자신이 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하지만 아빠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이 남자를 보고 불같이 타오른 질투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시금 증오했던 남자..........두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이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와의 사랑.........그때 알았다. 영은이의 사랑을 보고 알았다. 사랑이란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성신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수혼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답답하다. 지나.........민지나..........그녀를 사랑한다. 처음 사랑했던 화선, 사랑하려 노력했던 영은..........그 여인들 보다 지나를 더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산에서만 생활했던 자신...........정(情)에 굶주려 있었던 자신이다. 그때 자신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준 여인이 화선이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하여 지나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영은이란 헌신적인 여인을 만나 지나라는 존재를 거부했다. 지금은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거부한다. 그녀를 사랑할 염치도 없고,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그녀는 자신보다는 그녀만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나야 한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본다.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다. 그에게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이젠 그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행복했다..........그런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도..........그는 자신을 배신했다. 배신감.......참을 수 없는 분노........그의 말대로 다른 남자를 만났다. 잊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잊혀지지 않는 이 사람........잊을 수 없다. 잊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자신의 가슴속에는 이 사람만 가득했다. 다른 누군가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이 사람이 다 가져가 버렸다.
지나의 뺨에 눈물이 흐른다. 수혼은 어깨가 척척해지는 느낌에 지나를 보았다. 그녀가 울고 있다. 수혼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바보............네가 아파하면...........내 가슴도 아프다. 수혼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려했다. 지나는 고개를 돌려 수혼의 손길을 피한다.
차가 지나 집에 도착했다. 수혼은 그녀를 부축해 보려했지만 그녀는 걸을 힘이 없었다. 수혼은 지나를 등에 업고 집으로 들어갔다. 강철이 퇴원하여 집에 있었다. 수혼의 등에 업혀온 지나를 보고 강철은 눈살을 찌푸린다.
“어떻게 된 거야?”
“지나가 취한 모양입니다. 친구에게 연락 와서 제가 데려오는 길입니다.”
“이년이~~~.............휴~~ 일단 방에 눕히고 와라.”
수혼은 지나 방으로 올라가 지나를 침대에 눕힌다. 강철이 수혼과 지나를 보고 있었다.
“수혼아~ 내려와서 이야기 좀 하자.”
“아예~ 지나 때문에 정신이 없어 인사도 못 드렸네요. 안녕하세요.”
“인사는.........천천히 내려와~ 술이나 한잔 하자.”
강철은 먼저 밑으로 내려갔다.
수혼은 지나를 반듯하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지나의 얼굴을 보니 아름답던 얼굴이 많이 상해 있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얼굴이 가엽게 보인다. 수혼은 한숨을 쉬고 나가려 했다. 지나가 눈을 뜬다. 그녀는 수혼을 바라본다. 심하게 흔들리는 지나의 눈빛.........
“가는 거야.”
수혼은 고개를 끄덕인다. 지나는 심한 갈등을 느낀다. 잡아야 한다. 이대로 보내면 언제다시 만날 수 있는지 기약도 없다............용기를 내야한다. 수혼은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다.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눈빛.......수혼은 지나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고 일어났다. 지나와 같이 있으면 자신이 무너질 것이다.
지나는 잡지 못했다. 용기가 없다.
밑으로 내려오니 은양과 강철이 수혼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은 들고 있던 양주잔을 내리며 수혼을 앉으라고 했다.
“동생 소식은 듣고 있었어. 청량리를 완전히 접수했다고.......하하하~ 역시 내 동생이야.”
“별말씀을 대수롭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 강철파도 건드리지 못한 곳이 청량리야........동생 능력이 대단한 거지.”
“요즘도 바쁘세요. 제자들이 체육관에 통 보이지 않네요.”
“겨의 다 끝났어. 은평구, 구파발까지 밀어붙이고 성철파는 이제 서울에서 완전히 퇴각하고 일산으로 도망갔어..........자 한잔 하자고.”
수혼도 강철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한번 동생을 찾아가려 했는데 마침 잘됐어.”
“무슨 일로..........”
“동생에게 부탁이 있어........성철파가 서울에서 퇴각하고 보니 우리 강철파의 구역이 너무 방대해 졌어. 동생도 알겠지만 이번 전쟁은 치열했어. 덕분에 우리 측 소실도 만만치 않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드려 야죠.”
“동생이 종로에서 신촌까지 맞아주었으면 해서..........종로와 신촌은 상권이 발달한 곳이라 튼튼하게 방비해야 되는데, 우리 병력이 딸려서 말이야.”
“내부에서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또 저희가 관리하면 형님에게 상납은 못합니다. 청량리에서도 상인들 보호만하지 보호비도 받지 않습니다.”
“알아~~ 내부 반발은 내가 알아서 해........동생보고 상납해 달라는 말은 아니야. 청량리처럼 해도 상관없어. 다만 성철파나 갈치파가 신촌이나 종료를 넘보지 못하게 관리만 해 달라는 거지............사실 우리 강철파는 업소관리 보다는 사업에 치중하고 있어. 인력파견이나, 주류도매업, 철거, 연애사업만 하는데도 인력이 딸려..........동생이 관리하면서 우리가 납품하는 술을 소비해 주고 파견하는 아이들만 관리만 해죠. 딴 것은 동생 맘대로 해.”
“그런 조건이라면 다른 이들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동생이 이끌고 있는 조직을 천량파라고 한다며.......천랑파에 손해되는 일은 아니니까 신중히 검토해 봐~..............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데...........이거 참 말하기 곤란하네.”
강철은 술을 마신다.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조직 이야기할 때와는 분위기가 틀리다.
“제가 말씀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수혼씨 지나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지나요.....................예쁜 조카님이죠.”
“지나는 수혼씨 사랑해요. 삼촌, 조카사이가 아니라 이성으로 사랑하고 있어요...........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지나를 이성으로 대해 주시면 좋겠어요.”
“저...........무슨 말씀인지.”
“휴~~ 동생이 지나 책임지란 소리야.”
강철은 답답한지 자신이 말한다. 강철은 요즘 지나를 보고 답답해 미칠 지경 이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마음잡고 공부 잘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술로 생활한다. 요즘은 귀가시간도 늦고 집에 들어와도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계집아이가 갑자기 돌변한 것이 답답해 혹시 은양은 원인을 알고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동생 때문이란다. 지나가 수혼을 사랑하는데 수혼에게 딴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강철도 수혼이 두 명의 여자와 같이 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일로 인해 자신의 딸이 아파하다니.........강철에게 자식이라고는 지나뿐이다. 수혼이 의동생만 아니라면 다리라도 부러트려 지나 곁에 두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수혼에게 살고 있는 여자를 포기하고 지나하고 같이 살라고 해도 들어줄 수혼도 아니고.......하나있는 딸을 이미 여자가 있는 놈에게 후처로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강철은 요즘 지나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형님.......전 이미 두 명의 여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녀들 버리고 지나와 결혼해, 하유~ 내 요즘 지나년만 보면 복창이 터져.........지나년 불쌍해서 못 보겠어.”
“죄송합니다. 그녀들을 버릴 순 없습니다.”
“연병~~........그럼 지나년 포기하게 만들어..........하여튼 저년 마음 좀 잡아보라고.......내말은 듣지도 않은 년이고........그래도 동생 말이라면 듣잖아.”
“잊겠지요........시간이 지나면 잊겠죠.”
“허유~ 동생 탓할 일도 아니고........답답하군. 자식하나 있는 것이 말썽이야~”
“지나 문제라면 제가 도와드리기 힘들어요. 자꾸 절 만나면 더 잊기 힘들겠죠. 형수님이 지나 좀 잡아주세요.”
“제가 나선다고 해결되나요........휴~~ 수혼씨 그 여자들 버리라고 하면.......힘들겠죠.”
“됐어. 그만해.........동생 보기 창피하군. 자자~ 술이나 한잔 더 해.”
수혼은 강철과 몇 잔 더 마시고 집을 나왔다.
지나는 창가에서 수혼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지나는 수혼이 시아에서 살아져도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수혼은 체육관에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도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답답했다.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 때 수련을 하면 조금은 개운해 진다. 체육관에 올라가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은발을 휘날리며 미나가 한참 검을 수련하고 있었다.
면도가 공중에서 춤을 춘다. “휘~이~익” 맑은 음을 토하고 뱀처럼 휘어져 들어가던 검은 방향을 틀어 상하로 심하게 요동친다. 수혼은 미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고 아름다운 몸매, 화려한 검무를 추는 듯 한들거리는 미나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미나를 보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수혼이 신발을 벗고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미나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검을 멈춘다.
“계속해요~~”
미나는 수혼을 살펴보더니 수혼의 얼굴이 어두운 것을 보고는 검을 내친다.
전중혈(젖가슴 사이의 사혈)을 노리고 들어오는 면도를 보고도 수혼은 가만히 서 있었다.
“헉~~~”
검은 수혼의 가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미나는 달려오던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수혼의 가슴을 파고든다. 수혼은 미나의 작은 몸을 잡아주었다.
“죽고 싶어요.........피해야죠.”
“미나씨 멈출지 않았어요.”
“제가 멈추지 못하며.......”
수혼은 미나의 작은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아버린다. 미나는 수혼의 가슴을 꽁꽁 때리더니 팔을 늘어트린다. 이미 입속에 수혼의 혀가 들어와 자신의 혀를 빨아주고 있었다. 서로의 혀가 엉키고 미나는 몸에서 힘이 빠져버린다. 수혼에게 자신의 몸이 길들어져 그의 작은 애무에도 쉽게 반응해 버린다. 수혼의 손의 자신의 앞섬을 헤치고 들어와 젖가슴을 주무르고 다른 한손이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하이.......하이.......수혼씨.......이러”
잠깐 입술을 때고 자신의 목을 입술을 빨던 수혼이 다시금 입술을 막아버린다. 미나는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온다. 수혼은 미나의 원피스 지퍼를 내린다. 미나는 수혼의 손을 잡고는 몸을 비틀어 수혼의 품에서 벗어났다.
“하이.......하이.......하이.......수혼씨.........고민 있어요.....하이........하이.”
수혼은 미나가 뒤로 물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묻자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고민을 잊기 위해 그녀를 강제로 범하려 했다.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기분대로 그녀를 범하려 한 것이 무척 미안하다.
“미안해요.......잠깐 흥분했어요.”
수혼이 사과하자 미나는 검을 검 집에 넣고 수혼을 유심히 바라본다. 미나는 2~3개월 수혼과 같이 생활해서 수혼의 표정을 보면 어느 정도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수혼은 깊은 고민에 빠진 얼굴이다.
“수혼씨, 고민 있죠...........무슨 고민인지 말씀해 보세요.”
“고민(?)...........휴~ 답답해서.........미희는(?)”
“밑에 있어요. 수혼씨가 보던 책 좀 읽는다고 수혼씨 방에 있을 걸요.”
“책........무슨 책(?)”
“병법 책인가? 아마 그 책일걸요........당신 저번에 왔던 그 여자 때문이죠.”
“예~ 무슨”
“당신 몸에서 화장품 냄새나요. 그 여자 만나고 왔죠. 그 지나라는 여자..........”
“.............예~ ...............미안해요~~”
“그 여자........잊기 힘들면.........당신 여자로 만들어 버리세요.”
“그건.........안돼요. 당신들을 위해서도.......그녀를 위해서도.........”
“바보~...........우리는 상관없어요.”
“그만.......이리와요.”
수혼의 눈이 슬프다. 미나는 답답했다. 사랑하는 임이 슬퍼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남자라면 발가락에 낀 태만큼도 생각지 않았던 자신이..........이 남자는 목숨처럼 사랑한다. 어름처럼 차갑던 마음이 눈 녹듯 풀리고 사랑의 불꽃이 일어났다. 몇 개월간 같이 생활하며........이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그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다.
그런 그가 슬퍼하고 있다. 그가 슬퍼하면..........자신도 슬프다. 그의 슬픔을 달려줄 수 있다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미나는 스스로 옷을 벗는다. 그가 자신을 원한다. 자신을 주어 그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잊혀질 수 있다면 기꺼이 옷을 벗는다. 작고 아름다운 미나의 몸매가 드려난다. 운동으로 다져져 군살하나 없는 작고 아름다운 몸매. 그녀의 하얀 속살이 드려나고........미나는 수혼의 옷을 벗긴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체육관에 가득했다.
성철파의 일산본부.........성철파의 중간보스까지 회의장에 집결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침통했다. 서울에서 완전히 밀려나 이젠 일산밖에 남지 않았다. 한때는 서울을 장악하고 전국을 호령하던 성철파가 이렇게 몰락하다니........
40여명의 노인들........한때는 전국에 쩌렁쩌렁 명성을 날리던 주먹들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자신 안위에 급급해 조직이 어떻게 되든 자신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나약하고 심약한 노인들로 변했다.
그들에게 어떠한 야망도 기상도 느낄 수 없었다.
강성철은 뼈만 남은 남루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의 눈빛은 죽어 있었고, 몸에서는 죽음의 기운이 넘친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노인처럼 힘없고 나약한 모습이다.
“강철파의 공격이 끝났습니다. 강철의 연락을 받았는데.........우리가 일산에서 조용히 지난다면 더 이상의 공격은 없다는 연락입니다.”
“강철이놈~...........선배들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하더군요.”
“하긴 우리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이면 전국에서 일어나겠지........그렇게 보면 강철이놈~ 여우같은 놈이야.”
강철파의 공격이 멈추었다고 안도하는 노인들........강철의 배려로 질긴 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다고 감사한다. 이들이 과연 대성철파을 이끌던 인물들이란 말인가?
그때 회의장 문이 부셔지듯 열리며 성민과 3명의 부하들이 검을 들고 들어선다. 성민의 손짓에 3명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은 회의장에 앉아 안도하는 노인들을 검으로 배어버린다. 무자비한 살생이 벌어진 것이다.
“크아~~악”
회의장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팔이 날아가는 사람, 목이 날아가는 사람......회의장은 삽시간에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피에 잠긴다. 노인들은 급작스런 공격에 반격도 하지 못하고 피를 뿌리고 있었다.
성민은 서울에 올라와 성철파 내부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미 썩어버린 성철파는 서울에서 밀려나 일산에 머물고 있었다. 성민은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는 전국제일의 조직을 이끌던 사람들이다. 이들이라면 서울에서 밀려난 울분을 참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을 탈환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마지막 카드라도 숨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그런 기대감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들은 일산이란 작은 땅이라도 감사하며 그곳에 안주하려 한다. 늙고 야망도, 복수심도 없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 자신이 멍청했다.
성민은 그들을 감시하다 일거를 쓸어버리기로 마음먹었고.......중간보스 갑부들까지 모두 모이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보스와 만나는 자리에는 무장을 하지 않는다. 더구나 중간보스까지 모이는 회의라면 누구도 감히 무기를 소지하고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한다.
성철은 자신과 평생을 같이한 동료이자 부하들의 죽음을 보고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게 희망이란 없었다. 성민의 만행........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늙고 힘없는 부하들은 변변히 반항도 못하고 성민일행에게 당하고 있었다. 급작스런 기습일지라도 저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의 부하들이 한심했다. 성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이젠 반도남지 않았다. 그들은 회의장 한곳에 모여 성민일행과 대치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장내에 가득했다. 성민은 피에 젖은 검을 들고 그들을 가르친다.
“목숨이 아까운 사람은 그 자리에서 꿇어.........항복하는 놈은 다리한쪽씩만 절단하고 보내준다.”
“이..........이놈~........이 무슨 만행이냐.......당장 검을 거두지 못해.”
“웃기는 늙은이”
성민의 검이 소리 진 노인을 향해 날아간다. 노인은 팔을 들어 검을 막아보지만 검은 팔을 절단하고 노인의 가슴을 그어버린다. 피가 솟아오르고 팔이 날아가며 노인의 몸이 바닥에 쓰려진다.
“또........또 앞으로 나설 놈 있으면 말해. 반항할 용기라도 있는 놈들은 앞으로 나서란 말이야.~”
성민이 버럭 소리치자 노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하나둘씩 바닥에 엎드린다.
성민은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놈들이 성철파을 이끌어가는 놈들이란 말인가.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협박에 굴복하여 엎드리는 놈들........목숨을 걸고 반항이라도 하는 놈이 없다. 지금 자신들의 보스는 적의 칼날 앞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데.......자신들의 목숨만 소중한 놈들이다. 아무리 늙고 힘이 없어도 이렇게 망가진 모습이라니.........성민은 검을 던져버린다. 자신의 검으로 처리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다.
“모두 죽어버려.......”
성민은 등을 돌려버리고 지산과 영석, 창만의 검이 춤을 추고 사람들의 비명이 장내에 울려 펴진다.
성철은 성민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자식..........그놈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원망과 안타까운 빛이 복잡하게 엉키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온다. 자신의 부하들의 죽음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던 강철의 눈빛이 흔들린다. 성철은 성민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고.......자신과 평생을 같이한 동료들을 학살하더니 자신에게 다가온다. 이젠 희망도 없다.
“아비의 목숨이 필요하냐........이 늙은 목숨이 필요하다면 가져가라.”
“아.......아버지.......죄.......죄송합니다. 저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강철파을 좀먹고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하는 저런 놈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대성철파를.......망친 인간들이 저 인간들입니다.”
“알고 있다. 어찌 저들만 책임이 있겠느냐.......이 못난 애비의 잘못이 더 크다.”
“아닙니다..........보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목숨을 걸고라도 말려야 하는 것이 부하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아버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영달만은 추구하던 놈들입니다. 저들은 부하들도 아닙니다.”
“후후후~~ 아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구나.........이젠 편하게 쉬고 싶다........마지막을 편하게 보네다요.”
“아.......아버지 무슨 말씀입니까? 앞으로 저를 지켜봐 주세요. 제가 강철의 목줄을 따고 서울을 탈환하는 모습을 보셔야죠. 성철파가 다시 전국제일의 조직으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셔야죠.”
성민의 당당한 목소리.........젊은 놈의 패기가 느껴진다. 자신도 한때는 저런 모습 이였다. 세상이 무서울 것이 없고 거침없이 세상을 주유하던 자신의 젊은 날의 모습을 본다. 저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향상 어린아이처럼 보았던 아들이 자신을 위로하며 힘을 준다. 그래 마지막으로 저놈에게 희망을 걸어보자. 성철은 성민에게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하하하하~~ 그래........네놈이라면........네놈이라면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좋다~ 너에게 마지막 남은 성철파의 모든 것을 주겠다.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지만 너에게 마지막 희망고 마지막 남은 강철파의 모든 것을 주겠다.”
피에 잠긴 회의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성민과 성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철은 회의장을 둘려보더니 눈을 감고 한동안 제자리에 있었다. 평생을 자신과 함께했던 부하이자 동료들.......그들은 반 이상이 죽고.......나머지는 모두 병신이 되어있었다. 팔이 잘린 녀석, 다리가 자린 녀석, 회의장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성철의 서재에 아들과 아버지는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했던 성철의 눈빛이 빛난다. 장성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희망이 생긴다. 비록 손속이 잔인하고 거칠기 짝이 없지만 현재 무너져버린 성철파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성민과 같이 잔인하고 냉철한 판단력이 좋을 것이다. 형에 대한 복수, 무너진 조직을 되살리기 위해서 성민은 한없이 잔인해 질 것이다. 그 독기가 성철파를 되살릴 불씨가 되지 않을까?
“성철파에는 네가 알지 못하는 두 가지 비밀이 있다. 하나는 너에게 힘이 될 것이고, 하나는 네가 이용하기 따라서 독이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
“너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것은..........일본 야쿠자 중 애비와 의형제가 한분 있다. 젊어서 일본에 건너갔다 의기투합하여 의형제가 된 사인데........지금은 일본에서 두 번째를 달리는 미나모토조를 이끌고 있는 분이다. 난 사실 일본 아쿠자을 우리나라에 끌어들이는 것이 싫어 우리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형님께 손을 벌리지 않았지만.........네가 성철파를 일으켜 세우겠다면 형님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해라. 나와는 피를 나눈 형제의 의를 맺은 분이라 내 서찰을 가져가면 너에게 힘을 줄 것이다.”
“아마구치조 다음으로 크다는 미나모토조의 보스가 아버님의 의형제라니.........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왜 진작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애비가 지금은 힘없고 나약한 늙은이로 전락했지만.......난 당당한 대한의 건달이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 놈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우리 일은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네가 성철파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는 마당에 체면이고 뭐고 집어 던지고 널 도와주겠다.”
“............감사합니다. 그분이 도와주지 않아도 아버님의 뜻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또 다른 비밀은 성철파의 몰락에 엉킨 비밀이다. 성철파가 갑자기 몰락하게 된 배경에는 갈치파가 뒤에 있었다.”
“갈........갈치파요.”
“그래........우리가 서울을 장악하고 있을 때 인천에서 도발한 갈치파가 서울로 향해 진격했다. 처음에 우린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조직원이 만 명이 넘던 우리가 겨우 천 명 정도의 갈치파를 우습게 본거지. 근데.........그게 우리의 실수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수였다. 주먹이나 쓰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고수들..........그들의 검 앞에 우리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수많은 조직원이 그들의 검에 병신이 되거나 죽어버리고 우린 마지막 선택으로 그때당시 전국제일의 실력자로 소문난 한 고수를 초빙했다. 그 고수의 출현으로 우린 갈치파를 어렵게 맞을 수 있었다.”
“그런 고수가 있었단 말입니까? 왜 전 모르고 있었죠.”
“네가 어려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대성철파가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뭐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떠들고 다니겠냐. 근데 사람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그 고수가 갈치파 보스 딸하고 사랑에 빠진 거야. 이미 갈치파와 우린 서로 만회하기 힘든 상처를 입어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름도 모르는 고수와 갈치파 보스의 딸이 사랑에 빠져 둘이서 행방불명 된 거야.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갈치파와 우린 서로 협상을 해서 갈치파가 인천으로 물러가고 우린 다시 서울에 남고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고 서둘러 상처를 봉합했다. 한참 조직 정비에 힘을 쓰고 있던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 놈이 강철이고.........나머지 일은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갈치파 보스의 딸(?).........현재 갈치파는 수영이라는 여자가 보스로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이제 20살이 조금 넘은 걸로 아는데........”
“지금 있는 년은 갈치파 보스의 소녀 딸이야. 우리나 갈치파나 강철에게 어부지리를 준 것이 뼈에 사무쳐 가끔 만나서 알고 있다. 너도 그 손녀딸은 보았지 않느냐.”
“손녀딸..........그럼 갈치파 보스 딸과 그 이름모를 고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걸 이야기하기 전에........내가 널 만주로 보낸 이유를 알고 있느냐. 내가 널 만주로 보낸 것은 네가 국선도를 익히게 하기 위함 이였다........어느 정도까지 익히고 있느냐.”
“그........그것이 약간........성질이 급해서.........모두 익히지는 못했습니다.”
“휴~~ 네가 익힌 국선도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무술이다........우리가 조사해서 겨우 알아낸 것이 갈치파는 삼국시대 신라의 무술을 익힌 무리들이다. 크게 원화와 화랑으로 조직되는데 원예는 우두머리 한명과 원예를 수호하는 4명의 원화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들은 원예도라는 무술을 익히고 있고 화랑들은 화랑의 무술을 익히고 있다.”
“원예도(?).........그 꼬마가 고수란 말입니까?”
“원예도는 일인전승무예로 알고 있다. 그 아이가 원예도의 전인이라면 대단한 고수일 것이다. 내가 국선도를 완전히 익히지 못하면 그 아이를 상대할 수 없어..........지금이라도 국선도 수련에 진정해야 한다.”
“저.........아버님 혹시 음양도라고 아십니까?”
“음양도.........네가 그걸 어찌 알고 있지?”
“강철에게 의동생이 있는데 그 녀석이 익힌 무술이 음양도라고 들었습니다.”
“뭐~~~ 음~~~, 음양도는 원예도와 같이 일인전승인 백제의 무술이다. 강철에게 그런 동생이 있다면.......힘든 싸움이 되겠구나. 삼국무술이 모두 나타나다니..........옛날 우리가 초빙한 고수도 음양도를 익히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 고수가 음양도를 요?”
“확실한 건 아니다. 그 스스로 자신이 익힌 무공에 대한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갈치파의 입에서 그가 음양도를 익히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을 뿐이지.”
“그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전라도 송광사에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과 헤이지고 승려가 된 것이지.”
“승.........승려요. 둘이 사랑했던 사람이 헤어졌단 말입니까?”
“후후후........그가.........사랑했던 여인이 죽었다. 그 충격에 승려가 되어 절에 숨어 살고 있지.”
“참 기구한 인생이네.............완전히 세상과 등진 겁니까?”
“글쎄.........그는 네가 빛이 있지. 우린 그에게 갈치파을 세상에서 지워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는 흔쾌히 승낙했지.........그는 우리와의 계약을 무시하고 갈치파 보스의 딸과 사랑에 빠져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어. 그는 아직도 그 빛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그을 우리 일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양날의 검이야............갈치파와 연관이 있는 그가 과연 우리만 도와줄까?”
“우리가 갈치파와 손을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글쎄..........갈치파는 아직 건재해, 뭐가 아쉽다고 우리와 손을 잡으려 하겠느냐.”
“휴~~ 이거야 원~~ 그럼 그 고수는 그림의 떡 아닙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너에게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고수가 우릴 도와 서울을 평정하고 나면..........갈치파가 가만있지 않을 것인데........그때 그가 과연 누구 편을 들지 알 수가 없구나.”
성민은 한동안 고민했다. 갈치파의 정체.......그리고 일본에 있는 아버지의 의형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의 존재. 갈치파의 일은 급한 것이 아니다. 현재는 공동의 적인 강철파가 있기에 자신과 손을 잡으면 잡았지 뒤통수를 때리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자신의 힘을 키워야 한다.
“아버님 일단은 갈치파나 고수의 일은 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을 키워 열심히 해 보고 그리도 안 되면 최후에 갈치파와 손을 잡던.........고수를 끌어들이던 그때 가서 결정하고........일단은 제가 일본을 다녀오겠습니다.”
“네가 알아서 해라........내 서찰을 써주마.”
성민과 성철.........그들도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의 아쿠자를 한국에 끌어들일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50부라서 끝났다고 생각하고 들어오신 분들 죄송~~~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50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준비과정이며 3번째 여자주인공인 요코의 등장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성민의 부산정벌, 성철파의 개혁을 간략하게 끝난것은 많은 분들이 주인공이외 사람들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서둘려 끝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세하게 쓰지 않고 간략하게 서술만 했습니다.
다음편부터 3번째 여자주인공인 요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2부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요코이야기가 얼마나 갈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편은 한 4~5개월 정도 시간을 건너뛰고 시작하니.....글의 배경에 의구심을 갖지 마시길.........
성원해 주시는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 붉은미르 -
지나는 택시에서 수혼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지만 그의 숨결은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임과 이대로 같이 있고 싶다. 자신이 성심을 다해 사랑하는 남자다. 이 남자가 좋다. 처음 댕기머리 소녀로 보았을 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 남자가 지금 이 남자다. 처음부터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갔다면 좋았을 것을.........그때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 남자를 미워했다. 그것이 자신을 속이는 거란 것도 모르고 이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어야 상처받은 자존심이 회복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시간이 지나고........자신이 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하지만 아빠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이 남자를 보고 불같이 타오른 질투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시금 증오했던 남자..........두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이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와의 사랑.........그때 알았다. 영은이의 사랑을 보고 알았다. 사랑이란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성신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수혼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답답하다. 지나.........민지나..........그녀를 사랑한다. 처음 사랑했던 화선, 사랑하려 노력했던 영은..........그 여인들 보다 지나를 더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산에서만 생활했던 자신...........정(情)에 굶주려 있었던 자신이다. 그때 자신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준 여인이 화선이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하여 지나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영은이란 헌신적인 여인을 만나 지나라는 존재를 거부했다. 지금은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거부한다. 그녀를 사랑할 염치도 없고,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그녀는 자신보다는 그녀만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나야 한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본다.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다. 그에게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이젠 그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행복했다..........그런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도..........그는 자신을 배신했다. 배신감.......참을 수 없는 분노........그의 말대로 다른 남자를 만났다. 잊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잊혀지지 않는 이 사람........잊을 수 없다. 잊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자신의 가슴속에는 이 사람만 가득했다. 다른 누군가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이 사람이 다 가져가 버렸다.
지나의 뺨에 눈물이 흐른다. 수혼은 어깨가 척척해지는 느낌에 지나를 보았다. 그녀가 울고 있다. 수혼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바보............네가 아파하면...........내 가슴도 아프다. 수혼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려했다. 지나는 고개를 돌려 수혼의 손길을 피한다.
차가 지나 집에 도착했다. 수혼은 그녀를 부축해 보려했지만 그녀는 걸을 힘이 없었다. 수혼은 지나를 등에 업고 집으로 들어갔다. 강철이 퇴원하여 집에 있었다. 수혼의 등에 업혀온 지나를 보고 강철은 눈살을 찌푸린다.
“어떻게 된 거야?”
“지나가 취한 모양입니다. 친구에게 연락 와서 제가 데려오는 길입니다.”
“이년이~~~.............휴~~ 일단 방에 눕히고 와라.”
수혼은 지나 방으로 올라가 지나를 침대에 눕힌다. 강철이 수혼과 지나를 보고 있었다.
“수혼아~ 내려와서 이야기 좀 하자.”
“아예~ 지나 때문에 정신이 없어 인사도 못 드렸네요. 안녕하세요.”
“인사는.........천천히 내려와~ 술이나 한잔 하자.”
강철은 먼저 밑으로 내려갔다.
수혼은 지나를 반듯하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지나의 얼굴을 보니 아름답던 얼굴이 많이 상해 있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얼굴이 가엽게 보인다. 수혼은 한숨을 쉬고 나가려 했다. 지나가 눈을 뜬다. 그녀는 수혼을 바라본다. 심하게 흔들리는 지나의 눈빛.........
“가는 거야.”
수혼은 고개를 끄덕인다. 지나는 심한 갈등을 느낀다. 잡아야 한다. 이대로 보내면 언제다시 만날 수 있는지 기약도 없다............용기를 내야한다. 수혼은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다.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눈빛.......수혼은 지나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고 일어났다. 지나와 같이 있으면 자신이 무너질 것이다.
지나는 잡지 못했다. 용기가 없다.
밑으로 내려오니 은양과 강철이 수혼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은 들고 있던 양주잔을 내리며 수혼을 앉으라고 했다.
“동생 소식은 듣고 있었어. 청량리를 완전히 접수했다고.......하하하~ 역시 내 동생이야.”
“별말씀을 대수롭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 강철파도 건드리지 못한 곳이 청량리야........동생 능력이 대단한 거지.”
“요즘도 바쁘세요. 제자들이 체육관에 통 보이지 않네요.”
“겨의 다 끝났어. 은평구, 구파발까지 밀어붙이고 성철파는 이제 서울에서 완전히 퇴각하고 일산으로 도망갔어..........자 한잔 하자고.”
수혼도 강철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한번 동생을 찾아가려 했는데 마침 잘됐어.”
“무슨 일로..........”
“동생에게 부탁이 있어........성철파가 서울에서 퇴각하고 보니 우리 강철파의 구역이 너무 방대해 졌어. 동생도 알겠지만 이번 전쟁은 치열했어. 덕분에 우리 측 소실도 만만치 않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드려 야죠.”
“동생이 종로에서 신촌까지 맞아주었으면 해서..........종로와 신촌은 상권이 발달한 곳이라 튼튼하게 방비해야 되는데, 우리 병력이 딸려서 말이야.”
“내부에서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또 저희가 관리하면 형님에게 상납은 못합니다. 청량리에서도 상인들 보호만하지 보호비도 받지 않습니다.”
“알아~~ 내부 반발은 내가 알아서 해........동생보고 상납해 달라는 말은 아니야. 청량리처럼 해도 상관없어. 다만 성철파나 갈치파가 신촌이나 종료를 넘보지 못하게 관리만 해 달라는 거지............사실 우리 강철파는 업소관리 보다는 사업에 치중하고 있어. 인력파견이나, 주류도매업, 철거, 연애사업만 하는데도 인력이 딸려..........동생이 관리하면서 우리가 납품하는 술을 소비해 주고 파견하는 아이들만 관리만 해죠. 딴 것은 동생 맘대로 해.”
“그런 조건이라면 다른 이들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동생이 이끌고 있는 조직을 천량파라고 한다며.......천랑파에 손해되는 일은 아니니까 신중히 검토해 봐~..............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데...........이거 참 말하기 곤란하네.”
강철은 술을 마신다.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조직 이야기할 때와는 분위기가 틀리다.
“제가 말씀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수혼씨 지나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지나요.....................예쁜 조카님이죠.”
“지나는 수혼씨 사랑해요. 삼촌, 조카사이가 아니라 이성으로 사랑하고 있어요...........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지나를 이성으로 대해 주시면 좋겠어요.”
“저...........무슨 말씀인지.”
“휴~~ 동생이 지나 책임지란 소리야.”
강철은 답답한지 자신이 말한다. 강철은 요즘 지나를 보고 답답해 미칠 지경 이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마음잡고 공부 잘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술로 생활한다. 요즘은 귀가시간도 늦고 집에 들어와도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계집아이가 갑자기 돌변한 것이 답답해 혹시 은양은 원인을 알고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동생 때문이란다. 지나가 수혼을 사랑하는데 수혼에게 딴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강철도 수혼이 두 명의 여자와 같이 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일로 인해 자신의 딸이 아파하다니.........강철에게 자식이라고는 지나뿐이다. 수혼이 의동생만 아니라면 다리라도 부러트려 지나 곁에 두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수혼에게 살고 있는 여자를 포기하고 지나하고 같이 살라고 해도 들어줄 수혼도 아니고.......하나있는 딸을 이미 여자가 있는 놈에게 후처로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강철은 요즘 지나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형님.......전 이미 두 명의 여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녀들 버리고 지나와 결혼해, 하유~ 내 요즘 지나년만 보면 복창이 터져.........지나년 불쌍해서 못 보겠어.”
“죄송합니다. 그녀들을 버릴 순 없습니다.”
“연병~~........그럼 지나년 포기하게 만들어..........하여튼 저년 마음 좀 잡아보라고.......내말은 듣지도 않은 년이고........그래도 동생 말이라면 듣잖아.”
“잊겠지요........시간이 지나면 잊겠죠.”
“허유~ 동생 탓할 일도 아니고........답답하군. 자식하나 있는 것이 말썽이야~”
“지나 문제라면 제가 도와드리기 힘들어요. 자꾸 절 만나면 더 잊기 힘들겠죠. 형수님이 지나 좀 잡아주세요.”
“제가 나선다고 해결되나요........휴~~ 수혼씨 그 여자들 버리라고 하면.......힘들겠죠.”
“됐어. 그만해.........동생 보기 창피하군. 자자~ 술이나 한잔 더 해.”
수혼은 강철과 몇 잔 더 마시고 집을 나왔다.
지나는 창가에서 수혼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지나는 수혼이 시아에서 살아져도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수혼은 체육관에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도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답답했다.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 때 수련을 하면 조금은 개운해 진다. 체육관에 올라가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은발을 휘날리며 미나가 한참 검을 수련하고 있었다.
면도가 공중에서 춤을 춘다. “휘~이~익” 맑은 음을 토하고 뱀처럼 휘어져 들어가던 검은 방향을 틀어 상하로 심하게 요동친다. 수혼은 미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고 아름다운 몸매, 화려한 검무를 추는 듯 한들거리는 미나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미나를 보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수혼이 신발을 벗고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미나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검을 멈춘다.
“계속해요~~”
미나는 수혼을 살펴보더니 수혼의 얼굴이 어두운 것을 보고는 검을 내친다.
전중혈(젖가슴 사이의 사혈)을 노리고 들어오는 면도를 보고도 수혼은 가만히 서 있었다.
“헉~~~”
검은 수혼의 가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미나는 달려오던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수혼의 가슴을 파고든다. 수혼은 미나의 작은 몸을 잡아주었다.
“죽고 싶어요.........피해야죠.”
“미나씨 멈출지 않았어요.”
“제가 멈추지 못하며.......”
수혼은 미나의 작은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아버린다. 미나는 수혼의 가슴을 꽁꽁 때리더니 팔을 늘어트린다. 이미 입속에 수혼의 혀가 들어와 자신의 혀를 빨아주고 있었다. 서로의 혀가 엉키고 미나는 몸에서 힘이 빠져버린다. 수혼에게 자신의 몸이 길들어져 그의 작은 애무에도 쉽게 반응해 버린다. 수혼의 손의 자신의 앞섬을 헤치고 들어와 젖가슴을 주무르고 다른 한손이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하이.......하이.......수혼씨.......이러”
잠깐 입술을 때고 자신의 목을 입술을 빨던 수혼이 다시금 입술을 막아버린다. 미나는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온다. 수혼은 미나의 원피스 지퍼를 내린다. 미나는 수혼의 손을 잡고는 몸을 비틀어 수혼의 품에서 벗어났다.
“하이.......하이.......하이.......수혼씨.........고민 있어요.....하이........하이.”
수혼은 미나가 뒤로 물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묻자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고민을 잊기 위해 그녀를 강제로 범하려 했다.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기분대로 그녀를 범하려 한 것이 무척 미안하다.
“미안해요.......잠깐 흥분했어요.”
수혼이 사과하자 미나는 검을 검 집에 넣고 수혼을 유심히 바라본다. 미나는 2~3개월 수혼과 같이 생활해서 수혼의 표정을 보면 어느 정도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수혼은 깊은 고민에 빠진 얼굴이다.
“수혼씨, 고민 있죠...........무슨 고민인지 말씀해 보세요.”
“고민(?)...........휴~ 답답해서.........미희는(?)”
“밑에 있어요. 수혼씨가 보던 책 좀 읽는다고 수혼씨 방에 있을 걸요.”
“책........무슨 책(?)”
“병법 책인가? 아마 그 책일걸요........당신 저번에 왔던 그 여자 때문이죠.”
“예~ 무슨”
“당신 몸에서 화장품 냄새나요. 그 여자 만나고 왔죠. 그 지나라는 여자..........”
“.............예~ ...............미안해요~~”
“그 여자........잊기 힘들면.........당신 여자로 만들어 버리세요.”
“그건.........안돼요. 당신들을 위해서도.......그녀를 위해서도.........”
“바보~...........우리는 상관없어요.”
“그만.......이리와요.”
수혼의 눈이 슬프다. 미나는 답답했다. 사랑하는 임이 슬퍼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남자라면 발가락에 낀 태만큼도 생각지 않았던 자신이..........이 남자는 목숨처럼 사랑한다. 어름처럼 차갑던 마음이 눈 녹듯 풀리고 사랑의 불꽃이 일어났다. 몇 개월간 같이 생활하며........이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그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다.
그런 그가 슬퍼하고 있다. 그가 슬퍼하면..........자신도 슬프다. 그의 슬픔을 달려줄 수 있다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미나는 스스로 옷을 벗는다. 그가 자신을 원한다. 자신을 주어 그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잊혀질 수 있다면 기꺼이 옷을 벗는다. 작고 아름다운 미나의 몸매가 드려난다. 운동으로 다져져 군살하나 없는 작고 아름다운 몸매. 그녀의 하얀 속살이 드려나고........미나는 수혼의 옷을 벗긴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체육관에 가득했다.
성철파의 일산본부.........성철파의 중간보스까지 회의장에 집결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침통했다. 서울에서 완전히 밀려나 이젠 일산밖에 남지 않았다. 한때는 서울을 장악하고 전국을 호령하던 성철파가 이렇게 몰락하다니........
40여명의 노인들........한때는 전국에 쩌렁쩌렁 명성을 날리던 주먹들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자신 안위에 급급해 조직이 어떻게 되든 자신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나약하고 심약한 노인들로 변했다.
그들에게 어떠한 야망도 기상도 느낄 수 없었다.
강성철은 뼈만 남은 남루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의 눈빛은 죽어 있었고, 몸에서는 죽음의 기운이 넘친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노인처럼 힘없고 나약한 모습이다.
“강철파의 공격이 끝났습니다. 강철의 연락을 받았는데.........우리가 일산에서 조용히 지난다면 더 이상의 공격은 없다는 연락입니다.”
“강철이놈~...........선배들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하더군요.”
“하긴 우리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이면 전국에서 일어나겠지........그렇게 보면 강철이놈~ 여우같은 놈이야.”
강철파의 공격이 멈추었다고 안도하는 노인들........강철의 배려로 질긴 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다고 감사한다. 이들이 과연 대성철파을 이끌던 인물들이란 말인가?
그때 회의장 문이 부셔지듯 열리며 성민과 3명의 부하들이 검을 들고 들어선다. 성민의 손짓에 3명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은 회의장에 앉아 안도하는 노인들을 검으로 배어버린다. 무자비한 살생이 벌어진 것이다.
“크아~~악”
회의장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팔이 날아가는 사람, 목이 날아가는 사람......회의장은 삽시간에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피에 잠긴다. 노인들은 급작스런 공격에 반격도 하지 못하고 피를 뿌리고 있었다.
성민은 서울에 올라와 성철파 내부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미 썩어버린 성철파는 서울에서 밀려나 일산에 머물고 있었다. 성민은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는 전국제일의 조직을 이끌던 사람들이다. 이들이라면 서울에서 밀려난 울분을 참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을 탈환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마지막 카드라도 숨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그런 기대감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들은 일산이란 작은 땅이라도 감사하며 그곳에 안주하려 한다. 늙고 야망도, 복수심도 없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 자신이 멍청했다.
성민은 그들을 감시하다 일거를 쓸어버리기로 마음먹었고.......중간보스 갑부들까지 모두 모이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보스와 만나는 자리에는 무장을 하지 않는다. 더구나 중간보스까지 모이는 회의라면 누구도 감히 무기를 소지하고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한다.
성철은 자신과 평생을 같이한 동료이자 부하들의 죽음을 보고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게 희망이란 없었다. 성민의 만행........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늙고 힘없는 부하들은 변변히 반항도 못하고 성민일행에게 당하고 있었다. 급작스런 기습일지라도 저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의 부하들이 한심했다. 성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이젠 반도남지 않았다. 그들은 회의장 한곳에 모여 성민일행과 대치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장내에 가득했다. 성민은 피에 젖은 검을 들고 그들을 가르친다.
“목숨이 아까운 사람은 그 자리에서 꿇어.........항복하는 놈은 다리한쪽씩만 절단하고 보내준다.”
“이..........이놈~........이 무슨 만행이냐.......당장 검을 거두지 못해.”
“웃기는 늙은이”
성민의 검이 소리 진 노인을 향해 날아간다. 노인은 팔을 들어 검을 막아보지만 검은 팔을 절단하고 노인의 가슴을 그어버린다. 피가 솟아오르고 팔이 날아가며 노인의 몸이 바닥에 쓰려진다.
“또........또 앞으로 나설 놈 있으면 말해. 반항할 용기라도 있는 놈들은 앞으로 나서란 말이야.~”
성민이 버럭 소리치자 노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하나둘씩 바닥에 엎드린다.
성민은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놈들이 성철파을 이끌어가는 놈들이란 말인가.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협박에 굴복하여 엎드리는 놈들........목숨을 걸고 반항이라도 하는 놈이 없다. 지금 자신들의 보스는 적의 칼날 앞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데.......자신들의 목숨만 소중한 놈들이다. 아무리 늙고 힘이 없어도 이렇게 망가진 모습이라니.........성민은 검을 던져버린다. 자신의 검으로 처리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다.
“모두 죽어버려.......”
성민은 등을 돌려버리고 지산과 영석, 창만의 검이 춤을 추고 사람들의 비명이 장내에 울려 펴진다.
성철은 성민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자식..........그놈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원망과 안타까운 빛이 복잡하게 엉키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온다. 자신의 부하들의 죽음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던 강철의 눈빛이 흔들린다. 성철은 성민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고.......자신과 평생을 같이한 동료들을 학살하더니 자신에게 다가온다. 이젠 희망도 없다.
“아비의 목숨이 필요하냐........이 늙은 목숨이 필요하다면 가져가라.”
“아.......아버지.......죄.......죄송합니다. 저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강철파을 좀먹고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하는 저런 놈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대성철파를.......망친 인간들이 저 인간들입니다.”
“알고 있다. 어찌 저들만 책임이 있겠느냐.......이 못난 애비의 잘못이 더 크다.”
“아닙니다..........보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목숨을 걸고라도 말려야 하는 것이 부하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아버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영달만은 추구하던 놈들입니다. 저들은 부하들도 아닙니다.”
“후후후~~ 아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구나.........이젠 편하게 쉬고 싶다........마지막을 편하게 보네다요.”
“아.......아버지 무슨 말씀입니까? 앞으로 저를 지켜봐 주세요. 제가 강철의 목줄을 따고 서울을 탈환하는 모습을 보셔야죠. 성철파가 다시 전국제일의 조직으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셔야죠.”
성민의 당당한 목소리.........젊은 놈의 패기가 느껴진다. 자신도 한때는 저런 모습 이였다. 세상이 무서울 것이 없고 거침없이 세상을 주유하던 자신의 젊은 날의 모습을 본다. 저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향상 어린아이처럼 보았던 아들이 자신을 위로하며 힘을 준다. 그래 마지막으로 저놈에게 희망을 걸어보자. 성철은 성민에게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하하하하~~ 그래........네놈이라면........네놈이라면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좋다~ 너에게 마지막 남은 성철파의 모든 것을 주겠다.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지만 너에게 마지막 희망고 마지막 남은 강철파의 모든 것을 주겠다.”
피에 잠긴 회의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성민과 성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철은 회의장을 둘려보더니 눈을 감고 한동안 제자리에 있었다. 평생을 자신과 함께했던 부하이자 동료들.......그들은 반 이상이 죽고.......나머지는 모두 병신이 되어있었다. 팔이 잘린 녀석, 다리가 자린 녀석, 회의장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성철의 서재에 아들과 아버지는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했던 성철의 눈빛이 빛난다. 장성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희망이 생긴다. 비록 손속이 잔인하고 거칠기 짝이 없지만 현재 무너져버린 성철파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성민과 같이 잔인하고 냉철한 판단력이 좋을 것이다. 형에 대한 복수, 무너진 조직을 되살리기 위해서 성민은 한없이 잔인해 질 것이다. 그 독기가 성철파를 되살릴 불씨가 되지 않을까?
“성철파에는 네가 알지 못하는 두 가지 비밀이 있다. 하나는 너에게 힘이 될 것이고, 하나는 네가 이용하기 따라서 독이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
“너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것은..........일본 야쿠자 중 애비와 의형제가 한분 있다. 젊어서 일본에 건너갔다 의기투합하여 의형제가 된 사인데........지금은 일본에서 두 번째를 달리는 미나모토조를 이끌고 있는 분이다. 난 사실 일본 아쿠자을 우리나라에 끌어들이는 것이 싫어 우리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형님께 손을 벌리지 않았지만.........네가 성철파를 일으켜 세우겠다면 형님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해라. 나와는 피를 나눈 형제의 의를 맺은 분이라 내 서찰을 가져가면 너에게 힘을 줄 것이다.”
“아마구치조 다음으로 크다는 미나모토조의 보스가 아버님의 의형제라니.........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왜 진작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애비가 지금은 힘없고 나약한 늙은이로 전락했지만.......난 당당한 대한의 건달이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 놈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우리 일은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네가 성철파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는 마당에 체면이고 뭐고 집어 던지고 널 도와주겠다.”
“............감사합니다. 그분이 도와주지 않아도 아버님의 뜻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또 다른 비밀은 성철파의 몰락에 엉킨 비밀이다. 성철파가 갑자기 몰락하게 된 배경에는 갈치파가 뒤에 있었다.”
“갈........갈치파요.”
“그래........우리가 서울을 장악하고 있을 때 인천에서 도발한 갈치파가 서울로 향해 진격했다. 처음에 우린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조직원이 만 명이 넘던 우리가 겨우 천 명 정도의 갈치파를 우습게 본거지. 근데.........그게 우리의 실수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수였다. 주먹이나 쓰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고수들..........그들의 검 앞에 우리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수많은 조직원이 그들의 검에 병신이 되거나 죽어버리고 우린 마지막 선택으로 그때당시 전국제일의 실력자로 소문난 한 고수를 초빙했다. 그 고수의 출현으로 우린 갈치파를 어렵게 맞을 수 있었다.”
“그런 고수가 있었단 말입니까? 왜 전 모르고 있었죠.”
“네가 어려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대성철파가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뭐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떠들고 다니겠냐. 근데 사람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그 고수가 갈치파 보스 딸하고 사랑에 빠진 거야. 이미 갈치파와 우린 서로 만회하기 힘든 상처를 입어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름도 모르는 고수와 갈치파 보스의 딸이 사랑에 빠져 둘이서 행방불명 된 거야.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갈치파와 우린 서로 협상을 해서 갈치파가 인천으로 물러가고 우린 다시 서울에 남고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고 서둘러 상처를 봉합했다. 한참 조직 정비에 힘을 쓰고 있던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 놈이 강철이고.........나머지 일은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갈치파 보스의 딸(?).........현재 갈치파는 수영이라는 여자가 보스로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이제 20살이 조금 넘은 걸로 아는데........”
“지금 있는 년은 갈치파 보스의 소녀 딸이야. 우리나 갈치파나 강철에게 어부지리를 준 것이 뼈에 사무쳐 가끔 만나서 알고 있다. 너도 그 손녀딸은 보았지 않느냐.”
“손녀딸..........그럼 갈치파 보스 딸과 그 이름모를 고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걸 이야기하기 전에........내가 널 만주로 보낸 이유를 알고 있느냐. 내가 널 만주로 보낸 것은 네가 국선도를 익히게 하기 위함 이였다........어느 정도까지 익히고 있느냐.”
“그........그것이 약간........성질이 급해서.........모두 익히지는 못했습니다.”
“휴~~ 네가 익힌 국선도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무술이다........우리가 조사해서 겨우 알아낸 것이 갈치파는 삼국시대 신라의 무술을 익힌 무리들이다. 크게 원화와 화랑으로 조직되는데 원예는 우두머리 한명과 원예를 수호하는 4명의 원화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들은 원예도라는 무술을 익히고 있고 화랑들은 화랑의 무술을 익히고 있다.”
“원예도(?).........그 꼬마가 고수란 말입니까?”
“원예도는 일인전승무예로 알고 있다. 그 아이가 원예도의 전인이라면 대단한 고수일 것이다. 내가 국선도를 완전히 익히지 못하면 그 아이를 상대할 수 없어..........지금이라도 국선도 수련에 진정해야 한다.”
“저.........아버님 혹시 음양도라고 아십니까?”
“음양도.........네가 그걸 어찌 알고 있지?”
“강철에게 의동생이 있는데 그 녀석이 익힌 무술이 음양도라고 들었습니다.”
“뭐~~~ 음~~~, 음양도는 원예도와 같이 일인전승인 백제의 무술이다. 강철에게 그런 동생이 있다면.......힘든 싸움이 되겠구나. 삼국무술이 모두 나타나다니..........옛날 우리가 초빙한 고수도 음양도를 익히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 고수가 음양도를 요?”
“확실한 건 아니다. 그 스스로 자신이 익힌 무공에 대한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갈치파의 입에서 그가 음양도를 익히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을 뿐이지.”
“그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전라도 송광사에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과 헤이지고 승려가 된 것이지.”
“승.........승려요. 둘이 사랑했던 사람이 헤어졌단 말입니까?”
“후후후........그가.........사랑했던 여인이 죽었다. 그 충격에 승려가 되어 절에 숨어 살고 있지.”
“참 기구한 인생이네.............완전히 세상과 등진 겁니까?”
“글쎄.........그는 네가 빛이 있지. 우린 그에게 갈치파을 세상에서 지워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는 흔쾌히 승낙했지.........그는 우리와의 계약을 무시하고 갈치파 보스의 딸과 사랑에 빠져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어. 그는 아직도 그 빛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그을 우리 일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양날의 검이야............갈치파와 연관이 있는 그가 과연 우리만 도와줄까?”
“우리가 갈치파와 손을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글쎄..........갈치파는 아직 건재해, 뭐가 아쉽다고 우리와 손을 잡으려 하겠느냐.”
“휴~~ 이거야 원~~ 그럼 그 고수는 그림의 떡 아닙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너에게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고수가 우릴 도와 서울을 평정하고 나면..........갈치파가 가만있지 않을 것인데........그때 그가 과연 누구 편을 들지 알 수가 없구나.”
성민은 한동안 고민했다. 갈치파의 정체.......그리고 일본에 있는 아버지의 의형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의 존재. 갈치파의 일은 급한 것이 아니다. 현재는 공동의 적인 강철파가 있기에 자신과 손을 잡으면 잡았지 뒤통수를 때리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자신의 힘을 키워야 한다.
“아버님 일단은 갈치파나 고수의 일은 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을 키워 열심히 해 보고 그리도 안 되면 최후에 갈치파와 손을 잡던.........고수를 끌어들이던 그때 가서 결정하고........일단은 제가 일본을 다녀오겠습니다.”
“네가 알아서 해라........내 서찰을 써주마.”
성민과 성철.........그들도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의 아쿠자를 한국에 끌어들일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50부라서 끝났다고 생각하고 들어오신 분들 죄송~~~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50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준비과정이며 3번째 여자주인공인 요코의 등장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성민의 부산정벌, 성철파의 개혁을 간략하게 끝난것은 많은 분들이 주인공이외 사람들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서둘려 끝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세하게 쓰지 않고 간략하게 서술만 했습니다.
다음편부터 3번째 여자주인공인 요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2부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요코이야기가 얼마나 갈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편은 한 4~5개월 정도 시간을 건너뛰고 시작하니.....글의 배경에 의구심을 갖지 마시길.........
성원해 주시는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 붉은미르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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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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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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